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펌] 최병수 // 그리고..

2000년인지, 2001년이었는지. 암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큰 도로에 차가 없는, '차없는 거리' 행사가 열리던 지구의 날. 그날 최병수씨(호칭이 어색하지만....)는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며 펭귄 얼음 조각을 깎았다. 옆에는 문정현 신부님이 함께 얼음을 붙잡고 있었다. 더운 날씨, 보기만 해도 시원한 얼음 덩어리를 조각하고 있으니 구경꾼도 꽤 모여들었다. 최병수씨의 걸개 그림을 걸며, 따가운 햇볕에 얼굴이 탈까 짜증스러워 하면서 얼음을 붙잡고 있던 그날이 나는 이름만 듣던 최병수씨를 만났다.

 

'쓰레기들', '성장과 야만', 그리고 새만금의 '하늘로 오르는 배'와 장승들.  내가 지구의 날에 조각하는 얼음을 붙들고 있었던 것 처럼, 환경운동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때 최병수씨의 그림은 늘 내 주변에 걸려있었다. KEY(아는 사람은 아는 그 KEY. ^^;)의 주변을 떠돌며 다닐때 처음 그 이름을 알게 되었고, 부안의 작업공간에서 새만금 갯벌에 세워지기 전의 장승을 만나기도 했다.

 

사실, 최병수씨에 대해 어떠한 감정이나 판단을 가질만한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최병수씨의 작품이 미치는 효과 안에서 그냥 떠돌던 사람중의 하나였고, 그런 사람들이란 결국 그 개인의 의지가 없을 때는 그 작품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가지지 못하는 먼지 보다도 못하는 존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최병수씨가 아프시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글을 읽었다. 글을 읽으면서 나는 예전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작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내 희망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런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들중 하나가 아프단다. 예전의 그 희망과 기대를 최병수씨가 준것은 아니었지만, 아프시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 희망과 기대를 소홀히 해왔던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래 퍼온 글을 붙인다.

 

... 이 얘기의 끝이 해피 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최병수 형이 위암이란다. 그는 운동판에서 이름 높은 사람이다. 걸개그림을 처음 그려 예술로서의 형식과 내용의 기초를 잡은 이이고, 지난 80-90년대를 통해 한국사회운동그룹의 주요한 행사마다 걸개그림과 설치미술을 가지고 헌신한 운동가이다. 그는 또한 리우회의와 요하네스버그 세계정상회의, 교토와 본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에 걸개그림과 얼음펭귄을 가지고 지구인들에게 지구를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환경운동가이다.

그가 아프다. 그는 화가이며, 설치미술가이고, 민주화운동가, 환경운동가이기 전에 청춘을 사회를 위해 바친 피 뜨거운 청년이었다. “에 이 안 하긴, 못 한 거지.” 씨익 웃으며 “결혼 왜 안해?” 묻는 말에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다는 말에 붙인 그의 답은 결혼 못 한 노총각이란 거였다. 언제나 아이디어가 끓어올라 같이 일하는 활동가들이 도리어 지칠 정도로 열정적이던 이 노총각의 최근 몇 년은 새만금을 위해 바쳐졌다. 무주에 미술공방을 차리고 작업을 시작하여, 우리가 새만금하면, 떠오르는 저 유명한 망둥이 솟대와 허공에 뜬 폐선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걸개그림이라는 현장성과 대중성, 역사성을 아우른 미술자산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그 큰 그림들을 가지지 못 했을 것이고 한국사회운동진영의 그 많은 행사들은 썰렁하고 썰렁해서 감동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그가 위암 1기도 2기도 아니고 3기 초란다. 나는 늘 그의 무주 공방에 놀러가겠다고 말했지만, 부도수표만 날려온 지 3년이 된다. 그가 병자리를 털로 일어나 무주에 함께 가기를 바란다. 그가 손에 망치와 끌을 잡고 다시 목어를 깍아 새만금 갯벌에 올리고, 그리하여 그 목어들이 은린을 번뜩이며 수문이 터진 새만금 방조제를 타넘어 서해 깊이 먼 외해로 가기를 바란다. 다시 그가 붓을 들어 언젠가 그리겠다고 말하던 세계의 환경운동을 상징할 큰 그림 하나를 끝내 그려주기를 바란다.

빡빡 스님머리에 해가 이운다. 최병수를 돕자. 절도 돈도 없는 열정의 운동가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일은 더 좋은 사회와 환경을 만들길 원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더 좋은 일이다.

최병수 / 걸개그림을 만든 목수출신 화가. 운동가. 현재 위암3기 판정 받고 한남동 순천향병원(본관 620호) 입원중.
10월 1일 수술. 수술비 1500만원. 후원계좌 농협 539-02-225650 최병수


아래의 최병수에 대한 조금 더 상세한 기록이 있는데, 98년 11월에 쓰인 것이라 그 이후 기록은 미비. 그 뒤 그는 환경운동가로서 살았다. 2000년부터 1년 반을 환경연합에서 미술홍보기획일을 했고. 이후 무주에 내려가 새만금을 주제로 설치미술을 계속해왔다. 그 사이사이 그는 주요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형상화해왔다.




