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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 박노자

처음엔 일개 논객으로 박노자 교수를 알았지만 관심을 더 할 수록 박노자는 '한국인이 될 수 없는 진정한 한국인'으로 생각되어진다.
그가 연구했던 한국학이란 분야와, 더불어서 그가 갖고자하는 (현재는 단절됐지만) 한국의 내면적 정신을 보노라면 박노자는 '러시아가 준 한국의 선물'로 생각되기까지 하다.



박노자는 책 제목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 귀화 한국인이면서 한국 사람보다 더욱 한국을 잘 아는.. 그리고 북유럽(러시아)의 문화권에서 자란 이 분의 한국에 대한 관찰은 나에게 많은 반성을 하게끔 한다.

몇 번째 독후감 형식의 글을 올리지만 일부러 나는 책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기를 꺼려하고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유는 전체의 내용을 소개하기엔 시간과 노력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귀차니즘... ^^;) 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전체 내용을 소개한다면 독자들이 이 책들을 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책은 한국인으로서 나를 많이도 반성하게 하거니와 한국의 고질적 질병을 많이도 생각케 한 책이었다.

요약하건데 이 책의 내용은 전근대를 아직 벗어나지 못 한 한국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 하다.


국가주의

우리는 유신에 의해 (그로 비롯한 스타 아저씨들의 정권..) 우리의 관념 전부를 쇠뇌당해왔다. 냉전적인 사고방식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적인 행복의 가치, 패션의 취사선택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분 (마치 인공유전자 이식처럼) 우리의 모든 부분을  국가적 목적성에 의해 주입되어왔다. 더구나 우리가 존경하고 혹은 우리의 뿌리를 찾는 대상 마저도 국가에 의해 치밀히 통제되어왔다.
미래를 지배하는 사람은 교육을 지배하는 사람이다. 즉, 교육을 통재한다면 지금의 우리들처럼 (나와 같은 연배의 사람이라면 빨갱이는 무조건 나쁜 존재로 생각하듯이..) 왜곡된 세계관을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박노자가 처음에 제시하는 우리에 대한 쇠뇌는 한번 곱씹어볼 만 하다.

"그들에게는 민족과 단군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민족과 단군의 이름으로 어린이들에게 국가, 즉 국가의 지배층에 맹종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 히틀러의 '오딘신'숭배나 '민족정신회복시민운동연합'의 단군 숭배조차도 역시 진보를 막지 못할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바...... 이순신이나, 단군, 세종대왕 같은 분들의 아낌없는 찬양은 사실은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목적이 강함을 알아야 한다. 마치 미국에서 워싱턴 대통령은 거짓말도 안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듯이 우리가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마저 우리가 쇠뇌에 의해 존경하게 됐다는 사실에 우리는 다시금 객관성을 가져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 이런 최면을 건 주체의 의도를 읽어야 할 것이다. 결론은 뻔하다. 군복 출신의 아저씨들의 자신의 정당성, 목적성을 위해서 남한에 대한 근본적인 집단 최면의 시도였으며 결과는 정말 효과적이었던 듯 하다.


