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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2호] 계급의식과 계급무의식 그리고 혁명

 

 

 

 

계급의식과 계급무의식 그리고 혁명*

 

 

- 오세철

 

 

 

1. 여는 말
 
  하나.

 

  80년 광주 항쟁 이후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폭넓은 탐구를 하는 과정에서 나는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올바른 만남에 주목하고, 특히 그 가운에 프로이트의 한계를 넘어서서 맑스주의와 변증법적 통합을 시도하고 나름대로 혁명적 실천을 한 빌헬름 라이히를 만나게 되었다. 1983년 「현상과 인식」 봄 호에 「빌헬름 라이히의 사회사상과 정신의학의 비판이론」이라는 글을 실었다. 그 후 1986년 그의 가장 유명한 책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우리말로 옮겨 출간했다.
  그 당시 여러 곳에서 맑스주의, 사회심리학, 혁명 사이의 관계를 발표하게 되었는데, 이른바 그 당시 운동권은 나를 맑스주의 또는 사회주의에서 이탈한 강단 사회심리학자로 비웃었다. 나는 아직도 맑스주의자로 자처하며 공산주의를 향한 혁명적 실천에 함께하고 있으며, 「맑스주의 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단 사회심리학 과목을 맑스주의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둘.

 

   좌익 공산주의 혁명그룹의 하나인 「국제공산주의흐름」이 펴내는 이론지 「국제평론」에서는 「과학과 맑스주의 운동」이라는 특집을 2009년부터 연재하고 있는데, 2009년에는 찰스 다윈 특집을 다루면서 안톤 판네쿡의 「다윈주의와 맑스주의」를 포함시켰다. 2010년 140호에서는 「프로이트의 유산」이라는 글을 실었다. 140호까지 나오는 동안 정신분석학을 전혀 다루지 않던 정통 맑스주의 혁명그룹의 변화이다.
  이제야 우리는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 혁명당, 그리고 계급의식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그 구체적 실천을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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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맑스주의 올바로 세우기

 

  아직도 맑스주의 내부에서는 “청년 맑스”와 “장년 맑스”, “주체주의적 입장”과 “객관주의적 입장”, “기계론”과 “자율론”의 허구적이며 피상적 대립이 끈질기게 버티고 있고, 공산주의 실천의 역사, 보기를 들어 제1, 2, 3 인터내셔널의 역사도 혁명 전략과 전술의 대립으로 점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분법은 맑스에 대한 편향된 독해와 이해에서 비롯되었고, 맑스의 저작에서 취사선택한 강조점의 차이이기도 하다. 맑스 역시 그가 살았던 자본주의 발전 단계의 역사적 한계에 갇혀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공산주의 혁명의 예견에 대한 성급함도 있었지만, 그것은 역사에 대한 총체적 인식으로부터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더욱 구체적으로, 더욱 이론적으로 형성해 온 과정이었다. 특히 그것은 늦게 알려져 출간된 「요강」(Grundrisse)으로 증명되었다. 보기를 들어 정치경제 분석과 의식의 통합은 「자본」의 수고를 모은 「요강」에 잘 드러나 있다.
  젊고 “미성숙한” 맑스가 소외를 말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본 1권에서 장년의 맑스의 「물신성」으로 발전한다. 그는 생산관계의 실현은 상품경제의 내부구조에서 나오고 물신성은 사회의식의 현상일 뿐 아니라 사회적 존재의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맑스 저작은 다양한 형식을 취한다. 1844년 「경제학철학수고」는 공산주의가 인간 본성의 회복이라 하면서, 내용에서 헤겔을 비판한다. 하지만 개념은 헤겔에서 빌려오고 있다. 1855년 「포이에르바흐에 대한 테제」는 오히려 역사 밖에서 추상적으로 남아있는 인간 본질을 비판하면서 사회관계 총체로서 현실을 말한다. 물론 그 사이 맑스는 1845-46년, 「독일 이데올로기」와 1847년 「철학의 빈곤」에서 인간을 보다 구체적 의미로 사용하여 구체적 인간 활동과 창조적 활동의 세계로 사물의 세계를 사고한다.
  우리는 맑스주의 올바로 세우기에서 다시 한 번 총체성을 획득하는 맑스주의 방법론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를 「계급의식」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즉 두 가지 흐름, 하나는 「물상화」의 이론적 발전을 통한 계급의식 획득과 혁명의 가능성으로, 다른 하나는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만남을 통한 계급무의식과 혁명의 가능성으로 살펴본다.

 


3. 물상화, 계급의식 그리고 혁명

 

  맑스의 비판이론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관계가 도치되어 사물 관계로 “교란”되거나, “변태적” 형식의 가치에 기반한 문명과 생산양식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교란된 형식”을 재생산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추상노동이다. 게오르그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1923) “물상화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장에서 이러한 상품물신성이 결합되어 가치형식의 효과가 사회를 장악하는 상품 물신성 이론을 발전시켰다. 맑스의 방대한 “경제적” 수고가 출간되기 전에, 루카치의 업적을 통한 이론적 돌파는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적으로 더더욱 높은 수준에서 스스로 경제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것과 같이 물상화의 구조는 인간의 의식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더 운명적으로, 더 결정적으로 가라앉는다.”1)

 

  그러나 루카치는 주체이며 객체인 프롤레타리아트가 물상화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그에게는 부르주아지의 의식이 사회적 상황의 즉시성만 이해할 수 있는 자본에 의해 부과된 물상화된 형식 안에 갇혀 있는 반면, 노동자는 상품으로서의 자신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상품 안에서 노동자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 자신과 자본과의 관계를 인식하기 때문이다.2)

 

  요약하면 루카치에게 노동자가 예속된 물상화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을 위한 탈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그 가능성이 노동과정 자체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물상화된 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루카치의 당위론적 주장은 이론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 존재의 변증법적 본질을 깨닫게 되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인 반면, 부르주아지는 일상생활이 역사적 과정의 변증법적 구조를 감추기 위해 물상화의 추상적 범주를 사용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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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존재의 변증법적 본질을 깨달을 “필요성”이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가 물상화의 효과를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루카치가 이 글을 쓴 지 1세기가 된 지금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의 물상화 경향을 극복하고 실천을 통해 상품물신성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지는 맑스주의가 부딪히고 있는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의 기초는 루카치 시대에 대부분 출간되지 않은 「자본」의 1861-63 수고인 「요강」에 있다.4)  그리고 “생산의 직접과정의 결과”와 「자본」의 독일어 초판(1867)의 1장과 부록(상품의 이중 본질(추상가치와 사용가치)과 그를 생산하는 노동(추상노동과 구체노동))에 있다.
 이러한 쟁점은 가치형식 이론가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정교화되었다. 야페는 루카치의 주장에 직접 도전한다.

