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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연대 활동과 전망 <최경순> [민대 2004 7/8 일터에서2]

 



교통연대 활동과 전망





최경순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 사무차장)



교통연대는 지난 2004년 5월 19일 결성되었다. 서울시의 「교통체계 및 요금체계 개편」을 불과 1달 반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었다. 사실 서울시의 교통체계 개편에 대하여 우리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이하 ‘민주버스’로 약칭)과 민주노동당 서울시지부 외에는 큰 관심과 고민이 없었다. 서울시에서는 교통체계 개편을 공언해왔지만, 주로 버스만 개편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4년 5월 14일 서울시가 공청회 자리에서 내놓은 「교통체계 및 요금체계 개편」안은 일반적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 내용도 공공재인 대중교통에 있어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의에 반하는 것으로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준비정도로 볼 때 7월 1일 시행은 불가능해 보였다.

서울시의 개편안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진 조직들이 5월 19일 급히 모였다. 그 때 모인 조직은 민주버스, 공공연맹, 공공연맹 궤도연대(서울지하철, 도시철도, 철도노조), 민주노총 서울본부, 민주노동당 서울시지부 등이다. 5월 19일 모임에서는 서울시의 「교통체계 및 요금체계 개편」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하여 공유하면서 앞으로 공동으로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데 합의, ‘대중교통 공공성강화를 위한 연대회의’(약칭 ‘교통연대’)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1. 서울시 「교통체계 및 요금체계 개편」의 핵심 내용


서울시의 「교통체계 및 요금체계 개편」개편 주요 내용은 △버스와 버스, 버스와 지하철 간 환승요금 철폐 △버스 준공영제 도입 △통합거리비례제 실시 등이다.


1) 환승요금 철폐와 지․간선으로의 체계 분화


환승요금 철폐는 사실 교통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들이 평소 주장해왔던 내용과 합치되는 것으로 환영할 만한 것이다. 다만 서울시의 환승요금 철폐는 10Km 이내에서만 가능하고, 이를 초과하는 경우 거리에 비례하여 요금을 징수, 결과적으로 전체 요금의 인상을 전제로 한다는 측면에서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버스노선을 지․간선체계로 분화한 것은 환승 요금 철폐를 전제로 한다면, 버스 이용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방향의 올바름은 인정한다.

서울시는 이외 버스체계 개편이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 △주간선(BRT)버스 운행의 속도성, 정시성을 보다 높이기 위하여 중앙차로제를 실시하고, △노선의 버스운행을 조절하고, 이용 승객에게 도착시간 등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버스종합사령실을 가동하며 △노인과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쉽게 환승할 수 있도록 환승센터를 건설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물론 제대로 시행된 것은 없지만.


2) 버스 준공영제 실시


준공영제라는 용어는 생소하다. 완전 공영제와 사적 운영의 중간 정도 된다는 말인 것 같다.

서울시가 내놓은 준공영제 안은 △노선권 서울시 소유 △요금 수입과 배분 중앙 통제로 압축할 수 있다.

노선권 재편을 보면 주간선노선에 대하여 노선권을 시가 가지고, 차량 등 운행장비의 소유와 운영은 민간사업주가 갖는 것이다. 서울시가 노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버스운행권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요금 수입과 배분을 중앙에서 통제한다는 것은 개별 버스회사의 운송수입금을 모두 중앙(서울시, 사실은 사업조합)으로 집중하고, 중앙에서는 개별 버스회사에 운송원가(손익분기점)와 운송원가의 10% 이내에서 적정이윤을 절대 보장한다는 것이다.


3) 통합거리비례제 실시


통합거리비례제는 요금체계에 있어 버스와 지하철, 버스와 버스간에 환승요금을 철폐(통합)하되, 이용 거리에 따라 요금의 차등을 두는 것이다.

이른바 수익자 부담원칙으로 장거리 이용자들에게 이용한 것만큼 높은 요금을 지불하라는 것으로 서울 변두리와 위성도시 등 장거리 이용자들의 경우 40% 이상의 대폭적인 요금 인상을 가져왔다.

환승요금 철폐는 공공성 강화가 관철된 형태라면 수익자 부담원칙은 지극히 사업주 중심의 이윤논리로 공공성에 반하는 것이다. 통합거리비례제는 이렇듯 상충되는 체계가 혼재하는 것으로 문제성과 불완전성을 내포하고 있다.


2. 서울시 「교통체계 및 요금체계 개편」의 문제점


1) 공공성 강화에 역행하는 체계


서울시가 내놓은 이른바 ‘수익자 부담원칙’은 장거리 이용자를 수익자로 분류하여 이용한 것만큼 요금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장거리 이용자를 수익자로 볼 것인가 피해자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철학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도시팽창으로 주로 주택문제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이 교외에 거주하지만, 이들은 직장과 주거가 분리된 우리 여건에선 여전히 도심으로 출퇴근하여야 한다.

대중교통이 그 이용의 효과를 사회가 공유한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기업을 포함한 동일한 생활권의 사회가 공유한다는 점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는 시민에게 있는 것이며, 동시에 동일한 요금을 지급할 권리 또한 시민에게 있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러한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요금 인상이 아니라 정부 재원의 투입을 통하여 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대중교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수익자 부담원칙은 대중교통을 시민의 시각으로가 아니라 철저하게 자본의 시각으로 본 반민중적 정책이며, 나아가 필요경비를 철저히 요금수입에 의존시켜 공영화되어 있는 지하철과 철도조차 민영화시키기 위한 단계적 조치라고 본다.


2) 자본의 이익을 위해 이용시민을 희생시키는 체계


교통체계 재편으로 50여 개 서울시내버스 민간자본은 절대 이익을 보장받는다. 요금 수입과 관계없이 운송원가(손익분기점)와 운송원가의 약 10%의 절대이윤을 보장받는다.

운송원가라는 것도 객관적이지 않다. 서울시는 차량을 단 1대도 운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운송원가 산출을 철저히 사업주들이 제공한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 사업주들은 자신들이 보장받을 금액을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마치 대입 수험생이 스스로 자기 점수를 매기고, 그에 따라 원하는 대학에 가는 꼴이다.

서울시에서는 운송원가를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단편적으로 흘러나온 자료만 보더라도 운송원가가 상당히 부풀려져 있을 거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운전기사의 인건비가 운송원가의 약 50%를 차지한다. 서울시에서는 대당 적정인원 정규직 2.44명을 기준으로 운송원가를 산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실제 운행되는 것을 보면 대당 1.9명이다. 이것만 봐도 0.54명의 인건비가 부풀려져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광범위한 사용, 사고비용 부담 전가, 재생부품 사용, 유류사용 및 금액 과다 책정 등 운송원가가 부풀려진 의혹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더욱이 서울시내버스 자본은 전체적으로 보면 자본 잠식상태이다. 이런 부실한 업체에 부풀려진 운송원가를 보장하고, 추가로 약 10%의 절대 이윤을 보장한다. 이런 특혜가 어디 있는가.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수익률이 가장 높다는 5대 재벌의 영업이익율이 2003년 기준 6%가 채 안 된다.

저상버스를 도입할 때 차량 구입비를 지원하도록 서울시조례로 제정하였다. 저상버스의 경우 대당 1억 2천만 원, 굴절버스의 경우 대당 2억 원을 지원해주는데, 이 지원금은 개별 자본에 무상공여이다.

교통카드(T-Money) 문제도 심각하다. 공공사업의 일부인 교통카드 사업을 민간에게 넘긴 것도 문제지만, 사업자에게 막대한 이윤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한다.

카드를 이용할 때 이용액 기준하여 버스는 2.5%, 지하철은 1.8%의 수수료를 받는데, 이 금액이 2005년도 약 300억 원대, 2007년도부터는 500억 원대로 늘어나며, 요금인상과 카드 사용이 확대될 때 수익금은 천문학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 카드 사업에 소요되는 총 비용은 1,200억 원인 점과, LG에서 약 140억 원만을 투자하고 나머지는 금융권에서 차입금으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자본 대비 이윤이 어느 정도인가 짐작이 갈 것이다.

서울시는 이 사업의 독점권을 LG CNS에 넘겼다. 그것도 영구사업으로. 보통 도로 건설 등 공공사업을 민간이 건설․관리하여도 일정시한이 지나면 정부나 지자체에 기부 체납하도록 하고 있는데, 교통카드 사업에는 이 한도를 두지 않고 영구사업이라는 것이다.

서울시의 개편안은 이토록 민간자본의 이익은 절대적으로 보장하면서 그 비용은 철저히 시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3) 교통약자에 대한 대책 부재


이번 교통체계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노약자, 임산부, 장애인 등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간선제로 버스교통체계를 개편하면서 자연히 환승 횟수가 늘어난다. 지선버스에서 간선버스로 갈아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등 환승거리도 늘어났다. 그럼에도 교통약자들을 위한 환승시설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교통약자들을 위해 도입하겠다는 저상버스만 하여도 집에서 나올 때 이용하는 마을버스나 지선버스에는 도입계획이 아예 없다.




4) 과도한 요금인상


이번 개편으로 기본요금의 인상은 버스의 경우 23.1%(650원->800원), 지하철의 경우 25%(640원->800원)이다. 그러나 거리비례제를 적용하여 지하철의 경우 약 40%대로 대폭 요금인상이 되었다. 또한 현금 사용자나 1회 전철권 사용자는 100원의 추가요금을 더 내야 한다. 현금이나 1회권 사용자가 카드나 정액권을 사용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라는 측면에서 더욱 문제가 있는 제도이다.

이는 개편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뿐만 아니라 자본에게 절대적으로 보장한 이윤까지 철저하게 이용시민에게 전가한 결과이며, 나아가 지하철과 철도를 민영화시키기 위한 비용까지도 이용시민에게 전가한 결과이다.


5) 사전 준비 부족


설령 서울시의 교통체계 및 요금체계 개편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서울시와 서울시장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7월 1일 전면 시행하기에는 준비가 너무도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장 개인의 출세욕을 위해 2,000만 수도권 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시장 출범 2주년을 맞추어 7월 1일 전격 시행하였다.

성산 ․ 수색로의 경우 서울시는 불과 시행 1달을 남겨놓고 중앙차로제 공사를 강행했다. 도면이 미처 나오지 않아 퀵서비스로 배달 받으며, 하루 종일 체증을 불러일으키는 공사를 강행했다. 그 결과 중앙차로는 설계문제로 굴곡이 심하다든지, 중앙선을 넘을 수밖에 없는 지역이 있다든지, 차선폭이 좁아 정면충돌 위험이 있다든지 하는 많은 사고 위험을 안고 있다.

버스운행을 통제하고 시민에게 운행상황을 알려줄 버스종합사령실은 언제 가동될지 모르고, 환승센터는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서울시의 교통체계 개편이 제대로 가동되려면 총 1조 2천 680억 원이 추가로 소요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재원조차 확보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나야 교통체계가 정상적으로 가동할지 예측할 수조차 없으며, 막무가내 식 개편 강행으로 시민들은 고통에 적응하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6) 홍보비용 시민에게 전가


개편 이후 시민들이 겪는 가장 큰 혼란 중 하나는 노선과 번호의 문제다. 서울시에서는 2,000만 수도권 시민이 이용하는 버스체계를 일거에 전면 개편하면서 제대로 홍보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시에서 내놓은 홍보는 자화자찬 플랜카드 걸기, 반상회를 통한 개편 노선도 300만 부 배포 등이 고작이다.

결국 서울시가 장기간에 걸쳐, 보다 많은 재원을 투입해 이용시민들에게 홍보할 비용을 시민들의 불편과 추가 시간 투여 등 철저히 시민들에게 전가한 꼴이 되었다.

개편 보름이 지난 지금도 서울시내버스를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자신 있게 갈 수 있는 시민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7) 준비과정에서의 시민의 소외


서울시의 교통체계 및 요금체계 개편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편 과정에서 그 이용 주체인 시민이 철저하게 소외됐다는 점이다.

이번 개편은 서울시민만이 아니라 수도권 2,000만 시민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시민들을 소외시킨 점은 명백하게 서울시의 반민주적인 독선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다수가 반대를 해도 옳다고 확신이 있으면 밀어붙이겠다고 여러 번 공언하였다. 이는 아무리 올바른 정책도 구성원의 합의에 의하여야한다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에 대한 도전이다. 이번 서울시의 교통체계 및 요금체계 개편 또한 다수 시민들을 소외시키고, 노조와 정당․시민단체의 문제제기를 묵살한 채, 소수의 관료와 전문가 및 사업주들이 개편을 주도하였다는 점에서 서울시와 서울시장의 반민주적 독선이 그대로 관철되었다.


8) 노동자에 대한 대책 부재


서울시는 버스체계 개편으로 불가피하게 법인을 옮겨가는 노동자들에게 고용은 보장될 것이라는 사신 외에 특별한 고용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들은 정리해고 위협, 사표 강요, 부당 전직 등 평소 밉보인 민주성향의 노조원들과 급여가 상대적으로 높은 장기근속자들이 사표를 쓰도록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사실 버스체계가 개편되어 법인이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그 자본이 그 자본이다. 고용승계는 너무나 쉬운 것이다. 그럼에도 버스자본은 이윤 확보를 위해 사표를 쓰고 입사하는 형식으로 인적 구조조정을 강행했고, 서울시에서는 방관했다. 서울시의 정책 변경으로 구조조정이 발생하였는데도 서울시는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지하철은 인원 감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개편이 추진되었다. 서울시는 사실상 1회권, 정기권 사용을 억제하여 역무직 노동자의 인원 감축을 공공연히 하였다.


3. 교통연대의 활동


5월 19일 결성 이후 교통연대는 시간의 촉박성에 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우선 5월 25일 서울시물가대책위원회에서 요금 인상안에 대하여 최종 심의하였는데, 교통연대에서는 이 위원회에 ‘의견청취(안)’을 공식 제출하였다.

이후 교통연대는 △3회에 걸친 기자회견(6/2, 6/21, 7/9)을 하였으며, △정책토론회(6/3, 국회 헌정회관)를 개최하여 각계 의견을 모았고, △서울지하철과 도시철도, 철도 관할 수도권 전철 역사에 대자보와 차량 스티커를 부착했다. △서울시의 개편 중지하고, 버스노동자 고용승계를 보장하라는 민주버스 집회(6/9, 6/19, 6/24)가 있었으며, △시청 앞 1인 시위(6/10-7/2), △교통요금인상 반대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울 도보 대행진(6/21-6/24), △라디오 광고방송, △요금인상 반대서명(약 7만명), △10만 여장 유인물 배포, △서울시의 졸속적 교통체계 및 교통체계 개편 유보 및 전면 재검토를 골자로 한 의견서 제출(6/21), 음성직 교통보좌관 면담(6/24) 등의 활동을 하였다.

교통연대는 위와 같은 활동을 하면서 ‘7월 1일 시행 전면 유보’와 ‘단일요금제와 정기권, 각종 할인제도 시행’을 주장하였고, △대중교통 이용자 중심의 개선위원회 구성, △통합적 완전 공영제 실시를 위한 단계적 계획 마련, △대중교통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부와 서울시 재정 확대, △대중교통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법률체계 정비를 제안했다.


4. 교통연대의 향후 활동 계획


교통연대는 7월 9일 서울시에 △이용자 중심의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서울시 대중교통개선위원회’의 구성과 △서울시장과 시민이 참여하는 ‘공개대토론회’ 개최, △대중교통(요금)체계 계획수립과 관련된 ‘모든 자료의 투명한 공개’, △대중교통(요금)체계 변경에 대한 ‘서울시의회의 입장표명과 대책수립’, △신교통카드 도입과 관련된 종합적인 ‘감사원 감사’를 요구하였다.

교통연대는 위와 같은 요구 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완전 공영화와 △통합단일요금제를 정책 목표로 활동할 것이다.

교통연대를 확대 개편하여 수도권 시민과 보다 많은 사회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가칭) ‘대중교통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시민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교통연대는 조직 확대와는 별도로, 교통체계 개편 이후 나타나는 문제점을 정리․분석하고 해결점을 찾기 위한 감시(모니터링)활동을 전개할 것이며, 네티즌들과 연대 지속적인 사이버 시위와 시민 참여를 조직할 것이다. 1인 시위, 서울시의회 항의 방문, 100만명 서명운동 등을 전개할 예정이며, 상황에 따라 전면적인 ‘집회’와 ‘시정 불복종 운동’ 및 ‘이명박 시장 퇴진 운동’ 전개를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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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탐욕은 죽음을 부른다. <하효열> [민대 2004 7/8 일터에서1]

 



자본의 탐욕은 죽음을 부른다.


- 항공연대의 생존권 사수 투쟁 -







하효열 (대한항공조종사노조 교선실장)



1. “맥시멈으로 돌리는구만...”


1997년 8월 6일 괌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801편 조종사 중 한 명이 사고가 나기 얼마 전 같이 비행하던 동료에게 한 말이다. 세 사람의 조종사들은 목적지인 괌 아가나 공항에 접근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던 중 당시의 월간 비행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서로 사정들을 잘 아는 사이지만 막상 자신들이 얼마나 무리한 비행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고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이 음성기록장치(CVR-블랙박스의 한 부분)에 또렷이 남아 있다. 굳이 사고 조사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더라도 조종사들의 누적된 피로가 그 사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한항공에 조종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생긴 것은 이로부터 2년 여 후인 1999년 8월 30일이다. 노조 합법화를 위해 9개월여의 진통을 겪고 다시 다섯 달이 지난 후인 2000년 10월 22일, 조종사들은 사측과 첫 번째 단체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협상에서 최대 쟁점이 되었던 것은 연간 비행시간을 1,000시간이하로 줄이는 문제였다. 대한항공은 ‘사고 항공사’라는 온갖 사회적 비난과 항공기 운항 체제를 개선하라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인원 증가 때문에 전체 인건비가 늘어날 것이 예상되는 이 조항만은 절대 들어줄 수 없다고 끝까지 버텼고, 조합에서는 이 조항이 타결되기 전에는 절대 파업을 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사실 이 조항은 당시 일반적인 장거리 기종 조종사들의 비행시간을 거의 40% 정도 줄여 월 평균 83시간 이내로만 비행기를 태우라는 요구였다. 자본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이틀에 걸친 힘겨루기 끝에 결국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요구는 관철되었다. 노동자들의 굳건한 투쟁으로 조종사들은 자신의 생명과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낸 것이다.


2. 2004년 3월 3일 항공연대 깃발 올리다


2004년 3월 3일 민주노총 산하 항공관련 산업 노동조합 네 개가 모여 항공연대를 출범시켰다. 한국공항공사노동조합,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 아시아나공항서비스지부,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으로 시작된 항공연대는 이후 3월 31일까지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동조합과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이 합류하면서 소속 조합원 8,000여명의 명실상부한 항공관련 노동자의 대표 조직이 되었다.

