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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2호] 리비아혁명 제1단계의 승리 : 혁명 전진을 위한 당면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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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혁명 제1단계의 승리

 

: 혁명 전진을 위한 당면 과제들

 

 

- 양재훈

 

 

 

  리비아혁명이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반군 전사들이 수도 트리폴리에 입성하자 민중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카다피 타도를 외치며 거대한 시위 물결로 화답했다. 카다피의 최대 지지 기반이라고 전해졌던 트리폴리에서조차 혁명에 대한 민중들의 지지가 압도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카다피를 모종의 반제투사인 양 변호하고 방어해 왔던 세력들, 예를 들어 베네주엘라의 차베스와 전 세계의 스탈린주의 조직들은 깊은 혼란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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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비아혁명과 제국주의

 

  이제 문제는 카다피 이후의 리비아가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이다. 벵가지의 국가과도위원회(NTC)를 지원하고 있는 나토 제국주의 세력들은 민중혁명의 과실을 도둑질해 가려하고 있다. 제국주의 세력들은 카다피 정권으로부터 넘어온 각료들과 군 장성, 경찰 및 정보기관의 고위급들로 구성된 친서방 정부를 들어앉히려고 하고 있다. 제국주의로부터 리비아의 독립을 지키는 것이 혁명의 당면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리비아혁명이 내전을 거쳐 승리함으로써 다시 아랍혁명은 지난 4, 5개월간의 좌절과 교착상태를 뚫고 되살아날 것이다. 그 동안 영웅적인 희생을 치르면서 투쟁을 멈추지 않은 시리아의 민중들도 리비아혁명의 승리로 크게 고무될 것이다. 지난 몇 달 만에 수천 명을 학살한 아사드 파쇼체제를 타도하기 위한 투쟁의 불길이 시리아에서 활활 타오를 것이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만 왕정체제들에서도 다시 반란이 촉발되고,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봉기)도 여기에 고무 받을 것이다. 이집트와 튀니지의 운동도 새로운 동력을 얻어 군부정권에 맞선 투쟁을 가일층 전진시킬 것이다.

 

 

  리비아혁명의 상대적 선진성

 

  한 가지 중요한 지점에서 리비아혁명은 이집트혁명이나 튀니지혁명에 비해 더 선진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기존 군대가 와해되고 거의 해체된 상태에서 수천 명의 민중들이 전투기술을 습득했고 비정규군사단위로 조직되어 무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직업 군인이 아니다. 주로 건설노동자들과 청년실업자들이다. 애초 민중혁명이 내전으로 번진 것은 카다피의 광폭한 학살 때문이었지, 이슬람 무장세력 같은 군사집단이 있어서 이집트, 튀니지와는 다르게 내전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편 이집트와 튀니지와는 달리 나토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개입이 내전 승리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당장은 리비아의 대중들 사이에 이들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환상이 깊게 퍼져 있다. 이것이 지금 리비아혁명의 전진에 최대 위협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중의 정치의식은 모순적이다. 반란 처음부터 여러 다양한 조류와 사상이 작용하고 있었다. 어느 것이 지배적인 것이 되느냐는 정치투쟁의 문제일 것이다. 가장 당면한 정치투쟁은 제국주의 세력들이 군사적 지원에 대한 대가로 석유 시설을 비롯한 각종 이권을 요구하는 것에 맞서 대중들이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당면 요구들이 필요하다.

 

 

당면요구

 

국가과도위원회에 어떠한 지지도 보내선 안 된다. 부르주아정부를 노동자정부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혁명을 연속혁명(영구혁명)으로 만들어야 한다.

 

△ 시민군의 무장해제 반대. 지역위원회들을 노동자․ 청년․ 병사 평의회로 전환시켜야 한다.

 

△ 사하라 남부 출신 등의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집단학살 전범들과 부족 간 살인을 부추긴 자들을 신속히 혁명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

 

△ 관제어용노조 해체/ 민주노조 건설.

