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풍운아 윤석열을 무상으로 잡으려 해

-천민 근성에서 내뱉는 서글픈 자화상의 언설(言說)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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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박정례]= ‘늪’에 빠지면 여간 해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거대한 묽은 진흙 웅덩이가 늪인데 이곳은 균형을 잡을 수도, 발을 딛고 설 수도, 손으로 뭔가를 잡을 수도 없는 곳이라서 그 누구든 빠지기만 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마는 곳이다.

늪, 그만큼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다. 천우신조로 제때 발견되어 구조를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이래서 짐승이든 사람이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은 위험천만인 늪에는 애초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작금에 이르러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에게서 윤석열 후보를 위험하고도 불순한 늪에 빠뜨리려고 하는 인상을 받는다. 민주당 후보로는 이재명 씨가 결정된 상태고 ‘정의당’ 같은 군소 정당의 후보들 역시 속속 후보가 확정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중에 ‘국민의힘’에서도 11월 5일이면 후보를 확정할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두 차례의 컷오프를 거쳐서 남은 네 사람들이 치열한 경선 행보를 치르고 있다.

‘국민의힘’의 네 후보 중에 정치 신인은 윤석열 후보가 유일하다. 국힘당에 들어온 지 3개월도 채 안 되는 사람이라서다. 반면에 홍준표 후보가 26년차 정치인, 원희룡과 유승민 후보 역시 22년차에 접어든 베테랑 정치인들이다. 누구는 국회의원 3선에 도지사 2번에 대선후보를 지냈는가 하면 유.원 두 사람도 각각 4선 3선에 대선후보. 도지사 경력을 자랑하고 있는 막강한 사람들이다. 하여 윤석열 후보에 비해 20년 이상 앞서 있는 정치 대선배요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홍.유.원 3인에게서 TV토론에서나 정책 면에서 품격 있는 매너와 월등하고도 유익한 비전 제시를 해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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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 중에는 “대선후보의 격을 이렇게나 떨어뜨릴 수가 있을까?”하는 탄식이 절로 나을 정도로 같은 당의 상대후보에게 부도덕한 이미지를 뒤집어씌우려는 끈질긴 시도를 목도하고 있다. 일례로 20일 국민의힘 홍준표 대선 경선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요즘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서로 감옥 간다고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한국 대선이 오징어 게임처럼 돼가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과 “제가 야당 (대선) 후보가 되면 둘 다 감옥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오늘 아침에 문득 들었다”고 밝혔다.

이를 보며 홍준표 후보는 ‘유권자들의 수준을 참 우습게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파를 통하여 전국으로 방영되는 TV토론장이라는 공간은 후보들로서는 별다른 밑천이 들진 않는다. 홍준표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주특기인 맹독성 언설로서 상대후보를 부패와 부도덕의 상징인물처럼 느껴지게 하는 전법을 구사하고 있는 모양새다. 거두절미하고 윤석열 후보는, 대선후보의 장에서 그냥 죽어 없어지라는 것인가. 그야말로 밑천 안 드는 말(言) 무기로서 대선후보 자리를 무상으로 차지하려는 의도인듯 싶다.

오죽하면 정치 원로인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측에서도 여당은 물론 같은 당 후보들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윤석열 후보의 처지를 보면서 “당에 영입했으면 보호해줄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이 여당도 공격 야당도 공격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진단을 내놓은 마당이다. 폐 일언하고 홍 의원을 비롯한 경선 후보들이 어쩔 수 없는 정치인들이라서 후흑의 뻔뻔함을 다소 용인할 수밖에 없다손 쳐도 불문곡절하고 자기 당 후보에게 “제가 야당 (대선) 후보가 되면 둘 다 감옥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오늘 아침에 문득 들었다”는 식의 극단적인 음해는 더 이상 말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윤석열 전 총장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양 권력에 맞서 법과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를 위해 외롭고 험난한 길을 뚝심 있게 걸어간 사람이다. 국민의힘은 이를 기반으로 집권을 넘볼 수 있는 대안정당이 됐음을 잊어선 안 된다. 풍운아 윤석열을 무자비할 정도로 심한 언설로 몰아세워 후보자리를 쉽게 얻을 생각만 하지 말고 남은 경선을 대승적으로 이어나가기를 빈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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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1 19:01 2021/10/2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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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영 킵스 대표, 공공정책개발과 공동선에 대한 헌신

-‘어젠다-K2022’ 공공정책개발집, 동지들과 뜻 모아 이룬 대한민국 비전제시

-한국정치 발전 위해 대선 후보들, 반드시 선거법 개정 공약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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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가 출몰하는 사회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호도 마찬가지다. 선로에서 이탈한 폭주기관차들이 난데없이 나타나 좌충우돌하다가는 하루아침에 국가 사회가 엉망이기 십상이다. 그래서다. 오랫동안 공을 들여 구축한 사회질서와 국력이 특정한 사람이나 세력들에 의해 속절없이 무너지고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공공정책개발을 통하여 검증된 정책안전판 마련이 절실한 실정이다. 이를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사람들이 킵스 공공정책전략연구소(대표 김관영) 구성원들이다.

