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4/09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나누기 <박하순> [민대 2004 7/8 확대경2]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나누기


-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1)







박하순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소장)



1. 고용문제의 심각성


2004년 5월중 실업자는 78만 8천명, 실업률은 3.3%로 IMF 위기 이후 1999년 1/4분기 8.5%까지 내려갔던 실업률에 비하면 많이 개선되었다. 비록 IMF 위기 직전 96년도 완전고용에 가까웠던 실업률 2%보다는 아직 높고, 2002년 3/4분기 3% 이하로 하락한 것에 비해서도 약간 악화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한편 현재 경제활동참가율이 IMF 위기 전 추세선에서 1.5~2% 포인트 가량 낮아졌는데(5월에는 많이 상승하여 62.5%가 되었지만 여전히 97년 5월 63.4%에 비해 0.9%포인트 낮은 수치이고, 역시 IMF 위기 추세선에 비하면 1.5-2% 포인트 낮은 수치라 하겠다), IMF 위기 이전 추세 아래서의 경제활동참가율과 그만큼 증가한 실업자를 고려한다면 실업률을 2-3% 포인트 높아진다고 하겠다(<그림 1> 참조).

또한 보도에 의하면 청년실업률은 특히 심해 8%를 넘나들고 있다.



한편 고용문제는 실업률의 문제만은 아니고 고용구조도 문제가 된다. 불완전취업자라 할 36시간미만 취업자는 4월에 비해 약간 개선이 되었는데도 231만 2천명에 이르고, 18시간미만 취업자도 66만 2천명에 이른다. 이런 불완전 취업자를 위시한 비정규직이 문제인데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이 훨씬 심하고 정규직에 비해 훨씬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데 이들의 비중이 50%를 넘고 있다.

   하반기부터 중국의 투자붐 억제, 미국의 금리 인상, 유가인상으로 성장률이 더 둔화될 것이라고 예측이 되고 있어 실업문제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 고용문제의 원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심화


현재의 고용문제는 근본적으로는 한국자본주의의 과잉축적-이윤율 저하라는 구조적 위기에서 초래되었다. 정부는 이를 극복하겠다고 소유-금융의 이익을 확실히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정책을 추진하였다.


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금융기관과 기업의 인위적 퇴출, 7대 사업구조조정, 공공부문 구조조정 등을 통해 민간부문 공공부문 가릴 것 없이 인력을 약 20~30% 감축하였다. 그리고 정리해고제 도입 등 노동법 개악,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를 도입하였다.

공공부문을 보면 ’98 ~‘00년까지 총 13만 1천명을 감축하여, ’97년말 정원 대비 18.7% 정원을 축소하였다. 공기업에서만 ’00년까지 4만 1천7백명을 감축하였다. 정부는 ‘00년까지의 감축목표 13만명 대비 804명을 초과달성하였다고 자랑하고 있다(<표 1> 참조).

<표 1> 공공부문 정원감축(단위 : 천명)

 

’97말

정원(A)

’98 ~

’01 계획

’98~’00

정원

감축율

(B/A,%)

’01년

계획

계획

실적(B)

700.4

142.6

130.3

131.1

18.7

12.8

중앙부처

161.8

26.0

21.9

21.4

13.2

4.6

지 자 체

291.3

56.6

49.5

49.5

17.0

7.1

공 기 업

166.4

41.2

41.2

41.7

25.1

-

산하기관

80.9

18.8

17.7

18.5

22.9

1.1

자료: 기획예산처


②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심화


IMF 구조조정협약으로 한국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거의 완전히 개방되어 초국적 금융자본 주도의 세계화로의 편입을 심화하였다. 외국인의 상장주식 총 투자한도가 아이엠에프 위기 직전인 97년 11월까지만 해도 일반법인에 대해서는 26%, 공공법인에 대해서는 21%로 제한되어 있던 것이 아이엠에프와의 구조조정 협약 체결로 점차 확대되어 일반법인은 98년 5월 25일까지 100% 소유가 허용되고, 공공법인은 2000년 11월 15일 40%까지 상향조정되면서 외국인의 투자가 대폭 늘어났다.

2002년 말 한국 안에서의 외국인투자 총 잔액은 2,803.4억 달러이다. 이 중 외국인직접투자는 626.6억 달러, 증권투자는 1,167.3억 달러, 그리고 기타투자는 1,009.6억 달러이다.

외국인 보유 상장주식 가액은 91년 12월 현재 약 2조 4,000억 정도에서 아이엠에프 전 10조원대였다가 99년 12월 약 77조원으로 대폭 증가한 다음 2000년 주식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12월에 약 57조원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2003년 12월 말 현재 약 143조원에까지 이르고 있다. 외국인의 주식소유비중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아이엠에프 위기 전인 96년말에는 12.97%였고, 위기 직후인 97년말에는 14.59%였던 것이 2003년 말 현재 40.1%에 달하고 있다. 이 수치는 91년 말에는 3.27%에 머물렀다.2)

시가총액 기준으로 상위 10개 기업에 속하는 기업들의 외국인 주식소유비중은 더 높다. 증권거래소3)에 따르면 2004년 1월 16일 현재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외국인지분은 58.19%이다. 다음으로 SK텔레콤의 외국인 지분은 48.99%, 국민은행 74.38%, POSCO 66.76%이다. 시가총액 5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외국인지분 비중이 28.78%로 상대적으로 낮은데 이는 한국전력이 아직 공기업으로 존속하고 있어 정부 및 관련기관의 지분율이 높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51.23%이고, KT는 46.82%(KT 또한 외국인 총 지분소유한도가 49%로 제한되어 있다), LG전자는 36.06%, 삼성SDI는 37.14%, 신한금융지주는 52.40%이다. 그리고 10대그룹의 외국인 시가총액은 2004년 4월 8일 현재 삼성 57.04%, LG 32.72%, SK 43.56%, 현대자동차 47.28% 등 평균적으로 49.41%를 차지하고 있다.4)

한국은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높기로 헝가리 멕시코 핀란드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③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대상이 된 공기업


한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의 일환인 공기업 사유화 및 해외매각 정책으로 인해 거대 공기업의 주식이 대거 외국자본에 의해 장악되었다.5)

KT(구 한국통신)는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98년 7월 공기업 사유화 정책이 본격화할 당시 외국인 지분이 전혀 없었으나 증시상장과 해외 주식예탁증서(DR) 발행 2회 매각, 국내경쟁입찰, 국내공모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2002년 5월 정부지분을 완전히 매각하였다. 2004년 1월 16일 현재 KT의 외국인 지분은 46.82%까지 올라섰다.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98년 7월 공기업 사유화 정책이 본격화할 당시 30% 정도이던 POSCO(구 포항종합제철)의 외국인 지분율은, 26.7%에 이르던 정부 및 산업은행 소유 지분을 3차례에 걸친 해외 DR 발행과 자사주 매각을 통해 2000년 10월 완전히 매각한 이후 2004년 1월 16일 현재 66.76%에 이르러, POSCO는 한국인소유 기업이라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1988년 국민주 형태로 기업공개를 한 후 1994년 뉴욕증시 상장, 1995년 런던증시 상장을 통해 외국인의 접근이 시작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외국인지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고 외국인투자한도와 동일인지분소유한도가 있었으나 이는 전부 폐지되었다. KT&G(구 한국담배인삼공사)는 1999년 9월 국내증시상장을 시작으로 해외 주식예탁증서(DR)․교환사채(EB) 발행, 국내공모 등을 통해 정부 및 국책은행 소유 지분을 전부 매각하여 2002년 10월 사유화를 완료하였다. 외국인지분은 2004년 1월 16일 현재 39.66%에 이르고 있다. 사유화가 중단상태인 한국전력공사의 외국인지분은 2004년 1월 16일 현재 28.78%이고, 한국가스공사의 외국인 지분율은 2003년 8월 16일 현재 12.18%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런데 POSCO, 케이티, KT&G(이상 12월 10일 현재), 한국가스공사(12월 1일 현재)의 자사주가 각각 15.9%, 25.49%, 25.75%, 9.18%인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외국인 지분율은 더욱 높아진다. 또한 한국전력공사, KT, 한국가스공사는 외국인 지분소유 제한 규정이 있기 때문에 아직 외국인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이지만 정부의 기본 방향이 이런 제한을 철폐해가고 있기 때문에 향후 1-2년 내 공기업에서의 외국인 지분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소유 측면에서 공기업은 외국인 소유 기업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6)

이뿐 아니다. 정부는 발전사들, 한국공항공사 등 민영화특별법 적용을 받는 공기업들을 언제든지 팔아치우려 하고 있고, 철도운영주식회사도 때가 되면 사유화하려 들것이다.


④ (공공) 금융기관의 매각


금융기관들이 외국자본 지배하에 들어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은행 중에서는 제일 외환 은행이 각각 뉴브릿지 캐피탈, 론스타으로 넘어갔고, 한미은행은 카알라일 컨소시움을 거쳐 시티은행으로 넘어갔다. 이들 은행들의 국내 은행산업에서의 점유율(총자산 기준)은 약 30%로서 거듭되는 외환위기 및 체제전환과정에서 외국자본의 지배력이 높아진 남미(30~80%) 동구권(50~90%)보다는 못하지만 매우 높은 편이다. 이는 아시아 금융위기를 같이 겪은 태국(7%)과 말레이시아(19%)보다도 높다.

한편 이는 경영권까지 내준 은행의 경우이고 일반은행(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외국인 지분 비중은 2003년 9월 말 현대 38.6%(시중은행 43.4%, 지방은행 8.8%)에 이른다.7) 예를 들어 외국인들은 2003년 12월 26일 현재 국민은행 주식을 73.26% 보유하고 있고 하나은행 주식을 37.61%를 보유하고 있다.


⑤ 투자와 성장 부진: 고용문제 미해결


주지하다시피 이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의 심화는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대기업의 이윤율은 급격히 회복시켰으나 이들 기업의 운영원리로서 금융의 원리가 관철되면서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투자와 성장부진을 낳고 있다. 투자와 성장이 고용문제의 직접적인 해결책이라고 한다면 고용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라 하겠다.

가계는 신용불량에, 정부는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가운데, 기업은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다. <표 2>에 의하면 최근 기업들은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는데 매출액경상이익률은 0%를 넘나들다가 2002년 2003년 5% 내외의 이익률을 보이고 있고, 올 1/4분기 이익률은 13.4%라는 경이적인 이익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이익률 개선은 5대기업에서, 내수기업보다는 수출기업, 순수국내기업보다는 외국인투자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표 3>, <표 4> 참조).8)

 

<표 2> 제조업 수익성 추이1) (매출액대비, %)

 

96

97

98

99

00

01

02

03

 

04.

1/4

03.

