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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오늘따라 너무 그립습니다.

그립다.

오늘은 광석이 형님이 우리 곁을 떠난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바쁜 틈을 타서 자료 하나 올린다.

 

오늘 저녁 7시 30분에 세이 6층 아트홀에서 김광석 추모 콘서트가 있다.

 



[오마이뉴스 김은주 기자]

 
때로 지나간 시간들은 음악으로 남는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함께 떠오르는 향기가 있고, 그 시절을 떠올리면 함께 떠오르는 색깔이 있기도 하다. 혹은 특별한 손짓이나 몸짓만 선명하게 남기도 한다. 하지만 불쑥불쑥 아무 때고 흘러나와 심장을 치고 가는 음악만큼 힘이 센 매개물이 또 있을까.

파도 소리를 들으면 서귀포 앞바다에서 듣던 '제주도 푸른 밤'이 저절로 떠오르고, 오늘은 별이 참 곱구나,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부르던 '별이 진다네'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유행가를 들으면 모두들 "저거 딱 내 얘기라니깐"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니겠는가.

내 지나간 시간들엔 유독 김광석의 노래가 자리하고 있는 순간들이 많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불쑥불쑥 끼어들어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직하고 슬픈 노래들을 불러주던 김광석. 그가 다른 세상으로 떠난 지 벌써 10년이란다. 나는 그가 살아있던 시절보다는 이미 가버린 다음에야 그가 내보였던 슬픔의 정서에 깊이 동화될 수 있었던 세대에 속한다.

내가 나이를 먹는 동안에도 김광석은 조금도 나이가 들지 않은 채, 여전히 청춘으로 남아 있다. 그 주름 가득한 웃음이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고맙다. 김광석을 처음 만난 날부터 오늘까지, 언제나 맑고 깊은 슬픔으로 보듬어준 그의 노래에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올리며….

[풍경 ①-열일곱살] 나의 짝사랑과 함께 온 노래 '변해가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 말고는 세상에 도통 가수라곤 없는 줄 알고 살았던 내가 김광석의 노래를 처음 만난 것은 열일곱 살 때였다. 대구에는 '시인'이란 이름의 찻집이 있었는데, 늘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시인 지망생들과 담배 연기가 꽉 차 있던 곳이었다.

학교 문학 동아리 소속이었던 나는 덕분에 일찌감치 그곳엘 드나들기 시작했다. 토요일마다 모여서 다른 학교 애들이랑 시 토론을 했는데, 어느 날엔가는 동아리 출신 선배들이 그 집에 잔뜩 몰려와서 인사하는 자리가 길게 이어졌다. 자기 소개를 하고, 노래도 한 자락씩 하는데 선배 하나가 무지하게 멋진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바로 '변해가네'였다.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 했지/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내게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고집했지…."

아직 사랑을 몰랐던 어린 나는,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간다던 노랫말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선배에게 반해버릴 만큼은 자라 있었다. 노래 잘하는 사람에게 반하면 약도 없다. 짧았지만, 꽤 달콤했던 짝사랑은 선배의 애인을 본 뒤 한 달 만에 접어야 했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변해가네'를 사랑해 마지않았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는 학교 총각 선생님부터 이웃 남학교까지 짝사랑할 대상은 차고 넘쳤으니까.

[풍경 ②-스물살] 최루탄 연기와 함께 온 노래 '그루터기'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김광석은 이미 노찾사 활동을 접은 뒤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루터기'나 '광야에서' 같은 노래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입학 후 첫 집회가 끝난 밤, 알 수 없는 쓸쓸함으로 학교 강당 앞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술잔을 돌리면서 선배들이 부르던 노래는 때론 '노찾사'의 것이었고, 때론 '천지인'이나 '꽃다지', 그리고 또 불쑥 김광석의 노래가 끼어들었다.

목소리를 높이던 집회가 끝나고, 긴장 속에 도로 위에 누워있던 시간이 가고, 참혹했던 열패감의 순간들도 가고 난 뒤, 가없이 쓸쓸한 마음을 김광석의 노래가 다독여주었다. 대학생이었던 내가 '새'나 '사랑이여'와 더불어 참 좋아했던 노래, '그루터기'.

"하늘을 향해 벌린/ 푸른 가지와/ 쇳소리로 엉켜붙은/ 우리의 피가/ 안타까운 열매들/ 붉게 익히면/ 푸르던 날 어느 새/ 단풍 물든다."

