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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1 드디어! 출국이다.

역사적인 출국일. 신나고 들뜬 하루가 될 거라고 기대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무엇 보다 센터를 그만 두고 한 달 열흘이 지난 어제 까지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완전히 끝내지 못했다. 만나야 할 사람들도 다 못 만난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가방을 쌀 여유조차 없어서 새벽 까지 가방을 싸야 했다. 게다가 센터에서 5년 동안 쌓아놓았던 짐을 들여와서 난장판이 된 방을 정리하는 작업도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그 때 그 때 챙겨놓았고, 막판엔 동생이 많이 도와주었지만, 2개월간의 연수와 4개월간의 여행을 위한 짐을 갑자기 가방 하나에 쑤셔넣는 작업은 역시 쉽지 않았다. 결국 책 몇 권, 옷 몇 개는 포기했지만, 나중에 보니 꼭 필요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도 얼마나 많던지.


 

출국을 며칠 남기고도 일 때문에 동동거리는 나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 같으면 그냥 가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건 분명히 나의 한계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여하튼 그 때문에 상상해왔던 설레는 여행 준비는 이미 물 건너간 뒤였다.그래도, 분에 넘치는 환송 행사들과 선물들을 받고 떠나게 되었다. 건강하게 다녀오면 다 갚았다고 할 수 있을까.


 

여하튼,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일어나서 다시 준비 시작. 일단, 인터넷 뱅킹으로 우선 필요한 돈들을 이체했다. 한 통장에 전 재산을 넣어두는 건 만약 하나 일어날 지도 모르는 카드 도난이나 분실 때문에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일부만 ATM 카드와 연결된 통장에 이체를 해놓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 발생! 불안불안 하던 CMA 통장 인터넷 뱅킹에 결국 스톱이 걸린 것이다. 서둘러 마을버스를 타고 은행에 다녀오기. 그리고 계속 심해져만 가는 감기 때문에 병원 진찰을 받고 약을 타오기. 마지막으로 짐을 확인하기. 통장을 놓고 와서 집에 돌아가야 하질 않나, 버스는 늦게 오고, 병원에 가니 점심시간에 딱 걸리질 않나. 여하튼 운이 없는 일의 연속이었는데, 결국 이 불운은 한국에서 뿐 아니라 대만에서도 지속될 예정이었던 것이다.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이고 하니, 이번엔 기필코 공항에 일찍 가서 공항 서비스를 즐기고자 오래 전부터 다짐했었지만, 비행기를 놓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떨면서 동동거려야 했다. 공항 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오래 떨어져 있을 거라, 티켓팅 까지 같이 기다려주신다. 입국장 들어가면서 인사를 하는데,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출국하기 직전, 인천 공항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국이 어떤 날씨였는지는 벌써 까먹었다...


 

공항에서는 별로 즐기지도 못했다. 45리터 짜리 배낭을 이미 부쳤음에도 불구하고, 노트북 등이 들어있는 서브 가방은 너무 무겁고, 결정적으로 KTF 카드에 뭔가 문제가 생겨서 라운지에 발만 들여놓았다가 쫓겨났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블로그에 뭔가 남기고  한동안 일용할 간식거리를 챙겼어야 했는데... 역시 불운의 하루다. 시간도 남고해서 괜히 면세점을 어슬렁거리며 썬크림과 수분에센스를 구입. 벌써 많은 돈을 쓰는구나...

개인모니터가 있는 비행기는 첨 타봐서 신기 ^^ 사고대비 설명도 모니터로 한다. 

인천에서 타이페이 국제공항 까지의 비행 시간은 두 시간 반 정도. 이번에 이용하는 항공사는 에바항공으로, 5년 전 생전 처음 타봤던 국제선 비행기가 바로 대만을 경유해서 방콕으로 들어가는 에바항공이었다. 그 때 비행기 시설이나 기내 서비스의 수준은 참 별로였다고 기억하고 있어서 사실 이번에도 별로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웬걸, 좌석마다 모니터가 부착되어있질 않나,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좋은, 커다란 새 비행기였다. 가면서 대만 공부나 좀 해야지 했건만, 주는 밥과 음료수 먹고, 여러 영화 리스트 중에서 ‘미스 포터’를 골라서 다 보고 나니 착륙을 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리하여 타이페이 국제공항에 도착. 입국수속을 마치고 가방을 찾으러 갔다. 사실, 이 가방 찾는 과정이 꽤 귀찮아서 가능하면 기내에 가방을 가지고 타는 편인데, 이번엔 짐이 엄청 무거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내 가방이 나오지 않았다.

드디어! 불운의 정점을 찍는 순간이 오고야 만 것이다!!

 

눈이 빠져라 빙빙 돌아가는 가방들을 처다보며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공항에 있는 짐 찾아주는 코너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부턴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외국에서 영어로 소통하긴 너무나 오랜만인데다가, 그 사람들의 발음도 이상하고, 여하튼, 답답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이리저리 전화를 해보고 뛰어다니더니, 내 가방이 아예 인천에서부터 비행기에 실리지 않은 것 같다며, 가있으면 가방을 찾아서 보내준다는 것이다!! 아니, 어디 가있으라는건가? 내 숙소가 어디가 될 지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판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는 배낭을 두고 어디 가란 말인가?? 너무 황당해서인지 오히려 별로 놀라지도 않은 느낌이었다. 일단 중요한 돈과 여권과 기본적인 세면도구는 지금 가지고 있는 작은 배낭 속에 있으니, 못할 것도 없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머무를 곳이 정해지면 바로 전화 달라며 준 서류를 손에 들고, 그냥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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