1/4

영업

이익

6.5

 

8.3

 

6.1

 

7.3

(6.6)

8.2

(7.4)

5.3

(5.5)

7.3

(6.7)

7.9

(6.9)

8.8

 

11.7

 

경상

이익

1.0

 

-0.3

 

-1.8

 

1.6

(1.7)

-0.3

(1.3)

-1.4

(0.4)

5.2

(4.7)

5.7

(4.7)

6.4

 

13.4

 

주 : 1) 거래소 상장법인, 코스닥 및 금감위 등록법인중 제조업체 실적(이하 동일),

       ( )내는 전체 법인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경영분석 결과

자료 : 한국은행

 

<표 3> 제조업 부문별 수익성 관련지표 비교 (%)

 

매출액영업이익률

 

 

매출액경상이익률

03.1/4

04.1/4

 

 

03.1/4

04.1/4

제 조 업

8.8

11.7

 

 

6.4

13.4

5대기업

12.2

18.0

 

 

10.1

20.3

5대기업이외

7.3

8.7

 

 

4.7

10.1

수출기업

7.8

12.9

 

 

5.4

15.0

내수기업

10.0

10.0

 

 

7.6

11.2

자료: 한국은행

 

<표 4> 수익성 관련 지표 비교(2002년 연간) (매출액대비, %)

 

외국인 투자기업1)

순수 내국법인

영 업 이 익

13.3

< 9.3 >

5.9

경 상 이 익

14.3

< 7.7 >

1.5

자료: 한국은행

주 : 1) 외국인들의 지분 합계가 50% 이상인 기업

     2) < > 내는 삼성전자 제외 시


그런데도 설비투자율은 계속해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IMF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과 무관하지 않은데, 이들 대부분의 기업들이 초국적 금융자본의 손으로 들어갔고, 이들 초국적 금융자본의 눈치를 보는 한국의 경영자들은 단기적인 이익을 올리느라 위험이 동반되는 중장기적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한국의 경영자들은 초국적 금융자본에게 고율배당을 하고, 경영권 확보 및 주가관리를 위해서 자사주를 구입하고 나머지 돈은 현금으로 쌓아두고 있다. 비상장기업의 경우 초국적 자본은 유상감자를 통해 자금을 빼내가고 있다. 고용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다.


3. 정부의 실업대책 비판9)


정리해고와 노동유연화를 신주처럼 떠받들어 온 정부도 뒤늦게나마 실업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하여 이러저러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보다는 이벤트성 대책과 단기적인 방안에 집중되어 있어 실제로 실업문제에 대한 해결의지가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내놓은 주요한 실업대책을 살펴보면, ‘청년실업종합대책’(03,9,22)을 통해 3,623억원을 투입해서 130,000명이 수혜를 받은 것으로 보고 되고 있고, 또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03,12)을 통해 2,369명이 일자리를 찾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2월9일 국회를 통과한 ‘청년실업해소특별법’과 경총과 노총이 참여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체결(04.2.10)이 있었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2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고 있다.

노동부가 3월4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2004년 주요업무계획’에 따르면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근로시간단축 지원금 지원, 교대제 개선 장려금 지원방안 검토 그리고 공공근로 중 사회적 유용성이 높고, 효과가 검증된 사업을 사회적 일자리로 전환하고 새로운 사회적 일자리 발굴 추진(외국인 근로자 상담, 산재근로자 간병, 저소득근로자 자녀 방과후 교실 등) 등은 비교적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판단되어진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다소간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실업문제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임시방편적이며, 오히려 고용의 질을 저하시키는 방식으로 가고 있어 오히려 실업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지난 2월9일 국회를 통과한 청년실업해소를 위한 특별법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법안은, 정부 투자 및 출연기관이 향후 5년간 해마다 정원의 3%씩 신규인력을 채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이 신규인력을 채용할 경우에는 이러저러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을 조금만 뜯어보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정부 투자 출연기관의 경우 신규인력 채용은 경영합리화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예산배정이 전혀 없다. 이것은 현재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저하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근속연수가 오래된 고임금 노동자의 퇴출 즉, 명퇴나 정리해고를 유도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법안은 겨우 910억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어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예산의 대부분이 공공근로의 확대에 집중되고 있다. 이것은 결국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확대는 직업상담원과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동자들의 연이은 파업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부가 최근 월급 76만원 수준의 국민연금 상담사 1,000명을 채용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경총과 노총을 끌어들여 일자리 사회협약을 체결했지만, 절차와 과정의 문제는 차지하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일자리 창출을 통한 실업의 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선언적인 내용만 가득 들어있을 뿐 구체적인 대책이 나와 있지 않다. 오히려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임금억제를 강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이러저러한 대책은 실업의 책임을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리려 하는 것이다.


4. 주 5일/40시간 노동제10) 도입의 문제점


이런 상황에서 올 해 7월 1일부터 시작되는 법정노동시간 단축은 고용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절하게 도입된다면 고용문제 해결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 이렇다면 노동연구원이 계산한 6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임금억제, 노동강도 강화, 비정규직 증가만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각 사업장에서 도입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은 매우 파행적이어서 일자리 창출과는 무관하게 도입되고 있다. 자본측은 인력충원을 거의 하지 않고 기존인력의 활용도를 높여(노동강도를 강화하여) 대처하고 있으며 간혹 조금 인력충원계획이 있더라도 이것이 정규직 채용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심지어는 사업장에 따라서는 인력을 감축하기까지 한다.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단체협상 과정에서 연월차 축소, 생리휴가 무급화, 최초 연장 4시간 할증률 1.25 등이 관철되면서 통상임금을 넘어 임금총액과 퇴직금까지 전체 임금이 확실히 보전되지 않음으로 해서 실노동시간을 단축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11)

공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부산지하철의 예를 들어보자. 회사는 단협을 대폭 개악한 안을 제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연장수당 할증률 하향, 생휴무급화, 연월차 축소(이는 퇴직급 지급기준의 하향을 가져온다) 이외에도 상여금지급기준 하향, 특별휴가(효도휴가, 위로휴가 등)에서 장기근속휴가, 퇴직휴가 삭제, 토요일 유급휴일 대상 제외 등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3급 이하 정년을 단축하려 하고 있고, 2급 1급의 경우 직급별 체류연한이 넘으면 임금 및 승호를 동결하려 하고 있고, 정년이 3년 이하일 경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이런 (생애) 임금성 항목 이외에 조합활동, 조합간부 지위보장 등 조합활동과 관련해서도 개악안을 제출하고 있고, 담당급 임용 승진에서 연령기준은 없어지는 대신 포상기준이 새로 생기고 시험 비중 높아지는 등 승진제도의 개악안도 제출하고 있다. 이런 개악안이라면 어차피 노동시간 단축도 조합에서 이야기한 17시간 정도 단축되는 것도 아니고 출퇴근 시간도 이전보다 훨씬 불규칙해진 마당에 노동시간단축 안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한편 서울지하철공사와 철도운영공사로 전환될 철도청은 흑자경영계획 또는 적자 축소를 이유로 대폭적인 기존인원의 감축과 신규필요인력의 대대적인 비정규직 채용을 계획하고 있어, 노동시간단축으로 삶의 질도 높이고 고용도 늘이겠다는 노조의 소망이 채 꽃피워보기도 전에 공사와 철도청측의 대대적인 노동권 훼손 공세에 맞서 힘겹게 투쟁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5. 결


현재 고용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과잉축적-이윤율 저하라는 자본의 구조적 위기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심화를 통해서 극복하려 한 데 있다. 이를 통해 자본은 이윤율을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그것은 한편으로는 임금억제, 실업 및 비정규직화, 노동강도 강화 등 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부채의 사회화를 통해 재정적자 및 정부부채 증대를 통해서 가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국적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한국의 기업들에서는 새로운 투자는 발생하지 않고 성장은 정체하고 있으며 고용문제의 해결은 난망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진행되는 정부의 실업대책은 미봉책에 그치고 있고, 노동시간 단축은 근로조건이 유지되면서 실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일자리도 늘어나는 형태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인원동결, 실노동시간 유지 속에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비정규직화가 확산될 가능성마저 예상되고 있다. 그야말로 누더기 시간단축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궤도부문을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 및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투쟁은 정권과 자본의 이러한 누더기 시간단축을 분쇄하고 노동권이 보장되고 일자리를 늘리는, 그래서 실업의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젊은 실업자들에게 다소나마 희망을 주는 노동시간단축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현재의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다 풀 수는 없을 것이다. 고용문제의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 정부 및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와 초국적 자본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그리고 이 체제를 유지하고, 확대하고, 공고화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다양한 전쟁들과 무력시위에 대한 반대운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1) 이 글은 공공연맹, 일자리창출 토론회 (2004.7.13/14)에서 발표되었습니다.


2) 2004년 들어서 외국인의 주식투자는 더욱 왕성해지고 있는데 이로 인해 4월 말 현재 외국인 보유주식 비중은 시가기준으로 43%가 되었고 금액은 약 165조원으로 전년에 비해 약 23조원이 늘어났다. 외국인은 올해 4월말까지 약 11조원 정도 추가투자를 통해 평가액이 전년에 비해 약 23조 가량이 늘었으니까 단순 계산으로 올해 들어서만 약 12조 정도의 평가이익을 얻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금융감독원, ‘2004. 4월 중 외국인 투자현황’, 2004년, 5월 12일 참조.


3) 증권거래소, ‘종목별 외국인지분률 사상 최고 현황 조사’, 2004년 1월 20일 참조.


4) 중앙일보 인터넷판 2004년 4월 12일자 참조.


5)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의 지분율 확대는 정부의 공기업 해외매각이 주요한 배경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증권거래소 통계를 보면, 정부 및 정부관리기업의 상장사 지분율은 1998년 말 19.72%에서 2002년 말 5.66%로 급감했다. 『한겨레21』2003년 9월 24일 제477호


6) 한편 정부는 『공공개혁백서』(2003)에서 이렇게 사유화한 기업에서 구조조정을 활발히 하여 순이익이 늘고 시가총액도 증가하였다고 선전을 하면서 포스코의 사례를 들고 있다. 포스코의 시가총액이 2000년 10월 4일 7조 6,606억원에서 2002년 7월 16일 12조 3,537억원이 되어 구조조정의 성과가 매우 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익의 2/3 가량은 지분에 비례하여 초국적 금융자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계적인 경제관련 미디어인 불룸버그통신이 지난 대선에서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를 계승한 노무현을 지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확히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 행동이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의 가속화는 노동자 민중을 위한 길도, 한국경제를 위한 길도 아니다. 단기적으로도 아니고 중장기적으로도 아니다. 언필칭 ‘신자유주의 개혁’을 주도하고 있고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집단은 정확히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옹호하고 있다고 하겠다.