이 땅에 항공 산업과 관련된 민주적 노동조합이 생긴지 17년 만에 탄생한 최초의 연대체였다. 각 노동조합이 처한 현실과 인적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연대체를 구성하는데 이리도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이다. 처음 모이기는 어려웠지만 한 번 모인 이후의 진행은 순조로웠다. 2004년 3월 3일 첫 회의 때부터 ‘2004 임단협 및 주5일제 협상 과정에서 공동투쟁 및 집행회의 정례화’를 결의하였고, 두 번째 회의에서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실시’를 공동요구안으로 정하는 등 실질적인 공동투쟁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또한 사회 공공성 강화 투쟁의 일환으로 ‘인천국제공항통행료인하 투쟁’에 항공연대가 참여하여 공항에서 인천방향의 통행료를 없애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3. 빗속에서 피어난 동지애 - 5.28 항공연대 결의대회


2004년 5월 28일, 600여명의 항공연대 동지들이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단 한명의 이탈 없이 2004년 임단투에서 공동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결의대회는 나이와 직종을 초월한 최초의 항공노동자 연합집회였다. 서먹서먹했던 첫 분위기는 각 단사 율동패들의 연합공연을 기점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여섯 명의 위원장들이 각각 공동투쟁을 다짐하는 시점에 이르자 참석자들의 연대투쟁에 대한 확신은 최고조에 달했다. 자본의 지속적인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한자리에 모이기만해도 서로가 동지임을 확인하게 되고, 각자 처한 현실이 아무리 달라도 함께 싸우는 것이 노동자들의 유일한 무기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4. 항공연대, 이라크 파병군 및 물자의 수송을 거부하다


“우리 항공 관련 노동자들은 과연 안전한가?”


2004년 6월 21일, 항공연대 소속 조합의 합동 간부 수련회 장에서 한 간부가 이렇게 말했다. 고 김선일씨 이야기가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였다. 이 질문이 좌중에 떨어지자 모든 참석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 항공 노동자들은 이라크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인가? 한참이 지난 후, ‘우리가 뭐든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앞장서서 이 부정한 전쟁을 막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는 것이 우리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일 아닌가? 우리 항공 노동자는 테러 집단의 첫 번째 목표가 될 것이 뻔한데 이렇게 손을 놓게 있어도 되는 것인가?’는 등 질문 아닌 질문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또다시 탐욕에 눈먼 자본과 권력 때문에 노동자와 민중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사실 6월 21일의 항공연대 간부 수련회는 7월로 예정된 항공연대 공동투쟁의 구체적인 일정 및 전술을 토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미국의 이라크침략을 돕기 위한 한국정부의 파병 결정 때문에 항공 노동자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음을 절감하게 되자 향후 대책 마련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라크 파병 결정에 반대함을 밝히는 성명서를 발표하자는 발의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어떤 항공 노동자도 이 침략전쟁에 동조하는 자들의 편이 아님을 밝히자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들이 항공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임을 알리자는 것이었다.

비록 성명서를 발표하자고 결정한 것으로 이날 회의는 끝이 났지만 성명서 한 장이 우리들의 생명을 지켜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모르는 간부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 날,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과 아시아나항공 및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동조합은 정부의 추가 파병 강행 결정이 한국 국적 항공기의 테러 위험을 배가 시킬 수 있음을 통감하고 추가 파병을 막을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나왔다. 어떤 조종사도 파병군 및 파병 물자를 수송하다 테러의 표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노동자도 추가 파병 및 물자 수송을 도왔다는 이유로 위험에 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각 조직의 대의원 대회 등을 통해 ‘파병군 및 물자 수송 거부’라는 아주 상식적인 대응이 결정된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각 항공사에 정부와 파병과 관련된 수송 계약을 맺지 말 것을 요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모든 항공연대 소속 노동조합이 단 하루 만에 이 결정에 동참하였다.


자본의 탐욕은 죽음을 부른다


229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1997년 대한항공 괌 사고는 현장에서 안전을 책임져야 할 노동자의 상식적인 요구를 무시하며 자본의 논리만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고 조사 결과가 아무리 조종사의 과실로 결론이 나더라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 하나 있다. 사고 조종사는 자본의 탐욕 때문에 무리한 피곤한 상태로 비행을 하고 있었다. 과연 피로에 찌든 조종사와 건강한 조종사가 동일한 상황에 놓인다면 누가 더 올바른 판단을 하겠는가? 조종사를 맥시멈 스케줄을 돌리는 항공사와 휴식시간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항공사의 비행기 중 어떤 비행기를 타고 싶겠는가? 결국 자본의 탐욕에 무고한 노동자와 승객들만 희생된 것이다.

또 한사람의 노동자가 희생되었다. 고 김선일씨는 ‘미국의 침략 전쟁에 반대함과 한국 정부의 추가 파병 중지’를 목 놓아 외쳤지만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자본과 권력은 국익을 이야기하며 노동자의 절규를 무시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탐욕은 결코 국익이 될 수 없음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자본가 자신들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탐욕 때문에 또 다른 젊은이와 노동자들이 죽어갈 것이다.




운송하역노조 물자 수송 거부에 동참하다


6월 26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운송하역노조가 이라크에 파병되는 자이툰 부대의 군수물자 수송을 거부했다. 이 발표를 듣고 항공연대 소속 많은 간부들은 다시 한 번 ‘이라크 파병군 및 물자 수송 거부’ 결정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 때 많은 항공연대 간부들이 ‘우리는 공항을 막고, 철도노조와 화물연대는 지상을, 항구는 항만노조 등에서 막으면 어떻게 파병이 가능하겠는가?’라고 하며 뼈있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말이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운송관련 노동자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생명과 동지들의 안전을 지켜내자고 결의한 것이다.

이제 모든 노동자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우리는 내 일 네 일을 따져서 골라가며 싸워서는 절대 자본의 탐욕으로 인해 자신들의 생명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연대 노동자들이 이런 사실을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을 이제 단축시켜야 한다. 항공연대 노동자들이 테러의 위험에 노출 된 후에야 알아차린 진실을 다른 노동자들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연대해야 한다. 어떤 노동자도 자본의 마수로부터 안전하지 못함을 하루빨리 알아 차려야한다.


항공노동자들의 힘만으로 이라크 파병 막기


항공노동자들의 힘만으로 이라크 파병을 막기 위해서는 끈질기고 일사불란한 투쟁이 필요하다. 파병관련 물자 중 무게가 나가는 것들은 대부분 배를 이용할 것이다. 대신 병력이나 고가의 첨단 장비 등은 항공기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비행기를 한 대 공중으로 날리는데 수많은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기에 어느 한 노동자라도 손을 놓으면 그 항공기는 절대 뜨지 못한다. 지금 항공연대 소속의 양대 조종사노동조합의 조합원들만 손을 놓겠다고 한다. 보다 많은 항공 노동자들의 손놓음이 절실한 시기이다. 그리고 먼저 수송을 거부하겠다고 결의한 노동자들에게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야 더 많은 노동자들의 피 흘림을 피할 수 있다. 전체 노동자들의 동참만이 자본의 탐욕을 꺾을 수 있다.


5. 아쉬움과 기대


처음의 결의와는 달리 항공연대 소속 노동조합 중 3개 조직만 합동조정신청을 하였고, 최종적으로는 2개 조합만 파업투쟁 돌입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이것은 항공연대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음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짧은 역사와 지도부 중심의 연대체 구성 때문에 공동투쟁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한계를 단 한 번의 결의 대회로 극복할 수는 없었다. 직종 및 직급, 연령, 노동 조건들이 다양함에도 이런 사실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항공연대의 앞날은 밝아 보인다. 무엇보다 열성적인 간부들이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다. 또한 미흡하지만 2004년 임단투를 통해 항공연대의 위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위력 덕분에 몇몇 단위사업장은 2004년 임단협을 성공적으로 타결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점차 개별 조합원들에게도 전파될 것이다. 우리가 연대할 때 어떤 힘이 생기는지 조금씩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아직 마무리는 되지 않았지만 2004년 항공연대 공동투쟁은 다가올 2005년 연대 투쟁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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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구조조정 실태와 진단 <심영보> [민대 2004 7/8 확대경4]

 



자동차산업구조조정 실태와 진단







심영보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연구원)



들어가는 말


자동차산업은 하나의 완성차 업체를 중심으로 1차에서 4차에 이르는 도급구조로 광범한 협력계열사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2만여 개에 달하는 부품의 특성상 자동차의 각종 부품은 철강, 고무, 섬유, 기계장치, 전기 등 다양한 재질로 구성되는 만큼, 타 산업과의 전후방 연관효과나 고용규모가 커서 국민 경제 규모와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산업이다. 그런 만큼 자동차산업은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한국에서 자동차의 산업지수는 1970년에 13위에서 1995년에는 1위에 이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2002년 기준으로 자동차 산업 업체는 완성차업체 5개, 자동차 업체에 납품하는 전문 부품업체는 대략 1천여 개, 반제품이나 핵심 소재를 제공하는 부품업체까지 하면 대략 3천여 개에 달한다. 전체 제조업체에서 자동차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3.26%이지만 종업원 수는 7.69%1)일 정도로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는 점이 빠른 성장의 한 이유이기도 하다. 87년 민주노조 운동의 대두 이후 한국 정부의 경제, 노사정책의 전환에 있어 자동차 산업노사관계는 주요한 지렛대로 작용해왔다. 자동차산업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노동조합운동에서 자동차산업 노조가 갖고 있는 동원력과 파급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외환위기 6년이 지난 지금, 지금 한국 자동차 산업은 자본과 노동의 편제 양 측면 모두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 정도로 현격하게 변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완성차업체, 부품업계, 도급구조별로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의 실태를 살펴보고 간략한 진단을 덧붙인다.


1. 완성차업체 구조조정


1998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시기는 초국적 자동차 자본의 인수합병이 극성을 부린 시기였다. 1998년에 독일의 다임러벤츠가 크라이슬러를 합병하였고, 폴크스바겐은 롤스로이드를, 포드는 볼보와 랜드로버를, 르노는 닛산을 인수하였다. 2000년에는 GM이 피아트와 자본협력을 강화하였고,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미쓰비시를 인수하였다. 이를 통해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도요타, 폴크스바겐, 르노 등 ‘빅6’을 중심으로 한 세계 자동차생산체제를 구축하였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자동차 수요의 감소, 과잉설비투자, 가격 인하 경쟁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자동차 자본이 적대적인 기업인수합병으로 자본과 생산의 독점을 강화하는 구조조정을 해 나갔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은 감원, 생산 감축, 공장 폐쇄, 노동조건 악화, 노동조합 탄압 등 노동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기업 내 구조조정을 동반하였다.

이러한 사정은 국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7년 기아자동차 부도로부터 시작된 국내 자동차 산업 완성차 업계의 구조조정은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고, 르노의 삼성인수, 지엠의 대우 인수 등, 현재 쌍용자동차의 매각까지 지속되고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에서의 완성차구조조정과정에서도 전형적인 기업 내 구조조정이 당연히 수반되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하여 기아차, 대우차 등에서 정리해고, 단체협약 개악 등 인원감축과 노동조건 악화, 노동조합 활동이 위축되었다. 즉, IMF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시작된 국내 완성차업계 구조조정은 세계 경기침체를 배경으로 한 초국적 자동차 자본의 기업인수합병식 구조조정을 그대로 밟아간 것이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세계화 , 글로벌화 경제 정책)은 내수 증진이나 고용 증대와 같은 국민경제적 원리보다는 자본의 투자수익을 우선시하는 초국적 자본이 국내 기업을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여건이 되었다2). IMF 외환위기에 처한 한국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대응이 자동차산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지만, 신자유주의 적 대응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해당기업의 자구능력 과소평가, 자구에 대한 정책적 지원 방기, 매각을 반대하는 노조에 대한 강경 대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외환위기로 가속화된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결과, 5년 만에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4개사의 주인이 바뀌었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이제 쌍용차마저 초국적 자본에게 인수된다면, 국내의 완성차 생산체제는 국내자본인 기아-현대차의 현대자동차그룹자본 1개와 GM, 르노 등 초국적 자본3개가 주도하는 체제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바뀐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전 3사(현대, 대우, 기아) 과점체제였던 국내 자동차 시장은 2002년 현재 현대차그룹자본(현대차-기아차)이 독점하는 구조로 변하였다3).

현대차그룹자본은 2000년까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자동차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한국의 내수 시장을 독점하였고, 글로벌 부품기업인 현대모비스를 선두로 하여 국내 부품계열사들의 글로벌화를 주도하고 있다. 선점한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으로의 진출, 이후 아시아시장의 절반 이상의 수요처로 예상되고 있는 중국과 인도에 대한 적극적인 해외 진출 등으로 ‘빅6’으로 대변되는 초국적 자동차 업체들과 겨루는 체제정비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12일, 국내 ‘자동차의 날’을 맞이하여 자동차업계에서는 2010년에는 현재 약 345만대(국내 318만대, 해외 25만대)인 생산능력을 650만대(국내 450만대, 해외 200만대)로 끌어올리고, 현대자동차를 세계 100대 브랜드기업으로, 세계 100대 부품기업에 국내 부품업체 10여 개 이상이 들게 하겠다고 호언하였다4). 글로벌 톱5를 목표로 한다는 국내 최대의 자동차자본인 현대차그룹자본은 이제 초국적 자동차 자본으로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2. 부품업계 구조조정


1990년대에 세계 자동차 부품업계에도 적대적인 기업인수 합병이 횡행하였다. 지난 10년간 세계 자동차부품업체는 3만여개에서 8,000개로 크게 감소했다. 통합추세는 앞으로 더욱 빠르게 진행돼 상위그룹에 속하는 부품업체수는 현재 2,000여개에서 2008년에는 150개 정도로 격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5). 자동차 부품업계의 세계적인 기업인수 합병을 주도하고 있는 부품업체들은 초국적 완성차 자본 계열인 미국 지엠계의 델파이, 포드계의 비스티온, 초국적 부품 자본인 독일의 보쉬 등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1차 대형 부품업체를 비롯해 한국의 부품업체들을 적극적으로 인수합병한 곳으로는 이들 외에 일본 완성차 도요타계의 덴소, 부품계 교오또, 프랑스 부품계 자본인 발레오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비스티온은 한라공조, 덕양산업 등 3개 업체, 델파이는 한국 델파이 등 4개 업체, 덴소는 덴소 풍성 등 7개 업체, 발레오는 발레오만도전장, 독일의 보쉬는 캄코 등 3개 업체를 국내 법인으로 소유하고 있거나 합작 법인으로 관계하고 있다6).

외환위기 이전에도 국내 주요 부품업체는 낮은 기술력 때문에 외국 부품업체와 기술협약을 맺고 이로 인해 외국자본이 일정한 지분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기점으로는 기업인수합병이나 경영권을 통한 외국자본 지배력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완성사 5개가 있고, 낮은 기술력을 갖고 있는 부품업계라는 한국의 조건은 외국 부품업체에게 매력 있는 시장이며, 아시아 최대 자동차 수요처인 일본과 막대한 수요가 예상되는 중국, 인도 등과 가까운 입지 조건도 유인 요소가 된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국내의 핵심 부품업체 다수가 외국자본에 인수7)되었지만, 부품업계에서 외국자본의 증가추세는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말 현재 외국인합작투자 기업체는 207개이며 전체 부품업체중 외국인 지분이 50%이상인 기업은 약 60%이며, 총투자금액은 약23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외자업체의 국내 완성차업체에 대한 납품규모도 2001년에는 6조 9천억, 2002년에는 7조 8천억, 2003년 8조7천억으로 매년 증대하고 있다. 국내 부품사와 외국 부품사의 국내 완성차 납품비율도 2000∼2002년 평균 8대 2에서 지난해에는 6.5대 3.5로 외국 부품사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8).


<표> 부품산업의 투자비율별 외국인합작투자 현황 (단위: %, 백만달러)

 

100%

51-99%

50%

49%미만

전체

업체수

43(20.8)

49(23.7)

31(15.0)

84(40.6)

207(100.0)

투자금액

890(39.0)

923(40.4)

240(10.5)

229(10.0)

2,281(100.0)

자료: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2003), 홍장표(2004, 표5-4)


지난 5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보고서에서는 적대적인 기업합병인수를 통한 부품업체의 대형화와 전문화를 목표로 하는 ‘글로벌’ 전략을 지속하고 있다9). 가격경쟁, 신차개발, 신기술개발이 뛰어난 기업이 그렇지 못한 자동차부품업체를 인수합병해서 대형화, 전문화하라고 하는 것이다. 국내 대형 부품사들이 외국자본에 넘어가고, 기업수익의 국외 유출에 대한 어떤 제한도 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도 정부의 ‘글로벌’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3. 도급구조


외환위기 이전 한국의 자동차부품업계는 현대차-현대정공, 기아-만도기계, 대우-대우기전 등, 완성차별로 각기 부품도급구조를 갖는 수직적인 계열협력체제였다. 완성사와 부품업계의 원하청 관계와 완성차를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식 공급구조에서 부품납품단가에 대한 완성차의 불공정 거래는 오랜 관행으로 정착되었다. 몇몇 대규모 1차 협력 부품업체를 제외한 다수 중소 부품업체들은 완성차와 1차 부품업체간 불공정 단가 계약을 2~3차례로 적용받게 됨으로 인해 기업에 유보되는 이익이 거의 없는 저수익 업체가 된다. 그러나 특별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던 중소부품업체들은 부품 공급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비용에 미치지 못하는 단가협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러 완성차에 납품하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우수 중소부품업체로 경제신문에 거론되고 있는 업체들도 수익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완성차업체가 한국경제에서 승승장구하는 이면에는 이처럼 도급단가를 둘러싼 불공정 거래와 이에 따른 중소부품업체들의 출혈경쟁에 따른 저수익 구조가 정착되고 있었다.10)

자동차산업의 불공정 거래로 형성된 완성차, 대형 부품업체, 중소형 부품업체간의 수익의 차이는 노동자간 임금차이, 노동조건의 차이로 나타났다. 500인 이상업체인 완성차 업체나 대형 부품업체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제조업 평균보다 높지만, 일정 규모 이하 중소 부품업체로 내려오면 임금수준이 제조업 평균보다 낮다는 것이다11). 자동차 산업의 원하청 도급구조의 불공정성은 결과적으로 자동차 산업 노동자 간 임금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완성차와 부품계열사 체제가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변화해야 부품업계의 저수익 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정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다수의 국내 중소 부품업체들은 모듈화에 기초한 현대모비스의 전문부품계열협력사 구축과정의 인수합병대상외의 방안을 찾기 어렵다.

