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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2/07/21
    [노동자소설] 꼴통들이 간다
    득명
  2. 2011/08/10
    냉동고 속의 이마트 노동자
    득명
  3. 2010/04/01
    위원장님은 해결사!(2)
    득명

[노동자소설] 꼴통들이 간다

 

 

 

 

 

[강은일 - 03 - 남몰래 흘리는 눈물.mp3 (6.10 MB) 다운받기]

 

 

 

 

                   꼴통들이 간다



임시총회는 무사히 끝났다.
조직형태변경의 안건은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88%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회사와 본조일 것이다. 그들은 이평공장 조합원들이 과연 얼마나 찬성표를 던졌는지, 그 결과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그는 서둘러 임시총회결과공고문을 작성하면서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노조를 만들고 첫날부터 그는 공장 현관 앞에서 출근하는 조합원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 생산현장 전원이 100% 노조 가입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그는 조합원들이 혹시나 불안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면서 지부장으로서 의연한 모습을 조합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노조소식지 1호를 나눠주며 힘내자고 격려를 하면서, 마주친 조합원들의 살아있는 눈빛. 50대 나이를 잊은 듯, 다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 이평지부가 잘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거 나도 한 장 주슈!”
공장장이었다. 그는 소식지를 한번 휘익 훑어보더니 단체협약? 이라는 말이 생소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요구안 곧 보낼 겁니다.”
“요구안이요? 올라가서 나랑 차나 한잔 합시다.”
“공문으로 보내세요!”
“뭐, 공문?”
그는 이 자가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맹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합원들이 출근을 거의 다 했을 무렵, 웬 낯선 사내가 그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지부장님 되시죠?”
명함을 보니 정보과 형사였다.
“노조 첫날부터 이렇게 사업장을 드나들어도 되는 거요?”
“여기 공장장이 만나자고해서….”
“그래요?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야겠다!”
“통상적인 업문데요 뭐. 소식지까지 만드신 걸 보니 세게 하시려나봅니다. 지부장님?”
“그만 갈길 가세요.”
“살살 하세요. 언제 식사라도 한번 하시지요?”
노조설립 첫날부터 형사가 출입하고 생산본부장이 이곳 이평에 내려온다며 노조 출범 소식이 그룹 전체로 번져가는 가운데, 정작 불똥은 전혀 다른 곳에서 튀고 있었다.
“나 본조 왕위원장인데, 이평공장에서 독자적으로 지부단협을 체결한다던데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거 하지 마세요! 조합원이래야 기껏 64명밖에 안 되는 곳에서 지부단협이 뭐가 필요합니까? 그리고 요구안을 보니까 본조에는 없는, 내용들이 있던데….”
“무얼 가지고 그러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비정규직 채용금지, 생산물량 외주화 절대금지, 더구나 산재발생시 즉각 작업중지권 발동! 아주 수준이 높고 뻔지르르하던데 조그만 공장에서 이런 뻥튀기가 통할 것 같소? 실현가능한 의제를 가지고 교섭을 해도 될까 말까 하는 판에?”
“해보지도 않고서 미리부터 포기한다면 거래밖에 더 되겠습니까?”
“거래라? 교섭이라는 게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아있죠. 시쳇말로 밀당 같은 건데, 그것도 잘 하려면 회사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거요. 개나 똥이나 무조건 들이댄다고 다 되는 게 아니린 말입니다! 회사사정도 쥐뿔도 모르면서.”
“교섭의 달인 같으신데 지부 좀 도와주시지 그러세요?”
“달인까지는 아니고 주위에서 좀 한다는 말은 듣죠. 투쟁사업장 같은 데를 보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노사가 거의 타결 직전까지 왔는데, 더 투쟁해야 한다고 일부에서 재 뿌리다가 결국 쪽박도 못 찬 사업장이 많거든. 교섭은, 아 여기까지구나 하는 동물적인 감각이라고 할까? 노하우라고 할까? 그런 게 있어야 되는 겁니다. 아무나 교섭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 위원장님이 내려와서 직접 교섭 좀 해주시죠?”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 같아요? 민노총 중집에 들어가서 올라온 안건 처리하기도 바쁜 사람이오.”
“위원장님이 내려와서 교섭하시면 이곳 조합원들도 좋아할 텐데요?”
“내가 일개 공장장 나부랭이랑 앉아서 이빨 깔 군번이요? 그룹 임원진이라면 모를까.”
“그럼 우리끼리 교섭하겠습니다.”
“아니, 위원장 말을 지금껏 뭐로 들은 거요? 도대체 지부에서 단협이 뭐가 필요하단 말이오? 처음 노조를 해서 성과를 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심정 나도 압니다. 그런데 의욕만 가지고 덤비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더구나 이런 요구안을 가지고 회사와 교섭을 타악 해버리면 본조는 뭐가 됩니까? 본조 물 먹이는 거밖에는 더 됩니까? 그런 요구안은 나도 만들 수 있어요. 민노총 모범단협안 보고 베끼는 거, 누군 못하나? 분명히 말하지만 지부는 이제 엉금엉금 기는 단계에요. 본조에 단협이 있으니 그걸 그대로 적용받으면 됩니다.”
“본조 단협은 매우 부실합니다. 이를테면 토요일이 무급휴일로 되어 있어요. 민노총 사업장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여성들의 생리휴가도 무급으로 되어 있고요.”
“그건 기타 수당으로 대체된 겁니다. 나도 우리 단협이 부족하다는 건 알아요. 회사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경우도 있고요. 우리 회사가 상당히 보수적인 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조가 있어서 이 정도라도 갖게 된 겁니다.”
“본조는 자꾸 회사사정, 기업문화 이런 것들을 말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노조를 처음해서 그래요. 하다보면 기업문화에 익숙해집니다.”
“노조가 기업문화에 종속돼서는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본조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고 했잖아요.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경제적 지위향상이 우선입니다.”
“거기에만 머물러 있는 게 문제 아닌가요?”
“지부장 당신! 마치 평론가처럼 말하네?”
“이미 노동현장은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이 오직 경제주의적인 사고에만 매몰된 결과입니다. 회사와 한판 붙어야겠다고 투쟁을 선언하지만, 성과급 돈폭탄에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흐지부지됩니다.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힘없는 비정규직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게 모든 사업장에서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이기주의와 돈맛에 한번 휘둘리게 되면 투쟁의 불씨를 되살릴 수 없습니다. 조합원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노동조합의 건강한 기풍이 되살아나야 합니다.”
“일개 신규노조 지부장이 무얼 안다고 떠들어? 00연맹 수석부위원장도 했었고 현재 민주노총 중집 대의원인 나를 비판하겠다는 거야? 보자보자 하니 싸가지가 없는 친구네! 이건 위원장인 나를 떠나 본조를 우습게 보는 것이고 민주노총이란 조직을 무시하는 거야!”
“지나친 확대해석입니다.”
“기업별 노조체계에서 지부는 본조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당신은 그것도 모른단 말이야?”
“저희는 영업직인 본조와 달리 김치를 가공 제조하는 생산직입니다. 생산직 특성에 맞는 지부단협이 필요합니다!”
“지부에서 요구한다고 회사가 그렇게 쉽게 교섭테이블에 앉을 것 같아? 더구나 사장님 사인이 들어가는데?”
“저희가 생산직임을 이해해 주세요. 지부에서 처음 단협투쟁 하겠다는데 본조가 도와주지 못할망정 이렇게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습니까?”
“발목? 당신, 그렇게 고집이 세서 사회생활 어디 하겠어? 이 바닥에 처음 들어왔으면 기존의 관례를 따라야 할 게 아니야? 도대체가 개념이 없는 사람이구만.”
“이렇게 말이 안 통할 줄은 ….”
“그건 내가 할 소리야! 웬 꼴통이 갑자기 나타나서… .”
“우린 우리 뜻대로 하겠습니다.”
“당신 지금 나랑 한번 해 보겠다는 거야? 이건 노조의 조직질서를 문란 시키는 거야! 시건방진 자식 같으니라고.”
본조는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지부가 회사에 단협요구안을 보내고 투쟁에 돌입했을 때 본조는 얼굴한번 내밀지 않았다. 오히려 본조의 왕위원장은 틈만 나면 전화로 지부를 통제하고 간섭하더니 급기야 화해할 수 없는 관계로 치닫고 있었다.
“당신네들 매일 방송차량 불러서 빵빵거린다면서? 그렇게 한다고 회사가 눈 하나 깜짝 할 것 같아?”
“회사가 교섭에 응하지 않으니까 싸우는 거 아닙니까?”
“집회! 당장 중단해! 내가 회사한테 교섭에 응하라고 할 테니…. 지금 공장장은 어리벙벙해서 곧 잘릴 거니까, 신임 공장장 오면 그 사람과 잘 해 보라고.”
“집회는 중단 못합니다. 근무시간에 하는 것도 아니고 휴식시간에 약식으로 하는 건데….”
“아니 내가 노력해서 어렵게 교섭테이블을 만들어줬으면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위원장의 말은 들어야 할게 아니야?”
“집회는 계속해야 됩니다! 그래야지 교섭에서도 탄력 받을 수 있습니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그런 식으로 하면 회사가 줄 것도 안 줘?”
“회사가 마치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하시네요? 위원장인지, 노무과 직원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뭐야? 이 새끼가!”
“세상에 어느 노조위원장이 이렇게 집회하는 거조차도 막는답니까?”
“막는 게 아니라 유연하게 하자는 거잖아!”
“지부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본조나 잘 챙기세요.”
“지금 나에게 명령하는 거야? 외부에서 허가 없이 방송차량 들어오면 건조물침입죄에 걸리는 거 몰라?”
“지역본부가 외붑니까?”
“회사에서는 외부세력으로 본 다니까?”
“위원장이란 사람이 왜 그렇게 회사를 대변만 하세요?”
“회사가 고소한다고 난리를 쳐도 내가 다 막은 사람이야! 집회는 당장 때려 쳐! 이거 본조의 마지막 명령이야. 그리고 현장에서 일할 때 투쟁조끼 입고 머리띠 하고 그런다는데 그거 다 사규에 걸리는 거야. 당장 벗어! 거기가 뭐 파업사업장도 아니고 말이야…. 어디서 보고 들은 건 있어가지고.”
본조 위원장과의 통화가 끝나면 그는 정말 기진맥진해졌다. 본조와의 관계를 하루빨리 정리해야 지부가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평지부의 투쟁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지부장이 1시간 일찍 출근해 공장 현관 입구에서 출근하는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1주일이 지날 때였을까, 부지부장과 사무장이 그의 옆에 서기 시작한 것이다.
“지부장님 혼자 애 쓰시는 게 안 돼보여서….”
“이렇게 서 있는 게 쑥스럽기도 하고 무척 떨리네요.”
“내일부터는 조합원들도 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같이 하자고 해야겠어요.”
  출근투쟁은 이렇게 조합원들이 하나 둘 붙더니, 점차 라인별로 나중에는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아침 집회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임시총회결과공고문을 출력시킨 뒤 노조직인을 찍으며 이평지부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아 거듭나기를 바랐다. 낮은 한숨과 함께.
“지부장님? 빨리 내려오세요! 식당에 조합원들 다 모였을 거예요.”
“알았습니다. 부지부장님은요?”
“밥은 먹으러 오겠죠. 공단 사거리 추어탕집이에요.”
식당에 부지부장인 영자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대개 사람들이 그렇지만 그녀는 유독 먹고 사는 일에 집착했었다. 남편과 이혼 후 딸 셋을 거느린 여성가장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였겠지만, 남들 눈에는 너무 지나치다는 인상을 받곤 했었다. 특근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잔업 한번 빠지는 일이 없었으니까. 우악스럽게 그저 일에 미친 사람 같아보였다. 딸들 모두가 장성해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있어도, 늙으면 나 혼잔데 …. 하는 식이었다. 그런 그녀가 소모임을 같이 꾸리고 노동조합 설립에 주체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노조 부지부장직을 맡고 활동을 하면서 그녀는 그늘졌던 얼굴에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힘들지 않으세요?”
“버틸만합니다. 내가 이 나이에 노조 하는 건, 이 공장에서 오래 벌어먹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랬던 그녀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노동조합에 서서히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노조를 만들었을 당시 공장은 몇 년째 신규채용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잔업을 많이 하고 매주 특근을 하는 회사가 사람을 뽑지 않는 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러다 공장 없어지는 거 아니야? 하는 불안감이 문득문득 들었다. 외주로 물량을 다 넘긴다거나, 공장이 노후화되어 안전진단심사에 걸려 곧 헐린다거나, 어디에 최신식으로 공장을 짓는다거나 하는 온갖 소문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억측과 소문들이 난무하는데도 지부장은 회사가 의도적으로 노조를 흔드는 것이라며 조합원들에게 투쟁만 강요하고 있었다. 집회. 집회. 그놈의 집회…. 조합원들도 이젠 예전 같지 않았다. 사내 중식집회에서도 참가하지 않고 탈의실에 벌렁 누워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니까. 그건 노조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야! 이년아? 너 왜 집회 참석 안 했어?”
조합원들의 등살에 바로 왕따 당하는 현장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젠 그런 동력이 무너지고 있었다. 연대 한번 가려면 조합원들을 설득하느라고 별별 알랑방귀를 떠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맛있는 저녁식사 대접이라는 적당한 미끼가 있어야 마지못해 움직이는 것이었다. 연대를 가더라도 출석체크가 끝나기 무섭게 집회도중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조합원들도 생겼다. 더구나 ‘나이 먹은 아줌마들이 여긴 웬일이지?’ 하는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느낀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지부장은 처음이어서 아직 익숙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우리가 못 올 데를 왔나? 하는 자조가 들곤 했었다. 더구나 지역본부에서 주최하는 노조간부 수련회를 가보면 선동연습이라든가, 피로 쓴 노동해방이니 하는 영상물을 볼 때면 정말 섬뜩하고 무서웠었다. 때려 부수고 얻어터지는…. 이거 내가 정말 빨갱이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녀는 이런 분위기가 자신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노조는 이평공장에서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협약을 체결하자고 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는 몇 달째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회사에게 무엇 하나 따내려면 피 마르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그녀로서는 이제 모든 것이 귀찮았다.  
회사가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거부하니 본조를 나와 금속노조로 가서 힘차게 투쟁하자는 것이 노조의 조직형태변경의 요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명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지부장은 평상시 본조 때문에 못해 먹겠다는 말을 자주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이번 임시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조직형태변경 얘기가 나올 때부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도 안다. 본조의 행태를 보면 분명 어용에 가깝다는 것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굳이 본조를 나와 민노총 안에서도 가장 조직력이 좋다는 금속노조를 가야 하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부장은 우리와 같은 업종인 △△연맹이나 우리가 나오려는 00연맹은 별 차이가 없으니 이왕 가는 거, 투쟁을 잘 하는 금속으로 갑시다! 라며 조합원들을 설득했었다. 지부장 말이라면 무조건 신임하는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달리 어떤 이의를 달수가 없었다. 물론 상급단체를 같은 업종으로 해야 한다는 강제성은 없다 하더라도 금속을 고집하는 것은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더구나 노조의 이런 움직임을 회사가 그저 보고만 있겠는가? 본조의 왕위원장은? 아마도 이평공장은 다시 엄청난 회오리에 빠져들 것이다. 그녀는 이런 모든 게 싫었다.
결국 노조에 반기를 들은 것으로 되자, 조합원들의 소곤거림과 빈정대는 모습이 그녀를 아프게 했다. 같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금껏 앞장서서 투쟁했는데 마치 배신자처럼 낙인찍어 야멸치게 쳐다보던 그 시선은 뭐란 말인가? 그녀는 어떨 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너무 분해서….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회사와 한통속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런 모욕을 겪으면서까지 노조를 했던 것인가? 하는 자괴감은 조합원들에 대한 실망과 회한이 되어 깊어갔다. 이런데도 노조를 계속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을 때 그녀를 잡아준 것은 지부장뿐이었다.
“요샌 왜, 조합사무실에 들어오지 않으세요?”
“사람들이 왕따 시키는데 내가 거길 어떻게 들어갑니까?”
“혼자 그렇게 생각하시니까 그렇죠.”
“지부장님도 내가 회사편이라 생각하세요?”
“천만에요!”
“노조 만들고 나서 내가 괜히 반장을 한 것 같아요. 반장을 하다 보니 회사와 이래저래 얘기하게 되잖아요? 생산량 가지고.”
“우리 입장에서는 부지부장님이 생산현장에서 반장까지 하면 현장질서를 우리가 끌고 갈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물론 조합원들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전 회사랑 혼자서 따로 만난 적 없습니다! 지부장님이 항상 강조했잖아요. 사무장 희옥이랑 나랑은 회사가 언제라도 작업 들어올 수 있으니 절대로 1:1로 만나면 안 된다고. 난 그 약속을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혹시 본조 위원장이랑은 통화하시나요?”
“예.”
“조직형태변경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부지부장님이 반대하는 거 보고 솔직히 좀 놀랬어요.”
“이젠 시끄러워지는 게 싫습니다. 조용히 살고 싶어요.”
“조직형태변경 같은 건 노동조합 업무의 하나에요. 그걸 회사가 반대하니까 시끄러운 겁니다. 다 부당노동행위입니다. 그걸 노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죠.”
“지부장님? 우리 금속노조 가서 고용안정협약 꼭 맺어야 돼요? 솔직히 조합원들 그거 없어도 다 먹고살기 충분한 사람들이에요. 다들 자기 집 있겠다, 자가용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정년은 법적으로 보장된 거잖아요?”
“그렇다고 노조에서 가만히 있어야 되겠습니까? 회사는 계속 흔들고 있는데….”
“우리가 본조를 나가겠다고 하니까 더 그러잖아요? 우리도 다른 노조처럼 회사랑 원만하게 지내면 안 돼요?”
“그건 원만하게 지내는 게 아니죠! 노조로서 자기 역할을 안 하는 거죠.”
“그냥 노조창립일 때 선물이나 주고 1년에 총회 한번 열어서 조합비 사용내역서나 돌리고 그러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려고 노조 만든 거 아니잖아요?”
“다들 지금 그렇게 노조 하잖아요. 노조 하면서 우리 많이 좋아졌잖아요. 그러면 된 거 아닌가요?”
“진짜 부지부장님, 많이 달라지셨네요? 우리가 왜 이렇게 틈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따금씩 노조에 회의가 듭니다. 니편 내편 가르는 게 싫어요!”
“회사는 노동조합을 말로는 인정을 한다지만 실질적으로는 인정을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더구나 활동하는 노동조합은. 그래서 이 노조를 어떻게 해서라도 깨고 싶은 겁니다. 자신들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식물노조로 만들고 싶은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거든요. 회사가 바라는 노동조합 상이 다른 겁니다. 그래서 시끄러운 겁니다. 부지부장님은 그런 노조로 우리가 지금 가자는 거잖아요?”
“솔직히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시끄러운 이런 상황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부지부장님의 지금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노조하다 보면 고비가 많이 생깁니다.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회사와의 물리적인 충돌로 난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비를 넘지 못하면 간판만 걸어놓은 노조가 됩니다. 부지부장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합원들도 힘들어 하는 거 압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노조를 지켜내야 할 게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죽으나 사나 단결투쟁을 외치나 봅니다.”
“힘듭니다. 너무!”
“우리보다 열악하게 시작한 사업장들도 많습니다. 노조인정도 못 받고 있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데를 비교하면 우리야 복이 터졌죠.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줌마들 지금껏 한 사람도 노조 탈퇴 안하는 거 보세요. 단돈 만원에 부들부들 떨던 사람들이 매달 2만원씩 꼬박꼬박 조합비 내고 투쟁기금이니 뭐니 각출하는 경우도 많은데 말이죠?”
“노조가 소중하다는 걸 알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것보다는 탈퇴하면 곧바로 왕따 당하는 현장분위기 때문일 거예요.”
“혼자서만 계시지 말고 조합원들이랑 산행도 하시고 그러세요?”
“노조 생기고 조합원들이 가장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바로 산악회에요. 회사가 만원씩 지원해주겠다,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속에 있는 얘기도 하면 잡념도 없어질 겁니다.”
“입들이 싸서 잘못하다간 공연히 약점만 잡히는데요? 바람 쐬는 거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지부장님? 그런데 본조는 꼭 나갈 거예요?”
“총회에서 결의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지부장님, 다칩니다!”
“공장장이 그러던가요? 왕위원장이 그러던가요?”
“지부장님 다치면 우리 노조는 끝나는 겁니다. 우리가 뭘 압니까?”
“조합원들이 하셔야지요?”
“우리가 어떻게 노동조합을 운영합니까? 아는 게 있어야지요.”
“제가 하는 거 옆에서 쭈욱 지켜보셨잖아요?”
“해 보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컴퓨터도 배워보고 소식지도 같이 써 보고, 마이크 잡고 사회도 봤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못했잖아요.”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저도 조합원들 앞에 서면 지금도 떨리는데요.”
“학습과 훈련이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한계라는 건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빠져나가는 말만 하시니까, 지부가 기형적으로 돼 버린 겁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다 만든 거지만.”
“우리가 못 나서 그렇죠. 지부장님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지게 한 거죠. 그래도 조심하셔야 돼요. 예전에 노조 초청강연회 때 이 일재 할아버지 우리 공장 왔었잖아요. 그때부터 회사가 지부장님을 본격적으로 노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노리다니요?”
“공장장이 흘리듯이 말하던데요? 완전 빨갱이라고!”
“이 선생이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그러나 보죠. 우리가 그 양반을 초청한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몸도 성치 않은 분이 노구를 이끌고 활동하시는 게 감동스러워 용돈이나 조금 챙겨주자는 의도밖에 없었잖아요.”
“회사는 그렇게 생각 안하죠? 우리야 그날 감동 먹었지만….”
“부지부장님? 이미 총회에서 결의했으니 생각이 달라도 따라오셔야 됩니다. 그리고 조합사무실에 이제 들어오셔야지요. 부지부장님이 중심을 잡아주셔야 노조가 힘을 받습니다.”
“총회 결정은 따르겠습니다. 다른 건 아직 그러네요?”


