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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들의 번개

오늘 벼르던 번개가 있었다.

미루네와 진경이네만 오는 조촐한 자리라고 예상했는데

같은 동네 사는 아루네와 보라/보라맘이 와서 거실이 애, 어른으로

가득 차는 뿌듯함을 맛 보았다.

 

집으로 손님 불러서 같이 음식 나눠 먹으며 시간을 보낸 게

생각해 보니 처음이다.  학생 때는 사람들과 어울릴 자리가 널려 있어서

그런 자리가 귀한 줄 몰랐는데 언제부터인가 누구네 집에 가고 누가 찾아 오는 일이

아주 드문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 자리를 그리워하게 된건 아마 2002년 뚜르 생활하고 돌아와서 부터인 것 같다.

프랑스 아이들 집에 저녁 먹으러, 일요일 오후 다과 먹으러 초대 받아 가서

별 거 아닌 음식과 포도주를 나누는 게 처음엔 썰렁하더니 나중엔 은근한 재미를 알 거

같더라는 거지.

다시 서울로 복귀하니 대학원생들한테 어디 그런 여유가 있나? 

 

작년엔 연우 기르느라 늘 시간에 쫓기고 잠이 부족해서 허덕 허덕 하면서도

연우 덕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다시 사람들을 사귀게 될 기회가 열리는게 너무 좋다.

 

우리가 준비한 음식은 포도주와 고구마, 과일 조금, 술안주 뿐이었는데

주 선생님이 꽁치 김치 지짐을,  아루네가 감자떡을, 진경맘님이 피컨 파이를

가져 오셔서 다행이었다.  갑자기 손님 치르는 모드가 되서 막 긴장이 되었는데

아루 아빠가 대하있다는 소리에 왔노라고 해 주니 맘이 편안해졌다.

다섯명의 애기들이 다들 분주하니 놀아줘서 자연스럽게 자리 깔고 노는 분위기 생성.

 

진경이가 연우랑 제일 월령이 비슷한데 둘이선 서로 별로 반응을 안 보인다.

뭔가 서로 오고 가는게 보이면 재미있을 텐데.

진경이는 내가 보기엔 매우 점잖은 아이.  그 사람, 참 점잖지~ 할 때 그 점잔 말이다.

8개월 아루는 천사 아기였다, 휴우~  아루 엄마도 동의했지만 정말 순하고 평화로운

강아지 같다. 아유, 또 보고 싶군.

그리고 매력적인 미루와 11개월인데 연우보다 의젓해 보이는 보라,

이렇게 다섯명의 애기들이 4시간동안 거실을 가득 채웠단 말씀.

 

다들 돌아가고 오늘 따라 밥을 안 먹는 연우와 씨름 하고 나니

십분이라도 찬 공기 쐬며 산책을 마구 하고 싶어졌다.

주선생님께 전화해서 무작정 옷 껴입고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해서

둘이서 운동장을 맴맴 돌면서 두 아이의 잠과 기린 언어에 대해 이야기 했다.

잊어 버리기 싫으니까 주선생님이 말해준 기린 언어의 예를 적어봐야지.

 

상황: 내가 사람들을 초대했고 주선생님이 반찬을 하나 만들어 옴.

관찰:  주선생님이 이 자리를 소중하게 여겨서 같이 나눌 음식을 해오셨구나.

        더구나 뭘 대접해야 할까 고민이 시작되려고 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겠다.

---위와 같은 내 감정을 이야기해준다. '주 선생님은 정말 센스쟁이야~' 라고 넘어가는 대신.

--- 이 말을 들은 주 선생님은, 연우 엄마가 내 맘을 알아줘서 기뻐, 이런 마음이 들게 돼서

두 사람 모두 만족.

자기 감정을 잘 들여다 보고 표현하기, 자기 욕망을 알고 거기서 생겨나는 감정을 표현하기가

기린 언어의 핵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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