현대모비스12)는 현대차자본을 대표하는 1차 부품협력업체로 세계 100대 부품기업에 들어가는 유일한 한국의 부품업체이지만,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와 외주만으로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노조를 표방하고 있는 현대 모비스는 현대자본이 삼성자본을 벤치마킹 한 것과 다름없다. 무노조를 가능케 하는 방법은 정규직 노동자의 최소화이다. 현대모비스 생산의 대부분은 외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올 초, 현대모비스는 아폴로 산업을 인수하면서 자산, 부채 인수 방식으로 노동자 고용승계를 거부하였다. 결국 아폴로 기업의 노동자들은 도급업체 노동자라는 변화된 신분으로 자신들이 일하던 사업장에서 똑 같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현대 모비스는 도급업체와 계약을 하는 것이지, 노동자들과 직접적인 계약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다. 동희오토는 비정규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대차로부터 임대한 공장부지에 기아차의 설비를 넘겨받아 현재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기아차위탁생산업체로 2001년에 설립되었다. 현대모비스와 동희오토는 자동차산업 내 정규직 없이도 높은 수익을 내는 자본의 신념을 전파하는 사업장인 것이다. 현대 자동차 자본의 계열협력사 구축과정에서 제2, 제3의 아폴로와 동희오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맺음말


한국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의 현실은 완성차, 부품업체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력 강화와 현대자동차그룹 자본의 초국적 자본으로의 진입이 큰 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초국적 자본이 주도하는 자동차산업 자본은 외국 자본이든 국내자본이든 더 넓은 시장과 낮은 생산비용을 찾아 지속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 산업이 갖고 있는 도급구조의 특성은 노동의 유연화를 극히 중층적인 방식으로 진행시키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외면적 발전이 노동자들의 삶과 생활안정을 보장하고 있지 못한 것이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자화상이다. 완성차 노동자-부품업체 노동자, 수익업체 노동자-적자업체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 그 어느 편에 속해있어도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시대는 노동자들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한다. 당장은 어렵지 않더라도, 미래는 보장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한 규제, 자본이 만들어놓은 노동자간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연대, 기업 경영에 대한 노동조합의 개입 등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참조문헌>


김현철, 2003, 자동차 조립업체의 구조조정 이후의 성과 평가와 과제

박하순, 2004,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이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진상보고서]

손정훈 ․ 정중재, 2002, 한국자동차 산업의 해외진출과 글로벌 경영전략

홍장표, 2004, 자동차산업의 도급구조 , [자동차산업의도급구조와 고용관계의 계층성] 


1) 2002년 기준 통계.(김현철, 2003)


2) 외국인의 상장주식에 대한 투자한도가 97년까지는 일반법인은 26%, 공공법인은 21%로 제한되었지만, IMF 구조조정 협약 체결 일반 법인 100%, 공공법인 40%까지 투자한도가 늘어났다. 그 결과, 상장주식에 대한 외국인의 주식소유비중은 96년 13.0% 에서 2003년 10월 현재 40.1%로 늘어났으며, 98년에서 2003년 사이에 이들은 투자총액 약 53조원의 2배에 가까운 약 93조 6천억원의 평가이익을 얻었다.(박하순, 2004)


3) 2002년 말 현대차(현대-기아)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81.8%이다.(홍장표, 2004)


4) 인터넷 연합뉴스(2004.5.12)


5) 인터넷 서울경제 (2003.5.28)


6) 미국의 투자회사인 JP모건이 만도 외 2개 업체를 소유하거나 지분을 갖고 있다. 초국적 자본이라 할지라도 자동차자본보다 투기성이 강한 금융자본이다. 그러나 전문부품업체인 보쉬의 경우도 보쉬 파이낸셜이라는 금융업체를 갖고 있듯이, 자동차전문 업체들이라 할지라도 금융자본의 지배적 수준에 따라, 한국 법인의 수익성여부에 따른 자본철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7) 1999년 이후 국내 자동차 경기호황으로 이후 외국자본에 매각된 대형 부품업체들의 수익은 대체로 높았다. 2000년 이후 유상감자나 고배당을 통해 주주들에게 현금수익을 주는 외자부품업체들이 많았다. 업체에 따라선 한해의 유상감자가 자본금 총액의 1/3수준에 달하기도 하고, 매년 당기순이익을 넘는 규모의 배당금을 지급하기도 한다.(노기연 2004년 경영분석사례 및 자동차부품업계 감사보고서 참조)


8) 인터넷 파이낸셜 뉴스(2004.5.25)


9) 글로벌의 핵심과제로는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전문화,■ 대형 모듈업체와 전문 중소업체 , 가공 중심 업체 등의 핵심사업 발전전략 구축 ■ 부품업체와 완성차업체와의 수직•전속적 거래관계 개선 ■국내 다른 산업과의 기술접목을 통한 독창적 기술개발 등을 제기하였다. 전자신문(2003.5.15)


10) 완성차업체가 매년 부품업계에 행하는 납품단가인하와 단가 협약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홍장표(2004) 참조.


11) 홍장표(2004)에 의하면, 500인 이상 사업체의 임금은 제조업 평균보다 15% 높지만, 99인 이하 사업체로 가면 제조업 평균보다 낮아지고 있다.


12) 현대모비스의 대주주는 기아자동차이고, 기아자동차의 대주주는 현대자동차이다, 현대자동차의 대주주는 현대모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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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자동차 완성4사 공동투쟁에 대하여 <조건준> [민대 2004 7/8 확대경3]

 



2004년 자동차 완성4사 공동투쟁에 대하여







조건준 (금속연맹 정책국장)



1. 완성사 공동투쟁의 필요성


금속연맹은 2003년 사업평가와 2004년 사업계획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방침을 확정한 바 있다. 계급적 요구를 중심으로 산별 실천을 강화하자는 것이 그 중 하나다. 특히 산별로 전환하지 않은 대공장의 경우 분과별 공동요구를 걸고 공동실천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2003년의 경우 금속연맹의 16만 조합원이 하나 되는 투쟁을 핵심적인 방향으로 가져 왔다. 그러나 16만이 하나 되는 투쟁을 위한 노력은 추상적인 방향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노력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이고 이점에서 실천단위로서 조선업종과 자동차업종, 그리고 금속노조라는 3대 축을 중심으로 한 사업방침을 갖게 되었다.

금속연맹이 산별 미전환 대공장에 대하여 업종중심으로 계급적 요구를 걸고 실천을 강화하자는 결의를 한 것은, 한편에서 본다면 기존의 산별전환 총회노력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또한 동시에 대공장 노조가 산별 실천을 통해 단결의 기반을 꾸준히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금속산업연맹의 공식 사업방침 외에 자동차노조들의 공동사업이 추진되는 다른 배경도 있다.

모든 업종이 98년 경제위기와 함께 구조조정을 거쳐 왔지만 자동차업종의 경우 이 과정에서 거의 동일한 경험들을 해 왔다. 97년 기아차의 부도와 매각 투쟁, 98년 현대차의 정리해고와 만도기계의 정리해고, 99년 대우그룹의 부도와 대우차의 구조조정 투쟁, 2003년 쌍용차의 매각시도와 투쟁 등 자동차산업은 기업의 부도 또는 위기상황에서 구조조정에 맞서 왔다. 98년 기아-현대 자동차노조들의 공동투쟁의 시도, 2000년 대우차 매각반대 완성차 공동파업을 비롯하여 공동실천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전개해 온 공동의 경험들이 있다.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예측할 때에도 자동차산업의 공동투쟁의 필요성은 더욱 더 절실해 지고 있는 상황이다. 즉 자동차산업 또한 글로벌 생산체계로 깊숙이 편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엠대우와 르노삼성이 이미 외자기업이 되었으며, 쌍용차 또한 매각될 가능성이 높다. 부품사의 경우도 델파이, 비스테온, 보쉬 등 세계적인 부품사들에 의하여 한국의 중견부품업체들이 인수되었다. 기아-현대차의 경우도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합작 등 전략적 제휴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과 아시아 지역에 생산공장들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생산체제의 구축과 가속화는 자동차산업의 노동자들에게 보다 분명하게 공동의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다. 해외투자의 증대에 따른 산업공동화에 대한 우려, 모듈화와 외주화를 통한 무노조 비정규직 공장의 확산 등 자동차 산업은 과거 재벌체제하에서의 경쟁원리와 다른 구조 속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산업차원에서의 공동대응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일자리 문제는 물론이고 모듈화와 외주화 등 지속적인 재편들이 진행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대안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자동차분과의 공동대응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 금속연맹의 자동차분과는 기금요구와 자동차산업 정책마련을 위한 노사공동기구의 설치 등 산업공동요구와 함께 자본이동에 대한 공동결정과 주간연속2교대를 비롯한 실근로시간의 단축, 작업장 혁신과 임금구조의 개선 및 비정규직 관련 사항을 단체협약의 핵심요구로 제출하였다.

2004년 공동투쟁을 위하여 자동차 완성사의 노조대표자들의 회의는 물론이고 자동차노조의 상집간부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동수련회 등이 개최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자동차분과의 핵심적 요구로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 기금’ 등이 논의되고 각 단위노조의 대의원 대회를 통해 공동요구를 임단협 요구안으로 결의, 확정하였다.


2. 2004년 공동투쟁의 방향과 기조에 대하여


올해 공동투쟁을 위한 방향은 산업공동요구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단위사업장의 임단협의 요구를 강화하기 위한 차원의 공동사업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임금의 경우 자동차분과 차원에서는 아예 별도의 임금가이드 라인을 결정하지 않았다. 임금에 대해서는 각 사가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분과차원의 방침이었다.

임금에 대한 정책은 임금 수준보다는 임금구조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임금체계개선위원회와 같은 요구들이 제안되기도 했지만 아직 임금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을 제기할 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다만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노력들이 2003년 현대차의 단일호봉제합의와 같은 단사별 시도와 자동차분과 차원의 수당체계개편프로젝트와 같은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임금격차의 해소를 위한 노력은 비정규직 임금인상요구로 반영되었으며 산별최저임금요구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못했다.

산업정책과 관련해서는 자동차산업정책 마련을 위한 노사공동기구의 요구를 비롯해서 연구개발투자의 강화나 부품산업발전 요구가 제출되었다. 그러나 연구개발투자요구의 경우 구체적인 요구로 실행하기에는 좀 더 많은 논의 속에서 세부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해소하기 위한 CR(Cost Reduction)문제의 제시는 좀 더 좀 더 실효성있는 세부 방안이 필요한 요구로 전면에 부각되지는 못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사업으로 구상된 작업장혁신의 문제는 단위노조별로 교대근무나 노동강도 문제 등 세부적 사안의 차이들이 있다. 다양한 의제들을 좀 더 정리해 나가야 할 것이며 이미 이와 관련해서는 현대차의 근무형태관련 제도개선위나 기아차의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기구 등 일정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진 요구는 ‘기금요구’다.

2002년 임금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것이 기금이다. 당시 임금격차의 지속적인 증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놓고 여러 방안이 검토되었다. 임금인상을 시급기준으로 제시하는 방안도 검토되었으나 이 방안은 각 사별로 임금인상의 효과에 엄청난 격차들이 발생하는 등 여러 문제들 때문에 현실화되지 못했다.

다른 방안으로 제출된 것이 ‘사회적 임금’이었다. 기업 간의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업수준의 임금구조를 가지고는 해결될 수 없기에 사회적 차원에서 분배와 결합된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기금을 조성하고 이 기금을 자동차산업 내부의 임금격차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가져갈 것을 검토하였다. 현대차에서는 순이익의 목표초과달성분에 대하여 기금으로 축적하는 방안이 제출되었으나 현실화되지 못했다.

2003년 하반기 논의과정에서는 ‘산업기금’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요구가 제출되었으며 2004년 초에 논의를 거쳐서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요구로 최종 요구안을 결정하였다.


3. ‘산업발전과 사회공헌 기금’에 대하여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 기금’은 자동차 완성차 노조대표자들의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제안된 후, 재계의 반대와 노동부장관의 발언을 비롯하여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될 만큼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기금안은 최초에 부품산업 문제 등 산업발전, 비정규직 차별해소, 대공장 이기주의에 대한 사회적 비판에 대응하는 취지에서 ‘산업기금’으로 제출되었다. 기금의 명칭은 자동차노조의 대표자들의 논의과정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기금설치의 취지가 공감될 수 있도록 하자는 제기에 따라서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으로 바뀌었다.

논의 과정에서는 대공장노조의 사회적인 기여를 중심으로 두는 의견과 산업공동화에 따른 고용불안 및 차별이 확대되는 고용시장을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강조점의 차이들이 제출되기도 하였으나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차원에서 산업발전, 노동시장, 사회공헌을 위한 기금으로 성격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에서 ‘연대기금’이 제출되면서 약간의 혼동이 발생하였다. 또한 금속연맹의 대의원 대회에서도 ‘노동연대기금’이 제출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연맹의 연대기금안은 폭넓은 대중적 토론을 거치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이와 별도로 논의해온 자동차분과의 ‘사회공헌기금’ 논의에 약간의 혼선이 발생한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연대기금, 노동연대기금을 비롯하여 금속연맹에서 논의과정에 한 방안으로 추가 제출된 ‘고용기금’(노사가 일정한 비율로 각출하여 기금을 모아 고용안정에 사용하자는 것)등 자동차분과의 기금과 함께 여러 가지 기금성격이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민주노총과 연맹의 논의를 통해서 일단 자동차분과는 기존에 추진해온 기금안을 가져간다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두 번째 문제는 기금의 출연 방식을 둘러싼 문제다. 민주노총과 연맹에서 제기된 기금마련의 방식은 노사가 동일기금을 각출하는 방식인데 이는 자칫하면 ‘대공장의 고임금론, 임금동결 및 자제론’에 휩쓸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자동차분과는 노사의 공동기금출연의 방식이 아니라 순이익에서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하는 방침을 확정하였다.

사실 기금요구와 관련해서는 요구안의 확정, 기자회견을 통한 공론화 시기에는 노동조합 내부적으로 큰 논란의 대상이 되진 않았다. 기금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후에 내외적인 쟁점으로 떠올랐다.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에 대하여 간략히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기금 주장이 대공장의 임금인상을 위한 방어전술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단위노조 차원에서 대중적인 논의를 통해 확정된 요구안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현장으로부터 강력한 의지가 결집된 요구라고 보기는 힘들다. 상당한 견해들이 2003년 집중적으로 비난받은 대공장이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를 위해 내건 방어전술 차원의 요구로 이해하고 있다.

‘사회공헌기금’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상황에서 임단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2003년에 비해 대공장에 대한 집중적 공격이 무뎌진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기금요구가 그 전술적 가치를 모두 발휘했다고 평가하는 간부들도 적지 않다.

이는 대공장의 노조운동이 전략적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이며 기금요구는 전략적 방향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충분한 공유가 부족한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둘째, 기금요구가 오히려 대공장의 고임금론과 임금양보론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다.

그러나 이미 임단협의 결과들이 보여 주듯이 자동차 노조들에게 ‘기금논의’가 임금양보론으로 작용한 근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여기에서 기금문제의 비판을 둘러싼 미묘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즉 한편에서는 대공장이 임금인상을 주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금을 비판하고 반대측면에서는 오히려 기금요구가 대공장의 임금양보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임금인상의 수단이냐, 임금양보의 수단이냐’는 엇갈린 평가는 매우 지엽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결과의 소산이라 생각한다.

셋째, 비정규직 문제가 기금을 통해 해결 될 수 있냐는 반론이다.

실제 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비정규직 문제가 기금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비정규직 사업은 이와 별도의 차원에서 각 단위노조가 추진하고 있다. 또한 임단협에서도 비정규직에 대한 요구를 별도로 제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금요구가 비정규직과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실제 일정한 기금을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공장 노조들이 비정규직을 위해 기금을 만드는 수준에서 자신의 도덕적인 역할을 다 했다고 자처함으로서 대공장 노조들에게 책임회피의 명분을 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진정으로 정규직 노동조합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역할을 논의하고자 한다면 이 문제는 그 자체로 평가되고 논의될 필요가 있다.

정규직 노조들은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도 갖지 못했다.

그러다 광주의 캐리어 사례에서 극명히 드러난 것처럼 조직된 비정규직들의 투쟁에 대하여 정규직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금속연맹에서는 캐리어 정규직 노조를 제명징계 하였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정규직 노조들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하여 그 의무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올해 자동차 대공장들이 모두 비정규직 관련 요구안을 걸고 있는 것처럼 매년 비정규직 관련 요구가 제출된다.

현재는 정규직 노조에 의한 비정규직 관련 ‘대리교섭’이 일반화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조의 역할을 오히려 제한하기도 하고 일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싸고도 비정규직 노동자들 속에 정규직화라는 계급상승(?)의 기대심리를 확대시켜 기대와 정 반대의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정규직 노조에 의하여 관리되는 비정규직운동’이라는 걱정을 불러오기도 한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연대할 것인지는 변화된 현 단계의 상황을 평가하면서 새롭게 제기되어야 한다.

넷째로는 기금요구는 ‘시혜적, 온정적’ 사고방식으로서 결국은 ‘비정규직의 존재를 인정하고 합리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는 비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기금 요구를 있는 그 자체로 보자는 것이다. 자동차산업이라는 하나의 산업을 중심으로 놓고 볼 때에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하여 잉여가치가 발생한다. 원자재의 공급과 생산활동에 필요한 제반 여건, 판매를 둘러싼 사회적 과정, 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납세나 관세 등 복잡한 것을 일단 제껴 놓고 본다면 완성차에서 높은 이윤실현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이다. 그 노동자들 중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다. 물론 최근 몇 년간의 노동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할 때에 정규직 대공장 노동자들이 기업의 지불능력 만큼 임금을 받는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영세부품업체의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2003년 기준으로 볼 때에 현대차의 1조 7천억, 기아차의 7천억, 쌍용차의 3천6백억, 현대모비스의 5천5백억의 순이익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노동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소영세부품사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 수탈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발생한 순이익을 주주배당금, 회사의 재투자 비용, 대공장들의 노동자들의 성과금으로만 나누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이것이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부품사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곧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 일부에서는 기금요구를 비정규직에 대한 수탈의 문제, 혹은 분배정의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정규직 노조들이 더 철저하게 수탈과 분배정의의 문제로 발전시키자는 긍정적 대안의 관점이 아니라 부정적 방향에서 우려들만을 쏟아 놓고 있다.

여기에는 연대기금에 대한 의혹과 정규직 대공장들의 비정규직 사업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적 판단들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을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모든 문제들을 ‘기금’이라는 문제에 결부시켜 놓고 판단해선 안된다. 너무 복잡하게 해석할수록 있는 그 자체로 보기 어렵고 온갖 주관적 해석들만 덧붙여질 뿐이다.

다섯째, 노조가 왜 산업발전을 주장하냐는 반론이다.

말 그대로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은 산업발전을 위해서 노조도 기여하겠다는 사고법을 담고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이런 식으로 가면 자본이 말하는 산업발전의 논리, 성장논리에 빠질 것이고 또한 노사공동은 기금운영기구를 만드는 것은 노사협조주의로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을 편다.

개인적으로는 수많은 기회를 통해 산업발전에 대하여 노동자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주장한 경험이 있다. 이미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기업(경제)이 살아야 노동자(국민)가 산다’는 식의 주장은 더 확장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자본의 이데올로기 조작을 넘어서 노동자의 경험을 통한 학습의 결과처럼 굳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실제 우리의 경험에서는 기업이 망하니 고용이 불안해 졌다는 객관적인 측면과 함께 또한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활용하는 자본의 의도가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단순히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조작의 측면만 보고 그것은 허구라고 주장하면, 그 결과는 ‘자본 =경제를 살리는 집단, 노동(조합)= 기업과 경제를 망치는 집단’이라는 사회적 등식을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이 이 사회의 주인(대안집단)이 되고자 한다면 국민을 먹여 살릴 대안을 제출해야 하고 이점에서 ‘산업발전’이라는 화두를 노동운동이 자신의 화두로 뺏어 와야 한다.

다만 산업발전의 목적과 방법들에 대한 분명한 노동자적 관점이 정립되어야 한다. 즉 노동자의 개입과 통제의 영역은 임단협이나 작업장 수준을 넘어서 산업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산업발전’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산업정책에 대한 개입과 통제’라는 표현의 차이가 매우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표현보다 실제 내용이다.


