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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1/19
    나한테서 떠나라!(2)
    봉기꾼
  2. 2004/11/18
    내 미래에 대해 의논하는 일
    봉기꾼
  3. 2004/11/18
    설레이는 만남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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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11/17
    건망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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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4/11/16
    자유주의자가 싫어요~
    봉기꾼
  6. 2004/11/16
    노동자 대회 전야제 - 전노투 독자집회
    봉기꾼
  7. 2004/11/13
    철도 노조원이 되고싶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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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4/11/12
    청와대앞 화염병 투척! 선도투를 지지한다.(1)
    봉기꾼
  9. 2004/11/05
    지금은..(2)
    봉기꾼
  10. 2004/11/04
    뒷모습
    봉기꾼

나한테서 떠나라!

집에 들어와 잠시 밥을 먹으며 케이블에서 해주는 드라마를 봤다.

왕꽃선녀님! 언젠가 누렁님 블로그에 이 드라마와 관련된 글이 있었다.

쨌든 초혼인가 초원인가 하는 사람한테 붙은 귀신한테 이제 떨어지라고 했다.

그걸 보면서 나..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게 살며시 말해본다. 소리내어..흐흐~

"아프기 싫다. 나한테서 떨어져라! 감기, 두드러기, 알레르기.. 뭐 이런 것들 다!"

요즘 몸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되는 상황이 올까봐 두려워진다.

건강해야겠다. 아푸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나 이제 운동도 하려고 생각중이다.

지난 1년동안 감기 한번 안걸렸다고 자랑했건만 오늘은 머리가 뽀개질 것 같다.

 

나한테서 떠나라! 떠나라! 우쒸~ 이제 아픈것도 지겹다. 짱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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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래에 대해 의논하는 일

내 미래에 대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사람들과 함께 얘기한다는 건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운동의 대의를 고민하고 활동의 방향을 함께 잡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아마 혼자 있었다면 무지무지 막막해했겠지?

어쩌면 되도 않는게 시건방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운동하는 삶을 계속 할 생각을 갖지 못할 수 도 있었겠지? 

 

그래서 주변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 중요한거구나를 다시한번 깨닫는다.

그래서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건지 다시금 절감한다.

 

고맙다. 고맙다. 그리고 든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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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이는 만남들..

헤헤~ *^^* 오늘은 맘 설레는 만남들이 있던 날이었다.

 

한 명은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관련된 사람이었다. 

어떤 말을 해야하나? 나는 어떻게 비춰질까? 등등

이런저런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만난 분이었는데

인상도 매우매우 좋고 이것저것 친절하게 말씀해주셨다.

아무리 친화력이 좀 있는 나이더라도 초면은 어색하기 마련인데

전혀 어색하지 않게 서로 얘기할 수 있게 만들어주셨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주의할 것도 은연중에 흘리시는 것 같고.. ^^

쨌든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사람들인데 나 역시 좋은 인상으로 남길..

함부로 시건방 떠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

성실한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 열정을 가진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다!

 

또 한 명은 몇년 전에 알게 된 분인데, 호감이 가는 분이다.

하하~ 그렇다고 뭐 거시기 한 건 아니고 내가 고등학교때

대머리 윤리선생님을 좋아했던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오늘 갔던 곳에 갈때 마다 한번 정도는 마주치겠지 했었는데

단 한번을 못 마주치더니 오늘은 인사도 나누었다.

제대로 인사했어야 했는데 본의 아니게 제대로 인사를 못했다.

사실은 첨엔 그분이 그분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랬었다. 안타깝다.

헤헤~ *^^* 담엔 눈마주치면서 인사해야겠다. 프힛~ ^^v 

쨌든 내게도 아직 설렘이란 감정이 있어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물론 그 이외 만났던 분들은 그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누군가와 얘기가 하고 싶었을때 말상대가 되어주셨던 분들이 있고

올만에 만나 밥사주시겠다고 하셨던 분도 있고(예의상 멘트같지만..)

참 착하게 생긴 사람이 착하게 행동한다 싶게 했던 사람도 있었고..

 

쨌든 오늘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살아있구나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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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내 머릿 속의 지우갠가 내 기억 속의 지우갠가 하는 영화처럼 나도 병일까?

요즘들어 건망증이 부쩍 심해졌다. 한때는 정신을 놓고 있어 그런가부다 했는데

이렇게 심각히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에 생존의 위협마저 느껴진다.

아직 창창한 나인데.. 나름대로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진단내려보지만! 아니면?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설마 늙어서 그런건 아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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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가 싫어요~

난 요즘 자기 좋으면 하고, 자기가 싫으면 안하는 자유주의자가 너무나 싫어졌다.

예전엔 좋았는데 싫어졌냐고? 그건 아니고, 더욱더 싫어졌다는 뜻이다.

말만 까고 실천은 안하는! 투쟁이 머리로만 하는 줄 알고 있는 그런 사람!

대략 동지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지대로 밥맛없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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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대회 전야제 - 전노투 독자집회

 

더이상 투쟁말고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얼마전 비정규직 철폐! 파견법 개악 저지!를 외치며

추운 감방으로 들어간 동지를 생각하며 힘차게 투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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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노조원이 되고싶다.

