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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는 한대수가 산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이국적인 포크 록커..
한국 최초의 히피..

한때 한대수를 무지하게 좋아했습니다. 그의 자유.. 방황.. 무엇보다도 발군의 음악성..

이젠 속물이 되버렸지만... 20대 초반에는 한대수씨처럼 기타하나 들고 세상과 맞짱뜨고 싶었더랬습니다.
한대수씨의 자유가 부럽고, 그 자유를 양육했던 히피시대가 부럽고 상당한 미인인 사모님도 부럽습니다.. ^^



"하지만 나는 화폐 없어. 화폐가 무슨 필요가 있나? 질투와 소유는 평화를 깨. 나는 사람이 두 가지만 없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병하고 빚이야. 이 두 가지만 없으면 행복하지 뭐. 물론 나는 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지만 말이야, 하하하"

"화폐는 자본주의의 물이야. 나쁜 건 아니지. 하지만 ‘투머치 화폐’는 좋지 않아. 평화를 깨. 시기, 질투, 소유권, 이 세 가지는 항상 마음의 평화를 깨는 거야. 밥 먹고 음악 만들고 술 마시고 그러면 되지, ‘투 머치 화폐’가 무슨 필요가 있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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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는 한대수가 산다


모름지기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것이야말로 사천만의 꿈이다. 더구나 ‘영감’에 죽고 사는 예술가라면 아담한 스카이라인 아래로 산그늘 일렁이며 잔잔한 물 흐르는 양평 어디쯤에 작업실이라도 하나 내거나, 혹은 미사리 쯤에 카페라도 하나 여는 것이 나름의 작지 않은 소망일 게다.
그러나, 한대수는 신촌에 산다. 바닥은 침대와 티테이블 하나, 그리고 CNN이 나오는 볼록한 14인치 모니터 한 개로 그득하고, 벽이라고는 아내의 나라에서 가져와 걸어둔 현악기 서너 개와 공연 포스터 몇 장, 그리고 작년에 받은 가요대상 공로상 트로피만으로도 그득한 여남은 평 좁다란 오피스텔 한 칸. 팔 층의 창 넓은 방이라고는 해도, 그 창에 가득한 것은 근처 흔한 캠퍼스의 푸른 잔디밭이 아니라 빼곡한 빌딩숲의 가장 칙칙한 뒷덜미들 뿐이었다.

“난 외곽은 싫어. 분당만 가서 살아도 말이야, 사람 만나고 연습하고 하려면 두 시간씩 나와야 하잖아. 뉴욕에 있을 때도 나는 맨하탄에서만 살았어. 맨하탄이 그 외곽에 비해 열 배는 비싸단 말이야, 방값이. 그런데도 나는 중심에 살아. 물론 중심에 살려면 좁은 데 있어야 하지만, 뭐, 좁은 게 무슨 상관이야.”
“그래도 예술 하시는 분들은 주변 환경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영감을 받기 위해서라도…”
“영감? 외곽 나가면 무슨 영감이 있나? 영감이야 신촌에 있지. 젊은 여자들 미니스커트 보면 영감이 떠오르고, 고구마랑 옥수수 쪄서 파는 아줌마들 보면서 영감이 떠오르는 거지. 신촌이 양호야, 양호. 하하하.”


대학시절 처음 밟아본 신촌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동네였다. 어떤 날은 지독하게 매운 연기 속에서 쿨럭거리다 널브러져 아스팔트를 베고 누운 채 얼핏 거꾸러진 세상 꼴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고, 또 다른 어떤 날은 어설픈 호기에 넘쳐버린 술기운으로 비틀거리면서도 배꼽티에 미니스커트의 ‘초양호한’ 아가씨 뒷꽁무니 구경에 넋을 놓곤 하던 곳이었다.
또 어느 골목에서는 휘황찬란한 ‘락카페’ 구경을 할 수 있었고, 다른 뒷골목에는 스레트 지붕에 온통 끓어 넘치는 ‘독재타도’와 ‘광주영령’ 낙서 가득한 구들방에서 동태찌개 한 냄비에 주먹 쾅쾅 구르며 불끈불끈 투쟁가를 부르기도 했었다.
신촌은 나에게도 영감을 주는 곳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내 생각에 오늘의 신촌은 돈이 있어야 즐거운 곳이다. 더 이상 사지도 않을 책을 반절이나 넘기도록 서점 바닥에 버티고 앉아 있기에, 혹은 주문도 하지 않은 채 먼저 와서 기다리던 어느 카페의 친구 옆자리에서 냉수만 거듭 채워가며 나름대로 심각한 논쟁으로 몇 시간을 죽이기에 신촌은 너무 깔끔하다. 이제는 그래도 몇 푼이고 돈이 있어야 한다. 하기야, 신촌 뿐이겠는가만.

“좀 민망한 질문입니다만, 재산은 얼마나 모으셨어요?”
“재산? 없지, 뭐.”
“혹시 뉴욕에라도 집은 있으신가요?”