김관영 대표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제3지대에 있었던 김성식, 채이배, 임재훈 윤영일 씨 등 잘 알려진 정책통들과 뜻을 모아 지난해 7월 킵스를 설립하고, 국가공공정책개발에 온 힘을 기울여 왔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인 공공정책개발집을 지난 8월 말 3권으로 묶어 선보였는데 여야를 위시하여 어떤 정치세력이든 공공선에 입각하여 선용할 수 있도록 조건 없이 제공하고 있다. 공공정책개발과 보급이라는 획기적인 일을 최초로 이룬 것이다.

사비를 들여 발간한 정책집은 전국의 크고 작은 도서관, 유명 경제연구소, 앞서가는 기업체 그리고 300여명의 국회의원과 각 대선캠프에 초 1500여권을 보급했다. 김 대표가 이런 일에 앞장선 이유는 국가사회가 건전한 발전을 이뤄 선진국으로 확실하게 도약할 수 있기를 바라는 대승적인 차원에서다. 공공정책전략연구소인 킵스에서 발신한 어젠다는 대략 13개 분야인데 정치,행정,재정,외교,경제,노동,복지,교육,에너지,AI,젠더,청년, 농업 등이다. 이중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대선을 5개월 앞둔 시점이라서 그런지 제대로 된 정치 풍토 확립과 선거제 개혁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고 있는 가운데 김관영 킵스 대표도 예외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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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 민의 왜곡, ‘청와대정부’ 불식 위해 선거제 개혁 필요

김 대표는 지난 8년 동안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펼치면서 우리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일에 선봉으로 나섰던 인물이다.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로서 국회의원선거제도인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위해 헌신했다. 하지만 거대 양당이 당초의 연동형비례제 정신을 망가뜨리고 위성정당을 만들어 악용하는 바람에 다당제와 합의제민주주가 훼손되는 것을 목격해야만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겼음인지 그가 공공정책개발의 일환으로 애써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선거제개혁이다. 21대 국회에서 연동형미래대표제의 특.장점을 살릴 수 있는 선거제도를 개선할 것을 한 결 같이 주창한다. 김관영 킵스 대표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보다 직접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지난 20대 국회 때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선거제를 바꿨는데 결과는 의석수 180석과 103석의 양당제 강화다. 무엇이 문제였나.

 

“양당이 위성정당을 급조하여 선거제도 개혁이 물거품이 됐다. 그 부분에 대해 역사적으로 혹독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민주당이 특히 잘못된 결정을 했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180석을 가지고 있는 당이 책임감을 가지고 다시 고쳐야 한다. 지금은 대선 정국으로 빨려 들어가서 쉽지 않은데,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 후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매듭지어 22대부터는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된 국회가 구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소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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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문제들이 문재인 정부의 공과와 맞물리는 점은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정부였기에 국민적 기대가 높았다. 복지 확대나 민주주의 회복, 한반도 평화에 대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복지문제도 따져볼 부분이 많고, 민주주의 회복 역시 다양한 민의수렵 보다는 갈라치기 식 통치행태로 분열된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에 더해 정작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혁신’인데 이 부분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국민을 실망시켰다고 생각한다. 시대적 난제들이 좀 많았나. 이런 문제일수록 정면 돌파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땜질식 처방, 단편적 처방에 치중했다. 특히 부동산 정책의 실패, 검찰개혁 과정에서 보여준 편 가르기 식 접근은 큰 실책이었다.”

 

-땜질식 처방, 단편적인 처방 중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정책이 엉망이었다. 최저임금제로 인해 정말 많은 비용을 치렀다. 첫해 최저임금을 16.9% 인상해 시장의 충격이 너무 컸다. 추가 상승분을 정부가 보전한 것도 역사상 처음이다. 충격이 크니 3년차부터는 2~3%로 내렸다. 아이러니한 게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박근혜 정부 때보다도 낮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니 그런 후유증이 나오는 거다.

둘째는 부동산정책이다. 과감한 공급대책을 발표하고 일관성 있게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데 땜질식 처방으로 부동산 시장에 혼란을 부추기고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렸다. 청년들의 좌절과 절망감이 근로 의욕을 상실시키고 암호화폐와 주식시장으로 뛰어들게 만드는 거다. 이는 숫자로 계량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손실이다. 인치와 언치에 의해 이뤄지는 국정이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원외에서 바라본 정치 현실에 대한 견해는?