걸개그림작가 최병수

‘87년 독재권력의 호헌론에 철퇴를 가한  6월 민주항쟁의 촉발점이었던 이한열
군 사망사건을 형상화한 『한열이를 살려내라』와, 리우환경회의 당시 세계의 이
목을 집중시켰던 『쓰레기들』이라는 걸개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최병수.

최병수는 환경운동연합 홍보지도위원으로 일하면서 많은 환경관련 작품들을 발표
했다. 최근 2년간 환경련의 캠페인 현장에서 최병수의 작품들은 캠페인이 전달하
고자 했던 메시지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주요한  매체로 이용됐던 것. 지난해
말 교토기후변화당사국회의 당시 리우회의에  이어 최병수의 작품인  ‘얼음으로
조각한 펭귄’은 자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생태계의 위기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또 다른 유명한 작품으로, 이제는 환경련 반핵
캠페인의 상징처럼 자리잡은 『성장한  야만』이라는 작품이 있다.  돌도끼인 듯
싶어 들여다보면 도끼의 뾰족한 부분이  대륙간핵탄두미사일이다. 돌도끼를 쓰던
석기시대의 야만과는 달리 이제 문명화된 현대의 야만은 그 돌도끼가 ‘핵도끼’
가 되었다는 강렬한 풍자를 담은 것이다. 그 밖에도 쓰레기재활용을 강조한 『요
구르트걸과 깡통맨』 등 다양한 주제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제작된 많은 작품들
이 환경운동의 현장에 등장했다. 그 모든 것이 최병수의 작품.

최병수는 지난 여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미술교육과 환경교육을 통합한 제  1회
열린문화학교를 열었다. 이곳에 참가한 어린이들과 함께 작업한 『우리는 당신들
을 떠난다』를, 오는 11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세계환경회의 NGO 대회에  가
지고 갈 걸개그림의 하나로 정해  두었다. 환경오염과 파괴로 더  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된 생태계의 형제들이 포경선의 작살을 맞은 고래 등을 타고 우주로
피난가는 그림이다. 달나라로의 망명이 될지  더 먼 우주로의 항해가  될지 그건
고래와 아이들만이 알 일이다.

고래 등에는 동물들, 꽃과 나무,  그리고 함께 어울려 노는  아이들이 타고 있다.
참으로 무서운 ‘진실’은 고래 등에는 어른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순수의 눈이
발견한 세계의 오늘에 대한 가장 엄정한 진실, 그것은 오염된 지구를 만든 건 어
른들이라는 진술인 것.

우주의 보석, 지구라는 반지

이 그림과 함께 최병수가 요즘 열정을 쏟고 있는 그림은 ‘지구링’이다. 지금까
지 확인된 사실로는 인간이 살 수 있는 별은 지구밖에 없다. 그러나 그 하나뿐인
지구를 우리 인간은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그 답은  최병수가 90년에 그려 공
해추방운동연합의 4월 지구의 날 행사에서 발표한 뒤, 92년 리우환경회의에 가져
가 타임지 표지에 실리는 등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아 유명해진  『쓰레기들』을
보면 안다. 컵라면 봉지와 같은  일회용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진 지구의,  그것은
우리 후손들의 무궁한 생존의 터인 지구를 우리 세대가 일회용으로 취급하고  있
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최병수는 『쓰레기들』에서 한발 더 나갔다. 지구는 우주의 보석이며 우리에게는
이 보석과 함께 살 자격이 있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은 우리는 이 반지
를 낄 자격이 있는가로 치환된다. ‘지구링’은  그저 하나의 그림이기를 거부한
다. 그림에 담겨진 의미가 ‘지구와 나’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
다.

최병수의 ‘지구링’ 기획은 우선 형태적 특성을  주목한 것이다. 우주를 상징하
는 둥근 원, 그것이 링이다. 그리고 그 링 위에 나뭇잎이나 물결 등 자연, 생명의
시스템을 형상화한 받침이 떠받치고 있는 건 바로 우주의 보석, 푸른 지구다.
링 내부의 둥글게 빈 공간은 또 하나의 무대이다. 이 무대에 여러 사람이 슬라이
드로 투사될 수 있다. 만일 그가 친환경경인 삶,  지구의 항존(恒存)을 위해 일하
는 사람이거나 숲정이의 소나무, 그 아래 핀 쌀밥꽃, 그리고 바다의 돌고래나  밀
림의 고릴라일 때, 링 위의  푸른 별 지구는 더욱 푸른  빛으로 휘황할 것이지만
아마존을 벌목하고 고무플랜테이션을 위해 칼리만탄을  소각하는 사람이거나, 생
각없이 새만금 간척을 결정하고, 동강댐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투사될 때 링 위
의 푸른 별 지구는 신음하며 핏빛을 띨 것이다. 이 밖에도 ‘핵무기가 열리는 쇠
나무’, ‘죽음의 유령을 대기 속으로 풀어놓는 공장의 굴뚝’, ‘남북극이  녹아
들어가는 나침반’ 등 환경파괴를 고발하는  미술작품들을 투사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환경파괴적 역사 일체를 화상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

지난 90년  로저 월터스(Roger  Walters)가  독일 통일을  기념하여 연   벽(The
Walls)과 같은 대규모 공연을, 지구를 위해 우리가 반성하고 행동할 때가 되었다
는 주제로 벌이고자 하는 장기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지구링’은 우리 인류가 ‘반성의 세기’에 도달했다는 점을 알리려는  기획이
다. 새로운 천년의 시간 속에서도 우리와 지구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천년
을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정언명령이 지구라는 우주의 보석반지를 통해 울
려나온다.
“그대는 나를 낄 자격이 있는가?”