 

 “결정의 자유를 가지기 위해 족쇄는 상품 형식 밖에 있어야 한다. … 그러나 물상화된 사회에서는 자율적이고 의식적인 주체는 있을 수 없다. … 가치는 생산의 형식으로 존재하는데 제한되지 않는다. 가치는 의식의 형식이다. 그것은 칸트의 의미로 선험적 형식이다. 주체가 의식하지 않는 틀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역사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가치에 의해 형성된 주체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원하고 행하는 것은 항상 상품, 화폐, 국가권력, (법적) 권리의 형식 아래에서 보이기 때문이다.”5)

 

  야페의 분석에서 분명한 것은 루카치와 반대로 외부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스스로” 자본주의에 존재론적으로 반대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포함한 주체는 없다. 그러나 그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물상화된 의식의 영향력에 대한 루카치의 주장에 강력한 도전을 하지만, 그 또한 이론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사회형식의 전복에 필요한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으로부터, 즉 물상화된 사회관계를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노동계급을 제외시키지 않았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상품물신성은 신비화, 허위의식, 그리고 노동자 스스로 그리고 당을 통해 찢어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존재의 국면, 즉 현실적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결정요인이기 때문이다.
  야페와 비슷하게 포스톤도 임노동, 임노동계급, 그리고 계급투쟁이 자본주의 역사적 발전의 추동력임을 말하지만 그 투쟁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행동양식이기보다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본다.6) 두 사람은 자본 자체도 “자동적 주체”라고 보고 임노동과 노동계급 모두 자본을 구성하며 그 안에 갇힌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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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에게 계급투쟁은 자본주의 사회관계 내에서 구체적인 경제, 정치 형식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와 수정을 가져오지만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퇴로가 없는 자본주의의 궤적에 대한 프랑크푸르트 학파, 특히 아도르노의 분석과 같은 “패배주의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 맑스의 예측과 반대로 계급양극화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부정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호르크하이머가 종교로, 아도르노가 미학에 눈을 돌림으로써 계급의식 이론을 포기했으며 혁명적 맑스주의에서 우울한 베버 좌파로 이동했다. 이와 같은 좌파 비관론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다시 말해 물상화가 총체적이라면 비판도 스스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자본주의 사회가 기계와 기술에 종속되어 생산과정이 시공간으로 분열될 수 밖에 없다는 군터 앤더스의 입장과 유사하다.7) 이와 같은 비관론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현대 자본주의 노동과정 내에서 이를 깨뜨릴 수 있는 실제적 가능성을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야페나 포스톤 같은 가치형식 이론의 비관론적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불가능성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비자본주의의 미래(공산주의)의 사회적 대표(주체)라는 입장을 부정하는 데 있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가치의 원천으로만 보고 물질적 부의 원천으로 보지 않는다. 맑스는 전체 역사의 시기 동안 가치형식은 그 소외된 형식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부의 엄청난 발전을 위한 조건임을 보았고 자본의 궤적은 가치증식과정과 실질적 부의 확장 사이의 모순을 필연화한다고 보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비관론적 입장을 지닌 야페나 포스톤과는 반대로 인간행동과 노동에 초점을 맞춘 가치형식 이론가들의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 중 본펠드는 “노동은 자본주의의 변태적 세계의 형식 자체에 맞서며 존재하는 “구성하는 힘”이다”라고 말하고 자본은 스스로 자기증식하지 않고 집합노동자의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고 주장한다.8)  라이헬트는 가치와 사용가치의 상품의 이중 본질이 노동의 이중성격에 상응하는데 사용가치가 구체노동의 객관화라면 가치는 추상노동의 구체화라고 본다. 맑스의 「자본」(1권) 독일어 초판에서 보인바와 같이 그것은 “상품에 잠재된 노동의 두 가지 다른 유형을 의미하지 않고, 동일한 노동이 상품의 사용가치에 관련되는가 아니면 단순히 객관적인 표현으로서 상품가치에 관련되는가에 따라 다르고 심지어 모순적임을 의미한다”고 지적하고 있다.9)
  여기서 어떻게 노동이 자본관계와 가치형식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가의 문제는 맑스 이론의 또 하나의 중요한 영역이다. 계급의식과 자본주의에서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노동의 생산력이 자본 안에 갇힌 물상화된 양식을 흔드는가의 문제이다. 이는 인간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문제나 철학적 인류학의 문제도 아니고 존재론적 문제도 아니다. 라이헬트에게 인간의 본질은 개인과 유적존재의 통일이며 혁명적 실천을 통해 철폐되어야 하는 전도된 형식일 뿐이다.10)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실천 그리고 집합노동자의 실천의 요소를 바라보아야 한다. 자본주의는 가치증식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실질적 부”의 생산을 위해서 필요하다. 그 실질적 부의 성장은 공산주의 사회의 물질적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 요소는 축적 과정에 필수불가결할 뿐만 아니라 그를 파괴하는 전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살아있는 노동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오직 자율적인 것은 노동력에 있다.… 자본이 노동 안에 그리고 노동을 통해 존재하지만 노동은 자본 안에 그리고 자본에 대항하여 존재한다. … 노동의 사회적 실천은 자본에 대항하여 존재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존재의 계기이기도 하다.”11)

 

  여기서 우리는 노동이 단지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형식을 만드는 불꽃”이라는 강력한 주장12)을 매우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가치 증식과 실질적 부의 증진의 모순 속에서 가치형식을 깨뜨리고 새로운 형식,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이루어내는 노동의 실천은 단순한 비관론과 낙관론을 넘어서는 맑스주의자의 입장이다.
  이제는 가치형식이론 진영 안에서의 논쟁이 맑스에 수렴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현존하는 혁명 세력이 이 문제에 어떠한 입장을 가지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계급의식과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혁명 조직 내에 존재하지만 여기서는 좌익 공산주의 그룹 중의 하나인 「국제공산주의흐름(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의 입장을 보기로 든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힘과 실천은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의 사상에 종속된 채 남아있는 한 휴면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잠재력을 효과적인 위력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계급의식이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실천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나의 계급을, 즉 자본에 의해 착취되는 특정한 계급을 형성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러한 착취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들의 투쟁을 통해서 경제 체제를 이해하고, 그들의 적들과 그 동맹들이 발견할 그 사회를 알게 된다.”13)

 

 “계급의식이 본질적으로 계급의 경험의 산물이자 실천적 투쟁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진실로 계급전체의 행동이 대체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혁명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해방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 자신의 일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매우 단순히, 프롤레타리아트가 생산과정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의식할 때,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복잡성과 야만성의 본질에 대한 모든 것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14)

 

“공산주의 의식은 신비스런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매우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공산주의 의식과 행동은 혁명 강령과 혁명 조직 없이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필요성은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본질에 의해 부과된다. 만약 공산주의 혁명과 사회의 변혁을 이뤄내려 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역사적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방법에 있어서 질적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다.”15)

 

  위에 인용한 몇 단락을 보면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식이 균질적이지 않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오랫동안 지배당해 왔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계급의식 획득이 계급투쟁과 실천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맑스주의의 핵심 주장을 담고 있지만 계급의식의 질적 발전을 돕는 혁명가와 혁명가조직의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혁명가들을 명확한 강령의 기초 위에 “별도의 정치적인 당” 속에 조직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의식적으로 투쟁의 주인이 되려는 자생적인 의지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이다. “조직적 문제는 정치적 문제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레닌)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조직적 문제 자체가 정치적 문제이다.”16)