 

산업발전의

목적

방향

방법

결과

노동

노동자(국민)의

후생복리 증진

자본에 대한

사회적인 통제

노동시간단축 →

일자리 창출

적정임금 →

복지증진

산업발전 =

전체 국민의

고용과 복지증진

자본

이윤의 확대

기업에게

무한한 자유

(규제철폐)

인력절감 →

실업양산

저임금정책 →

비정규직 확대

산업발전 =

비정규직의 양산,

빈부격차의 확대


“ 우리 금속노동자는 생산의 주역으로서 금속산업발전과 사회발전에 이바지 해왔으며...”

이 문구는 노사협조주의를 표방하는 어용노조의 주장이 아니다. 계급운동의 대안으로 수많은 간부들이 주장하고 있으며 또한 수많은 조합원들에게 이것만이 살길이라며 그토록 외치면서 만들어온 금속노조의 선언이다.


4. 노동운동의 발전 전략을 고민하면서


자동차의 공동투쟁에 대한 수많은 논의를 다 고려하여 반론을 전개하고자 한다면 수많은 논의를 더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글을 쓰는 현재도 완성차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면 어디 한두 가지에 불과하겠는가?

‘87년 노동운동체제의 붕괴’를 말한다. 백번 동의 한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노동자들은 계층화되고 계급해체 마저 우려된다.’ ‘대공장 노동자들은 더 실리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등등의 수많은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이제 문제는 이런 평가가 아니다. ‘당신은 현재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구체적인 실천을 하고 있는가?’ 바로 이것이 문제다.

자동차완성차의 공동투쟁에 참여 해온 한 필자는 올 완성차의 공동투쟁을 둘러싸고 ‘연대(노조)인가? 이권(노조)인가?’ 하는 도발적인 제기를 수없이 해 왔다. 자동차 대공장노조에 대해서 우리가 걱정할 것은 시혜주의든 온정주의든, 사회공헌기금이든 뭐든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한 노력보다 연대를 위한 노력을 좀 더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의 요구를 그 자체로 관철시키지 못하였다. 산업발전기금과 사회공헌기금을 분리하여 사회공헌기금은 각 사 노사에 맡기고 산업발전 문제는 자동차산업노사협의체 구성으로 해소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7월2일 자동차산업노사협약 참고)

하나의 군대가 있다. 내부의 한쪽은 군량미가 넉넉하고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다른 한쪽의 군사들은 군량미도 부족하고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 ‘과연 이 군대가 적군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이 질문 자체도 어리석기 그지없다. 적군과 싸우기도 전에 내부에서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군대를 강철의 군대로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 이를 위해 구체적인 실천의 방안들이 백가쟁명처럼 제출되어야 한다. 정말로 허망하기 그지없는 “안된다”는 주장만 남발하기보다 더 좋은 구체적 방안을 내놓고 토론하자.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출해서 서로 앞장서려고 노력하는 풍토가 만개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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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나누기 <박하순> [민대 2004 7/8 확대경2]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나누기


-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1)







박하순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소장)



1. 고용문제의 심각성


2004년 5월중 실업자는 78만 8천명, 실업률은 3.3%로 IMF 위기 이후 1999년 1/4분기 8.5%까지 내려갔던 실업률에 비하면 많이 개선되었다. 비록 IMF 위기 직전 96년도 완전고용에 가까웠던 실업률 2%보다는 아직 높고, 2002년 3/4분기 3% 이하로 하락한 것에 비해서도 약간 악화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한편 현재 경제활동참가율이 IMF 위기 전 추세선에서 1.5~2% 포인트 가량 낮아졌는데(5월에는 많이 상승하여 62.5%가 되었지만 여전히 97년 5월 63.4%에 비해 0.9%포인트 낮은 수치이고, 역시 IMF 위기 추세선에 비하면 1.5-2% 포인트 낮은 수치라 하겠다), IMF 위기 이전 추세 아래서의 경제활동참가율과 그만큼 증가한 실업자를 고려한다면 실업률을 2-3% 포인트 높아진다고 하겠다(<그림 1> 참조).

또한 보도에 의하면 청년실업률은 특히 심해 8%를 넘나들고 있다.



한편 고용문제는 실업률의 문제만은 아니고 고용구조도 문제가 된다. 불완전취업자라 할 36시간미만 취업자는 4월에 비해 약간 개선이 되었는데도 231만 2천명에 이르고, 18시간미만 취업자도 66만 2천명에 이른다. 이런 불완전 취업자를 위시한 비정규직이 문제인데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이 훨씬 심하고 정규직에 비해 훨씬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데 이들의 비중이 50%를 넘고 있다.

   하반기부터 중국의 투자붐 억제, 미국의 금리 인상, 유가인상으로 성장률이 더 둔화될 것이라고 예측이 되고 있어 실업문제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 고용문제의 원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심화


현재의 고용문제는 근본적으로는 한국자본주의의 과잉축적-이윤율 저하라는 구조적 위기에서 초래되었다. 정부는 이를 극복하겠다고 소유-금융의 이익을 확실히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정책을 추진하였다.


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금융기관과 기업의 인위적 퇴출, 7대 사업구조조정, 공공부문 구조조정 등을 통해 민간부문 공공부문 가릴 것 없이 인력을 약 20~30% 감축하였다. 그리고 정리해고제 도입 등 노동법 개악,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를 도입하였다.

공공부문을 보면 ’98 ~‘00년까지 총 13만 1천명을 감축하여, ’97년말 정원 대비 18.7% 정원을 축소하였다. 공기업에서만 ’00년까지 4만 1천7백명을 감축하였다. 정부는 ‘00년까지의 감축목표 13만명 대비 804명을 초과달성하였다고 자랑하고 있다(<표 1> 참조).

<표 1> 공공부문 정원감축(단위 : 천명)

 

’97말

정원(A)

’98 ~

’01 계획

’98~’00

정원

감축율

(B/A,%)

’01년

계획

계획

실적(B)

700.4

142.6

130.3

131.1

18.7

12.8

중앙부처

161.8

26.0

21.9

21.4

13.2

4.6

지 자 체

291.3

56.6

49.5

49.5

17.0

7.1

공 기 업

166.4

41.2

41.2

41.7

25.1

-

산하기관

80.9

18.8

17.7

18.5

22.9

1.1

자료: 기획예산처


②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심화


IMF 구조조정협약으로 한국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거의 완전히 개방되어 초국적 금융자본 주도의 세계화로의 편입을 심화하였다. 외국인의 상장주식 총 투자한도가 아이엠에프 위기 직전인 97년 11월까지만 해도 일반법인에 대해서는 26%, 공공법인에 대해서는 21%로 제한되어 있던 것이 아이엠에프와의 구조조정 협약 체결로 점차 확대되어 일반법인은 98년 5월 25일까지 100% 소유가 허용되고, 공공법인은 2000년 11월 15일 40%까지 상향조정되면서 외국인의 투자가 대폭 늘어났다.

2002년 말 한국 안에서의 외국인투자 총 잔액은 2,803.4억 달러이다. 이 중 외국인직접투자는 626.6억 달러, 증권투자는 1,167.3억 달러, 그리고 기타투자는 1,009.6억 달러이다.

외국인 보유 상장주식 가액은 91년 12월 현재 약 2조 4,000억 정도에서 아이엠에프 전 10조원대였다가 99년 12월 약 77조원으로 대폭 증가한 다음 2000년 주식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12월에 약 57조원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2003년 12월 말 현재 약 143조원에까지 이르고 있다. 외국인의 주식소유비중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아이엠에프 위기 전인 96년말에는 12.97%였고, 위기 직후인 97년말에는 14.59%였던 것이 2003년 말 현재 40.1%에 달하고 있다. 이 수치는 91년 말에는 3.27%에 머물렀다.2)

시가총액 기준으로 상위 10개 기업에 속하는 기업들의 외국인 주식소유비중은 더 높다. 증권거래소3)에 따르면 2004년 1월 16일 현재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외국인지분은 58.19%이다. 다음으로 SK텔레콤의 외국인 지분은 48.99%, 국민은행 74.38%, POSCO 66.76%이다. 시가총액 5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외국인지분 비중이 28.78%로 상대적으로 낮은데 이는 한국전력이 아직 공기업으로 존속하고 있어 정부 및 관련기관의 지분율이 높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51.23%이고, KT는 46.82%(KT 또한 외국인 총 지분소유한도가 49%로 제한되어 있다), LG전자는 36.06%, 삼성SDI는 37.14%, 신한금융지주는 52.40%이다. 그리고 10대그룹의 외국인 시가총액은 2004년 4월 8일 현재 삼성 57.04%, LG 32.72%, SK 43.56%, 현대자동차 47.28% 등 평균적으로 49.41%를 차지하고 있다.4)

한국은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높기로 헝가리 멕시코 핀란드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③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대상이 된 공기업


한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의 일환인 공기업 사유화 및 해외매각 정책으로 인해 거대 공기업의 주식이 대거 외국자본에 의해 장악되었다.5)

KT(구 한국통신)는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98년 7월 공기업 사유화 정책이 본격화할 당시 외국인 지분이 전혀 없었으나 증시상장과 해외 주식예탁증서(DR) 발행 2회 매각, 국내경쟁입찰, 국내공모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2002년 5월 정부지분을 완전히 매각하였다. 2004년 1월 16일 현재 KT의 외국인 지분은 46.82%까지 올라섰다.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98년 7월 공기업 사유화 정책이 본격화할 당시 30% 정도이던 POSCO(구 포항종합제철)의 외국인 지분율은, 26.7%에 이르던 정부 및 산업은행 소유 지분을 3차례에 걸친 해외 DR 발행과 자사주 매각을 통해 2000년 10월 완전히 매각한 이후 2004년 1월 16일 현재 66.76%에 이르러, POSCO는 한국인소유 기업이라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1988년 국민주 형태로 기업공개를 한 후 1994년 뉴욕증시 상장, 1995년 런던증시 상장을 통해 외국인의 접근이 시작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외국인지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고 외국인투자한도와 동일인지분소유한도가 있었으나 이는 전부 폐지되었다. KT&G(구 한국담배인삼공사)는 1999년 9월 국내증시상장을 시작으로 해외 주식예탁증서(DR)․교환사채(EB) 발행, 국내공모 등을 통해 정부 및 국책은행 소유 지분을 전부 매각하여 2002년 10월 사유화를 완료하였다. 외국인지분은 2004년 1월 16일 현재 39.66%에 이르고 있다. 사유화가 중단상태인 한국전력공사의 외국인지분은 2004년 1월 16일 현재 28.78%이고, 한국가스공사의 외국인 지분율은 2003년 8월 16일 현재 12.18%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런데 POSCO, 케이티, KT&G(이상 12월 10일 현재), 한국가스공사(12월 1일 현재)의 자사주가 각각 15.9%, 25.49%, 25.75%, 9.18%인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외국인 지분율은 더욱 높아진다. 또한 한국전력공사, KT, 한국가스공사는 외국인 지분소유 제한 규정이 있기 때문에 아직 외국인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이지만 정부의 기본 방향이 이런 제한을 철폐해가고 있기 때문에 향후 1-2년 내 공기업에서의 외국인 지분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소유 측면에서 공기업은 외국인 소유 기업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6)

이뿐 아니다. 정부는 발전사들, 한국공항공사 등 민영화특별법 적용을 받는 공기업들을 언제든지 팔아치우려 하고 있고, 철도운영주식회사도 때가 되면 사유화하려 들것이다.


④ (공공) 금융기관의 매각


금융기관들이 외국자본 지배하에 들어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은행 중에서는 제일 외환 은행이 각각 뉴브릿지 캐피탈, 론스타으로 넘어갔고, 한미은행은 카알라일 컨소시움을 거쳐 시티은행으로 넘어갔다. 이들 은행들의 국내 은행산업에서의 점유율(총자산 기준)은 약 30%로서 거듭되는 외환위기 및 체제전환과정에서 외국자본의 지배력이 높아진 남미(30~80%) 동구권(50~90%)보다는 못하지만 매우 높은 편이다. 이는 아시아 금융위기를 같이 겪은 태국(7%)과 말레이시아(19%)보다도 높다.

한편 이는 경영권까지 내준 은행의 경우이고 일반은행(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외국인 지분 비중은 2003년 9월 말 현대 38.6%(시중은행 43.4%, 지방은행 8.8%)에 이른다.7) 예를 들어 외국인들은 2003년 12월 26일 현재 국민은행 주식을 73.26% 보유하고 있고 하나은행 주식을 37.61%를 보유하고 있다.


⑤ 투자와 성장 부진: 고용문제 미해결


주지하다시피 이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의 심화는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대기업의 이윤율은 급격히 회복시켰으나 이들 기업의 운영원리로서 금융의 원리가 관철되면서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투자와 성장부진을 낳고 있다. 투자와 성장이 고용문제의 직접적인 해결책이라고 한다면 고용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라 하겠다.

가계는 신용불량에, 정부는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가운데, 기업은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다. <표 2>에 의하면 최근 기업들은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는데 매출액경상이익률은 0%를 넘나들다가 2002년 2003년 5% 내외의 이익률을 보이고 있고, 올 1/4분기 이익률은 13.4%라는 경이적인 이익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이익률 개선은 5대기업에서, 내수기업보다는 수출기업, 순수국내기업보다는 외국인투자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표 3>, <표 4> 참조).8)

 

<표 2> 제조업 수익성 추이1) (매출액대비, %)

 

96

97

98

99

00

01

02

03

 

04.

1/4

03.

1/4

영업

이익

6.5

 

8.3

 

6.1

 

7.3

(6.6)

8.2

(7.4)

5.3

(5.5)

7.3

(6.7)

7.9

(6.9)

8.8

 

11.7

 

경상

이익

1.0

 

-0.3

 

-1.8

 

1.6

(1.7)

-0.3

(1.3)

-1.4

(0.4)

5.2

(4.7)

5.7

(4.7)

6.4

 

13.4

 

주 : 1) 거래소 상장법인, 코스닥 및 금감위 등록법인중 제조업체 실적(이하 동일),

       ( )내는 전체 법인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경영분석 결과

자료 : 한국은행

 

<표 3> 제조업 부문별 수익성 관련지표 비교 (%)

 

매출액영업이익률

 

 

매출액경상이익률

03.1/4

04.1/4

 

 

03.1/4

04.1/4

제 조 업

8.8

11.7

 

 

6.4

13.4

5대기업

12.2

18.0

 

 

10.1

20.3

5대기업이외

7.3

8.7

 

 

4.7

10.1

수출기업

7.8

12.9

 

 

5.4

15.0

내수기업

10.0

10.0

 

 

7.6

11.2

자료: 한국은행

 

<표 4> 수익성 관련 지표 비교(2002년 연간) (매출액대비, %)

 

외국인 투자기업1)

순수 내국법인

영 업 이 익

13.3

< 9.3 >

5.9

경 상 이 익

14.3

< 7.7 >

1.5

자료: 한국은행

주 : 1) 외국인들의 지분 합계가 50% 이상인 기업

     2) < > 내는 삼성전자 제외 시


그런데도 설비투자율은 계속해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IMF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과 무관하지 않은데, 이들 대부분의 기업들이 초국적 금융자본의 손으로 들어갔고, 이들 초국적 금융자본의 눈치를 보는 한국의 경영자들은 단기적인 이익을 올리느라 위험이 동반되는 중장기적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한국의 경영자들은 초국적 금융자본에게 고율배당을 하고, 경영권 확보 및 주가관리를 위해서 자사주를 구입하고 나머지 돈은 현금으로 쌓아두고 있다. 비상장기업의 경우 초국적 자본은 유상감자를 통해 자금을 빼내가고 있다. 고용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다.


3. 정부의 실업대책 비판9)


정리해고와 노동유연화를 신주처럼 떠받들어 온 정부도 뒤늦게나마 실업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하여 이러저러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보다는 이벤트성 대책과 단기적인 방안에 집중되어 있어 실제로 실업문제에 대한 해결의지가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내놓은 주요한 실업대책을 살펴보면, ‘청년실업종합대책’(03,9,22)을 통해 3,623억원을 투입해서 130,000명이 수혜를 받은 것으로 보고 되고 있고, 또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03,12)을 통해 2,369명이 일자리를 찾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2월9일 국회를 통과한 ‘청년실업해소특별법’과 경총과 노총이 참여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체결(04.2.10)이 있었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2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고 있다.

노동부가 3월4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2004년 주요업무계획’에 따르면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근로시간단축 지원금 지원, 교대제 개선 장려금 지원방안 검토 그리고 공공근로 중 사회적 유용성이 높고, 효과가 검증된 사업을 사회적 일자리로 전환하고 새로운 사회적 일자리 발굴 추진(외국인 근로자 상담, 산재근로자 간병, 저소득근로자 자녀 방과후 교실 등) 등은 비교적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판단되어진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다소간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실업문제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임시방편적이며, 오히려 고용의 질을 저하시키는 방식으로 가고 있어 오히려 실업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지난 2월9일 국회를 통과한 청년실업해소를 위한 특별법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법안은, 정부 투자 및 출연기관이 향후 5년간 해마다 정원의 3%씩 신규인력을 채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이 신규인력을 채용할 경우에는 이러저러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을 조금만 뜯어보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정부 투자 출연기관의 경우 신규인력 채용은 경영합리화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예산배정이 전혀 없다. 이것은 현재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저하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근속연수가 오래된 고임금 노동자의 퇴출 즉, 명퇴나 정리해고를 유도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법안은 겨우 910억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어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예산의 대부분이 공공근로의 확대에 집중되고 있다. 이것은 결국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확대는 직업상담원과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동자들의 연이은 파업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부가 최근 월급 76만원 수준의 국민연금 상담사 1,000명을 채용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경총과 노총을 끌어들여 일자리 사회협약을 체결했지만, 절차와 과정의 문제는 차지하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일자리 창출을 통한 실업의 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선언적인 내용만 가득 들어있을 뿐 구체적인 대책이 나와 있지 않다. 오히려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임금억제를 강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이러저러한 대책은 실업의 책임을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리려 하는 것이다.


