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퇴전의 투혼으로 작품 빗는, ‘작가의 창작 숲’ 회원들

-정기전, 기획전, 공공미술 통해 참신한 이슈와 교감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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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라는 병을 앓아 본 일이 있는가, 이 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의 창작숲’ 회원들이다. 이들이 2021년도 ‘작가의 창작 숲’(이하 창숲)을 결성하게 된 동기는 작가적 시각으로 사회 문화 활동을 연구할 것과 제한적인 개인의 힘을 넘어 뜻 벗들과 함께 연대하여 공감할 수 있는 이슈를 던지자는 목적에서였다. 또한 후배 작가들에게 교류의 통로를 열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회원들은 상호 친목성격의 단순 모임을 탈피하여 기존의 흐름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목표를 설정하여 미술사적으로 좋은 선례를 남기고자 모임 결성의 깃발을 올리게 되었다.

‘창숲’의 어젠다 설정과 방향

창숲 회원들은, 평범한 전시는 지양하고 실험적인 작품전을 선보이자는 결의를 다져왔다. 이른바 새롭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하자는 것, 그런데 어떤 예술가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갖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도전적이며 융복합적인 장르별 통섭을 시도하지 않는 한 발전은 멈추고 정체와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창숲’은 설립 목적에서부터 ‘독특한 전시’ ‘실험적 전시’를 표방하고 이를 설립 목적에 명시해 놓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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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모름지기 설정 목표와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저마다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예술가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 지난하고도 고독한 창작 앓이도 견뎌내야 한다. 그럴 때라야 비로소 창발성 넘치는 작품을 구현해낼 수 있기에 말이다. 예컨대 작업 의도와 개성은 서로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와 같다. 거두절미하고 창작물이란 작가 개인의 투혼과 결기에 따른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애써 얻은 작품을 가지고서야 뜻 벗들의 모임인 ‘창숲’의 결집 의도에 부응하는 동시에 한국미술계와 세계 유수의 화단과도 조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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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창작숲이 구상하는 사업의 실체

그동안 구현하려 애쓴 흔적을 보자. 미술기획자이자 조형미술가인 김해곤 초대회장이 이끌어온 제1기 창숲은 ▲예술창작활동에 관한 사업 ▲역사적인 장소 및 가치를 예술로 재해석하여 사회이슈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전시 및 실험적인 전시 ▲국제예술 교류에 관한 사업 ▲회원들의 권익을 위한 각종 아트페어 참가 및 개설 사업 ▲본 사업의 취지에 부합한 정부와 지자체, 기업의 위탁 공공미술 사업 ▲온라인 전시 및 온라인 갤러리 운영 ▲단체의 목적에 부합되는 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사업을 추구해왔다. 때마침 창립 5년 차를 맞은 ‘창숲’회원들이 을사년 새해를 맞아 지난 1월 8일 제2기 신임 회장으로 강기태 화백을 선출하였다. 신임 회장을 통하여 창숲이 그동안 어떤 여정을 걸어왔는지 정기총회 장소인 그림마켓으로 찾아가 좀 더 내밀한 속살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자기소개 겸 ‘창숲’ 2기 회장의 작품세계에 대해 소개해 달라

“우상에 대해서 천착해왔다.” 우상의 1차적인 의미는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을 말한다. 특히나 종교계에서 말하는 우상이란, 자신들이 섬기는 신 이외의 인위적인 형상을 지칭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 우상의 개념을 보다 유연한 시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가령 청소년들의 우상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일 수 있고, IT업계 종사자나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경이로운 편리함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그들의 우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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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경우는 오래된 유물과 유적, 불교의 상징물인 불상과 연꽃 그리고 동서양의 신화적 동물로 등장하는 호랑이와 사자 등에 주목하여 작업해오고 있다. 이들은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 안에서 뚜렷하고도 심대한 존재로 각인된 ‘생존 부적’과도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저의 작품은 그래서 익숙한 구상과 익숙하지 않은 추상의 비교의 연장선이며 반대로 추상에서 구상이미지를 추적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외형과 본질의 관계성을 표출하는 작업인데 이를 개념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미지추상>으로 가름할 수 있겠다.”

