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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위법성을 밝힌다. <고영대> [민대 2004 7/8 정세초점 3]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위법성을 밝힌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제3조)와

발동 요건(제2조)에 근거하여-1)







고영대 (평통사 연구위원)



냉전 종결 직후부터 미국이 추진해 온 주한미군의 이른바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이 최근 들어 한미 양국에 의해 기정사실로 굳혀지고 있다. 주한미군이 대한민국의 방위를 넘어서서 동북아 지역으로 작전 반경을 넓히게 되면 동북아 지역은 무한대의 군사적 대결과 군비경쟁, 준전시와 다를 바 없는 항상적인 전쟁위협에 놓이게 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민족 통일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난관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이와 같은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은 그 적용 범위를 대한민국 영토로 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 또 그 발동 요건을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이 있을 경우로 한정한 제2조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그런데도 최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의도적으로 혹은 무지에서,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 해석하여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 마치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법적 근거를 갖는 것인 양 국민을 오도하고 주한미군과 한국 정부의 반국가적, 반민족적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이를 막으려는 투쟁에는 재갈을 물리게 되는 일부 논자들의 무책임한 주장이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방치한다면 작금의 한미동맹 전환 과정에서 우리는 주동성을 상실하고 한미동맹의 퇴행적 결과를 무기력하게 지켜보고만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 조문 자체를 따져볼 필요도 없이 몇 가지 정황만 가지고도 우리는 주한미군의 동북아 기동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불법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만약 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이미 동북아나 태평양 지역으로 되어 있다면 지금 미국 측이 새삼스럽게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들고 나올 필요가 없으며, 한국 정부의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한 동북아나 태평양 지역에서의 한국군의 작전도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의무로 되며, 이를 막으려는 한국 당국의 의도가 오히려 불법적인 것으로 되고 만다. 그런데도 한미 당국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구태여 어려운 공론화 과정을 밟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 불법성의 근거를 조약과 관련 문서를 토대로 밝혀 보자.


1. 본 조약 및 관련 문서상의 규정


1) 본 조약의 규정


① 조약의 적용범위는 각 당사국의 영토로 한정되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은 제3조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그 적용 범위와 관련하여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 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 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행정 지배 하에 있는 영토”란 북한 지역을 제외한 남한만의 영토를 의미한다. 또한 “행정 지배 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가 의미하는 바는 당시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정권이 무력공격으로, 곧 불법적으로 북한 또는 그 일부 지역을 점령했을 때 미국이 이를 인정해 주지 않는 한 이 지역 역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지역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이는 대한민국 밖의 무력 충돌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는 명백히 대한민국의 영토 내로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미국에 대해 적용할 경우 그 적용 범위를 어디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에 대한 많은 논자들의 혼란과 확대 해석도 상당 부분 여기서 비롯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를 미국에 적용할 경우 그 적용 범위는 미국 본토와 태평양 상의 미국 영토, 곧 하와이나 오키나와(73년 일본에 반환되기 전), 괌 등이 해당된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 본토나 태평양 상의 미국의 행정 지배 하에 있는 영토로 국한될 뿐, 미국의 행정 지배 하에 있지 않는 동북아시아나 태평양, 그 밖의 다른 지역은 결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일부 논자들은 태평양 상의 미국의 영토를 태평양 지역 전체로 확대 적용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마치 태평양 지역인 양 부당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②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남한 영역에 대한 미국의 방위만을 의무화 하고 있다


그런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2)도 있다. 이 견해에 의거하게 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에 당연히 미국 본토와 태평양 상의 미국의 영토는 포함되지 않는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는 본 조약의 체결 배경 및 당시 대한민국의 조건과 능력, 그리고 양국 간의 관계에 근거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과정에서 발생한 마찰과 갈등 때문에 이승만 정권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웠을 만큼 미국은 조약의 체결을 반대하였다.

