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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8
    용산에 가면(1)
    득명

용산에 가면

 

  며칠전 용산엘 갔다왔다.  중고스피커를 하나 구하고 싶었다. 무작정 용산에 가면 구할 듯 싶었다.  용산역에 내려 물어물어 나진상가라는 곳을 갔다. 번듯한 음향장비 가게 몇군데를 지나 물어물어 중고스피커 가게서 아주 마음에 드는 놈을 하나 샀다.  음향과 음악은 다좋은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아니 돈과 비례한다고나 할까? 자본주의가 깊어갈 수록 가장 돈을 타는건 아마 요즘의 음악, 음향장비, 제도권의 예술이 아닌가 싶다.

 

  조그만 방안에 온갖가지 스피커를 쌓아놓은 중고스피커가게 아저씨께 여쭤봤다.

  "여기..  그 용산4지구인가? 용산참사 난데 갈려면 어떻게 가요?"

  "저기..  건물끼고 돌아 굴다리 지나면 바로보여.  국제 빌딩옆에 가면 아직도 그대로 있지"

  "고맙습니다..  금방 갔다올테니까 이것좀 그때까지 맡겨주세요"

 

굴다리를 지나..  왠지 건물이 허름한 듯한 쪽으로 두리번거리며 발길을 옮긴다.  찾았다.  닭장차옆 천막 앞길은 한산해 보이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허름한 건물들의 끝.. 달동네 아래정도 마을???  놀랍게도 참사현장은 지하철역 바로옆의 엄청난 큰길가 옆이었다.  도로가 너무커서 건널목 중간에 신호등이 하나 더있는 그런 길이다.

신호를 멍하니 기다리는데..  뒤에 있던 여고생? 들의 이야기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저기.. 저건물... 그게 그렇게 큰사건인가?"

  "...   사람이 죽었잖아.. "

 

  

 

   참사 건물 앞엔 한쪽 천막엔 상복을 입으신 유족 아주머니 한분과..  다른 천막엔 신부님... 그외 2~3분이 계셨다. 살기위해 올라간 이들에게 자식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어처구니없는 누명으로 재판이 있는 날이라서 그런건지..  한산하다.  건물 옆 찢겨진 철거 장막 속으로는 적어도 대여섯대 경찰버스 시동소리가 웅웅 들려왔다.

 

  일단 용산학살 고인 5분 빈소에 조문을 드리니 천막에 앉아있던 어떤 남자분이 상주로 옆에 서계셨다.  말없이 절을 하고 말없이 상주에게 절하고 투쟁모금함인 듯한 곳에 조의금을 넣고 말없이 나왔다.

 

 

 

천막 옆에는 위와 같은 게시판이 놓여져있고 그뒤로 닭장차들의 시동소리가 계속해서 웅웅거린다.  천막앞 수많은 화분들과 인사한 다음 건물뒤 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PA 앰프다.  파워드믹서에 2~300W 정도의 앰프???  집회 최적화 PA앰프!

 

 

 

 왠 사회교리???  예수와 같이 힘없고 고통받는 이웃들과 함께 살려고 하시는 천막속 신부님들이 붙여 놓은 듯 하다.

 

 

 

골목안 건물들은 부서지거나 아무도 살지 않는다. 폐허가 된 골목의 2층 당구장 창문으로 근심에찬 아저씨가 앉아계시다. 거리는 중간중간 현수막과 예술작품들에 의해 다시 꿈틀대는 듯하다.  사진관엘 들렀다.

 

 

 

  전에는 북적거렸을 순대국밥집이 문득 떠올랐다.

 

 

 

  시대와 동고동락하지 않는 종교는 위선일까?  문장이 고상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종교는 위선이 아니라 무더기 중증 정신병 환자집단인 것이다.  지금.. 내가 격으며 살아가고 있는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종교가 있을 수있을까? 없다. 집단 최면밖에는. 

  

 

 

  숨은 고양이 찾기...  아무도 없는 사진관인줄 알았는데 통통한 고양이 한 마리가 참사현장 옆 '용산사진관'을 지키고 있다.  깜짝 놀라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았지만 금새 서로 평정을 찾았다.  고양이는 손짓을 하니 금새 오토바이 소리를 낼듯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동물을 보고 그들이 만났을 사람들을 짐작하는 습관들이 언제부터인가 생겨버렸는데 살찐 고양이님은 평온하시다. 그를 만났을 사람들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신용산 지하철 출구 바로 옆 용산학살 현장을 나와 긴 터널을 지나 다시 용산으로 왔다. 스피커선 한타와 20여킬로의 스피커2통을 낑낑거리며 기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이름이 신용산이라서 그 큰 빌딩들 사이 그 큰길가 옆에서 콘테이너 띄워 경찰특공대시켜 다들 보란듯 마음놓고 동네 어르신들을 불태워 죽이고 살던 곳을 깡패와 한통속이 되어 때려부셨을까?  

 

  예전 70년대나 지금이나 방법만 세련되어졌지 좀체로 변한 건 없다.  삶의 질은 분명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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