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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10
    “주여, 우리 입을 열어 주소서”-투쟁 현장에서 ‘이야기’가 갖는 의미에 대하여- 여정훈(혁명기도원)(4)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2. 2012/01/08
    [알림]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 평가토론회(2)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3. 2011/12/14
    [속보] 드디어승리! '피해자 복직, 가해자 해고, 임금보전 쟁취!' 현대차와 합의하다!(2)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4. 2011/12/09
    [기고/진보평론] 성폭력을 딛고, 작은꽃 노동자로 피어라! - 피해자 대리인 권수정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5. 2011/11/30
    [집회공지]12/1 여성가족부 규탄 집중 촛불문화제 적극 연대!!!!(2)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주여, 우리 입을 열어 주소서”-투쟁 현장에서 ‘이야기’가 갖는 의미에 대하여- 여정훈(혁명기도원)

“주여, 우리 입을 열어 주소서”

-투쟁 현장에서 ‘이야기’가 갖는 의미에 대하여-

 

 

여정훈(혁명기도원)

 

 

1. 들어가며

 

혁명기도원은 여성가족부 앞 농성장에서 2011년 7월 7일 금요일부터 시작하여 12월 14일 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20주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매주 수요일 기도모임을 가졌습니다. 이전까지 명동 3구역 카페마리에서 기도모임을 갖고 있던 저희는 그 곳에서 현대차 해직자 농성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침 향린교회에서 명동 3구역으로 매주 수요일 저녁예배를 함께하러 오고 계셨고, 여가부 앞 현장에 계신 분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혹시나 현장에 도움이 될 까 하는 생각으로 연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식상한 표현처럼 되어 버린 말입니다만, 농성장에서의 수요일 저녁기도를 시작한 후 도움을 얻은 쪽은 저희들 이었습니다. 모임에서 읽었던 시편과 복음서, 전통적인 기도문들은 매 시간 새로운 의미로 저희에게 다가왔습니다. 정해진 순서대로 매주 읽어내려 간 성서 구절들과 매주 변화하는 농성장의 환경과 맞물릴 때에, 저희는 기독교 전통의 봉인되었던 층들을 하나씩 재발견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늘 제가 들려 드릴 이야기는 22주간의 저녁기도를 통해 다시 발견하게 된 기독교 신앙에 대한 것입니다.

 

 

2.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산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질문을 하나 던져 볼까 합니다.

 

"여러분이 네 살 때쯤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무엇이었습니까?"

 

잘 기억 나지 않으신다면,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아이가 네 살 때쯤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사실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기엔 지겨울 정도로 "왜? 왜?" 하고 묻습니다. 하나 예로 들어 볼까요?

 

"엄마 왜 달이 우리 따라와?"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보통 우리는 "달이 우리 수정이 좋아서 그런가 보다" 라는 식의 대답을 하지, 천문학적 대답을 들려 주지는 않습니다. 사실 저는 천문학적 답이 뭔지도 잘 모릅니다. 제 변명같이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천문학, 물리학, 열역학 등에 대해 몰라도, 심지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무리 없이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상황, 등장인물, 시간과 그에 따른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상황을 이해하고, 예측하고, 자신의 역할을 인식합니다.

 

앞의 상황에서 주어진 대답 또한 일종의 이야기 입니다. 거기엔 ‘달’과 ‘수정이’라는 등장인물들이 있고, 두 인물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른 상호작용을 갖습니다. 나아가 '달이 수정이를 좋아한다'는 짧은 문장은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의 구조를 불러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식간에 저 짧은 이야기를 과거와 미래까지 가진 완결된 이야기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일정한 단위를 가진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일으키는 사건. 이것들은 우리 마음속에 매우 쉽게 자리 잡고, 아주 빠르게 소환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감정 또한 규정합니다. 앞의 수정이 이야기를 생각 해 봅시다. 엄마의 대답이 위의 것이 아니라 “수정이 못된 짓 하나 지켜보려고 따라온다" 였다면 어땠을까요? 분명히 그 아이는 자기를 따라오는 달에 대해 다른 감정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감정은 상황에 대한 대응 방식과 연결됩니다. 좋은 감정을 가진 대상에게는 가까이 다다가고, 그렇지 않은 대상은 멀리 하거나 제거하는 것, 이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할 만한 과정입니다. 이렇듯 이야기는 아주 효과적인 방식으로 상황에 대한 이해부터 그에 대한 대응까지의 과정을 인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가족부 앞에서 함께 기도 하면서 저희가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성서 또한 그러한 종류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편은 억울한 처우를 당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고, 복음서는 새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싸우던 예수와 그 제자들의 꿈, 성공, 실패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성서가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것은 그 책이 더이상 구원을 위해 믿어야 하는 교리들의 목록도, 지켜야 하는 법규들의 목록도 아니라는 의미 입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 안으로 초대하며, 그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방식까지 변화 시키기 위해 우리 앞에 던져진 책이라는 것입니다.

