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태지 유감

또 서태지가 왔다..
사실 서태지가 과거 음반무림을 점령했을 때에도 그의 몇 곡을 제외하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크로바틱한 댄스를 보여준 '아이들'에게 더 주목했다.

제작년 들어 가끔 서태지 생각이 났었다. 민초들로 부터의 뜨거운 민주화 운동들과 촛불 시위, 반전/반미 시위들 속에 서태지가 일종의 전도사로 등장하길 기대했었다.
몇 년동안 음반을 통해 청소년 문제, 평화, 통일 같은 메시지로 장사해먹었던 그 아닌가?
내심 그의 전략이 값싼 상술이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상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도 상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냉정하게 예술도 상품인 시대에 대중예술의 컨텐츠가 상술이라고 실망 한다면 내가 너무 착한 척 하는건가?

지난 앨범 발표 후 메체와의 관록 붙은 그의 인터뷰들을 보고 그에 대해 적잖이 놀랐다.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들을 아주 교묘하게 무력화 했던 모습들...
서태지는 확실히 방송과 사람들을 잘 요리하는 재주 하난 비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난의 근거들을 더 들고 싶지만 남 비난하는 못된 취미 나올까봐 여기까지 하겠다.. ^^;


하지만... 확실한건 곡과 가사 하난 잘 쓴다.
가끔 서태지를 통해 서정주 선생이 오버랩 되곤 한다.
물론 서태지는 서정주 선생 처럼 모독을 받아 마땅할 만한 행동을 한건 아니지만... 다 차치하고 시 하나는 예술이었던 서정주 선생 처럼 못 마땅한 점이 많지만 태지도 음악 하난 잘 만든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 한 해서)

끝으로 불평 하나 더 하자면... 그를 천재라고 호칭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이외수 선생은 천재를 다음 처럼 정의했다.
[수재를 능가하는 인재다. 뛰어난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사랑하고 예술을 창조한다. 그러나 천재는 요절한다. 천재는 사회를 수용할 수 있으나 사회가 천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천재의 죽음은 자살보다 타살에 가깝다.]
천재란 시대와 사회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진짜 천재는 장승업이나 이상 처럼 자신의 삶을 난도질 한 채 예술로 도락하는 사람들 아닐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