무모해서 아름다웠던 이십대를 떠올릴 때, 내 마음에도 덩달아 단풍이 물들곤 한다.

[풍경 ③-스물두살] 떠나버린 사랑에게 보내는 노래 '그날들'

돌아보면 늘 서툴기만 했던 나의 사랑은, 그가 떠난 뒤 속수무책으로 저 혼자 계속되고 있었다. 정작 함께였을 때는 툴툴대기만 하고, 뚱해 있기나 하고, 내 감정을 숨기고 덮어두려고만 했던 주제에, 헤어진 뒤에야 내 사랑은 저 혼자 깊어지고, 또 깊어지는 것이었다. 그가 입대하기 며칠 전, 그를 만나 오래오래 함께 캠퍼스를 걸었다. 다 주지 못한 사랑이 애달파서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르곤 했었던 그날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그 사람이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를 부르며 이등병이 되었을 때, 남은 나는 그렇게 부질없이 '그날들'만 불러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1996년 겨울, 김광석도 세상을 떠났다.

[풍경 ④-스물일곱]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다 '서른 즈음에'

스물넷에 시작한 서울살이는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지하철을 타려고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힘들어 어리벙벙 서있기만 했는가 하면, 지나치게 많은 건물과 너무 많은 차들과 사람들 속에서 낯선 날들을 보내야 했다.

하던 일을 3년 만에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고 있던 무렵에 연대 앞에 있는 '서른 즈음에'에 처음 갔다. 작고 어두운 곳이었지만, 조금은 시끄러웠고 또 조금은 우울한 곳이었지만, 그곳에 가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틀어달라고 우기는 나의 스물일곱은 그리 절망적이진 않았다. 세상 전부와 맞짱을 떠도 해볼 만하다고, 믿는 구석도 없으면서 대책 없이 씩씩하게만 살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불안했던 모양이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워 가는 내 가슴 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백수의 하루하루가 멀어져 가는 걸 보면서, 어떻게 살까, 무엇에 내 인생을 걸어볼까, 참 진지하게 고민했던 날들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을 무지하게 괴롭히면서. '서른 즈음에'와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를 번갈아 부르면서 나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서른살 생일엔 꼭 '서른 즈음에'에 와서 술을 먹어야지, 하는 결심을 혼자 했더랬는데, 어쩌다 보니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어 버렸다.

[풍경 ⑤-요즘] "싸구려 감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짓이잖아, 이건!"

어제 나랑 술을 먹던 후배에게 김광석 이야기를 꺼냈더니, 대뜸 그런다.

"누나도 김광석이야?"

녀석도 분명히 김광석을 사랑하고, 그가 노래하는 슬픔의 정조를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냥 혼자 알아서 추억하게 내버려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매체에서 떠들어대는 게 싫단다. 자기 감정을 싸구려 감상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 같아서, 덩달아 그 분위기에 휩쓸리는 게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래,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아껴둔 마음 속 이야기를 누군가가 헤집어 놓는 것을 보는 일이 유쾌할 순 없는 거니까. 그래도, 나는 또 이렇게 촌스럽게, 김광석을 추억하고 있다.

1993년 2월에 내놓은 음반 '김광석 다시 부르기 1'에 김광석은 이렇게 적어 놓았다.

 
ⓒ2006 미디어신나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붉게 물들어 내일을 기약하는 저녁 노을은 그저 아쉬움입니다. 익숙함으로 쉽게 인정해버린 일상의 자잘한 부분까지 다시 뒤집어보고 내걸어온 길들의 부끄러움을 생각합니다. 쉽지만은 않았던 나날들. 내 뒷모습을 말없이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던 고마운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더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생각했던 세상살이가 지금의 제 모습이 아님을 깨닫고 부대끼는 가슴이 아립니다. 읽다 만 책을 다시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기억력의 한계를 느끼듯 불러왔던 노래들을 다시 부르며 노래의 참뜻을 생각하니 또 한 번 부끄럽습니다. 지난 하루의 반성과 내일을 기약하며 쓰는 일기처럼 되돌아보고 다시 일어나 가야 할 길을 미련 없이 가고 싶었습니다.

세수를 하다 말고 문득 바라본 거울 속의 내가 낯설어진 아침, 부르고 또 불러도 아쉬운 노래들을 다시 불러 봅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오늘, 그 사람, 김광석이 참 그립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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