임시총회가 끝나고 며칠 뒤 회사 관리자들이 노조에 가입원서를 등기로 보냈다. 얼마 전 관리자들이 가입원서를 들고 조합사무실로 찾아온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질 줄은 몰랐다. 그때 그는 노조규약에 의거 해 관리자들은 노조에 가입할 수 없음을, 정중하게 설명하고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등기로 보내지자, 조합원 모두가 흥분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지부장님이 알아듣도록 얘기 했다던데 또 이런 짓 꾸미는 거 보면, 우리보고 엿 먹으란 소리 아냐?”
“정말 황당하다. 노조에 사사건건 방해하던 놈들이 가입이라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걸….”
50대 주부 조합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코웃음을 치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서늘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회사의 공세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그것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닥칠지도 모를 위해감 같은 것들이 날카롭게 심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 했다. 노조 만드는 것만큼이나 회사와 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직형태를 바꾼다는 것이 어렵고 만만찮은 일이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거 기지고 당장 놈들 얼굴에다 싸대기 쳐야 돼!”
사무장 희옥의 얼굴에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조합사무실에서 있던 간부들 역시 그녀처럼 격양돼 있었다.
“비열한 놈들! 사내에서 집회 할 때 몰래 숨어 동영상이나 촬영하고 사진 찍던 놈들이… .”
“현장에서 화장실 가는 것까지 참견하고 통제하던 놈들이….”
노조간부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이런 판국에 부지부장은 오늘도 조합사무실에 안 들어 온 거니?”
“냅둬. 성! 피곤하나 보지.”
“누군 탈의실에서 누워 있고 싶지 않니?”
“그 성 원래부터 본조 나가는 거 반대했잖아!”
“지부장님이 그렇게 설득을 해도….”
“변하긴 변했잖아? 요샌 현장에서도 생산량 안 나온다고 스위치 팍 돌려놓잖아!”
“그 바람에 팔목도 쑤시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아무래도 회사랑 무슨 썸싱 있는 거 아니야?”
“설마? 영자가 그럴 사람이니?”
“설마가 사람 잡는대? 남모르게 공장장이랑 만나서 노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얘기 할지 누가 알아?”
“지난번 촛불집회 갔을 때 누구누구 갔는지 공장장이 다 알고 있더라니까?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와서 촛불집회 재미있었어요? 이러고 빈정대더라니까!”
“나한데도 그러던데.”
“틀림없어. 회사 안테나 된 거야!”
“조합사무실에서 했던 얘기들이 어떻게 공장장이 다 알고 있느냐 이거야?”
“그만 하자!”
잠자코 듣고 있던 사무장이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
“막연한 추측으로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떻게 하니? 영자가 공장장이랑 만나는 거 직접 본 사람 아무도 없잖아! 사실을 가지고 얘길 해야지. 걔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사람이라는 건 니들이 더 잘 알잖아?”
“지금 노조에서 가장 중요할 때 저렇게 엇나가니까 답답해서 그런 거지.”
“눈앞에 안 보인다고 그렇게 비난하면 야박해 보이잖아?”
“내가 좀 심했나? 미안.”
“솔직히 영자만큼 노조 열심히 한 사람이 누가 있니? 노조 만들 때 제일 먼저 나선 사람도 바로 부지부장이었어. 걔가 나섰기 때문에 나도 사무장을 한 거고.”
“……”
“다들 알겠지만 노동조합 만들기 전에 우리 소모임할 때도 영자가 가장 적극적이었어. 옛날에 불법파견 유인물 뿌린 것도 걔가 한 거잖아. 그때 무서워서 못한다고 모두 고개 숙이고 있으니까 자기라도 하겠다고 하더라. 그땐 노조가 있었니? 뭐가 있었니? 걸리면 그냥 가는 거야! 더구나 우린 정규직이었지만 옆에서 일했던 비정규직들을 위해서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니?”
“그렇긴 그렇지. 그때 우리 공장에 용역회사가 2군데나 있었으니까. 그 사람들 우리랑 똑같은 일을 했지만 상여금도 없어서 측은하게 생각했지.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간사해서 언젠가는 내 일자리도 뺏기는 게 아닌가, 해서 이유 없이 미워하기도 했잖아. 그게 우리 정규직들의 일반적인 정서였거든. 그런데 지부장님이 불법파견 유인물 뿌리라고 하니 누가 하겠어? 모두 반대했지. 왜 우리와 소속이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냐고! 그런데 영자는 아니었어.”
“걔가 눈물이 많아서 그런가? 무슨 일 할 때 보면 앞뒤를 안 가려.”
“그때 화장실과 탈의실에 뿌려진 유인물 수거한다고 모든 관리자들이 눈에 불을 키고 돌아다니던 생각난다.”
“정규직들인 우리랑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정말 통쾌하더라!”
“유인물 한 장이 공장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파급력을 가질 줄이야….”
“처음 뿌려져서 그랬겠지만 사람들을 그토록 뜨겁게 할 줄은 몰랐다니까.”
“몰랐던 진실을 알아서 그럴 거야. 나중에 진정서 들어가고 21명 정규직 됐었지.”
“그때는 회사도 어리버리 해서 노동부 불법파견판결 나오니까 큰일 난 것처럼 2년 이상 된 사람은 모두 정규직으로 직접고용 한 거지. 요새 불법파견관련 뉴스 나오면 그때가 생각나 지금도 심장이 벌렁벌렁 하다니까.”
"그랬던 영자가 지금 노조에 소극적인 건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부지부장 씹는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가 기다려주자고?”
“촉새들처럼 입방정 또 떨면 노조에서 완전 탈퇴시킬 겨!”
“예 알았습니다. 조직부장님! 하하.”
“성들? 토론 끝났으면 일단 이거나 먹자! 엉? 시간 없잖아.”
미숙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검은 비닐봉지에서 무엇인가를 탁자위에 주섬주섬 꺼내고 있었다. 호일에 싸인 것은 호박전과 부침개였다.
“너는 이 판국에 먹는 것밖에 모르니?”
“아이 성도 참….”
“정성스럽게 싸온 애한데 웬 타박이야?”
“넌 먹을 거 가져왔으면 잽싸게 꺼내지, 무슨 뜸을 그렇게 들이니? 다 먹자고 하는 짓인데….”
오전 10시 30분 휴식시간만 되면 탈의실과 조합사무실 곳곳에 모여앉아 집에서 싸 온 음식들을 분주히 먹는 게 이곳 공장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여기 만두도 좀 먹어봐?”
이번에는 순남이 비닐봉지를 풀고 있었다.
“매일 얻어먹는 것 같아서, 새벽에 깼는데 통 잠이 와야지…. 오늘 빚은 거야.”
“너도 깊은 잠 못자냐? 다들 비슷하나 보네. 예전에 노조 처음 만들 때처럼….”
그들은 긍정도 부정도 없었다. 다만 서로의 낯빛이 푸석하다는 것을, 그게 자신들의 지금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회의용 탁자에 둘러앉아 분주히 먹으면서 저마다 정수기 온수를 받아 커피를 타고 있었다.
“내 커피는 블랙으로. 프림 넣으면 살찐단 말이야.”
“한 손에는 전, 한손에는 커피 이렇게 먹어들 대면서 그런 말이 나오니?”
“우리 아저씨는 그래도 좋대. 잡히는 맛이 있대나? 히히.”
“새벽에 한 따까리 했나보네?”
“우리 나이가 몇인데 그래? 생리도 끝났구만.”
“야! 주접은 그만 떨고 시간 없으니까 무슨 얘기 좀 해봐?”
“디데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회사도 그걸 알고 이렇게 가입원서 보내 우리를 흔들려는 거겠지.”
“야비한 놈들! 옛날에 우리가 처음 조직형태변경 총회를 할 때 회사 놈들이 왜 그렇게 격렬히 방해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갔어? 조합원들이 모여서 회의 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였잖아.”
“본조를 나가는 총회였으니까 그렇지. 우리가 금속노조로 가는 것보다 본조를 나간다는 그 자체가 회사에겐 더 부담스러웠겠지. 회사는 본조를 통해서 지금껏 지부를 관리했는데 이젠 그게 안 먹힌다는 거지.”
“그게 그렇게 회사에겐 민감한 문제였을까? 공장장과 관리자들이 난입할 만큼.”
“난 오히려 바로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회사가 무얼 두려워하는지 그 총회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해. 우리가 노조를 잘 지키려면 하루빨리 본조를 나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 들었어.”
“우리 그때 지부장님이 부당노동행위라고 소리칠 때 덩달아 구호를 외치면서 회사 놈들을 밀어낼 때, 몸싸움 하면서 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거든! 평소 과장님? 공장장님? 하며 굽실거리던 내가 그들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조합원들이 종업원에서 노동자로 바뀐 거지. 투쟁하면서.”
조합간부들은 그 당시 총회 때 벌어졌던 회사와의 크고 작은 충돌을 자신들이 직접 느낀 그대로 회상하고 있었다.  
“그 일 이후로 조합원들이 많이 겁먹은 건 사실이야. 그래서 총회도 여러 번 하고 설득도 하면서 지금까지 온 거잖아.”
“88% 찬성이면 만족해야지.”
“회사가 이번에 조합원들에게 일일이 전화질 하고 방해한 것에 비하면 조합원들이 잘 따라 온 거야.”
“나에겐 전임공장장까지 전화해서 상급단체 바꾸면 공장 문 당장 닫는다고 협박까지 하더라니까. 전임공장장과 내가 개인적으로 친한 걸로 알았나봐.”
“연고나 친분까지 내새워 방해할 만큼 회사는 이 일에 사활을 걸었던 거야! 집요하게.”
“디데이 코앞에 두고 이렇게 또 가입원서 보내는 거 봐라!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니?
“뚱 성이 그러는데 가입원서 그냥 찢어버리고 우린 못 받았다고 하면 된대!”
“그 성 답네. 무시해버리자? 미숙이 니 생각은?”
“성이 그랬잖아? 싸대기 치면 된다고! 그냥 우린 총회 때 결의한대로 우리 갈 길 가면 되는 거 아니야?”
“노조 규약상 우리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위치에 있는 관리자들은 원천적으로 노조가입이 안 되니까 신경 쓸 건 없는데, 이런 일로 조합원들이 혹시나 흔들리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이나 써 줘!”
사무장의 당부에 조합사무실에 모인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사가 노린 건 결국 조합원들의 분열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탈의실 저쪽에서 갑자기 까르르 하는 조합원들의 웃음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왔다.
“남들은 걱정하고 있는데 쟤네들은 완전 신났네!”
“사무장? 저 웃음소리 봐! 이런 치졸한 일로 우리 아줌마들 흔들리지 않아!”
“탈의실에서 왜 저런다니?”
“아까 현장에서 들었는데 숙자 성 동기들이 지난주 묻지마 갔대. 거기서 만난 늙다리들이 또 보자고 자꾸 전화 온데요. 그 얘길 듣던 뚱 성이 자기도 끼워 달라고 하니까 저렇게 배꼽잡고 웃는 거야. 마음만은 홀쭉하대나?”
“말도 마. 숙자 걔는 묻지마 갈 때는 집에 일이 있다고 회사엔 월차내고, 집에다가는 잔업이라고 뻥 친대?”
“어머! 미쳤어 진짜!”
따르릉 따르릉 작업시간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렸다.
“아후, 저 벨소리! 짜증나. 저거 안 듣고 살 수 없나?”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네. 몸뚱이 움직여서 먹고 살 때가 좋을 때다.”
“점심 먹고 다시 모여! 얘기 좀 더 하게.”
“피곤혀! 난 탈의실에서 눈 좀 붙여야 되겠어.”
“부지부장도 안 들어오는데 너 까지 왜 그러니?”
“아후, 짜증나! 몰라! 몰라!”


