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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 싸움의 자리가 치유의 자리일지니

농성장이 강제철거 당하던 날,

옆에 계시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조성웅씨께서 시를 한 수 주셨습니다

 

이제 왔다고, 늦었다고 전날 밤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시더니, 다음날 그 싸움이 있은 후 아픔과 함께 완성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이 싸움의 자리가 치유의 자리일지니

현대차 아산 성희롱 피해자 동지의 싸움을 지지하며

 

깔판을 깔고 거리에 앉아 보면 안다

애써 외면해도 마음은 자꾸만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고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하나하나가 얼마나 가슴을 뛰게 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를!

 

“나는 억울하다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는 각오가

끝내 거리를 베고 눕게 했는지를!

 

깔판을 깔고 세상의 낮은 곳

맨 몸으로 거리에 앉아보면

정직한 내가 보이고 이 세계의 실체가 투명하게 보인다

 

마음아 애타지 마라

       서둘지도 마라

 

폭설 속에서도 폭력에 타협하지 않았고

현대차 아산공장 앞 핏빛으로 봄이 와도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세상을 향해

첫 대화를 시작하였나니!

둥그런 눈물 속에서 무성한 공감의 은행나무 숲을 이루었나니!

 

이 거리가 그대의 주소지는 아니었으나

이 곳에서 이미 새로운 삶은 싹트고 있다

맨 몸은 폭포처럼 정직하다

그만큼 갈 길도 가을 코스모스 길처럼 투명하게 보인다

 

피부의 부드러운 감촉으로 느껴지는 인간의 존엄함

서러움에 겨워 서로를 껴안고 우는 그녀들의 곁에

오래도록 가만히 앉아 주고 싶었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그녀의 숨소리를 듣는다

그녀 몸의 아픈 곳 마다 노크를 하며 위문을 간다

목욕탕을 한 번 다녀오래도 기어코 농성장을 지키는

그녀의 부드러운 꿈의 내력이 내 가슴에 수묵화처럼 스며든다

 

그녀의 따뜻한 손을 잡고 있으면

상처 속에서 싹터오는 그녀의 웃음이 왜 공동체적 노래인지 살갗은 느낀다

고통은 인간이 지닌 품성이 아니다

진실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은

내상조차 이야기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이 세계다

인간에 대한 예의, 서로를 품은 식물성 공감이 없다면 혁명도 없다

 

상처 속에서 싹터오는 그녀의 노래는

우리 사이에 위계가 도입 돼 딱딱해지고

차이가 차별로 제도화되고

비판과 토론을 억압하는 이 세계의 내부를 관통하며

뚜렷한 획을 긋고 있다

 

마음아 애타지 마라

       회의하지도 마라

 

지금 이곳, 이 싸움의 거리가 치유의 자리일지니

함께 맞 잡은 손과 손의 따뜻한 체온으로

우리는 지금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우리가 눈물로 만들어 낸 이 성평등한 거리에서

그대의 안부를 묻는다

그대는 언제나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대 괜찮은지요?

 

2011년9월2일 여성가족부 앞 농성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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