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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나도 잘 모르겠어

돕의 글을 읽으면서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그처럼 '현장'을 주무대로 활약하지는 못하지만 소위 '운동권' 주위를 맴돌며 각종 음악작업이란 걸 생계수단 삼아 연명하는 처지에서 나는, 안쓰러움과 무기력함, 그리고 분노의 감정으로 그의 탄식에 공명하게 된다. 이것은 전혀 새삼스러운 경험이 아니다. 이른바 이땅의 자랑스런 '문예일꾼'이라면 그가 더 헌신적일수록 무수히 겪어온, 그리고 앞으로도 겪게 될 것이 분명한 경험이다. 또한 이것은 "문예역량을 단순한 도구로 사고하는 오류"라는 운동권식 언어로 명쾌하게 정리하는 것으론 불충분한 문제이다. 사실, 그들(또는 우리들)은 돕(또는 우리들)을 '단순한' 도구로 사고하지 않고 '가치의 위계질서가 적용되는' 도구로 사고한다. 즉, 더 훌륭한 도구와 덜 훌륭한 도구, 더 지독하게는 더 유용한 도구와 덜 유용한 도구로 사고한다. 가치평가의 기준이 통일된 것은 아니나 대개는 유명세라고 하는 지긋지긋하게도 통속적인 상징자본의 크기로 그 등급이 매겨진다. 누가 운동판의 유재석이고 누가 운동판의 박명수며 누가 운동판의 정형돈인지, '행사'의 기획자들은 잘 알고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야멸차다고? 그렇지 않다. 누가 이 자리를 빛내 줄 '초대손님'이고 누가 이 자리에 봉사해야할 '일꾼'인지 당사자가 더 잘 알리라 여기면서 그 질서에 흠집내는 투덜이를 댓가에 목맨 신심결여자로 공공연히 뒷말해대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내가 과연 더 야멸찬 것일까? 가슴에 발을 얹고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래도 인정할 건 하겠다. 그들(또는 우리들)보다 덜 야멸차기는 해도 좀 심하게 몰아붙인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을. 이렇게 씩씩대며 현상황을 성토해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음을 잘 알고있지만 마침 오늘 똑같은 불만을 토로해대는 지인의 얘기에 속상해 있다가 돕의 글을 대하자 감정이 많이 앞서버린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지 안을 생산해내는 일인데, 소심하고 무능력하고 별로 안 윤리적인 주제에 성질만 더러운 나같은 2차 관련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크고 복잡한 과제이다. 실컷 화만 내고 슬쩍 찌그러지는 것 같아 쪽팔리다는 느낌이 엄습해오지만, 머리를 충분히 식히고 더 많이 생각해보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다행스럽게도, 내 머리는 열전도율이 매우 낮아서 어떤 훌륭한 분(들)의 적절한 말씀이 나오시기 전까지는 잘 식지 않을 것 같다.


원래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위의 문제를 약간 다루고 좀 다른 얘기를 더 비중있게 하려고 했다. 기존의 운동가요(돕의 표현대로라면 "원래 진보진영에서 불려지던 노래들")에 대한 돕의 평가, 그에 기반해서 설정하는 자신의 음악(활동)에 대한 규정, 그러면서 남는 문제들 등에 관해 내 생각을 이리저리 말해 보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너무 열불내는 바람에 애초의 번뜩(이기까지나 했을까 설마, 그냥 쫀득이겠지)였던 생각들이 다 흐트러져 버렸다. 그것을 다시 추스려내기엔 지금 너무 피곤하고 밀린 일도 도사리고 있기에 이 역시 다음을 기약하는 바이다......(이럴거면 왜 쓴거냐...-_-)

 

그래도 정다운 미소를 머금은 채 전하는 "돕, 기운차리시오~"라는 인사말을 빼먹을 순 없겠다. 뻘글에 분노한 사람들이라도 웃는 낯에는 설마 침 못뱉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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