4. 주 5일/40시간 노동제10) 도입의 문제점


이런 상황에서 올 해 7월 1일부터 시작되는 법정노동시간 단축은 고용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절하게 도입된다면 고용문제 해결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 이렇다면 노동연구원이 계산한 6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임금억제, 노동강도 강화, 비정규직 증가만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각 사업장에서 도입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은 매우 파행적이어서 일자리 창출과는 무관하게 도입되고 있다. 자본측은 인력충원을 거의 하지 않고 기존인력의 활용도를 높여(노동강도를 강화하여) 대처하고 있으며 간혹 조금 인력충원계획이 있더라도 이것이 정규직 채용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심지어는 사업장에 따라서는 인력을 감축하기까지 한다.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단체협상 과정에서 연월차 축소, 생리휴가 무급화, 최초 연장 4시간 할증률 1.25 등이 관철되면서 통상임금을 넘어 임금총액과 퇴직금까지 전체 임금이 확실히 보전되지 않음으로 해서 실노동시간을 단축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11)

공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부산지하철의 예를 들어보자. 회사는 단협을 대폭 개악한 안을 제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연장수당 할증률 하향, 생휴무급화, 연월차 축소(이는 퇴직급 지급기준의 하향을 가져온다) 이외에도 상여금지급기준 하향, 특별휴가(효도휴가, 위로휴가 등)에서 장기근속휴가, 퇴직휴가 삭제, 토요일 유급휴일 대상 제외 등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3급 이하 정년을 단축하려 하고 있고, 2급 1급의 경우 직급별 체류연한이 넘으면 임금 및 승호를 동결하려 하고 있고, 정년이 3년 이하일 경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이런 (생애) 임금성 항목 이외에 조합활동, 조합간부 지위보장 등 조합활동과 관련해서도 개악안을 제출하고 있고, 담당급 임용 승진에서 연령기준은 없어지는 대신 포상기준이 새로 생기고 시험 비중 높아지는 등 승진제도의 개악안도 제출하고 있다. 이런 개악안이라면 어차피 노동시간 단축도 조합에서 이야기한 17시간 정도 단축되는 것도 아니고 출퇴근 시간도 이전보다 훨씬 불규칙해진 마당에 노동시간단축 안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한편 서울지하철공사와 철도운영공사로 전환될 철도청은 흑자경영계획 또는 적자 축소를 이유로 대폭적인 기존인원의 감축과 신규필요인력의 대대적인 비정규직 채용을 계획하고 있어, 노동시간단축으로 삶의 질도 높이고 고용도 늘이겠다는 노조의 소망이 채 꽃피워보기도 전에 공사와 철도청측의 대대적인 노동권 훼손 공세에 맞서 힘겹게 투쟁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5. 결


현재 고용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과잉축적-이윤율 저하라는 자본의 구조적 위기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심화를 통해서 극복하려 한 데 있다. 이를 통해 자본은 이윤율을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그것은 한편으로는 임금억제, 실업 및 비정규직화, 노동강도 강화 등 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부채의 사회화를 통해 재정적자 및 정부부채 증대를 통해서 가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국적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한국의 기업들에서는 새로운 투자는 발생하지 않고 성장은 정체하고 있으며 고용문제의 해결은 난망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진행되는 정부의 실업대책은 미봉책에 그치고 있고, 노동시간 단축은 근로조건이 유지되면서 실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일자리도 늘어나는 형태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인원동결, 실노동시간 유지 속에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비정규직화가 확산될 가능성마저 예상되고 있다. 그야말로 누더기 시간단축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궤도부문을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 및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투쟁은 정권과 자본의 이러한 누더기 시간단축을 분쇄하고 노동권이 보장되고 일자리를 늘리는, 그래서 실업의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젊은 실업자들에게 다소나마 희망을 주는 노동시간단축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현재의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다 풀 수는 없을 것이다. 고용문제의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 정부 및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와 초국적 자본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그리고 이 체제를 유지하고, 확대하고, 공고화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다양한 전쟁들과 무력시위에 대한 반대운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1) 이 글은 공공연맹, 일자리창출 토론회 (2004.7.13/14)에서 발표되었습니다.


2) 2004년 들어서 외국인의 주식투자는 더욱 왕성해지고 있는데 이로 인해 4월 말 현재 외국인 보유주식 비중은 시가기준으로 43%가 되었고 금액은 약 165조원으로 전년에 비해 약 23조원이 늘어났다. 외국인은 올해 4월말까지 약 11조원 정도 추가투자를 통해 평가액이 전년에 비해 약 23조 가량이 늘었으니까 단순 계산으로 올해 들어서만 약 12조 정도의 평가이익을 얻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금융감독원, ‘2004. 4월 중 외국인 투자현황’, 2004년, 5월 12일 참조.


3) 증권거래소, ‘종목별 외국인지분률 사상 최고 현황 조사’, 2004년 1월 20일 참조.


4) 중앙일보 인터넷판 2004년 4월 12일자 참조.


5)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의 지분율 확대는 정부의 공기업 해외매각이 주요한 배경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증권거래소 통계를 보면, 정부 및 정부관리기업의 상장사 지분율은 1998년 말 19.72%에서 2002년 말 5.66%로 급감했다. 『한겨레21』2003년 9월 24일 제477호


6) 한편 정부는 『공공개혁백서』(2003)에서 이렇게 사유화한 기업에서 구조조정을 활발히 하여 순이익이 늘고 시가총액도 증가하였다고 선전을 하면서 포스코의 사례를 들고 있다. 포스코의 시가총액이 2000년 10월 4일 7조 6,606억원에서 2002년 7월 16일 12조 3,537억원이 되어 구조조정의 성과가 매우 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익의 2/3 가량은 지분에 비례하여 초국적 금융자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계적인 경제관련 미디어인 불룸버그통신이 지난 대선에서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를 계승한 노무현을 지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확히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 행동이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의 가속화는 노동자 민중을 위한 길도, 한국경제를 위한 길도 아니다. 단기적으로도 아니고 중장기적으로도 아니다. 언필칭 ‘신자유주의 개혁’을 주도하고 있고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집단은 정확히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옹호하고 있다고 하겠다.


7) 한국은행, ‘외국자본의 은행산업 진입영향 및 정책적 시사점’, 2003년 12월 19일


8) 초국적 자본은 이런 이익에 기초하여 막대한 배당을 해가고 있고, 주식시장에서만 98년부터 2003년까지 약 90조원의 평가이익을 얻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비상장 기업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9) 이 장은 나상윤 공공연맹 정책실장의 글, “심각한 실업문제의 해결은 공공부문 인력충원과 고용창출에서 출발해야 한다 - 공공부문에서 고용창출은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 ”에서 본인의 허락 하에 전재하였음을 밝혀둔다.


10) 주 5일/주 40시간 노동제는 미국에서는 약 70년 전에, 여타 선진국에서는 벌써 몇 십년 전에 도입되었다. 미국에서는 대공황 뒤 주당 30시간 노동제 운동이 일어났었고 프랑스에서는 최근 35시간제가 도입되었다. 케인스는 1930년에 1백년 뒤, 즉 2030년경에 주 3일/주 15시간 노동제를 예상한 바 있다.


11) 주야 맞교대 연장 특근이 일반적인 대기업 제조업체에서 인력은 거의 충원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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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노동과 빈곤에 맞선 연대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종훈> [민대 2004 7/8 확대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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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사무국장)



최저임금 결정이후, 더욱더 고삐를 잡아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근로빈곤층이라고 불리는 가난한 노동자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불안정노동의 시대에 더욱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적용되는 최저임금수준은 이미 결정이 되었더라도 빈곤이라는 문제가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문제로 일상적으로 다가온 이상 이제 특정한 노동자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2003년 남한의 빈곤규모가 750만에 이른다는 정부 통계도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만 명이 넘었다는 조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통계가 말해주 듯, 정부기관과 언론들은 남한의 빈곤상태가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사회갈등을 부추긴다는 투로 걱정하면서도, 저임금과 빈곤문제의 책임을 결국 개인의 무능력으로 돌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불안정노동과 빈곤의 일상화가 구조화된 현재,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최저임금 근저에 머물고 있거나 그 이하선에 있는 저임금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점점 더 분명해 지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된 최저임금은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적용된다.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계는 요구안을 제출하고 이를 압박하기 위해 여러 시민단체들과 이를 공동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비록, 여론의 홀대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과 여성 등 최저임금과 직접 관련된 주체들이 상반기 내내 투쟁을 조직화하였으며, 올해는 한시적이고 동원의 성격이 컸지만 조직된 노동자들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우리가 올해 최저임금현실화투쟁에 주목하고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동안 노동운동진영이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을 규합하거나 또는 독자적인 여론전에 몰두해 왔던 것에서 벗어나, 최저임금의 대상이 되는 주요 주체들이 모여 지속적인 투쟁을 조직하고 실질적인 요구를 진행하게 되었다는 점만은 아니다. 비록 6월 25일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당일, 교섭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이것만으로 이번 투쟁을 재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보다도 더 핵심적인 것은 노동유연화 시대,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최저임금제의 현실화를 위한 투쟁이 갖는 또 다른 의미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불안정노동과 빈곤의 문제가 전체 노동자민중의 문제라면, 노동자운동은 이제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상반기 혹은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6월 한 달을 넘어서는 계획과 실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안정노동-빈곤의 시대, 2004년 상반기최저임금투쟁을 돌아본다?


(1) 조금씩 노동자운동의 연대를 확장해온 최저임금현실화투쟁


민주노총은 합법화가 된 이후 2000년부터 최저임금위원회에 참가했다.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최저임금적용에서 제외되고 있었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시작되었다. 2002년에는 지하철 청소용역노동자와 전북지역에서 올라온 환경미화노동자를 중심으로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농성투쟁이 있었다. 이때 최저임금현실화투쟁을 전개하였던 노동자들은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많은 노동자들의 연대가 실현되지 못했지만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의 중요성을 알린 선도적인 투쟁이었다. 그리고 2003년에는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이 한 단계 상승하는 해 이기도 하였다. 다만 최저임금심의위원 사퇴를 두고 ‘저임금노동자에게는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었는가’ 또는 ‘최저임금투쟁의 상승을 위한 결단이었다’는 등의 상반된 평가가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2003년도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최저임금 결정방식과 제도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사회적으로 폭로하고, 운동 내적으로는 최저임금현실화투쟁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의 확산과 연대가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한해이기도 하였다. 2004년 최저임금투쟁은 그 연장선에 있었다.

올해는 최저임금투쟁이 양적이나 내용적으로 상승한 한 해였다.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각 산별노조는 올해 임단투의 주요내용으로 산별최저임금을 요구하였다. 산별최저임금협약을 쟁취한 금속노조의 경우 금속사업장내의 이주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내용을 이루어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직된 노동자의 힘으로 최저임금현실화 쟁취하자'라는 슬로건 하에 진행된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앞 아침집회에 결합 한 투쟁사업장은 비록 투쟁과정에서 한두 번의 결합이지만, 최저임금투쟁의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비록 많은 단위노조나 산별연맹에서는 최저임금현실화의 요구를 내세우고 있지 않지만, 현재의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분절화를 극복할 수 있는 주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만큼 확산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투쟁은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이 하는 것이고, 시혜적이며 동정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집회동원이나 제도개선의 내실화뿐만 아니라 조합원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총연맹과 각 연맹의 비상한 노력 또한 요구된다.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저임금노동자를 생존권을 쟁취하는 의미와 노동자내부의 격차를 해소한다는 의미도 존재한다. 노동자내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체노동자들의 조직적인 결합이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최저임금 투쟁은 최저임금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나 그 이하로 받는 노동자의 투쟁만으로는 극복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한 부분이다. 노동자운동의 연대성의 회복이란 측면에서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지속적으로 기획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노동유연화 분쇄, 불안정노동철폐로의 최저임금현실화투쟁의 의미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연대성의 회복과 더불어 노동유연화와 빈곤에 맞서는 주체를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상반기 최저임금농성투쟁이 들어가기 전에 진행된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공동투쟁’은 비록 노동자민중의 광범위한 참여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기간 불안정노동자들의 연대를 이어나가고 상승시키기 위한 계획이었다. 올해도 장애인 이동권․교육권 투쟁은 계속되고,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쟁취를 위한 농성투쟁이 해를 넘어 계속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또한 비정규노조를 중심으로 각각 전개되고 있지만, 이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쟁취를 위해 사업장들을 기계적으로 한 데 묶을 수 없는 노릇이다. 최저임금․최저생계비현실화 투쟁은 각각의 사업장과 지역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공동으로 내걸고 공동투쟁을 조직화하는 유력한 매개가 될 것이다.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투쟁이 저임금 노동자와 최저생계비이하로 생활하는 빈민들의 투쟁만으로 국한되지 않는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라는 주장에 대해 이를 임금인상 투쟁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현실화하자는 주장은 단순히 최저임금 인상률을 두 자리로 유지하자는 것을 훨씬 초과하는 의미를 가진다. 만약 그 의미가 두 자릿수 인상에 그친다면 물가인상률을 훨씬 상회하는 생계비 인상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이 자본의 숫자놀음에 농락 당할 수 있다. 현실이 증명하듯 매년 최저임금을 상향조정하고 그것이 심지어 물가인상률을 초과한다고 하더라도 저소득층 노동자는 의료보험료, 교육비, 주거비 등 높은 생계비 지출에 따라 빚에 떠밀려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자본이 왜 이러한 전략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데 있다. 경제위기 극복방식으로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적정(3~4%) 물가상승률을 유지하는 선에서 경기를 부양한다. 국가와 자본이 제한적인 수준에서 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만들기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 민중은 항상적인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 낮은 임금의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낮은 임금의 유지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치로 인식되고 있다. 즉,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이자율을 조정하며 임금의 인상폭을 지속적으로 낮춘다. 그리고 저임금 노동자들이 비정규, 하청, 용역업체와 숙박․음식․서비스업 등 보다 유연적인 노동시장에 참여하도록 강제한다. 뿐만 아니라 자본은 소매금융시장을 자본의 수익원으로, 개발․공격적인 사업대상으로 삼아 노동자 개인이 지출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켜왔다. 그 결과 실질임금은 꾸준히 상승하였고 경제상황도 다시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노동자 민중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는 것이다.


(3) 최저임금위원회의 객관적인 한계는 인식해야


때문에 최저임금의 현실화 과정은 기본적으로 최저임금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협약을 통해서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인상률로 제한된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라는 것은 그 자체로 주먹구구식의 산출방법을 지니게 되며, 책임소지도 모호하게 만든다. 사실상 이러한 생계비를 최저임금을 통해서 보전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 보면, 자본에게도 국가에게도 그 책임은 돌려지지 않게 된다. 사회적 임금을 국가가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 중소영세자본이 보장해 주어야 하는지도 애매한 상황을 자초하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구조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현재의 최저임금제와 최저임금위원회를 매개로 한 최저임금의 현실화 투쟁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객관적인 한계는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은 임금인상 투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서,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는 투쟁으로서 자리매김 될 때만이 그 의미가 분명해 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최저임금의 현실화는 실제 신자유주의 공세로 인해 야기된 불안정노동을 철폐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은 최저생계비의 현실화와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가 포함되어야 하며, 동시에 비정규직, 이주, 여성, 장애, 실업 등 불안정 노동자들의 투쟁과 적극적으로 연대한 가운데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불황이 구조화된 시대, 노동이 유연화 된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 민중은 스스로 단결하여 투쟁하지 못하면 경제상황과 시대상황의 볼모로 희생을 감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합의된 최저임금 제도개선위원회는 선언적 의미의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최저임금위원회 안에 제도개선전문위원회가 설치돼 7월 2일부터 △최저임금 수준을 전체 노동자 임금의 1/2로 법제화 △공익위원을 노사단체가 추천 △택시노동자, 감시․단속적 노동자 등 최저임금 적용대상 확대여부 △최저임금 적용시기를 현행 9-8월에서 1-12월로 교체 등 제도개선 사안을 다룰 예정이지만, 정부의 유력한 정책공급처인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제출한 ‘최저임금 제도개선’안을 보면 대부분이 현행유지를 선호하고 있어 그 실효성 또한 의심이 가는 상황이다.


최저임금․최저생계비현실화를 위한 정권과 자본과의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지 15년이 흘렀다. 최저임금제도는 ‘국가가 노사간의 임금결정과정에 개입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함으로서, 저임금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제도는 매년 갱신되는 최저임금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전 사업장 노동자 평균 임금의 1/3수준이어서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국가의 약속은 자본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으로 변해버린 상황이다. 최저생계비의 기준이 되는 기초법제도 역시 구조조정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자민중의 삶의 파탄을 치유한기는커녕,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을 정당화하기 위한 보완물로 실재하고 있다.

'최저생계를 보장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라' , '모든 사회구성원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라'. 이것은 이번 투쟁을 하는 해당주체들의 소박하지만 정말 처절한 요구이다. 동시에 이러한 요구가 전체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 요구로 대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 투쟁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개별임금인상 투쟁의 한계를 극복케 하는 공동의 논의와 토론, 그리고 연대의 확대를 도모하는 가운데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저항주체를 형성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첫째,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 투쟁에 대한 단위사업장과 노동자대중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다. 아직 노동자운동진영에서조차 최저임금투쟁은 자신과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상당하고, 최저생계비의 개념조차 생소한 노동자들과 빈민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투쟁에 연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의 인식을 확장해 나가기 위한 교육이 필수적일 것이다. 둘째, 단위사업장과 산별연맹(노조), 지역을 망라한 공동투쟁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는 연대성의 약화와 주계급주체형성이 난망해졌음을 뜻하는 것일 게이다.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 투쟁을 중심으로 노동자내부의 격차와 위계화를 지양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점증하는 구조적 위기와 불황의 시대, 노동자민중의 수탈을 아예 제도화하려는 획책이 정권의 각종 로드맵을 통해 난무하고 있는 지금, 불안정노동-빈곤에 맞선 연대투쟁의 대상과 폭은 더욱 크게 열려있다. 올해의 최저임금제현실화 투쟁은 비록 한시적이고 제한된 주체의 투쟁이었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이 한판 싸움의 커다란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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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위법성을 밝힌다. <고영대> [민대 2004 7/8 정세초점 3]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위법성을 밝힌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제3조)와

발동 요건(제2조)에 근거하여-1)







고영대 (평통사 연구위원)



냉전 종결 직후부터 미국이 추진해 온 주한미군의 이른바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이 최근 들어 한미 양국에 의해 기정사실로 굳혀지고 있다. 주한미군이 대한민국의 방위를 넘어서서 동북아 지역으로 작전 반경을 넓히게 되면 동북아 지역은 무한대의 군사적 대결과 군비경쟁, 준전시와 다를 바 없는 항상적인 전쟁위협에 놓이게 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민족 통일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난관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이와 같은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은 그 적용 범위를 대한민국 영토로 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 또 그 발동 요건을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이 있을 경우로 한정한 제2조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그런데도 최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의도적으로 혹은 무지에서,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 해석하여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 마치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법적 근거를 갖는 것인 양 국민을 오도하고 주한미군과 한국 정부의 반국가적, 반민족적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이를 막으려는 투쟁에는 재갈을 물리게 되는 일부 논자들의 무책임한 주장이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방치한다면 작금의 한미동맹 전환 과정에서 우리는 주동성을 상실하고 한미동맹의 퇴행적 결과를 무기력하게 지켜보고만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 조문 자체를 따져볼 필요도 없이 몇 가지 정황만 가지고도 우리는 주한미군의 동북아 기동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불법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만약 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이미 동북아나 태평양 지역으로 되어 있다면 지금 미국 측이 새삼스럽게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들고 나올 필요가 없으며, 한국 정부의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한 동북아나 태평양 지역에서의 한국군의 작전도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의무로 되며, 이를 막으려는 한국 당국의 의도가 오히려 불법적인 것으로 되고 만다. 그런데도 한미 당국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구태여 어려운 공론화 과정을 밟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 불법성의 근거를 조약과 관련 문서를 토대로 밝혀 보자.