7) 한국은행, ‘외국자본의 은행산업 진입영향 및 정책적 시사점’, 2003년 12월 19일


8) 초국적 자본은 이런 이익에 기초하여 막대한 배당을 해가고 있고, 주식시장에서만 98년부터 2003년까지 약 90조원의 평가이익을 얻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비상장 기업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9) 이 장은 나상윤 공공연맹 정책실장의 글, “심각한 실업문제의 해결은 공공부문 인력충원과 고용창출에서 출발해야 한다 - 공공부문에서 고용창출은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 ”에서 본인의 허락 하에 전재하였음을 밝혀둔다.


10) 주 5일/주 40시간 노동제는 미국에서는 약 70년 전에, 여타 선진국에서는 벌써 몇 십년 전에 도입되었다. 미국에서는 대공황 뒤 주당 30시간 노동제 운동이 일어났었고 프랑스에서는 최근 35시간제가 도입되었다. 케인스는 1930년에 1백년 뒤, 즉 2030년경에 주 3일/주 15시간 노동제를 예상한 바 있다.


11) 주야 맞교대 연장 특근이 일반적인 대기업 제조업체에서 인력은 거의 충원되지 않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맞선 연대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종훈> [민대 2004 7/8 확대경1]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맞선 연대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최저임금현실화투쟁 평가와 과제 -







이종훈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사무국장)



최저임금 결정이후, 더욱더 고삐를 잡아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근로빈곤층이라고 불리는 가난한 노동자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불안정노동의 시대에 더욱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적용되는 최저임금수준은 이미 결정이 되었더라도 빈곤이라는 문제가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문제로 일상적으로 다가온 이상 이제 특정한 노동자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2003년 남한의 빈곤규모가 750만에 이른다는 정부 통계도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만 명이 넘었다는 조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통계가 말해주 듯, 정부기관과 언론들은 남한의 빈곤상태가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사회갈등을 부추긴다는 투로 걱정하면서도, 저임금과 빈곤문제의 책임을 결국 개인의 무능력으로 돌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불안정노동과 빈곤의 일상화가 구조화된 현재,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최저임금 근저에 머물고 있거나 그 이하선에 있는 저임금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점점 더 분명해 지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된 최저임금은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적용된다.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계는 요구안을 제출하고 이를 압박하기 위해 여러 시민단체들과 이를 공동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비록, 여론의 홀대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과 여성 등 최저임금과 직접 관련된 주체들이 상반기 내내 투쟁을 조직화하였으며, 올해는 한시적이고 동원의 성격이 컸지만 조직된 노동자들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우리가 올해 최저임금현실화투쟁에 주목하고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동안 노동운동진영이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을 규합하거나 또는 독자적인 여론전에 몰두해 왔던 것에서 벗어나, 최저임금의 대상이 되는 주요 주체들이 모여 지속적인 투쟁을 조직하고 실질적인 요구를 진행하게 되었다는 점만은 아니다. 비록 6월 25일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당일, 교섭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이것만으로 이번 투쟁을 재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보다도 더 핵심적인 것은 노동유연화 시대,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최저임금제의 현실화를 위한 투쟁이 갖는 또 다른 의미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불안정노동과 빈곤의 문제가 전체 노동자민중의 문제라면, 노동자운동은 이제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상반기 혹은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6월 한 달을 넘어서는 계획과 실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안정노동-빈곤의 시대, 2004년 상반기최저임금투쟁을 돌아본다?


(1) 조금씩 노동자운동의 연대를 확장해온 최저임금현실화투쟁


민주노총은 합법화가 된 이후 2000년부터 최저임금위원회에 참가했다.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최저임금적용에서 제외되고 있었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시작되었다. 2002년에는 지하철 청소용역노동자와 전북지역에서 올라온 환경미화노동자를 중심으로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농성투쟁이 있었다. 이때 최저임금현실화투쟁을 전개하였던 노동자들은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많은 노동자들의 연대가 실현되지 못했지만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의 중요성을 알린 선도적인 투쟁이었다. 그리고 2003년에는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이 한 단계 상승하는 해 이기도 하였다. 다만 최저임금심의위원 사퇴를 두고 ‘저임금노동자에게는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었는가’ 또는 ‘최저임금투쟁의 상승을 위한 결단이었다’는 등의 상반된 평가가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2003년도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최저임금 결정방식과 제도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사회적으로 폭로하고, 운동 내적으로는 최저임금현실화투쟁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의 확산과 연대가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한해이기도 하였다. 2004년 최저임금투쟁은 그 연장선에 있었다.

올해는 최저임금투쟁이 양적이나 내용적으로 상승한 한 해였다.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각 산별노조는 올해 임단투의 주요내용으로 산별최저임금을 요구하였다. 산별최저임금협약을 쟁취한 금속노조의 경우 금속사업장내의 이주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내용을 이루어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직된 노동자의 힘으로 최저임금현실화 쟁취하자'라는 슬로건 하에 진행된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앞 아침집회에 결합 한 투쟁사업장은 비록 투쟁과정에서 한두 번의 결합이지만, 최저임금투쟁의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비록 많은 단위노조나 산별연맹에서는 최저임금현실화의 요구를 내세우고 있지 않지만, 현재의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분절화를 극복할 수 있는 주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만큼 확산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투쟁은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이 하는 것이고, 시혜적이며 동정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집회동원이나 제도개선의 내실화뿐만 아니라 조합원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총연맹과 각 연맹의 비상한 노력 또한 요구된다.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저임금노동자를 생존권을 쟁취하는 의미와 노동자내부의 격차를 해소한다는 의미도 존재한다. 노동자내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체노동자들의 조직적인 결합이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최저임금 투쟁은 최저임금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나 그 이하로 받는 노동자의 투쟁만으로는 극복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한 부분이다. 노동자운동의 연대성의 회복이란 측면에서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지속적으로 기획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2) 노동유연화 분쇄, 불안정노동철폐로의 최저임금현실화투쟁의 의미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연대성의 회복과 더불어 노동유연화와 빈곤에 맞서는 주체를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상반기 최저임금농성투쟁이 들어가기 전에 진행된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공동투쟁’은 비록 노동자민중의 광범위한 참여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기간 불안정노동자들의 연대를 이어나가고 상승시키기 위한 계획이었다. 올해도 장애인 이동권․교육권 투쟁은 계속되고,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쟁취를 위한 농성투쟁이 해를 넘어 계속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또한 비정규노조를 중심으로 각각 전개되고 있지만, 이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쟁취를 위해 사업장들을 기계적으로 한 데 묶을 수 없는 노릇이다. 최저임금․최저생계비현실화 투쟁은 각각의 사업장과 지역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공동으로 내걸고 공동투쟁을 조직화하는 유력한 매개가 될 것이다.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투쟁이 저임금 노동자와 최저생계비이하로 생활하는 빈민들의 투쟁만으로 국한되지 않는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라는 주장에 대해 이를 임금인상 투쟁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현실화하자는 주장은 단순히 최저임금 인상률을 두 자리로 유지하자는 것을 훨씬 초과하는 의미를 가진다. 만약 그 의미가 두 자릿수 인상에 그친다면 물가인상률을 훨씬 상회하는 생계비 인상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이 자본의 숫자놀음에 농락 당할 수 있다. 현실이 증명하듯 매년 최저임금을 상향조정하고 그것이 심지어 물가인상률을 초과한다고 하더라도 저소득층 노동자는 의료보험료, 교육비, 주거비 등 높은 생계비 지출에 따라 빚에 떠밀려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자본이 왜 이러한 전략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데 있다. 경제위기 극복방식으로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적정(3~4%) 물가상승률을 유지하는 선에서 경기를 부양한다. 국가와 자본이 제한적인 수준에서 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만들기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 민중은 항상적인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 낮은 임금의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낮은 임금의 유지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치로 인식되고 있다. 즉,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이자율을 조정하며 임금의 인상폭을 지속적으로 낮춘다. 그리고 저임금 노동자들이 비정규, 하청, 용역업체와 숙박․음식․서비스업 등 보다 유연적인 노동시장에 참여하도록 강제한다. 뿐만 아니라 자본은 소매금융시장을 자본의 수익원으로, 개발․공격적인 사업대상으로 삼아 노동자 개인이 지출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켜왔다. 그 결과 실질임금은 꾸준히 상승하였고 경제상황도 다시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노동자 민중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는 것이다.


(3) 최저임금위원회의 객관적인 한계는 인식해야


때문에 최저임금의 현실화 과정은 기본적으로 최저임금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협약을 통해서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인상률로 제한된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라는 것은 그 자체로 주먹구구식의 산출방법을 지니게 되며, 책임소지도 모호하게 만든다. 사실상 이러한 생계비를 최저임금을 통해서 보전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 보면, 자본에게도 국가에게도 그 책임은 돌려지지 않게 된다. 사회적 임금을 국가가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 중소영세자본이 보장해 주어야 하는지도 애매한 상황을 자초하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구조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현재의 최저임금제와 최저임금위원회를 매개로 한 최저임금의 현실화 투쟁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객관적인 한계는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은 임금인상 투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서,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는 투쟁으로서 자리매김 될 때만이 그 의미가 분명해 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최저임금의 현실화는 실제 신자유주의 공세로 인해 야기된 불안정노동을 철폐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은 최저생계비의 현실화와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가 포함되어야 하며, 동시에 비정규직, 이주, 여성, 장애, 실업 등 불안정 노동자들의 투쟁과 적극적으로 연대한 가운데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불황이 구조화된 시대, 노동이 유연화 된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 민중은 스스로 단결하여 투쟁하지 못하면 경제상황과 시대상황의 볼모로 희생을 감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합의된 최저임금 제도개선위원회는 선언적 의미의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최저임금위원회 안에 제도개선전문위원회가 설치돼 7월 2일부터 △최저임금 수준을 전체 노동자 임금의 1/2로 법제화 △공익위원을 노사단체가 추천 △택시노동자, 감시․단속적 노동자 등 최저임금 적용대상 확대여부 △최저임금 적용시기를 현행 9-8월에서 1-12월로 교체 등 제도개선 사안을 다룰 예정이지만, 정부의 유력한 정책공급처인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제출한 ‘최저임금 제도개선’안을 보면 대부분이 현행유지를 선호하고 있어 그 실효성 또한 의심이 가는 상황이다.


최저임금․최저생계비현실화를 위한 정권과 자본과의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지 15년이 흘렀다. 최저임금제도는 ‘국가가 노사간의 임금결정과정에 개입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함으로서, 저임금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제도는 매년 갱신되는 최저임금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전 사업장 노동자 평균 임금의 1/3수준이어서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국가의 약속은 자본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으로 변해버린 상황이다. 최저생계비의 기준이 되는 기초법제도 역시 구조조정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자민중의 삶의 파탄을 치유한기는커녕,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을 정당화하기 위한 보완물로 실재하고 있다.