 

 

3. 이야기와 기독교 신앙

 

처음 농성장을 찾았던 7월 7일에 권수정 동지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언니는 하느님이 이 싸움을 꼭 이기게 해 주실 거라고 믿는다.”

 

‘싸움을 승리로 이끄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독실한 감리교 신자인 박사랑 집사가 농성장에서의 삶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이 힘을 얻게 한 신앙 역시 이야기의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을 만드신 선하신 하느님이 있고, 그 하느님은 정의를 추구하신다.

그 하느님은 자신을 믿는 이들을 사랑하시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신다.

결국 하느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정의에서 어긋난 상황을 바로잡으신다.

 

이것은 우주적 스케일의 거시적 이야기 이면서, 동시에 기독교 신앙인이 자신의 삶이라는 미시적 영역을 이해하는 틀 이기도 합니다. 혁명기도원의 성서 읽기가 새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위에서 제시한 큰 이야기가 성서의 개별적 구절들을 읽는 해석학적 틀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전까지 막연히 ‘이스라엘 찬양 시들의 집대성’이라고 알고 있었던 시편이 죄 없이 고통당하는 이들의 탄원으로 가득 찬 책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수요 기도회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시편 중 하나인 119편의 경우 “주님의 법”을 찬양하는 구절들과 “나를 건져 주십시오”라고 탄원하는 구절들이 교차해서 나타나는데요, 이 시편을 읽으면서 저희는 시편 저자의 이야기를 재구성 해 내고(삼천년 전의 그 또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그것을 통해 성서 화자와의 동질감을 얻고, 저자와 함께 “나를 붙들어 살려 주시고, 내 소망을 무색하게 만들기 말아 주십시오"(시편 119:116) 라는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기도를 통해 저희는 지속적으로 자신을 설득하고, 시대를 뛰어넘는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신앙인들이 자신과 이야기의 등장인물을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성서를 읽기는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장로대통령” 께서는 모세나 요셉의 이야기에 비추어 자신을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한창일 때에 어떤 기독교인들은 그 것이 여호수아의 ‘거룩한 전쟁(聖戰)’과 같은 것이라고 말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에서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큽니다. 어쩌면 그것은 논리적 명제들로 구성된 교리들보다 더 실제적으로 개인 신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4. 이야기와 투쟁

 

저는 22주간의 기도모임 끝에 기독교 신앙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투쟁의 현장에서도 이야기가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맑스의 사상에서 자본의 증식 과정에 대한 논리적 이해는 상당이 중요한 것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한 상태로 사회주의적 실천에 뛰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더 쉽게 이해되고, 투쟁의 실천에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종의 이야기 아닐까요? 맑스주의 역시 일종의 큰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초창기에 대한 서술로부터 시작됩니다.

 

과거 어느 시점에, 자기가 생산한 것을 자신이 누리는 평등한 사회가 존재했다

그러나 생산수단을 독점한 이들의 등장으로 최초의 사회는 파괴되었다.