교우이신

제일 가슴 아프고 공감이 갔던 부분이 박노자 선생의 '교우'에 관한 내용이다.
일찌기 유교권에서는 '도반'이나 '교우'의 개념이 상당히 중요시 됐는데 "'도반'은 불가 용어로 깨달음을 향해 같은 길을 가는 구도자로서 정신적 친구"를 의미하고 "'친교', '교우'의 개념의 내면적 논리는 어디까지나 친구에게서 본받을 것을 본받아서 자신의 인격을 높여야 한다는 원칙을 중심으로 성립한다." 하지만 (화이트인) 박노자의 경험으로 아주 황당한 사건들을 맞게 된다. 길을 가다가 전철역에서 한국 대학생들에게 자신에게 영어를 가르켜주면 (화이트는 무조건 영어권 민족이냐??) 자신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쳐주겠다는.. 그래서 우리 서로 친구하자는 '거래'를 받는다는 것이다.
박노자로선 무척 황당할 수 있는 내용이다. 러시아에서 한국을 배운바로는 한국은 교우이신하는 미덕이 있는 나라인데 현재의 모습이란 언어 (인종) 사대주의의 노예가 되버린 상아탑(?)의 노예들을 겪은 것이다.
1차 집단인 친구관계에서 일종의 거래와 give and take의 거래가 행해지는 모습이 우리의 현주소가 되어버렸으며 이런 천민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우리의 일상들을 박노자 선생은 "서구의 인권존중이나 준법정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서구 중산층 젊은이 대부분의 현실 순응적인 (출세, 경쟁, give and take..) 생활태도를 그야말로 '모범'으로 생각하고 익혔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교우이신이란 무엇인가?
"옛날에 풍류의 맛을 즐기면서 친구의 한마디 말에 깨달음도 얻고 인생에 중요한 가르침도 얻었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상상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에게 친구가 무엇일까? 서로의 효용가치 + 알파적인 존재밖에 되지 않는가?
다시금 고찰해봐야 할 문제 같다.


이 밖에도 권위주의, 군대문화, 폭력, 교육.. 등의 다양한 부분에서 한국의 전근대적인 모습들을 관찰하고 그에 대한 분석을 해 준 것에 감사하며 끝으로 우리나라의 인종주의에 대한 소개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천민 자본주의적 인종주의

사실 (난 외국에 나가보지 않았지만) 선진국민들은 우리나라나 동남아인이나 다 거기서 거기로 생각한다고 한다. 되려 동남아인들의 인도적 철학이나, 불교에 기인한 자비적 태도는 오히려 천민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우리나라보다 더 우월하게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의 영향으로) 모든 가치를 '부가 있음과 없음'으로 평가하려고 한다. 이에 대해 박교수는 우리들의 경제적 기준의 야만성을 지적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몽골인이나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내면적인 멸시는 그들의 인격이나 학식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국적의 경제수준에 기반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성숙한 인격을 갖고 있다. 가령 임금을 떼먹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한국 경영자, 관리자, 그리고 이를 묵인하는 국가에게 그들은 (물론 '모든 그들'이 아니겠지만..) 인격적으로 측은한 생각을 한다고 한다. 자신을 학대하는 대상에게 인격적인 측은함을 갖을 정도로 그들은 성숙하고 선한 인격을 갖았다는 것이다. 반면 상술한 skin적 사대주의에서 묘사했던 백인 우월주의 추종자로서의 한국을 대치했을 때 정말.. 우리들의 현주소는 쪽팔리기 그지 없는 모습이다.
또한 북한이나 조선족, 후진국 이주 한국인에 대한 우리나라의 무관심한 태도에 대해  "한국의 '민족' 개념이 몽골과 달리 '국가'와 '국적', '경제력'과 같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우리는 돈이란 기준으로 세상을 아주 편하고 단순하게 판단하는 듯 하다. 민족이나 인권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도...


끝으로 놀라운 사실은 유럽이나 러시아와 같은 나라에서 대학은 그들의 장래와 상관이 크지 않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이다. 즉, 그들이 컴퓨터를 공부하는 이유는 취업이 잘 되고 얼마 정도의 수입을 보장해서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란 학문에 흥미가 있어서..라고 한다. (만약 그랬다면 박노자 같은 수재가 허접한 한국학 같은 학문에 관심이 갔겠는가?? ^^;;)
생존과 계급, 출세를 위해 공부해야하는 우리나라의 교육구조를 대입해 봤을 때 여간 부러운 부분이 아니다..

여하튼..  이 책을 통해 박노자의 인격과 이성적 기품에 대해서 감복했고 왜 그가 왜 한국에서 못 버티고 오슬로로 향했는지 이해가 가기까지 하다..


이 책을 통해 얻은 문제의식은 근대 이후의 한국과 전통적 한국과의 차이를 분석하고 우리가 수용해야 할 한국인으로서 우리 모습 찾기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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