 

얼마전 기차를 탈 일이 있었다.

사실 난 낭만 따위를 따지며 기차를 타는 것보다는

값싸고 시간이 덜걸리는 버스타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언제나 그렇듯 별 감흥없이 음악 정도가 있어주면

좋겠다 생각하며 겉옷을 벗고 눈을 감고 잠들려할때

앞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승무원 아저씨가 있었다.

흐흐~ 사실 아저씨라기엔 나보다 어려보였지만! ^^

어디까지 가냐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하면서

내눈은 그 승무원의 가슴 왼편에 꽂혀버렸다.

좀더 정확히 "철도를 국민에게!"라는 구호가 적힌 팩에!

그리고 순간 내가 희망했던 철도노조원의 꿈이

꾸물꾸물 되살아나며 나를 갈증나게 만들었다.  

 

언제부터일까? 왜 그리고 하필 철도일까?

하지만 그 물음을 하기전에 스스로에게 물어야할 것이 있다.

장기적인 삶 전체에서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삶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 안에서 투쟁하는 삶을 쉽게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물어야 한다.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의 상태를 살폈다.

내 삶을 반추해보건대, 뭔가를 간절히 원하며 살아왔던가?

대학을 갈때도 다들 가니까, 가야하니까 갔었지

뚜렷한 목표가 있다거나 계획이 있다거나 한것은 아니었다.

연애를 할때도 미친듯이 간절함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도 책임감으로 운동한 적이 없었다면 뻥이고!

 

근데 지금은 어떤 것일까? 그냥 일자리가 필요한 것일까?

철도청에서 일한다는 타이틀을 가지고 싶은걸까?

정복을 입고 싶은걸까? 기차를 타고 싶은걸까?

어줍잖은 낭만 따위를 품고 환상을 가지고 있는걸까?

 

지금 나는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나를 검열(?)하고 있는 중이다. 검열.. 검열..

타이틀 때문이거나 낭만따위를 생각하고 있는거라면

철도노조원이 되겠다는 생각은 아예 지금부터 않겠다!

사실 솔직히 서울이 아닌 조용한 철도역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적이 있기는 있었다.

 

어쨌든 난 철도청이라는 이름때문에 가고싶어하는 건 아니다.

철도청이 아니라 철도노조에서 활동을 해보고 싶은 것이고

노조 상근자가 아니라 일반 조합원 활동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02년도였을까? 철도 민영화 저지투쟁을 힘있게 하던 그때!

난 설날 귀향선전전을 하고 나서 서울역에 있는 노조사무실을

가서 노조원 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친절하게 이것 저것 설명해주신 그분 얼굴이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분의 열의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철도라는 공간에서 활동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 민영화저지 공대위에 결합하면서 용산역 사무실에도

몇번 들락날락하면서 더욱더 철도노조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캠선배가 철도노조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언젠가 '언니와 같은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얘기를 했던 것도 같다.

가까운 선배도 나중에 철도노조에 같이가자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나눴던게 바로 02년도였었다.

그때부터 나는 막연히 철도라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곳에서 투쟁하면 사는 삶을 꿈꿔왔는 지도 모른다.

심지어 얼마전 있었던 운수3사 결의대회에 갔을때는

철도노조 대오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면서 서성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직은 나를 좀더 검열해야한다. 그렇게 신중해야 한다.

혈기만 왕성한채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활동할 수 있는 곳이 현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감잡을 수 있다.

건방지게 들어가자마자 자본주의, 세계화, 비정규직 등의

얘기를 하면서 잘난척 할 수 있는 곳이 현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몇년은 저 바닥에서 뒹굴면서 고된 노동을 해야할 지도 모른다.

한 몇년은 학출이라는 것조차 말하지 못할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면서 불안정할 수도 있다.

낭만쯤에 빠져있던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가 나중에야 허우적 거릴수도..

 

그래서 난 장기적인 내 삶의 계획을 위해 고민해야겠다.

철도에 들어갈 수 있겠된다면 어떻게 활동할지도 고민해야겠다.

어떤 얘기를 하면서 노동하고 투쟁할 것인지를 계획해야겠다.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어찌되었든 나는 현장에서 대중들과 부대끼고 싶다.

어찌되었든 나는 치열하게 노동하며 살아가고 싶다.

어찌되었든 나는 내 신념을 지켜가는 투쟁을 하고 싶다.

어찌되었든 나는 철도라는 공간의 활동가이고 싶다.

 

오늘 나에게 전화를 했던 사람은 내 심정을 이해 못할꺼다.

그 사람이 했던 사소한 말 한마디에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내 성격상 급하게 그리고 무턱대고 뭔가를 결정하진 않겠다.

적어도 3개월 정도는 이것저것 정리하고 계획하며 보내야겠다.

정말 깊숙히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후회없이 결정하고

그리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과정을 밟아야겠다.  

 

하지만 나! 정말정말로 철도노조원이 되고 싶다.