“지부장님이 알아서 하겠지.”
  미숙이 심드렁하게 한마디 툭 던졌다.
“넌 양심도 없냐? 지부장님한테 또 떠넘기게?”
“지금껏 그랬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그래?”
“전임도 없이 지부장님 지금도 밖에서 일하잖아! 요새는 금속노조 가는 거 때문에 준비하느라 매일 늦게 퇴근하는 거 알면서….”
“준비 하는 걸 상급단체에서 해줘야지, 왜 우리가 하는데?”
“그쪽이 바쁘니까 그러겠지. 그래서 예전에 노조전임 따내야 했던 거야?”
“그때는 조합원들이 노조전임에 대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회사도 완강히 반대하고. 임금 많이 올리고 수당 신설하는 데만 다들 집착했잖아, 나부터도 그랬는데 뭘?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아주 잘못 생각한 거지.”
“조합원들한테 물어보면 지금도 노조전임보다는 임금 왕창 올리는 걸 더 좋아할 걸?”
“전임이 있느냐, 없느냐는 노조의 자존심이 걸린 문젠데….”
“조합원들은 그렇게 생각 안한다니까? 솔직히 우리가 금속노조 가는 것도 고용안정협약 그런 것보다는, 그쪽으로 가면 최저임금도 높고 정년도 연장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야.”
“그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해관계 따라서 움직이는 거야. 더구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그런 면에 있어서 약삭빠르지.”
“지부장님, 임시총회 끝나고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또 가입원서 때문에 신경 쓰시겠다.”
“지부장님이야 본조 나오자고 했으니까 책임감이 더 있는 거지. 그리고 노조에서 매달 5만원씩 주잖아? 지부장 활동비로.”
“그런 식으로 말하면 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거냐? 미안함이 달래지는 거냐고?”
“그러면 이번 달부터 지부장 활동비 10만원으로 올릴까?”
“야! 이년아? 미안하다면 가입원서 건 가지고 지부장님한테 더 이상 떠넘기면 안 되잖아?”
“그래. 무슨 일만 툭 터지면 지부장님이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우린 지금까지 미뤄왔잖아 모든 걸….”
조합원들도 알고 있었다. 노조에 무엇인가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을. 그러나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이 없었다. 회사가 현수막 철거의 공문을 보내면 나쁜 새끼들이라고 말할 뿐, 이걸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회사가 주장하는 논리를 명쾌하게 반박하면서 공문을 보낼 수가 없었다. 컴퓨터를 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에 자신감이 없었다. 현수막 사수가 옳다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잔뜩 겁부터 났었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과 부딪히는 게 불편하고 두려울 뿐이었다. 그건 잘 알지 못한다는 지기고백 같은 것이었다. 50이 훌쩍 넘은 이 나이에 손자까지 본 이 처지에 무엇을 배우고 안단 말인가?
조합원들은 그래서 지부장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할 미안함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 그 부채의식은 노조 처음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더욱 커져갔다. 지부장 혼자서 동분서주하는 거 보면 정말 안쓰러웠다. 교섭석상이나 회사와 간담회를 할 때 보면, 관리자들은 왜 그리 다들 유식하던지,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회사가 다 옳은 것처럼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그저 꿀 먹은 병아리일 뿐이었다. 지부장 혼자서 그 잘난 회사 놈들과 상대할 때 진짜 지부장에게 미안했다. 그럴수록 지부장이 미더웠다.
이번 금속노조 가는 것도 지부장을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사보다는 지부장 한사람을 조합원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한 결과였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노동조합에 힘을 보탠 것이었다.
“어떤 땐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부장님을 이용해 먹는 게 아닌가, 할 때가 있어.”
사무장은 씁쓰레하게 웃으며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하고 있었다.
“평소 지부장님이 그런 말 자주 했잖아? 조합원들은 저를 마음껏 애용해 주세요, 라고 웃으면서….”
“그렇게 노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람들은 왜 그리 노조에 색안경을 쓰고 보는 걸까?”
“성? 우린 노조 하기 전에 안 그랬어? 우리도 그랬잖아! 그런데 하면서 많이 달라진 거지.”
“우리 아저씨는 노조라면 치를 떠니…. 자동차 오디오 만드는 공장에서 부서 몇 군데가 통째로 외주로 넘어갔거든. 그 바람에 우리 아저씨 졸지에 간접고용 비정규직 됐잖아. 나이 들어 딴 데 가기도 어렵고 해서 그냥 다니고 있는데 그걸 노조가 합의해줬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노조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데….”
“거기 민주노총 금속사업장인데?”
“금속이면 뭐 하냐고? 활동하는 노조냐, 아니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무늬만 민노총 사업장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역 금속노조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는 있나?”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꿰차고 있겠어? 이런 건 뉴스거리도 안 되잖아! 커다란 사회적인 이슈거리가 되는 것에만 다들 투쟁하잖아. 언론에서 잠잠해지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모두가 생존에 대한 절실한 일인데….”
“그쪽 공장 얘기 나도 들었는데, 거기가 니네 아저씨 공장이었구나. 40명이나 넘는 사람들이 그렇게 됐다고 하던데.”
“쌩 어용들, 돈 깨나 쳐 먹었겠지. 정규직들에게는 특별상여금이 지급될 테고.”
“그러면서도 투쟁조끼에는 세상을 바꾸자, 라고 써져 있더라!”
“그러고 보면 민주노총도 믿을 게 못돼!”
“그간 행태를 보면 낮은 곳에 있는 노동자들의 조직이 아닌 거 같아!”
“우리가 가려고 하는 금속노조도 그런 거 아니야?”
“입방정 좀 떨지 마라! 재수 없게.”
사무장 희옥은 그 사업장에서 현판식을 할 때 가본 기억이 있다. 경비실 옆에 컨테이너로 만든 노조사무실. 조합원이 400명이나 되는 사업장이었다. 업종이 다른 그곳을 1시간이나 넘게 시외버스를 타고 축하 방문한 것은 이평지부가 금속으로 가기 위한 사전행보였다. 금속 쪽과 친분을 맺기 위한 나름대로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사업장이 1년도 안 돼 어용노조로 전락한 것이 그녀로서는 못내 아쉬웠다.
“거기처럼 민노총 내에서도 노조 팔아먹는 놈들이 많이 있나봐! 과거경력 밑천삼아 잿밥에만 신경 쓰는 작자들도 있고.”
“그게 사람인데 어쩌겠어?”
“투쟁 열심히 한다는 사람들도 그러나 봐. 지역에 선거 때나 어디 상근자 자리 하나만 나오면 자가들 식구라고 해야 하나, 인맥이라고 해야 하나, 서로 앉으려고 분탕질을 하잖아?”
“지역 금속지부장 선거 때도 예전에 그랬다면서?”
“누구 쪽은 절대로 안 되니? 뭐니? 하면서 소위 활동한다는 사람들이 평소 쌩 어용들이라고 비난했던 작자들을 밀어 결국에는 당선시켰잖아?”
“노조 몇 년 하다 보니 이 바닥이 이런 데였나 하는 자괴감이 들더라고.”
“그것보다 더 실망스러운 건 우리 같은 순진한 사람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거겠지.”
마치 실연이라고 당한 듯 사무장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한숨까지 다 쉬고, 무슨 일인데?”
“얘기하기도 창피하고 모두가 쉬쉬 하는 것 같아서….”
“우리도 좀 알자, 뭐 대단한 비밀인 것 같네?”
조합사무실에 있던 간부들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임기도 아직 많이 남은 지역 본부장이랑 사무처장이 예전에 갑자기 사퇴를 했잖아?”
“그거 좀 지난 일이잖아? 비정규직 투쟁사업 잘못했다고 하면서….”
“그건 입막음용이고 본부장이란 사람이 평소 그렇게 도박에 빠져 살았대. 같이 일하는 지역본부 상근자에게도 돈을 빌리고 심지어는 단사 조합원들에게까지 손을 벌렸다는 거야. 그게 얼마나 심했으면 정보과 형사에게까지 들어갔겠니?”
“그래서 사퇴를 한 거야? 그래놓고 비정규직 어쩌고…”
“어머? 그게 진짜야!”
사무장의 말에 모두 기가 차다는 듯 다들 너무 놀라 넋을 잃은 표정들이었다.
“지역본부에서 사실을 말하면 민주노총이란 이미지에 타격을 받으니까 그런 식으로 덮었나 보더라.”
“자기조직에 피해가 간다고 진실을 그런 식으로 은폐할 수가 있는 거냐고? 더구나 상근자들이 공모해서? 이건 도덕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일이야!”
“자본가들이나 하던 짓을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이건 아니야!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어. 그런데 이것을 변명하거나 거짓말하면 그 잘못은 더욱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왜 몰랐을까?”
“지역본부 입장은 이해가 가지. 투쟁할 일은 많은데 그렇다고 까발리게 되면 지역전체가 휘청거리게 되잖아?”
“그렇다고 진실을 영원히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해? 노동운동을 왜 하는지부터 묻고 싶어!”  
“…….”
“도박에 빠졌으면 분명 출근도 제대로 안하고 업무도 제대로 못 봤을 텐데….”
“그걸 묵인하고 방조한 사람들이 지역본부 상근자들이야.”
“본부장한테 누가 감히 대들겠어? 지역에 선배고 카리스마도 있잖아. 수염 기른 거 보면.”
“개뿔은! 카리스마는.”
“거기 파업할 때 우리가 지지방문도 갔는데, 참 배신감 느낀다!”
“상근자들도 다들 똑같은 놈들이잖아! 그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일을 처리해버리면 어떻게 해?”
“공범자들!”
“그래놓고 집회에서 연설하는 거 보면, 이 지역을 좌지우지 호령하는 것처럼….”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지역본부를 신뢰하게 될까?”
“그래서 그렇게 덮으면 안 된다는 거지.”
“투쟁 열심히 한건 알겠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좀 겸손해져야지.”
“겸손한 사람들이라면 일을 그 따위로 처리했겠니?”
조합간부들은 흥분한 채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애정이 깊으면 실망도 큰 것처럼.
“그래서 사람이 한 곳에서 오래 있으면 안일해지나 봐! 우리처럼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야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다 알겠어? 아마도 그런 일들이 또 되풀이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우리도 매일 똑 같은 자리에서 똑 같은 일 하다보면 긴장감도 없어지고 태만해지잖아? 그러다 결국 클레임 걸리는 거구?”
“6개월에 한 번씩 자리이동 할 때마다 미숙이 니가 제일 구시렁거리면서 그런 말이 나오니?”
“아이, 내말은 우리도 타성에 안 젖으려고 하는데 활동한다는 사람들이 한번 무슨 자리에 앉으면 벼슬이라도 하듯이 고래 힘줄처럼 버티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면 그 사람들이 나와서 우리처럼 공장엘 다니겠니? 뭘 하겠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것 밖에는 할 수 없는 거야? 현실적으로.”
“난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지금껏 잠자코 듣고 있던 순남이 끼어들었다.
“지역본부에서 예전 비정규직 담당했던 상근자, 그 사람 우리동네 같은 아파트동에 살거든. 나이도 꽤 먹고 이 바닥에서 얼굴깨나 팔렸지만, 지금 외곽에 있는 가구공장에 들어가서 잘 다니고 있대.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자기활동 방향을 잡느냐 하는 것이야.”
“지역에 미조직 영세사업장들이 얼마나 많아? 공장바닥에는 독한 화학물질이 홍건이 고여 있고 주야 12시간 맞교대 뛰면서 최저임금만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니? 현장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도 바꾸지 못하면서 뭘 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관료라는 말을 듣는 거야.”
“이젠 수습됐잖아. 본부장도 새로 뽑고.”
“정확한 진실규명, 그리고 지역 조합원들에 대한 사과. 이런 게 있어야 되는 게 아니야?”
“지역본부 그만 흔들자. 흔들어서 좋을 게 뭐가 있니? 다 지나간 일이잖니?”
“그게 되지 않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야!”
“순남이 성 말이 맞아. 그러니까 그 본부장이 단사 내려가서 또 위원장 하는 거 봐?”
“그놈의 권력욕은 브레이크도 없어!”
“그 공장 조합원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니? 우리보다 수준이 더 떨어지는 거 아니야! 그런 사람을 또 찍어주고?”
“정년연장 공약을 내걸었더니 조합원들이 우르르 찍어줬대.”
“차암! 정치파업도 잘 한다던 사람들이 그 정도인가? 우리는 진짜 이기적으로 노동조합 하지 말자. 성!”
“하긴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했다는 사람조차도 조합원 천명의 입당원서를 가지고 왔다는 둥 그래 버리니!”
“그 양반이 국회의원 되려고 그랬겠니? 이 땅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려고 그랬겠지. 흐흐.”
“하여간 말들은….”
“그 사람 위원장시절 현장순회 할 때, 우리 공장도 오겠다고 하니까 우리 지부장님이 필요 없다고 한마디로 딱 거절했잖아?”
“그때 난 지부장님이 왜 반대하나 그랬어! 솔직히 나쁠 건 없잖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알아 두면 나중에 비빌 언덕이라도 되잖아?”
“지금 행태를 보면 모르겠니?”
“성? 본조 왕위원장은 그 양반을 젤 존경한대?”
“잘들 형님 동생 하라고 해! 이제 본조 신경 쓸 필요 없잖아? 조금 있으면 빠이빠이 할 텐데 뭘.”
“진짜 디데이가 얼마 안 남았네.”
“지난번 노조사무실에서 금속노조 사람들이랑 우리간부들이랑 간담회 했잖아. 어깨가 다들 따악 벌어지고 우리한데 어머님, 어머님 하면서 금속노조로 와서 같이 투쟁합시다, 하니까 진짜 든든하더라!”
“다들 무섭게 생겼더라. 그치?”
“성도 만만치 않잖아?”
까르르.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렸다.
“거기 가서 우리가 잘 할까? 아들뻘 되는 사람들에게 공연히 폐나 끼치는 게 아닐까?”
“그쪽 금속지부장이 상관없다고 했잖아!”
“모두들 이래저래 심란하겠지만 어쩌겠니? 이미 화살은 떠났는걸."
“이럴 때일수록 차분해져야 돼.”
“그게 말처럼 돼야지! 요샌 청심환을 달고 산다니까.”
“우리 조합원들을 믿고 금속노조를 믿자!”
“출정식 때 쓸 현수막은 다 맞춰놨지?”
“3개에 8만원이래. 아주 큰 걸로. 현수막 보니까 우리 노조 이름이 지부가 아니라 이젠 지회더라.”
“산별노조이니까 그렇지. 넌 출정식 날 현수막이나 잘 걸어!”
“내가 어쨌다고 그래? 하여간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
“넌 힘 좋다고 현수막 걸때 너만 당기지 말고 조합원들이랑 같이 팍팍 잡아당기면서 묶어! 끝에만 잡고 당기니까 바람 불면 미친년 속옷처럼 붕 뜨잖아?”
“다들 잘 하겠지. 우리가 어디 한두 번 걸어 봤나? 하하.”
“이번에는 상징의식도 한다고 했지?”
“집회할 때 풍선도 날리고 리본에다 우리 요구사항 적어서 건물 곳곳에 걸어놓고 그랬던 거.”
“그거 할 때 조합원들이 제일 신나게 하더라. 공장장 차문에 막 묶어놓고….”
“이번에는 하얀 광목에 조합원 모두 핸드프린팅 한대더라.”
“영화배우들이나 하는 거 말이지? 그거 진짜 재밌겠네.”
“손바닥이 아니라 우리들 주먹을 프린팅 한대!”
“야아, 그거 볼만하겠는데. 그러려면 페인트를 준비해야지?”
“지부장님이 페인트 묻힌 손 잘 안 지워 진다고 먹물로 하제더라.” “그 정돈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지부장님이 우리들 세심히 헤아리는 것만큼 우리도 끝까지 흔들리지 말자!”
“출정식 날, 대단하겠는데?”


