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남았다

분류없음 2014/03/17 08:09

짝이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다. "잠시" 갔다는 게 맞다. 한 달 뒤에 오실 거니까.

그런데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듯한 기분에 젖어 있다. 그러니까 실제 눈물이 흐른다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빨래도 해야 하고 밖에 나가 물건도 사와야 하고... 그러니까 살아야 하니까니미.

 

한국에 가고싶은 마음은 정말 크다. 생각해보라. 먹는 것, 입는 것, 냄새, 풍경, 사람들, 어느 것 하나 그립지 않은 것이 없다. 칠십년대 중반에 태어나 서른 넘기까지 한국 땅에서 먹고 입고 자랐다. 초등학교 - 국민학교 - 때부터 최루탄 가스 냄새를 맞는 (맡는) 게 일상인 줄 알았고 전세계 대통령들은 죄다 대머리인 줄 알고 살았다. 군인들이 정치하는 걸 불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어린 날을 그렇게 지났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던히 싸우고 죽고 다치는 그런 나날들을 또 경과하면서 지금의 내 삶이란 게 고스란히 그냥 주어진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하던 찰나에 대학생이 되었다.

그 거리의 냄새, 사람들의 지친 하루가 묻어나는 밤과 새벽을 지나 시큰한 토사물들을 이리저리 피해 성추행이 넘실대는 지옥철을 타고 매일매일 학교에 가면서 과연 내가 무엇을 느꼈겠는가. 혁명? 아니올시다. 그건 염세였다. 염세. 만약 그 과정에서 혁명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글쎄 나는 그에게 납죽 엎드려 소인을 죽여죽시옵소서라고 하기보다는 니미니밥구룻을 뻥--- 차버렸을 것 같지만 또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쨌건너쨌건 가장 치열한 시점에 그 시절을 견뎌낸 그 도시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건 미움이라도 좋아. 사랑과 미움. 그래도 좋아. 나는 그 아침 공기가 너무나 좋았더랬다.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아침 여덟시, 빠닥빠닥 고개를 쳐들고 계단을 치오르며 맡는 아침공기, 그리고 만나던 사람들, 공기, 기운... 스물의 나이만이 누릴 수 있는 그 뻔함 속의 젊음이란.

 

예상했겠지만 잡생각이 이리 많다보니 운동권 주류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 슬픈 결론?

 

십 년이 한참 지난 아침 나절 출근길에 그 기운을 다시 느끼게 되었을 때, 아니 어느날 문득 그 기운을 느꼈을 때 뭐랄까. 이건 뭐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기분은 뭐랄까. 그걸 알까.

그걸 알게 되었을 때, 가까스로 알게 되었는데 또 그 도시를 떠나야 했을 때의 그 비애란. 슬픔이란, 연민이란. 상처란. 그러나 그럼에도 그 이별이란.

 

그러니 왜 가고 싶은 마음이 없겠느냔 말이다.

 

그리고 희망.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나는 어딘가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내가 생각하는 세상을 함께 짊어질 이가 또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 희망 없이 어찌 이 치욕을 견뎌낸단 말이오. 그리고 그 희망을 일상에서 함께 일굴 이, 짝이 있는데 내가 어찌 그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있단 말이요시방.

 

그런데 막상 갈 생각은 없다. 피붙이 모두 나를 나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 세계에서 홀연히 느낄 그 외로움을 접수할 그 용기가 아직은 없는 것이리라. 내 몫까지 먹어주라. 해삼멍게광어짬뽕신떡모두다.

 

2014/03/17 08:09 2014/03/17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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