창숲 이전 모임이 있다고 들었다. 관련지어 설명해 달라

“30대 초반에 21세기 청년작가회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그때의 작가들이 더 한층 발전적인 모습으로 뭉친 것이 ‘창숲’이라 하겠다.” 90년대 의기투합한 ‘청년’들은 젊음에서 오는 패기 때문이었는지 공공미술에 과감할 정도의 열정을 쏟아붓고는 했다. 기획전도 틈틈이 했지만 ‘1998년 한강깃발전’을 스타트로 강원도 정선의 탄광촌 폐쇄에 맞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에서 ‘탄광촌미술관’을 기획했고, 2002한일월드컵공식문화행사 -깃발축제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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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숲은 특히 22년과 23년 기존의 미술관을 탈피하고 전북 남원에서 농한기의 비닐하우스를 대안공간으로 이용하여 ‘보절아트페스타-하우스 미술관’이라는 농촌미술제를 개최했다. 이는 창숲이 내세운 ‘독특한 전시’ ‘실험적 전시’와 결을 같이하며 신개념 대안공간으로서의 이슈를 선점한 쾌거였다. 그밖에 ‘아빠랑 은별이랑 섬진강 그림여행’의 작가 오치근 그림동화전도 겸하면서 농촌 어린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몫을 단단히 선사했다. 이처럼 뜻 벗들의 결속이 지속해오는 동안 출신학교도, 작품을 제작하는 성향도 다양해졌다. 구상, 비구상, 생태미술, 영상미디어, 설치미술 등 다양하다. 방향이 뚜렷하고 작품성이 확립된 사람들이 불퇴전의 각오로 새롭게 뭉친 것이 바로 ‘작가의 창작 숲’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창숲 회원은 현재 27명에 이른다. 회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강기태, 강수돌, 강술생, 김문석, 김반산, 김인숙, 김태연, 김해곤, 영은 김혜영, 나수미, 배효정, 심효선, 오정숙, 원상호, 이재형, 정회윤, 조구희, 조석진(조샘), 탁영경, 세르칸, 이종근, 이종한, 양성원, 하만홍, 김형무, 우명애, 정선미 등이다. 남녀 비율이 고르게 분포돼 있는 점에 주목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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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숲’회원들이 이룬 성과를 소개해 달라

먼저 특기사항이다. 작년 같은 경우엔 ‘곤충미학’이라는 공통주제를 정해 전시회를 가졌다. 25년도에는 '색(Color)-결(Texture)-망(Net)'으로 공통주제를 설정하여 작품전을 열 계획이다. 실력과 의욕을 갖춘 회원들이 많아서 회장으로서 창숲에 거는 기대가 결코 적지 않다. 지난 정기전과 기획전 특별전 전시 연혁은 아래와 같다.

 

-정기전-

*2021년 제1회 창립전 (정수아트센터/서울, 갤러리 비오톱/제주)

*2022년 제2회 정기전 및 기획전 「한라산~북한산~지리산까지 예술여행」 (이니갤러리/제주, 8번가갤러리/서울, 보절면 하우스미술관/남원)

*2023년 제3회 정기전 및 초대전 - 앵프라맹스(갤러리 반디트라소/서울)

*2024년 제4회 정기 초대전 – 「곤충미학 바라보기」전 (1차 전시: 갤러리 H/서울)

(2차 전시: 나노 갤러리/청주)

 

-기획전, 특별전-

*2022년 특별 기획전 – 제1회「보절아트페스타-하우스미술관」

(전북 남원시 보절면 소재지, 은천리 일대)

*2022년 특별전 - 서울 조형 서울 아트페어 참여 (코엑스/서울)

*2023년 기획전 - 「튀르키예 후원 기금 마련전 – 우정」 (갤러리 1010/서울)

*2023년 특별 기획전 – 「미술 슈퍼마켓」 전 (롯데마트 송파점/서울)

*2023년 특별 기획전 – 제2회 「보절아트페스타-하우스미술관」 참여

(전북 남원시 보절면 소재지, 은천리 일대)

 

*박정례 밝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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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8 22:00 2025/01/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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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성모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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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만에

나주 성모동산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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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첫토요일은 지키려고 한다.

가는데 모두 함께 가는 버스로 왕복 5만원에

김밥 3천원 저녁밥 5천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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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기도소로 들어가니

광주, 전주, 대구,부산,인천,수원 등 전국에서 모여왔다.

개인차로 온 팀도 있고 나처럼 자차가 없는 사람들은

셔틀을 타고 같이 출발하는 방법으로 모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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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텔라 수녀님께서

나주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연역을 설명해주고 계신다.

20여년 전 아무 것도도 되어 있지 않을 때 그것도 어둑어둑할 때 갔던 

기억에 비해서 여러가지지 시설이 많이 갖춰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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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도 아름답게 꾸며 있었고

동산에 입장 하기 전에 차량이며 기타의 시설들은

동산 아래서 해결하도록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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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객들은 2시30분부터 십자가의 길을 하고

 

기도를 하다가 새벽 2시 몇분인가에 미사를 봉헌하고

거기서 완전 4시17분인가에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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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러 영혼들을 위해 미사를 드렸다.