'최저생계를 보장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라' , '모든 사회구성원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라'. 이것은 이번 투쟁을 하는 해당주체들의 소박하지만 정말 처절한 요구이다. 동시에 이러한 요구가 전체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 요구로 대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 투쟁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개별임금인상 투쟁의 한계를 극복케 하는 공동의 논의와 토론, 그리고 연대의 확대를 도모하는 가운데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저항주체를 형성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첫째,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 투쟁에 대한 단위사업장과 노동자대중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다. 아직 노동자운동진영에서조차 최저임금투쟁은 자신과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상당하고, 최저생계비의 개념조차 생소한 노동자들과 빈민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투쟁에 연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의 인식을 확장해 나가기 위한 교육이 필수적일 것이다. 둘째, 단위사업장과 산별연맹(노조), 지역을 망라한 공동투쟁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는 연대성의 약화와 주계급주체형성이 난망해졌음을 뜻하는 것일 게이다.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 투쟁을 중심으로 노동자내부의 격차와 위계화를 지양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점증하는 구조적 위기와 불황의 시대, 노동자민중의 수탈을 아예 제도화하려는 획책이 정권의 각종 로드맵을 통해 난무하고 있는 지금, 불안정노동-빈곤에 맞선 연대투쟁의 대상과 폭은 더욱 크게 열려있다. 올해의 최저임금제현실화 투쟁은 비록 한시적이고 제한된 주체의 투쟁이었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이 한판 싸움의 커다란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위법성을 밝힌다. <고영대> [민대 2004 7/8 정세초점 3]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위법성을 밝힌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제3조)와

발동 요건(제2조)에 근거하여-1)







고영대 (평통사 연구위원)



냉전 종결 직후부터 미국이 추진해 온 주한미군의 이른바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이 최근 들어 한미 양국에 의해 기정사실로 굳혀지고 있다. 주한미군이 대한민국의 방위를 넘어서서 동북아 지역으로 작전 반경을 넓히게 되면 동북아 지역은 무한대의 군사적 대결과 군비경쟁, 준전시와 다를 바 없는 항상적인 전쟁위협에 놓이게 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민족 통일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난관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이와 같은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은 그 적용 범위를 대한민국 영토로 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 또 그 발동 요건을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이 있을 경우로 한정한 제2조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그런데도 최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의도적으로 혹은 무지에서,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 해석하여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 마치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법적 근거를 갖는 것인 양 국민을 오도하고 주한미군과 한국 정부의 반국가적, 반민족적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이를 막으려는 투쟁에는 재갈을 물리게 되는 일부 논자들의 무책임한 주장이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방치한다면 작금의 한미동맹 전환 과정에서 우리는 주동성을 상실하고 한미동맹의 퇴행적 결과를 무기력하게 지켜보고만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 조문 자체를 따져볼 필요도 없이 몇 가지 정황만 가지고도 우리는 주한미군의 동북아 기동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불법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만약 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이미 동북아나 태평양 지역으로 되어 있다면 지금 미국 측이 새삼스럽게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들고 나올 필요가 없으며, 한국 정부의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한 동북아나 태평양 지역에서의 한국군의 작전도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의무로 되며, 이를 막으려는 한국 당국의 의도가 오히려 불법적인 것으로 되고 만다. 그런데도 한미 당국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구태여 어려운 공론화 과정을 밟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 불법성의 근거를 조약과 관련 문서를 토대로 밝혀 보자.


1. 본 조약 및 관련 문서상의 규정


1) 본 조약의 규정


① 조약의 적용범위는 각 당사국의 영토로 한정되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은 제3조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그 적용 범위와 관련하여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 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 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행정 지배 하에 있는 영토”란 북한 지역을 제외한 남한만의 영토를 의미한다. 또한 “행정 지배 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가 의미하는 바는 당시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정권이 무력공격으로, 곧 불법적으로 북한 또는 그 일부 지역을 점령했을 때 미국이 이를 인정해 주지 않는 한 이 지역 역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지역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이는 대한민국 밖의 무력 충돌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는 명백히 대한민국의 영토 내로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미국에 대해 적용할 경우 그 적용 범위를 어디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에 대한 많은 논자들의 혼란과 확대 해석도 상당 부분 여기서 비롯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를 미국에 적용할 경우 그 적용 범위는 미국 본토와 태평양 상의 미국 영토, 곧 하와이나 오키나와(73년 일본에 반환되기 전), 괌 등이 해당된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 본토나 태평양 상의 미국의 행정 지배 하에 있는 영토로 국한될 뿐, 미국의 행정 지배 하에 있지 않는 동북아시아나 태평양, 그 밖의 다른 지역은 결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일부 논자들은 태평양 상의 미국의 영토를 태평양 지역 전체로 확대 적용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마치 태평양 지역인 양 부당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②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남한 영역에 대한 미국의 방위만을 의무화 하고 있다


그런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2)도 있다. 이 견해에 의거하게 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에 당연히 미국 본토와 태평양 상의 미국의 영토는 포함되지 않는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는 본 조약의 체결 배경 및 당시 대한민국의 조건과 능력, 그리고 양국 간의 관계에 근거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과정에서 발생한 마찰과 갈등 때문에 이승만 정권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웠을 만큼 미국은 조약의 체결을 반대하였다.

또 조약 체결 당시 북한에 중국인민지원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점, 휴전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는 이승만이 공공연하게 북진무력공격을 내세우는 등 전쟁 상태와 다를 바 없었던 점, 미국의 원조 없이는 군대조차 유지할 수 없는 당시 남한의 조건 등을 생각한다면 미국에 대한 방위가 남한의 과제나 의무가 될 수는 없었다.

더욱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의 “행정 지배 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라는 규정은 미국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에 적용하기 위해서 도입된 표현으로 봐야한다. 당시나 지금이나 한미관계를 고려할 때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에 따라 향후 미국의 행정 지배 하에 들어오게 될 영토에 대해서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권한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형식적으로는 쌍무조약적 성격을 지니나 내용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방위 의무를 규정한 편무조약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만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편무적 성격이 아니라면 주한미군에 대한 전 국토 무상 공여와 일방적, 배타적 주병권을 허용한 4조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편무조약의 예로는 1951년 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구 일미안보조약을 들 수 있다. 미국에 의해 무장해제된 일본은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질 능력이 없었다. 이에 구 일미안보조약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동일하게 제1조3)에서 주일미군에 대한 전 국토 무상 공여와 일방적, 배타적 주병권을 허용하였다.

1960년의 신 일미안보조약 역시 편무조약이다. 당시 일본은 자위대4)라는 무장력은 갖췄으나, 집단자위권을 부정한 평화헌법 규정상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질 수 없었기 때문에, 비록 쌍무조약적 형식을 띠었으나 사실상 편무조약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신 일미안보조약이 그 적용 범위를 제5조에서 “일본국의 시정 하에 있는 영역”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서 명확히 확인된다.

그런데 신 일미안보조약은 제4조에서 “일본 또는 극동의 국제평화와 안전에 위협이 발생할 경우 어느 일방의 체약국의 요청에 따라 언제든지 협의한다”고 하여 제6조5)에서 규정한 주일미군의 주둔 목적과 역할을 일본이 뒷받침하고 협조하도록 함으로써 조약이 쌍무적 성격을 갖도록 보완하고 있다.

또한 신 일미안보조약은 구 일미안보조약이 보장한 주일미군에 대한 전 국토 무상 공여 및 일방적, 배타적 주병권을 부분적으로 부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신 일미안보조약은 공여될 시설과 구역을 하위 협정에서 규율하기로 하는 한편 임대방식을 도입하였으며, 후일 비록 허울뿐인 것으로 입증되었지만, 주일미군의 일방적 주병권을 제약할 수 있는 ‘조약 제6조의 실시에 관한 교환공문’도 교환하였다.

이와 같이 구, 신 일미안보조약과 비교해 볼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편무조약적 성격은 더욱 뚜렷이 부각되며, 이에 따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도 미국의 영토가 아닌 대한민국 영토로 한정된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편무조약이 아닌 명실상부한 쌍무조약으로서, 한국이 미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적용 범위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태평양 상의 미국 영토로 국한될 뿐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될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하다.


2) 조약 관련 문서상의 규정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당시 한미 양국은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체결 직전까지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곧 적용 범위를 남한으로 국한시키려는 미국과 이를 한반도로 확대하려는 이승만 정권이 막판까지 충돌한 것이다. 결국 미국의 의지가 관철되었는데, 조약 관련 문건과 체결 과정에서의 몇몇 사례를 보더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남한으로 국한시키려는 당시 미 행정부와 국회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먼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함께 체결된 미국 측 양해사항(교환의정서)은 “미국은 위 조약 3조에 의거하여 일방국이 외부로부터 무장된 공격을 받을 경우를 제외하고 타방국을 원조할 의무가 없으며 또한 현 조약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행정 지배 하에 합법적으로 인도될 것으로서 미국이 시인한 영토에 대하여 공격을 받았을 경우를 제외하고 한국에 대하여 미국이 원조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하한 것도 있을 수 없다”고 하여 남북 무력충돌 결과 남한 영토로 된 지역이라고 할지라도 미국이 인정해 주지 않는 한 적용 범위가 될 수 없는 것으로, 조약 3조를 보다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반면 이승만 정권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초안에 “한국의 영토로부터 중공 침략자들을 몰아내는 권리를 포함하여 한국의 내정문제에 관해 완전한 주권을 가지고 있음에 동의한다”6)라는 구절을 반영시키고자 하였으나 미국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당시 이승만 정권의 무력공격을 막기 위한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북을 상대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당시 북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인민지원군과 나아가 소련, 곧 동북아 지역에서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과정에서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양국 간의 심각한 대립과 갈등은 어디까지나 북한 지역을 적용 범위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핵심 쟁점으로 하였으며 한반도를 넘어서서 동북아나 태평양을 적용 지역으로 고려할 처지나 조건,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대한민국 영토로 한정되어 있다는 견해, 곧 동북아나 태평양 지역이 적용 범위가 아니라는 견해는 보수적 연구자들에 의해서 이미 주장되어 온 것으로, 결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90년대 초의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에 대비하여 정부에 대한 정책 건의를 목적으로 작성된 한 연구7)는 현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8)를 “한국의 안전과 극동에서의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기여하기 위하여 미합중국은 그의 육․해․공군의 병력의 한국 내 시설 및 구역의 사용권을 허여 받는다”로 개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과 역할 및 책임이 명시되어 있지 않는 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안된 것이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동북아나 태평양 지역이 아니라는 인식에 토대하여 나온 주장이다.