실제로 생산을 담당하는 이들이 세상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바로잡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위에서 말씀드린 기독교 신앙의 한 형태처럼 이 이야기 역시 우리의 정체를 규정하고, 그에 따른 마땅한 대응 방식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여러 종류의 투쟁들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그 이야기들은 어떨 때는 문자화된 상태로, 어떨 때는 무의식적인 층위에 문자화되지는 않은 상태로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바보 노무현”의 이야기가 그것 입니다. 그들은 노무현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규정하고 자신의 위치를 설정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의 이야기가 중요할 것입니다. 노무현, 김진숙, 정봉주 등의 영웅과 그의 독재정권, 한나라당, 이명박 등 구체적 적대자를 가진 이야기 형태의 담론이 수치와 이론으로 이루어진 것들보다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고, 더 오래 기억되며,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도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천으로 연결되기도 더 쉽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점 또한 있습니다. 종교적 근본주의처럼 ‘한 종류의 이야기만이 현실을 바르게 반영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게 되면, 이야기는 독선으로, 투쟁은 동지에 대한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5. 투쟁을 위한 이야기 만들기

 

앞에서 쓴 것 들을 요약하자면, ‘혁명기도원은 여가부 앞에서 보낸 시간들을 통해 이야기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기독교인의 신앙에서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 길이 되기도 하고, 목적지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깨달음에 덧붙여, 종교색을 띠지 않는 투쟁에서도 이야기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물론 통계와 같은 객관적이고 수치적인 자료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 없이는 어떤 싸움도 승리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료들이 적절한 이야기 구조 속에 들어 있지 않다면, 아무도 자료의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영향력 있는 발언이나 선전 문구 역시 그것의 맥락이 되는 큰 이야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두 여성이 들려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고, 그 이야기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새로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한 싸움에서 이겼지만, 아직 많은 싸움들이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노동, 환경, 이주, 주거 등의 영역에서 여전히 우리는 남은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이들, 우리가 보통 “수구세력"이라 부르는 이들은 나름의 일관적인 이야기 체계 - 대한민국이라는 가정, 아버지인 이승만, 적대자인 공산주의자 등으로 구성된 - 안에서 생각하고 움직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그리고 연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다시 쓰는 작업을 계속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세계의 본질에 대한 것, 그 안에서 우리의 위치에 대한 것,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이들에 대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공명하여 세계의 현실을 바꿔 놓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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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 평가토론회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 평가토론회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에 맞선 끈질긴 투쟁,

여러분들의 연대 끝에 승리를 이뤄냈습니다.

어떤 의미와 과제들을 남겼는지

연대의 마음을 보태주신 모든 분들,

꼭 참여해주세요!

 

2012년 1월 13일(금) 오후 2시,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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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드디어승리! '피해자 복직, 가해자 해고, 임금보전 쟁취!' 현대차와 합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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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투쟁 197일차, 모두의 바람과 염원대로

현대차가 드디어 우리의 요구에 굴복했습니다.

지난 주부터 세 차례의 교섭이 있었고 드디어 오늘 오전 11시

현대차 글로비스 대표와 형진기업 대표,

그리고 우리 측 대표인 금속노조 위원장이 최종 합의를 하였습니다.

'피해자 복직, 가해자 해고, 임금 보전(해고기간 동안 산재승인으로 인한 휴업급여를 제한 차액을 보전하는 것)'에 대해서 합의를 하였습니다.

1년 반 동안 힘겹지만 당당하게, 또 누구보다 강하게 싸워온

피해자와 대리인, 이 싸움을 지지하고 연대한 많은 동지들의 성과입니다!!!!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마땅한 상식이 통하는 현장, 그것을 만들기 위해

성희롱 피해의 고통과 가해자, 업체, 현대차까지 나서 무수한 2차 가해를 딛고  

지금까지 힘차게 싸워 온 피해자와 대리인 동지께

모두모두 오셔서 축하와 격려와 연대의 박수를 보내주세요

 

오늘 12/14(수) 저녁 7시, 여성가족부 앞 승리보고대회

내일 12/15(목) 저녁 7시, 현대차 아산공장 앞 승리보고대회

 

*내일 오전 10시 농성장을 철수할 계획이니

가능한 동지들은 내일 오전 10시까지 여가부 앞으로 집결해주세요.

아산공장 집회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오후 3시까지 여가부 앞으로 집결해주세요!