 

△ 혁명 헌법제정회의 구성.

 

△ 카다피 체제 하에서 체결된 모든 비밀조약들을 공개하라!

 

△ 국가과도위원회가 나토를 비롯한 제국주의 세력들과 맺은 일체의 협정 폐기.

 

△ 리비아의 석유 이윤에 대한 민주적 관리. 제국주의 다국적기업들에 대한 석유 이권 제공 금지.
 
△ 정부 정규군 및 경찰의 철저한 해체. 노동자․ 청년․ 병사 평의회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인민 민병대 창설.

 

△ 리비아로부터 모든 나토 특수군의 추방. 나토 기지 금지.

 

△ 동결 자산을 외국 은행 및 정부들로부터 리비아 민중에게로 이전.

 

△ 카다피 일가의 모든 재산 몰수.

 

△ 주택, 학교, 병원 건립을 위한 대규모 공공 프로그램 실시.

 

△ 이집트, 튀니지 혁명과 연결 및 동맹.

 

△ 시리아, 예멘, 알제리 혁명들에 대한 지지 지원.

 

△ 혁명당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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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2호] 저들의 대선 상품화 전략 : 복지 ‘경쟁’, 좌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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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의 대선 상품화 전략 : 복지 ‘경쟁’, 좌클릭?

 

 

- 남궁원

 

 

 

  오세훈의 ‘악어 눈물’과 여·야당의 복지 경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세훈 서울 시장은 ‘애들 밥 못주겠다고’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보이면서, 복지 포퓰리즘을 정면 비판한다. 이 가련한 모습을 보인 오세훈의 정치노선은 무엇일까? 지난 6월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6·15선언 폐기촉구 및 대(對)한나라당 최후통첩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장은 한나라당 복지 포퓰리즘과 좌편향 정책 성토자리였다. 이 행사 주관자는 뉴라이트 전국연합과 국민행동본부다. 이들은 ‘구걸정당’ 한나라당을 비판하면서 선명한 ‘보수우파 자유 이념’ 창당을 주장하면서, 보수 애국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오세훈의 ‘악어 눈물’은 바로 보수우파 정치 이념의 생리현상이다.
 

  반면, 한나라당 보수좌파는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우파를 뛰어넘어, 유권자의 불만을 읽어내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다. 한나라당 대권주자 박근혜 전 대표는 ‘생활형 맞춤 복지’ 정치 상품을 기획해냈다. 한나라당 당 대표에 출마한 친박 인사는 “4대강 사업에 22조원을 쓰면서 복지예산에 인색한 인상을 주는 보수로는 앞으로 희망이 없다.”고 이명박 대통령을 정면 비판한다. 민주당 또한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복지 정책을 내세우며, 20조원의 재정방안을 내놓았다.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은 55조 규모의 복지 재정 확충 방안을, 진보신당은 총 59조원에 달하는 사회연대 복지국가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바야흐로 보수 좌파, 야당, 진보정당간의 복지 경쟁이다.

 

 

  공생 발전의 정체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 자본주의를 이끄는 수장답게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신년연설에서 “복지 포퓰리즘은 재정 위기를 초래하여 국가의 장래는 물론, 복지 그 자체를 위협한다.”면서 재정긴축을 주장한다. 이어서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거시적인 해법, 즉 새로운 시장경제, 국가 발전 모델인 ‘공생(共生) 발전 자본주의’를 말한다. 그래서 집권 초 ‘기업 프렌들리’를 외치던 이명박 대통령이 이제는 '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여기에 여당과 야당이 가세해서, 공동전선을 친다. 지난 8월17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회 열린 공청회에서 '전경련 해체론'까지 언급하면서 ‘재벌개혁’을 경제단체장들에게 요구했다.
 

  조선일보는 “신자유주의의 깃발 아래 시장의 역할이 갈수록 커진 자본주의 3.0 시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를 마감하고, 자본주의 4.0 시대 (따뜻한 자본주의)” 캠페인을 벌이면서, 시장 역할을 축소하고 정부, 재벌의 ‘따뜻한’ 개입을 주장한다. 
 