한,미,새,5.18영혼들, 부모님 등

각각 미사예물을 각각 넣어 최소 5대의 미사를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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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십자가의 길을 한 후

어두어진 장면일 거야

그라시아 자매와 김 율리안나 자매님의 안내를 받으며

 

십자가와 겟세마니동산고 장 신부님 묘소 등

여러 군데를 들리면서 예를 표했다.

장 신부님 묘지 앞쪽 나무 위 동산에서

성모님을 뵈었다.

태양 위에 푸른 망도를 입으신 어머니께서

우측으로 움직이는 모습고 온갖 무지개색깔을 빗살이

성작에서 빛나듯이 햇살이 비췄다.

경의롭고 놀랍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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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오니 하얗게 눈이 깔리고 있었다.

아름답고도 고요한 아침이었다.

집에 와서 소제대를 꾸미고 거기서 사온

촟불을 켜고 기도를 드렸다.

님 향한 사랑의 길 책도 다 읽었다 다음은

장 신부 님의 자서전이 있다 하니

그것을 사와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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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8 00:16 2025/01/0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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➁ ‘김대중을 지킨 18년 맹장’, 김종선 수행기사

-DJ 가는 험난한 길 모두 동행하며 새 역사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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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선은 DJ를 수행하면서 세 번의 창당과 세 차례의 대선을 겪는다. 그 과정은 길고도 험난했다 걸림돌과 장애물이 숱하게 많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굴곡진 현장과 돌출 상황에서도 김종선은 눈길, 빗길, 자갈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가리지 않고 차를 발진시키고 운전대를 잡곤 했다. DJ는 김종선의 이런 수고를 잘 알기에 ‘자넨 내 생명을 지켜주는 사람이야!’라는 말로 고마움을 표시하곤 했다.

그때마다 김종선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DJ가 가야 하는 길이었기에 어떤 처지에서든 자신은 몸 사리지 않고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DJ가 목적지로 이동하면서 가끔씩 들려주던 말마디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실감하곤 한다.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이 특히 그렇다. 이 말은 작금의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도 적용되고 있는 금언이 되고 있다. 그야말로 거대 여당은 다수당의 횡포를 유감없이 자행하는 중이고 이에 맞서는 대통령은 현명한 정치력을 구사하기 보다는 비상식적인 계엄 선포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격과 정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DJ도 포악한 정치에 자주 당하곤 했다. 걸핏하면 가택연금과 연행과 입건을 당했고 테러와 납치로도 모자라 현해탄 한복판에서 수장당할뻔했었다. 승기를 잡았다 싶은 대선에서는 ‘우리가 남이가’와 같은 ‘초원복집’ 사건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요 개중에는 전화위복으로 치환되기도 했다. 역사의 정반합(正反合)인지 모른다. 그러기에 DJ와 같은 탁월한 경륜의 소유자는 모든 정치놀음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통틀어 ‘정치는 생물이다.’와 같은 금언을 발신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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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선은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지켜보며 자신의 지난 시절을 소환해 본다.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임박했을 때 1997년엔 IMF 국제금융 위기가 닥쳤고, DJP연합을 성사시켜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을 지켜본다. 드디어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대망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청와대 입성의 순간이 오자 김종선은 운전대를 잡으며 충직한 수행비서로서의 소임을 이어갔다. 김종선은 그날 DJ가 들려준 또 하나의 금언인 ‘서생 적 냉철함을 장착하고 상인 적 현실 감각을 발휘하며’ DJ의 영광의 일정을 대과(大過) 없이 소화했다.

대통령이 차를 비워두고 국정을 소화하는 시간 틈틈이 자신을 DJ에게 보내준 김병오 의원을 생각했고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김종선은 서울 중구 약수동에서 여러 대를 이어 살아온 서울 토박이였다. 그러던 것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구로동 단칸 셋방에서 온 가족이 도시빈민으로 살아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진학을 앞둔 시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불행까지 닥친다. 세상에! 가난도 서러운데 어머니의 보살핌도 끊기고 학업마저 중단해야 되다니. 종선은 이때부터 건설 현장의 막노동과 채소장사며 옷 장사 등 여러 경험을 쌓는다. 김종선의 이런 경험들은 고난의 정치인인 DJ를 모시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DJ도 학력이나 용모나 언변과 같은 겉모습이 아닌 신뢰와 믿음의 동지로 김종선을 예우한다.

 

종선이, 우리 꽃시장엘 좀 들리지!

