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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대한 이런저런 잡생각들.

얼마전 어떤 기자회견(그냥 대충 넘어가죠 -_-)에 갔다가 약간 기묘한 느낌을 받고 돌아왔다. 이래저래 아는 얼굴들이 많은 자리였고 그래서 열심히 기자회견을 구경(orz 저 원래 이런년이에요. 뭐든 '구경'하는 자세..)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남성활동가들이 별칭을 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 실제로 내 주변에도 별칭을 쓰는 남성활동가들은 그리 많지 않다. 별칭이 없는게 아니라, 별칭을 활동명(활동할 때 본명을 대체할 정도로 사용하는 경우..정도)으로 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별칭을 많이 쓰더라도, 공식적(?)인 소개때는 본명을 쓰는 경우도 있고.. 그게 차별적이라던가 뭐 그런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남성활동가들이 별칭을 잘 쓰지 않는 어떤 이유가 있나 궁금한 것이다. 정말 자기 맘에 드는 별칭을 찾지 못해서?..라고 하기에는 별칭의 사용 비율이 너무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나는 별칭을 쓰기를 고집하는 편이다. 형식적인 이름이 필요한 경우(공문 등을 작성할 때)엔 가명을 쓴다. 솔직히 나는 내 본명이 싫다. 물론 이유없이 그냥 싫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뭐 굳이 밝혀야 할 필요는 모르겠고;;) 레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면서 많이 받았던 질문은 1. 무슨 의미에요? 2. 왜 써요? 였다. 1번은 몇 번 반복해서 얘기했었는데 이제는 그 의미가 나한테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고, 2번은 답변의 내용을 계속 고민하다보니 이젠 슬슬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별칭을 쓰는 이유는, 내가 활동가로서 온전히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별칭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나는 활동가로서, 그리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연대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신뢰를 주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인지되기를 원한다. 누군가 나를 '레이'라고 부르는 것이 내게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물론 '활동가'와 '대중'을 쪼개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활동을 시작하고, 그리고 활동하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본명을 쓸 때, 내게 떠오르는 것들은.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돈벌이도 되지 못하는 일이나 쫓아다니며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님 친구분들에게 자랑거리도 되지 못하는 철없고 골치거리인 동생보다 집안에 기여하지 못하는 못난 첫째... 로 낙인찍혀있는 가족 안에서의 내 위치이다. 아버지가 첫째라고 무척 고심하면서 지으셨다는 내 이름이, 지금 내게는 무척 부담스럽고 큰 족쇄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본명을 불렀을 때 주는 여성적인 느낌과 지금의 나의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평가들은 내가 별칭을 더 고집하게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부모님의 바람을 담은 것이었다면, 지금의 내 별칭은 온전한 내 바람을 담은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런 내 사소한 고민이, 만약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나처럼 별칭을 쓰는 많은 활동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건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게 정말 내가 느낀대로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라면 그건 더 서글픈 일일 것이다. 그냥.. 그렇다. + 지금의 별칭이 온전한 내 바람을 담은것.. 이라고 했지만 내 별칭에 대해 앞으로 내가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노력해야겠지. 적어도 내가 '레이'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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