  그런데 여당과 야당의 재벌개혁 정치 공세에 대해, 재벌은 과거처럼 ‘초과이익공유제’ 논란 때 보여주었던 “사회주의 하자는 것이냐”면서 즉각적인 반발을 하지 않고 있다. 벌써 정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악법을 제정한 노무현 정부시절 복지 지출 증가액은 10%다. 이명박 정부는 <2010-14년 중기재정운용계획안>을 확정하면서, 복지 지출 증가액을 6.9%로 잡았다. 복지 지출 증가액이 30% 줄어든 셈이다. 따라서 재벌은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생발전’, ‘자본책임’은 정치 ‘쌩 쇼’에 불과하다.
 
 

  복지 대 반(反)복지 논쟁의 허구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 사회 복지 담론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복지 대 반(反)복지 논쟁, 복지 경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각종 지표를 보더라도, 한국 사회는 분명하게 빈곤 확대, 물가 폭등, 실업· 대학 등록금 문제, 사회 불평등 심화로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 이명박 정부 ‘이데올로그’인 박형준 청와대 특보는 인터뷰를 통해, "자본주의 이대로 가면 망할 수도, 새로운 시장경제 모델이 필요한 때”라면서, “승자 독식·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도, 재정을 계속 투입해 빈곤문제를 해소하려는 복지국가 시스템도 현재 양극화 문제의 적절한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조선일보, 2011년 8월16일자)
 

  미국 자본주의 쇠퇴, 자본주의 경제위기 심화와 유럽, 아랍지역 노동자의 격렬한 투쟁을 보면서, 지배계급의 고뇌에 찬(?) 자본주의 정세인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진퇴양난 속에서, 이명박 정부는 ‘공생발전’,‘새로운 시장경제’라는 이데올로기로 정면 돌파를 꾀한다. 긴축재정과 친재벌 시장 정책을 계속 강화한다. 최근에는 구글이 모토롤라를 인수하자, IT 산업 위기 운운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노골적으로 삼성재벌을 도와주고 있다.
 

  반면, 선명한 복지를 주장하는 세력은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표현되는 시장 만능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 이제 정부(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큰 틀에서 보면, 야당과 진보정당의 ‘복지국가’ 주장이 그렇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과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부자 증세’ 추진을 제안하면서 ‘복지동맹의 교감’을 이룬다.
 

  여기서 우리는 현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해법을 놓고, 보수우파는 정부 개입의 오류 결과로,  중도/ 진보파는 정부 개입이 부족했던 결과로 인식하고 논쟁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 시장 자율에 맡기느냐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시장경제론), 아니면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하느냐(야당과 진보정당의 복지국가론)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대립구도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내재적 특성, 즉 이윤 추구를 위해서 작동하는 ‘노동 착취 체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유포시킨다. 또한 국가의 성격을, 노동자들이 화해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으로 보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복지 대 반복지 구도는 자본주의 경제위기속에서, 노동자에게 환상을 심어준다.

 

 

  저들에 맞선 우리들의 복지투쟁은 


  자본주의 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빈부격차가 증대하는 이 시점에, 전체 인민의 복지문제는 중요하다. 다양한 사회보장 제도, 최저임금을 위한 사회적 합의, 사회적 약자 보장조치, 불안전 노동에서 완전 고용 추구 등은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안전한 삶’이다. 이러한 삶을 위해서, 자본주의 총체적 위기 속에서, 인민의 복지를 어떻게 쟁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복지를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다. 그 비용을 직접 지출하는 것은 정부와 자본가다. 따라서 복지 비용부담을 둘러싸고 노동자계급은 이명박 정부, 재벌, 자본가와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복지문제는 노동운동의 조직적이고 강력한 투쟁이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구 유럽 역사에서 복지는 계급투쟁의 산물이었다. 지금처럼 반이명박 전선 이름하에 야당세력과 연대를 통한 시혜적 복지는, 노동자 계급 단결투쟁에 해악적이다. 부르주아 선거정치에 종속된다.
 