또 조약 체결 당시 북한에 중국인민지원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점, 휴전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는 이승만이 공공연하게 북진무력공격을 내세우는 등 전쟁 상태와 다를 바 없었던 점, 미국의 원조 없이는 군대조차 유지할 수 없는 당시 남한의 조건 등을 생각한다면 미국에 대한 방위가 남한의 과제나 의무가 될 수는 없었다.

더욱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의 “행정 지배 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라는 규정은 미국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에 적용하기 위해서 도입된 표현으로 봐야한다. 당시나 지금이나 한미관계를 고려할 때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에 따라 향후 미국의 행정 지배 하에 들어오게 될 영토에 대해서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권한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형식적으로는 쌍무조약적 성격을 지니나 내용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방위 의무를 규정한 편무조약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만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편무적 성격이 아니라면 주한미군에 대한 전 국토 무상 공여와 일방적, 배타적 주병권을 허용한 4조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편무조약의 예로는 1951년 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구 일미안보조약을 들 수 있다. 미국에 의해 무장해제된 일본은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질 능력이 없었다. 이에 구 일미안보조약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동일하게 제1조3)에서 주일미군에 대한 전 국토 무상 공여와 일방적, 배타적 주병권을 허용하였다.

1960년의 신 일미안보조약 역시 편무조약이다. 당시 일본은 자위대4)라는 무장력은 갖췄으나, 집단자위권을 부정한 평화헌법 규정상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질 수 없었기 때문에, 비록 쌍무조약적 형식을 띠었으나 사실상 편무조약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신 일미안보조약이 그 적용 범위를 제5조에서 “일본국의 시정 하에 있는 영역”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서 명확히 확인된다.

그런데 신 일미안보조약은 제4조에서 “일본 또는 극동의 국제평화와 안전에 위협이 발생할 경우 어느 일방의 체약국의 요청에 따라 언제든지 협의한다”고 하여 제6조5)에서 규정한 주일미군의 주둔 목적과 역할을 일본이 뒷받침하고 협조하도록 함으로써 조약이 쌍무적 성격을 갖도록 보완하고 있다.

또한 신 일미안보조약은 구 일미안보조약이 보장한 주일미군에 대한 전 국토 무상 공여 및 일방적, 배타적 주병권을 부분적으로 부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신 일미안보조약은 공여될 시설과 구역을 하위 협정에서 규율하기로 하는 한편 임대방식을 도입하였으며, 후일 비록 허울뿐인 것으로 입증되었지만, 주일미군의 일방적 주병권을 제약할 수 있는 ‘조약 제6조의 실시에 관한 교환공문’도 교환하였다.

이와 같이 구, 신 일미안보조약과 비교해 볼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편무조약적 성격은 더욱 뚜렷이 부각되며, 이에 따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도 미국의 영토가 아닌 대한민국 영토로 한정된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편무조약이 아닌 명실상부한 쌍무조약으로서, 한국이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적용 범위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태평양 상의 미국 영토로 국한될 뿐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될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하다.