 

동지들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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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진보평론] 성폭력을 딛고, 작은꽃 노동자로 피어라! - 피해자 대리인 권수정

성폭력을 딛고, 작은꽃 노동자로 피어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금양물류 성희롱 사건 피해자 대리인 권수정

 

  

1. 사건 경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협력업체에서 14년 동안 그랜저와 소나타 검사 일을 했던 여성 노동자가 2008년 경부터 업체 관리자인 조장과 소장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 참고 참던 그녀는 2010년 8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며 사건을 제보하였고, 9월 3일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9월 20일 업체 금양물류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회사 내에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하여,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곤란한 경우’라며 피해여성노동자만 해고했다.

 

너무 억울했던 피해자는 9월 27일부터 아산공장 앞에서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했다. 10월 14일 정규직 관리자들과 용역경비들이 몰려나와 피해자에게 “현대 땅에서 나가라!”, “아줌마는 부끄러운 줄도 몰라.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지랄이야.”라고 욕을 하며 그녀를 인도에서 밀어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넘어져 전치 4주의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2주 만에 퇴원한 그녀는 아산공장 정문 앞에 앉아 농성을 시작했다.

 

성희롱 당한 피해자를 별다른 고민 없이 해고하는 쉬운 방법을 선택한 회사는 11월 4일 금양물류 역시 쉽게 폐업해 버렸다. 그녀가 14년 일하는 동안 모두 8번 폐업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해자를 포함해 모든 노동자들의 고용이 승계되었다. 금양물류에서 억울하게 해고된 피해자만 겨울 내내 아산공장 앞에서 추위와 정규직 관리자들, 용역경비의 모욕적인 폭행을 견디며 농성을 했다. 유난히 찬바람이 불던 지난겨울 천막이라도 치려하면 현대차 정규직 관리자와 용역경비 300여명이 칼과 각목을 들고 몰려나와 천막을 찢고 같이 농성하던 비정규직조합원들을 폭행해서 중상을 입어 수십 명의 조합원이 병원에 입원했다. 두 번을 그렇게 당하니 천막은 엄두가 나지 않고 폭설이 쏟아질 때 비닐이라도 덮어 눈을 피하려하면 정규직관리자들과 용역경비들이 몰려나와 비닐을 빼앗고 찬물을 뿌려, 농성하는 바닥이 빙판이 되었다. 항의하면 “XX년들아 마음대로 해봐.” 쌍욕하며 비웃고 갔다.

 

해가 바뀌어 2011년 1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을 받았다. 우리가 진정 낸 사건에 대해 직장 내 성희롱을 인정하고 성희롱을 인지한 회사의 고용상의 불이익을 인정했다. 가해자 조장과 소장 그리고 금양물류 사장에게 각각 300만원, 600만원, 900만원의 손해배상을 권고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 결정이 나온 후에도 가해자들은 사과한마디 없고 현대자동차는 자기들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충남지역 현대자동차 영업소 앞에서 1인시위도 하고 촛불문화제도 했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답답하기만 했다. 마침내 5월 언니와 독하게 마음먹고 서울상경투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산 사내하청지회 집행부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끝나기 전에는 복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것을 왜 하냐고 했고, 피해자에게 다른 조합원들 생각은 왜 안하냐고 했다. 당시 피해자 또한 지회의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하고 있었다. 피해자 또한 비정규노조 조합원으로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피해자는 성희롱 해고 사건에서 정규직화가 아니라 성희롱 당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아 달라는 것이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복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것이 맞지만 먼저 그녀는 성희롱 당하고 억울하게 해고된 것에 대한 복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비정규직지회 확대간부 회의에서는 서울상경농성을 동의하지 않지만 지원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과 성희롱 당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의 복직 투쟁은 다른 성격의 투쟁이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그녀가 정규직이었다 해도 성희롱 당했을 것이며 또 그것을 말했다고, 해고되었을까.’ 그녀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당하는 성희롱과 성희롱으로 인한 부당한 해고가 인정되어 복직된다면, 이것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성과로 수렴될 것이라고 언니와 나는 판단했다. 집행부의 말처럼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의 구실이 될까봐 절대 복직시키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반대로 당장 그녀가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업체로의 복직을 합의한다 해도 이것은 성과로 남을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집행부의 반대에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서울상경투쟁을 결정하고 5월 30일 서울 서초경찰서 앞으로 올라와 자리를 깔고 노숙을 시작했다. 우리 둘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하자고 언니와 다짐을 했다. 서울 올라가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면 그때는 내려오는 거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자.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이니까. 누가 뭐라 해도, 정규직이 되건 되지 않건, 지금 당장, 우리는 생산현장에서 관리자가 몸을 달라하면 주면서 살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는 없다. 아무리 우리가 힘이 약한 비정규직 하청여성노동자이고, 아무리 현대자동차가 법위에서 군림하는 힘을 가졌다 해도, 생산현장에서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해고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현대자동차라 해도 안 된다. 우리는 사람이니까, 성희롱 당하며 일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독하게 먹은 마음 외에 준비된 것이 없었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양재동 본사 앞에서 농성을 하고 싶었지만 본사 앞에는 집회 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 서초경찰서 앞에는 날마다 하루도 쉬지않고 현대자동차에서 고용한 용역 10여명이 3교대하며 줄을 서서 법적으로 집회신고가 가능한 미래, 한달 후까지의 집회신고를 내고 있었다. 3교대하는 용역30명의 일당을 물어보니 10만원이라고 했다. 하루 300만원, 한달 9천만원, 1년이면 10억8천만원의 돈으로 용역을 고용해 현대자동차는 본사 앞 집회신고를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용역이 현자 본사 앞 집회신고를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서초서 앞에 10만원의 일당을 받고 줄서있다. 성희롱 당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여성노동자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서초서 앞에서 농성을 한 이유이다.