오전 8시 20분이 되자 공장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국민체조를 알리는 음악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탈의실에 모여 있던 조합원들은 일제히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3층 생산실 입구에 있는 스톱워치에 출근카드를 찍기 시작했다. 자신의 출근카드를 찍은 조합원들은 나머지 조합원들이 카드를 찍을 때까지 라인별 생산지시 상황판 앞에서 대열을 이루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출근카드를 찍고 그 대열 앞에 섰다.
“우리가 지금 진행 중인 준법투쟁이 벌써 3달이 넘었습니다. 점심시간을 40분에서 50분으로 고작 10분 더 늘려달라는 요구를 회사는 무작정 안 된다고만 하고 있습니다. 물론 회사는 우리가 잔업을 2시간 할 경우, 2시간 반으로 처리해주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대한민국 어느 공장이 점심시간이 40분인 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솔직히 잔업 없을 경우에는 우리가 여태껏 손해 본 겨! 안 그려?”
“밥 먹고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에 있다 보면 작업벨 울립니다.”
“넌 대접으로 밥 처먹으니까 그렇지!”
조합원들의 킥킥 대는 웃음소리에 3층 한쪽 구석에서 체조를 하던 관리자들이 이쪽을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준법투쟁을 하니까, 지금껏 출근하면 당연히 체조를 하고 공장장 훈시를 듣던 회사의 질서가 일거에 무너졌습니다. 이게 바로 노동조합의 힘입니다. 우리가 단결해서 투쟁하면 세상의 질서를 바꿀 수가 있습니다!”
“회사가 우리의 요구를 받아주면 그땐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하니? 자유시간이니까 니 꼴리는 대로 하면 되지.”
“난 살 빼야 되니까 국민체조는 해야지, 공장장 훈시는 쌩 까고.”
“곰탱아! 살 빼려면 러닝머신을 타야지. 헬스 3만원이면 끊는 데드라."
“헬스가면 가빠 나온 아저씨들도 많잖아!”
대열 속에서 다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처럼 이렇게 모여서 우리끼리 이빨 까면 되지. 할 거 없으면 현빈 노래 한 곡조씩 뽑던가.”
따르릉 따르릉 작업시작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에이, 또 일하라고 그러네. 몸뚱이는 움직이기 싫고 돈은 벌어야겠고….”
“8박자 구호 한번 외치겠습니다!”
“짝짝 박수치면서 하는 건가?”
“난 박자 감각이 없어서 잘 못 맞추겠더라.”
“넌 노래방 매일 가잖아?”
“쟨, 그쪽이 아니라 끌어안고 스텝 밟는 거잖아!”
점  심  시  간  10  분  연  장!
구호가 끝난 뒤 조합원들은 모두 생산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회사가 보낸 가입원서를 들고 사무실로 향하던 권 대리 앞을 막아섰다.
“야! 권 대리? 너 지금 장난치는 거야? 지난번에 내가 조합사무실에서 얘기했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등기로 보내?”
“왜, 그러세요?”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새끼야?”
그는 들고 있던 가입원서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있었다.
권 대리는 그의 돌발행동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그때였다.
“근무시간에 웬 소란이야!”
어디선가 갑자기 관리과장이 나타나 다짜고짜 양팔로 그의 목을 조르는 것이 아닌가? 완전 헤드록 자세였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였기에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
“이거 안 놔? 새끼야!”
등치가 큰 관리과장은 완력으로 그의 목을 휘감은 채, 몇 미터 끌고 다니더니 3층 계단 밑으로 그를 밀어버렸다.
“가서 일 하라고!”
순간 그는 중심을 잃고 뒤뚱거리다 계단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아니, 이 새끼가!”
분노 때문이었는지, 그는 벌떡 일어나 관리과장에게 달려들었다. 이때 공장장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정하시죠. 지부장님.”
“너 이 새끼 사람을 쳐?”
그는 온힘을 다해 대들었지만 건장한 관리자들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이내 관리자들은 그의 왜소한 체구를 비웃듯, 총총히 그의 곁을 떠나고 있었다. 공장장은 재빨리 그를 달래기라도 하듯이 조합사무실까지 쫓아 들어왔다. 한참 나이어린 놈에게 맞았다는 개인적인 수치심보다는, 명색이 노동조합 대표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폭력을 저지르는 그 오만방자함이 그를 참혹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왜 그런 겁니까? 지부장님?”
공장장은 마치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가증스럽게도 당신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와? 두 눈으로 다 봤잖아!”
“김 과장이랑 싸운 겁니까?”
“이게 싸운 거야? 일방적으로 내가 맞은 거지. 노동조합 지부장에게 이렇게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거냐고?”
“폭력이라뇨? 누가 누굴 때렸다는 겁니까?”
“지금 관리과장 놈한테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잖아!”  
“아닙니다! 난 못 봤습니다!”
순간 그는 폭력행위를 목격한 사람들이 모두 관리자임을 알자, 더욱 분통이 터졌다. 그는 이 사실을 오직 조합원들에게 빨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어떤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는 그만큼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컴퓨터 전원스위치를 올렸다.
“선전물 내시려고요? 맞았다고?”
“시치미를 떼는 당신 얼굴 보면 역겨우니 나가요! 당신과는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는 우선 본조 홈페이지와 회사 자유게시판에 오늘 벌어진 폭력행위에 대해 사실을 알렸다. 2층 화장실 옆에 마련된 노동조합 게시판에도 선전물을 게시했다. 그러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선전물을 게시하자마자 조합사무실로 황급히  들어온 것은 조합원들이 아니라 회사 관리자들이었다.
“우리가 언제 지부장을 때렸다는 겁니까? 선전물 삭제시키세요!”
“뻔뻔하게 그런 말이 나와?”
“서로 약간 실랑이 벌인 거 가지고 폭력이라니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니놈이 내 목 잡고 헤드록 한 채로 끌고 다니다, 계단 밑으로 밀었잖아 새끼야?”
“정말 억울합니다. 나는 지부장님 근무시간에 소란피지 말라고 어깨 잡은 거밖에 없습니다.”
“뭐? 어깨? 이런 개새끼들 같으니라고, 사과는 못할망정 이런 식으로 사실을 왜곡시켜! 당장 나가! 쌍놈의 새끼들.”
“이건 분명히 허위사실을 적시한 겁니다!”
그는 오 차장과 김 과장을 강제로 밀어냈다.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진실을 축소 은폐시키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또다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부장이 폭행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합원들은 분노와 흥분으로 술렁거렸다.
“다친 덴 없으세요? 지부장님 맞았다는 얘기 듣고 다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다행히 크게 다친 데는 없습니다. 노동조합의 위신이 이렇게 땅에 떨어져서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병원 가서 진단서라도 끊으세요?”
“병원 가서 진단서 끊어 달래면 2주는 나온 데요.”
“그런 식으로 치사하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지부장님, 제발 우리말 들으세요? 저렇게 흉악한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압니까?”
“크게 다친 데가 있어야지 진단서를 끊지요?”
“목 언저리가 지금도 빨갛게 부어올랐습니다. 가라라도 끊으세요!”
“이 정도로 무슨…. 여러분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런 방법은 싫습니다!”  
“참 지부장님도, 고지식해서….”
“지금 폭력행위보다 더 급한 건 낼 모래 있을 출정식 준비입니다. 거기에 우리 모두 역량을 집중합시다! 저도 실무적으로 더 준비해야 할 게 있어서, 오늘 폭력행위는 분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직도 준비할 게 있으세요?”
“예. 우리가 금속노조로 가게 되면 사측에선 곧바로 단협해지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얘는? 지부장님 때린 거 봐라! 회사가 무얼 못하겠니?”
“하기야! 본사에 법무팀도 있겠다, 우리가 조직형태 바꿔서 금속노조 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니?”
“단협해지라면 단협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말인가요?”
“예. 기존의 단협은 기업별노조 체계에서 맺은 거니까 산별로 가면, 조직형태가 바뀐 게 되니까 적용이 안 된다는 논리겠죠.”
“그렇다면 큰일 아니에요?”
조합사무실에 있던 일부 조합원들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괜한 말을 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다.
“그러면 우린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사전에 간부님들에게는 말씀드렸는데요. 지부단협을 체결할 당시 그 대상이었던 우리 조합원들 상태도 변한 것 없이 그대로고, 우리 공장도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 조직자체가 이동하는 거니까 괜찮을 겁니다.”
“지부장님? 회사 놈들이 그래서 가입원서를 보낸 것 같아요?”
“맞아. 맞아. 단협 인정 못 받게 하려고! 음흉한 놈들 같으니라고”
“하여튼 배웠다는 놈들이 잔대가리는 더 잘 굴려.”
“물론 우리 일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이겠죠. 솔직히 이 부분 때문에 고민이 좀 많았습니다.”
“그건 그거고 오늘 벌어진 폭력행위는 절대 용서할 없는 일입니다.”
“우선 금속노조 가는 일에만 올인 합시다!”
“그게 지금 우리에게 제일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 해도 폭행 건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장 말이 맞아요. 지부장님!”
“압니다. 그러나 출정식이 바로 코앞입니다. 혹시도 일어날 지도 모르는 만일의 사태에 더 대비하자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출정식 끝나면 곧바로 회사에게 단협이 유효하다는 것을 내용증명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우리가 먼저 보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런 걸 공연히 회사에게 알려주는 꼴이 될 수도 있잖아요.”
“맞아요. 괜히 긁어 부스럼 되는 일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회사도 그 정돈 알고 있을 겁니다.”
“그건 지부장님 생각이죠. 회사가 그 문제로 딴죽걸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오히려 금속노조 가자마자 새로운 단협체결 투쟁으로 돌입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 같아요.”
“그건 이미 준비해뒀습니다. 그러면 내용증명은 그때 상황 봐서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세상에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네요.”
“그래서 조직형태 바꾸면서 혹시나 문제점이 될 만한 것들을 사전에 알기위해 서울까지 가서 노무사도 만난 게 아닙니까?”
“우리 노조 만들자마자 외부인사 초청강연회 때 온 노무사요?”
“예. 그런데 그 양반이 자문을 해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그 쪽 노무법인 사람들이 우리가 나오려는 00연맹과 노무자문 계약을 맺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머! 그렇다고 자문을 안 해 줘요? 우리 공장까지 온 사람이!”
“어딜 가나 편 가르기는 다 있나보네.”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발품 팔아서 여기저기 가서 자문 받았죠.”
“그렇게 준비했으니 출정식 때 잘 되겠죠. 뭐.”
“출정식 때 금속노조 쪽에선 누가 오나요?”
“수석부지부장이 오기로 했어요. 그날 탈퇴서 써서 본조로 보내고 가입원서 써서 주면 됩니다. 오늘 일로 저 때문에 많이들 상심하셨을 텐데 모두 진정하시고요. 나머지 조합원들에게도 끝까지 긴장 늦추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출정식 앞두고 폭력행위가 찝찝한데….”
“우리 교란시키는 거겠지. 그래도 점심때 폭력행위자 처벌 규탄집회는 해야죠?”
“지역본부 방송차량 좀 부를까요?”
“그쪽도 바쁠 텐데, 우리 앰프 있으니까 그걸로 진행합시다!”
“알았습니다.”
 

 

그는 출근하면서 공장건물 현관 입구에 걸린 노동조합 현판을 습관처럼 잠시 바라다보았다.
‘저 현판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14인치 모니터 크기만 한 알루미늄 금속판에 새겨진 이평지부. 저 현판과 함께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 새로운 꿈을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합원들에게 때론 실망하면서도 무한한 감동을 받은 날들이 더 많았기에, 힘들었어도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노동조합 현판을 노조사무실 문에 걸으라는 회사의 요구는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처사였다. 사무실조차 외부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한적한 곳에 마련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이를 끝내 거부하고 모든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건물의 중앙인 2층 게단 바로위에 사무실을 만드는 뚝심을 보여주었다. 노조현판도 건물 입구에 회사현판과 나란히 거는, 특유의 자존심을 보였다. 그것은 조합원들의 긍지였었다.
노동조합에 미온적인 조합원들까지도 현판이 걸리자 모두 나와 사진을 찍었다. 함박웃음으로 저마다 온갖 포즈를 취해가면서. 아마도 그때가 분위기는 제일 살았을 것이다. 더구나 현판식 하던 날은 온종일 웃음이 끊이지 않았으니까. 오전부터 지역에 있는 단사에서 보낸 기념화분이 하나 둘 노조사무실 앞에 진열되자 그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그 개수가 열 개가 넘어서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을 질렀다. 신명나는 축제의 한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동안 투쟁했던 사진들을 공장 담벼락에 붙이고 지역동지들의 축하 속에 고사를 지냈다. 조합원들도 모두 나와 돼지머리 앞에 큰절을 올렸다. 여기서도 웃음, 저기에도 웃음소리뿐이었다. 공장 앞마당에 비닐장판을 깔고 조합원들과 지역동지들이 함께 먹었던 육개장. 그것은 조합원들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공장식당에서 만든 것이었다. 웃음꽃과 덕담으로 모두가 흥에 취했던 그날. 누구는 공장 생활 20년 만에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라고 감격했었다. 조합원 모두가 그런 심정이었으리라.
이제 우리 손으로 걸었던 저 현판을 떼고 오늘 새로운 금속노조 △△지회의 현판을 조합원들의 환호성으로 걸어야 한다. 그는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평상시처럼 지게차로 출고량을 화물차에 싣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어! 사고 나겠어!”
11톤 윙바디 기사가 송장에 사인을 하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밞았지만 지게차는 3∼4m 밀려 가까스로 멈춰 섰다. 스위치를 끄고 바테리 단자를 풀어 증류수양을 확인했다. 기판과 주행접점도 그을린 흔적도 없이 정상이었다. 그렇다면? 반달모양의 라이닝이 유독 한쪽으로만 닳아 있는 게 보였다. A/S에 전화를 걸고서야 그는 자판기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문득, 금속노조 쪽에서 어제가 아니더라도, 지금쯤 확인 차 전화한번 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디데이 날짜를 확정지은 금속노조 회의 이후 연락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무심할 수 있나? 지역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우리와의 약속을 까먹은 건 아니겠지, 하는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께름칙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핸드폰에 저장된 금속노조 버튼을 눌렀다.
“이평지붑니다. 오늘 저희는 예정대로 준비는 다 됐습니다.”
“아! 지부장님? 지금 우리 식사 중인데 이쪽으로 좀 오시죠? 저희들 잘 가는 식당 아시죠?”
그는 순간적으로 불길한 전율에 휩싸였다. 머리칼이 곤두서는 듯 심장이 요동쳤다. 걸어서 갈 수도 있는 곳을 부리나케 택시를 잡아탔다. 불길한 예감은 사람을 미치도록 긴장시키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지역본부 상근자들과 금속노조 상근자들이 대접에 카레밥을 먹고 있었다. 그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금속노조 지부장 곁으로 가 앉았다.
“무슨 일 입니까?”
“식사 좀 하시죠?”
“됐습니다. 무슨….”
“오늘 금속노조로 오는 거, 보류합시다!”
“네?”
그는 순간 아찔해졌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불과 5시간만 있으면 출정식인데.
“저희가 아직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지역에 투쟁사업장도 많고….”
금속지부장은 정말 미안해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게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로 끝날 일인가? 그는 순간 깊은 혼돈에 빠져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머릿속이 휑하니 빈 것 같았다. 낙담은 탄식이 되어 그의 목소리엔 이미 울음 같은 것이 묻어 떨리기조차 했다.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도 무슨 대책이라고 세울 시간을 줘야 할 게 아닙니까?”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금속지부장과의 대화는 1분도 채 안될 정도로 너무나 짧게 끝났다. 그 1분 동안의 대화가 모든 것을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금속노조를 가기 위해 그동안 준비했던 실무적인 매뉴얼은 고사하고, 금속노조를 믿고 투쟁한 조합원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금속노조가 약속을 어겼다고 조합원들에게 어떻게 말 한단 말인가? 이 사실을 알면 조합원들이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
그는 조합원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어디론가 정말 도망가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느꼈던 배신감과 실망감은 상처가 되어 오랫동안 아물지 않은 채 오롯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상처를 가슴에 묻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조합원들에게 보고해야 하는가? 그러나 지금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조합원들에게는 일단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실망해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니까!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 아닌가? 그는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일어서면서 심한 현기증이 일어났고 이마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 이평지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들었을 텐데, 식당에 있던 상근자들은 누구하나 무슨 말도 없이 식사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그들은 이평지부가 금속노조로 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럴 때는 다들 침묵하고 있었다. 그가 넋 나간 사람처럼 보였는지 대협부장이 그 침묵을 깨고 한마디 던졌다.
“지부장님, 지금 이평지부와 금속노조는 서로 친숙한 사이가 아니니까 시간을 갖고 유대감을 넓힐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금속노조 회의 때 참관도 해서 서로 사업도 공유하고, 얼굴도 익히는 기회를 갖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는 위로하듯 말을 했지만 그런 모법답안 같은 얘기로는 사람을 진정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허접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이평지부가 지금 처한 상황을 좀 더 속살 그대로 느꼈다면 그런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인간적으로 죄송하게 됐다든가, 힘내세요! 라고 했다면 얼마나 담백했을까? 그는 아마도 어느 정도는 마음이 진정됐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긴박했던 상황들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겐 앞으로가 아니라 지금이 중요하고 절실한데….
식당 문을 나서면서 그는 더욱 기진맥진 해 보였다. 오금이 풀렸는지 발걸음조차 쉽게 땔 수 없었다.
“지부장님? 제 차 타고 가시죠?”
허겁지겁 금속지부장이 따라오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그 쪽 방향으로 가야 해서요?”
차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 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차에서 내려 공장 건물을 들어서려는데 부지부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부장님? 얼굴이 완전 흙빛이세요! 어디 아프세요?”
그녀는 깜짝 놀라 걱정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요?”
“왕위원장 왔어요!”
“아이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절묘하게 꼬일 수 있단 말인가? 불운은 그래서 연이어 터진다고 했던가?
“왕위원장이 교육실에서 1시 30분부터 조합원들과 간담회한데요.”
그는 저 만치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속에는 지부장인 자신과 넉살좋게 웃고 있는 조합원들이 있었다. 핸드폰을 보니 1시 20분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마침내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지나가던 길에 들렀습니다. 이평지부 조합원들이 보고 싶어서요?”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세요. 안 그래요? 아버님!”
조합원들이 깔깔거리고 있었다. 평소 본조를 부모로 지부를 자식으로 폄하했던 왕위원장에 대한 독설이었다.
“이 미숙 여사님의 저런 말 펀지가 무서워 이곳에 자주 못 내려 왔습니다. 카운터펀치에 맞았더니 휘청거립니다.”
“우린 왕위원장님이 여기 왜 왔는지 알지 롱!”
조합원들은 다시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만해 보였다. 지부장인 그만 혼자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이런 조합원들에게 약속을 저버려야 한다니….
“솔직히 말 하겠습니다. 본조 나가는 거 그만 두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고용안정협약, 그거 제가 따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 왕위원장의 바로 이런 행태 때문에 우리가 본조를 나가려고했던 게 아닌가? 노사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조합원들의 집단적인 힘이 아니라, 지도부 한두 사람이 로비로 해결하려는 그런 작태가 노동조합을 갉아먹는 것이라는 걸! 그런데 이제는 그가 왕위원장처럼 노동조합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유충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의 시선이 모두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는 웃으면서 누구는 진중하게.
“지부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왕위원장이 그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결국 무너지고 있었다. 그건 항복 선언이었다. 대다수 조합원들은 깜짝 놀라 의아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고, 일부 조합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왕위원장은 여유롭게 웃고 있었지만 그는 양심을 판 전향자가 되어 고개를 푸욱 숙이고 말았다.
“우리 오늘 사실 금속노조 가는 날이었는데….”
“맞춰 논 현수막 걸지도 못하고….”
“그쪽에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게 됐다고 빨리 연락해! 사무장.”
조합원들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가운데 그는 한낱 죄인이었다. 자신이 먼저 본조를 나가자며 그렇게 조합원들을 설득해 놓고서, 이제 와서 본조 품에 안기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가장 어려울 때 어떤 선택을 했느냐가 사람의 존재가치를 증거 한다. 그는 너무 쉽게 현실에 타협했고 타협은 어용으로 가는 첫걸음이 아니던가?  
“여러분들이 현명한 결정을 하셨습니다. 본조 위원장으로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본조와 지부는 성숙한 동지적 관계로 복원될 것입니다. 노사관계도 대립과 투쟁이 아닌 대화와 타협의 관계로 정립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요즘 투쟁사업장들, 어디 제대로 끝난 사업장이 있습니까? 비정규직철폐, 정리해고 철회? 말은 좋지요. 결국 그런 사업장들 다들 어떻게 됐습니까? 결국 돈 먹고 떨어졌습니다. 그들이 처음 외쳤던 구호는 간데없고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지금 투쟁하는 사람들도 결국 돈 몇 푼 더 달라는 것으로밖에는 안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주장하는 의제는 그럴싸하지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요새 돌아가는 판들이 보기에 하도 답답해서 그럽니다. 이평지부는 이번 주부터 회사와 고용안정협약을 교섭할 수 있도록 테이블 만들겠습니다. 본조를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왕위원장은 의기양양하게 조합원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는 또 한건 해결했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에게 보내고 있었다. 마치 넌 뛰어봤자 내 손바닥이야, 하는 것처럼.
조합원들이 교육실을 빠져나가 현장으로 올라간 뒤 왕위원장과 그만이 남아있었다.
“오늘 내 제안을 너무 쉽게 받아줘서 내심 놀랐습니다. 그렇게 금속노조 가겠다고 하더니….”
“본조를 압박하는 제스처 부린 겁니다.”
“에이! 지부장님이 그럴 성격입니까? 왜요? 금속노조가 안 받아준대요?”
“아니요. 제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말랑말랑하게 사세요. 뭐 그리 어렵게 살려고 합니까?”
“그만 서울 올라가시죠?”
“솔직히 이 조그만 공장에서 그런 게 뭐가 필요합니까? 자동차처럼 대기업 노조라면 모를까. 지부에서 하도 생쇼를 해서 회사도 마지못해 교섭을 하는 거니 공장장이랑 잘 해 보세요!”
“…….”
“아, 그리고 이번 교섭과 관련해서 회사가 지부장님에게 뭐 특별한 것을 바라는 것 같던데요?”
“이면 합의서 같은 겁니까?”
“그건 아니고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차차 알게 되겠죠. 하하.”
“본조에 있으면 그렇게 정보를 많이 아는 겁니까?”
“말 나온 김에 유익한? 정보 하나 더 말씀드리지. 회사가 지난번 폭력행위로 지부장님을 고소한답니다.”
“무슨 이유로?”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나? 뭐 전기통신법에 그런 게 있대요.”
“아니 교섭하자고 하면서 고소를 해요?”
“그게 회사 아닙니까? 다 알면서!”


