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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09
    똘레랑스(관용)에 대해서...
    free-vahn
  2. 2005/03/09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free-vahn

똘레랑스(관용)에 대해서...

똘레랑스(tolerance)는 불어로서 일반적으로 '관용'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 근원을 유럽의 역사에서 구하고 있는데요...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종교전쟁, 1/2차 세계 대전으로 이르는 살육의 퍼레이드가 있었습니다.
종교전쟁의 경우 로마에 카톨릭이 국교로 채택될 쯤해서부터 종교적인 이유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었죠? 현재 유럽인구만큼의 사상자를 양산한 이데올로기였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은 보스니아/발칸문제, 사라예보 사건 등의 민족 분쟁도 있었지만, 주 요인은 산업사회 이후로 성장한 유럽 국가들의 국력을 세계라는 밥그릇을 놓고 쌈질했던 다툼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즉, 판세의 재정립 역할을 했죠..)
제국주의, 팽창정책에 의해 발단이 됐고 (ex.독일의 성장에 제동을 걸고자 했던 영국, 프랑스와의 전쟁) 미국까지 가세해서 세계대전이 되었죠.. 여기서도 몇년전 우리나라 인구에 버금가는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의 원인은 이념이었죠...

물론 근본적으로 밥그릇 다툼이지만 여기엔 사상, 이념, 입장, 견해, 이익관계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었고, 이 갈등이 비극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치고받고, 천문학적인 수치의 사상자들... 이 중심에 있던 유럽인들... 그 중에 프랑스인들이 자각한 것이 '똘레랑스'란 개념입니다.
이런 갈등의 원인은 서로 '다름'을 인정/존중하지 않고 충돌했다는데 있다는 자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상의 자유는 그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터무니없다고 할지라도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다." - 버나드 쇼
"나에게 자유란 언제나 정치적 반대자의 자유를 의미한다." - 로자 룩센브루크
"당신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당신이 그 견해 때문에 핍박 받는다면 난 당신을 위해서 싸울 것이다" - 볼테르.  

같은 주장들이 등장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똘레랑스는 서로 존중하고 '다름' 속에서 조화하려는 의지/태도로 생각합니다.

가령.. 혐연권을 인정하기 위해 흡연자는 담배냄새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담배피려는 노력, 반대로 혐연자는 흡연자의 기호와 그 인프라를 이해하는 태도... 같은거죠..

하지만 모두가 착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반대자일찌라도) 똘레랑스해야겠지만.. '앵똘레랑스(불관용, intolerance)'에 대해서는 똘레랑스 할 수 없다.'라는 주장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예시한 흡연자와 혐연자 간의 사이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면, 혹은 상대의 권리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조화가 아니라 또 하나의 파쇼가 될 것이고..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기란 성자와 같은 인격이 필요할테니까요...

'다름'은 정당하게 설득, 이해, 양해... 할 대상이지 강요의 대상이 아닙니다. 힘의 논리로 자신의 견해를 주입하려한다면 자신도 언젠가는 피해 당사자가 된다는 것을 전제해야 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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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란 책을 샀다. '이제 '노암 촘스키'는 하나의 상품이 됐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제목에 이름을 집어넣다니..) 내가 관심 갖던 권력관계에 대한 촘스키 특유의 방대한 자료와 날카로운 지적을 기대하고 주문했던 책이다..

일단 활자가 너무 커서 실망을 했고.. (보통 활자가 큰 책들은 내용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 내용을 서적화한 책이라.. 형식만으로 기대에 못 미쳤다.

여튼...

첫 챕터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에서 미국의 백인종들이 어떻게 미국 권력관계를 구축해갔으며 어떻게 지키고 있는가에 대한 여러 얘기들을 하고 있다. 경악할 노릇은 미국 4대 대통령인 메이슨 정부의 목표가 "다수로부터 소수의 부자를 보호"하려는 태도와 메이슨의 측근이었던 존 제이가 즐겨썼던 "나라를 소유한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기득권을 사수하지 않는 사회/정치 권력은 이미 '권력'으로서 책임을 잃은거나 마찬자기겠지만 너무나 노골적이고 당당한, 뻔뻔한 이들의 자기 권력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모습을 목도할 때 지금의 부시가 뿌리가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주 내용은 세상의 권력의 중심은 미국에 있고 미국 권력의 중심은 기업에 있다는 내용이다. 산업사회 등장 이후 금력의 지배는 그 세력을 여러 영역에서 확장했고 현재 신자유주의의 포장아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최근에 내가 주목하는 극적인 예는 '이익profit'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제는 이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자리job'만이 존재합니다."

이제 기업의 시대다. 금력이 정치력을 조정하고 사회를 통제한다. 과거에 이념이라던가 신념, 도덕적 가치들, 인간성... 이런 것들은 이제 경제적인 자대로 모든 것이 재해석된다. 노골적이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럭키펀치라도 날리고 싶지만 이들의 강점, 특징은 실체가 모호하다는거다. 가령 전 스타타워의 소유주였던 론스타의 실체를 알 길이 없듯이...


눈에 띄는 다른 내용은 바시사이먼(인터뷰 주체자)이 물었던 좌익, 우익의 구분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촘스키의 대답이었다.

"나는 좌익, 우익 이런 개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좌익에는 레닌주의자도 포함되지만, 내 생각에 레닌주의자는 많은 점에서 극우에 가깝습니다... 레닌주의는 좌익의 가치관과 전혀 관계없습니다. 오히려 좌익의 가치관과도 완전히 상반됍니다.... 하지만 정치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보수적인 캠퍼스에서도 성, 인종, 피부색 등 민감한 문제에 관련된 발언들을 아주 세심하게 분석해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들은 좌익입니까, 우익입니까? 나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요즘 생각하는 좌,우의 정체성, 차별성이 무의미하다는 결론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냉전시대나 경제적인 이해관계로.. 어쨌든 좌, 우로 서야했던(뭉쳐야 했던? or 강요받았던) 시대에는 좌, 우가 나뉜다. 하지만 현재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CASE BY CASE로 좌, 우로 의견을 달리하는 상황에서 좌, 우 (두가지 색 밖에 표현 못 하는) 리트머스를 들이데는 건 무식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유, 실존, 낭만주의자를 지향하는 나에겐 권력 자체가 잔인한 폭력이다. 촘스키와 같은 무기가 없는 내겐 이 싸움이 벅차기만 하다...

여하튼... 촘스키의 우수한 지성과 지력에 또 한번 감탄하며 촘스키를 위해서도 이런 책을 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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