1. 본 조약 및 관련 문서상의 규정


1) 본 조약의 규정


① 조약의 적용범위는 각 당사국의 영토로 한정되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은 제3조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그 적용 범위와 관련하여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 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 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행정 지배 하에 있는 영토”란 북한 지역을 제외한 남한만의 영토를 의미한다. 또한 “행정 지배 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가 의미하는 바는 당시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정권이 무력공격으로, 곧 불법적으로 북한 또는 그 일부 지역을 점령했을 때 미국이 이를 인정해 주지 않는 한 이 지역 역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지역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이는 대한민국 밖의 무력 충돌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는 명백히 대한민국의 영토 내로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미국에 대해 적용할 경우 그 적용 범위를 어디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에 대한 많은 논자들의 혼란과 확대 해석도 상당 부분 여기서 비롯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를 미국에 적용할 경우 그 적용 범위는 미국 본토와 태평양 상의 미국 영토, 곧 하와이나 오키나와(73년 일본에 반환되기 전), 괌 등이 해당된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 본토나 태평양 상의 미국의 행정 지배 하에 있는 영토로 국한될 뿐, 미국의 행정 지배 하에 있지 않는 동북아시아나 태평양, 그 밖의 다른 지역은 결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일부 논자들은 태평양 상의 미국의 영토를 태평양 지역 전체로 확대 적용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마치 태평양 지역인 양 부당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②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남한 영역에 대한 미국의 방위만을 의무화 하고 있다


그런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2)도 있다. 이 견해에 의거하게 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에 당연히 미국 본토와 태평양 상의 미국의 영토는 포함되지 않는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는 본 조약의 체결 배경 및 당시 대한민국의 조건과 능력, 그리고 양국 간의 관계에 근거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과정에서 발생한 마찰과 갈등 때문에 이승만 정권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웠을 만큼 미국은 조약의 체결을 반대하였다.

또 조약 체결 당시 북한에 중국인민지원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점, 휴전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는 이승만이 공공연하게 북진무력공격을 내세우는 등 전쟁 상태와 다를 바 없었던 점, 미국의 원조 없이는 군대조차 유지할 수 없는 당시 남한의 조건 등을 생각한다면 미국에 대한 방위가 남한의 과제나 의무가 될 수는 없었다.

더욱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의 “행정 지배 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라는 규정은 미국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에 적용하기 위해서 도입된 표현으로 봐야한다. 당시나 지금이나 한미관계를 고려할 때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에 따라 향후 미국의 행정 지배 하에 들어오게 될 영토에 대해서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권한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형식적으로는 쌍무조약적 성격을 지니나 내용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방위 의무를 규정한 편무조약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만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편무적 성격이 아니라면 주한미군에 대한 전 국토 무상 공여와 일방적, 배타적 주병권을 허용한 4조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편무조약의 예로는 1951년 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구 일미안보조약을 들 수 있다. 미국에 의해 무장해제된 일본은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질 능력이 없었다. 이에 구 일미안보조약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동일하게 제1조3)에서 주일미군에 대한 전 국토 무상 공여와 일방적, 배타적 주병권을 허용하였다.

1960년의 신 일미안보조약 역시 편무조약이다. 당시 일본은 자위대4)라는 무장력은 갖췄으나, 집단자위권을 부정한 평화헌법 규정상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질 수 없었기 때문에, 비록 쌍무조약적 형식을 띠었으나 사실상 편무조약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신 일미안보조약이 그 적용 범위를 제5조에서 “일본국의 시정 하에 있는 영역”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서 명확히 확인된다.

그런데 신 일미안보조약은 제4조에서 “일본 또는 극동의 국제평화와 안전에 위협이 발생할 경우 어느 일방의 체약국의 요청에 따라 언제든지 협의한다”고 하여 제6조5)에서 규정한 주일미군의 주둔 목적과 역할을 일본이 뒷받침하고 협조하도록 함으로써 조약이 쌍무적 성격을 갖도록 보완하고 있다.

또한 신 일미안보조약은 구 일미안보조약이 보장한 주일미군에 대한 전 국토 무상 공여 및 일방적, 배타적 주병권을 부분적으로 부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신 일미안보조약은 공여될 시설과 구역을 하위 협정에서 규율하기로 하는 한편 임대방식을 도입하였으며, 후일 비록 허울뿐인 것으로 입증되었지만, 주일미군의 일방적 주병권을 제약할 수 있는 ‘조약 제6조의 실시에 관한 교환공문’도 교환하였다.

이와 같이 구, 신 일미안보조약과 비교해 볼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편무조약적 성격은 더욱 뚜렷이 부각되며, 이에 따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도 미국의 영토가 아닌 대한민국 영토로 한정된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편무조약이 아닌 명실상부한 쌍무조약으로서, 한국이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적용 범위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태평양 상의 미국 영토로 국한될 뿐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될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하다.


2) 조약 관련 문서상의 규정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당시 한미 양국은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체결 직전까지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곧 적용 범위를 남한으로 국한시키려는 미국과 이를 한반도로 확대하려는 이승만 정권이 막판까지 충돌한 것이다. 결국 미국의 의지가 관철되었는데, 조약 관련 문건과 체결 과정에서의 몇몇 사례를 보더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남한으로 국한시키려는 당시 미 행정부와 국회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먼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함께 체결된 미국 측 양해사항(교환의정서)은 “미국은 위 조약 3조에 의거하여 일방국이 외부로부터 무장된 공격을 받을 경우를 제외하고 타방국을 원조할 의무가 없으며 또한 현 조약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행정 지배 하에 합법적으로 인도될 것으로서 미국이 시인한 영토에 대하여 공격을 받았을 경우를 제외하고 한국에 대하여 미국이 원조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하한 것도 있을 수 없다”고 하여 남북 무력충돌 결과 남한 영토로 된 지역이라고 할지라도 미국이 인정해 주지 않는 한 적용 범위가 될 수 없는 것으로, 조약 3조를 보다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반면 이승만 정권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초안에 “한국의 영토로부터 중공 침략자들을 몰아내는 권리를 포함하여 한국의 내정문제에 관해 완전한 주권을 가지고 있음에 동의한다”6)라는 구절을 반영시키고자 하였으나 미국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당시 이승만 정권의 무력공격을 막기 위한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북을 상대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당시 북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인민지원군과 나아가 소련, 곧 동북아 지역에서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과정에서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양국 간의 심각한 대립과 갈등은 어디까지나 북한 지역을 적용 범위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핵심 쟁점으로 하였으며 한반도를 넘어서서 동북아나 태평양을 적용 지역으로 고려할 처지나 조건,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대한민국 영토로 한정되어 있다는 견해, 곧 동북아나 태평양 지역이 적용 범위가 아니라는 견해는 보수적 연구자들에 의해서 이미 주장되어 온 것으로, 결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90년대 초의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에 대비하여 정부에 대한 정책 건의를 목적으로 작성된 한 연구7)는 현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8)를 “한국의 안전과 극동에서의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기여하기 위하여 미합중국은 그의 육․해․공군의 병력의 한국 내 시설 및 구역의 사용권을 허여 받는다”로 개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과 역할 및 책임이 명시되어 있지 않는 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안된 것이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동북아나 태평양 지역이 아니라는 인식에 토대하여 나온 주장이다.

또한 한 연구자9)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대한민국 영토와 미국 본토 및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미국의 관할 하에 있는 영토로 보고 있다.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신 일미안보조약 제4조와 달리 ‘극동지역’의 문제가 협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대한민국이 극동지역의 방위에서 고립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협의 대상에 극동지역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 역시 극동지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상의 적용 범위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3) 현 한국 정부의 입장―적용 범위를 대한민국 영토로 한정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에 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대한민국의 영토’로 한정하는 입장이다. 지난 해 10월 초의 제5차 ‘한미미래동맹정책구상회의’를 앞두고 양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대립하였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3조의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공격”을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의 근거로 들었고, 한국은 외통부 조약국의 논리에 따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허용하는 근거가 없다고 맞섰다고 한다(중앙일보, 2004. 1. 27). 그러나 한국은 결국 법리를 무시하고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허용하는 정치적 합의를 해주었다.

최근 주한미군의 감축이 공론화된 후 반기문 장관 등 외통부 관료들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임을 재확인하면서 그 적용 범위에 대해 ‘대한민국 영토’로 다시 한 번 선을 긋고 있다.


4) 조약의 전문 및 2조10), 3조에서 표현된 ‘태평양 지역’ 또는 ‘외부로부터’의 용어가 갖는 의미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태평양’이란 용어를 들어 적용 범위를 태평양 지역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내 일부 논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조약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검토 없이 피상적이고 자구에 매달린 주장일 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문에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평화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당사국 중 어느 일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있어서 고립되어 있다는 환각을 어떤 잠재적 침략자도 가지지 않도록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대하여 그들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태평양 지역에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조직이 발달될 때까지…” 등의 표현이 나온다.

조약의 전문은 일반적으로 조약 체결의 목적과 지향 등을 담고 있다. 전문의 ‘태평양’이라는 용어는 “평화기구를 공고히” 한다든지 ‘공동으로 방위한다’든지, ‘태평양 지역의 안전보장조직을 건설한다’는 등의 조약 체결의 포괄적인 목적과 지향을 담기 위해서 사용된 일반적 표현이지 적용범위를 특정하기 위해서 쓰인 것이 아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문이 그에 앞서 체결된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 전문에서 거의 그대로 따왔다는 사실도 전문의 ‘태평양’이라는 표현이 적용범위가 아니라 조약의 목적을 나타내기 쓰인 표현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전문의 ‘태평양’이라는 용어는 각 조약에 고유한 적용 범위를 나타내는 용어가 아니다.

한편 제2조에는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험을 받고 있다고…”고 규정되어 있는데, 여기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이란 표현 역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발동 요건과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2조의 내용에 따라 조약 발동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는 용어로, 적용 범위를 규정한 표현이 아니다. 이 규정은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출동, 작전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3조의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라는 표현도 2조의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과 마찬가지로 조약의 적용 범위가 아니라 발동 요건에 해당한다.


2. 실천적 대응 방안 모색


1)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불법성 및 파괴적 후과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실천적 대응의 중요성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이 가져오게 될 국가적, 민족적 위기와 후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앞서 지적하였다. 북한은 물론 중국도 이미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며, 대만의 독립 움직임과 대중 선제공격작전 수립에 따른 양안관계의 긴장 고조는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과 나아가 보다 포괄적인 한미동맹의 전환은 아직 그 출발점에 서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한미동맹의 전환이 민족의 자주와 통일에 기여하는 전향적인 방향으로 귀결될 것인지, 아니면 만성적인 동북아 군비경쟁과 전쟁 위협 및 외세의 개입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맡기는 퇴행적인 방향으로 귀결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시민사회운동단체, 특히 민족민주운동세력에게 달려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와 이에 근거한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불법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을 저지하고, 이를 계기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면 개폐 투쟁을 열어 나가기 위한 투쟁의 출발점이자 한 고리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2)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주한미군 입․출입’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의 한계와 문제점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감축이 공론화되면서 대응 방안의 하나로 주한미군의 입출입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저지하고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군축으로 귀결되는 주한미군의 감축을 촉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무엇보다도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사실상 기정사실화 해주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주한미군 입출입’ 규정이 갖게 될 허구성은 일본의 사례를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일미 양국은 신 일미안보조약을 체결하면서 주일미군의 배치와 장비 등의 주요 변경 사항을 사전 협의하도록 하는 ‘조약 제6조의 실시에 관한 교환공문’을 체결하였다. 이는 구 일미안보조약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마찬가지로 주일미군에 대한 일방적인 주병권을 허용한 데 따른 문제점11)을 극복해 보고자 하는 일본의 의중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는 지금까지 무용지물이나 다를 바 없다.

신 일미안보조약은 6조에서 주일미군의 역할을 극동지역으로 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일미군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일본에서 발진한 미군 전투기를 베트남전과 걸프전에 참전시켰으며, 일본 정부는 이를 용인하였다. 주일미군의 역할을 극동 지역을 넘어 확대시키려는 미국과 일본 당국의 정치적, 군사전략적 의지 앞에 신 일미안보조약이나 관련 ‘교환공문’은 아무런 제동장치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였다.

사전협의 자체가 지닌 한계도 ‘교환공문’을 사장시킨 한 원인으로 되었다.

‘교환공문’을 이행하기 위해 일미 양국이 사전협의 하기로 한 사항은 병력 배치의 중요한 변경, 장비의 중요한 변경, 극동지역에서의 작전을 위한 일본 기지의 사용 3개 항목이다. 또한 병력 배치에 대해서는 육군 1개 사단 정도, 육군에 상응하는 공군, 1 기동부대 규모의 해군 병력을, 장비 변경에 대해서는 핵탄두 및 중․장거리 미사일의 반입 및 기지 건설을, 극동지역에서의 작전을 위한 일본 기지의 사용에 대해서는 전투작전행동만을 사전협의 대상으로 하기로 양국 간에 양해하였다.

그러나 ‘교환공문’과 양해사항은 공문구12)가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세부적인 규정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규정이 현실과 동떨어진 의미가 없는 것이거나 편법을 이용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해 줌으로써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 기동부대 규모의 해군 병력이란 미 7함대 정도의 규모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보다도 규모가 작은 주일미군은 사전협의 대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전혀 의미가 없다. 핵무기 반입과 관련해서도 항공모함이나 원자력 잠수함, 전략폭격기와 같은 핵․비핵 겸용 무기체계에 대해서는 핵무기 장착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사전협의 대상이 되지 않아 미국으로서는 일본과 사전 협의 없이도 이들 장비를 통한 핵무기 반입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심지어 핵무기를 장착했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기항하는 경우는 사전협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나아가 극동지역에서의 작전을 위해 일본 기지를 사용하는 경우 사전협의의 허구성과 기만성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우선 전투작전행동만 사전협의 한다는 것은 이동, 기항, 정찰, 정보, 경계, 보급 등의 작전행동은 사전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전투작전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전투작전명령이 일본의 영해나 영공에서 발령되지 않는 한 사전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때 엔터프라이스 항공모함과 전투기들이 일본 기지에서 발진하여 각각 북한과 남한으로 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영공과 영해를 벗어나 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는 이유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

주한미군 역할 변경 및 감축과 관련하여 뒤늦게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입출입 규정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은 일본의 40년에 걸친 사전협의제의 운용 결과를 볼 때 아무런 실효성 없는 방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하다. 그런데도 이것을 마치 대안인 양 주장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그것은 현 정부가 일본보다 나은 사전협의제를 미국에 관철시킬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설령 사전협의제를 관철시킨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상징적인 수준 이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지 않는 한 사전협의제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와 4조는 주한미군의 병력과 장비의 배치와 이동 등에 관해 전권, 곧 주한미군의 일방적 주둔권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입출입 규정을 마련한다고 해도 모법의 효력을 정지시키지 않는 한 공문구가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진실로 주한미군의 입출입을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사전협의제가 아닌 ‘사전동의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주한미군이 철수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도 신 일미안보조약 체결 당시 미국에 사전동의제를 요구하였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이렇듯 주한미군에 대한 입출입 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감축, 그리고 한미동맹의 전환기에 대한 결코 올바른 대처 방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이는 주한미군의 감축을 막거나 늦춰보려는 친미수구세력의 의도를 결과적으로 대변해 주는 주장으로 될 우려가 크다.




3)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의 법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한미 당국의 새로운 공동선언 채택 또는 하위 법체계를 통한 우회 전술 가능성


한미 당국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의 불법성을 피해 나가기 위해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거나 하위 법체계로 이를 보완하거나 또는 일본과 같이 새로운 공동안보선언을 체결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현재까지 한미 양국에서 나온 공식, 비공식 주장을 보면 한국은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유지하되 하위 법체계를 통해 보완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며, 주한미군 측에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한편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이미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되어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한편 한국 정부는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한미공동안보선언’의 채택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어느 방향이 될지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비교적 손쉬운 하위 법체계의 정비나 새로운 공동안보선언의 채택을 통한 보완에 나서려고 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폐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과는 국민 자주의식의 성장과 운동의 고양, 그리고 남북관계의 진전 정도에 따라 그 향배가 가름될 것이다.

법 규정보다는 국민 의식 수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일본의 사례가 다시 한 번 말해준다. 60년 대 초 안보투쟁이 실패(63년 ‘안보공투’ 해체)로 돌아가자 미국은 극동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는 신 일미안보조약의 적용 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일공군을 베트남으로 출격시켰다. 나아가 주일미군은 태평양 지역을 뛰어 넘어 걸프전까지 참전하였다. 그런데도 일미안보조약의 개정이나 법적 보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미 양국이 이를 보완한 것은 신 일미안보조약이 체결된 지 36년이나 지난 1996년에야 이루어졌다. 그것도 냉전 해체라는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이완 또는 해체시킬 것을 우려한 미국이 적극적으로 일본을 설득하여 ‘일미안보공동선언’을 체결한 것이다. ‘일미공동안보선언’을 통해 일미 양국은 신 일미안보조약의 적용 범위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함으로써 극동 지역을 벗어난 주일미군의 작전 범위를 법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이렇듯 일본은 안보투쟁의 패배 이후 사회운동이 약화되어 가면서 일미안보조약마저 지켜내지 못한 채 일미 양 당국의 자의적인 법 운용을 허용하였으며, 결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일 공동의 군사적 패권 추구를 뒷받침해 주는 퇴행적인 방향에서 신 일미안보조약을 개악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밝힌 대로 한미 당국은 현 한미 관련 법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하위법을 통해 상위법을 보완하는(?)―실제로는 위배하는―방식을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동북아, 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는 이미 무너져 있는 한미관계 법체계를 더욱 엉망으로 만듦으로써 중․장기적으로 더 많은 문제점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주한미군의 역할이 지역군으로 전환되면 대한민국 방위만을 전제로 하여 ‘전 국토 무상 공여’ 원칙과 일방적 주병권을 적용한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는 더 이상 성립될 수 없으며, 개정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이를 덮어두고 하위 법체계를 통해서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허용하는 불법적 상태와 반국가적 폐해를 지탱해 나가기에는 한국 정부로서도 감내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될 것이다.

또한 신법으로 구법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대체하려는 ‘한미공동안보선언’의 방식 역시 이것이 조약의 본질적 성격을 개정하는 ‘의정서’로서의 위상을 갖기 때문에 채택 또는 비준 전에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따라서 국회 심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어 한미 양국이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그렇지 않고 만약 ‘한미공동안보선언’이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신사협정으로 채택된다면 이 선언보다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규정력을 갖게 되므로 선언의 의미는 훨씬 감소된다. 이렇게 볼 때 한미 당국은 중장기적으로는 필연적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할 수밖에 없다.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한 민족적 동력, 일본에 앞서는 시민사회운동단체의 투쟁력 등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악을 저지하는데 유리한 조건이나 국민들이 여전히 안보이데올로기공세에 갇혀 있고 시민사회운동단체의 힘이 당국과 친미수구세력의 힘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이에 민족민주진영은 중장기적인 계획 하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전면 개폐 투쟁에 주도면밀하게 전력투구해 나감으로써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드리울 암운을 거둬내고 반드시 굴욕적인 한미동맹의 질긴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1) 이 글은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보 <평화누리 통일누리, 2004.7>에 기재되었음을 알립니다.


2) 백봉종, ‘한미방위조약과 미일안보조약’, 1985, p 10. 그러나 백봉종은 이 글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에 대해 방위 의무를 갖지 않는 근거를 충분히 밝히지 않고 있다.


3) 구 일미안보조약 제1조 : “평화조약 및 이 조약의 효력 발생과 동시에 미합중국의 육군, 공군 및 해군을 일본국내 및 그 부근에 배비할 권리를 일본국은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이 군대는 극동에 있어서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기여하고 더불어 하나 또는 둘 이상의 외부 국가에 의한 교사 또는 간섭에 의하여 발생한 대규모의 내란 및 소요를 진압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명시적인 요청에 따라 주어지는 원조를 포함하여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대한 일본국의 안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4) 일본의 자위대는 1954년 7월 1일에 창설되었다.