  그렇다면 당장 인민의 복지를 위한 정세적 실천 투쟁은 무엇인가?
  현재 15대 재벌의 사내보유금은 2007년 114조원에서, 2011년에는 약 200조원으로 증가했다. 이 200조원은 금융화를 통해서 투기화 될 것이며, 이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고용불안정성을 더욱 심각하게 할 것이다. 정부와 자본을 상대로 재벌의 사내 유보금을 인민의 복지기금으로 전환하는 투쟁, 투기화된 금융기관을 노동자가 직접 통제하고 규제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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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2호] <영국 폭동> - 야만스러운 것은 폭동이 아니라 바로 벌거벗은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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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폭동> - 야만스러운 것은 폭동이 아니라

 

바로 벌거벗은 자본주의다.

 

 

- 김병효

 

 

 

  8월 7일 토요일 경찰서 항의시위로 촉발된 토튼햄 폭동은 며칠 사이 런던 북부, 북동부 도심으로 확대되다가 맨체스터, 샐포드, 노팀엄 등 인근 도시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런데 소위 ‘폭동’이라 불리는 일련의 과정들은 다양한 출신과 다양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 모았다. 영국 정부와 경찰은 이런 이유로 이번 폭동이 사회경제적인 문제와는 무관한 일탈행위로 규정하고자 했다. 언론에서도 약탈이나 폭력적인 행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서 보도하는 행태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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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여기서 폭동에 참가한 구성원들이 다양하다고 해서 이번 폭동의 주요 세력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벌어진 모든 혁명과 마찬가지로 이번 폭동 역시 하층 계급 사람들이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계급의 젊은 층들이 이번 폭동의 주역이다. 이 청년들은 20%가 실업상태에 놓여 있으며, 흑인이 50%에 이른다. 취업을 한 경우에도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며, 학생의 경우에는 등록금 인상으로 힘겨운 상황이다. 게다가 주택 문제도 심각하며, 공공지출 감소로 젊은 층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도 상당히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폭동의 주역은 누구인가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이번 투쟁이 중동이나 스페인, 그리스처럼 반정부 시위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아무런 정치적 주장도 없는 말 그대로 폭동으로 그치고 만 이유는 무엇인가? 저명한 슬라보예 지젝은 최근 논평에서 이번 영국 폭동이 뭔가 심각한 문제에 기인한 것이긴 하지만 2005년 프랑스 파리 외곽의 방리유자르 소요와 마찬가지로 폭동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작년부터 올해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영국 학생들이 명확한 요구를 가지고 저항한 것과 대비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폭동에 참가한 사람들을 두고, 헤겔이 ‘추상적 부정성’이라고 부른 것처럼 조직된 사회적 공간 바깥에 존재하는 폭도들로서 자신의 불만을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인 폭력으로밖에 표출할 수 없는 사람들에 가깝다고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러한 지적은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단 오늘날 경제위기는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며, 여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각국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 하지만 부자들은 예외다. 왜냐하면 부자들더러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 투자가 위축될 것이고, 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고, 더 큰 고통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유일안 해법은 가난한 자들이 더욱 가난해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가난한 젊은이들은 그저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알랭 바디우도 이러한 상황을 세계 없는 세상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가난한 젊은이들은 어디에도 자신을 위치지울 수 없으며, 여기서 그나마 유일하게 가능한 행동은 의미 없는 폭력일 뿐이라고 말했다.