2) 조약 관련 문서상의 규정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당시 한미 양국은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체결 직전까지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곧 적용 범위를 남한으로 국한시키려는 미국과 이를 한반도로 확대하려는 이승만 정권이 막판까지 충돌한 것이다. 결국 미국의 의지가 관철되었는데, 조약 관련 문건과 체결 과정에서의 몇몇 사례를 보더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남한으로 국한시키려는 당시 미 행정부와 국회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먼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함께 체결된 미국 측 양해사항(교환의정서)은 “미국은 위 조약 3조에 의거하여 일방국이 외부로부터 무장된 공격을 받을 경우를 제외하고 타방국을 원조할 의무가 없으며 또한 현 조약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행정 지배 하에 합법적으로 인도될 것으로서 미국이 시인한 영토에 대하여 공격을 받았을 경우를 제외하고 한국에 대하여 미국이 원조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하한 것도 있을 수 없다”고 하여 남북 무력충돌 결과 남한 영토로 된 지역이라고 할지라도 미국이 인정해 주지 않는 한 적용 범위가 될 수 없는 것으로, 조약 3조를 보다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반면 이승만 정권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초안에 “한국의 영토로부터 중공 침략자들을 몰아내는 권리를 포함하여 한국의 내정문제에 관해 완전한 주권을 가지고 있음에 동의한다”6)라는 구절을 반영시키고자 하였으나 미국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당시 이승만 정권의 무력공격을 막기 위한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북을 상대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당시 북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인민지원군과 나아가 소련, 곧 동북아 지역에서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과정에서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양국 간의 심각한 대립과 갈등은 어디까지나 북한 지역을 적용 범위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핵심 쟁점으로 하였으며 한반도를 넘어서서 동북아나 태평양을 적용 지역으로 고려할 처지나 조건,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대한민국 영토로 한정되어 있다는 견해, 곧 동북아나 태평양 지역이 적용 범위가 아니라는 견해는 보수적 연구자들에 의해서 이미 주장되어 온 것으로, 결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90년대 초의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에 대비하여 정부에 대한 정책 건의를 목적으로 작성된 한 연구7)는 현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8)를 “한국의 안전과 극동에서의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기여하기 위하여 미합중국은 그의 육․해․공군의 병력의 한국 내 시설 및 구역의 사용권을 허여 받는다”로 개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과 역할 및 책임이 명시되어 있지 않는 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안된 것이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동북아나 태평양 지역이 아니라는 인식에 토대하여 나온 주장이다.

또한 한 연구자9)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대한민국 영토와 미국 본토 및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미국의 관할 하에 있는 영토로 보고 있다.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신 일미안보조약 제4조와 달리 ‘극동지역’의 문제가 협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대한민국이 극동지역의 방위에서 고립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협의 대상에 극동지역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 역시 극동지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상의 적용 범위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3) 현 한국 정부의 입장―적용 범위를 대한민국 영토로 한정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에 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대한민국의 영토’로 한정하는 입장이다. 지난 해 10월 초의 제5차 ‘한미미래동맹정책구상회의’를 앞두고 양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대립하였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3조의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공격”을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의 근거로 들었고, 한국은 외통부 조약국의 논리에 따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허용하는 근거가 없다고 맞섰다고 한다(중앙일보, 2004. 1. 27). 그러나 한국은 결국 법리를 무시하고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허용하는 정치적 합의를 해주었다.

최근 주한미군의 감축이 공론화된 후 반기문 장관 등 외통부 관료들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임을 재확인하면서 그 적용 범위에 대해 ‘대한민국 영토’로 다시 한 번 선을 긋고 있다.


4) 조약의 전문 및 2조10), 3조에서 표현된 ‘태평양 지역’ 또는 ‘외부로부터’의 용어가 갖는 의미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태평양’이란 용어를 들어 적용 범위를 태평양 지역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내 일부 논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조약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검토 없이 피상적이고 자구에 매달린 주장일 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문에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평화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당사국 중 어느 일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있어서 고립되어 있다는 환각을 어떤 잠재적 침략자도 가지지 않도록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대하여 그들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태평양 지역에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조직이 발달될 때까지…” 등의 표현이 나온다.

조약의 전문은 일반적으로 조약 체결의 목적과 지향 등을 담고 있다. 전문의 ‘태평양’이라는 용어는 “평화기구를 공고히” 한다든지 ‘공동으로 방위한다’든지, ‘태평양 지역의 안전보장조직을 건설한다’는 등의 조약 체결의 포괄적인 목적과 지향을 담기 위해서 사용된 일반적 표현이지 적용범위를 특정하기 위해서 쓰인 것이 아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문이 그에 앞서 체결된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 전문에서 거의 그대로 따왔다는 사실도 전문의 ‘태평양’이라는 표현이 적용범위가 아니라 조약의 목적을 나타내기 쓰인 표현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전문의 ‘태평양’이라는 용어는 각 조약에 고유한 적용 범위를 나타내는 용어가 아니다.

