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가 왜 울리나 궁금한가?

분류없음 2013/08/05 05:57

'미드나잇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를 보면 성질 더러운 헤밍웨이가 잠깐 나온다. 후까시 존나 잡기로 유명한 그 할배가 이 사실, 자기가 잠깐 나온 걸 알면 찌질이 본성을 폭발할지 모르겠다만 그의 작품은 대부분 영화화되었고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하나같이 그는 더러븐 성질의 존나 깝치는 '마초'로 나온다. 실재로도 '마초'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마치 IMF 이전 한국 가부장 아저씨들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 이 외에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영화로는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 193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1943),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s of Kilimanjaro, 1952),  '파리는 여자였다' (Paris Was a Woman, 1996, 다큐, 국내 미개봉),  '러브 앤 워' (In Love and War, 1996), '헤밍웨이와 겔혼' (Hemingway & Gellhorn, 2012, 국내 미개봉) 등이 있다.

 

영어공부 하려고 마음먹어본 사람 가운데 그의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를 원서로 안 읽어본 사람, 아니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붉은 색 펭귄 문고본처럼 생겨서 시사영어사에선가 만들었던 시리즈 가운데 가장 잘 나가던 책이었다. 이제 헤밍웨이 사후 50년이 지났고 그 소유권도 해제되었을테니 이제 슬슬 헤밍웨이 책들이 나올 법도 한데 그렇게 수선떠는 소리가 없는 걸 보니 아마도 그는 이제 유행을 덜 타는, 아마도 피츠제럴드 (S. Fitzgerald) 같은 사람이 된 모양이다. 하기사, 우리 세대와 바로 윗세대만큼 헤밍웨이를 추모하고 떠받들던 세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겠지. 노벨상 값이 여기까지인가.

 

1997년 어느 날, 어느 극장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러브앤워 (In Love and War)'를 봤다. '무기여 잘 있거라'와 다소 오버랩되는 내용이라고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사전 정보를 갖고 갔는지 아닌지 그건 잘 모르겠다. 더구나 1997년이면 '한가하게 영화나 보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정세도 아니었는데 혼자 영화를 본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몰래' 보지 않았나, 싶다. 참 슬펐다. 감성을 아주 잘 조합한 영화였고 그저 그렇게 뻔한 줄거리임에도 사람의 감정을 읽고 호소할 줄 아는 영화였다. 눈물이 나왔던 것 같은데 꾹꾹 참아서 끝끝내 결국 울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 이따금 이 영화의 몇 장면들이 떠오르다가 재작년 이 도시에서 '미드나잇 파리'를 본 뒤로는 그 주기가 짧아졌다. 본격적인 패러노이아. 아마도 영화를 보던 당시 억눌렀던 감정들이나 감정의 잔흔들이 솟구쳐 오르는 게 아닐까.

 

그리고 어제 'Hemingway & Gellhorn'을 봤다. (한국에선 극장 상영을 안한 모양인데 DVD는 구할 수 있는 것 같다.) 우선 가장 친한 친구, 니콜 키드만을 좋아하는 가장 친한 친구가 떠올랐다. 꼭 보려무나. 누군가의 풋노트(각주)로는 살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마치는 겔혼 Gellhorn. 사실 겔혼은 헤밍웨이의 법적인 네 명의 아내 가운데 유일하게 헤밍웨이를 뻥 차버린 여자로 알려져 있거나 독하고 독립적이며 자유분방한 캐릭터의 종군기자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도 변변한 기록 하나 없다. 이것은 다만 헤밍웨이-겔혼의 관계 뿐 아니라 모든 남-여 커플의 관계 (혹은 여-여/남-남 커플이라 할지라도 세상이 둘 가운데 어떤 사람을 남성 '역할'로 기억하는가에 따라) 에 해당한다. 영화 속에서도 헤밍웨이는 또 다시 전장으로 떠나겠다는 겔혼에게 화를 낸다, "너를 만든 건 나야" 하지만 헤밍웨이는 알아야 한다. 헤밍웨이, 너를 만든 건 "겔혼" 그녀라는 것을.

 

'무기여 잘 있거라'는 헤밍웨이가 19세 청년 시절, 제1차 대전이 한창이던 유럽 (이탈리아) 전선에서 직접 경험한 것을 근거로 씌였다. 당시 연상의 간호사 여인을 사랑했고 그 로맨스는 영화 '러브앤워'에서 지극히도 슬프고, 괴롭고, 자세히 묘사된다. 헤밍웨이, 그의 곁에는 언제나 여성(들)이 있었고 그의 작품의 원초적인 질문도 사실은 (여성들과의 혹은 그 이상의) '관계'에 대한 것을 담고 있다. 인간의 고독, 외로운 인간, 그 인간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이런 면에서 잘 나가는 작가들이나 인사들을 보면 곁에서 돌봐주는 이, 젖주는 이가 없으면 제대로 발도 딛고 일어서지 못했을 그런 경우들이 왕왕 있는데 그 맥락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파리는 여자였다'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책으로 먼저 읽었다. 한국어판 책이 2007년엔가 나왔는데 과거 교류가 있던 한 진보넷블로거가 편집했다.

 

1997년에 '러브앤워' 영화를 볼 땐 몰랐는데, 어제 'Hemingway & Gellhorn'을 보고나니 이미 헤밍웨이는 19세를 전후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어떻게 정리할지, 결심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의심을 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출처이기도 하고 헤밍웨이 자신도 'Hemingway & Gellhorn'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시를 하나 읽어본다.

 

전공 때문에 잠깐 귀동냥으로 들었던 존 단 (John Donne, 1572~1631)의 Meditation 중,

 

No Man Is An Island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구글번역기에 돌리니 엄청난 의역으로 변신. 어쩔 수 없이 어떤 분의 블로그를 링크. http://blog.daum.net/sung.im/77

 

 

2013/08/05 05:57 2013/08/05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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