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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1/0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1)
    지음
  2. 2005/12/29
    2006년 별 거 있나?(1)
    지음
  3. 2005/12/29
    과학은 원래 놀이가 아니었던가?
    지음
  4. 2005/12/28
    노무현의 사과
    지음
  5. 2005/12/28
    어처구니, 시치미, 그리고 너스레
    지음
  6. 2005/12/24
    황우석 - 오감도(2)
    지음
  7. 2005/12/24
    '대중운동을 목격하다'에 이어(2)
    지음
  8. 2005/12/23
    대중운동을 목격하다(6)
    지음
  9. 2005/12/21
    아. 이 놈의 주민등록번호
    지음
  10. 2005/12/14
    골키퍼...
    지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6년이 밝았네요.

 

여러가지 인사를 생각해봤는데,

그래도 참 이만한 인사도 없는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도 새해 복 많이 받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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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별 거 있나?

진보네님의 [트랙-팩 24 : 2005년 그리고 2006년] 에 관련된 글.

 

 

더도 말고 일주일에 포스트 7개만 쓰자. ^^

 

다들 새해 RSS 트랙백 많이 받으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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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원래 놀이가 아니었던가?

심심한 연구들에 관련된 글 과학은 원래 일종의 놀이가 아니었던가? 그것이 놀이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될 때부터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 무언가 쓸 모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은연 중에 이미 '과학이 기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나는 대학 때 학과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우리 과 교수들을 소 닭 보듯이 했다. 그 중에서 내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교수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은 정확하게 옮길 수는 없지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과학 그거 잘난 체 하는 거 잖아요. 남들 모르는 거 혼자 알면 재밌잖아요. 안 알려주다가 슬쩍 알려주면서 약 올리면 재밌잖아요." 그 교수님은 내가 생물학을 하면 재밌지 않을까라고 아직까지 고민하게 하는 사람이다. 문제가 쉽다면 일부로 어렵게 만들고서라도 풀어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것이 대중의 상식과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규칙 내에서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다. 덧글에서 나타난 반론은 단지 하나의 반론일 뿐이다.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게임을 즐길 자격이 없다. 규칙을 설명하지 않고 결과만을 추려낸다면, 그것 만큼 한심한 일도 없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아무런 의미 없다. 아무런 쓸 모 없다. 그냥 재밌는 거다. 나중에 의미가 생길 수는 있다. 누군가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다. 누군가 그것을 쓸 모 있는 것으로 만들 수는 있다. 누군가 그것을 돈 버는 데 활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순간 그것은 놀이가 아니게 된다. 과학이 아니게 된다. 그림과 음악...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아무 의미 없다. 그리고 그래서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술이 어딘가에 쓸 모가 있게 되는 순간, 그것은 예술이기를 그친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나중에 돈 더 많이 벌려고 월화수목금금금하지 않는다. 영리한 사람은 일찍이 떠난다. 과학에서 쓸 모를 찾는 사람이라면, 답답함을 참지 못해 떠난다.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서 바로 그 '의미 없음', 무의미를 빼앗는다면 그들에게 남는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다. 교수가 되기 위해서 참는다고? 설마. 황우석이 BT가 나라를 살릴 쓸 모 있는 것으로 떠벌리고 다니는 순간부터, 그는 과학자가 아니었던 거다. 학회지는 물론 '그들만의 리그'다. 그것이 '그들만의 리그'라는 사실 자체가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 황우석처럼 '그들만의 리그'를 전국민의 리그로 만들어 버리느니, 차라리 그냥 그대로 남아라. '그들만의 리그'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쓸 모 없다라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는 자랑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아닐까?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왜 재밌고, 자신의 연구가 왜 대단한 건지를. 그것이 얼마짜리다 라는 식이 말고. 그들은 일반인을 상대로 우쭐댈 수 없고 그만큼 그들은 스스로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다. 재미를 잃었다면, 보상을 요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한가지 과학에서 일종의 시기심 역시 당연한 거다. 지나치게 잘난 체 하는 사람이 있다 면 참을 수 없는 거다. 자기가 더 뛰어난 무언가를 해내던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헛점을 찾아내서 거꾸로 약올리기를 하는 거다. 브릭과 과갤에서 있었던 일은 일정정도는 이런 것이다. 그들이 국민들을 위해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사명감에서 논문 분석하고 포토샵으로 닭질을 했던 거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영웅'을 참지 못한다고? 다 시기심이라고? 그래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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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과

지음님의 [어처구니, 시치미, 그리고 너스레] 에 관련된 글.

