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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성희롱·부당해고 ‘하청 여성노동자’ 문제 정치권이 나서야

[왜냐면] 성희롱·부당해고 ‘하청 여성노동자’ 문제 정치권이 나서야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

 

 

어느덧 80일이 넘었다. 화려한 불빛과 웃음이 넘치는 서울 청계광장 옆, 여성가족부 건물 앞에는 사람들에게 매트릭스 밖의 현실을 일깨우려는 듯 비바람에 찌든 채 항거하고 있는 두 동의 조그마한 텐트가 있다. 이곳은 2009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사내하청 기업에서 관리자의 지속적인 성희롱 사실을 알린 뒤 해고된 여성노동자가 ‘살고’ 있는 농성장이다.

 

 

그녀는 자신을 고용한 하청업체가 일곱번이나 바뀌었지만, 그에 관계없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14년간 일했고 그중 3년 동안은 월차 한 번 안 냈던 성실하고 평범한 여성 노동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밤중에, 소장이 “너랑 자고 싶다”고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소장뿐 아니라 조장도 문자와 전화로 그녀를 괴롭혔다. 욕설과 음담패설은 기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자들의 성희롱이 일상화되어 있는 분위기였기에 더는 참고만 지낼 수 없었던 그녀는 회사 동료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곧 회사 전체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이 알려지자 회사는 오히려 그녀를 징계하기 위한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잘못된 언행을 감행하여 사내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인사위원회에는 가해자인 소장이 버젓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해 9월,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자 회사는 결국 그녀를 해고해 버렸다. 이후 그녀가 온갖 모욕과 폭력, 한겨울의 폭설을 견디며 힘겹게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그녀를 해고했던 하청회사는 폐업신고를 하고 이름만 바꾼 새 업체가 가해자를 포함한 다른 직원들을 모두 고용승계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이 사건을 성희롱으로 인한 고용상의 불이익으로 인정하고 사장과 가해자 2인에게 피해자한테 총 1800만원의 피해배상을 하라고 권고했지만 그들은 모두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있다. 게다가 고용노동부는 그녀를 고용했던 하청업체가 폐업신고를 했으니 방법이 없다고 말하고, 여성가족부는 자신들이 할 일은 성희롱 예방교육이지 피해자 구제가 아니라며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이와 같은 상황이 비단 그녀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간단체의 고용평등상담실에는 상사나 관리자의 성희롱·성추행을 거부하거나 그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거나 해고를 당해 고통받은 여성들의 상담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피해자 지원대책위의 블로그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해서 이를 거부하자 폭행을 당했고, 입원했다가 돌아오자 해고됐다.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는 공감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하청·파견 등으로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는 여성들은 일상적인 성희롱과 성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알릴 엄두조차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현실을 외면할 텐가. 우리나라 정부는 유엔의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여성차별철폐협약) 비준 당사국으로 이를 이행할 의무가 있으며, 그 원칙을 따르는 ‘남녀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과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해고 또는 징계 조처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협약과 법률 조항들이 무색하게도 성희롱과 부당해고 피해를 당한 하청 노동자는 길 위에서 2년 가까이 싸우고 있고, 정부 부처와 기업은 모두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원청업체인 현대자동차는 용역 직원들을 동원해 그녀를 협박하고 폭력까지 휘둘렀다.

 

정치권이 이러한 현실에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낀다면 반드시 이번 국정감사에서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에 역할을 방기한 책임을 묻고, 현대자동차에도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복직 결정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불안정한 고용 상태로 인해 직장에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부당노동 행위, 성희롱·성추행을 비롯한 폭력적 상황들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비정규직법 등 관련법의 개정과 제도 개선에 속히 힘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과 같은 현실을 만든 책임은 현재의 여야 모두에 있다. 이제 정치권이 그 책임을 지고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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