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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일기] 8월 21일, 8월 22일

이 글은 피해자와 함께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을 하고 계시는 권수정 피해자대리인께서 작성하였습니다.

 

8월 21일 일요일 농성 81일

 

1.

마리 농성장에서 점심때 콩국수를 해먹었다며 동지들이 국수와 콩국과 김치와 그릇들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배달을 왔다. 점심먹고 앉아만 있었더니 아직 소화되지도 않았는데 돈 주고도 사먹지 못할 제대로 만들어진 콩국수를 더운날 부러 들고오신 동지들 마음이 아까워 배두들기며 다 먹었다. 다먹고 나니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여 청계광장, 다리밑까지 산책을 했다.

 

근처에 아는사람 돌집이 있었다며 충남전선 김태석동지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와서 놀다갔다. 위니아 사업장에서 정리해고된 동지의 아이들이 그늘없이 노는것을 보니 더욱 배부르네. 어려운 상황에서도 홀로 싸우며 우리 농성장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김태석동지, 아이들도 아빠가 고맙고 자랑스러울 거예요. 모처럼 햇살 좋은 청계천 개울에 뛰노는 동지와 아이들이 부시다.

 

2.

계획이 없다가 오후에 공동투쟁단 동지들이 우리 농성장으로 와서 7시부터 ‘전국 목회자 정의평화 협의회’ 주관의 기도회를 했다. 준비하는데 잠깐 비가 스쳐 걱정했는데 다행히 비가 오지는 않았다. 박승렬목사님이 진행하고 박덕심 목사님이 ‘정의사회로 가는 길목’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해주셨다. 출애굽기 3장을 읽었는데 주께서 ‘내가 그들의 고통을 안다’고 했다는 말이 마음에 꽂힌다. 정말요?

 

프로그램에는 예배를 진행하는 순서가 다 있는데 찬송가를 포함 여러 가지 순서를 생략하고 약식으로 진행했다. 주최하시는 동지들이 판단하기에 시간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러지 말지.

 

기도회후에 잠깐 무키무키 만만수의 공연시간인데, 역시 시간이 없어 그런가. 맛뵈기처럼 쬐금만 하고 갔다. 무키무키와 만만수의 노래는 중독성이 강하다. 언제한번 다시 폭발하는 공연을 보고싶다.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넘넘 반가왔어요. 또오세요! ^^

 

스크린을 설치하고 KBS스페셜로 제작된 쌍차 치유의 기록을 보았다. 10년 20년을 다닌 직장에서 어느날 갑자기 내쭟겨야 하고, 그것에 동의할수 없어서 공장안에서 용역깡패와 경찰의 폭력에 맞선 투쟁을 77일을 하고도 정리해고된 사람들, 그 결과 구속된 사람들, 그결과 다른 직장에 취업할수 없고, 무급휴직이라고 해고된 것도 아니고 고용된것도 아닌 좀비가 된 사람들, 부모와 함께 폭력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모두 공장으로 돌아가 아침에 출근하고 최근후 가족들과 저녁밥상에 둘러앉아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먹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8월 22일 월요일 농성 82일

 

1.

지난밤을 함께 농성해주신 사노위 동지는 일찍 가고 지회 조합원들이 올때까지 조용한 농성장을 혼자 지킨다.

도무지 납득할수 없고, 이해할수 없더니, 왜 하필 내가 두번씩이나 금속노조 조직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나에게 덤벼드는 천박한 2차가해를 감당해야 하는걸까. 억울하더니.

언니의 대리인이 되려고 그랬구나. 나는 피해자의 마음을 잘아니까. 나를 바라보던 가해자를 지지하는 자들의 몸짓과 태도와 눈빛, 너는 성폭을 당한것이 아니라며 그들이 나에게 쏟아내던 분노, 마치 순교자 같던 가해자의 태도, 그 모든 것을 나는 잘 아니까 이 싸움 잘하라고 내가 그런 경험을 했구나.

 

나를 짓밟아 통째로 뒤흔들던 아픔, 자존심이 상해 말할수 없고, 부끄러워 말하기 싫던 그 아픔, 세상에 홀로 버려진것 같던 막막함.

 

그게 무슨 성폭이냐고 되묻던 말, 니가 정파적인 이해관계로 멀쩡한 사람을 성폭력 가해자로 몰고간다는 말, 2차가해가 뭔지 나는 모르는데 모르는 것도 잘못이냐고 나를 보던 눈빛, 남성동지듩은 잘 모르니 친절하게 설명해줘야 한다는 말, 낮은 목소리로 예기하라던 말, 너의 입장은 뭐냐는 끊임없는 질문, 언제까지 할거냐는 말, 우리 조직의 한계가 있다는 말, 그래도 많이 좋아진것라고 하던 말, 어떻게 도와줘야 하냐고 되풀이 해서 물어오던 말, 왜 겨우 그정도에 아파하냐는 말, 그래도 너는 잘 할수 있을거라고 하던 말,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쩌렁쩌렁 울리는 고통이 되던지.

 

때로는 단한명의 여성노동자의 고통이라고 마땅히 존중되어 세상을 흔들어야 하다는 것을, 언니가 이 농성장에서 겨울을 나게 할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는 아침,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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