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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주자 정동영 의원, 월간 정세지 <혁명>을 구매하다!

 

대권주자 정동영 의원, 월간 정세지 <혁명>을 구매하다!

 

회원 임천용

 

 

  9월 3일 이소선 어머님 돌아가셨다는 소식 듣고 다음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갔다. 일요일 정오 전이라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며 다른 동지랑 일찍 가게 되었다. 잘 알지 못하지만 보기 싫은 사람들이 올 것 같은 느낌은 분명했다. 아! 얼마나 많은 배신자들과 어중이떠중이들이 전태일 정신을 이야기하며, 이소선 어머님을 이야기 할 것인가? 참 지독하게도 안 좋은 시대에 돌아가셨구나. 아니 40년 전 전태일 열사가 온 몸을 불사른 이후 어디, 죽음으로 항거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던가?

  장례식장 3층에 올라갔을 때에야 노동자들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상대로 사람이 많지 않아서 곧바로 조문을 마쳤다. 진정으로 노동해방을 열망하고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이 시대의 전태일이 어머님을 보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관료들을 포함해 전태일 정신을 팔아먹고 자본가들의 품에 안기려는 자들이 포함된 장례위원회 구성준비를 보았다. 하지만 아직은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이 많이 보인다.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예전에 알던 동지가 나이 지긋한 어머님을 모시고 와서 앉는다. 박래군 형의 어머님이라고 한다.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데, 20년 넘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 동안 수많은 열사들이 불의에 항거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죽었는데, 그 때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또 오늘은 얼마나 괴로울까. 그래서 아들 이야기는 꺼내지 못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오셨는지 묻는 수밖에 없다. 화성에서 혼자 오셨다고 하신다. 래군이 형도 자주 못 본다고 하신다. 예전부터 알던 동지랑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에서 발행하는 월간 <혁명>지 창간호와 2호가 있어서 그에게 주었다. 공롭게도 그 순간에 정동영이 같은 식탁으로 와서 앉았다.

 

  정동영은 정치가다운 순발력으로 모두에게 악수를 청하자마자 <혁명>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는지 재빨리 월간지를 낚아챘다. 두 권을 스르르 살펴본다. 나는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많이 있다고 했다. 사실은 민주당이라는 자본가 정당에 대한 비판보다 그들과 함께하려는 진보정당에 대한 비판이 더 많다. 자신의 계급적 입장에 충실하려는 한 개인보다, 노동자 정당을 이야기하면서 자본가 정당과 한배를 타려는 진보정당에 대한 비판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정동영이 더 이상 책장을 넘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눈앞에 앉아있는 정동영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애틋함과 계급적 위치 사이, 감성과 이성 사이의 짧지만 복잡한 투쟁이었다. 한 인간으로서 정동영이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내가 알기로 최근에 아니, 09년 용산철거민 학살사건 때부터 정동영은 자신의 방식대로 열심히 노동자 문제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리고 이소선 어머님과 함께 김진숙 동지가 있는 85호 크레인으로 함께 가기로 약속도 했던 것 같다. 당일에는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서울대 병원으로 날라왔다. 이러한 행위가 자본가계급적 계산이 아니라 맹자 식의 시비지심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월간지의 정동영 비판은 마음의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4차 희망버스 유인물에서 정동영의 이러한 행위의 진정성 여부에 대해 아직까지는 심리학자의 몫이고, 내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의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했을 때 엄청난 마음의 상처로 다가갔을 것이다.

 

  그러나 계급간의 투쟁은 이러한 애틋함과 감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만다. 인간적 애틋함과 감성은 계급적 입장과 이성 앞에서 얼마가지 못한다. 노무현이 노동자들에게 가졌다고 알려져 있는 80년대의 애틋한 감정은 90년대에 파산하고 2천 년대에 본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자본가계급의 앞잡이 역할이었다. 노동자들과 농민들, 철거민들은 예전의 환상 속에서 노무현을 대통령 만들어주고 국회의원 152석을 주었는데도, 그의 계급적 위치는 노동자들을 죽이고 농민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노무현은 자신이 약속한 국가보안법 폐지도 못시켰고,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의 경우 네 명의 동지들이 국가보안법 재판을 받고 있다. 노무현은 권력이 자본에게 넘어갔다고 다소 소심하게 핑계를 댔다. 이 소심한 고백은 자본권력이냐 아니면 혁명이냐의 선택에서 누구도 머뭇거리지 못하게 하는 핵심적 질문이다. 군대, 검찰, 경찰, 국정원, 행정부, 법원 등의 관료적 기구를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묻어버릴 것인지 아니면 국가라는 자본가 계급의 기구에 영원히 종속되어 노예로 살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하나의 뛰어난 인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는 자본가 국가라는 거대한 관료적 기구 앞에서 있어본 적이 없다. 이러한 시대는 정동영이나 민주당 그리고 민주대연합으로 포장되어 집권을 해도 결코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진보정당들의 국참당과의 통합논의는 노무현 정권에서 죽임을 당한 노동자들과 민중들에게 다시 노무현에 대한 애틋함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죽여 달라는 희극에 불과하고, 민주당까지 함께하려는 민주대연합도 마찬가지다.