 

20여일을 서초서 앞에서 농성한 후 6월 22일 지금의 여성가족부 앞으로 농성장을 옮겼다. 비정규직 여성 하청노동자가 성희롱 당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것이 국가인권위에 의해 확인이 되었는데, 국가인권위는 판단을 했고 가해자들과 업체사장에게 권고를 했으니 그것으로 할 일 다했다고 한다. 그나마 권고조차 법적 강제력은 없다. 노동부는 업체가 폐업되어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현대자동차와 동일한 입장이다. 현대자동차는 심지어 피해여성에게 집회할 수 있는 한 평의 땅조차 허락하지 않으니 이제 어찌할 것인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국가에게 책임지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가족부 앞으로 농성장을 옮긴 이유이다. 국가기관에서 성희롱이 맞고 성희롱을 인지한 회사가 고용상의 불이익을 준 것이 맞다고 판단을 했는데 민간기업이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공공의 권력이 나서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최소한 국가기관이 성희롱 당한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힘을 행사하는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여성가족부 앞에서 11월 15일 현재 167일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사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보자는 취지에 맞게 근로복지공단에 직장 내 성희롱을 근거로 산재신청을 냈고 마지막 절차인 질병판정위원회 회의가 11월 17일에 열린다. 여성가족부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가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건물 관리사무소에서는 용역깡패를 고용해 9월 3일 농성장을 폭력 침탈했다. 그것으로 모자라 건물 입주 상가들과 함께 ‘철거, 수거 단행 가처분’을 신청해 24일이 심문기일이다. 우리 농성장이 지저분해서 영업에 방해가 되고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사이 민사소송은 진행 중이고, 형사소송은 천안검찰에서 금양물류 임동철 사장에서 300만원의 벌금을 약식 기소했다. 그 사이 유난이 많은 비가 내리던 여름이 가고 단풍이 지고, 이제 다시 찬바람이 분다. 작년 아산공장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여가부 앞에서 겨울을 나야할 모양이다. 그사이, 포기하지 않고 11월 15일 현재 167일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 투쟁의 의미

 

1) 성폭력, 자본의 착취전략

 