 

 “공산주의자의 역할은, 계급투쟁의 밀물과 썰물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불꽃은 없이 연기만 피고 타고 있는 혁명적 경향들을 촉진하기 위해서 그들 스스로를 조직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 계급의 살아있는 산물이자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성숙에서 능동적 요소이다.”17)

 

 “당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당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거나, 당의 책무가 ‘사건들의 과정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계급의식을 획득하는 실제 과정에서 모든 생명을 죽여 버리게 된다.”18)

 

  이들은 공산주의 혁명의 주체인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갇혀있지만 계급투쟁을 통해 혁명적 잠재능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신뢰하는 맑스주의의 기본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또한 가치형식 이론가들의 이론적 문제를 넘어서서 혁명을 완수하는 공산주의자와 그 조직인 당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흔히 이들의 원칙적 입장을 계급주체를 고려하지 않은 객관주의적 노선으로 왜곡하는 것은 오히려 주체주의적 역편향의 부정확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를 포함한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의식과 물신성의 틀 속에서만 인식하고 혁명의 실천적 가능성을 구체화시키는 데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음을 느낀다. 그것은 혁명 주체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체제의 억압의 산물이라는 점에 있다.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더 깊은 구조가 물질적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이론과 실천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객체이면서 주체인 프롤레타리아트를 구체적으로 해명할 수 없이 때문이다. 이 문제는 계급무의식의 문제이며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만남의 문제로 나아가게 한다.

 


4. 자본주의의 억압, 계급무의식 그리고 혁명

 

  맑스주의와 심리학의 만남은 부르주아 심리학이 개인에 기반하여 역사와 계급의 구조적 맥락과 분리되고 개인의 합이 사회라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함정에 빠져 결국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에 봉사한다는 비판적 문제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가치, 윤리, 종교, 심리, 예술, 교육, 오락 등의 영역은 모두 그 사회의 계급적 기초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맑스는 실재와 경험의 신비화로서 허위의식으로, 보기를 들어 가난은 자본주의에 대한 신념이 없는 사람을 벌주는 신의 방법이라고 보는 개념으로, 소외의 개념으로, 상품의 물신성으로 이야기 한 바가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요강」에서 정치경제와 의식의 통합을 말함으로써 맑스 이후의 조야한 경제결정론과 그에 대한 왜곡된 반작용으로서의 자발성주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맑스주의자가 인간 의식과 삶이 무의식적 동기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아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일이며 이미 지배 이데올로기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 이전의 모든 사회의식을 구성하고 있음도 자연스런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높은 단계의 사회를 생각하지 못하는 부르주아지의 무능력이 대표적 보기가 된다. 루카치는 이를 “계급 조건화된 무의식”이라고 불렀다. 바로 이러한 무의식의 문제를 유물론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정신분석학이다.
  맑스 이후 1세대 혁명가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정신분석학을 방어한 사람은 트로츠키이다. 그는 1908년 비엔나에 머무는 동안 프로이트 이론과 만났으며 프로이트 이론이 유물론임을 주장한다. “비엔나 정신분석학파인 프로이트 학파는 다른 방식으로 (파블로프와) 나아간다. 심리과정의 가장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의 추진력이 생리학적 욕구라고 가정한다는 점에서 유물론적이다.”19) 볼셰비키 내에서도 정신분석학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었지만, 이에 대한 박해와 탄압은 유럽에서는 나치에 의해, 소련에서는 스탈린주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나치는 1933년 프로이트, 맑스, 아인슈타인, 카프카, 토마스 만의 저작물에 대한 분서갱유를 단행했고, 스탈린은 혁명 이후 진행된 예술, 교육 등의 사회생활 분야의 실험을 중단하고 맑스주의에 조응하는 프로이트 이론의 주창자들에 대한 마녀사냥을 단행했다. 정신분석의 목적과 방법에 우호적인 혁명가는 루나르차르스키, 부하린, 트로츠키였고, 이론가로는 레온 비곳츠키, 알렉산더 루리아, 타티아나 로젠탈 등이 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를 유물론적 심리학으로 칭송하고 프로이트 이론을 소부르주아적, 퇴폐적, 관념적 이론으로 비판했다. 스탈린의 최종승리는 1930년 「인간행동대회」에서 쟐킨드가 사회주의 건설에 프로이트 사상이 해악적임을 비난하는 연설로 종지부를 찍었다. 이는 결국 5개년 계획과 국가자본에 봉사하기 위해 인간의 개성과 노동의 저항을 분쇄하려는 반혁명세력의 의도라고 규정할 수 있다.
  맑스주의와 정신분석의 실질적인 수렴은 인간심리(정신)가 자연의 실질노동의 물질적 산물이며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힘이 아니라 그보다 선행하고 그를 결정하는 무의식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무의식의 지배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공산주의 사회의 중심적 계획이 된다.
  러시아 혁명 이후 반혁명적 스탈린주의가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올바른 만남을 통한 맑스 사상과 그 실천을 압살했다면, 유럽에서는 나치즘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소련보다 훨씬 정신분석학 이론 발전의 중심부였던 유럽에서는 훨씬 더 끈질기게 맑스주의와 정신분석의 만남이 지속되었다. 바로 그 중심에 빌헬름 라이히가 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에 가서 공산주의 혁명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성 혁명을 주장하고 다녔던 그는 결국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축출당했고 독일 공산당에서도 제명당한다. 그는 독일 공산당이 성을 금기시하는 부르주아 윤리와 동일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선 라이히는 유물론적 심리학, 그리고 정신분석과 사회주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맑스에게서 정신활동의 물질적 활동을 부정하는 말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활동의 현상들을 실천적으로 물질적인 것으로 인정한다면 유물론적 심리학의 가능성도 원칙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비록 유물론적 심리학이 이 정신활동을 유기적 과정에 의해서 설명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20)

 

 “정신분석의 자본주의적 존재양식은 정신분석을 안팎으로 목 졸라 죽이고 있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과학이 파괴되고 있다고 한 것은 옳지만, 우리는 거기에 부르주아 사회라고 덧붙인다. …정신분석이 부르주아 사회에 적응한다면, 맑스주의가 개량적 사회주의자들의 손에서 겪은 것과 같은 죽음, 즉 천박화에 의한, 무엇보다도 리비도 이론의 폐기에 의한 죽음을 겪을 것이다. …
 정신분석이 희석되지 않고 적용되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손상을 가하기 때문에, 그리고 더욱이 사회주의 경제는 지성과 성생활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바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은 사회주의에서만 미래를 가진다.”21)

 

 “요약해 보자. 변증법적 유물론을 심리학의 영역에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임상적 정신분석의 성과들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성과들을 사회학과 정치학에 적용함으로써 맑스주의적 사회심리학에 이를 수 있다. 반면에 심리학 방법을 사회학 및 정치학의 문제들에 적용하면 틀림없이 형이상학적이고 심리학화하는 그리고 더욱이 반동적인 사회학으로 귀결될 것이다.”22)

 

  라이히의 맑스주의 심리학자에 대한 이론적, 방법론적 입장은 그의 「성 정치」실천으로 연결된다. 특히 그것은 파시즘의 대중심리에 대응하는 맑스주의 성 정치운동으로 구체화되고 그 당시 독일공산당의 부르주아정치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나타난다.
  그가 작성한 성 정치 강령은 자본주의 체제의 성 억압과 성 빈곤에 초점을 맞추었다.