또한 한 연구자9)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대한민국 영토와 미국 본토 및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미국의 관할 하에 있는 영토로 보고 있다.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신 일미안보조약 제4조와 달리 ‘극동지역’의 문제가 협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대한민국이 극동지역의 방위에서 고립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협의 대상에 극동지역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 역시 극동지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상의 적용 범위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3) 현 한국 정부의 입장―적용 범위를 대한민국 영토로 한정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에 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대한민국의 영토’로 한정하는 입장이다. 지난 해 10월 초의 제5차 ‘한미미래동맹정책구상회의’를 앞두고 양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대립하였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3조의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공격”을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의 근거로 들었고, 한국은 외통부 조약국의 논리에 따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허용하는 근거가 없다고 맞섰다고 한다(중앙일보, 2004. 1. 27). 그러나 한국은 결국 법리를 무시하고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허용하는 정치적 합의를 해주었다.

최근 주한미군의 감축이 공론화된 후 반기문 장관 등 외통부 관료들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임을 재확인하면서 그 적용 범위에 대해 ‘대한민국 영토’로 다시 한 번 선을 긋고 있다.


4) 조약의 전문 및 2조10), 3조에서 표현된 ‘태평양 지역’ 또는 ‘외부로부터’의 용어가 갖는 의미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태평양’이란 용어를 들어 적용 범위를 태평양 지역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내 일부 논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조약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검토 없이 피상적이고 자구에 매달린 주장일 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문에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평화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당사국 중 어느 일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있어서 고립되어 있다는 환각을 어떤 잠재적 침략자도 가지지 않도록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대하여 그들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태평양 지역에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조직이 발달될 때까지…” 등의 표현이 나온다.

조약의 전문은 일반적으로 조약 체결의 목적과 지향 등을 담고 있다. 전문의 ‘태평양’이라는 용어는 “평화기구를 공고히” 한다든지 ‘공동으로 방위한다’든지, ‘태평양 지역의 안전보장조직을 건설한다’는 등의 조약 체결의 포괄적인 목적과 지향을 담기 위해서 사용된 일반적 표현이지 적용범위를 특정하기 위해서 쓰인 것이 아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문이 그에 앞서 체결된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 전문에서 거의 그대로 따왔다는 사실도 전문의 ‘태평양’이라는 표현이 적용범위가 아니라 조약의 목적을 나타내기 쓰인 표현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전문의 ‘태평양’이라는 용어는 각 조약에 고유한 적용 범위를 나타내는 용어가 아니다.

한편 제2조에는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험을 받고 있다고…”고 규정되어 있는데, 여기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이란 표현 역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발동 요건과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2조의 내용에 따라 조약 발동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는 용어로, 적용 범위를 규정한 표현이 아니다. 이 규정은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출동, 작전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3조의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라는 표현도 2조의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과 마찬가지로 조약의 적용 범위가 아니라 발동 요건에 해당한다.


2. 실천적 대응 방안 모색


1)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불법성 및 파괴적 후과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실천적 대응의 중요성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이 가져오게 될 국가적, 민족적 위기와 후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앞서 지적하였다. 북한은 물론 중국도 이미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며, 대만의 독립 움직임과 대중 선제공격작전 수립에 따른 양안관계의 긴장 고조는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과 나아가 보다 포괄적인 한미동맹의 전환은 아직 그 출발점에 서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한미동맹의 전환이 민족의 자주와 통일에 기여하는 전향적인 방향으로 귀결될 것인지, 아니면 만성적인 동북아 군비경쟁과 전쟁 위협 및 외세의 개입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맡기는 퇴행적인 방향으로 귀결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시민사회운동단체, 특히 민족민주운동세력에게 달려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와 이에 근거한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의 불법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변경을 저지하고, 이를 계기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면 개폐 투쟁을 열어 나가기 위한 투쟁의 출발점이자 한 고리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2)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주한미군 입․출입’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의 한계와 문제점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감축이 공론화되면서 대응 방안의 하나로 주한미군의 입출입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저지하고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군축으로 귀결되는 주한미군의 감축을 촉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무엇보다도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사실상 기정사실화 해주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주한미군 입출입’ 규정이 갖게 될 허구성은 일본의 사례를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일미 양국은 신 일미안보조약을 체결하면서 주일미군의 배치와 장비 등의 주요 변경 사항을 사전 협의하도록 하는 ‘조약 제6조의 실시에 관한 교환공문’을 체결하였다. 이는 구 일미안보조약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마찬가지로 주일미군에 대한 일방적인 주병권을 허용한 데 따른 문제점11)을 극복해 보고자 하는 일본의 의중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는 지금까지 무용지물이나 다를 바 없다.

신 일미안보조약은 6조에서 주일미군의 역할을 극동지역으로 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일미군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일본에서 발진한 미군 전투기를 베트남전과 걸프전에 참전시켰으며, 일본 정부는 이를 용인하였다. 주일미군의 역할을 극동 지역을 넘어 확대시키려는 미국과 일본 당국의 정치적, 군사전략적 의지 앞에 신 일미안보조약이나 관련 ‘교환공문’은 아무런 제동장치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였다.

사전협의 자체가 지닌 한계도 ‘교환공문’을 사장시킨 한 원인으로 되었다.

‘교환공문’을 이행하기 위해 일미 양국이 사전협의 하기로 한 사항은 병력 배치의 중요한 변경, 장비의 중요한 변경, 극동지역에서의 작전을 위한 일본 기지의 사용 3개 항목이다. 또한 병력 배치에 대해서는 육군 1개 사단 정도, 육군에 상응하는 공군, 1 기동부대 규모의 해군 병력을, 장비 변경에 대해서는 핵탄두 및 중․장거리 미사일의 반입 및 기지 건설을, 극동지역에서의 작전을 위한 일본 기지의 사용에 대해서는 전투작전행동만을 사전협의 대상으로 하기로 양국 간에 양해하였다.

그러나 ‘교환공문’과 양해사항은 공문구12)가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세부적인 규정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규정이 현실과 동떨어진 의미가 없는 것이거나 편법을 이용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해 줌으로써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 기동부대 규모의 해군 병력이란 미 7함대 정도의 규모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보다도 규모가 작은 주일미군은 사전협의 대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전혀 의미가 없다. 핵무기 반입과 관련해서도 항공모함이나 원자력 잠수함, 전략폭격기와 같은 핵․비핵 겸용 무기체계에 대해서는 핵무기 장착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사전협의 대상이 되지 않아 미국으로서는 일본과 사전 협의 없이도 이들 장비를 통한 핵무기 반입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심지어 핵무기를 장착했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기항하는 경우는 사전협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나아가 극동지역에서의 작전을 위해 일본 기지를 사용하는 경우 사전협의의 허구성과 기만성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우선 전투작전행동만 사전협의 한다는 것은 이동, 기항, 정찰, 정보, 경계, 보급 등의 작전행동은 사전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전투작전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전투작전명령이 일본의 영해나 영공에서 발령되지 않는 한 사전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때 엔터프라이스 항공모함과 전투기들이 일본 기지에서 발진하여 각각 북한과 남한으로 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영공과 영해를 벗어나 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는 이유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

주한미군 역할 변경 및 감축과 관련하여 뒤늦게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입출입 규정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은 일본의 40년에 걸친 사전협의제의 운용 결과를 볼 때 아무런 실효성 없는 방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하다. 그런데도 이것을 마치 대안인 양 주장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그것은 현 정부가 일본보다 나은 사전협의제를 미국에 관철시킬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설령 사전협의제를 관철시킨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상징적인 수준 이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지 않는 한 사전협의제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와 4조는 주한미군의 병력과 장비의 배치와 이동 등에 관해 전권, 곧 주한미군의 일방적 주둔권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입출입 규정을 마련한다고 해도 모법의 효력을 정지시키지 않는 한 공문구가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진실로 주한미군의 입출입을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사전협의제가 아닌 ‘사전동의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주한미군이 철수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도 신 일미안보조약 체결 당시 미국에 사전동의제를 요구하였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이렇듯 주한미군에 대한 입출입 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감축, 그리고 한미동맹의 전환기에 대한 결코 올바른 대처 방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이는 주한미군의 감축을 막거나 늦춰보려는 친미수구세력의 의도를 결과적으로 대변해 주는 주장으로 될 우려가 크다.




3)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의 법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한미 당국의 새로운 공동선언 채택 또는 하위 법체계를 통한 우회 전술 가능성


한미 당국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의 불법성을 피해 나가기 위해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거나 하위 법체계로 이를 보완하거나 또는 일본과 같이 새로운 공동안보선언을 체결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현재까지 한미 양국에서 나온 공식, 비공식 주장을 보면 한국은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유지하되 하위 법체계를 통해 보완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며, 주한미군 측에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한편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이미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되어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한편 한국 정부는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한미공동안보선언’의 채택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어느 방향이 될지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비교적 손쉬운 하위 법체계의 정비나 새로운 공동안보선언의 채택을 통한 보완에 나서려고 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폐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과는 국민 자주의식의 성장과 운동의 고양, 그리고 남북관계의 진전 정도에 따라 그 향배가 가름될 것이다.

법 규정보다는 국민 의식 수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일본의 사례가 다시 한 번 말해준다. 60년 대 초 안보투쟁이 실패(63년 ‘안보공투’ 해체)로 돌아가자 미국은 극동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는 신 일미안보조약의 적용 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일공군을 베트남으로 출격시켰다. 나아가 주일미군은 태평양 지역을 뛰어 넘어 걸프전까지 참전하였다. 그런데도 일미안보조약의 개정이나 법적 보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미 양국이 이를 보완한 것은 신 일미안보조약이 체결된 지 36년이나 지난 1996년에야 이루어졌다. 그것도 냉전 해체라는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이완 또는 해체시킬 것을 우려한 미국이 적극적으로 일본을 설득하여 ‘일미안보공동선언’을 체결한 것이다. ‘일미공동안보선언’을 통해 일미 양국은 신 일미안보조약의 적용 범위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함으로써 극동 지역을 벗어난 주일미군의 작전 범위를 법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이렇듯 일본은 안보투쟁의 패배 이후 사회운동이 약화되어 가면서 일미안보조약마저 지켜내지 못한 채 일미 양 당국의 자의적인 법 운용을 허용하였으며, 결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일 공동의 군사적 패권 추구를 뒷받침해 주는 퇴행적인 방향에서 신 일미안보조약을 개악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밝힌 대로 한미 당국은 현 한미 관련 법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하위법을 통해 상위법을 보완하는(?)―실제로는 위배하는―방식을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동북아, 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는 이미 무너져 있는 한미관계 법체계를 더욱 엉망으로 만듦으로써 중․장기적으로 더 많은 문제점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주한미군의 역할이 지역군으로 전환되면 대한민국 방위만을 전제로 하여 ‘전 국토 무상 공여’ 원칙과 일방적 주병권을 적용한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는 더 이상 성립될 수 없으며, 개정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이를 덮어두고 하위 법체계를 통해서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허용하는 불법적 상태와 반국가적 폐해를 지탱해 나가기에는 한국 정부로서도 감내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될 것이다.