“어르신은 집안 공기가 무겁다 싶으면 꽃시장으로 차를 돌리라 하셨습니다. 서초동 꽃 시장에선 실내용 다년초를 구입하시고 벽제 구파발 쪽에서는 당굴장미를 사다가 울타리 밑에 심었습니다. 지금도 그 표정이 선합니다. 핑크색 꽃잔디를 정원에 심으시고 좋아하시던 그 모습요. 어른은 이른 봄의 진달래도 참 좋아하셨습니다. 패랭이꽃, 샐비어 분꽃 등 덩달아 외우게 된 꽃 이름입니다.” 김종선은 현재 나이가 상당한 노장이다. 하지만 당시의 DJ를 모셨던 자부심이 유난하다. 그의 형형한 눈빛을 보면 그 어떤 장수의 눈빛이 김종선 만 하랴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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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군, 음악 좀 틀어보게!

“어르신은 판소리 여섯마당을 훤히 꿰고 계셨습니다. 남도 육자배기에 호남가를 부르는 임방울 명창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손바닥 장단을 치며 흥얼거리며 고신극기 끝에 도달한 명창의 경지에 깊이 공감하시곤 했습니다. 아 참 1997년쯤이었을 겁니다. 선거 전략을 세우기 위해 드라이브를 하시다가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청하셨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40대 중반이었는데 노랫말에 담긴 젊은이들의 생각과 시대감각을 익히시려는 것 같았습니다. 차 안에서 하시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젊은이들도 힘든 점이 많을 거야. 성적이다. 입시다. 숨통을 조이는 일은 많은데 저들만의 공간은 없는 형편인 거야. 그나저나 교육문제가 빨리 바로 잡혀야 할 텐데’하셨습니다.”

DJ가 젊은 층의 노래를 찾아듣는 것을 보며 김종선은 아내의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기를 띠었다. DJ와 아내와 아이들에 얽힌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생각나서다. 하루는 중학생인 작은 녀석이 ‘가정환경조사서’를 가지고 와서는 아버지 직업란을 두고 ‘뭐라 쓸까?’ 고심하는 눈치였다. 아버지가 모시는 어른이 핍박을 받는 상황이고 보니 어떻게 기입해갈지를 두고 고심하였던 것이다. 알아서 하라는 조로 외면한 김종선은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결과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불러 세운 아내가 녀석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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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직업 뭐라 써냈어?"

“응, 선생님이 아빠 직업 훌륭하시데!”

자초지종은 이렇다. 아빠의 직업란을 비워둔 것을 본 선생님이 ‘왜 아빠 직업난 비워뒀냐’고 물었고, 아들은 ‘우리 아버지 직업 김대중 할아버지 비서에요.’하고 대답하게 된다. 그러자 녀석의 담임선생님은 ‘네 아버지는 매우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이야!’하고 등을 토닥여 주더란다. 김종선은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이 늘 굴뚝같았지만 그러지를 못했기에 마음 한구석으로는 못내 켕기곤 했었다. 하지만 아이 학교 선생님 덕분에 이런 걱정이 간단하게 해결되고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나, 한 15분만 잘라네!

“선생님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시다가도 차에 올라서는 짧은 토막잠으로 피곤을 풀곤 하셨지요.” DJ는 깨우지 않아도 얼마간의 잠을 자고 난 후 기재기를 켜며 개운하다며 눈을 떴다. 토막잠은 그렇게 DJ가 누리는 최소한의 휴식 노하우였던 셈이다. 한편, DJ가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김종선 일가도 청와대 관사로 이사를 갔다. 그런 후에는 밤낮이 따로 없이 ‘2분 대기조’가 되어 대통령의 호출 시에는 2분 내로 대기한다는 자세로 일을 했다.

김종선은 청와대 관사로 이사를 한다. 그의 공식적인 직함도 대통령 경호실 부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때를 계기로 선거에서 패배한 상대 후보들의 수행비서들을 초대한다. 선거에 패배했을 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는 터였기에 그들에게 위로 파티를 베풀려는 것이었다. 그동안에는 이긴 팀에선 아무 연락도 없었다. 하지만 김종선은 선거에서 패배한 팀의 수행비서들을 초청하여 위로 파티를 열었다. 그것이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김종선 그의 형형한 눈빛을 보라! 그도 DJ와 함께한 수많은 장수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유독 ‘김대중의 18년 맹장’이라는 별칭이 따라붙는다. 그 별칭은 오늘도 유효하다. 지난 세월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확인하려면 오늘도 형형하게 빛나는 그의 눈빛을 보면 느낄 수 있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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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3 16:48 2025/01/0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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