  1923년 10월 16일, 드레스덴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청년조직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결의안을 발표했다.23)

 

1. 당과 당 조직들이 성 정치 문제를 분명히 할 것. 개인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의 분리가 아니라 결합, 즉 성적 존재의 지속적인 정치화가 필요하다.
2. 성 정치 영역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간의 휴전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실상 부르주아지만이 이러한 영역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휴전을 깨야만 한다.
 3. 모든 정치적 지향의 청년들은 성 문제와 관련하여 동원하고, 이들은 다른 조직들에 침투해야 한다.
4. 이것의 전제조건은 혁명 청년 조직들이 마주한 어려움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분명히 하는 것이다.

 

  1933년 히틀러의 권력 장악, 제4인터내셔널의 성 정치의 중요성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경험하고 라이히는 1934년 계급의식에 대한 중요한 글을 발표한다. 그는 독일 사회주의 운동의 패배가 다른 나라에 불리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파시즘의 도처에서 혁명 운동에 대해 빠르게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보았다. “제2, 제3 인터내셔널 둘 다 실천적인 측면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이론적으로 그 상황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왔다. 제2 인터내셔널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부르주아 정치 때문이며, 제3 인터내셔널은 자기비판의 부족과 잘못된 태도를 완고하게 고집하고 무엇보다 그 자신의 진영 안의 관료제를 뿌리 뽑을 수 없기(부분적으로는 의지의 부족으로) 때문이다”24)라고 진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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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서 라이히는 자본의 몰수, 생산수단의 사회화, 자본가들에 대한 노동자, 농민, 병사, 피고용인의 지배확립 등은 알고 있는 낡은 개념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우리의 관료제에 의해 질식되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왜 대중은 진정으로 자신들의 이익과 반대되는 히틀러가 권력을 획득하도록 행동했는가라고 묻고 있다.25)

  그리고 그는 지도부의 계급의식과 대중의 계급의식을 구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도부는 혁명의식을 대중 안에 가져와야 한다고 우리는 듣는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가 물을 차례다) 우리가 혁명의식이라고 할 때 의미하는 것을 아직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면 어쩔 것인가? 독일에는 마침내 대략 3천만 명의 반(反)자본주의적인 노동자들(사회혁명을 일으키기에 숫자로는 충분한 것 이상인)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가장 완강한 반자본주의적인 심성의 도움으로 파시즘은 권력을 장악하였다. 반자본주의적 심성은 계급의식인가 아니면 단지 계급의식의 시작일 뿐인가, 단지 계급의식이 만들어지는 전제조건일 뿐인가?”26)

 

  그러면서 라이히는 광범위한 대중 안에 계급의식의 존재를 알지만 그것은 혁명 지도부의 계급의식과 다르기 때문에 그 둘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지도부는 객관적인 역사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획득하는 것 이외에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27)
 
(1) 각기 다른 사회 층, 직업, 연령 집단, 성별에 속한 사람들 안에 잠재해 있는 진보적인 욕망, 관념, 그리고 생각은 무엇인가?
 (2) 이러한 진보적 욕망, 생각 등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욕망, 두려움, 사유, 관념(전통적 속박)은 무엇인가?
 
  라이히는 혁명에 기여하는 것은 무엇이든 윤리적이며, 혁명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비윤리적이라는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윤리에 대한 태도를 다른 방식의 질문으로 정식화한다.

 

 “부르주아 질서에 모순되는 것은 무엇이든, 전복의 싹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계급의식의 요소로 간주할 수 있다. 부르주아 질서와의 유대[속박]를 창출하거나 유지하고 부르주아 질서를 지지하고 강화하는 것은 무엇이든 계급의식의 방해꾼이다.”28)

 

  이는 자본주의 체제와 부르주아 질서에 의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예속되고 억압당하는 구체적 기제와 그와 관련을 맺으면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계급 무의식에 대한 실재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실패한 혁명을 지속가능한 혁명의 성공으로 이르게 하는 길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대중의 계급의식에 대한 변증법적 이해 없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필연성만 강조하는 과거의 이른바 “혁명정치”는 결국 부르주아 정치의 쌍생아에 불과하다는 것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라이히는 두 정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혁명정치와 부르주아정치의 차이는 전자는 대중의 욕구 충족에 기여하기 위해서 나서는 반면에 후자는 대중의 구조적인,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무능력에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29)

 

  결론적으로 라이히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가능성은 혁명의 주체인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에 대한 철저하고 폭넓은 이해에 기반한 혁명지도부(혁명당)의 계급의식의 변증법적 결합이라고 주장한다. 대중의 계급의식은 인류의 존재를 지배하는 역사적인 혹은 경제적인 법칙들에 관한 인식이 아니라 ① 모든 영역에서 고유한 삶 욕구들에 관한 인식, ② 그 욕구들을 만족시킬 방법들과 가능성들에 대한 인식, ③ 사회경제적 사회질서가 그 욕구만족을 방해하는 장애꾼들에 관한 인식, ④ 자신의 삶의 필수품들과 그것의 방해물에 대해 단절하려는 데 대한 자신의 금지와 불안에 관한 인식, ⑤ 대중의 통일이 이루어질 때 억압자의 권력에 대항해 불굴의 힘을 만들어낸다는 인식이다. 반면 혁명지도부의 계급의식은 대중이 스스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대중을 대신해 말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자본의 멍에로부터의 혁명적 해방은 혁명지도부가 삶의 모든 측면에서 대중을 이해하기만 하면 충분히 발전된 대중의 계급의식에서 자발적으로 성장할 총괄적 행동이다.30)
  최근 「국제공산주의흐름」이 발간하는 이론지 「국제평론」(2010년) 140호에서 「과학과 맑스주의 운동」이라는 연속주제 아래 그들은 특집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조직은 과학적 지식과 연구에 대한 관심을 고무시킬 책임이 있다. 특히 인간사회에 관련된 분야, 인간과 심리에 관련된 분야, 지배계급이 몽매주의를 개발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영역이다.”31)

 

  지금까지 30년 동안 한 번도 정신분석학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던 혁명조직이 최근 이러한 관심과 변화를 보이는 것은 맑스주의의 혁명적 실천을 위해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무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공산주의 사회의 그것과 결합된다는 의미는, 공산주의 초기단계에서 인류의 우선순위가 노이로제와 정신고통의 원천이 놓여있는 무의식의 깊은 층위에 대한 관심이라는 점이다.
  물론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은 프로이트의 사상에 동의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프로이트를 반대하는 현재의 캠페인에 대해 극도의 불신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트로츠키가 주창한 열려진 접근으로 바로 서야 한다.”32)