목수화가 최병수의 현장미술론

최병수가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한 목수출신 화가라는 사실은 이미 유명인이 된 그
의 기사가 몇번이고 보도된 탓에  그다지 새로운 건 아니다.  목수에서 화가로의
변신 또한 그의 뜻이였다기보다 홍대생들이 그리는  진달래꽃 벽화 작업(상생도)
에 쓸 작업받침대를 짜주러 갔다가 “왜 진달래는 있는데 개나리꽃은 없어”하고
물었던 탓이다. 학생들은 “그럼 아저씨가 직접 그려보세요”라고 권유했고 감히
북한의 국화인 진달래꽃을 그리는 이적성 표현물 작성의 죄목으로 경찰에 붙들려
갔다. 형사는 “난 목수요”라고  밝히는 최병수에게 ‘목수가  그림을 그렸다는
건 앞뒤가 안 맞으니  화가로 하겠다’며 그를  관제화가(?)로 데뷔시켰다. 지난
86년의 일이었다. 이 사건은 그를 평범한 목수에서 민중미술가로 변화시켰다.
이 사건 뒤, 그는 민중미술을 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어깨 너머로 공부도 하고
혼자 조각도를 들고 목판화를 깍는 등 독공을 시작했다. 6개월만에 첫 작품 『철
새』를 조각해 냈다. 철망으로 나뉜  땅을 벗어나 열린 하늘로  날아가는 철새를
통해 분단을 비판한 목판화였다.

선반공서부터 식당보조, 공사판 잡역부, 용접공 등 열 댓가지 직업을 가졌던 노동
자 최병수를 화가로 만든 건, 바로 폭압적인 독재권력이었고  그 뒤로 그의 삶은
운동하는 것이었다. 단 한번도 운동의 현장과 현장미술을 떠나지 않았다.
몸으로 체득한 현실인식이 그를 철혈의 운동가,  80년대와 90년대 커다란 시국사
건마다 걸개그림을 내거는 현장미술가로 만든 원동력이다. 남북이 통일되고 노동
해방된 세상이 와도 지구가 병들면 말짱 도로아미타불이란 걸 그는 안다. 그래서
환경운동은 그에게 변신이 아니라  운동의 확산이며 심화다.  최병수의 운동하는
그림은 그래서 늘 현장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인류는 지구와 공존할 자격이 있는가

최병수는 고양시의 한적한 마을의 한 귀퉁이에 작업실을 열었다. 6백평이나 되는
땅을 공짜로 빌려준 땅주인은 그의 작품세계를  인정하고 후원하는 사람이다. 그
의 작업실은 쓰레기장 같다. 그 쓰레기들이 그의 작품재료다. 깨진 독에서는 개구
리밥이 떠있고 개구리가 산다. 철망으로 만든 꽃에 핀 꽃열매는 사과탄이고 수도
꼭지에 매달린 전구에서 불이 들어온다.

그는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 한 원로평론가에게 “목수 출신”이라고 답했다.
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건 지식이지만 그는 고단한 삶에서 더 많은 걸 배웠다. 가
장 중요한 배움은 머리와 마음을 열어두는 법이다. 열린 마음과 머리만이 새로움
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열림의 자세는 그가 그  어떤 것도 자기 것으로 소유
하지 않은 완전히 가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는 가난하다. 걸개그림이 워낙 대형이다보니 제작비가  많이 들고 그의 수중에
남는 건 거의 없거나 늘 밑진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이제 국립현대미술관과 뉴
욕의 아티스트 스페이스 미술관에 걸려있다. 또  그가 처음 시도한 걸개그림이라
는 장르는 현대민중미술이 개발한 주요 매체라는 평가를 받으며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에 그의 이름과 함께 올라있다.  그러니 이제 그를 성공한  미술가로 불러도
될 법하다.

세상의 이런 평가와는 무관하게 최병수의 작품이 지난 80~90년대 우리 사회의 반
독재 민주화운동기에서 차지하는 중량감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다. 특히 90
년 이후 치열한 사회의식을 인류와 지구의  차원으로 확대심화한, 환경을 주제로
한 그림을 통해 던지는 이즈음의 질문들은 우리로 하여금 최병수라는 화가에  대
해 또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는 지금 지구적 생존을 위한 발성중이다.
“우리는  이  지구라는   보석을 손가락에   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