조금 짓궂은 질문이었을까? 그래도 궁금했다. 아무리 ‘히피’라고는 해도, 스스로 ‘할배’라고 부르는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

“없어. 뉴욕에도, 서울에도. 음… 사실, 음악 하는 사람 중에 화폐 모은 사람 없지. 아마도 한국에서 서태지나, may be… 조용필 정도? 찰리 파커나 챗 베이커 같은 음악가들도 화폐 때문에 가족까지 깨지고, 뭐 다 그랬다고. 물론 화폐라는 게 자본주의 사회의 물이지만, 세계적으로 돈 번 음악가는 없어.”

조금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될 듯 싶었다. 신세한탄이거나, 돈세상에 대한 저주라도 필요했다. 오십줄의 히피라면, 나에게 그 정도 속살은 내놓아야 했다.


“그래도 같이 음악하셨던 분들 보면, 큰 돈은 아니라도 집 사고, 뭐 카페도 내고, 어쨌든 좀 안정적인 생활기반을 마련하는 데는 신경을 좀 쓰지 않습니까?”
“음, 뭐 그렇지. 하지만 나는 화폐 없어. 화폐가 무슨 필요가 있나? 질투와 소유는 평화를 깨. 나는 사람이 두 가지만 없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병하고 빚이야. 이 두 가지만 없으면 행복하지 뭐. 물론 나는 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지만 말이야, 하하하.”

그는 돈을 굳이 ‘화폐’라고 부른다. 물론 돈을 화폐라고 바꾸어 부른다고 해서 무슨 새로운 의미가 덧붙거나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뭔가 그 경쾌한 파찰음만으로도 간단히 비틀려 벌어지는 ‘돈’과 ‘나’와의 거리감. 우리가 흔히 그것을 ‘쩐’이나 ‘배춧잎’으로 바꿔 부를 때처럼 어느 만큼 희화화되고 가벼워지는 느낌. 그는 인생 전부를 빨아들이곤 하는 ‘화폐’의 마력에서 그런 식으로 물러서 있었다.

“화폐는 자본주의의 물이야. 나쁜 건 아니지. 하지만 ‘투머치 화폐’는 좋지 않아. 평화를 깨. 시기, 질투, 소유권, 이 세 가지는 항상 마음의 평화를 깨는 거야. 밥 먹고 음악 만들고 술 마시고 그러면 되지, ‘투 머치 화폐’가 무슨 필요가 있나? 하하하.”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만큼은 그의 앨범 자켓 사진을 볼 때의 상상 속 느낌 그대로였다. 도깨비 장난이라도 치듯 얼굴을 훅 앞으로 들이밀며 재미있어 못 견디겠다는 듯이 터뜨리는 단발의 폭소.
그는 항상 위악적인 표정과 그늘로 자신을 드러냈다. 노래도 다르지 않았다. 연주보다도 앞서 불쑥 고개 들이밀며 ‘물 좀 주소’ 하고 을러대기도 했고(‘물 좀 주소’), 온갖 심란한 타악기와 저음의 기타연주에다가 톱연주 까지 얹어서 ‘여치’(같은 하찮은 목숨들, 아마도)가 죽었다고 골을 부려대기도 했다(‘여치의 죽음’).
그러나 항상 그 위악의 뒷면에는 행복의 나라로 나른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그러다 지치면 일어난 자리에서 소주나 한 잔 마시고 다시 꿈길로 접어드는, 게다가 가끔 ‘치마구경’이나 하고 기타나 칠 수 있다면 ‘투 머치 화폐’도 다 필요 없다는 속 터지게 착하고 여린 겉늙은 어린아이가 총총거린다.
몽골계 러시아인인 그의 아내 옥사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무려 삼십여년 가까운 나이차이가 나는 어린 아내에게, 그는 순정을 다바쳐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껏 나온 사랑노래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솔직한 노래라고 평했고,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며 물었다. “그 노래가 아름다웠구만.”


oh my love i've been a waiting for your smile
oh my love i've been a dreaming of our days
i need you woman
i need you babe
i need you when the night has come

oh my love i've been a waiting for your touch
oh my love i've been a talking 'bout your ways

내 사랑 새벽이 오면 오겠지
내 사랑 가을이 오면 오겠지

없이는 몰라
없이는 폐허
없이는 시들어진 잎
(‘To oxana’)

이야기를 나누던 그의 집 근처 극장 앞 계단에서, 그는 지나는 사람들에게 실없이 말을 걸기도 했다. ‘아니, 이 아침부터 영화를 보시오? 우와, 진짜 영화광이네.’ 몇몇은 웬 칙칙한 중늙은이가 말을 건다 싶어 에둘러 지났고, 또 몇은 어기적거리며 다가와서 사인을 부탁했다.

“뉴욕에서는 말이야, 산책하다가 배꼽티를 입은 여자한테 ‘당신 배꼽 아주 나이스야’하고 말을 걸면 ‘땡큐’ 하거든.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한테 ‘당신 각선미가 아주 보기 좋아요’ 하면 ‘당신도 멋져요’ 하기도 한다고, 하하하. 그런데 서울에서는 ‘당신 각선미 좋소’ 하면, ‘왜 남의 다리는 보고 그래요?’ 하고 따지지. 보라고 내놓고서는 또 칭찬해주면 화를 내고 말이지. 하하하.”