또한 신법으로 구법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대체하려는 ‘한미공동안보선언’의 방식 역시 이것이 조약의 본질적 성격을 개정하는 ‘의정서’로서의 위상을 갖기 때문에 채택 또는 비준 전에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따라서 국회 심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어 한미 양국이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그렇지 않고 만약 ‘한미공동안보선언’이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신사협정으로 채택된다면 이 선언보다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규정력을 갖게 되므로 선언의 의미는 훨씬 감소된다. 이렇게 볼 때 한미 당국은 중장기적으로는 필연적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할 수밖에 없다.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한 민족적 동력, 일본에 앞서는 시민사회운동단체의 투쟁력 등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악을 저지하는데 유리한 조건이나 국민들이 여전히 안보이데올로기공세에 갇혀 있고 시민사회운동단체의 힘이 당국과 친미수구세력의 힘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이에 민족민주진영은 중장기적인 계획 하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전면 개폐 투쟁에 주도면밀하게 전력투구해 나감으로써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드리울 암운을 거둬내고 반드시 굴욕적인 한미동맹의 질긴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1) 이 글은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보 <평화누리 통일누리, 2004.7>에 기재되었음을 알립니다.


2) 백봉종, ‘한미방위조약과 미일안보조약’, 1985, p 10. 그러나 백봉종은 이 글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에 대해 방위 의무를 갖지 않는 근거를 충분히 밝히지 않고 있다.


3) 구 일미안보조약 제1조 : “평화조약 및 이 조약의 효력 발생과 동시에 미합중국의 육군, 공군 및 해군을 일본국내 및 그 부근에 배비할 권리를 일본국은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이 군대는 극동에 있어서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기여하고 더불어 하나 또는 둘 이상의 외부 국가에 의한 교사 또는 간섭에 의하여 발생한 대규모의 내란 및 소요를 진압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명시적인 요청에 따라 주어지는 원조를 포함하여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대한 일본국의 안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4) 일본의 자위대는 1954년 7월 1일에 창설되었다.


5) 신 일미안보조약 제6조 : “일본의 안전과 극동의 국제평화 및 안전의 유지에 기여하기 위하여 미합중국은 그의 육군, 공군 및 해군에 의한 일본 국내의 시설 및 구역의 사용권을 허여 받는다. 전기한 시설 및 구역의 사용과 일본 국내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는 1952년 2월 28일 동경에서 서명된 미합중국과 일본국간 안전보장조약 제3조에 근거한 행정협정에 대신하는 별도의 협정에 의하여 규율된다.


6) 정준호 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국제법적 비교 분석’ 1990.3. p. 26~27


7) 정준호 외, 전게논문, p 64.


8)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 : “상호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비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9) 김명기,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보완에 관한 연구, 2003, 6, p 15~17.


10)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 : “당사국 중 어느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정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적으로나…”


11) 구 일미안보조약에 따라 주일미군은 일본 정부와의 협의나 동의 없이 병력과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장비를 임의로 배치할 수 있었으며, 타 지역으로 제멋대로 출동할 수 있었다.


12) 多田 實, 일미안보조약, 1982. 8, 동경, p 46~4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무현 정권의 추가파병과 그 후 <최승원> [민대 2004 7/8 정세초점 2]



노무현 정권의 추가파병과 그 후







최승원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연구원)



노무현 정권은 군수물자를 실은 선박의 출항을 시작으로 이라크 민중 학살전쟁에 피를 묻히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곧이어 자이툰 부대 선발대가 이라크로 떠날 것이다. 7월말 현재까지 선박출항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군사작전이라도 하듯 출항일시를 비밀에 부치고 구축함을 동원하여 호위해야만 하는 현실은 고 김선일씨의 죽음 이후 현실화된 테러의 가능성에 대한 침략자의 공포감을 반영한다 하겠다. 지난 7월 24일에는 파병철회 집회 대오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등 노무현 정권은 폭력으로 파병철회 요구를 짓밟는 만행까지 자행하였다. 이라크파병 결사저지 각계대표 10만 릴레이단식농성으로 파병철회 투쟁도 막바지에 다다른 현재, 노무현 정권의 추가파병 결정과정과 파병이후에 발생할 제반 문제점을 짚어보기로 하겠다.


부시정권의 더러운 침략전쟁, 이라크 침공


김선일씨의 죽음을 전후하여 노무현 정권이 서둘러 추가파병을 강행한 최근 한 달여 기간은 이미 확인되었던 이라크전쟁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대중적으로 재차 확인된 기간이었다. 또한 어느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라크전쟁의 성격이 명백해진 상황이었기에 파병찬반논란 속에서 각종 정파들의 진솔하기까지 한 내면이 말끔히 드러났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지지자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또한 더러운 전쟁에 휘말리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고 김선일씨의 죽음을 통해 충분히 경고해준 기간이기도 했다.

미 상원의회 내 9.11테러진상조사위원회는 알 카에다와 후세인 정권이 관련되어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결론을 내놓은 바 있으며 이라크 침공의 또 다른 명분이었던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역시 정보조작임이 밝혀진 상태이다. 스페인의 경우 철군 이유의 하나로 정보조작을 들었고 덴마크 국방부 장관은 정보조작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도 하였다.

한국은 이미 서희, 제마 부대병력 규모만으로도 파병국 가운데 현재 8번째로 이라크에 많은 병력을 보낸 상태이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이 부시의 석유자원을 위한 더러운 침략전쟁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 마당에서도 노무현 정권은 추가파병을, 그것도 가장 많은 3000명의 대량 규모로, 또한 아직 추가파병을 실제 시행한 나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서둘러서 강행하였다. 노무현 정권은 전후 이라크의 재건과 평화정착 지원을 위한 것이며 전쟁참여는 아니라고 강변하나 이라크는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금도 사실상 전쟁상황인 곳이다. 따라서 한국군의 추가파병은 명백히 부시의 더러운 침략전쟁 행위에 가담하는 침략행위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추가파병 과정과 제기되는 의혹들


김선일씨의 피랍이 언론에 의해 알려진 지난 6월 21일 훨씬 이전인 5월 31일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노무현은 이라크주재 대사관과 외교부 실무라인을 중심으로 피랍사실 은폐여부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실시하도록 하였고 국회 역시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피랍사실 억류사실 은폐가 가나무역 및 대사관과 외교부 몇몇 실무선의 실수나 상황판단 착오였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김선일씨가 억류 중이었던 6월 중순 경 노무현 정권이 추가파병 방침을 다급하게 추진한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대사관에 김선일씨의 피랍사실을 공식통보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APTN사의 김선일씨 피랍사실 확인요청을 외교부 실무자들이 무시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6월 10일 미군이 김선일씨의 납치사실을 김사장에게 통보했던 것으로 보아(서울신문, 6.28) 적어도 미군과 미국정부는 김선일씨의 납치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한 그 시기는 한국 내 추가파병 재검토 여론이 드센 상황이었다. 6월 10일,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 67명을 비롯, 여야 국회의원 90명이 파병재검토 요구서명을 발표했던 사실을 떠올려보라. 물론 그때까지도 파병철회 분위기에 힘입어 정부의 추가파병 계획은 수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국인 피랍이 추가파병 재검토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미국정부가 가만히 있었을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피랍사실이 공론화되기 이전에 노무현 정권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추가파병을 공식화하도록 압력이든 설득이든 필요했을 것이다. 가나무역, 이라크 대사관, 외교부는 ‘깃털’일뿐 사실은폐 여부의 핵심을 찾으려면 부시정권과 노무현 정권 사이에 오갔을 모종의 연계를 뒤져야 하는 것이다.

추가파병 재검토 요구가 높았고 파병재검토 요구의 주요 발원지가 의회 내에서는 사실상 열린우리당이었던 상황에서 6월 14일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 천정배 원내대표와 정부의 반기문 외교장관, 조영길 국방장관, 청와대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 등이 참석한 고위 당 ․ 정 ․ 청 안보협의회1)가 열렸다. ‘긴급’ 안보협의회로도 알려진 그 중요한 회의가 취재진을 배제한 채 여의도의 모처 음식점에서 열린 점도 의문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의문점은 이날 정부와 청와대가 “늦어도 금주 중에는 파병 계획을 확정 발표해야 한다”, “결정이 이번 주를 넘겨서는 안된다”며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당의 입장을 조속히 결정할 것을 촉구하였다는 대목이다. “늦어도 금주 중에 파병계획을 확정발표”해야만 한다고 했던 불가피한 사유가 무엇이었는지 명백히 밝혀지고 진상조사 되어야 한다.

또한 조영길 국방장관이 “이르면 이달 중에도 선발대가 나갈 수 있다”고 하여 당초 7월 중순께 자이툰부대 선발대를 파견하려던 계획을 6월 이내로 앞당길 가능성을 밝힌 점 역시 의혹을 낳게 하는 지점이다. 더구나 국방부 실무선에서는 “추가 파병 일시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일시를 못 박지 않았다”며 “파병 지역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고 선발대가 언제 파견될지도 몰라 아직 유동적인 사안”이라는 등 신중한 입장을 밝히는 터였다2).

이날 회의와 함께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청와대와 정부의 파병강행을 뒷받침하기로 결정하였고 16일에는 노무현이 직접 당 지도부 및 당 국민통합실천위원회 위원들과 만나 파병방침을 설득하였다. 열린우리당은 곧바로 17일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확정했으며 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파병계획을 확정 발표하였다. 그토록 들끓었던 파병재검토 논의는 단 1주일 만에 일사천리로 진압되고 말았던 것이다. 며칠 뒤 김선일씨의 피랍사실이 공개되면서 정부는 추가파병 방침을 재확인하고 결국 안타까운 한 생명은 희생되고 만다.

정확한 진상규명이 본인더러 본인을 조사하라는 꼴인 상황이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문제의 긴급 안보협의회에서 한미동맹과 관련한 예상보다 충격적인 내용이 추가파병의 시급한 사유로 제시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던 점3)에서 부시정권과 노무현과의 모종의 연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 추가파병을 시행한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신뢰가 실추될 우려’라는 이유는 ‘금주 내’ 파병결정의 당위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김선일씨가 5월 31일 피랍되어 있던 같은 시기에 다급하게 진행된 파병결정 과정이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김선일씨 피랍과 관련된 은폐의혹과 관련한 감사원 감사를 지시하면서 정작 미국정부의 압력의 실체와 대통령 본인과 관련된 의혹은 덮어둔 상태이다.