 


5. 나오며

 

  백여 년 전 공황이라는 순환적인 자본주의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생산력이 증진되는 상승하는 자본주의가 그 정점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통한 파괴와 살육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려는 시기에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혁명적 전환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 공산주의자들의 헌신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자본주의는 전쟁인가 혁명인가,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의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러시아 혁명은 성공했지만 세계 혁명은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단발마적 고뇌에 빠지는 종말로 가는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세계혁명의 실패, 파시즘과 스탈린주의라는 반혁명적 세력의 등장,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한 생산력의 파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죽음, 2차 세계대전 이후 25년간의 일시적 호황,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른바 “현실사회주의국가”로 불리던 국가자본주의 국가의 몰락, 그리고 끊임없는 전쟁과 생태적 위기, 국가부채의 엄청난 증가를 통한 재정위기 등의 공황은 다시 한 번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가속화시키며 야만인가 혁명인가를 선택하게 하는 혁명의 객관적 조건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역사적 계급의식」이라는 의제가 모든 공산주의자들과 프롤레타리아트 앞에 놓여있으며 우리는 100년 전에 실패한 세계혁명과 그 이후의 반동적 역사를 반성하고 야만의 자본주의 문명을 철폐하고 진정한 문명의 세상인 공산주의를 건설할 구체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맑스의 초기 사상과 후기 사상 이론의 분리가 아닌 변증법적 통합으로 인간의식과 정치경제에 대한 분석을 해야 하고 혁명의 당위론적 낙관론이나 혁명불가능의 자조적 비관론 모두를 넘어서는 맑스주의자와 공산주의자로 거듭나야 한다.

 

  첫째, 맑스, 루카치, 그리고 가치형식 이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본주의의 물상화가 프롤레타리아를 예속시키고 지배하는 기제와 방식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동시에 노동자가 가치증식을 넘어 실질적 부의 창조(공산주의 물질적 기초가 되는)의 주체로서 가치형식을 깨뜨리는 능력과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둘째, 맑스, 트로츠키, 라이히 등 계급에 의해 조건화된 계급 무의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욕망과 그 억압, 그 구체적 형태에 대한 인식이 자본주의 철폐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건설의 계획의 일부임을 확인해야 한다. 전도된 의식과 억압된 무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은 분리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셋째,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의 주체임에 틀림없으나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면서 공산주의 사회의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고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혁명의 주체가 되는 공산주의자 조직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 조직은 혁명당이며 그 강령과 혁명전략 전술은 물상화와 무의식에 대한 구체적 연구 성과에 기반해야 한다.

 


 

주석

 

* 이 글은 맑스코뮤날레 (2011년6월)에사 사회실천연구소가 「역사와 계급의식」이란 주제로 공동 발표한 글 중의 하나이다. 이론적인 글이지만 첫 회를 싣고 계속 연재할 계획이다.

1) Georg Lukacs, 「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 Studies in Marxist Dialectics」,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1971, 93쪽

2) 윗 책, 168쪽

3) 윗 책, 164-5쪽

4) 잉여가치론이 포함됨

5) Anselm Jappe, 「Les Aventures de la marchandise: Pour une nouvelle critique de la valeur」, Denoel, 2003, 170쪽

6) Moishe Postone, 「Time, Labor and Social Domination: A Reinterpretation of Marx’s Critical The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319와 371쪽

7) Günther Anders는 「The Obsolesence of Man」에서 인간주체에 대한 자본주의 산업과 기술의 영향력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8) Werner Bonefeld, “Capital as subject and the Existence of Labour” in 「Open Marxism, Volume III, Emancipating Marx」, eds. by w. Bonefeld, R. Gunn, J. Holloway and K. Psychopedis, Pluto Press, 1995, 184쪽 외 여러 곳

9) Helmut Reichelt, 「Value: Studies by Marx」, New Park Publishers, 1976, 16쪽
10) Helmut Reichelt, “Social Reality as Appearance: Some Notes on Marx’s Conception of Reality” in 「Human Dignity: Social Autonomy and the Critique of Capitalism」, Ashgate, 2005, 38쪽

11) Werner Bonefeld, “Human Practice and Perversion: Beyond Autonomy and Structure” in 「Revolutionary writing: Common Sense Essays in Post-Political Politics」, Autonomedia, 2003, 78쪽

12) Karl Marx, 「Grundruisse」, Penguin Books, 1973, 361쪽

13) 국제공산주의흐름, 빛나는 전망 편집부 옮김, 「공산주의조직과 계급의식」, 209, 62쪽

14) 윗 책, 64-65쪽

15) 윗 책, 81쪽

16) 윗 책, 160쪽

17) 윗 책, 163쪽

18) 윗 책, 175쪽

19) Leon Trotsky, 「Culture and Socialism」, 1925-26, 106쪽

20) 빌헬름 라이히, 윤수종 옮김, 「성 정치」, 중원문화, 2011, “변증법적 유물론과 정신분석”, 48쪽

21) 윗 책, 99쪽

22) 윗 책, 121쪽

23) 윗 책, 27쪽 재인용

24) 윗 책, “계급의식이란 무엇인가?”, 249-250쪽

25) 윗 책, 253쪽

26) 윗 책, 257쪽

27) 윗 책, 262쪽

28) 윗 책, 270쪽

29) 윗 책, 344쪽

30) 윗 책, 352쪽

31) ICC, 「International Review」, 1st Quarter, 2010, vol. 140, 24쪽

32) 윗 글,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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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2호] <기고> - 조합주의적인 방식으로는 복수노조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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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조합주의적인 방식으로는

 

             복수노조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 김창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복수노조가 시행된 지 한 달이 넘게 지났다. 대다수의 예상대로 복수노조의 시행은 노동자들에게보다는 자본가들에게 이롭게 악용되고 있다. 15일 고용부에 따르면 복수노조 허용 후 기존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새 노조가 생겨 조합원 과반수를 확보한 곳은 78개다. 이 가운데 민주노총에서 분화된 신규 노조가 47개로, 새로 과반을 확보한 노조의 60%를 차지한다. 서울 도시철도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도시철도에는 기존 민주노총 산하의 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이하 도철노조) 이외에도 자회사 노조를 포함하는 도시철도산업노조 도시철도본부(이하 산업노조)와 7월 4일자로 설립신고를 낸 ‘우리노조’등 2개의 노조가 더 있다. 심지어 제4의 노조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결과 도시철도는 노동자를 7개로 분류할 수 있다. 세 개의 노조를 모두 탈퇴한 노동자, 그 중 2개를 가입한 노동자, 1개만 가입한 노동자, 세 개 노조를 모두 가입한 노동자까지! (신생노조 2곳을 모두 가입한 노동자는 없다!) 가히 서울도시철도는 복수노조 문제에 있어서 가장 앞선(?) 사업장이라 할만하다!