한편 제2조에는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험을 받고 있다고…”고 규정되어 있는데, 여기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이란 표현 역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발동 요건과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2조의 내용에 따라 조약 발동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는 용어로, 적용 범위를 규정한 표현이 아니다. 이 규정은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출동, 작전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3조의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라는 표현도 2조의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과 마찬가지로 조약의 적용 범위가 아니라 발동 요건에 해당한다.


2. 실천적 대응 방안 모색


1)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불법성 및 파괴적 후과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실천적 대응의 중요성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이 가져오게 될 국가적, 민족적 위기와 후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앞서 지적하였다. 북한은 물론 중국도 이미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며, 대만의 독립 움직임과 대중 선제공격작전 수립에 따른 양안관계의 긴장 고조는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과 나아가 보다 포괄적인 한미동맹의 전환은 아직 그 출발점에 서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한미동맹의 전환이 민족의 자주와 통일에 기여하는 전향적인 방향으로 귀결될 것인지, 아니면 만성적인 동북아 군비경쟁과 전쟁 위협 및 외세의 개입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맡기는 퇴행적인 방향으로 귀결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시민사회운동단체, 특히 민족민주운동세력에게 달려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와 이에 근거한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불법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을 저지하고, 이를 계기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면 개폐 투쟁을 열어 나가기 위한 투쟁의 출발점이자 한 고리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2)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주한미군 입․출입’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의 한계와 문제점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감축이 공론화되면서 대응 방안의 하나로 주한미군의 입출입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저지하고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군축으로 귀결되는 주한미군의 감축을 촉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무엇보다도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사실상 기정사실화 해주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주한미군 입출입’ 규정이 갖게 될 허구성은 일본의 사례를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일미 양국은 신 일미안보조약을 체결하면서 주일미군의 배치와 장비 등의 주요 변경 사항을 사전 협의하도록 하는 ‘조약 제6조의 실시에 관한 교환공문’을 체결하였다. 이는 구 일미안보조약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마찬가지로 주일미군에 대한 일방적인 주병권을 허용한 데 따른 문제점11)을 극복해 보고자 하는 일본의 의중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는 지금까지 무용지물이나 다를 바 없다.

신 일미안보조약은 6조에서 주일미군의 역할을 극동지역으로 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일미군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일본에서 발진한 미군 전투기를 베트남전과 걸프전에 참전시켰으며, 일본 정부는 이를 용인하였다. 주일미군의 역할을 극동 지역을 넘어 확대시키려는 미국과 일본 당국의 정치적, 군사전략적 의지 앞에 신 일미안보조약이나 관련 ‘교환공문’은 아무런 제동장치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였다.

사전협의 자체가 지닌 한계도 ‘교환공문’을 사장시킨 한 원인으로 되었다.

‘교환공문’을 이행하기 위해 일미 양국이 사전협의 하기로 한 사항은 병력 배치의 중요한 변경, 장비의 중요한 변경, 극동지역에서의 작전을 위한 일본 기지의 사용 3개 항목이다. 또한 병력 배치에 대해서는 육군 1개 사단 정도, 육군에 상응하는 공군, 1 기동부대 규모의 해군 병력을, 장비 변경에 대해서는 핵탄두 및 중․장거리 미사일의 반입 및 기지 건설을, 극동지역에서의 작전을 위한 일본 기지의 사용에 대해서는 전투작전행동만을 사전협의 대상으로 하기로 양국 간에 양해하였다.

