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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구별

누군가가 여성이라면(또는 남성이라면) 그는 왜 여성(또는 남성)일까? 또는 그가 여성이라면 그는 어떠한 조건을 갖추었기에 여성이라는 것일까? 이것을 결정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며, 이러한 요인들이 서로 각축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하나의 동일적인 성이 하나의 개체에게 할당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잠정적인 것이고(그렇게 여겨지지 않고 있어서 문제지만), 아무리 잠정적이더라도 굳이 그렇게 동일적인 성을 각 개체에게 부여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여기서는 가능한 주장들의 접근 통로를 모두 열어두고 일단 밑그림을 그려보겠다. 왜냐면 이 작업은, '권력의 포기는 가능한가'라는 보다 포괄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내가 생각했던 것을 정리하고 기록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성은 생물학적으로 규정된다. 대중들은 '생물학'이라는 잣대를 반박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요인은 개체의 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 지배적인 힘을 갖는다. 생물학 안으로 들어가 더욱 정확하게 짚어 보자면, 성을 구분하는 이 생물학적 잣대는 바로 염색체의 모양이다. 그러나 여기에 어느 정도 논점이 존재하는데(물론 이것은 학적 의견이므로 상대적으로 높은 정도의 객관성은 가지겠지만), 가령 호르몬의 분비량같은 생물학 내부의 다른 기준이 더욱 일반적인 성 구분 기준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었다고 가정할 수는 없을까, 혹은 이러한 다른 요인들은 성을 결정하는 데 아무런 학적 영향력을 가지지 않는 것일까 하는 물음이 그것이다. 또한, 이 염색체의 모양은 그것이 성기의 모양이나 체형 등을 결정하는 요인이기에 중요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수술이나 호르몬 조절을 통해 염색체가 부여한 성과는 다른 성의 외관을 후천적으로 획득했다면, 이 역시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모호해진다.

 

성은 또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개체는 이 과정을 통해 성적 구별을 획득한다기 보다는 경직된 성 구별 관념을 형성한다. 또한 법적인 기록을 통해 그러한 성 정체성을 공적으로, 그리고 고정된 것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개체의 성을 결정하는 장에 다양한 기준들이 관여하고 있다는 생각은 두 번 반박당하는데, 한 번은 '객관적 과학'을 자처하는 생물학, 또는 그 생물학을 신봉하는 대중들에 의해서이고, 또 한 번은 개체가 사회화를 겪으며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한 경직된 성 관념에 의해서이다. 이 강요는 후에 자율성으로 둔갑한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성을 부여받으면, 그 다음에는 사회적으로 '여성'이라는 성을 부여받을 차례다. 그러면 개체는 자신의 '여성임'을 '자율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법적인 '여성임'에 의해 보증된다.

 

그 과정에서 성은 자아에 의해 의된다. 이 의식은 이처럼 사회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 등장한다. 문제는, 이러한 자아의 성적 의식은 생물학적으로 부여된 자신의 성과 대부분 일치하게 되지만(그 일치에 일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성 관념이다),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바로 그 사회적 성 관념이 이 불일치에도 일조할 수 있다). 각각의 자아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의식하려면, 필연적으로 사회적인 틀, 즉 여성과 남성의 이항 대립적 체계 속에 자신의 성을 끼워 맞춰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간적 성 정체성을 가진 개체는 혼란을 겪게 되며, 좀 더 일반화하자면 모든 개체들이 어느 정도 혼란을 느낄 것이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성 관념이 경직되어 있을수록, 자아가 의식하는 자신의 성과 생물학적으로 부여된 자신의 성이, 더욱 강하게 일치하거나 불일치하게 된다.

 

그러나 성은 의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을 남성으로 경험하는 어떤 심리적 사실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쨌든 나는 여성이니까'라고 그 개체가 생각함으로써, 혹은 그 개체의 언어적 틀 안으로 포착되지 않음으로써 의식되지 않은 상태일수도 있다는 말이다. 역시 성 구분의 요인이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경직되어 있을수록 이런 상황이 발생할 확률이 크다. 하지만 이 기준은 너무 포괄적이며, 또한 실재하는지 의심스럽고, 그러므로 공시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설득력이 좀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성은 타인에 의해 의식될 수도 있다. 이로 인한 성 구분은 다른 모든 기준에 의한 것들과 어긋날 수도 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며 법적으로도 여성이고, 심지어 자아에 의해서도 여성으로 의식된다고 해도, 외관상 남성이면 대부분의 타인들은 그를 남성으로 의식한다. 그와 동시에 남성에 해당하는 사회적 이미지 체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즉, 권력이 발생한다. 왜냐면 권력은 개체-내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의해 의식되는 성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보통 옷을 입고 사회적 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인식에 관한 것이지만, 수술이나 호르몬 조절을 통해 옷 안의 신체가 다른 성의 외관을 갖게 된 경우와도 문제를 공유한다. 이는 염색체의 모양이 지시하는 성과 신체적 외관이 가리키는 성이 서로 다른 경우와의 연관성을 가지며, 이것이 선천적 불일치라면 수술 등에 의한 것은 후천적 불일치이다. 생물학적으로는 불분명하며 법적으로는 남성이고 자아에 의해서도 남성으로 의식된다고 해도, 심지어는 그가 사회적 생활을 남성의 모습으로 영유한다고 해도, 그 생물학적 외관에 의해서 타인들은 그를 여성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물론, 수술 등의 조치를 일부러 취해서 여성이 되고 싶은 것이었다면(그러면 물론 스스로 여성으로 규정할 것이며, 사회적 생활도 여성의 모습으로 영유하겠지만), 타인이 자신을 여성으로 규정하는 것이 그가 바로 원하던 바였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한 명의 '남성'에게 있어서, 그가 생물학적 기준을 상대적인 것으로 여겨 거부한다고 해도, 사회적인 성적 규정을 무시하고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고 해도, 심지어 스스로를 여성으로서 정체화하고 있으며 그것을 공공연하게 표출함으로서 남성으로서의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일단 타인에 의해 자신이 남성으로 의식되기만 한다면 여전히 그 역겨운 권력은 자신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안타깝게도 이 부분은 매우 결정적이다. 이 세상 속에서 그를 만나는, 혹은 그를 스쳐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겉모습만을 보고 그를 남성이라고 판단할 것이며, 바로 그 순간 권력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너무 과장하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폭력적인 권력 행사는 오히려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답하겠다.

 

[이 내용은 '권력의 포기란 가능한가'라는 더욱 큰 문제의 일부분으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쓴 것은 그러한 문제를 설득력있게 제기하기 위한 하나의 자세한 예증이다. 그러므로 세부 사항에 대해서 논박할 여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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