 


  세 개로 찢겨나가기까지의 과정

  – 투쟁과정에서의 지속적인 이탈

 

  2010년 7월 공사는‘직무재교육’제도를 도입하고 34명을 교육대상자로 선정해서 발표한다. 직무재교육이란 각 소속 현장에서 ‘말썽 많은’ 사람, 근무평정이 낮은 사람,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선정하여 합숙교육과 봉사활동, 피교육자 상호평가 등을 토대로 대다수를 직권면직 시키고, 소수만을 현장으로 복귀시키는 제도였다. 이미 2009년부터 시행되던 “서비스지원단”(현장에서 일하던 직원을 껌딱지 제거, 불법 전단지 수거 등 모욕적인 일을 시켜 스스로 나가도록 유도하는 제도)보다 한발 더 나간 조직이었다. 이 발표가 있은 후 노동조합은 교육대상자들을 조직하였고, 4명의 이탈자를 제외한 30명의 동지는 노동조합을 믿고 교육거부 투쟁에 들어갔다. 공사는 이들 30명에게 직권면직, 즉 해고를 통보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 번째 복수노조인 “도철산업노조”는 이 투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생겨났다. 10대 집행부 지부장1)중 일부가 “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10대 집행부의 지명파업 지침 등을 거부하였다. 이 후 이들은 조합원을 기존 조합에서 ‘탈퇴’하도록 협박하고, 이 탈퇴서를 작성한 조합원으로 1차 노조설립신고를 냈다. 하지만 멍청하게도 이들은 산별노조를 신고하면서‘도시철도 노동조합원’만을 조합원으로 거느리는 우를 범했고, 설립신고는 반려되었다. 이들은 추후에 유명무실한 자회사 노조를 포함하여 “산별노조”의 모양새를 갖춘 노동조합을 설립하였다. 이들이 이처럼 무리하고 급조된 방식으로 조합을 설립한 데에는 서울지하철 정연수와 함께 제3노총을 만드는 주역으로 함께 하고픈 욕심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 영향도 안 미친 건 아니다. 비록 산업노조로 가지는 않았지만 상당수의 조합원은 탈퇴원서를 작성했고 가뜩이나 힘이 떨어지던 대오는 또다시 움츠러들었다.

 

  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라며 조합의 지침을 어기고, 조합원을 탈퇴하도록 조직했던 세력 중 일부는 11대 집행부 선거가 들어가기 직전에 두 번째 노조를 설립하였다. 이처럼 노조설립이 늦어진 이유는 앞선 산업노조의 해프닝을 보고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용들 내부의 세력다툼 그리고 다수노조인 도철노조를 통째로 먹을 수 있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 또한 작년 투쟁의 과정에서 투쟁을 방해한 세력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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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명의 직권면직 동지들을 중심으로 투쟁을 이어가던 10대 집행부는 사실상 투쟁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시작한다. 협상을 구걸하고, 시의회를 쫓아다니며, 끊임없는 양보로 일관한다. 그 중 1명의 동지를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까지 겪었지만, 투쟁은 재차 촉발되지 못했다. 이처럼 10대 집행부가 다른 투쟁을 기획하거나 시도하는 생각 자체에 대해, 당시 역무본부장이자 현재 ‘우리노조’ 위원장인 자는 ‘니들이 투쟁하면 나도 탈퇴하고 노조를 만든다’며 계속 협박해왔다.

 

 

  근본 원인

 

  복수노조의 시행은 어용세력들로 하여금 보다 더 적극적으로 투쟁을 방해하게 만들고, 결국 조직을 쪼개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10대 총선거가 끝났을 때 ‘민주연합, 민주파’는 위원장과 본부장 등 상급 노동조합 간부를 장악하기는 했지만, 현장에서 조합원을 직접 조직하고 싸워야 하는 노동조합 조직의 허리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지부장을 어용세력에게 내주었다. 이와 같은 선거결과는 9대 하원준 어용세력과 효과적으로 싸우지 못하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사실상 활동가들 전체가 현장을 방치한 데 있다.

 

  이처럼 노동조합의 허리조직이 거의 전무한 어려운 조건에서 출발한 10대 집행부와 활동가들은 더욱 막중하게 현장을 조직해야할 책무가 있었다. 하지만 10대 집행부와 활동가들은 이를 효과적으로 조직하지 못하였다.
  현장 조합원들이 매우 위축되어있는 상태에서 10대 집행부는 ‘외부적인 충격’(음성직 당시 사장의 퇴진)이 유일한 돌파구라고 판단하고, 각종 로비와 시민사회에 기대는 방식을 취하였다. 필수유지업무 같은 법적 제약과 2010년 4월 서울시장 선거는 10대 집행부가 이와 같은 전략을 취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전략은 현장조합원들의 정서와는 분명히 동떨어져 있었다. 자신들의 투표결과에 스스로도 놀란 평조합원들은 어려운 조건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했지만, 현장에서부터의 작은 변화를 내심 기대하였다. 평조합원들에게는 자신들이 직접행동을 할 준비는 많이 부족하였지만, 현장의 지부장보다 위원장이 더욱 힘이 세보였고, 그래서 무엇인가 변화될 것을 진정으로 바랐다.

 

  전박적인 전략이 그렇게 잡히니, 선거 직후부터 2009년 임금합의까지 보여준 10대 집행부의 모습은 현장 조합원들을 전혀 조직하지 못하였다. 노동조합 집행부는 현장에서 투쟁을 벌이는 데 난색을 표명하였고, 2010년 서울시장 선거 이전에 위원장, 본부장이 아주 작은 지부 현안문제에 올인 해 집행부가 박살나서는 안 된다며 계속 투쟁을 회피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참담하였는데, 2009년 임금협상은 별다른 싸움도 없이, 심지어 쟁점화조차 시켜내지 못하고, 위원장이 직권조인으로 임금협상을 마무리하게 만들었다.
  당시 도시철도 내 유일한 현장조직이고 10대 집행부를 만들었던 ‘도시철도 민주노동자회’는 대다수가 10대 집행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인 비판에만 치중하였다. 10대 집행부의 정세판단을 공유한 것이다. 물론 일부 민노회 활동가들은 집행부에게 투쟁을 조직하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압박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민노회는 스스로 투쟁의 지도부를 자임하여 집행부와의 투쟁을 병행하며 현장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현장 공동화-> 조합원의 위축 -> 노동조합 집행부의 위축 -> 현장 공동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10대 집행부 마지막까지 지속되었다.

