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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1 2007년 노동절

노동절은 세계적인 공휴일. 우리 튜터들도 쉬고, 덕분에 수업이 없었다. 학원의 다른 친구들은 가까운 해변 도시 기마라스로 스노클링과 바비큐를 즐기러 떠났지만, 나는 보라카이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생리기간도 딱 걸려서 못갔다.

지난주부터 튜터들은 오늘이 휴일이라고 들떠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학생들 중에는 오늘 왜 쉬는지 어제 까지도 이해 못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뭐라고 이야기해주었는데 못알아들었다는 둥, 선거일 아니냐는 둥 (요즘 필리핀은 시장을 비롯한 지자체 선거 기간이다.), 어제 셔틀에서 누군가 바로잡아줄 때 까지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아마도 이제 갓 스물이거나 대학생이거나 대학을 갓 졸업한 애들에게 labor's day라는 튜터들의 이야기는 너무 낯설었을 것이다. 5월 1일, 노동자의 입장에서 쉬어 본 사람들도 거의 없을 것이고, 집회에 참여해본 사람은 아예 없겠지.

나는 혼자 호텔에서 밥을 먹고, 오전에는 찻집에 찾아가 오랜만에 맛있는 커피와 티라미스 케익(맛은 없었다. 여기서 뭘 기대한 내가 잘못이겠지만)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낮에 돌아와서 또 밥을 먹고 안되는 인터넷에 연결해보겠다고 호텔 로비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포기하고 낫잠을 좀 잔 다음 장식이 떨어져나간 샌들을 고치러 쇼핑몰로 향했다. 아, 노동절인데 뭐 없나 생각하면서...

그런데, 이 도시에도 노동절 집회는 있었던 것이다. 숙소에서 쇼핑몰에 가는 차도 가운데에 작은 탑이 하나 있는데, 그 탑을 중심으로 백 명 쯤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트럭도 한 대 세워 스피커도 달아놓고, 각종 피켓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피켓에 써있는 이야기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튜터들과 항상 토론하는 바에 따르면, 여기 노동자들이 주장할 이야기는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았다. 생활수준은 훨신 낮지만, 공공부문민영화, 노동유연화 등의 문제는 한발 먼저 겪고 있는 것이 필리핀 사회인 것 같다. 젊은 남성들, 중년 이주머니들, 배나온 아저씨들이 느슨하게 서서 발언을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집회 덕분에 체증에 묶여 있는 지프니 위에서 그들을 구경하며 지나쳤을 뿐.

 

쇼핑몰에서 돌아와 방에 돌아와서 TV를 켜니, 아시아 지역 뉴스를 전해주는 싱가포르 방송 (어제 레벨테스트를 본 후 약간 자극받아서, 그나마 가장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는 이 방송을 틈나면 보기로 했다. 곧 여행을 갈 나라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게 흥미롭기도 하고...)에서 아시아 주요 도시들의 노동절 투쟁 모습을 잠깐씩 보여준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태국 방콕, 인도 뉴델리 등에서 꽤 큰 집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인도네시아에선 빨간 옷을 입은 수천명의 시민들이 모여서 집회하는 모습이, 방콕에서는 노란 옷과 모자를 쓴 만 명의 행진 장면이 나왔다. 방콕의 투쟁은 격렬하기도 했던 모양으로, 경찰도 수천 명이 동원되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 모양이다. 뉴델리의 투쟁 장면이 나올 때는 순간 우리나라인가 했다. 싸움이 크게 붙은 가운데, 경찰들이 거의 물총처럼 생긴 찍찍이를 마구잡이로 집회 참가자들에게 쏘아대고 있었다. 싱가포르의 집회도 참가자가 꽤 되었던 듯싶다. 경찰이 발포도 한 모양인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싱가포르 방송이라 그런지, 어제부터 총리가 노동절 담화를 발표했다던지 노동절 행사를 열었다던지 하는 관변 내용만 방송하더니, 저녁이 되니 집회 보도도 나온다. 비오는 도쿄 요요기 광장에서 나이든 노동자들이 조금 처진 분위기 속에 앉아있는 장면 다음엔 캐스터가 놀란 얼굴을 하며 한국에선 2만 5천명이나 모여서 거리를 행진했다고 이야기했다. 노동유연화와 한미FTA에 대하여 정부에 반대하는 집회를 했다고 하면서 집회 장면을 잠깐 보여주는데, 음.. 재미없어보였다.

 

 

그나저나 태국 신 코퍼레이션과 탁신 총리 이야기가 자꾸 나오던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신 코퍼레이션이라면 태국 제1의 미디어 기업으로, 현직 총리(사실 지난 몇 년 간계속 총리였던)이자 거부인 탁신이 소유하고 있는데, 이 기업과 정부의 유착관계에 대한 갈럼을 신문에 기재했다는 것만으로 태국의 미디어 활동가가 고소당해서 한참 싸운 적도 있었다. (ACT! 참고) 신 코퍼레이션과 관련해서 새로운 문제가 생긴 걸까? 아, 궁금하다...

 

요즘 숙소 인터넷 사정으로는, 내 블로그에 달린 답글을 확인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일기던 여행기던 한쪽이라도 올리고 뉴스도 좀 확인해보기 위해선 아무래도 노트북을 들고 PC방에 가보던지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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