그 현장에서 노동하고 투쟁하며 살고 싶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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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앞 화염병 투척! 선도투를 지지한다.

"노동법 개악 저지", 정부종합청사 화염병 투척 
화염병 10여 개, 유인물 배포 구호 외치다 2명 연행
비정규노동법 개악에 분노, “노무현정권은 역사의 심판을 받으리라!”
 
 

윤태곤 기자 peyo@jinbo.net
 


정부종합청사, 화염병 투척  

오늘 아침 8시 20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입구에서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에 분노하는 4명의 학생들이 화염병을 투척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벌인 학생들은 “비정규직 철폐하고 노동법 개악 저지하자” “비정규 노동법 박살내고 민중 생존권 쟁취하자” 라는 구호를 외치며 10여 개의 화염병을 정부종합청사 입구에 투척했다.

학생들은 연행되면서도 “비정규 노동법 개악되면 다 죽습니다”라고 외치며 ‘비정규 노동법개악 저지를 위해 투쟁하는 학생들’ 명의의 유인물 30여 장을 배포했다. '비정규직노동법 개악 시도한 노무현정권은 역사의 심판을 받으리라!' 제하의 유인물 배포를 통해 “즉각적으로 비정규노동법 개악 시도를 중단하고 국무회의 의결을 무효화하라!” “모든 비정규직을 즉각 철폐하라!”며 “만일 이러한 마지막 경고를 무시할 경우 노무현정권은 스스로 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오늘 화염병 시위는 작년 11월 노동자대회 이후 1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와 비정규직 문제로 김주익, 이해남, 이용석 등 열사국면 당시 광화문 한복판에서 화염병 시위가 벌어진 이후 정확히 1년 만에 ‘비정규 노동법 개악 저지’ 구호와 함께 다시 화염병이 등장했다.

한 학생이 화염병을 던지고 정부청사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하고 노동법 개악 저지하자” “비정규 노동법 박살내고 민중 생존권 쟁취하자” 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화염병을 던진지 약 3분 후 연행되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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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종합청사 앞 시위 현장에서 배포된 유인물 
 비정규노동법 개악 시도한 노무현 정권은 역사의 심판을 받으리라!

 

지난 11월 2일, 노무현 정권은 수많은 노동자와 민중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위 비정규직 보호법안(파견법 개악안, 단시간제 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여 통과시켰다. 우리는 이러한 노무현 정권의 작태가 이 땅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여 사람의 생존과 자본의 이윤을 맞바꾼 천인공노할 만행이라고 규정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노동법 개악은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아니라 노동자 살해법안일 뿐이다.


지난 IMF 경제위기 이후 빈곤의 악순환에 시달리며 생존파탄의 고통을 받아온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전체 노동자들의 70%에 육박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때부터 소위 5대 차별 시정이라는 이름 아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시정하고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이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임이 천하에 낱낱이 밝혀졌다. 정규직 노동자들을 집단이기주의자로 몰아가며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작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열시켜 노동자 민중이 집단적으로 정당한 권리를 위해 저항할 수 있는 길을 원천봉쇄하는 효과를 노려왔다.


이번 비정규노동법 개악안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오로지 자본의 이윤을 위해 사람의 생존파탄과 빈곤의 악순환을 더욱더 고착화시키려는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노무현 정권을 우리는 좌시할 수 없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로써 절규하며 반대했음에도, 작년 수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음에도, 추진되는 비정규노동법 개악은 노무현 정부가 사람의 생명을 파리목숨보다도 덜 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강력하게 노무현 정부에게 경고한다. 즉각적으로 비정규노동법 개악 시도를 중단하고 국무회의 의결을 무효화하라! 그리고 모든 비정규직을 즉각 철폐하라! 만일 이러한 마지막 경고를 무시할 경우 노무현 정권은 스스로 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이번이 마지막 경고다! 즉각 비정규노동법 개악을 철회하고 파견법과 비정규직을 검증 가능하고 불가항력적이며 돌이킬 수 없도록 폐기하라!


노동해방진군 18년 2004년 11월 12일
비정규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해 투쟁하는 학생들 
 
 
 
2004년11월12일 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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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지금은 나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싶다.

그래서 지금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요구하지 않는 섣부른 충고나 조언은 듣고 싶지 않다.

그렇게 지금은 나를 깊이 볼 수 있게 그렇게 놔둘꺼다.

지금은 남에 대한 배려보다 나를 배려하는 그런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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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나는 내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이나 옆모습이 좋다.

뭐 그닥 잘생기지 못한 탓도 있지만 나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으니..

 

특히, 이사진을 보면 뒤에서 찍었던 사람은 무얼 담고 싶었을까 싶다.

표범인가 자칼인가 하는 놈을 보며 신기해하는 나를 담고 싶었을까? 

혼자 앞서 가면서 씩씩한 척 하고 싶었던 나를 담아내주었을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당시 내맘을 달래주려고 했었을까?

얼마전 친구놈 홈페이지에 가보니 이 사진을 퍼다놓았었다. 

그 친구는 또 이사진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었을까?

 

그냥 문득 궁금해진다. 1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2003년 과천에서의 겨울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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