 

“민주주의 회복, 권력을 분산하여 제왕적 대통령제를 불식하고 ‘청와대 정부’라는 기형적 시스템을 개혁해서 행정부와 의회를 중심으로 민주적 협의와 연합정치를 완성해가는 것이어야 한다. 선거제 개혁은 이 같은 맥락에서 대단히 중요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이 앞장서 위성정당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선거법 개혁이 좌초됐고 국민의힘은 총선 패배를, 민주당은 과잉 대표된 의석수가 '독주의 트랩'으로 이어졌다. 거대 양당은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김관영 대표는 이어 정치권에 대한 날카로운 승자독식의 피해를 양산하는 소선거제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불식하는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계층과 집단의 의견이 의회를 통해 반영-조정-완충-합의되는 과정이 있어야 적대적 대결의 정치를 넘어서고 국민을 통합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국민들이 결연한 의지로 견인할 때 대선 후보들도 ‘선거법 개혁’을 공약함으로서 민의가 승리하는 길을 열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에 3당이 굳건했다면, 캐스팅 보트 정당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면 오늘 날과 같은 거대 양당의 적대적 대결 정치를 넘어설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의미에서 2016년 ‘국민의당’이라는 3당을 지켜내지 못하고 합의제민주주의의 씨앗을 더 많이 퍼뜨리지 못하고 도중에서 좌절하게 된 점 아쉽고 안타깝고 “큰 책임을 통감한다”는 양심고백도 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제도 정착을 위해 오늘도 다당제를 위한 선거제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김대표의 부르짖음이 어떤 결실로 다가올지 지켜볼 일이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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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30 14:30 2021/09/3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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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이회영과 6형제

 

피 묻은 솜옷한 줌 재

난잎으로 칼을 얻고민국의 길자유의 길 연

우당 이회영과 건영석영철영시영호영 6형제

모진 고문굶주림 견디며 대륙 땅 누빈 드넓은 웅혼

조국은 남산 자락에 기념관을 세워 님들을 기리다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으로 태어난 님들, 500년 조선 역사에 6판서 3정승을 무수히 배출한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태어난 우당 이회영과 형제들은 조선이 국권을 강탈당해 강토를 잃고 일제의 먹이가 되자 결심하였다구국을 위하여 힘을 기르자오로지 한마음 한뜻을 세워 전 재산을 다 팔아 40여 식솔들과 함께 서간도 이주를 결행한다이 모든 것을 앞장서서 계획하고 실행한 것은 우당 이회영이었다.

 

 

 1910년 12월 지린에 도착한 님들은 칼춤 추고 말을 달려 총칼로 빼앗긴 나라를 총칼로 되찾자.’”라는 뜻을 세운다이에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세운다. 1911년 12월 제1기생 4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1912년에는 합니하에 새로 부지를 사들여 무관학교로써 격식을 갖춘 교사를 세운다그동안의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개편하여 번듯한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니 조선의열단한국독립군한국광복군의 뿌리가 되었다.

 6형제의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까지 계속된다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문을 닫기까지 3.500여 명의 독립투사를 길러내어 한국 무장 독립운동 사상 양대 대첩인 봉오동전투(1920년 6)와 청산리전투(1920년 10)를 승리로 이끈다양 대첩엔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주축이 되었던 것우당의 행보는 거센 바람과 검은 풍운에 맞서 겨레와 나라를 구하여 독립을 쟁취하는 길에 방략과 실질적인 행동과 현실에 뿌리내린 구체적인 실천 그 자체였다.

 

 

 나라가 풍운에 휘둘린 1910년 이후의 우당은척박한 타국땅에서 독립의 염원을 담아 자신의 고혈을 오로지 짜내 피로 새긴 불굴의 발자취였다혁명가 이회영이 새긴 무장 독립투쟁은 망명을 결행한 순간부터 제국주의 왜적에게 직접 물리력을 행사하는 능동적인 방략에 기인한다일제의 강압으로 신흥무관학교가 문을 닫은 후의 활약은 아나키스트 행동 조직을 지속하여 꾸리고 지도하며 노구를 이끌고 항일공동전선 형성을 계속한다.

 이에 지하조직망 구축을 위해 비밀리에 영국 배 남창호 밑바닥 4등 선실에 몸을 싣고 상하이를 떠난다만주로 가기 위해서였다어찌 알았으랴아들 규창과 황푸강 와이탄 부두에서 작별을 고하면서 만주로 향하던 길이 우당의 마지막 길이 될 것임을우당은 다렌항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뤼순 감옥으로 끌려갔다그곳에서 모진 고문 끝에 세상을 떠난다유품은 오직 누비솜옷과 모자와 해진 신발 한 켤레가 전부였다그의 나이 예순다섯, 1932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강요당한 날과 날짜가 같았다. 1932녀 11월 경기도 장단 큰댁으로 한 줌 재로 돌아오시다.

 

 

난잎으로 칼을 얻고 민국의 길자유의 길 여신 그 자취

피 묻은 솜옷과 모자신발 한 켤레한 줌 재

부국강병 문화강국 조국의 초석 되셨으니

조국은 여기 우당 이회영과 6형제의 웅혼을 받들어

남산 자락 예장공원에 기념관을 설립하고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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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8 13:34 2021/07/1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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