딱이다. 너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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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시치미, 그리고 너스레

원래 '너스레'라는 단어를 잘 안쓰는데, 아래 글 답글에서 쓰고나서는... 어? 근데 '너스레'가 뭐지? ... 하고는 사전을 찾아봤다. 그런데 정말 재밌는 어원. 너스레[명사] 1.흙구덩이나 그릇의 아가리, 또는 바닥에 이리저리 걸쳐 놓는 막대기. [그 위에 놓는 물건이 빠지거나 바닥에 닿지 않게 함.] 2.남을 농락하려고 수다스럽게 늘어놓는 말, 또는 그러한 말솜씨. ¶너스레를 놓다./너스레를 떨다./너스레를 부리다. 그니까 일종의 함정인 거 잖아? 포장이기도 하고. 크흐. 정확하지 않나? 이건 정말 '어처구니'와 '시치미'에 이후에 발견한 대박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국어선생님인 아버지에게 들었다며 가르쳐준 얘기를 듣고 한동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제법 유명해진 얘기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처구니 시치미 헉. 그런데 찾아보니 둘 다 내가 들었던 것과는 다른, 어쩌면 보다 신빙성있는 해석도 같이 있다. 아. 우리말... 어렵고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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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 오감도

한반도 야경↑님의 [펌] CD굽던 노인] 에 관련된 글.

강호에는 고수가 구름처럼 많다더니, 또 한명의 고수입니다. 아래 소개했던 '대중운동을 목격하다'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황우석-오감도 십일개의 줄기세포가 논문에 등장하오. (논문은 사이언스게제가 적당하오) 제일의 줄기세포가 구라라고 그리오. 제이의 줄기세포가 구라라고 그리오. 제삼의 줄기세포가 구라라고 그리오. 제사의 줄기세포가 구라라고 그리오. 제오의 줄기세포가 구라라고 그리오. 제육의 줄기세포가 구라라고 그리오. 제칠의 줄기세포가 구라라고 그리오. 제팔의 줄기세포가 구라라고 그리오. 제구의 줄기세포가 구라라고 그리오. 제십의 줄기세포가 구라라고 그리오. 제십일의 줄기세포가 구라라고 그리오. 십일개의 줄기세포는 구라인 세포와 재활용된 세포와 그러케뿐이모였소 (다른 사정은 차라리 없는게 나앗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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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운동을 목격하다'에 이어

지음님의 [대중운동을 목격하다] 에 관련된 글.