 

 

  복수노조 시행 법률이 보여줄 폐해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 전 도시철도노조는 11대 총선을 치렀다. 10대 집행부를 계승한 민주연합 후보가 당선되든 다른 어용세력이 집권하든 별반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판단한 공사는 이례적으로(최초로!)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고, 그 결과 위원장을 비롯하여 다수의 지부장, 모든 본부장까지 민주연합과 민주연합에서 분화한 현장투쟁 선본이 당선2)되었다.
  그리고 공사는 이제 4700명3)의 도철노조를 소수노조로 만들어 무력화시키기 위한 공작을 집중적으로 펴고 있다. 공사는 노동부의 지침과 다르게 산업노조나 우리노조와 개별교섭을 진행한다고 통보하였고,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 일부 세력을 제4의 노동조합으로 만들기 위해 부추기고 있다. 또한 기존 우리노조나 산업노조 가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물론 공사는 확실한 이익을 약속하지도 않고 전면에 나서지도 않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조합원들이 우리노조나 산업노조가 어용세력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쪽으로 가입하면 약간의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뿐이다. 우리노조나 산업노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조합원들이 가졌었던 “조직을 깨는 나쁜 놈”이란 정서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기존 민주파들이 매우 관료적이고, 어용세력과 점점 닮아가는 모습에 “어용이나 민주파나 다 똑같은 놈”이라며  다른 노조로 대거 가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노조 조합원 이탈이 당장 닥친 급한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타임오프, 필공사업장의 파업권 박탈로 이제는 투쟁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은 민주파 활동가들은 복수노조에서의 문제를 지극히 ‘노동조합스러운’ 방식으로, 결국 조합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다수노조가 모든 것을 다 먹는다”는 내용이다. 현재 도철노조가 최대 다수 노조이기 때문에 지금 교섭이 열리면 향후 2년간 다른 노조는 교섭권이 없다는, 말하자면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독소조항을 오히려 민주파가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10대 집행부 마지막에도 진행되었는데, 10대 집행부는 투쟁을 전혀 하지 않고, 심지어 할 생각도 없이 “교섭을 열도록” 하기 위해 공사측에 애걸복걸 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한 “복수노조 시대에는 조합비가 경쟁력”이라며 조합비를 인하하고, 과거 민주파들의 성과를 과장해서 포장하고, 민주파들의 희생을 포장해서 선전한다. 심하게 말하면 노동조합 간부들이 거의 “보험상품을 파는 세일즈맨”수준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우리노조나 산업노조가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저들도 “우리가 곧 다수노조가 될 것”이며, 조합비도 싸고 과거에 이렇게 많은 성과를 내었다는 식으로 선전해대고 있다.

 

타임오프4)와 필공사업장5), 복수노조가 만들어내는 폐해가 바로 이것이다. 민주파 활동가들이 노동조합의 테두리 내에서, 모든 전투성은 거세당하고, 교섭과 교섭의 주체가 되는 본부장, 위원장 등 상급 임원들에게 목을 매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수노조가 만들 폐해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런 모습은 평조합원들이 기존 도철노조를 탈퇴하고, 어용노조인 우리노조나 산업노조로 가게 만드는 하나의 좋은 핑계거리가 되고 있다.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복수노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넘어서기 위하여

 

현재 도시철도에서 벌어지는 복수노조의 문제, 즉 조합원의 어용노조로의 이탈은 앞서 말한 ‘노동조합스러운 방식’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현장이 공동화되고 민주파들이 관료화된 데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도철노조가 10대 집행부 시절 가졌던 전략, 즉 다가오는 총선, 대선에서 민주당 혹은 진보적인 정당의 수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철노조 10대 집행부가 서울시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을 지원하고 활용하여 30명의 직권면직 동지들이 복직하고, 음성직 사장이 물러났어도,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닌 성과로는 결국 현장이나 현장 조합원의 정서를 전혀 변화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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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노동조합을 완전히 재편할 필요가 있다.‘소통’은 자본가들의 수장인 이명박, 오세훈과 할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과 해야 한다. 지금 도철노조 조합원의 상태가 어떠한지 우선 많이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도철노조의 조직형식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 궤도연대 총파업에 임하면서 만들어졌던 소조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10-20여 명 단위의 조합원을 묶고 소조장을 세우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들 소조장들에게 주요한 의사결정권을 부여해야 한다. 의사결정권이 빠진 소조장은 자칫 평조합원들을 감시하는 체계로 전락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부장 대의원도 못 세우는데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 때만 사람들을 만나고 결의를 시킬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들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구체적인 사안이 없이는 위와 같은 재편 전략은 이뤄질 수 없다. ‘선거’나 ‘721 궤도 연대파업’과 같은 사안이 있었기에 지부장, 소조장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아주 작은 현장 사안이나, 7호선 연장운행 인원충원과 같이 큰 사안에 입장과 요구조건을 내걸고, 아주 자그마한 조직으로 노동조합을 재편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교섭’이 아니라 ‘실천투쟁’을 기획하고 조합원들이 동참할 수 있는,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술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타임오프, 필공사업장, 복수노조를 한 쌍으로 놓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마음가짐, 즉 법적인 테두리를 뛰어넘는 투쟁을 스스로 결의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해고와 구속이 따르겠지만, 이를 감수할 태세 없이는 투쟁의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상황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자본주의가 다 망해서 막장까지 간 상황에서 해고와 구속이 뭐 그렇게 두렵겠는가. 도시철도만이 아니라 모든 공공 대사업장들이 이러한 돌파구를 열지 못하는 한 복수노조 문제로 더욱더 식물노조로 전락해 가고 있는 상황을 바꿀 방법이 없다. 자본주의 세상도 갈 데까지 간 상황이지만, 노동조합들도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실로 비상한 결의와 태세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복수노조가 가져올 폐해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조합주의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조합주의를 벗어던지고, 세상을 바꾸는 발걸음을 내딛는다는 각오로 법 테두리를 넘어 투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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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도시철도의 지부장은 금속 대공장의 대의원과 비슷하다.

2) 일부 노동계 언론은 이번 도시철도선거에서 3명의 본부장만이 민주파라고 분류하였다. 그러나 이는 민주연합에서 분화된 현장투쟁 선본을 민주파로 분류하지 않은 오보이다. 현장투쟁선본은 10대 집행부를 비판하고, 보다 더 투쟁적인 노동조합 건설을 그 기치로 삼았다.

3)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신고된 조합원의 수이다. 신고된 조합원 수는 각각 도철노조 4700, 우리노조 800, 산업노조 700 이다. 그런데 이 숫자를 모두 합하면 도시철도 총 직원의 수보다 많다! 이와 같은 숫자는 이중가입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번 도철노조 선거에서 총 투표인원은 3200명으로 신고된 조합원수와는 차이가 많다.

4)  타임오프를 현재 위원장과 상급단체 파견자만 사용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노동조합의 허리라 할 수 있는 지부장들은 이제 더 이상 전임이 아니고, 따라서 집회나 농성등에 부담감을 느낀다. 타임오프를 사용할 수 없는 집회나 농성등은 각종 투쟁방식은 근태로 바라 잡히고, 그에 따라 임금보전, 징계등을 감수해야만 한다. 민주파 지부장이 징계등 낙인 찍히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지만, 임금보전 문제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현장 지부장들이 투쟁을 부담스러워하면서 자연스럽게 본부, 위원장등 상급단위에 기대는 경향은 더욱 늘어난다.
5) 작년 10대 집행부는 완벽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의 ‘합법파업’ 전술을 구사하였다. 그 결과는 전혀 투쟁의 전술로 활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철도의 경우는 그 생각을 더욱 굳히게 만들었다.