지부장을 고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공장은 다시금 술렁거리고 있었다. 간부들을 중심으로 공장장과 면담을 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고소를 취하하라는 요구에 공장장은 관리과장 개인의 일이기 때문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회사는 이번 고소 건에 대해 아무런 영향도 개입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순전히 개인과 개인 사이에 벌어진 일이기에 그 결과를 가지고 잘못한 사람에게 회사에서 정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개인적인 일인가? 발생동기서부터 전후과정 모두가 노사관계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걸, 회사 관리자들이 더 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끝까지 개인의 일로 치부하고 나섰다.
간부들은 지부장과 최초로 언쟁을 나누었던 권 대리에게 정확한 폭력행위에 대한 진위를 물어보려했으나 그는 며칠 째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도 꺼져 있었다. 결국 그는 뚜렷한 이유 없이 퇴사하고 말았다. 모든 것이 생각과는 다르게 뒤틀리고 있었다. 폭력행위에 안일하게 대응한 건 분명 지부장의 잘못이었다. 초동 대응의 실패가 고소라는 형태로 사람들을 압박할 줄은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이번일이 더욱 안타까웠다.
마침내 출두명령서가 날라 오자 조합원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갔다.
“일개 과장이라는 놈이 무슨 명예가 있다고 고소를 해!”
“자기는 때리지 않았는데 지부장님은 맞았다고 주장을 하니까, 그게 지 명예를 훼손했다는 거겠지.”
“그렇다고 고소를 해! 사내새끼가?”
“공공장소에 특정인의 이름을 밝히면 그 자체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단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이름을 쓸 수도 있는 거지.”
“김 과장은 허수아비고 회사가 다 뒤에서 조종하는 거야. 그래서 그때 진단서 끊어야 된다고 다들 그랬잖니?”
“이제 와서 그런 말하면 뭐 하니? 그때 지부장님 금속노조 간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잖아. 하필이면 우리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런 개 같은 일이 벌어질 게 뭐람. 지부장님, 드럽게 운 없어!”
“오늘 일하다 들었는데 사무실 경리 아가씨가 그날 지부장님 맞는 거 봤대!”
“정말? 그러면 그 아가씨가 증인 서주면 되겠다!”
“그 아가씨가 진실을 말할 수 있겠니? 그러려면 공장 그만둘 각오를 해야지.”
“벌써 회사는 지들끼리 입 다 맞춰났을 거야. 권 대리 소리 소문 없이 그만둔 거 봐라!”
“지부장님이랑 관리과장 싸울 때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었으니까. 혹시라도 다른 말 나올까봐, 다른 계열사로 보냈을 거야.”
“진실을 덮기 위해서는 일개 대리 정도는 파리 목숨이겠지. 힘 있고 돈 많은 놈들에게는.”
“뚱성은 고소까지 하는 거 보면 정말 때리지 않은 거 아니야, 이러더라니까?”
“미쳐! 정말. 잘못하면 지부장님 진짜 어떻게 되는 거 아냐?”
“얘는? 벌금내면 끝나는 일이야. 운전하다 흔히들 접촉사고 나잖아. 그런 단순한 경우라니까.”
“그러면 서로 합의하면 될 걸, 왜 고소를 하니?”
“회사가 지부장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서 하는 얘기니? 회사 입장에서는 이번 기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부장님에게 타격을 주려고하겠지. 그래야 지들 맘대로 공장을 돌리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된통 걸린 것 같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경리아가씨도 이미 자꾸 채웠을 것이고.”
“세상살이 억울한 일 많다더니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닥칠게 뭐라니? 맞은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때린 놈은 지 잘 났다고 고소하는 거 보면.”
“나 같아도 속에 열불 나 죽지. 원통해서 어디 살겠어!”
“한쪽으로는 고소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고용안정협약 교섭한답시고 하고 있는 꼬락서니 보면 회사 놈들 정말 야비해!”
조합원들은 고용안정협약 교섭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다도 고소 건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었다. 틈만 나면 서로 삼삼오오 모여 사건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국민체조를 알리는 음악소리가 들리자 조합원들은 오늘도 평상시처럼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자신의 출근카드를 찍고 있었다. 2층 조합사무실 앞까지 이어진 하얀 작업복 차림의 행렬을 뒤에서 바라보면 정말 장관이었다. 뒷사람이 앞 사람의 어깨를 주무르면 반사적으로 그 행동이 물결 타 듯이 이어졌고, 누군가 장난치듯 앞사람의 똥꼬를 찌르면 전체로 파급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자지러지는 50명의 웃음소리는 이 공장의 유일한 미덕이었다. 출근카드를 다 찍고 조합원들은 다시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오늘 저는 오후 2시에 경찰서로 조사 받으러 갑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회사가 고소를 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실 명예훼손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를 비판하면, 비방한다고 노조활동 자체를 옥죄일 수 있는 아주 무서운 법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이 죄라면 그 죄를 받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실을 왜곡한다면 저는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오늘 제가 조사를 받으러가도 여러분은 절대 동요하시면 안 됩니다! 평상시처럼 자신들의 할 일만 하시면 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다녀오겠습니다.”
조합원들은 다들 침울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도 무겁긴 마찬가지였다.
“우리 기분도 그런데 오랜만에 철의 노동자나 한번 부르자!”
사무장이 대열 속에서 소리쳤다.
“팔뚝질 크게 하면서.”
“투쟁! 투쟁! 단결투쟁! 민주노조 깃발아래 …….”
팔뚝질을 하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그는 콧날이 시큰거리고 있었다.
준법투쟁이 끝난 후 여느 날처럼 그는 물류창고로 내려가 재고량을 파악하고 당일 나갈 출고량을 점검한 뒤 파레트마다 랩을 돌리기 시작했다. 배송차량이 들어올 때마다 평상시처럼 분주히 지게차를 몰고 있었다. 오전 11시쯤에 공장장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오늘 직원들이 오후에 기계를 끈다는데 알고 게셨소?”
“왜요?”
  돌발적인 소식에 그는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분명히 조합원들에게 동요하지 말 것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조합원들은? 그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다.
“지부장님 오늘 경찰 조사 받으러 갈 때 같이 간다던데요?”
“조합원들이요?”
“아니, 사람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공장장은 그를 쳐다보면서 ‘니가 사주한 게 아니야?’ 하는 표정이었다.
“처음 듣는 얘깁니다. 저도 자세한 내용을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원래 이쪽 공장사람들은 이렇듯 세상을 막 사는 겁니까? 만약에 기계를 끄는 극단적인 사태가 발생하면 이건 분명히 파업입니다. 그것도 불법파업입니다. 돈 벌려고 온 사람들이 합리적인 명분도 없이 공장을 뛰쳐나가는 일이 벌어진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직장질서를 문란 시키는 사상초유의 중대한 범죄행위입니다. 회사 창립 40년 만에 있을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고소 취하하세요! 이 고소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니까 조합원들이 흥분하는 거 아닙니까?”
“엄밀히 말하면 직원들은 제 3자 아닙니까? 제 3자가 왜 나서느냐, 이겁니다!”
“이게 개인과 개인의 일입니까? 회사가 노조를 고소한 거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은 이번 사건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자신들의 일이라 생각한다는 거죠? 참 대단한 사람들이네. 기가 찰 노릇이네요.”
“노조에서만큼은 조합원들은 일심동체에요.”
“회사에서만큼은 종업원들은 가족공동체인데요?”
“가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고소를 해요?”
“김 과장한데 진작 고소취하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고집을 피우니 낸들 어떻게 합니까?”
“정말 그런 말이라도 해봤습니까? 한번이라도.”
“그럼요. 설득을 제가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교활한 새끼. 그는 공장장과 이렇게 앉아 있는 게 불쾌했다.
“오늘 출고량이 많아서 조합원들 얼굴도 보지도 못했어요.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잠깐만이요. 지금 이것보다 중차대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생산차질 빚으면 막대한 손실이 있다는 건 지부장님도 잘 아시죠. 제발 불행한 일이 없도록 지부장님이 막아 주세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소 먼저 취하 하세요. 그러면 조합원들도 진정할 겁니다.”
“노동조합이 무슨 광신도집단도 아니고 지부장 한 사람 고소한 걸, 왜 이리 난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의리라는 겁니까? 동지애라는 겁니까?”
“잘못된 사실에 대해서 분노하는 거 아닙니까? 진실이니, 양심이니 이런 말들은 당신들 세계에서는 망각하며 살고 있잖아!”
“공장장 앞에서 이렇게 막 가자는 겁니까?”
“노사관계를 파행으로 몰고 간 건 당신들이야. 협잡해서 고소나 하고 말이야!”
“협잡이라니? 사과하세요!”
“사과? 그건 내가 당신들한테 들을 소리야!”
“직원들 기계 끄고 나가면 모두 지부장 책임으로 물을 겁니다. 고소는 절대로 취하 못합니다!”
”개새끼들!”
그가 일어서서 공장장실을 나가려 할 때 뒤에서 버럭 고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내가 여기 똥 치우러 왔지, 설사까지 치우러 왔어!”


조합사무실로 돌아와 그는 조합원들이 정말 공장을 박차고 경찰서로 갈 것인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조합원 모두 징계를 감수해야 할 탠데, 과연 그들이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연대 한번 가자면 늘 빼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자 조합원들이 왁자지껄 식당으로 향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출석을 하면 조사를 받고 검찰로 넘기겠지, 또 검사한데 조사를 받고…. 생각만 해도 귀찮은 일이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와 증인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그에게는 지금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맹점이었다. 식당으로 향하던 간부들 몇 명이 조합사무실에 그가 있다는 것을 알자 들어왔다.
“지부장님? 우리 오늘 오후에 기계 끄고 지부장님이랑 같이 경찰서 갑니다!”
사무장은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표정이 무척이나 비장해보였다.
“그거 좀 심한 거 아닙니까? 저 혼자 갔다 올 테니 그냥 계세요.”
“지부장님은 분하지도 않으세요? 우리 현장에서 다들 그렇게 얘기됐어요.”
“부지부장이랑 몇 사람은 안 간다며?”
“밥 먹고 설득 해야지. 텅 빈 공장에서 지들 몇 명 남아서 뭐 할 거야? 걔네들 이러다가 진짜 조합원들한테 욕바가지로 먹는다!”
“지부장님은 가만히 계세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경찰서 가려면 어여 밥 먹으러 가자. 지부장님도 식사는 하셔야죠.”
“공장 오늘 제대로 한번 엎어보자!”
도대체 저런 용기는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그동안 투쟁을 가슴으로 먼저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언제나 앞뒤 재며 멈칫거렸다. 그런데 저들은!
똑똑 노크소리가 나더니 조합사무실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오랜만입니다. 지부장님?”
정보과 형사였다.
“오늘 이평지부 조합원들이 저희 경찰서를 습격한다면서요?”
“왜, 겁나세요?”
“형사 생활하면서 이런 일은 또 처음 겪습니다. 아니 지부장님이 단순히 경찰에 조사받으러 가는 걸 조합원들이 왜 따라가겠다는 건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물론 과거에 이런 일은 있었죠. 노동조합 대표가 집회하다 잡혀가니까 석방하라고 조합원들이 도로를 점거한 적은 있어요. 어느 지회장은 집회에서 잡혀가니까 공장에 있던 조합원들이 기계를 끈 적은 있어요. 석방하라고. 그런데 이평지부는 뭡니까? 완전 막무가내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이 좀 순수해서 그래요.”
“그게 순수한 겁니까? 무데뽀죠! 나이들깨나 다들 자신 양반들이 도대체 물불을 못 가리니….”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건 없습니다.”
“노사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공장에서 해결해야지, 왜 죄 없는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시는 겁니까?”
“지금 당신이 노사관계에 개입하고 있잖아!”
“경찰서로 몰려온다고 하니까 제가 드리는 얘기 아닙니까?”
“그쪽 경찰서에서 출석요구서 보냈잖아?”
“그게 우리가 보낸 겁니까? 회사가 보낸 거지. 조합원들이야 생각이 짧고 우욱 하는 군중심리에 그렇다손 쳐도 지부장님까지 이러시면 안 되죠? 조합원들 좀 막아주십시오!”
“우리 조합원들은 당신네들이 갖지 못한, 눈물을 가진 사람들이오. 그걸 내가 어떻게 막는답니까?”
“어라? 오늘 또 피잉 도네! 지부장님 말입니다, 피차 정글 속에서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금기라는 게 있어요. 그게 뭔지 아십니까? 자존심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막말로 돈이 최고 아닙니까? 돈이 권력 아닙니까? 그런 세상에서 노동운동 한다는 사람들, 처음에는 저도 경외감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이 바닥에서 십여 년 뒹굴다보니까요, 온갖 똥파리들이 다 모여 썩은 냄새 폴폴 나는 곳이 바로 거기더라 이 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가만히 보고만 있는지 아십니까? 그 알량한 자존심 세워주려고 그러는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 보고 권력의 하수인이니 뭐니 그러는데요. 그쪽이나 잘 하라고하세요. 우리는 뭐 피도 땀도 모르는 줄 아세요? 캬! 갑자기 진짜 멜랑꼴리 해지네.”
“그만 나가주세요!”
“지부장님도 이 바닥에서 행세깨나 하고 싶으면 저희 같은 사람이랑 안면 트고 사는 게 좋을 겁니다. 피차 나와바리는 물론 건드리면 안 되고요. 지역본부 상근자들이랑 다 호형호제 하면서 지냅니다.”
“바쁠 테니 그만 가 보세요.”
“왜 이리 쫒아내지 못해 안달이십니까? 솔직히 지부장님, 맘에 와락 듭니다! 진지하게 한번 사귀어보고 싶다, 이 말입니다. 왠지 아세요? 어떻게 노조활동을 하셨기 에 조합원들이 그토록 믿고 따르느냐 이겁니다. 세상에 어느 조합원들이 지부장님 한 사람을 위해 그런 투쟁을 한단 말입니까? 진짜 감동 먹었습니다. 이거 지역뉴스에 나올 일 아닙니까?”
“…….”
“조사계에다 친절히 모시라고 전화 넣겠습니다.”
형사가 나간 뒤 그는 오늘 하루가 또 한 번 이평지부 역사에 중요한 날로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김없이 본조 왕위원장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공장장한데 보고 받았는데 그게 모두 사실이오?”
“조합원들끼리 얘기 중입니다.”
“금속노조 간다고 그렇게 생쇼를 하더니 또 개판을 만들겠다는 거야?”
“말이 지나치십니다. 조합원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일을.”
“당신이 각본 쓰고 연출하는 거 아니야? 무조건 안 되니까 그렇게 알아!”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힘을 제가 어떻게 막습니까?”
“나도 노조깨나 했다는 사람인데 이런 일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단 말이야! 당신이 무슨 감언이설로 조합원들을 들쑤셨기에 경찰서까지 간다는 거냐고?”
“본조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지금 회사에서는 창립 40주년이라고 언론에 홍보하는 판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야 되겠어? 조합원들 막으라고! 안 그러면 당신 끝장이야!”
“제발 지부 하는 일에 관여 좀 하지 마세요!”
“내가 본조 위원장인데 지부 하는 일을 왜 관여 못해? 당신뿐만 아니라 조합원들, 다치는 거 책임질 수 있냐고?”
“지부장으로서 책임지겠습니다.”
“어떻게 책임질 건데?”
“…… . 대체 뭘 원 하시는 겁니까?”
“내 입으로 말 할 수는 없고. 회사가 손배 때리면 그땐 어떻게 할 거야?”
“살려달라고 납작 엎드리란 말입니까? 아마도 당신이나 회사는 그걸 바라겠죠. 그러나 우리 조합원들은 다를 겁니다. 오늘 조합원들이 그걸 증명할 테니까요. 회사한테 이런 비열한 조언은 이제 그만하시죠?
“뭐야? 이 새끼가! 투쟁하면 반드시 결과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는 거야! 내 말 명심해!”
“전화 끊겠습니다.”
“야, 새끼야? 너 미쳤어! 다들 미쳤냐고!”