소위 노무현식 개혁세력의 실체와 파병철회운동의 현실


“파병철회는 페스트, 파병은 콜레라”. 추가파병에 반대의 목청을 드높였던 유시민의 6월 28일자 발언이다. 총선 전에 2월 국회에서 추가파병 국회동의안 처리에 반대해서 홀로 단식투쟁까지 벌였던 임종석은 총선 이후 추가파병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선동가로 돌변했다. 안영근은 아예 전투병 파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테러방지법 제정까지도 들고 나섰다. 소위 386이라고 하는 민주화운동 출신들의 현재 모습이다.

이들이 이라크 전쟁의 본질을 몰랐던 것일까? 유시민은 부시와 네오콘은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집단이 아니며, 무장세력이 아니라 네오콘이 무서운 집단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또한 노무현식 개혁세력 중 상당수는 한국 변혁운동사에서 반미의 기치를 최초로 내걸고 미제타도의 선두에 섰던 운동권 출신이다.

총선 전의 올곧은 파병반대 입장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파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소위 386 개혁세력은 변절하여 돌아선 친일파를 떠올리게 한다.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일본 제국주의 전쟁에 참가하라고 그리고 정신대로 나서라며 선동했던 친일파와 다른 것은 일본이 미국으로 바뀌었다는 점뿐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라면 친일파도 할 말 많다. 날 때부터 친일파가 아니었던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구구절절한 사연이 왜 없었겠는가? 변절자가 더 증오스러운 법이다. 그들이 친일파진상규명법을 개정하려는 것은 자신들의 변절을 다른 일로 보상하려는 행위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예전 분위기에 비하면 상당히 축소되긴 했지만, 6월 23일 여야의원 50명이 서명하여 추가파병재검토 결의안이 제출되긴 했다. 그러나 7월 임시국회 상임위에서조차 다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리고 6월 초반 파병반대 여론이 대세였던 것에 비해 김선일씨의 장례식이 끝난 이후 대중적인 동력은 수그러든 상태이다. 추가파병이 낳을 끔찍한 결과가 불을 보듯 해졌고 그래서 더더욱 대중적인 힘을 받아야할 바로 시점에서 말이다.

원인은 노무현을 지지하는 친노파들이 파병반대를 외치는 것이 노무현을 흠집 낼 수도 있다고 우려하여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탄핵시 광화문을 수만의 촛불집회로 수놓기도 했던 친노세력 중 소위 ‘노빠부대’라고 지칭되는 이들은 오로지 노무현을 지키는 것만이 업이자 목표이고 그게 개혁이라고 여기며 이들 중 일부는 노무현의 처지를 옹호하며 심지어 파병이 불가피하다고 외치기조차 한다. 한마디로 앞뒤가 뒤바뀌어버린 노무현 유겐트부대이다. 노무현 지지세력 중 상당수의 이탈 움직임도 있으나 노사모, 서프라이즈 소속 노무현 지지자들이 노빠부대의 가장 극단적인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노무현을 흠집 내어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심지어 파병반대 국민행동에 참가하고 있는 단체들 일부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현실이다. 국민행동 내에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태도를 놓고 논란이 일었고 결국 노무현 규탄 수준에서 합의되었으나 일부 불만세력은 집회 속에 노무현 퇴진구호나 규탄 구호를 이유로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투쟁에 힘을 빼고 있는 상황이다.

파병반대 투쟁은 노무현 탄핵철회 집회때처럼 광화문에서 촛불집회형태로 동일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크게 대조되며 그래서 더더욱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이다. 이처럼 파병철회 전선이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투쟁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있는 책임은 노무현 퇴진을 외치는 일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친노파에게 전적으로 있다. 노무현식 개혁을 지지한다는 핑계로 결국 보수세력과 다를 바 없다면 친노세력은 개혁의 깃발을 내리고 아예 파병을 찬성하는 게 낫겠다.

지금은 친노냐 반노냐의 문제가 아니라 침략전쟁에 가담하는 파병을 철회시키느냐 철회시키지 못하느냐의 다급한 상황이다. 여기에 노무현 흠집논리가 왜 끼어드는가?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노무현 퇴진을 외쳐서이기 때문이라면 노무현을 지지하는 세력이 더 많이 참가해서 차라리 노무현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를 무력화시키면 되지 않는가? 광화문 집회 한 켠에 노무현 지지를 외치더라도 ‘노빠부대’가 광화문에 떼거지로 몰려나와 파병반대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만큼 파병철회는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아르빌 지역상황과 파병 이후


파병예정지인 아르빌은 쿠르드 자치구역의 하나로 이번 이라크 침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지역이어서 국방부가 파병부대의 안전을 강조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쿠르드족 지역은 민족갈등(대표적으로 아랍, 쿠르드, 터키)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곳이며 민정이양 과정에서 오히려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단적으로 지난 2월 1일 쿠르드 민주당사와 쿠르드 애국연맹 당사 앞의 동시 자살폭탄 공격사례가 그것인데 이라크 내에서는 다소 친미적인 쿠르드족을 적대시하는 아랍계(안사르 알 이슬람이 대표적)와의 갈등이 상존했고 지금은 쿠르드족의 자치권 부여를 놓고 양 민족간 갈등이 커지는 실정이다. 6월 발효된 이라크 임시헌법은 쿠르드족에 대한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어 이슬람 시아파 등 아랍계의 반발이 심각하다. 이는 6월 8일 이라크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향후 정치일정을 담은 유엔 결의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자치권을 보장받으려는 쿠르드족과 이를 인정할 수 없는 아랍계 사이의 반발은 영구헌법 제정과정에서 민족 간 갈등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쿠르드 애국동맹의 마수드 바르자니가 쿠르드족 민병대 페쉬메르가에 대해 재무장을 지시했다는 일부 아랍계 언론보도도 있었다.

미국 점령군과 협조관계에 있는 시아파 과도통치위원들조차 반발할 정도인 현행 이라크 임시헌법은 올해 말까지 영구헌법으로 대체될 예정인데 영구헌법이 제정되기까지의 이 시기는 한국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에 상주하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한국군의 아르빌 지역 선정을 미국이 수용한 배경에 향후 아랍족과 쿠르드족갈의 갈등이 발생할 경우 한국군이 ‘완충군’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 있는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듯이 이 지역이 앞으로 화약고가 될 곳임은 자명하다 하겠다.

군수물자를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7월 1일 텔레비전 뉴스에 이라크 어린이들을 위해 가져간다며 대포처럼 생긴 뻥튀기 기계를 시연해 보이는 병사의 인터뷰가 방영된 적이 있다. 어린이들을 기쁘게 한다는 게 하필이면 대포를 연상케 하는 뻥튀기 기계여야 하는지도 서글펐지만 “뻥”하는 소리와 함께 허연 포연을 휘날리던 천진난만한 이 병사의 얼굴에 김선일씨가 절규하는 모습이 겹쳐 보인 것이 단지 환상이었을까?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군하지 않는 한 이 선량한 젊은 병사는 언제 고국 땅을 되밟을 수 있을까? 아무런 명분도 없는 전쟁에 자원한 피의 대가는 누가 치러 줄 것인가?

최근 노무현이 3천명 파병병력 중 500명의 전사를 각오하고 파병한다는 말을 흘린 바 있다. 그만큼 한미동맹이 중요하다는 핑계이지만 사실은 부시에 대한 굴종에 다름 아니다. 김선일 씨가 부르짖었던 유언처럼, 노무현은 실수한거다. 아니, 실수 정도가 아니라 베트남 파병에 이은 제2의 박정희이자 내선일체에 이어 제2의 친일파로서 역사의 반역자이다. 그리고 피의 대가를 치르기 이전에 파병을 철회시키지 못한다면 이의 책임은 노무현을 감싸고도는데 급급했던 친노세력이 전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1) 6월 15일 연합뉴스


2) 6월 15일 연합뉴스


3) 6월 15일 경향신문 5면 45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라크, 주권이양 이후 <김정은> [민대 2004 7/8 정세초점 1]

 

이라크, 주권이양 이후1)







김정은 (사회진보연대)



당초보다 이틀 앞당겨 진행된 6월 28일 주권이양식에서 알 야와르 대통령은 “오늘이 이라크에 역사적이고 행복한 날이며, 모든 이라크인들이 갈망하던 날이고 우리가 국제사회 일원으로 다시 돌아간 날”이라고 말하였다. 과연 그 발언처럼 이라크는 완전한 주권이양을 이루었는가. 주권이양 이후 이라크의 상황은 어떠한가. 미국의 이라크 점령정책의 연장선상에 놓인 기만적인 주권 이양은 쉽사리 이라크에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기만적인 주권이양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여전히 미국에 의한 이라크 점령과 지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임시정부는 미국 점령구상을 그대로 승인해준 유엔 결의안에 따라 매우 제한된 ‘주권’을 갖고 있다. UN 결의안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2004년 6월 30일자로 끝날 것이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이 이라크를 지속적으로 지배할 수 있도록 국제적으로 합법성을 부여한 것에 다름 아니다.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새로운 결의안은 138,000명의 미군과 20,000명 이상의 연합군이 이라크를 점령하고 미국이 이라크의 정치,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했다.

결의안 분석2)에 따르면 독립적인 이라크 임시정부는 2004년 6월 30일로 완전한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6월 8일 통과된 유엔 결의안에 따르면 과도정부는 “이라크의 선출된 임시정부가 통치할 때까지, 제한된 기간을 넘어 이라크의 운명에 영향을 줄 어떠한 조치도 삼가해야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임시정부 역할의 제약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군사작전에 관해서는 미국이 이끄는 다국적군이 군사작전 상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다만 민감한 공격 작전에 대해 ‘거부권’이 아닌 이라크 지도부와 미군 지휘부의 ‘합의’ 조항을 남겨두었다. 결의안은 이미 진행 중인 이라크 국유 기업의 사유화나 이라크 국내 기업에 재건 사업의 우선권을 줄 수 없게 한 미 점령군의 명령에 대한 거부권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라크 임시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석유 통제권을 이양 받은 이후에 체결하는 계약에 대해서는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반면, 이전에 미국이 부여한 특권은 계속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결의안에 따라 2005년 1월 의회 선거를 거쳐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헌법을 작성하게 되면 2005년 12월 31일까지 헌법에 의해 정부를 선출하게 된다. 이라크의 상황은 이러한 이행의 실행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헌법 제정에 있어 어떠한 형태의 국가가 될 것인지, 다수인 시아파와 수니파에 권력 분배가 어떻게 될 것인지, 쿠르드족의 자치권 부여 여부에 따라 종교적, 종족적 갈등 해결 양상에 따라 이라크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저항세력 동향


주권이양이 앞당겨질 만큼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주권이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세를 퍼붓고 있다. 저항세력은 이라크 임시정부를 미군 점령의 연장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라크 저항세력은 14일 바그다드 중심부 그린 존에서 차량 폭탄테러를 감행해 최소한 50여명이 사상하고 북부 모술에서 주지사를 암살하는 등 지난 달 28일 주권이양 이후 최대 공세를 펼쳤다.