이 인간, 정말 서울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서울이 답답하지는 않으세요?”

나는 서울이 답답하다. 하루 종일 만나 인사를 나누기에도 바쁠 만큼 많은 사람을 버스 칸마다, 전철 칸마다 무심히 스쳐 넘기며 사는 일이 고달프다. 또, 걷다보면 깔끔한 찻집이건 후덕한 밥집이건, 얼굴 위로 후끈 뿜어대는 에어컨 실외기의 질리도록 배타적인 열기가 덧붙여지는 아스팔트의 사십 도짜리 여름날과 열대야가 싫다. 그래서 나 역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을’ 언젠가를 꿈꾸면서, 오로지 그 꿈을 이루어 줄 ‘투머치 화폐’를 벌기 위해 이 빌어먹을 서울에 빌붙어 산다.

“서울은 고독하지.”

그는 ‘답답함’을 ‘고독’으로 받았다. 그리고 시선을 내렸다.

“나는, … 고독을 위해 태어난 것 같애.”

아주 짧게, 고독이라는 말은 그의 입술 사이에서 씹혀 나왔다. 마치, ‘아주’라는 강조어를 넣어 한 번 비틀려고 했던 것처럼.
그는 고독하다. 1974년에 1집 ‘멀고 먼 길’을 발표한 뒤 2004년 10집 앨법 ‘상처’를 낼 때까지, 한 순간도 영감과 실험정신을 배신하지 않은 장인. ‘천재 음악청년’으로부터 ‘마지막 히피’, ‘퇴폐적 낭만주의자’, 혹은 ‘정보당국의 요시찰 대상’을 거쳐 ‘한국 포크음악의 시조’이자 ‘록 정신의 화신’으로 다시 평가되기까지 그는 세상의 시선과 무관했다. 고로 세상 사람들과 엇갈리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대가’라거나 ‘원로’라는 불치의 자기파괴적 바이러스마저도 그의 예술적 젊음을 조금도 갉아내지는 못했다. 그의 대표곡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박제된 ‘물 좀 주소’와 ‘행복의 나라로’를 진작에 흘러지나 오늘, 현재에 만들어지고 있다. 그는 서태지 보다도 젊은 ‘현역’ 음악가이다.

“그래서, 서울이 뉴욕보다는 좋지.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뭐 이렇게 모여서 뭘 해보자는 분위기도 있고. 뉴욕은 아주 개인주의거든. 물론, 개인주의라는 건 나쁜 건 아니지. 어쨌든 가끔 술도 같이 마시고… 뉴욕에는 정신병자들이 많잖아? 그런데 아마 이런 관계들이 ‘테라피’가 돼서 서울에는 정신병자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애”
“서울에는 정신병자들이 없는 대신에 ‘홧병’을 앓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까?”
“그거야 안 그런 곳이 어디 있나? 뉴욕도 다 그렇고 어디나 그렇지. 그러니까 나는 어디건 자기 두뇌 속의 생각이 인생의 전부라고 본다고. 두뇌 속에 평화가 있으면 되고, 시기, 질투, 소유욕을 버리면 되는 거지. 그렇지 않나? 하하하.”

서울에 살고 있는, 그러나 서울의 온갖 것들이 불만인지라 언젠가는 멋지게 떠남으로써 복수하고 말 거라며 ‘투머치 화폐’에 매달리고 있는 인터뷰어는, 아무 철 없이 이 매캐한 잿빛 도시를 즐기며 흥얼거리는 늙은 히피 인터뷰이에게, 완전히 졌다. 그래서 술은 얼마나 드시는지 물었고, 일주일에 나흘은 마신다는 답을 들었다. 그리고 그 하루에 나도 좀 끼워달라고 졸랐고, ‘오케이’ 하는 화통한 소리로 술약속을 잡았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행복한 사람’에게서 행복의 포자나마 조금 분양받아 볼거라고.
한대수는 신촌에 산다. 신촌에 살면서 치마 구경을 하고, 국수도 한 그릇 씩 사서 마시고, 소주도 댓 잔 들이키며 영감을 얻고 노래한다.
그로 인해 신촌은, 또 하나의 향기를 품었다.


1.
하루 아침 눈뜨니 기분이 이상해서
시간은 11시 반, 아! 피곤하구나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소주나 두 잔 마시고
소주나 석 잔 마시고 일어났다
2.
할 말도 하나 없이 갈데도 없어서
뒤에 있는 언덕을 아! 올라가면서
소리를 한번 지르고 노래를 한번 부르니
옆에 있는 나무가 사라지더라
3.
배는 조금 고프고 눈은 본 것 없어서
광복동에 들어가 아! 국수나 한그릇 마시고
빠문 앞에 기대어 치마 구경하다가
하품 네 번 하고서 집으로 왔다.
4.
방문을 열고 보니 반겨주는 개미 셋
안녕하세요 한사장 그간 오래간만이요 하고 인사를 하네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소주나 두 잔 마시고
소주나 석 잔 마시고 잠을 잤다

(“하루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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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 우리교육> 9월호에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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