5) 신 일미안보조약 제6조 : “일본의 안전과 극동의 국제평화 및 안전의 유지에 기여하기 위하여 미합중국은 그의 육군, 공군 및 해군에 의한 일본 국내의 시설 및 구역의 사용권을 허여 받는다. 전기한 시설 및 구역의 사용과 일본 국내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는 1952년 2월 28일 동경에서 서명된 미합중국과 일본국간 안전보장조약 제3조에 근거한 행정협정에 대신하는 별도의 협정에 의하여 규율된다.


6) 정준호 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국제법적 비교 분석’ 1990.3. p. 26~27


7) 정준호 외, 전게논문, p 64.


8)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 : “상호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비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9) 김명기,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보완에 관한 연구, 2003, 6, p 15~17.


10)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 : “당사국 중 어느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정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적으로나…”


11) 구 일미안보조약에 따라 주일미군은 일본 정부와의 협의나 동의 없이 병력과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장비를 임의로 배치할 수 있었으며, 타 지역으로 제멋대로 출동할 수 있었다.


12) 多田 實, 일미안보조약, 1982. 8, 동경, p 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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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추가파병과 그 후 <최승원> [민대 2004 7/8 정세초점 2]



노무현 정권의 추가파병과 그 후







최승원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연구원)



노무현 정권은 군수물자를 실은 선박의 출항을 시작으로 이라크 민중 학살전쟁에 피를 묻히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곧이어 자이툰 부대 선발대가 이라크로 떠날 것이다. 7월말 현재까지 선박출항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군사작전이라도 하듯 출항일시를 비밀에 부치고 구축함을 동원하여 호위해야만 하는 현실은 고 김선일씨의 죽음 이후 현실화된 테러의 가능성에 대한 침략자의 공포감을 반영한다 하겠다. 지난 7월 24일에는 파병철회 집회 대오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등 노무현 정권은 폭력으로 파병철회 요구를 짓밟는 만행까지 자행하였다. 이라크파병 결사저지 각계대표 10만 릴레이단식농성으로 파병철회 투쟁도 막바지에 다다른 현재, 노무현 정권의 추가파병 결정과정과 파병이후에 발생할 제반 문제점을 짚어보기로 하겠다.


부시정권의 더러운 침략전쟁, 이라크 침공


김선일씨의 죽음을 전후하여 노무현 정권이 서둘러 추가파병을 강행한 최근 한 달여 기간은 이미 확인되었던 이라크전쟁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대중적으로 재차 확인된 기간이었다. 또한 어느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라크전쟁의 성격이 명백해진 상황이었기에 파병찬반논란 속에서 각종 정파들의 진솔하기까지 한 내면이 말끔히 드러났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지지자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또한 더러운 전쟁에 휘말리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고 김선일씨의 죽음을 통해 충분히 경고해준 기간이기도 했다.

미 상원의회 내 9.11테러진상조사위원회는 알 카에다와 후세인 정권이 관련되어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결론을 내놓은 바 있으며 이라크 침공의 또 다른 명분이었던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역시 정보조작임이 밝혀진 상태이다. 스페인의 경우 철군 이유의 하나로 정보조작을 들었고 덴마크 국방부 장관은 정보조작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도 하였다.

한국은 이미 서희, 제마 부대병력 규모만으로도 파병국 가운데 현재 8번째로 이라크에 많은 병력을 보낸 상태이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이 부시의 석유자원을 위한 더러운 침략전쟁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 마당에서도 노무현 정권은 추가파병을, 그것도 가장 많은 3000명의 대량 규모로, 또한 아직 추가파병을 실제 시행한 나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서둘러서 강행하였다. 노무현 정권은 전후 이라크의 재건과 평화정착 지원을 위한 것이며 전쟁참여는 아니라고 강변하나 이라크는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금도 사실상 전쟁상황인 곳이다. 따라서 한국군의 추가파병은 명백히 부시의 더러운 침략전쟁 행위에 가담하는 침략행위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추가파병 과정과 제기되는 의혹들


김선일씨의 피랍이 언론에 의해 알려진 지난 6월 21일 훨씬 이전인 5월 31일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노무현은 이라크주재 대사관과 외교부 실무라인을 중심으로 피랍사실 은폐여부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실시하도록 하였고 국회 역시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피랍사실 억류사실 은폐가 가나무역 및 대사관과 외교부 몇몇 실무선의 실수나 상황판단 착오였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김선일씨가 억류 중이었던 6월 중순 경 노무현 정권이 추가파병 방침을 다급하게 추진한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대사관에 김선일씨의 피랍사실을 공식통보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APTN사의 김선일씨 피랍사실 확인요청을 외교부 실무자들이 무시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6월 10일 미군이 김선일씨의 납치사실을 김사장에게 통보했던 것으로 보아(서울신문, 6.28) 적어도 미군과 미국정부는 김선일씨의 납치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한 그 시기는 한국 내 추가파병 재검토 여론이 드센 상황이었다. 6월 10일,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 67명을 비롯, 여야 국회의원 90명이 파병재검토 요구서명을 발표했던 사실을 떠올려보라. 물론 그때까지도 파병철회 분위기에 힘입어 정부의 추가파병 계획은 수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국인 피랍이 추가파병 재검토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미국정부가 가만히 있었을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피랍사실이 공론화되기 이전에 노무현 정권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추가파병을 공식화하도록 압력이든 설득이든 필요했을 것이다. 가나무역, 이라크 대사관, 외교부는 ‘깃털’일뿐 사실은폐 여부의 핵심을 찾으려면 부시정권과 노무현 정권 사이에 오갔을 모종의 연계를 뒤져야 하는 것이다.

추가파병 재검토 요구가 높았고 파병재검토 요구의 주요 발원지가 의회 내에서는 사실상 열린우리당이었던 상황에서 6월 14일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 천정배 원내대표와 정부의 반기문 외교장관, 조영길 국방장관, 청와대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 등이 참석한 고위 당 ․ 정 ․ 청 안보협의회1)가 열렸다. ‘긴급’ 안보협의회로도 알려진 그 중요한 회의가 취재진을 배제한 채 여의도의 모처 음식점에서 열린 점도 의문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의문점은 이날 정부와 청와대가 “늦어도 금주 중에는 파병 계획을 확정 발표해야 한다”, “결정이 이번 주를 넘겨서는 안된다”며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당의 입장을 조속히 결정할 것을 촉구하였다는 대목이다. “늦어도 금주 중에 파병계획을 확정발표”해야만 한다고 했던 불가피한 사유가 무엇이었는지 명백히 밝혀지고 진상조사 되어야 한다.

또한 조영길 국방장관이 “이르면 이달 중에도 선발대가 나갈 수 있다”고 하여 당초 7월 중순께 자이툰부대 선발대를 파견하려던 계획을 6월 이내로 앞당길 가능성을 밝힌 점 역시 의혹을 낳게 하는 지점이다. 더구나 국방부 실무선에서는 “추가 파병 일시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일시를 못 박지 않았다”며 “파병 지역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고 선발대가 언제 파견될지도 몰라 아직 유동적인 사안”이라는 등 신중한 입장을 밝히는 터였다2).

이날 회의와 함께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청와대와 정부의 파병강행을 뒷받침하기로 결정하였고 16일에는 노무현이 직접 당 지도부 및 당 국민통합실천위원회 위원들과 만나 파병방침을 설득하였다. 열린우리당은 곧바로 17일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확정했으며 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파병계획을 확정 발표하였다. 그토록 들끓었던 파병재검토 논의는 단 1주일 만에 일사천리로 진압되고 말았던 것이다. 며칠 뒤 김선일씨의 피랍사실이 공개되면서 정부는 추가파병 방침을 재확인하고 결국 안타까운 한 생명은 희생되고 만다.

정확한 진상규명이 본인더러 본인을 조사하라는 꼴인 상황이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문제의 긴급 안보협의회에서 한미동맹과 관련한 예상보다 충격적인 내용이 추가파병의 시급한 사유로 제시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던 점3)에서 부시정권과 노무현과의 모종의 연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 추가파병을 시행한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신뢰가 실추될 우려’라는 이유는 ‘금주 내’ 파병결정의 당위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김선일씨가 5월 31일 피랍되어 있던 같은 시기에 다급하게 진행된 파병결정 과정이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김선일씨 피랍과 관련된 은폐의혹과 관련한 감사원 감사를 지시하면서 정작 미국정부의 압력의 실체와 대통령 본인과 관련된 의혹은 덮어둔 상태이다.


소위 노무현식 개혁세력의 실체와 파병철회운동의 현실


“파병철회는 페스트, 파병은 콜레라”. 추가파병에 반대의 목청을 드높였던 유시민의 6월 28일자 발언이다. 총선 전에 2월 국회에서 추가파병 국회동의안 처리에 반대해서 홀로 단식투쟁까지 벌였던 임종석은 총선 이후 추가파병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선동가로 돌변했다. 안영근은 아예 전투병 파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테러방지법 제정까지도 들고 나섰다. 소위 386이라고 하는 민주화운동 출신들의 현재 모습이다.

이들이 이라크 전쟁의 본질을 몰랐던 것일까? 유시민은 부시와 네오콘은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집단이 아니며, 무장세력이 아니라 네오콘이 무서운 집단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또한 노무현식 개혁세력 중 상당수는 한국 변혁운동사에서 반미의 기치를 최초로 내걸고 미제타도의 선두에 섰던 운동권 출신이다.

총선 전의 올곧은 파병반대 입장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파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소위 386 개혁세력은 변절하여 돌아선 친일파를 떠올리게 한다.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일본 제국주의 전쟁에 참가하라고 그리고 정신대로 나서라며 선동했던 친일파와 다른 것은 일본이 미국으로 바뀌었다는 점뿐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라면 친일파도 할 말 많다. 날 때부터 친일파가 아니었던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구구절절한 사연이 왜 없었겠는가? 변절자가 더 증오스러운 법이다. 그들이 친일파진상규명법을 개정하려는 것은 자신들의 변절을 다른 일로 보상하려는 행위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예전 분위기에 비하면 상당히 축소되긴 했지만, 6월 23일 여야의원 50명이 서명하여 추가파병재검토 결의안이 제출되긴 했다. 그러나 7월 임시국회 상임위에서조차 다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리고 6월 초반 파병반대 여론이 대세였던 것에 비해 김선일씨의 장례식이 끝난 이후 대중적인 동력은 수그러든 상태이다. 추가파병이 낳을 끔찍한 결과가 불을 보듯 해졌고 그래서 더더욱 대중적인 힘을 받아야할 바로 시점에서 말이다.

원인은 노무현을 지지하는 친노파들이 파병반대를 외치는 것이 노무현을 흠집 낼 수도 있다고 우려하여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탄핵시 광화문을 수만의 촛불집회로 수놓기도 했던 친노세력 중 소위 ‘노빠부대’라고 지칭되는 이들은 오로지 노무현을 지키는 것만이 업이자 목표이고 그게 개혁이라고 여기며 이들 중 일부는 노무현의 처지를 옹호하며 심지어 파병이 불가피하다고 외치기조차 한다. 한마디로 앞뒤가 뒤바뀌어버린 노무현 유겐트부대이다. 노무현 지지세력 중 상당수의 이탈 움직임도 있으나 노사모, 서프라이즈 소속 노무현 지지자들이 노빠부대의 가장 극단적인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노무현을 흠집 내어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심지어 파병반대 국민행동에 참가하고 있는 단체들 일부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현실이다. 국민행동 내에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태도를 놓고 논란이 일었고 결국 노무현 규탄 수준에서 합의되었으나 일부 불만세력은 집회 속에 노무현 퇴진구호나 규탄 구호를 이유로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투쟁에 힘을 빼고 있는 상황이다.

파병반대 투쟁은 노무현 탄핵철회 집회때처럼 광화문에서 촛불집회형태로 동일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크게 대조되며 그래서 더더욱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이다. 이처럼 파병철회 전선이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투쟁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있는 책임은 노무현 퇴진을 외치는 일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친노파에게 전적으로 있다. 노무현식 개혁을 지지한다는 핑계로 결국 보수세력과 다를 바 없다면 친노세력은 개혁의 깃발을 내리고 아예 파병을 찬성하는 게 낫겠다.

지금은 친노냐 반노냐의 문제가 아니라 침략전쟁에 가담하는 파병을 철회시키느냐 철회시키지 못하느냐의 다급한 상황이다. 여기에 노무현 흠집논리가 왜 끼어드는가?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노무현 퇴진을 외쳐서이기 때문이라면 노무현을 지지하는 세력이 더 많이 참가해서 차라리 노무현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를 무력화시키면 되지 않는가? 광화문 집회 한 켠에 노무현 지지를 외치더라도 ‘노빠부대’가 광화문에 떼거지로 몰려나와 파병반대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만큼 파병철회는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아르빌 지역상황과 파병 이후


파병예정지인 아르빌은 쿠르드 자치구역의 하나로 이번 이라크 침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지역이어서 국방부가 파병부대의 안전을 강조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쿠르드족 지역은 민족갈등(대표적으로 아랍, 쿠르드, 터키)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곳이며 민정이양 과정에서 오히려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단적으로 지난 2월 1일 쿠르드 민주당사와 쿠르드 애국연맹 당사 앞의 동시 자살폭탄 공격사례가 그것인데 이라크 내에서는 다소 친미적인 쿠르드족을 적대시하는 아랍계(안사르 알 이슬람이 대표적)와의 갈등이 상존했고 지금은 쿠르드족의 자치권 부여를 놓고 양 민족간 갈등이 커지는 실정이다. 6월 발효된 이라크 임시헌법은 쿠르드족에 대한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어 이슬람 시아파 등 아랍계의 반발이 심각하다. 이는 6월 8일 이라크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향후 정치일정을 담은 유엔 결의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자치권을 보장받으려는 쿠르드족과 이를 인정할 수 없는 아랍계 사이의 반발은 영구헌법 제정과정에서 민족 간 갈등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쿠르드 애국동맹의 마수드 바르자니가 쿠르드족 민병대 페쉬메르가에 대해 재무장을 지시했다는 일부 아랍계 언론보도도 있었다.

미국 점령군과 협조관계에 있는 시아파 과도통치위원들조차 반발할 정도인 현행 이라크 임시헌법은 올해 말까지 영구헌법으로 대체될 예정인데 영구헌법이 제정되기까지의 이 시기는 한국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에 상주하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한국군의 아르빌 지역 선정을 미국이 수용한 배경에 향후 아랍족과 쿠르드족갈의 갈등이 발생할 경우 한국군이 ‘완충군’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 있는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듯이 이 지역이 앞으로 화약고가 될 곳임은 자명하다 하겠다.

군수물자를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7월 1일 텔레비전 뉴스에 이라크 어린이들을 위해 가져간다며 대포처럼 생긴 뻥튀기 기계를 시연해 보이는 병사의 인터뷰가 방영된 적이 있다. 어린이들을 기쁘게 한다는 게 하필이면 대포를 연상케 하는 뻥튀기 기계여야 하는지도 서글펐지만 “뻥”하는 소리와 함께 허연 포연을 휘날리던 천진난만한 이 병사의 얼굴에 김선일씨가 절규하는 모습이 겹쳐 보인 것이 단지 환상이었을까?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군하지 않는 한 이 선량한 젊은 병사는 언제 고국 땅을 되밟을 수 있을까? 아무런 명분도 없는 전쟁에 자원한 피의 대가는 누가 치러 줄 것인가?

최근 노무현이 3천명 파병병력 중 500명의 전사를 각오하고 파병한다는 말을 흘린 바 있다. 그만큼 한미동맹이 중요하다는 핑계이지만 사실은 부시에 대한 굴종에 다름 아니다. 김선일 씨가 부르짖었던 유언처럼, 노무현은 실수한거다. 아니, 실수 정도가 아니라 베트남 파병에 이은 제2의 박정희이자 내선일체에 이어 제2의 친일파로서 역사의 반역자이다. 그리고 피의 대가를 치르기 이전에 파병을 철회시키지 못한다면 이의 책임은 노무현을 감싸고도는데 급급했던 친노세력이 전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1) 6월 15일 연합뉴스


2) 6월 15일 연합뉴스


3) 6월 15일 경향신문 5면 45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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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주권이양 이후 <김정은> [민대 2004 7/8 정세초점 1]

 

이라크, 주권이양 이후1)







김정은 (사회진보연대)



당초보다 이틀 앞당겨 진행된 6월 28일 주권이양식에서 알 야와르 대통령은 “오늘이 이라크에 역사적이고 행복한 날이며, 모든 이라크인들이 갈망하던 날이고 우리가 국제사회 일원으로 다시 돌아간 날”이라고 말하였다. 과연 그 발언처럼 이라크는 완전한 주권이양을 이루었는가. 주권이양 이후 이라크의 상황은 어떠한가. 미국의 이라크 점령정책의 연장선상에 놓인 기만적인 주권 이양은 쉽사리 이라크에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기만적인 주권이양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여전히 미국에 의한 이라크 점령과 지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임시정부는 미국 점령구상을 그대로 승인해준 유엔 결의안에 따라 매우 제한된 ‘주권’을 갖고 있다. UN 결의안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2004년 6월 30일자로 끝날 것이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이 이라크를 지속적으로 지배할 수 있도록 국제적으로 합법성을 부여한 것에 다름 아니다.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새로운 결의안은 138,000명의 미군과 20,000명 이상의 연합군이 이라크를 점령하고 미국이 이라크의 정치,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했다.

결의안 분석2)에 따르면 독립적인 이라크 임시정부는 2004년 6월 30일로 완전한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6월 8일 통과된 유엔 결의안에 따르면 과도정부는 “이라크의 선출된 임시정부가 통치할 때까지, 제한된 기간을 넘어 이라크의 운명에 영향을 줄 어떠한 조치도 삼가해야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임시정부 역할의 제약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군사작전에 관해서는 미국이 이끄는 다국적군이 군사작전 상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다만 민감한 공격 작전에 대해 ‘거부권’이 아닌 이라크 지도부와 미군 지휘부의 ‘합의’ 조항을 남겨두었다. 결의안은 이미 진행 중인 이라크 국유 기업의 사유화나 이라크 국내 기업에 재건 사업의 우선권을 줄 수 없게 한 미 점령군의 명령에 대한 거부권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라크 임시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석유 통제권을 이양 받은 이후에 체결하는 계약에 대해서는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반면, 이전에 미국이 부여한 특권은 계속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결의안에 따라 2005년 1월 의회 선거를 거쳐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헌법을 작성하게 되면 2005년 12월 31일까지 헌법에 의해 정부를 선출하게 된다. 이라크의 상황은 이러한 이행의 실행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헌법 제정에 있어 어떠한 형태의 국가가 될 것인지, 다수인 시아파와 수니파에 권력 분배가 어떻게 될 것인지, 쿠르드족의 자치권 부여 여부에 따라 종교적, 종족적 갈등 해결 양상에 따라 이라크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저항세력 동향


주권이양이 앞당겨질 만큼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주권이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세를 퍼붓고 있다. 저항세력은 이라크 임시정부를 미군 점령의 연장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라크 저항세력은 14일 바그다드 중심부 그린 존에서 차량 폭탄테러를 감행해 최소한 50여명이 사상하고 북부 모술에서 주지사를 암살하는 등 지난 달 28일 주권이양 이후 최대 공세를 펼쳤다.