이제 지금쯤 출발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탈의실에서는 조합원들끼리 열렬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부지부장? 너는 그래서 공장에 남아 있을 거야?”
“나는 안가! 이건 올바른 방법이 아니야. 우리가 경찰서 달려간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있자는 거니? 지부장님은 조사 받는데 우리는 그 시간에 돈이나 벌자고? 니가 더 잘 알잖아. 회사가 지금 거짓말을 하면서 지부장님을 코너로 몰고 있다는 걸.”
“우리가 나가면 지부장님은 더 궁지에 몰려. 회사는 불법파업에 주동자로 몰 거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지부장님이 주동자로 몰리면 넌 그때도 지금처럼 다른 이유를 대며 가만히 있겠지. 지난 세월 노예처럼 쥐 죽은 듯이 사는 게 싫어, 니가 우리들에게 노동조합 만들자고 한 거 벌써 잊었니? 그래놓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는 거야? 그때의 그 순수함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니?”  
사무장의 목소리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격렬한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모두가 숙연한 분위기였다. 조합원들 중에 몇몇은 같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성이 말한 대로 우리가 나간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라.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회사의 부당함을 인정하는 꼴이 되잖아!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거라고. 법으로 판단하기 전에 우리는 몸으로 말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우리는 다 같은 노동조합 조합원이잖아!”
“영자야? 니가 부지부장이고 반장이기 때문에 니가 반대하면 우리 안 나갈 수도 있어. 그런데 머리 굴리지 말고 쉽게 생각하자. 지부장님이 가입원서 때문에 싸우다 조사를 받으러 가는 게 누구 때문이니? 그 사람 자기 잘 먹고 잘 살려고 관리과장이랑 싸운 거니? 노동조합 지키려고 싸운 거잖아! 바로 우리들 때문이라고. 난 그게 미안했어!”
“지부장님이 이런 말 자주 했잖아? 지금 투쟁 못하면 내일도 투쟁 못한다고. 지부장님이 만약에 잘못되면 우리가 그때 가서 투쟁할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에 그럴 사람 아무도 없어! 지금 못하면 앞으로도 못해!”
“투쟁? 그런 거 나는 잘 모르겠고. 지부장님 혼자 경찰서 보내는 게 마음이 짠해. 그래서 내가 그냥 옆에 있어 주려고. 그러면 지부장님 조금은 든든해지겠지.”
“순남아? 니 옆엔 내가 있을 껴!”
“성들이 가면 나도 가야지!”
“나도 갈게.”
여기저기서 조합원들이 손을 들고 일어서고 있었다.
오후 작업을 알리는 벨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윽고 지부장인 그가 조합사무실을 나서자, 조합원들도 한 두 사람씩 탈의실을 박차고 나왔다. 그들은 3층 현장이 아닌 2층 계단 밑으로 우르르 내려가고 있었다.
경비실 앞에 모인 조합원들은 마치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약간 들떠 있는 표정들이었다. 흥분과 알 수 없는 쾌감으로 그들은 그들끼리 잠시 정담을 나누는 듯 했다. 사무장은 이윽고 그들 틈에서 부지런히 인원을 체크하고.
“전원 집합이다!”
그녀는 무엇인가 성취한 듯한,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저렇게도 좋을까? 지부장이 대체 그들에게 뭐라고, 다들 뛰어나와 이렇듯 가슴을 저리게 하는 것인가?  
하얀 빵 모자와 하얀 작업복 위로 오후의 햇살이 화창하게 비추고 있었다. 대열 속에서 누군가 넋두리 하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햇살이 고운데 나는 이 공장 안에서 김치와 씨름하며 청춘을 다 보냈다니!”
“성? 땡땡이치니까 어때?”
“노동에서 해방된 것 같다. 이년아!”
잠시 대열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리고 사무장은 조합원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조합원 여러분, 뒤에 공장 옥상 좀 보세요?”
“아니 관리자들이 저기 다 있네!”
“어쩐지 아무도 제지를 안 하더라. 무슨 꿍꿍이속이 있나?”
“저 새끼들 또 사진 찍고 지랄이야.”
“여러분, 흔들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공장은 멈췄습니다. 택시 오는 대로 4명씩 타 세요! 이평경찰서 앞입니다.”
“걸어가면 좋을 것 같은 데?”
“거기까지 언제 걸어가니? 우리가 지금 영화 찍니?”
“어머! 뚱 성? 그 장화 벗고 와야지.”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조합원들을 다 보내고 마지막으로 임원진 3명이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 안에서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늘의 투쟁이 과연 어떤 파장을 낳을지 제각각 깊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부지부장이 조용히 따라 부르고 있었다.
“마른 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잎새 하나…….”
“저는 지금 긴장되고 떨리는데 부지부장님은 여유가 있으시네요.”
“마음의 결정을 했으니까 그렇죠. 이 노래 처녀 때 많이 불렀는데….”
“옛날 노래잖아요?”
“그렇죠. 서울에서 공장 다닐 때니까.”
또 다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지부장님? 아무래도 지역본부에 알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무장이 핸드폰을 꺼내면서 말했다.
‘네. 여기 이평지부인데요. 저희가 이평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기계 끄고 나왔거든요?’
‘아니! 왜요?’
사무장은 지금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듯 했다.
‘그런 식으로 투쟁하시면 안 됩니다! 준비 없는 투쟁은 백전백패라는 걸 모르세요? 참 큰일이네요. 이후에 어떻게 대처하시려고 그러세요?’
‘조합원들이 결의해서….’
‘조합원들이 결의한다고 지도부가 따라가면 어떻게 합니까? 바로 잡아주셔야지요.  잘못된 투쟁은 심각한 폐해만 남길 뿐입니다.’
상대방의 조리 있는 말에 그녀는 마음속으로는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말 잘 하는 사람과 붙어봤자 자신의 무식만 탄로 나기 때문이었다.
‘방송차량은 안 될까요?’
‘차량은 있는데 끌고 갈 사람이 없네요. 모두 바빠서. 그쪽에는 운전 하는 사람 없으세요?’
‘네! 저희는 그냥 보고 드리려고 전화한 겁니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녀는 전화를 끊으려다, 상대방이 혼자 뇌까리는 듯한, 말을 들었다.
‘무식한 건지, 무모한 건지….’
“지역본부에선 뭐라고 합니까?”
그는 뒤 자석에 있던 사무장을 향해 무심코 통화내용을 물었다.
“그냥 알았다고 하네요. 지역본부 사람들은 다들 달변가들이네요. 그런데 지부장님? 우리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걸 까요?”
“아니요! 조합원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지부장님을 위해 우리가 투쟁하지만 내일도 그러리라고는 기대하지 마세요!”
“왜, 그런 힘없는 말을 하십니까?”
“회사가 보나마나 조합원들을 징계 할 텐데 과연 계속 싸울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야죠.”
“바람 불면 풀 보다 먼저 눕는 게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투쟁해야 한다고 말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대다수 노동자들은 어렵고 힘들 때 몸을 먼저 움츠립니다.”
“사무장? 우리 조합원들도 그럴 거 같니?”
“어! 넌?”
“그건 부딪혀 봐야 아는 거야!”
부지부장인 영자는 창밖으로 망연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사무장님? 그리고 부지부장님. 힘냅시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조합원 50명이 정문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복형사 대여섯 명은 귀에 이어콘을 꽂고 비상사태라도 맞은 듯 무전기를 틀며 분주히 움직였다. 정문초소를 지키던 전경도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긴장과 긴박함이 모두를 휘어 감았다. 경찰서 안에는 전경들이 줄지어 서서 하얀 작업복 차림의 조합원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듯 했다. 임원진 세 명이 대열 속으로 합류했다.
“지부장님? 이쪽으로 오시죠. 조사과는 1층에 있습니다.”
형사 여럿이 다가와 그의 손목을 잡고 경찰서 안으로 이끌려고 하고 있었다.
“잠깐만이요. 조합원들도 있는데 집회한번 해야죠!”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민원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비켜주세요! 간단히 끝낼 테니까.”
구호와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민주노조를 지키려는 조합원들의 열망이었다.  사람들을 주눅 시키는 경찰서 앞에서 부르는 투쟁가는 조합원들이 임금노예가 아니라, 노동하고 싸우는 진짜 노동자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노동탄압 명예훼손 투쟁으로 박살낸다!”
처음 시작하는 구호는 낯설었지만 되풀이 할수록 점점 결기가 묻어났다.
“민주노조 깃발아래 와서 모여 뭉치세!….”
유일하게 부를 줄 아는 투쟁가는 어느덧 조합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었다. 인사말을 하기 위해 조합원들과 눈빛을 마주치자 그도 말도 꺼내기 전에 울컥했다.
“3년 전, 처음 노조를 만들어 조합원들과 이렇게 집회를 할 때 처음 느꼈던 애틋했던 마음을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느낍니다. 노조를 하면서 조합원들에게 항상 마음에 빚만 지며 살았습니다. 금속노조 가겠다고 해 놓고서 여러분들을 먼저 배신했습니다. 조합원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들은 저를 묵묵히 안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빚은 저에게 너무나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누가 우리 조합원들만큼 노조를 사랑한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회사도 본조도 저 뒤에 있는 경찰도, 세상 사람들 모두가 우리의 오늘 이 투쟁을 비웃었고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합원들은 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합원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고소 건에 대해 당당히 진술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저는 여러분들에게 진 막중한 이 빚을 갚으며 살겠습니다. 투쟁! 아, 그리고 오늘 약식집회는 이것으로 마치려고 합니다. 조합원들은 이제 공장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다들 돌아가세요!”
그때였다. 대열 속에 있던 부지부장인 영자가 나섰다.
“여러분! 오늘 햇빛이 참 눈부시게 곱네요. 제 말이 맞으면 투쟁으로 대답해 주세요!”
“투쟁!”
“목소리가 너무 작습니다! 경찰서 앞이라고 겁먹은 것 같은 데, 이러면 제가 쪽팔려집니다. 다시 한 번 크게 대답해 주세요!”
“투쟁!”
“우리가 피 같은 돈도 안 벌고 여기 왜 왔습니까? 경찰서 그냥 구경하러 온 건 아니죠? 제 말이 맞으면 큰 소리로 힘차게 투쟁으로 대답해 주세요!”
“투쟁!”
“나도 투쟁!”
“김 영자 잘한다!”
“지부장님은 우리를 걱정해서 공장으로 돌아가라는데, 저는 여러분들이랑 좀 놀다 가고 싶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어떠세요?”
“투쟁!”
“투쟁!”
“그러면 우리 지부장님이랑 같이 조사 받으러 들어갑시다! 옆에 사람 팔짱 끼세요!”
일사분란하게 조합원들이 서로의 팔짱을 낀 채 그를 앞세워 경찰서를 진입하고 있었다. 제지하는 형사들을 순식간에 밀치고 경찰서 앞마당을 향해 걸어갈 때 한 떼의 전경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 퍼온곳  : 하종강의 노동과 꿈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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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고 속의 이마트 노동자

 

 

[08. 바다의 별 (2).mp3 (5.95 MB) 다운받기]

 

 

  한..  4~5년전 부터인가?  건물관리는 모두 용역으로 전환되었슴다.  하다못해 관공서 경찰서 건물 관리인들 조차 모두 지금은 용역회사서 파견나온 노동자들입니다.  왜이렇게 되어나는 잘 모르겠으나 학교도 예전에 책상이며 마루바닥 고쳐주시며 주무시던 아저씨들도 모두 없고 캡스다 공사입찰이다 하며 그런 일자리들이 아예 사라져버렸습니다. 인력파견업체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같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기계는 다루는 사람이 2~3번만 바뀌면 쉽게 망가져 버리는데.. 외주로서 정말로 이윤이 있다고 판단한 건지 의문입니다.

 

  얼마전 이마트 냉동기계실에 질식사한 4명의 노동자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단순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이 아니라 그 중 한 명은 등록금을 벌려 제대후 2틀만에 알바하다 참변을 당했다는 얘기도 이번엔 들려왔습니다.  지난번 우리 매장서 휴학중 알바생으로 휴무날 헌혈하다 고인이되어 장기를 기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은 다음입니다.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는데..  회사는 달라도  대응은 너무나 닮았습니다.

 

  이마트, 홈플러스 모두 법을 떠나 도의적인 책임은 있는 것인데..  홈플러스는 화환을 보낸 것과 마지막 임금을 정산해서 지급한거 외에는 아무 것도 한일이 없습니다.  이마트는 업체직원이라며 제대후 며칠만에 생을 마감한 휴학생 노동자에게 아무런 도의적 책임도 나몰라라 하여..  벌써 한 달이 넘은것 같은데.. 유족들은 아직 장례를 치루지 못하고 등록금으로 수천만원 빚만 떠안고 있다합니다.  둘다 굽신굽신하는 자신들의 사업장에서 벌어진 일인데..  아무런 애도의 표시를, 최소한의 인간적인 책임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노조원으로 화석같이 전국 매장에 마지막 남은 직영 기술인인데요..  30여년 가까이 냉동기계 일을 하시다 노조 탈퇴하시고 사화?를 통해 외주화되어 용역회사 소속으로 일하고 계신 ㅂ시설소장님께 여쭤봤습니다. 연세가 있으셔서인지..  얼마전 심혈관 질환으로 스텐트를 심장혈관에 3개 심고 한달도 안되어 다시 출근하셨습니다.  그런데 입원하자마자 안부는커녕 원청의 지원부점장 아주머니가 용역본사로 대체인력보내라고 닥달했단 얘길 듣고 지금도 화가 많이 나있으십니다.

 

  "이마트서 야간에 냉동기계 보수하다 4명 죽었다는데..  이럴 수 있는 건가유?"

 

  "냉동가스 드레인 다 안하고..  그정도면 슬슬샌게 아니고 완전 팍 폭발한겨.  아는 사람은 절대루 그르키 안하지..  다들 초짜인겨"

 

  "아니 조금 어지러우면 빠져나올 수도 있었을거 아녀유"

 

  "첨간 현장서 야간에 현장 구조도 모르고 빵 터지면 한방에 동시에 다들 그르키 되는겨. 더군다나 업체 소속이니 엇다 하소연도 못할거고..  안됐지 뭐여."

 

  구조적으로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듯한 이 느낌.  개인의 조심으로 치부하기엔 앞으로도 또 벌어질 것 같은 이 느낌이 너무나 끔찍합니다.    허황된 기대일지모르겠으나.. 도의고 어쩌고 법이구 노조고 뭐고,  우리들 사는 곳이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는 곳이였으면 정말로 좋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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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님은 해결사!

 

 

 