윗 글에서 꼭 쓰려고 했다가 빼먹은 것... 또 하나의 대중운동. 장귀연씨 글은 글 자체도 재밌지만, 정말 주목해야 할 건 댓글들이다. DC의 폐인들이 참세상을 공격하러 몰려 온 적은 있었지만, 인사하러 온 것은 처음이 아닐까? 확실히 '국민누나'로 오인(??)받은 것도 단단히 한 몫을 한 것 같긴 하지만...ㅋㅋㅋ 하여간에 그들은 적어도 참세상의 황우석 관련 기사는 보고 가지 않았을까? '민중언론' 참세상과 'DC' 과갤이 연결되는 장면이다. '국민누나(어떤 분이시길래...정말 궁금...ㅋㅋ)'의 과갤에서의 활동, 장귀연씨의 눈팅과 리플 달기에 이은 칼럼 포스팅, 이 또한 대중운동이라 불리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네트워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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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운동을 목격하다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는 참 관심이 없었다. 요란했던 광기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다만 익숙한 악몽이 다시 도진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한 이후다. 정말로 이상하고 궁금한 것은 광기 그 반대편에 있다. 어떻게 사람들은 그 광기의 도가니에서 그토록 빠르게 헤어나올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진실이 서서히 드러났기 때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국익'이 최우선일 때 '진실'은 아무런 힘도 없었다. 변화의 단초는 확실히 그 전부터 감지되었던 것이 아닐까? 이른바 '대중파시즘'이 창궐하던 포털과 언론 홈페이지들의 공간 이면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공간과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진보블로그는 광기에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이는 단지 진보블로그만의 얘기는 아니다. 내가 본 다른 여느 블로거들의 공간도 황우석을 지지하는 견해가 더 많았을 수는 있어도, 광기와는 사뭇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공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오래동안 대중을 두려워했던 나는 차라리 희망을 보았다. 그렇게 해일이 거셀 때, 전문기자가 국익을 위해서 진실을 버리자고 노골적으로 선동할 때, 진보적 지식인들이 경악에 찬 목소리로 대중을 질타할 때, 한구석에선 시답잖게 노닥거리면서도 합리와 상식을 잊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중이었다." - 장귀연, 'PD수첩의 용기, BRIC의 전문성, DC과갤의 상식을 사랑한다' 중 "포기하다시피 한 인터넷에서 청년과학자들이 소통하고 활동하고 있었다. ...... 이데올로기나 정치 이런 것과 관계없이 진실을 찾아내고 있었다. ...... 브릭(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에 주목하고, 브릭에서 다시 한 번 정신을 맑게 하고, 그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모습에서 힘을 얻었다. 청년과학자들, 그분들이 영웅이다. ...... 그들이 언론인이고 그들이 지식인이었다." 전규찬, '지식인은 도대체 뭐 하는 작자들인가' 중 "대략 지난 일주일동안은 먹고 살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들까지 모두 제쳐놓고 브릭에 들어가 살았다. 이 사태를 이해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래도 진실이 모든 걸 앞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꽤 있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아니, 소득 정도가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희망이다." 신기섭, '어떤 사태에 대한 짧은 기록' 중 그들은 광기의 흐름에 휩싸이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내뱉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흐름이 뒤바뀌었다. 광기의 흐름 그 자체였던 '대중'과, 그 흐름을 조용히 거스르다 끝내 흐름을 뒤바꿔 버린 '개인'들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일까? 대중파시즘의 진원지라고 지목되었던 것도 인터넷이지만, 이를 뒤엎은 개인들이 모여 있던 곳도 인터넷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퍼져나갈 수 있었던 계기도 인터넷이다. 두 공간에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두 공간의 차이, 그것이 궁금하다. 브릭에서 글을 쓰던 사람들이 그들이 이러한 사태를 대비하고 준비했을리야 만무하다. 광기의 휩싸인 대중들을 굳이 설득시키기 위해서 글을 쓴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그들의 스타일대로 그들이 연구실에서 토론하는 방식대로 얘기했을 뿐이다. 브릭은 원래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수많은 대중에게 생물학 교양과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 교육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디씨 과갤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그곳은 놀이터다. 파시즘이 놀이터 앞에서 멈췄다. 그곳은 바깥 세상과는 무관했냐 하면 그런 것은 또 아니다. 그들은 황우석과 관련된 광기를 놀이감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단지 놀이 이상을 한 사람들이 있다. 다음을 보는 순간, 나는 외쳤다. '대중운동이닷! 정말 오랜만이군.' melona로 살았던 며칠 지난 대선에서 오마이뉴스는 조선일보를 눌렀지만, 브릭과 과갤이 주된 정보의 원천이 되는 지금은 또 다른 국면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 저러한 공간들이 혼재하는 세상에서 지식인, 언론인의 역할, 대중과 전위, 그리고 대중운동의 개념은 다시 정립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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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놈의 주민등록번호

올해는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시작해서 주민등록번화와 함께 끝을 맺는가 봅니다. 올해 초에는 3차에 걸친 '공공기관 홈페이지 주민등록번호 노출 실태조사'를 했고, 지금은 '주민등록번호 사용 실태 조사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올해 초에 한 일이 나름대로 성공적이어서 지금하고 있는 일을 하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요. 이 일이 어떤 일인가 하면요... 행인님이 하는 일과 같은 일입니다. 행인님의 [내가 미쳤지...] 에 관련된 글.

순 데이터와의 싸움입니다. 사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거든요. "주민등록번호는 무지하게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쓰지 않고서도 잘 살 수 있다. 쓰지 말자." 쌓여있는 데이터에서 어떻게 의미있는 데이터를 뽑아낼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쌓여있는 데이터라는 게.... 공공부문 서식 : 16233개 민간부문 서식 : 38544개 공공부문 데이터베이스 : 1077개 설문 대상 민간/공공 기관 : 371개 뭐 대충 이런 식입니다. 서식들은 일일이 확인하면서 주민등록번호가 있는지 없는지를 봐야 하는 거죠. 일일이 웹페이지를 열어서 있나 없나 확인하고 체크하는 작업인데요... 이걸 좀 쉽고 빠르게 해보겠다고 손가락 세 개만 놀려서 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것도 마감에 밀려서 하루에도 몇천건씩 반복작업을 하니까... 아직도 등 근육까지 땡기네요. 지난 주 내내 전화돌리고, 서식보고, 엑셀-엑세스 돌리고... 정신이 하나도... 블로그 못 쓴 핑계를 좀 길게 써봤습니다. 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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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

아다치 미츠루, [진배] 中 오늘이 처음은 아니지만, 문득 생각이 났다. "몇 점을 따든 그 이상의 점수를 잃으면 패배야. 하지만 설령 점수를 적게 따도 점수만 안 주면 지진 않아. 이기는 것 보다 지지 않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포지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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