이라크 남부 지역에서 미점령군과 전투를 벌인 강경 시아파 알 사드르가 6월 16일 메흐디 민병대에게 해산명령을 내린 후, 2004년 1월로 예정되어 있는 선거에 출마할 합법적인 정치 단체로 전화하고 있다고 알려졌으나 최근 남부 나자프에서 다시 무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알 사드르는 7월 25일 주권이양안에 따라 18개의 각 주에서 입법부 역할을 할 국민위원회 위원을 선출하는 기구인 국민회의의 구성원을 뽑는 국민회의 선거에도 불참하였다. 주권이양 이후에도 알 사드르는 ‘정통성 없는’ 임시정부와 미국의 ‘억압과 점령’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을 표명하고 있다. 시아파 최대 정당중 하나인 ‘이라크 이슬람 혁명최고평의회’도 “이 선거 절차가 이라크의 진정한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시아파와 함께 수니파도 알라위 총리의 임시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으로 보고 자신들의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미군은 이라크 저항세력이 5천명이라던 애초 추정치의 4배나 되는 2만 명의 규모로, 저항세력의 대다수는 부시정부가 주장했던 외국 테러리스트들이 대부분이 아닌 이라크 수니파들로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 시인하였다. 그리고 이 저항세력들은 점점 더 확대 조직화되고 있으며 전문화되고 있다고 한다. 알카에다와의 연계 및 테러와의 전쟁 명분을 살리기 위해 부시 행정부는 미국에 반대하는 저항세력이 일부 외국 테러리스트들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라고 호도해왔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저항세력들과 무차별한 폭탄테러, 외국인 피랍 등을 감행하는 테러리스트들 사이에 미국 점령 반대를 위한 저항방식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외국인 저항세력을 이끄는 요르단 출신 테러리스트 알 자르카위를 살해하겠다는 이라크 토착 저항세력의 성명이 7월 첫째 주 2개나 발표되었다. 이에 알라위 총리는 취임 이후 수니파인 전 바트당원과 부족장 등의 토착 저항세력에게 외국인 세력과는 이해관계가 다르니 연합하지 말 것을 촉구하면서 일부 저항세력에게 회유의 제스처를 취하는 한편, 외국인 저항세력과의 불화설을 조장하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잇따른 외국인 납치와 폭탄테러 등을 보도하며 저항세력을 사회 혼란과 불안을 조성하는 자들로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일상화되어버린 테러와 폭력들은 미국의 점령과 이로 인한 오랜 전쟁이 진정한 원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쿠르드 자치지역의 갈등 악화


주권이양 이전부터 자치와 독립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쿠르드족 문제 또한 이라크 내전으로 갈 수 있는 도화선이다. 이라크 임시정부를 인정하는 유엔 결의안에 쿠르드족의 자치를 인정했던 이라크 임시헌법에 대한 언급이 빠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초 제정된 임시헌법에서는 2005년 영구헌법 제정 시 3개 주 이상이 찬성하면 헌법 제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규정을 두어 3개 주에 걸쳐 살고 있는 쿠르드족에 권한을 부여했었다. 이라크 인구의 15% 가량인 5백만 명 가량의 쿠르드족은 사실 이 조항을 얻기 위해 미국의 대 이라크전에서 미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다. 하지만 새 유엔 이라크 결의안에는 임시헌법 조항이 언급되지 않은 채 연방주의만이 언급되어 있다. 시아파 측은 최고 지도자인 그랜드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가 결의안에 임시헌법을 언급하지 말라고 경고할 정도로 쿠르드족 자치권에 반대해왔는데, 결국 결의안에는 이라크 국민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시아파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또한 이라크 새 정부의 주요 직책들도 아랍계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이에 쿠르드민주당(KDP), 쿠드드애국동맹(PUK)의 지도자들은 “임시헌법에 주요 요구사항이 명시되지 않을 경우 내년 1월 총선에 불참할 것이라는” 항의 서한을 부시 대통령에 보냈고, 미국에서는 이 요구를 배려하겠다고 입장을 밝혀 현재는 갈등이 봉합된 상태이다.

그러나 주권이양 이후 쿠르드족과 아랍계의 갈등은 격화되고 있다. 세계적인 유전 도시인 키르쿠크에는 후세인 정권 시절 아랍화 정책에 따라 키르쿠크에서 추방되어 에르빌 등에서 살아온 수만 명의 쿠르드인들이 몰려오고 있다. 이에 키르쿠크에서 살고 있던 아랍인들이 추방되고 있다. 1991년 이래 미국의 보호 아래 자체 의회까지 두고 자치를 누려온 쿠르드인들은 엄청난 석유 자원을 가진 키르쿠크를 차지하여 독립하려 하고 있다. 에르빌을 장악하고 있는 쿠르드민주당(KDP) 지도자 마수드 바르자니는 “이라크가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연방제 국가가 된다면 그 안에 머물 수 있지만 이점이 헌법에 보장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7만 명 정도의 쿠르드 민병대 페슈메르가는 현재 경찰서와 방위대에 분산 배치되어 지역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데 언제고 쿠르드족의 독립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2005년 영구헌법 제정 시기가 다가올수록 잠복돼 있던 쿠르드족과 아랍계의 갈등이 첨예화될 것이다. 미국의 점령과 개입으로 인해 이렇듯 종족 간 갈등이 파생되면서 분리주의가 조장되고 있다.


임시정부의 지체되는 사회재건과 불안정한 치안문제


미국의회 산하 ‘일반회계청(GAO)’ 에서 내놓은 미정부 차원의 최초의 이라크 현황분석 자료에 따르면 이라크 18개 주 가운데 13개 주의 전력사정이 전쟁 전보다 좋지 않아, 2600만 인구 중 약 2천만 명이 전력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원유 수출도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줄어든 상태이고, 실업률은 2004년 60%를 상회한다.

미국 점령당국이 당초 약속했던 2,300개 건설사업 가운데 실제 진행되는 건수는 140개 밖에 안된다. 이라크 재건비용으로 마련된 580억 달러 가운데 현재까지 사용된 금액은 137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 비용의 대부분도 군사작전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속되는 치안 불안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원도 부실하고, 경제재건도 지체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야드 알라위 임시정부 총리는 가장 시급한 현안인 치안 정상화를 위한 고육책을 쓰고 있다.

7월 7일 이라크 임시정부는 저항세력 공격 억제와 치안확립대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가안전법을 발표했다. 국가안전법은 특정한 상황에서 60일간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이 총리에게 부여되며 이에 따르면 외국인 이동 제한, 시위와 집회 금지, 우편물 열람, 통신 감청, 통행금지 등도 가능하다. 이에 이슬람 성직자들은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국가안전법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안전법을 발동하고 저항세력에 대한 사면조치 등 회유책에도 저항세력의 공격이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자, 알라위 총리는 저항세력 근절을 위한 새로운 정보기관인 총보안국(GSD)을 설립키로 하고 방글라데시, 모로코, 이집트, 인도 등에도 다국적군을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다. 알라위 총리는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들이 지난달 말 약속한 이라크 보안군 훈련 및 군장비 지원 등을 빠른 시일 내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라크 임시정부가 무장세력을 지원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이란과 시리아 등을 상대로 공세적 자세를 취하고 나섰다. 이라크 국방장관은 26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이라크에 적들을 들여보내고 있다"며 이란을 비난했다. 알라위 총리는 외국 테러조직과 이라크 토착 저항세력간의 저항방식에 있어서의 갈등을 이용하여 토착 저항세력의 애국심을 호소하기도 하고, 미군 점령 후 군대가 해체되면서 실업자가 된 전직 바트당 간부들을 재기용하면서 저항세력으로부터 `환심'을 사려하고 있다. 그리고 이야드 알라위 총리는 언론 자유 보장을 명분으로 정간조치 당했던 알사드르의 주간지 ‘알-하우자’의 복간을 허용하는 등 회유책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임시정부는 자체적으로 치안을 유지할만한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4월의 폭력 사태 동안에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이라크 경찰과 민간 방위 부대(미국이 훈련시킨 이라크 치안 병력)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도망가 버렸을 정도다. 신생 이라크 경찰과 민방위군 등 치안병력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무장능력이 떨어진다.

주권이양 이후 현재 해산된 연합군임시행정처(CPA)는 지난 6월 5일 명령 91을 선포하였는데, 내용은 이라크 내의 9대 주요 정치 당파 계열에 있는 10만 명에 이르는 무장 민병대는 국가 군대, 경찰대, 혹은 정부가 통제하는 민간안보회사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적 무장력을 통제하고자 하는 임시정부의 지속된 노력이 성공하련지 미지수다. 많은 민병대들이 이름을 바꿀 수는 있지만 똑같은 지휘체계 아래서 존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례로 시아파 이라크 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와 연관된 민병대 바드르 여단은 여전히 무장한 채로 현재는 바드르 재건부대로 활동하고 있다. 사적인 무장세력들은 언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총과 박격포를 들고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


불안정한 이라크의 미래


주권 이양 이후 이라크의 이행 과정에 따라 이라크는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시아파, 수니파와 쿠르드족 간의 종교적, 종족적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될 경우 새로운 권력구조 아래서 정치적 안정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분열과 혼돈의 상태가 지속되어 종교적 극단주의와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예전의 이라크로 돌아가려는 독재 체제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미국의 점령이 지속될수록 이라크는 안정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라크인들의 자주적인 정치체제 형성을 거세한 채 종교적 종족적 구도를 적절히 활용하여 이라크에 꼭두각시 정부를 세우고 미국의 점령을 지속하고자 하는 미국의 계획은 이미 실패하였음이 드러났다. 미국의 점령에 의해 불거진 종교간, 종족 간 갈등은 이후 종교적 근본주의나 인종 우월주의 강화, 이로 인한 배타성을 확대하며 폭력을 증대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을 안고 있다. 석유산업의 사유화와 같은 경제 재건사업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하여 사회의 양극화를 넘어 사회의 분리나 해체로도 이어질 수 있다. 치안 안정화를 명분으로 미국과 임시정부의 군사공격이 더욱 확대될수록 이라크 주변 국가의 지역을 포함한 저항이 더욱 격렬해져 미국이 오히려 장기 주둔할 수밖에 없는 사태로 확산될 수도 있다.

연합군임시행정처(CPA)가 2004년 5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라크인의 80%가 ‘미국 문민 당국도 연합군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55%가 ‘미군을 비롯한 외국부대가 곧 철수하면 보다 안전할 것’으로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주권이양이 되었다고 해서 이러한 인식이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미국의 점령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금 이라크의 미래는 불안정하기만 하다.


1) 이 글은 사회진보연대 7/8월호에 동시 기재됩니다.


2) Institute for Policy Studies에 실린 필리스 베니스의 “이라크 임시정부에 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참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