 

  정동영이 소책자를 간단히 살펴보는 사이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왜 여기에 정동영이 올 수 있었나부터 여러 생각이 맴돌면서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09년 이명박 정권의 용산학살 때 정동영을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피했다. 정치인은 나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과 악수해야하고, 아무 때나 악수해야 하니 좋은 직업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영이 충분히 자본가 계급적 입장을 가지고 노동문제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민주당이라는 자본가 분파의 하나로써 개입하는 것이다. 자본가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노동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조건은 자본가 정당과 적대적인 사회주의 혁명정당이 하나의 정치적 세력으로 서있지 못한 상태이고, 경제적 조건은  사회의 양극화 심화다. 진보정당들이 자본가정당으로 기어들어가고 있는 상태는 정치투쟁 공간이 자본가 정당들의 독무대가 되게 만들었다. 이런 정치적 조건과 사회의 양극화 심화는 민주당의 좌회전이 표계산에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반한나라당이 지고지선인 자들은 자본가 야당을 향한 끊임없는 구애를 하고 있다. 진보정당들은 당원들을 볼모로 하고, 노동조합 관료들은 노동조합원들을 볼모로 하여 민주당과 함께하려고 한다. 이 측면에서 정동영이 자본가 분파의 하나로써 행한 계급적 행위들은 노동계급의 가짜 대변자들을 충분히 포섭했고 앞으로 포섭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정동영은 자기 이야기가 나왔다면서 월간 <혁명> 창간호와 2호를 자신이 사겠다고 한다. 그래서 만원 받았다. 비판이 많다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해 주었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좌우를 불문하고 반대파들의 이야기에 정통해야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측면에서 정동영은 충분히 권력에 오를 자격이 있어 보인다. 우리가 사회주의 정치세력으로 아직은 크지 않기 때문에 크게 고려하지는 않겠지만,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단상에 서있을 때 왜 노동자들로부터 야유를 받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반론이나 기고는 언제든지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다시 만나기 힘들 테니 정기구독 바란다.

 

 

  사족 : 내가 8월부터 트위터를 했는데 처음에 팔로워가 없어서 어찌하다보니 정동영과 맞팔이 되었다. 그리고 8월 18일 한진 청문회 날, 한진 쌍차 발레오 콜트콜텍 재능 등 공공투쟁단의 투쟁이 광화문에서 있었는데 얼떨결에 나와 다른 두 동지가 닭장차로 연행되었다가 30여분만에 풀려났다. 누구는 정동영이 청문회 휴회하고 경찰에 항의해서 풀어줬다고 한다. 나는 무식한 경찰들이 정세파악 못하고 과잉충성으로 잡았다가 풀어줬다고 본다. 잡자마자 정보과가 한진조합원인가 물었다는 것은 청문회중이라서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고, 당일 방침이 연행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여간 겉으로 보기에는 정동영 전화 때문에 풀려난 것처럼 보인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사회주의자들에겐 뼈아프지만 정동영에게 덕담이 될 나름의 생각을 쓰고 마무리 해야겠다.

  내년 대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정치일정이다. 안철수가 갑자기 떠올라서 여당이나 야당 모두 걱정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백신은 백신이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박원순 백신이 서울시장선거 전에 한계를 보여줄 것이다. 그 다음은 안철수 차례다. 아무리 정당정치가 썩었다 해도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 자본가 정당정치는 부패를 근본으로 한다. 자본이라는 꽃은 악취 속에서 피고, 권력을 좇는 나비는 악취 속에서 난다. 백신으로는 결코 하드웨어를 치료할  수 없다.

  민노당과 국참당의 경우는 통합하고 진보신당의 일부가 함께하겠지만 이들은 대선에서 주요한 후보를 출마시키기 힘들뿐더러, 문재인 등이 나와서 민주당과 경선을 치른다 하더라도 절대 이기지 못할 것이다. 민노당과 국참당의 통합정당은 민주대연합론자들이 많아서 국회의석 몇 개를 선거구 단일후보든 아니면 중대 선거구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약속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대선후보는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에서 누가 나올 것인가이다. 손학규와 정동영에 관해 말한다면 손학규는 한나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반면 정동영은 진보정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정치공학으로 본다면 손학규는 한나라 바로 왼쪽의 표들을 얻을 것 같아서 “진보정당”의 후보가 나오지 않는다면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반면 정동영은 복지,노동,통일의 문제를 가지고 나온다면 민주대연합은 되겠지만 민주당의 일부 표를 잃을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이때 진보진영으로 알려져 있는 민주대연합론자들은 정동영을 지지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야당의 대선후보로 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안에서 잘 싸우기를 바란다. 이기면 대선에 나가 대통령이 되어 자본가 계급의 충실한 대변자가 될 것이고, 진다면 일부이긴 하겠지만 노동자들로부터 애틋한 감정을 당분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둘 다 그리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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