토요일 밤이었다. 
어둠이 짙어갈수록 서울의 거리는 관능적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네온사인의 조명은 더 화려해보였고 꼬리에 꼬리를 문 자동차들의 불빛은 마치 홍등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주황색 점등들을 기다랗게 걸어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에겐 어떤 외설스러운 열기가 있어 보였다.    
사무실 4층에서 망연히 바라보는 풍경은 늘상 그랬었지만 오늘만큼은 오랫동안 배설을 참아온 사람들이 자유롭게 일탈을 감행하는 토요일 밤이었다. 순간 비릿한 정욕의 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밤이 깊을수록 서울은 배설물들의 거대한 하수구로 변할 것이다.
그는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다 이제 퇴근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토요일에도 꼬박꼬박 조합사무실로 정시에 출근해 업무를 보면서 자신은 노조활동을 성실히 하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자부하고 있었다. 전임자임에도 근태가 개판인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합사무실에서 버젓이 노름을 하다 조합원들에게 신망을 잃은 상근자들이 어디 한 두 명인가? 사람들은 고생했던 시절들을 너무 빨리 잊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자고로 사람은 근면성실해야 인정을 받는 게 아니던가? 
조합사무실의 스위치를 막 내릴 때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 네. 누구십니까?
- 위원장님이세요?
전회기 저편의 사내의 음성이 조금은 다급하고 격양돼있었다. 그는 이 전화가 왠지 불길하다고 생각되었다. 그것은 위원장을 오랫동안 하면서 느끼는 감각 같은 것이었다.
- 네. 말씀하세요?
- 여기는 천안공장인데요. 이 영호라고 합니다. 저희 공장 오늘 노조 만들었습니다!
- 뭐요?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 아니! 위원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본조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노조를 만들어요?
- 죄송합니다. 저희는 회사에 노조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최근에서야 본격적으로 노조를 띄우려고 준비하다가 알게 됐습니다. 이점 양해드립니다. 오늘 퇴근 후 48명이 모여서 노조지부 설립 결의를 했습니다. 월요일 공장 식당에서 보고대회를 하려고 합니다.
- 기가 찰 노릇이네. 지난번 내가 천안공장 방문했을 땐 아무런 말도 없더니 이게 무슨 소리요? 
- 사실 저희는 오래전부터 노동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그러면 당연히 위원장이랑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요?
- 그때는 회사에 노동조합이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니까요? 그리고 알았다 해도 우리 조합원들과 일면식도 없었을 뿐더러 전혀 교류 한번 해본 적이 없는 분과 어떻게 이런 일들을 논의할 수 있었겠습니까?
- 답답하네! 내가 원래는 공장 순회를 잘 안하는데도 이젠 공장들도 챙겨야지 하며 내 딴에는 큰맘 먹고 처음으로 내려갔는데….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들도 만나 저녁 먹으면서 이러저런 고충을 들었는데. 그땐 노동조합의 노자도 꺼내지 않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이렇게 위원장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거요?
- 죄송하게 됐습니다. 비밀리에 노동조합을 만드느라….
- 그 말은 위원장도 못 믿겠다는 소리 아니오?
- 그렇게까지 생각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그놈의 죄송하다는 말은 집어치워요? 나는 위원장으로서 천안공장 노조를 인정할 수가 없어요!
그는 단호했다. 뜬금없이 지부가 생긴다는 것은, 더구나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만든 노조는 위원장으로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쪽 팔리는 일이었다. 회사 관계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지부 하나 만드는 것도 위원장으로서 관여하지 못했다고 핀잔을 줄 것이 아닌가?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상급단체의 연맹사람들이나 밖의 사람들은 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다들, 왕위원장님! 왕위원장님! 하면서 그동안 떠받들지 않았던가? 그는 이번 일을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반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이제 노조를 갓 만들려는 신출내기들이 아닌가? 적당히 겁을 줘서 위원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고 천안공장 노조를 자신의 영향력 안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하면 수 십 명의 조합원들을 거저 얻는 성과를 올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면 위원장으로서의 능력을 본조조합원들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고 회사 내 입지도 더욱 공고해지지 않겠는가? 밖에서도 뛰어난 조직운동가로 인정받을 것이다….
- 거듭 말하지만 나는 천안공장 노조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 무슨 말입니까? 어렵게 노조를 만들었는데 고생했다는 말은 못할망정 이렇게 딴지를 걸어야 되겠습니까? 그게 위원장님으로서 할 소리입니까?
‘어라, 이놈 봐라? 겁을 줬더니 오히려 삐악삐악되네. 가소로운 자식! 노동운동판에서 굴러먹은 짬밥이 얼만데 겁 대가리도 없이 생면부지의 놈이 엉 까네!’
- 기업별 노조에서는 지부설립이야 본조 대의원대회에서 추인만 하면 되는 일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위원장님으로서 직무유기 하는 거 아닙니까?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일단 으름장을 놓고 한발 물러서야겠다고 생각했다.
- 직무유기라니 당신 말 다했어? 위원장과 사전에 일절 협의도 없이 노조 만든 건 잘한 일이오? 그리고 본조는 지금 회사와 임금교섭 중인데 천안에서 갑자기 노조를 떠억 만들어버리면 교섭에 방해가 되는 걸 몰라요?
- 노동조합 만드는 거랑 본조 교섭이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더구나 본조는 영업판매직 아닙니까?
- 답답한 소리 하네! 갑자기 공장에서 노조가 만들어졌는데 회사가 교섭에 성의껏 임할 것 같소? 난리 났다고 동분서주 할 게 뻔한데…. 왜? 굳이 이런 시기에 노조를 만들려고 하는 거요? 본조에서 임금교섭이 끝나면 그때 만드는 게 어때요?
그는 우선 시간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자신이 천안공장 사람들을 다독거려 고충처리를 먼저 해결해주고 그 뒤에 자신의 입김으로 노조를 만들어야만 위원장으로서 입지가 더욱 단단해질 것이 아닌가? 
-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50대 아주머니들을 어렵게 설득했는데 이제 와서 무작정 기다리라니요? 아마 회사가 이런 사실을 먼저 알아채고 노동조합 설립자체를 방해할 겁니다.
- 그 정도 보안유지도 못하면서 무슨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거요?
- 노동조합을 만드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아주머니들에게 그 불안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겁니다. 결의했을 때 곧바로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 차암! 그러면 일주일 정도만 뒤로 미룹시다! 내가 지금 당장 천안으로 내려가겠소. 위원장을 등에 업고 노조 만들어야 힘 받을 수가 있는 것이오.
- 말은 알아듣겠으나 시기적으로 촉박합니다. 
- 위원장 말이 말 같지 않소?
- 그 시간동안 노동조합 해보기도 전에 박살납니다! 우리는 우리 일정대로 가겠습니다!
- 이 사람이 성격 급하구먼! 돌다리도 하나 둘 세고 건너라는 말 못 들었소? 지난번 천안공장 노사협의회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제일 큰 고충이 고용불안이라는 걸 들었소. 그거 내가 다 해결해 주겠소. 나아, 20년 넘게 노동운동 해온 사람이오! 사장님도 내말이라면 꿈벅 죽는단 말이오? 
- 우리도 여러 번 회사에게 얘기 했습니다. 퇴직자들이 생기면 신규채용 하라고! 그러나 회사는 정규직을 모조리 없애고 그 자리에 비정규직을 심겠다는 계획입니다. 현장에는 오히려 지금 파견노동자들이 더 많습니다. 지금 저지르지 않으면 평생 못합니다! 
- 그러니까 기다려달란 말이오? 일주일도 못 기다리겠소?
- 안됩니다. 불붙었을 때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주저하거나 망설이면 모두 끝장입니다!
- 답답하기는! 그렇게 시작해서 만일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지겠소? 노조?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오? 나아, 그거 하면서 인생 조지는 사람 여럿 봤수다! 위원장이 힘을 실어 줄 테니 일주일만 기다리시오!
- 그 시간동안 노조고 뭐고 다 와해됩니다!
- 이런?…. 당신 마음대로 하쇼!
그는 다시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역정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보고대회 때 오실 겁니까? 
- 이 사람이 지금 장난치나? 이 판국에 내가 거길 가야겠소? 가고 싶지도 않고 갈 수도 없소!
- 지부 출정식 때 위원장님이 안 오시면 천안지부 조합원들이 실망할 겁니다. 나중에 저희 조합원들을 어떻게 보려고 그러십니까? 맘에 안 들더라도 오시지요? 후회하게 됩니다!
순간 그는 천안지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모르는 척 하고 있자니 천안 사람들에게 욕만 바가지로 먹을 것이고, 안가자니 본인의 지분도 없는 남의 잔치에 가서 박수치기도 그렇고….
- 내, 연맹 조직국장이나 한번 내려가 보라고 하지요. 당신 말이오? 이런 식으로 노조활동 하는 거 아니오? 지금 회사랑 싸우기도 바쁜데 같은 조직 내에서도 이렇게 의견 조율이 안 돼서야 되겠소? 이래서 우리 노동운동판이 개차반이 됐단 말이오. 나, 원! 노동자는 말이오, 무조건 단결해야 되는 거요? 지금은 처음이라 잘 모를 텐데 내말 깊이 새겨들으쇼. 그리고 앞으로는 본조에 기댈 생각하지 마시오. 내가 당신네들 사고 치면 맨날 뒤치닥거리나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말해 둡니다!
- 보고대회 때 조합원 가입원서 모두 받아서 본조로 보내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면서 그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한 달 전인가? 연맹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다 우연히 천안공장에 관한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천안에서 상징적인 비정규직 투쟁이 있었는데 그것과 관련하여 지역의 상근자가 민주노총 중앙과 각 연맹들을 방문하며 연대를 호소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연맹도 찾아와 연대를 호소하며 인사를 나누다가 어디 위원장이라고 소개하니까, 지역의 그 친구가 예전에 찬안공장에서 노조를 한번 만들려고 하다가 총대 맬 사람이 없어서 좌절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연맹 조직국장이 지금도 그런 기운들이 남아있을 줄 모르니 왕위원장님이 한번 내려가서 분위기도 보고 노조설립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들었었다. 그때 만사 제치고 즉각 천안을 갔어야 했는데 설마? 하는 마음과 교섭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이런 더러운 꼴을 당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천안 김치공장에서 50대 아주머니들이 드디어 노조를 만든다, 이 지랄 같은 개름직한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생산직 노조야 아산 공장에도 있지만 쪽수도 몇 명 안 되고 간판만 걸어놓은 노조가 아니던가? 지부장 또한 자신의 말을 아주 잘 듣는 사람 아니던가? 종종 서울로 불러 회사 임원들과 같이 식사도 시켜주며 친분을 유지하도록 얼마나 자리를 만들어줬던가? 더군다나 평직원을 주임까지 달게 해줬으니 자신의 말이라면 설설 길수밖에…. 어디 그뿐인가? 연맹 회의 때도 가끔 불러 이 동네 분위기가 이런 것이라는 걸 슬쩍 알게 해 주고, 다른 단사 위원장에게도 우리 아산지부장이라고 소개시켜주며 추켜세워 줄 때 얼마나 자신 스스로가 뿌듯했던가? 삼 백 명이나 넘는 조합원을 거느린 왕위원장님이라고 남들이 그래서 부르지 않았던가? 솔직히 위원장도 어디, 다 같은 위원장인가? 세상살이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쪽수가 많아야 대접받는 게 이 바닥 풍토가 아니던가? 아무리 똑똑해도 조합원수가 작으면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찬밥 신세밖에 더 되겠는가? 지금껏 연맹에 꼬박꼬박 갖다 준 조합비가 얼만데 그들이 자신을 홀대하면 배은망덕한 놈들이지. 비록 연대집회 같은 건 못 갈지언정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게 얼만데…. 그들도 그런 걸 알았는지 옆구리 찌르면서 연맹 부위원장 하시면 어떻겠냐는 걸, 고사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자신이 고사한 건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눈치가 아직까지는 시임하게 부족하지. 쯧쯧…. 자고로 사람은 더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게 아니던가? 
자신의 신념대로 지금껏 노조밥 먹으며 남들에게 존경받아 왔는데 마치 빨간 신호등에 걸린 것과 같은 이 기분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편안하게 앉아서 볼일보다 갑자기 끊어낸 이 찜찜함은 뭐란 말인가?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어떻게 수습해야 된단 말인가? 통화한 사내가 자꾸 눈에 밟혀왔다. 신출내기 치고는 뭔가 자신감에 넘쳐 보이는 그 사내는 도대체 어떤 싸가지란 말인가? 본사 관리부서에 전화해서 그 사내의 인적사항부터 파악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이건 분명 사건이다. 자신을 감쪽같이 배제시키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줄 세우기도 할 수 없는 생산직 노조가 뜬다? 아니, 이건 사고다! 불길한 대형사고…. 
그는 한동안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뒷머리가 뻐근해졌다. 근처 가까운 사우나라도 가볼까 하다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자주 가는 교회로 운전대를 꺾고 있었다. 

  서부영업소 건물 4층에 입주해 있는 조합사무실은 언제나 고즈넉했다. 영업판매직 주부사원들이 조합원들이라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사람들 출입이 거의 없었다. 10평 크기의 사무실을 지키는 사람은 왕위원장과 회사에서 파견 나온 김 과장 단 2명뿐이었다. 사무실 벽면에 걸린 대형 현수막의 비정규직 철폐! 문구가 더욱 공허해 보였다.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게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다고 왕위원장은 생각한다. 사무국장을 할 사람이 없어 본사 과장에게 대행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이게 노조의 현실인 것을. 단협에 보장된 전임자 2명을 어떻게 해서라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대의명분 보다는 실리를 먼저 생각했다. 게다가 주부사원들이여서인지 조합비 내는 게 아깝다고 탈퇴하는 인간들이 있질 않나, 매장에서 일하다 생긴 스트레스조차도 노조에 말하면 무조건 해결해 주는 줄 알고 전화로 푸는 조합원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짜증대신 생글생글 웃으면서 언니들 말이 맞는다고 얼마나 천연덕스럽게 맞장구를 쳤던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노동조합을 20년 이상 지켜낼 수 있었을까? 회사와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틈나는 대로 영업 판로를 뚫었었다. 하루에도 대여섯 매장을 다니며  자사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노조를 그냥 내버려뒀겠는가? 이직률도 높고 뿔뿔이 흩어져 일하는 3․40십대 주부사원들을 데리고 똘망똘망한 남자도 없이 지금껏 노조를 지켰다! 이것이 그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때로는 회사의 직원으로서 때로는 노조위원장으로서 살아가는 걸 누가 비판할 수 있는가? 모두가 어렵다는 이 시기에 회사가 특별성과급의 돈 잔치를 쏠 수 있도록 똥구멍도 슬슬 긁어주고 땡강도 부려가면서 말이다. 이렇게 사는 게 잘못된 방식이 아니지는 않는가? 모두가 주어진 조건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 않는가? 회사와 노조가 상생해야만 모두가 사는 게 아닌가? 그런데 천안지부가 생기고부터 그의 고민이 깊어갔던 것이다.
“왕위원장님? 오늘 있을 간부회의 자료 몇 부나 복사할까요?”
“넉넉잡고 20부 하면 되겠지.”
김 과장이 자료를 회의실 탁자에 올려놓는다.
“김 과장이 조합사무실에서 일한지 얼마나 됐더라?”
“1년 조금 넘었습니다,”
“그래? 내가 지금부터 하는 얘기 오해하지 말고 들어줘. 천안지부에서 김 과장이 조합사무실에서 사무국장 대행을 하는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난리나겠죠!”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김 과장이 본사로 복귀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사람들 눈도 있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보나마나 천안에서 어용이라고 하겠죠?”
“사람들이 말이야, 본질을 볼 줄 몰라요. 눈에 보이는 현상만 가지고 짓까분단 말이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해주면 어디 덧나나?” 
“거기는 요새도 매일 집회한다고 하던데요?”
“알고 있어. 한동안 조용하더니…. 천안공장장한데 매일 보고 받거든.”
“천안지부에서 상급단체 바꾸려고 조직형태 변경 총회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으시죠?”
“싸가지 없는 인간들! 세상에 자식이 애비가 맘에 안 든다고 본조를 나가겠다는 게 말이 돼?” 
“본조를 왜 나가겠다는 거죠?”
“자기네들은 생산직이니까 그쪽으로 가겠다는 거지. 영업판매직과 정서도 맞지 않고 지역에 있는 다른 생산직노조와 연대를 하겠다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본조를 믿지 못하겠다는 거지.”
“어용이라는 소린가요?”
“요새 어용이니, 민주노조니 그런 게 어딨어? 다들 지밥 챙기기 바쁘잖아?”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우리 연맹에서도 산별로 가니까 그때 가서 교통정리 하자고 해도 난리 브루스를 치니, 누군 투쟁할 줄 모르나?” 
“왕위원장님 골치깨나 아프시겠습니다.”
“쪽팔려서 원! 회사는 지부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고 하고…. 밖에 사람들은 오죽 못났으면 본조를 떠나 다른 조직으로 가겠냐고 빈정거릴 테니…. 사장님은 잘 달래보라고 하는데 금속으로 가겠다고 난리니 원?”
“금속이요? 거기 민주노총에서 제일 쌘데 아닌가요?”
“요샌 그쪽도 힘 못써!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아? 그리고 투쟁한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게 있나? 다치기만 하지.”
“천안이 김치공장이니까 조직을 바꾸려면 화학으로 가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굳이 왜 금속으로 갈려고 하는지, 그 속내를 모르겠어. 요새 화학쪽도 내부사정이 좀 복잡하기는 하거든!”
“위원장님? 기업별노조에서 지부가 산별로 가면 복수노조 아닌가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어서 천안지부장에게 복수노조 되니까 불법이라고 엄포를 놓았는데 아니라는 거야? 요새 법원판례가 왔다 갔다 하니까! 노동부 유권해석은 아마 불법으로 판정하고 있을 걸.”
“천안에서 조직형태 바꾸면 일단 복수노조니까 불법이라고 시비 걸면서 우린 작업하면 되겠네요? 그렇게 시간 벌면서 거기 조합원들 분리시키면 되겠네요?”
“천안공장장에게 그런 취지로 얘기는 이미 해뒀어. 또 천안지부에서 금속으로 간다고 해도 받아주기나 한데? 쪽수가 많으면 모를까?”
“민주노총도 그렇게 사업하나요?”
“거긴 사람 사는 동네 아닌가? 비젼 없는 사업장을 누가 챙기려고 하겠어? 골치 아플 것 같은 사업장은 서로 안 받으려고 하지.”
“마치 사고 나면 경찰서에서 니네 관할이니 우리 관할이니 하면서 떠넘기는 것과 같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불쌍한 사람만 죽어나가는 세상이지. 하여튼 천안지부 말이야, 고마움을 몰라요. 지들이 시작할 때부터 잘나서 노조사무실 만든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야? 내가 사장님이나 본부장한데 얼마나 전화를 했는데. 거기다가 지부단협이나 지부임금 체결 할 때도 처음이니까 웬만하면 천안요구 들어주라고 가운데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지들이 투쟁해서 쟁취한 줄 알아요?”
“한번 내려가서 지부장이나 간부들 좀 만나보시죠? 본조를 나가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되지 않을까요? 회사 차원에서 관리하기도 힘들고.” “솔직히 거기 내려가긴 싫어! 본부장이나 회사에서 자꾸 부탁해서 마지못해 몇 번 갔었지. 처음 지부 생기고 한 달인가 지나서 내려갔는데 이 인간들이 위원장 만나겠다고 잔업을 다 재낀 거 아니야? 한창 공장 바쁘게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야? 그래서 잔업은 다 하고 간부 몇 명이나 식사나 같이 하자고 했더니 전조합원과 상견례 하자는 거 아니야? 본사에서 전화오고 천안공장장에게 전화오고 생난리를 쳐서 겨우 진정시키고 지부장이랑 몇 사람 만났지.”
“기분은 좋았겠어요? 자기네 위원장 온다고 돈 안 벌고 만나겠다고 하니. 그런 노조 요새 드물잖아요?”
“사람들은 순수한 것 같은데 워낙 골통들이야! 회사가 있고 노조가 있는 거잖아! 몇 번 만났는데 말이 안 통하니 원? 위원장 말을 발톱에 낀 때 취급도 안한다니까! 문제는 그 지부장이지! 순진한 아주머니들 꼬여서 노동조합을 이용해 자기 야심만 채우려고 하는 전형적인 꾼 같아!”
“그렇다면 어떻게 손 써야 되는 거 아닐까요?”
“더 두고 봐야지! 만약 안 되겠다고 판단되면 그때 가서 해도 늦질 않아. 본사에 머리 좋은 젊은 애들 많잖아!”
김 과장과 얘기가 끝날 무렵 조합사무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간부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누가 사왔는지 떡볶이와 튀김으로 간단한 요기를 한 뒤 왕위원장이 간부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언니들, 하루 종일 서서 일 하느라 피곤할 텐데 이렇게 회의 참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에 있는 자료들 한번 보시고 제가 간략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우선 금년 상반기 간부교육 장소와 일정 건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회사 연수원에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1박 2일이구요. 작년에도 갔다 왔지만 쾌적한 환경과 호텔식 최신시설들이기에 여러분들에게 불편은 없을 겁니다. 이번에는 특히 회장님과 1시간 정도 간담회를 진행하려 하니 고충이 있으면 미리 잘 정리해서 건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연맹 위원장이 산별노조에 대해서 교육이 있을 겁니다. 다른 교육 프로그램들은 자료들을 참조해주시구요. 다음은 조합비 회계결산 보고입니다. 구체적인 사용내역은 그날 다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조합비가 좀 있어서 양수리 근방에 20평짜리 펜션 하나 장만했습니다. 조합원들에 한해서 언제든지 여러분 가족들과 휴식을 즐기라고 장만했습니다. 노동조합 MT도 거기 가서 하면 좋을 것 같고요. 원하시면 미리 연락주시구요. 제가 설명하는 도중에라도 궁금한 거 있으면 얘기하세요?…. 이번 달 봉사활동 건입니다. 지난달 중증 장애인 봉사에 이어 이번 달에는 고아원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음식도 만들고 아이들 목욕이며 청소도 할 예정입니다. 장소와 시간은 자료를 보시구요. 저희 노동조합이 봉사활동을 열심히 해서 작년에는 구청장에게 표창까지 받는 경사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회장님이나 회사 관계자들도 노동조합의 이런 활동을 적극 지지하고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조합원들의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세상에 소외받고 낮은 곳에 있는 불우한 이웃들을 직접 찾아가 도와주는 봉사활동을 우리 노조는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저 자신은 여기에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노조활동을 세상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노사가 상생을 도모하는 노동운동만이 살길입니다. 노동조합이 과거와 같이 투쟁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국민들도 그런 걸 원치 않습니다. 아, 그리고 저는 연초에 연맹동지들과 단사 위원장들과 함께 모란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전 태일 동지 묘지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왔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생하는 왕위원장님을 위해서 박수한번 칩시다!”
정년을 코앞에 둔 대의원의 박수 유도에 간부들이 손뼉을 치고 있었다.
“쑥스럽게 박수는…. 언니 정년이 올해죠? 언니는 2년 더 다닐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왕위원장님?”
“내가 다 해결해 드릴게요. 단협에도 나와 있잖아요? 일 열심히 하는 직원에 한하여 회사와 협의해 정년을 더 연장한다는.”
“고맙습니다. 전 정규직 같은 거 바라지도 않아요? 나이 들었다고 내쫒지나 말았으면 좋겠어요?”
“지난번 교섭 때 비정규직 50명을 무기계약직으로 만드는 것도 힘들었어요.”
“위원장님이나 되니까 그렇게 하시지 누가 할 수 있겠어요?”
“무기계약직? 그거 정규직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때 마다 근로계약 안 쓰고 회사 다니는 게 어딥니까? 우리 조합원들 대다수가 비정규직인데 차별 안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얘기하세요?”
“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그러는데 팀장이 화장실 가는 것도 체크하고 사람들을 수시로 갈구나 봐요? 그래서 평소 그 팀장의 사람 됨됨이를 노조 게시판에 올렸는데 누가 그걸 지워버렸데요?”
“그 아가씨는 조합원인가요?”
“아니요? 제가 여성부장으로서 억울한 일 있으면 노조 홈페이지에 올리라고 했거든요?”
“우리는 자유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글들은 절대 지우지 않습니다. 누가 실수로 삭제시켰나?”
“제가 가끔 게시판에 들어가 보는데 어떤 조합원이 탈퇴하려면 어떻게 하냐고 글을 올렸던데 그것도 지워져서….”
“노조 입장에서 봤을 때 안 좋은 내용들이나 터무니없이 사실을 왜곡시켜 노조를 비방하는 글들을 버젓이 게시하기는 좀 그렇잖아요? 회사 사람들도 들어와서 보는데. 하여간 노동조합은 고의로 글들을 삭제하지는 않습니다. 게시판 얘기가 나왔으니 말하겠는데 천안지부 게시판에 들어가면 거기 조합원들은 사진도 올리고 리플도 달고 그러던데, 우리도 이번 봉사활동 갈 때 사진도 올리고 댓글도 달고 좀 그러세요? 홈페이지에 천안지부 글들만 올라와서야 되겠어요? 명색이 우리가 본존데 천안지부 보다 뒤쳐져서야 되겠어요?”
“거기 아주머니들은 진짜 현수막도 막 부쳐놓고 집회하고 그러던데, 뭣 때문에 그런데요?”
“우리가 싫답니다! 본조를 나가겠답니다.”
“왕위원장님이 그렇게 잘 해 줬는데,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 아니에요?”
“그 말 들으니까 천안지부 사람들 정 떨어지네! 부모를 버리겠다는 후레자식 같은 사람들 아니에요? 왕위원장님 얼굴이 어쩐지 핼숙해졌다 했어요.”
“맞아! 맞아!”
“왕위원장님? 이건 다른 얘긴데, 전 요새 좀 심란해요. 출퇴근 할 때마다 보는 광경인데, 우리랑 비슷한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옆 동네에서 파업하고 있잖아요? 그게 남의 일 같지가 않더라고요? 마음 같아선 좀 도와주고 싶더라고요?”
“안타까운 일이죠. 행여 그 앞에 얼씬거리지도 마세요? 경찰들 쫘악 깔려 있잖아요. 재수 없으면 딸려갑니다. 그 사람들 안 돼보여서 연맹을 통해서 투쟁기금 냈습니다. 그리고 그 쪽 회사처럼 되지 않으려고 제가 회사 관계자들도 열심히 만나고 분주히 뛰어다니잖아요? 그러려면 여러분도 노동조합으로 더욱 단결해야 됩니다. 위원장이 뭐 하자고 하면 화끈하게 밀어주시면 됩니다. 알았죠? 그리고 오늘 간부회의 참석자가 열 분 정도만 오셨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곤란합니다. 천안지부 보세요? 지부장이 뭐 하자고하면 그렇게 단결이 잘 된다고 하잖아요? 솔직히 어떤 때는 천안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알았어요. 왕위원장님. 우리가 분발하겠습니다. 이번 봉사활동에 많은 조합원들이 참석하도록 다들 노력하자고.”
“알았어요. 천안지부가 투쟁사업장 연대가는 것 보다 더 많이 참석하도록 하자고. 잊어먹지 말고 카메라 꼭 챙기고!”
“천안에 괜히 노조 생겨가지고 우리만 바쁘게 생겼다. 안 그래? 언니들!”
까르르. 간부들과 왕위원장이 검연쩍게 웃고 있었다.
“우리는 왕위원장님만 믿습니다. 힘내세요!”
“왕위원장님 힘내세요!”
“그럼 간부회의를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으로 갈까요?”
“좋아요, 우리 오늘 맛있는 걸로 먹으로 가요? 대빵 비싼 거로요? 하하하…”