이라크 남부 지역에서 미점령군과 전투를 벌인 강경 시아파 알 사드르가 6월 16일 메흐디 민병대에게 해산명령을 내린 후, 2004년 1월로 예정되어 있는 선거에 출마할 합법적인 정치 단체로 전화하고 있다고 알려졌으나 최근 남부 나자프에서 다시 무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알 사드르는 7월 25일 주권이양안에 따라 18개의 각 주에서 입법부 역할을 할 국민위원회 위원을 선출하는 기구인 국민회의의 구성원을 뽑는 국민회의 선거에도 불참하였다. 주권이양 이후에도 알 사드르는 ‘정통성 없는’ 임시정부와 미국의 ‘억압과 점령’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을 표명하고 있다. 시아파 최대 정당중 하나인 ‘이라크 이슬람 혁명최고평의회’도 “이 선거 절차가 이라크의 진정한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시아파와 함께 수니파도 알라위 총리의 임시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으로 보고 자신들의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미군은 이라크 저항세력이 5천명이라던 애초 추정치의 4배나 되는 2만 명의 규모로, 저항세력의 대다수는 부시정부가 주장했던 외국 테러리스트들이 대부분이 아닌 이라크 수니파들로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 시인하였다. 그리고 이 저항세력들은 점점 더 확대 조직화되고 있으며 전문화되고 있다고 한다. 알카에다와의 연계 및 테러와의 전쟁 명분을 살리기 위해 부시 행정부는 미국에 반대하는 저항세력이 일부 외국 테러리스트들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라고 호도해왔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저항세력들과 무차별한 폭탄테러, 외국인 피랍 등을 감행하는 테러리스트들 사이에 미국 점령 반대를 위한 저항방식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외국인 저항세력을 이끄는 요르단 출신 테러리스트 알 자르카위를 살해하겠다는 이라크 토착 저항세력의 성명이 7월 첫째 주 2개나 발표되었다. 이에 알라위 총리는 취임 이후 수니파인 전 바트당원과 부족장 등의 토착 저항세력에게 외국인 세력과는 이해관계가 다르니 연합하지 말 것을 촉구하면서 일부 저항세력에게 회유의 제스처를 취하는 한편, 외국인 저항세력과의 불화설을 조장하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잇따른 외국인 납치와 폭탄테러 등을 보도하며 저항세력을 사회 혼란과 불안을 조성하는 자들로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일상화되어버린 테러와 폭력들은 미국의 점령과 이로 인한 오랜 전쟁이 진정한 원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쿠르드 자치지역의 갈등 악화


주권이양 이전부터 자치와 독립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쿠르드족 문제 또한 이라크 내전으로 갈 수 있는 도화선이다. 이라크 임시정부를 인정하는 유엔 결의안에 쿠르드족의 자치를 인정했던 이라크 임시헌법에 대한 언급이 빠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초 제정된 임시헌법에서는 2005년 영구헌법 제정 시 3개 주 이상이 찬성하면 헌법 제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규정을 두어 3개 주에 걸쳐 살고 있는 쿠르드족에 권한을 부여했었다. 이라크 인구의 15% 가량인 5백만 명 가량의 쿠르드족은 사실 이 조항을 얻기 위해 미국의 대 이라크전에서 미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다. 하지만 새 유엔 이라크 결의안에는 임시헌법 조항이 언급되지 않은 채 연방주의만이 언급되어 있다. 시아파 측은 최고 지도자인 그랜드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가 결의안에 임시헌법을 언급하지 말라고 경고할 정도로 쿠르드족 자치권에 반대해왔는데, 결국 결의안에는 이라크 국민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시아파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또한 이라크 새 정부의 주요 직책들도 아랍계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이에 쿠르드민주당(KDP), 쿠드드애국동맹(PUK)의 지도자들은 “임시헌법에 주요 요구사항이 명시되지 않을 경우 내년 1월 총선에 불참할 것이라는” 항의 서한을 부시 대통령에 보냈고, 미국에서는 이 요구를 배려하겠다고 입장을 밝혀 현재는 갈등이 봉합된 상태이다.

그러나 주권이양 이후 쿠르드족과 아랍계의 갈등은 격화되고 있다. 세계적인 유전 도시인 키르쿠크에는 후세인 정권 시절 아랍화 정책에 따라 키르쿠크에서 추방되어 에르빌 등에서 살아온 수만 명의 쿠르드인들이 몰려오고 있다. 이에 키르쿠크에서 살고 있던 아랍인들이 추방되고 있다. 1991년 이래 미국의 보호 아래 자체 의회까지 두고 자치를 누려온 쿠르드인들은 엄청난 석유 자원을 가진 키르쿠크를 차지하여 독립하려 하고 있다. 에르빌을 장악하고 있는 쿠르드민주당(KDP) 지도자 마수드 바르자니는 “이라크가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연방제 국가가 된다면 그 안에 머물 수 있지만 이점이 헌법에 보장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7만 명 정도의 쿠르드 민병대 페슈메르가는 현재 경찰서와 방위대에 분산 배치되어 지역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데 언제고 쿠르드족의 독립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2005년 영구헌법 제정 시기가 다가올수록 잠복돼 있던 쿠르드족과 아랍계의 갈등이 첨예화될 것이다. 미국의 점령과 개입으로 인해 이렇듯 종족 간 갈등이 파생되면서 분리주의가 조장되고 있다.


임시정부의 지체되는 사회재건과 불안정한 치안문제


미국의회 산하 ‘일반회계청(GAO)’ 에서 내놓은 미정부 차원의 최초의 이라크 현황분석 자료에 따르면 이라크 18개 주 가운데 13개 주의 전력사정이 전쟁 전보다 좋지 않아, 2600만 인구 중 약 2천만 명이 전력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원유 수출도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줄어든 상태이고, 실업률은 2004년 60%를 상회한다.

미국 점령당국이 당초 약속했던 2,300개 건설사업 가운데 실제 진행되는 건수는 140개 밖에 안된다. 이라크 재건비용으로 마련된 580억 달러 가운데 현재까지 사용된 금액은 137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 비용의 대부분도 군사작전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속되는 치안 불안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원도 부실하고, 경제재건도 지체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야드 알라위 임시정부 총리는 가장 시급한 현안인 치안 정상화를 위한 고육책을 쓰고 있다.

7월 7일 이라크 임시정부는 저항세력 공격 억제와 치안확립대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가안전법을 발표했다. 국가안전법은 특정한 상황에서 60일간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이 총리에게 부여되며 이에 따르면 외국인 이동 제한, 시위와 집회 금지, 우편물 열람, 통신 감청, 통행금지 등도 가능하다. 이에 이슬람 성직자들은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국가안전법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안전법을 발동하고 저항세력에 대한 사면조치 등 회유책에도 저항세력의 공격이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자, 알라위 총리는 저항세력 근절을 위한 새로운 정보기관인 총보안국(GSD)을 설립키로 하고 방글라데시, 모로코, 이집트, 인도 등에도 다국적군을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다. 알라위 총리는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들이 지난달 말 약속한 이라크 보안군 훈련 및 군장비 지원 등을 빠른 시일 내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라크 임시정부가 무장세력을 지원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이란과 시리아 등을 상대로 공세적 자세를 취하고 나섰다. 이라크 국방장관은 26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이라크에 적들을 들여보내고 있다"며 이란을 비난했다. 알라위 총리는 외국 테러조직과 이라크 토착 저항세력간의 저항방식에 있어서의 갈등을 이용하여 토착 저항세력의 애국심을 호소하기도 하고, 미군 점령 후 군대가 해체되면서 실업자가 된 전직 바트당 간부들을 재기용하면서 저항세력으로부터 `환심'을 사려하고 있다. 그리고 이야드 알라위 총리는 언론 자유 보장을 명분으로 정간조치 당했던 알사드르의 주간지 ‘알-하우자’의 복간을 허용하는 등 회유책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임시정부는 자체적으로 치안을 유지할만한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4월의 폭력 사태 동안에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이라크 경찰과 민간 방위 부대(미국이 훈련시킨 이라크 치안 병력)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도망가 버렸을 정도다. 신생 이라크 경찰과 민방위군 등 치안병력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무장능력이 떨어진다.

주권이양 이후 현재 해산된 연합군임시행정처(CPA)는 지난 6월 5일 명령 91을 선포하였는데, 내용은 이라크 내의 9대 주요 정치 당파 계열에 있는 10만 명에 이르는 무장 민병대는 국가 군대, 경찰대, 혹은 정부가 통제하는 민간안보회사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적 무장력을 통제하고자 하는 임시정부의 지속된 노력이 성공하련지 미지수다. 많은 민병대들이 이름을 바꿀 수는 있지만 똑같은 지휘체계 아래서 존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례로 시아파 이라크 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와 연관된 민병대 바드르 여단은 여전히 무장한 채로 현재는 바드르 재건부대로 활동하고 있다. 사적인 무장세력들은 언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총과 박격포를 들고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


불안정한 이라크의 미래


주권 이양 이후 이라크의 이행 과정에 따라 이라크는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시아파, 수니파와 쿠르드족 간의 종교적, 종족적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될 경우 새로운 권력구조 아래서 정치적 안정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분열과 혼돈의 상태가 지속되어 종교적 극단주의와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예전의 이라크로 돌아가려는 독재 체제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미국의 점령이 지속될수록 이라크는 안정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라크인들의 자주적인 정치체제 형성을 거세한 채 종교적 종족적 구도를 적절히 활용하여 이라크에 꼭두각시 정부를 세우고 미국의 점령을 지속하고자 하는 미국의 계획은 이미 실패하였음이 드러났다. 미국의 점령에 의해 불거진 종교간, 종족 간 갈등은 이후 종교적 근본주의나 인종 우월주의 강화, 이로 인한 배타성을 확대하며 폭력을 증대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을 안고 있다. 석유산업의 사유화와 같은 경제 재건사업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하여 사회의 양극화를 넘어 사회의 분리나 해체로도 이어질 수 있다. 치안 안정화를 명분으로 미국과 임시정부의 군사공격이 더욱 확대될수록 이라크 주변 국가의 지역을 포함한 저항이 더욱 격렬해져 미국이 오히려 장기 주둔할 수밖에 없는 사태로 확산될 수도 있다.

연합군임시행정처(CPA)가 2004년 5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라크인의 80%가 ‘미국 문민 당국도 연합군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55%가 ‘미군을 비롯한 외국부대가 곧 철수하면 보다 안전할 것’으로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주권이양이 되었다고 해서 이러한 인식이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미국의 점령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금 이라크의 미래는 불안정하기만 하다.


1) 이 글은 사회진보연대 7/8월호에 동시 기재됩니다.


2) Institute for Policy Studies에 실린 필리스 베니스의 “이라크 임시정부에 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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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론의 진실 <김성구> [민대 2004 7/8 시평]

시평                                                        



경제위기론의 진실







김성구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이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1.


최근 여야 정치권에서, 또 노동조합과 재벌 간에도 한국경제가 위기냐 아니냐의 논쟁이 한바탕 벌어졌는데, 이렇다 할 논쟁의 결말도 없는 실정이다. 이 논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위기론의 진실을 알기 어려워 답답해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위기를 판단하는 객관적인 척도나 기준을 명시하고 위기론에 입각해서 한국경제의 위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여야간에, 또 노동계와 경영계 간에 경제위기라는 진단이 가져올 정치적 효과만을 계산하면서 논쟁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물론 주장의 근거로서 경제현실을 거론하고 있지만, 그 현실을 부분적으로, 단편적으로만 이해할 뿐이었고, 상반되는 측면들의 전체적 연관을 위기론과 관련하여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대표적인 거시경제지표의 양호함을 들이대면서 경제위기론을 불순한 세력의 음모로 일축하였고, 나아가 과장된 위기론이 잘나가는 경제를 정말 위기로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까지 하였다. 반면 한나라당은 심각한 청년실업과 신용불량자의 양산, 소비와 투자의 침체, 대외환경의 악화 등 민생파탄과 경제위기를 주장하면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정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재벌과 경영계도 경제위기론에 동참하였는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벌개혁과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시장을 보다 유연화 하는 등 기업을 운영하기 위한 보다 좋은 환경을 창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현재의 경제상황을 위기가 아니라고 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평가를 함께 하면서, 경제위기론을, 재벌과 보수언론이 재벌개혁을 저지하고 노동계를 압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공세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민생파탄과 삶의 위기를 지적하였고, 이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불가피한 결과라고 하면서 정부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였다.


2.


이렇게 경제위기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면, 한국정치의 현재의 논쟁구도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극히 정치적 성격의 것이라는 게 드러난다. 경제위기 논쟁이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그 해법 여하에 따라 위기극복을 위한 부담을 어느 계급, 어느 계층이 져야하는가가 ‘일차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의 분석과 그 해법을 정치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은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위기분석을 위해서는 경제학의 위기론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부르주아 경제학의 위기론은 케인스 경제학을 제외하면 사실 경제위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론이어서 위기분석은커녕 그 분석을 가로막는 주범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는 자유경쟁이 보장되면 완전고용과 최적 균형에 도달한다고 가르치는 부르주아 경제학에서 경제위기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런데도 저널리즘에서 관변의 경제학자들, 시민단체의 경제학자들, 언론사의 기자들은 한국경제가 이래서 위기다, 저래서 아니다 일상적으로 떠들어댄다. 저널리즘에서 떠드는 각종의 위기 진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것이지만, 저널리즘의 위기론은 강단의 부르주아 경제학의 위기론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저널리즘의 위기론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관련 하에서 그 용어로 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실은 부르주아 경제학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저널리즘의 경제위기론은 정체불명의 이론이고 이렇게 강단의 위기론과 저널리즘의 위기론은 따로 놀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이런 사기가 공공연하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가, 경제학 전공자들에게 정말 묻고 싶은 말이다. 케인스 경제학에 입각해 경제위기를 운운한다면, 그건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지배하는 오늘날 강단에서 케인스 경제학을 따라가는 논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실의 위기논쟁에서 수요측면과 분배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는 보고 듣기 어려운 희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부르주아 경제학이 저널리즘에서 경제위기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논거가 있다면, 그건 현실의 세계가 학문의 세계와 달리 자유경쟁이 확립되어있지 못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케인스주의의 유산인 국가개입주의가 자유경쟁을 제한하고 그래서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축출을 통해 시장의 자유와 경쟁의 강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명령이다. 그러나 이런 경제학이 결코 과학적인 설명이 아니라는 건, 간단하게 케인스주의의 시대로 돌아가 보면 된다. 케인스주의 시대에 국가개입주의는 강화되었고 자유경쟁은 지금보다 더욱 훼손되었는데, 왜 당시 경제는 지금보다 더 호황기를 구가했을까? 한국경제를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왜 국가주도하의 공업화정책 시기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지금보다도 고도성장을 구가했을까? 결국 부르주아 경제학은 과거 시기의 성장의 신화도, 현 시기의 경제위기도, 어느 것 하나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다.


3.


한국경제의 현재의 위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학적 위기론이 필요한데, 그러나 정치경제학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종속적 성장이라는 한국경제의 특수성을 포괄하는 위기분석은 그렇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정치경제학 원론의 수준에서는 한국경제의 위기와 그 특수성을 해명할 수 없다. 내 생각으로는 한국경제의 위기는 적어도 세 개의 분석차원에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정치경제학적으로 위기라 함은 마이너스 성장률과 가격 폭락, 기업과 은행 도산, 그리고 그에 따른 실업 증대를 특징적 지표로 하는 산업순환의 한 국면이다. 오늘날에는 국가의 경제개입이 제도화됨에 따라 이와 같은 고전적인 위기현상에 일정한 변화가 나타났지만, 마이너스 성장률과 고실업은 여전히 위기를 가늠하는 기본 지표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국 경제는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근년에 성장률이 낮아지기는 하였어도 3% 대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또 실업률도 3~4% 수준에 머무는 상황이어서 경제위기라고 할 수는 없다. 즉, 한국경제는 경기순환상의 위기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경제의 위기는 선진국처럼 마이너스 성장률의 순환적 위기로 나타나기보다는 플러스 성장률, 심지어는 고도성장의 와중에서 외채위기 또는 외환위기로서 나타나곤 하였다. 1975년, 1979년 그리고 1997년의 위기가 그런 것이었다. 그에 반해 1970년대 이래 마이너스 성장의 위기로 나타난 것은 1980년의 위기와 1998년의 위기뿐이었다. 이 위기들은 모두 외채위기 또는 외환위기와 결합된 것으로서, 거칠게 말한다면, 한국에서는 순환적 위기가 존재하지 않았고 외채위기 또는 외환위기가 규정적 위기였다. 말하자면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 하면서도 (실은 튼튼한 게 아니어서) 국제수지의 위기에서 비롯되는 외채위기 또는 외환위기가 강타하곤 하였는데, 이는 한국 경제가 외국자본과 해외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대외종속적 방식으로 성장해온 데에 기인한다. 이런 대외종속적 경제성장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IMF관리 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고, 그런 점에서 위기의 잠재성은 보다 커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외환위기 이후 국제수지가 일단은 흑자기조로 전환되었고, 외환보유고가 1,500억 달러를 넘는 상황에서 당장 이런 외환위기가 재발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면 한국경제는 지금 위기가 아니고 근거도 없이 정치 공세로 위기논쟁이 벌어진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와 관련하여 세 번째 차원의 위기를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한국 경제는 그 이전의 국가주도 성장경제로부터 크게 변화하였는데, 이 변화는 한편에서 성장률의 명백한 둔화, 성장과 고용의 연계 약화 또는 구조조정에 따른 상시적인 실업 위기, 비정규직 양산, 민생 파탄과, 다른 한편에서 외국자본, 특히 금융자본의 지배력 강화와 해외시장에의 의존 심화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불안정 또는 구조적 위기의 심화로 요약할 수 있다. 즉, 1970년대 이래 선진국 경제가 구조위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한국 경제도 외환위기를 계기로 마침내 구조위기로 들어선 게 아닌가 한다. 한국에서 구조위기는 물론 선진국과 달리 대외종속성의 심화라는 특수성을 포함하고 있지만(수출증가가 그나마 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그 아이러니의 표현이다), 성장둔화와 고실업이라는 동일한 특징을 공유할 것으로 보인다. 이 위기는 자본주의 발전의 보편적 경로에서 나타나는 모순의 표현으로서, 신자유주의에 의해 초래된 것은 아니지만 이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부정할 수 없이 심화되고 있다.

즉, 이 위기는 김대중 정부와, 이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소산이며, 이런 점에서 현 정부는 경제위기론을 부정해서도 안 되고 그 책임도 결코 면할 수 없다. 한나라당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경제의 이러한 위기 현상을 고발한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의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의 동일한 기반위에서 친재벌적 경향을 보다 강화하고자 하는 한, 그 비판은 위기 극복과는 거리가 멀고 다만 정략적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냐 아니냐의 논쟁은 이렇게 신자유주의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는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경제위기론을 재벌과 보수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라고 차단하려 할 것이 아니라 이 위기의 성격을 폭로하고 노동자 ․ 민중운동이 위기를 극복할 진보적 대안과 결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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