 

 

  벌거벗은 자본주의, 도덕의 외피를 두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부와 경찰은 이런 분석을 외면한 채 폭동 초기부터 신속하게 이번 폭동을 단순한 범죄행위로 규정해 버렸다. 영국 캐머론 총리는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감 부족, 부모의 보살핌과 훈육 부족, 윤리와 도덕의식 부족 등등을 원인으로 꼽으며 심판자의 위치를 자처하고 있다. 이는 이번 폭동이 정부의 긴축정책이나 만연한 실업과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BBC를 포함한 대부분의 영국 언론 역시 이러한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이번 사태를 “허무주의적이고 야만적인 10대 청소년들의 난동”으로 치부했다.

 

  이번 폭동을 인종적 문제로 몰아가는 흐름도 존재한다. 극우 파시스트 정당인 EDL(영국수호동맹)은 엘섬 지역에서 (백인의) 영국을 지키겠다면서 거리로 나섰고, 엔필드에서는 ‘엔필드수호동맹’이라고 적인 흰색 셔츠를 입은 채 우익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처럼 흑인 청소년들의 범죄적 행태에 초점을 맞추고, 폭동의 원인을 인종적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이다. 실제로 흑인 청소년이 문제가 아니라, 흑인 청소년들이 런던의 소외된 지역에 몰려 있는 것일 뿐이다. 많은 폭동이 흑인 밀집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단지 흑인들이 소외된 지역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줄 따름이다.

 

  자본론 강의로 유명한 데이비드 하비는 최근 글을 통해 영국 언론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1871년 파리코뮌의 기억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야만’이라는 단어는 1871년 코뮌 투사들이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코뮌 투사들은 야수, 하이에나 등으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사유재산의 신성함과 도덕, 종교, 그리고 가족의 이름으로 즉결처형 당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캐머론 총리가 대안이랍시고 제시한 것과 동일하지 않은가? 비행청소년들의 도덕과 윤리, 시민의식 실종, 가족 가치의 해체에 훈육의 부족 등등을 원인이랍시고 이야기하고, 그 대안으로 시내에 16,000 명에 이르는 경찰을 배치하고, 수천 명의 시위진압경찰 훈련을 계획으로 제출하고 있다. 미국 방식대로 선제적인 체포와 발포 허용도 검토하고 있다. 소요 발생 시 통행금지 방안도 준비 중이다. 물대포와 최루 가스, 그리고 고무탄 사용은 이미 허가되었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이번 폭동 확대에 기여했다며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극우 세력들은 2005년 프랑스 방리유자르 때와 마찬가지로 인종적 편견을 조장하기까지 한다. 도대체 과연 무엇이 야만적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봐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우리의 자본주의적 일상은 훨씬 더 ‘야만적’이다. 야만적인 정치인들은 각종 위법을 저지르고도 당당하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병역, 투기, 탈세 문제 등등이 없으면 이상할 정도다. 민중들의 지갑을 터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은행들은 그 얼마나 야만적인가. 4대강 사업, 한강 르네상스 등으로 막대한 재정지출이 벌어지고 그 단물을 일부 세력들이 독식하고 있다. 각종 컨설팅업체들과 투기자본들도 민자 고속도로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공 자산을 약탈하는 데 천재적인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통신사들은 IT 강국 운운하며 역시나 가계에 엄청난 통신비용을 부담시켜 초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폭력성도 마찬가지다. 용산, 포이동 마리 등 철거 지역에서는 공권력의 비호 아래 용역깡패들이 공공연하게 폭력을 행사한다. 유성, 한진, 현자 비정규직 등 노동자 투쟁에서도 이러한 폭력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희망 버스를 가로막은 어버이연합을 보면 우익 테러도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이런 예들은 사실 이루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정치인들과 자본의 이런 야만적 행태와 이번 영국 폭동이 구별되는 점은, 이번 폭동이 좀 더 공공연하고 거리에서 이뤄졌다는 점 정도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사실 이번 폭동에서 있었던 약탈이나 폭력행위는 앞서 열거한 정치인들이나 자본가들의 행위와 별 다른 게 아니다. 그리고 폭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굳이 이런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야만적 행동을 몸소 행했을 뿐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모종의 ‘야만적’ 행동이라기보다 벌거벗은 자본주의의 본 모습이다. 캐머론 총리와 영국 언론들이 재빠르게 도덕과 윤리를 들이민 것도 바로 이 벌거벗은 자본주의를 감추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 얼마나 꼴사나운 짓인가. 실제로 캐머론 총리의 언론 조작은 초기에 상당히 성공적인 듯 보였다. 폭동 초기에 2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폭동 가담자들의 가족에 대한 복지 수당 및 주택 지원을 중단하라는 온라인 서명에 동참한 것이다. 물론 폭동이 잠잠해지고, 좀 더 냉정하게 사태를 바라보게 되면서 이런 흐름은 일주도 안 되서 싹 사라져버렸다.

