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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지하철역, 2010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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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0일에 미디액트 대강의실에서 봤던 영상들은,

이제까지 봤던 어떤 영상보다 진심어리고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영상을 시작한 사람들이 3일 만에 만든 작품들이었다.

자신들의 마음을 담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기술이나 경험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서 나올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달까.

 

30일 네 시에 마지막 밤을 함께하자고 공지가 되었었고,

마지막이다 보니 좀 힘들 수 있으니 먹고 마실 거리들을 좀 가지고와도 좋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네 시가 다 되어 갈 무렵 언제나의 그 곳에서 담배를 피고 있으니,

손에 먹을 것들을 들고 온 사람들이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5층을 향해 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자판기 커피도 무조건 무료, 그 동안 발간했던 책들과 DVD 들도 공짜였다.

모두 이전에 제작했던 기념품 가방에다 한아름씩 관심있는 책을 챙겼다.

나도 정신 없이 책을 챙기다, 5주년 기념 에세이집을 발견했다.

행사 도중 짬짬히 읽었다. 맨 앞에 있던 선팀장님의 글과 맨 뒤에 있던 내 글,

그리고, 중간에 있던 태준식 감독님의 글이 눈에 띄였다.

"미디액트에 위기가 오면 누가 힘이 될 것인가"라는 말이 있었던가...

모두 힘이 되고 힘이 되고 있네요, 하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회원들, 교육, 참여자들, 전국의 활동가들로 광화문 일민미술관 5층이 그야말로 가득찼다.

정말 몇 년 만에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독립영화 감독들, 동아리 선후배들, 미디액트 전 스탭들, 미디액트 강사들,

지역 미디어활동가들... 우리도 그랬지만 전국에서 찾아오고, 마치 기자회견에서 그랬듯, 시간이 갈 수록 사람들은 더 다양해지고 더 많아졌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 얼굴을 벌겋게 해서...

씨우쑨 이라고 밝게 그려져 있는 그림 앞에서, 8년 전 개관도 하기 전에 같이 사진을 찍었던 멤버들이 다시 모여

사진을 찍기도 했다. 많이들 나이가 들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니 현숙언니가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빨간 리본을 만들어주어 순진하게 기뻤다.

 

술을 조금만 마시려고 노력했지만, 막판엔 너무 피곤해서 자고싶었다.

숱한 밤낮을 보내던 녹음실 바닥에 조금 누워있다가, 모든 것이 낯설어 다른 곳을 계속 찾아다녔다.

정신 없는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청소를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중에 게시판을 보니, 모두 함께 청소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는 말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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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기 전에 우정언니가 내일 12시에 모이자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땅의 여자 관련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긴 하다.

다음날 아침, 여전한 졸음을 참으며 전화를 해서 다시 확인을 해 보니 미디액트에 모여서

지현이 짐 싸는 것도 돕고점심도 같이 먹자고 했다.

솔직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못다한 말도 많고, 다 풀지 못한 것도 많지만,

그 난리통 속에서 끝을 맺었으면 했다는 생각도 들고...

 

31일의 미디액트는 쓰레기와 남은 음식들과 이사짐들로 난리통이었다.

우정언니와 설해는 은정이의 부탁으로 스케치 촬영을 하고

심란해서 카메라를 못들겠다는 수목이는 스틸사진을 찍었다.

스탭들은 회의를 하다가 짐을 싸다가 하고 있었다.

아직 진행되고 있는 수업도 두 개나 있었다.

지인들이 와서 짐을 옮기거나 청소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행사가 31일인줄 알고 찾아온 수강생도 있었다. 나도 얼굴이 낯이 익은 분이다.

술 한잔 같이 하고 싶었다며,

환불은 받지 않아도 된다, 수고하셨다고 연신 수경이에게 인사를 했다.

5층에 올라와서 씨유쑨 미디액트 사진을 찍고 가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나와 수목도 그 앞에서 단체사진을 각자 찍었다.

 

정책실 짐을 싸는 것을 도왔다.

많은 것을 버리고 많은 것을 묶었다.

그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이렇게 많은 것들을 읽고 썼구나,

지금은 아무 쓸모 없는 것들도 있고, 아직도 충분하지 않은 것들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익산까지 내려오기엔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일하던 사람들이 짜장면을 시켜먹고 있을 때 광화문을 나섰다.

날이 어둑어둑 할 때 쯤,

언제나였던 그 자리에서 자주 같이 있던 사람들과 서서 담배를 피고

혼자 광화문 지하보도를 걸어내려가다

울컥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지금 힘들게 짐을 싸고 있을 미디액트 식구들을 다시 찾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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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복잡하고 터미널은 붐볐다. 버스 맨 뒷 자리에 실려 익산에 도착해서

집에 돌아오니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일상이 우스웠다.

동아리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아주 오랫만에.

일상적인 안부전화인듯 시작했지만, 결국은 기사를 보고 걱정되어서 걸어준 전화였다.

사람들의 마음이 좋다.

 

미디액트 홈페이지에 올라오고있는(!) 회원들과

주변 사람들의 글을 보고 자주 울컥울컥한다.

처음 부터 그랬지만, 요 며칠 사이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다 같이 모여 술자리까지 질펀하게 가졌어도 아쉬운게 많은 모양새가,

나랑 비슷하구나 싶었다.

방금 본 이혁래 선생님, 태준식 감독님, 오정훈 실장님의 글을 보니 또 그렇다.

역시 영상보다는 못하지만(?) 이 공간이 참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공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랄까,

맘이 따뜻해진달까,

그래서 좋고 아프다.

미디어센터가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이렇게 아픈 상황이 오지 않더라도

가끔 확인하고, 쓰다듬어주고, 힘을 받고 했다면

나의 지난 날들도 훨신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뭐든 지나 봐야 가치를 알게 되는 걸까. 감정적인 것들과 현실적인 것들이 같이 떠오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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