그러나 ‘교환공문’과 양해사항은 공문구12)가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세부적인 규정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규정이 현실과 동떨어진 의미가 없는 것이거나 편법을 이용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해 줌으로써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 기동부대 규모의 해군 병력이란 미 7함대 정도의 규모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보다도 규모가 작은 주일미군은 사전협의 대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전혀 의미가 없다. 핵무기 반입과 관련해서도 항공모함이나 원자력 잠수함, 전략폭격기와 같은 핵․비핵 겸용 무기체계에 대해서는 핵무기 장착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사전협의 대상이 되지 않아 미국으로서는 일본과 사전 협의 없이도 이들 장비를 통한 핵무기 반입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심지어 핵무기를 장착했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기항하는 경우는 사전협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나아가 극동지역에서의 작전을 위해 일본 기지를 사용하는 경우 사전협의의 허구성과 기만성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우선 전투작전행동만 사전협의 한다는 것은 이동, 기항, 정찰, 정보, 경계, 보급 등의 작전행동은 사전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전투작전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전투작전명령이 일본의 영해나 영공에서 발령되지 않는 한 사전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때 엔터프라이스 항공모함과 전투기들이 일본 기지에서 발진하여 각각 북한과 남한으로 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영공과 영해를 벗어나 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는 이유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

주한미군 역할 변경 및 감축과 관련하여 뒤늦게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입출입 규정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은 일본의 40년에 걸친 사전협의제의 운용 결과를 볼 때 아무런 실효성 없는 방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하다. 그런데도 이것을 마치 대안인 양 주장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그것은 현 정부가 일본보다 나은 사전협의제를 미국에 관철시킬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설령 사전협의제를 관철시킨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상징적인 수준 이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지 않는 한 사전협의제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와 4조는 주한미군의 병력과 장비의 배치와 이동 등에 관해 전권, 곧 주한미군의 일방적 주둔권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입출입 규정을 마련한다고 해도 모법의 효력을 정지시키지 않는 한 공문구가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진실로 주한미군의 입출입을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사전협의제가 아닌 ‘사전동의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주한미군이 철수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도 신 일미안보조약 체결 당시 미국에 사전동의제를 요구하였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이렇듯 주한미군에 대한 입출입 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감축, 그리고 한미동맹의 전환기에 대한 결코 올바른 대처 방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이는 주한미군의 감축을 막거나 늦춰보려는 친미수구세력의 의도를 결과적으로 대변해 주는 주장으로 될 우려가 크다.




3)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의 법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한미 당국의 새로운 공동선언 채택 또는 하위 법체계를 통한 우회 전술 가능성


한미 당국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의 불법성을 피해 나가기 위해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거나 하위 법체계로 이를 보완하거나 또는 일본과 같이 새로운 공동안보선언을 체결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현재까지 한미 양국에서 나온 공식, 비공식 주장을 보면 한국은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유지하되 하위 법체계를 통해 보완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며, 주한미군 측에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한편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이미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되어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한편 한국 정부는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한미공동안보선언’의 채택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어느 방향이 될지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비교적 손쉬운 하위 법체계의 정비나 새로운 공동안보선언의 채택을 통한 보완에 나서려고 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폐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과는 국민 자주의식의 성장과 운동의 고양, 그리고 남북관계의 진전 정도에 따라 그 향배가 가름될 것이다.

법 규정보다는 국민 의식 수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일본의 사례가 다시 한 번 말해준다. 60년 대 초 안보투쟁이 실패(63년 ‘안보공투’ 해체)로 돌아가자 미국은 극동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는 신 일미안보조약의 적용 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일공군을 베트남으로 출격시켰다. 나아가 주일미군은 태평양 지역을 뛰어 넘어 걸프전까지 참전하였다. 그런데도 일미안보조약의 개정이나 법적 보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미 양국이 이를 보완한 것은 신 일미안보조약이 체결된 지 36년이나 지난 1996년에야 이루어졌다. 그것도 냉전 해체라는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이완 또는 해체시킬 것을 우려한 미국이 적극적으로 일본을 설득하여 ‘일미안보공동선언’을 체결한 것이다. ‘일미공동안보선언’을 통해 일미 양국은 신 일미안보조약의 적용 범위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함으로써 극동 지역을 벗어난 주일미군의 작전 범위를 법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이렇듯 일본은 안보투쟁의 패배 이후 사회운동이 약화되어 가면서 일미안보조약마저 지켜내지 못한 채 일미 양 당국의 자의적인 법 운용을 허용하였으며, 결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일 공동의 군사적 패권 추구를 뒷받침해 주는 퇴행적인 방향에서 신 일미안보조약을 개악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밝힌 대로 한미 당국은 현 한미 관련 법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하위법을 통해 상위법을 보완하는(?)―실제로는 위배하는―방식을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동북아, 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는 이미 무너져 있는 한미관계 법체계를 더욱 엉망으로 만듦으로써 중․장기적으로 더 많은 문제점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주한미군의 역할이 지역군으로 전환되면 대한민국 방위만을 전제로 하여 ‘전 국토 무상 공여’ 원칙과 일방적 주병권을 적용한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는 더 이상 성립될 수 없으며, 개정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이를 덮어두고 하위 법체계를 통해서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허용하는 불법적 상태와 반국가적 폐해를 지탱해 나가기에는 한국 정부로서도 감내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될 것이다.