 

 

혁명으로의 진화 가능성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거리로 나온 많은 군중들은 정부와, 정부의 긴축정책, 그리고 폭력적인 경찰, 부자들에 대해 반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명확한 목표나 전술의 부재 속에서 무차별적인 대상 설정, 그리고 구체적인 요구를 제기하는 데 실패하면서 약탈자들이 끼어드는 데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불평등과 박탈감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젊은 미조직 노동자들의 운동이 혁명적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파괴적 양상으로 드러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취약성일 뿐만 아니라 야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쇠퇴기 자본주의의 특징이기도 하다. 위기의 심화가 곧바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정치적 지향이 존재하지 않는 무정형의 폭력이 오히려 새로운 사회를 열어갈 노동자계급의 동력을 소진시킬 수도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물론 이 문제의 가장 큰 책임은 바로 자본주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스스로 이 문제를 풀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공은 노동자 계급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국 노동운동의 전투성 결핍과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위기는 적극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영국노동당은 기간 당세 위축과 당 내 좌파에 대한 오랜 마녀사냥식 태도와 우경화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로 혁명은 고사하고 노동당 의원 가운데서도 지역의 긴축에 대해 반대한 인원이 손에 꼽을 정도인 상황이다. 다른 사회주의 조직들 역시 가난한 젊은 노동자 혹은 실업자들과 정치적 관계를 맺는 데 실패했다. 노동조합도 비정규직노동자들 및 실업자들 조직화에 실패하면서, 젊은 좌파적 성향의 미숙련 노동자들이 버려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 젊은 노동계급으로 하여금, 노동자권력을 향한 조직적 저항, 혁명적 행동보다 무정형의 파괴적 폭력에 경도되게 한 주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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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이런 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노동조합의 조직률 감소 및 젊은 층으로부터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자본가 정부의 임금 및 일자리 삭감, 공공복지 축소 등이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 속에서 젊은 노동자들은 혁명적 정신과 과감성,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이와 함께 경찰에 대한 증오와 부자에 대한 적개심 등은 얼마든지 자본가 정부에 대한 반대로 조직될 수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계급의 조건과 상태가 변화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이나 정치조직들 역시 이 변화에 발맞춰야 한다. 영국의 폭동은 젊은 실업자 층이 자신을 대변할 어떠한 조직적 형태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50% 대의 실업률에 육박하는 흑인들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011년 8월 영국의 폭동은 노동계급의 젊은 층들이 억압과 긴축, 인종차별에 저항한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노동계급은 확고하게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 폭동 참가자에 대한 기소 및 재판 중단과 연행자 석방을 함께 요구해야 한다. 진짜 약탈자는 바로 은행과 자본가 그리고 현 보수-자민 연립정부다. 바로 이들을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 소요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은 자본주의가 더 이상 작동을 멈추고 있으며, 앞으로도 ‘정상화’ 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속에서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등장이다. 현 경제위기의 가장 큰 희생자인 젊은 층들은 혁명적 분노로 가득 차 있으며, 경찰과 부자들을 향한 대담한 행동에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긴축과 자본의 위기 전가 공격에 맞서 혁명적인 젊은 층을 노동자계급으로 묶어세우는 것이 지금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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