6) 나의 주장이 총선, 대선에 기권하자는 것이 아니다. 앞서 서술했듯이 2010년 4월 합법적인 방식으로 지방선거에 개입하려했던 도철노조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다. 기껏해야 민주당 후보들과 교류하거나, 조합원중 일부가 후보자로 나오는 전술말고는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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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2호] <기고> - 노동조합투쟁과 ‘사회주의자’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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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노동조합투쟁과 ‘사회주의자’ 조직

 

 

- 김태훈

 

 

 

  이명박 정권의 무자비한 폭압과 거듭된 실정으로 인해 무수한 투쟁이 터져 나오고 있다. 아니 자본가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 사기 치며 거품을 무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하에서조차 진짜 많은 것을 빼앗겨 온 노동자들이 이제 우리도 살아야겠다 라고 몸부림치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한 줌 자본가들만의 천국이고 지긋지긋한 착취와 억압의 체제이자 비정규직 ․ 정리해고 ․ 노예노동의 체제인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고자 사회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많은 조직들이 분투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지난 몇 년의 투쟁들을 돌아볼 때, 사회주의와 노동자혁명을 내걸고 분투했던 사회주의 조직들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투쟁현장 가까이에서 노동조합원으로 사회주의자들의 투쟁결합을 바라보며 느꼈던 점을 밝히고 사회주의 조직과 사회주의자들이 그 이름에 걸맞는 실천을 모색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작성했음을 밝혀둔다.

 


노혁(추), 사노위, 노건투, 사노련, 사노신, 노해투사, …


  그 정치나 규모, 현재 활동여부를 떠나 명시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노동자투쟁에 연대하고 결합해 투쟁하였거나 투쟁하고 있는 조직들이다.
이와 별개로 사회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등의 정당들과 사회진보연대, 다함께 등의 단체, 노동전선, 전국회의 등의 노동조합운동 내의 정파조직 등 무수한 단위들이 노동자투쟁(더 정확하게는 노동조합투쟁)에 결합해오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에 거론한 조직 가운데 일부 조직은 현재 노동자운동이 보수화 ․ 개량화 되면서 대다수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정치를 받아들일 준비는커녕 적대감을 표출하는 ‘현실’을 거론하며 지금은 내실을 다지고 준비를 해야 할 시기라며 노동자투쟁에 ‘기권’했다. 반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터져 나오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그 투쟁들을 통해 정세반전을 꾀하거나 사회주의 정치를 전파하고 조직원을 충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한 조직들도 있다.
  여기서는 각 조직들의 정세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 노동자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한 제 조직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그리고 지금도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몇 년 사이의 대표적인 노동자투쟁을 보면, 코스콤, 기륭전자, 이랜드-뉴코아, GM대우 비정규직지회,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동희오토비정규직지회, 쌍용자동차, 학습지노조(대교, 한솔교육, 재능교육), KEC, 전북지역 버스노동자투쟁,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발레오공조코리아,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등의 투쟁을 들 수 있다. 지역과 업종,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망라한 투쟁이 끊임없이 벌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열거한 투쟁 대부분에 사회주의 조직은 물론이고 제 정당과 단체들이 개입했음은 물론이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이라면 적극적으로 결합해 함께 싸우면서 계급정치를 설파하고 단위사업장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투쟁을 조직해 정세반전을 꾀하고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전술을 구사할 것인지 치열하게 논의해야 하는 것은 상식일 것이다. 이는 비단 사회주의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제 사회주의 조직은 과연 그러했던가? 단연코 아니다.

 

 

무원칙, 전략의 부재, 전술적 혼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선 소규모 사회주의 조직들의 제한적인 역량배치의 문제부터 보자. 정말 어떤 때에는 이 곳 저 곳에서 투쟁이 벌어져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하기에 제한된 역량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자본가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티격하고 투쟁사업장들의 공동투쟁을 조직하여 힘을 집중 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조직들의 우선순위는 그것이 아니었다.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 사업장에 일단 결합하기, 자기 조직원들이 관계 맺고 있는 사업장에 대한 지나친 역량투여(따라서 동일한 시기에 좀 더 집중해야 할 다른 투쟁에 대한 방기), 이 현장 저 현장 무턱대고 한 번쯤 가보기 등 과연 노동조합투쟁 개입과 관련한 원칙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둘째, 쉴 새 없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는 자본가언론의 왜곡선전과 참주선동에 맞서, 실상은 자본가계급에 투항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지만 노동자를 위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위장된 중간계급 이데올로기에 맞서, 노동자계급을 위해 분투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택한 잘못된 정치에 맞서, 당면 투쟁의 전진과 승리는 물론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일관되고 적실하게 공급했는가를 봐도 역시 “아니올시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라고 강변해 봐도 위에 열거한 무수한 투쟁이 이를 반증한다. 코스콤 투쟁을 거치며 등장한 ‘중규직’, ‘무기계약직’, 이제는 당연빵이 되어버린 선별복직과 순차복직, 반성문과 다름없는 각서, 투쟁의 결정적 국면마다 등장하는 양보안…….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가능하고, 정리해고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사회주의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없세, 희망버스 기획단에 의해 좀 더 현실적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현실은 또 어떤가?
  정리해고 분쇄!, 비정규직 철폐!가 단지 구호로만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니라 결코 후퇴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회주의자들이 앞장서서 입증해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노동해방 세상, 사회주의체제에서는 정리해고도 비정규직도 없고 노동자가 생산을 통제하며 주인 되는 세상이라는 것이 단지 구호가 아님을 노동자계급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대로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노동자계급의 정치와 이를 현실화 시켜 내기 위한 실천의 결합이 너무나 미약하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주야농성, 선전전, 집회에 거의 매일 결합하며 갖은 고생을 다해도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한두 번 행차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쓸려가거나 개량주의 정당이라 비판하는 이른바 진보정당들과의 차별성도 모호해지면서 계급정치는 제대로 전파되지도 못 한 채 사라질 위기에 봉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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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적 영향력의 압도적 열세와 물량지원 역시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주관적 조건에서 사회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은 혁명적 정치에 어울리는 실천뿐이다. 투쟁의 매 순간마다 그리고 결정적인 국면이 닥칠 때 누가 진정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철저하게 끝까지 옹호하고 관철시키는가에 달려있다. 쓰라린 패배를 통해 얻은 교훈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가장 먼저 그 교훈을 일반화해 전파하고 조직하고 다시 투쟁하는 것에 달려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현실에서 수 없이 적용되고 검증된 사상이 있지 않은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울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가?
 

  이제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 지난 몇 년 동안의 치열한 계급투쟁의 현장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 살펴보자. 노동자계급 해방 사상을 움켜쥐고 원칙과 강령,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벼려 너무나 끔찍한 자본주의 세상 이제는 갈아엎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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