이상한 일이었다. 회사가 지금껏 아무런 반응을 보이는 않는 것은. 
왕위원장이 체불임금 진정서를 노동부에 접수한 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회사의 대응은 너무나 조용했다. 아마도 회사는 진정내용의 사실여부를 확인하느라 지금쯤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확인이 끝나고 회사차원에서 어떤 방침이 내려지면 그때서야 은밀하게 움직일 것이다. 회사 또한 이 진정서의 이면에 어떤 의도가 숨어있는지 잘 파악하고 있을 데니 말이다. 피차 이 방면에는 노련한 선수들이 아닌가? 한두 번 장사 하는 것도 아니고 뜸도 들일만큼 들였으니 우선은 잠자코 기다려볼 작정이었다. 시간은 자신에게 앞으로 불리할 게 없고 아직 노동부에 출석할 날짜는 많이 남아 있지 않은가?
체불임금 진정서에 피전정인으로 사장의 이름이 적시되고 진정인이 왕위원장 자신임을 알았을 때 회사는 아마도 처음에는 한동안 당황했을 것이다. 회사 창립 이래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일 테니 말이다. 어쩌면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고 흥분도 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불신과 의혹의 눈초리로 그의 지난날들을 유심히 검증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노총 소속의 위원장으로서 이런 진정서 하나 낸 걸 가지고 회사가 거추장스럽게 호들갑을 떤다면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게 아닐까? 대외적인 눈도 있고 이런 기본적인 나가리 정도는 해야 자신도 이 바닥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매년 노동부에서 지정하는 노사모범 우수사업장에 선정되도록 자신이 얼마나 협조를 해 왔는지 회사가 더욱 잘 알 것이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회사가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든 결론은 궁극적으로 하나일 뿐이다. 아무리 천안지부가 생겨 방방 뜰수록 자신이 회사와 함께 가야 할 유일한 파트너라는 걸…. 아직까지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걸, 회사에게는 더 없이 유익한 존재라는 걸 이번 진정서가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왕위원장은 그렇게 자신이 직접 작성한 진정서를 여러 번 읽으며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회사는 오랫동안 임시직들을 채용하여 영업판매직을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길게는 1년 이상을 버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1~2개월 하다가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12시간을 하루 종일 서서 감정노동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근무조건이나 근로환경이 열악해 이직률이 높고 자신의 급여가 제대로 지급되는지 조차 아는 임시직은 드물었다. 노동자들 대부분이 월급을 주면 그러려니 하지, 뭐가 문제 있는지 따져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회사는 이런 약점을 이용해 시간외 근로수당이니, 휴일수당 같은 건 아예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고정 OT라는 수당을 만들어 그것들을 상쇄하고 있을 뿐이었다. 회사는 그런 비정규직들에게 월급을 통장으로만 이채 하고 있었고 급여명세서도 없이 달랑 일용근로소득 원천영수증만 지급하고 있었다. 회사의 인력관리 또한 차별과 횡포가 심했다. 3개월 이상 재직 중인 미혼 여성에 한하여 우선 계약직으로 고용하고 있었지만 기혼여성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수년 동안을 알바로 다니는 주부시원들이 사내에 꽤나 있었다. 회사는 그런 주부사원들을 선별해 이따금씩 계약직으로 전환해주면서 마치 대단한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인력관리를 하고 있었다. 조합원들 중에는 그런 장기알바는 없었지만 회사가 비정규직에게 대하는 모든 처우가 불평등하고 부당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화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공연히 거론해 회사에게 밉보일 필요가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문제라 해도 회사와 충돌해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마저도 떨려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체념이 앞서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사실들을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껏 회사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스스로 먼저 깨뜨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밀월관계란 그래서 더욱 달콤한 것이 아니던가? 마치 햇볕에 말린 이불을 덮었을 때 차악 감기는 그 뽀송뽀송한 편안함이란….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천안지부에서 이런 임시직 문제를 자신에게 제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사 소속의 수 백명의 노동자들이 임시직으로 일하면서 임금을 체불당하고 부당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으니 본조와 위원장은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압력이 아니라 차라리 모종의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천안지부 게시판에 이런 글들이 올라오면서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체불임금 진정서를 마지못해 낸 것이었다.  
"왕위원장님 저희 왔어요?“
부위원장과 회계감사가 조합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얼른 책상에 있던 진정서를 양복 윗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어서 와! 언니들이 오전에 웬일이야? 온다는 연락도 없이.”
“왕위원장님, 큰 일 났어요? 천안지부에서 우리 노동조합을 또 비판하고 있어요? 이제는 회사와 결탁한 노동조합이라고 본격적으로 매도하고 있어요?”
“천안지부 게시판에 말이야? 이런 싸가지 없는 자식! 이 자식 안 되겠구먼!”
왕위원장의 얼굴이 금방 험상 굳어졌다. 유난히 짧은 머리에 표독스러운 눈매가 살의까지 느끼게 했다.
“자기네들 금속으로 가겠다고 결의까지 해 놓고 가면 되지, 왜? 가만히 있는 우리 노동조합을 자꾸 흔드는지 모르겠어요?” 
“임시직 문제 해결 못한다고 그러는 게 아니야?”
“그것뿐이 아니라니까! 우리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와 같다는 거야? 거기다가 위원장의 자질과 품성이 어쨌다나? 
“그 사람 가만 놔두면 정말 안 될 것 같지 않니?”
“무슨 수를 써야지! 우리 노동조합을 말아먹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가만히 있으면 되겠어?” 
“너는 그런 쓰레기 같은 글을 읽으면서 열불이 안나? 리플이라도 달아서 반박이라도 해야지!”
“우리 간부들에게 연락해서 댓글이라도 모두 달자고 하자! 지가 얼마나 잘났다고 매일 우리를 들들 볶냔 말이야! 본조가 무섭다는 걸 보여줘야 돼! 이건 비상사태야! 노동조합 그동안 잘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굴러온 개뼉다구 같은 놈이 사방천지를 분탕질을 하고 있잖아.”
“천안지부장, 그 사람 무슨 저의가 있는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랑 한번 맞짱 뜨자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 분명히 위원장님 자리를 노리는 게 틀림없어?”
“그럴지도 모르지. 용서할 수가 없어!” 
“왕위원장님? 이번 기회에 그 사람 잘라야 되요!”
“가만히만 있지 마시고 무슨 얘기 좀 해 보세요?”
“회사에 얘기해서 천안지부장 잘라야 한다고 하세요? 회사를 말아먹으려고 하는 나쁜 놈이라고!”
“아까 매장에서 우연히 본부장님 잠깐 만났는데 오늘 오후에 조합사무실로 왕위원장님 만나러 온다고 하던데, 그때 꼭 말 하세요?”
“본부장님도 천안지부에서 하는 짓거리들 다 알고 있겠지?”
“그럼! 본사차원에서 체크 다 하겠지. 매일.”
“자식이 착한 부모에게 패악부리는 콩가루 집안 같다고 다들 그러겠다. 쪽팔려서 어디 살겠니?”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그 놈 숨통을 끊어나야 돼! 확실하게.”
왕위원장은 눈을 감고 두 사람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의 인상이 심하게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간 뒤 그는 어떤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천안에 밀리면 지금껏 그가 공들여 쌓아왔던 모든 명성이 하루아침에 모래알처럼 허물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는 온갖 억측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천안지부 게시판을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잠가놔야겠다고 생각한다. 천안지부만 그렇게 하면 볼썽사나울 수도 있으니 아무 관련이 없는 아산지부 게시판도 잠그고 있었다.
며칠 전 난데없이 큰 눈이 왔지만 햇볕에 거리는 흙탕물처럼 질퍽이는 것 같았다. 건물 사이사이로 기다랗게 응달에 가려진 잔설이 남아있는 풍경은 그래서 더욱 개운치 않아 보였다. 유리창으로 투영되고 있는 오후의 햇살마저 따스하기 보다는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영하의 기온 때문만은 아니었다. 계절은 봄이건만 그의 마음은 혹독한 추위에 가슴이 더욱 오그라졌다. 
“아이고! 우리 왕위워장님, 안녕하십니까?”
깔끔한 양복차림의 본부장이었다.
“뭘 그렇게 창밖을 우두커니 보십니까? 어디 숨겨 논 애인이라도 생각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어려운 걸음 하셨습니다.”
“안녕이라니요? 병 주고 악 주는 겁니까? 하하. 지금 그 진정서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습니다. 어디 조용한데 가서 식사나 합시다.”
“조용하기야 여기 조합사무실 만큼 조용한데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식사는 해야지요?”
“요새 소화도 안 되고 컨디션도 안 좋네요.”
“천안지부 때문에 그러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될 겁니다.”
사람들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깨 차고 거기에 적절한 현실적인 대안까지 마련하는 본부장은 차기 사장감으로 물망에 오르는 인물이었다. 그는 항상 만면에 웃음을 달고 살지만 그의 내면은 섬뜩한 비수를 품고 있는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왕위원장은 십 수 년을 직접 겪어오면서 알고 있었다.
“왕위원장님이 진정서를 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하.”
“체불임금은 정부에서도 엄하게 다스리고 있습니다. 사장님 잘못하면 구속까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는 즈레 겁을 줬지만 쉽게 말려들 본부장이 아니었다.
“왕위원장님? 우리가 뭐 그동안 서운하게 대한 게 있습니까? 툭 까놓고 얘기해서 우리가 어디 남입니까?”
“……”
“저희도 법무팀에서 다 알아봤는데 실무차원에서 뭔가 오해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서 이런 체불 건이 발생하다니 개인적으로 창피한 일입니다. 사장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면목 없다고 하셨고요. 아울러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줘서 고맙다고까지 얘기하셨습니다.”
“그러면 회사가 잘못을 인정하는 겁니까?”
“네. 이미 담당과장 모가지 쳤습니다.”
“제가 임시직 명부 받아서 대충 청진기 대봤더니 견적이 꽤나 나오겠던데요?”
“본사에 재직 중인 임시직만 3억이 소요됩니다.”
“3억이라…. 지방에 있는 영업판매직에 근무하는 임시직들은요?”
“그래서 제가 왕위원장님과 상의하러 온 거 아닙니까? 좀 도와주십시오!”
“퇴직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왜 이러세요? 그것까지….”
본부장으로서의 권위는 어디 갔는지 비굴할 정도로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면서 왕위원장은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자신이 의도한대로 이야기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더 압박을 하고 있었다.
“원칙대로 하십시다!” 
“왕위원장님? 우리 지금껏 윈윈 하면서 서로 협조 잘 하지 않았습니까? 진정서 낸 거 노조 쪽이나 대외적으로는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물론 천안지부에서 문제 제기 했지만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왕위원장님만 저희 입장 좀 이해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우리가 어디 하루 이틀 안 사이입니까?” 
그도 이제 감추고 있던 자신의 패를 본부장에게 서서히 보여야 할 시점임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말입니까?”
“천안지부야 지부장 하나만 보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본부장 또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집고 있었다. 
“오늘 회사에서 천안지부장 고소할 겁니다. 명예훼손으로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동안 법무팀에서 천안지부에서 낸 모든 선전물을 검토했습니다.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충분히 먹히는 겁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보고받은 것에 의하면 천안공장 관리자들과 몸싸움을 했나 봅니다.”
“천안지부장이요?”
“네. 천안공장 관리자들이 금속노조 가는 걸 막기 위해 노조 가입원서를 냈더니 방해한다며 옥신각신 하다가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나 봅니다. 서로 맞았다고 주장하는데 그걸 목격한 사람들이 모두 관리자들입니다. 하하. 보나마나 천안지부장 그 사람 자신이 맞았다고 조합원들 선동하고 선전물 낼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다렸다가 허위사실 유포로 걸면 됩니다.”
“쳐 논 그물에 걸린 격이네요.”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완벽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천안지부장. 어차피 그 사람은 함께 가기는 힘든 사람 아닌가? 회사 입장에서야 말할 것도 없지만 자기가 속한 조직을 험담 하는 것은 조직질서에도 위배되는 게 아닌가? 천안지부 처음 만들 때 자신을 배제시킨 것 처럼 이제 왕위원장 자신이 민주노총 단위사업장에서 그를 영원히 배제시킬 차례가 된 것이다.
“체불임금은 구정과 추석 때 귀향비조로 정산하면 안 되겠습니까? 워낙 회사가 어려워서…. 물론 전국에 있는 임시직들에게도 해택이 돌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그것만 해도 회사 입장에서는 수억 깨지는 겁니다.”
“그건 편법 아닙니까? 하여간 회사분들 머리는 참 좋습니다. 그려.”
“칭찬입니까? 비꼬는 겁니까? 하하!”
“퇴직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굳이 그것까지 해결해야 합니까? 여기를 거쳐 간 사람들이 한 두 명도 아니고? 왕위워장님만 대승적으로 이해해주시면 됩니다. 회사가 있어야 종업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왕위원장님은 충분히 좋은 일을 하신 겁니다. 마치 홍길동 같은 일을 하신 겁니다. 하나의 제도를 만드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걸 우리가 교섭하면서 알지 않았습니까? 수많은 임시직들에게 생각지도 않았던 귀향비 지급만으로도 그들은 기뻐할 겁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는 것 보다 하나씩 차근차근 제도를 만들고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왕위원장은 생각하고 있었다.
“왕위원장님? 이제 진정서 그만 취하하시죠?”
본부장은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며 살갑게 미소 짓고 있었다.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왕위원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 거절도 없이 쑥스럽게 웃으며 봉투 속의 내용물을 반쯤 꺼내 보았다. 0이 여러 개 있는 수표였다.
“좋은 데 쓰겠습니다.”
“왕위원장님이 어디 인 마이 포켓 할 분입니까? 깨끗하기로 정평이 난 분 아닙니까? 하하1”
두 사람은 그렇게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조합사무실이 떠나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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