또한 신법으로 구법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대체하려는 ‘한미공동안보선언’의 방식 역시 이것이 조약의 본질적 성격을 개정하는 ‘의정서’로서의 위상을 갖기 때문에 채택 또는 비준 전에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따라서 국회 심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어 한미 양국이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그렇지 않고 만약 ‘한미공동안보선언’이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신사협정으로 채택된다면 이 선언보다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규정력을 갖게 되므로 선언의 의미는 훨씬 감소된다. 이렇게 볼 때 한미 당국은 중장기적으로는 필연적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할 수밖에 없다.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한 민족적 동력, 일본에 앞서는 시민사회운동단체의 투쟁력 등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악을 저지하는데 유리한 조건이나 국민들이 여전히 안보이데올로기공세에 갇혀 있고 시민사회운동단체의 힘이 당국과 친미수구세력의 힘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이에 민족민주진영은 중장기적인 계획 하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전면 개폐 투쟁에 주도면밀하게 전력투구해 나감으로써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드리울 암운을 거둬내고 반드시 굴욕적인 한미동맹의 질긴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1) 이 글은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보 <평화누리 통일누리, 2004.7>에 기재되었음을 알립니다.


2) 백봉종, ‘한미방위조약과 미일안보조약’, 1985, p 10. 그러나 백봉종은 이 글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에 대해 방위 의무를 갖지 않는 근거를 충분히 밝히지 않고 있다.


3) 구 일미안보조약 제1조 : “평화조약 및 이 조약의 효력 발생과 동시에 미합중국의 육군, 공군 및 해군을 일본국내 및 그 부근에 배비할 권리를 일본국은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이 군대는 극동에 있어서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기여하고 더불어 하나 또는 둘 이상의 외부 국가에 의한 교사 또는 간섭에 의하여 발생한 대규모의 내란 및 소요를 진압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명시적인 요청에 따라 주어지는 원조를 포함하여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대한 일본국의 안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4) 일본의 자위대는 1954년 7월 1일에 창설되었다.


5) 신 일미안보조약 제6조 : “일본의 안전과 극동의 국제평화 및 안전의 유지에 기여하기 위하여 미합중국은 그의 육군, 공군 및 해군에 의한 일본 국내의 시설 및 구역의 사용권을 허여 받는다. 전기한 시설 및 구역의 사용과 일본 국내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는 1952년 2월 28일 동경에서 서명된 미합중국과 일본국간 안전보장조약 제3조에 근거한 행정협정에 대신하는 별도의 협정에 의하여 규율된다.


6) 정준호 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국제법적 비교 분석’ 1990.3. p. 26~27


7) 정준호 외, 전게논문, p 64.


8)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 : “상호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비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9) 김명기,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보완에 관한 연구, 2003, 6, p 15~17.


10)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 : “당사국 중 어느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정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적으로나…”


11) 구 일미안보조약에 따라 주일미군은 일본 정부와의 협의나 동의 없이 병력과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장비를 임의로 배치할 수 있었으며, 타 지역으로 제멋대로 출동할 수 있었다.


12) 多田 實, 일미안보조약, 1982. 8, 동경, p 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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