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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난 지각 한번을 모르는 범생이었다. 대학을 와서 누군가로부터 강제되지 않는 생활에 (사실...실상 학점에는 강제되는 생활이었지만) 비오는 날이면 학교를 가지 않았다. 기분탓인 것도 있긴 했는데, 고등학교 방학때면 비오는 날엔 따뜻한 방바닥에 배깔고 옆엔 먹을 것을 두고 만화책을 보던 느긋한 습성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결정적 계기가 비오는 날엔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려하게 만들었는데, 그 계기라 함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젖은 구두로 내 발을 밟고는 미안하다는 말 없이 버스에서 내리는데, 순간 난 정말 살인을 할 뻔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자는 내 발을 밟았다는 사실을 잘 못 느꼈던가, 아님 바쁘게 가야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순간에는 아무 일 없이 내리는 얄미운 뒤통수를 보면서 뛰어내려 머리채를 휘잡고 머리통을 바닥에 수 없이 내리쳐도 모자를 기분이었다. 그렇게 걷잡을 수 없는 분노도 잠깐 물길에 미끄러져 발을 밟았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살의를 느낀 내가 무섭다는 생각과, 다른 한편으로 요즘 세상엔 순간적 분노로라도 충분히 살의를 느낄 수도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다시는 그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비오는 날에는 나가는 것을 꺼려하던 까닭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이상하게 운이 좋지 않는가 싶더니 가파른 경사길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 했다. 길을 내려오는데, 어느 예술학부에선가 깜짝 이벤트 식으로 학교 곳곳에 조형물을 설치해 놓은 것 아닌가. 내가 넘어질 뻔 한 길에는 밧줄이 늘어져 있었는데, 그 밧줄을 발견한 순간 길을 올라오던 흰차가 마주오는 차를 피하려고 내 쪽으로 차를 돌진해 온 것이었다. 순간 나는 차를 피하려고 발을 옆으로 딛다가 밧줄에 미끄러져 휘청거렸는데 미끄러질뻔 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나를 향해 돌진해 오던 차를 향해 달려가 뒷 유리창을 박살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실제로 몇 걸음 다시 올라가다가 경사길이라 그만 뒀는데... 거의 5년만에 과거에 느꼈던 비오는 날의 급격한 폭력 충동이 날 너무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비오는 날은 이상하다. 대략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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