자본과 임노동의 관계로 생산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성폭력은 “또라이 같은 남성 관리자” 한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그 한사람이 또라이라면 사건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그는 위계와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한다. 피해여성은 성폭력을 견디든지,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문제제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둘은 같다. 167일을 여가부앞에 농성하며 앉아 있으니 이 사회 온갖 성폭력,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들이 우리 농성장으로 와서 고통을 호소하고 상담도 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다른장소, 다른 직종의 가해자와 회사의 대응이 누가 가르쳐줘 학습한듯이 똑같을수 있는 것인지 놀랐다. 비정규직이 아니라도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피해여성이 문제제기할 경우 가해자가 처벌되고 피해자가 보호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피해자가 문제제기 했다고 해고까지 된 경우는 없었지만 공무원도, 사무직도 정규직도 직장내 성희롱을 인지한 회사의 2차가해 양상은 모두 같았다. 위계와 권력관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회사는 가해자를 지지하고 피해자를 고립시킨다. “그녀가 원래 나대는 여자였고, 이 남자 저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였으며, 헤펐다”, “이 사건을 계속 확대시키는 것은 우리 회사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니까, 이쯤해서 그만두라”고 피해자를 공격하며 닥치고 살 것을 강요한다. 어떤 또라이 같은 가해자 한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이 드러났을 때 가해자와 그를 지지하는 자들, 사측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다. 이는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매뉴얼이다. 어떤 직장 내 성희롱도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성폭력에 노출되어 직장상사에게 느끼는 성적수치심을 말하지 못하고 인내하는 여성노동자는 임금인상도 다른 노동조건에 대한 정당한 주장도 못한다. 성적수치심을 견디는 여성은 저임금도 부당한 노동통제도 견딘다. 자본은 이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보다 공격적으로 성희롱을 한다. 이것은 암묵적으로 동의된 자본주의 착취전략 중 하나다. 직장 내 성희롱이 횡행하는 사업장의 피해여성은 한사람이 아니다. 그녀들은 다 그렇게 견딘다.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싫어도 불이익이 무서워 참는다. 결국 사업장의 모든 여성노동자들은 성적수치심을 견디는 것이 내면화 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분열된다. 그녀들은 참아왔기 때문에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제기하는 여성을 쉽게 지지하지도 못한다. 늘 그랬으니까, 그녀가 혼자 튀는 것이고, 뭘 그 정도로, 그녀가 헤프기 때문이라고 내몰며 침묵하거나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한다.

한편 직장내 성희롱이 횡행하는 사업장의 여성들만 성폭력을 이용한 노동통제의 피해자 될까? 남성노동자들은 동료여성노동자가 관리자에게 성희롱 당하는 것을 지켜보는것이 자연스럽고 아무런 생각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에게 탄압받는 것을 보며 정규직 노동자들이 즐기지 않는다. 당장 연대를 못하는 미안함까지 포함해 그들도 고통스럽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도 그럴것이다. 옆의 동료가 관리자에게 일상적으로 성희롱 당하는것을 지켜보고 살아야 할것을 강요받는 남성노동자 또한 피해자일 것이다. 이것은 가학적인 시스템이다.

 

사업장에서뿐 아니라,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은 2차가해하고, 검찰이 2차가해하고 법원에서는 판사가 2차가해 한다. 이것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일반적인 경우다. 국가가 성폭력하는 자본의 시스템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국가 또한 공무원사회에서 직장 내 성희롱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더 쉽게 착취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생각이 없다.

 

이번 사건의 경우 직장 내 성희롱을 국가기관에서 인정했음에도 검찰이 금양물류 사장에게 혐의를 인정하여 처한 약식기소의 벌금은 겨우 300만원이다. 그나마 국가인권위는 900만원의 벌금을 권고했는데, 검찰은 왜 300만원이라는지 알 수가 없다. 하여튼 껌 값이다. 왜 그런가? 성희롱을 인지한 회사가 피해자를 해고한 것은 매우 악의적인 범죄이다. 그녀의 복직을 국가기관이 명령하면 왜 안 되는가? 최소한 벌금을 때린다면 지난 1년 동안 해고되어 못 받은 임금이라도 지급하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성희롱을 인정해도 사법부는 자본의 착취전략에 문제가 생길만한 벌금을 부과하지는 않는다. 검찰의 이런 결정을 보고 어떤 사장이 성폭력당한 여성노동자를 해고할 경우 자기가 오히려 처벌받는다고 무서워하겠는가. 그냥 300만원내고 또 성폭력 하고 말지. 이런 상황에서 또라이는 가해자가 아니라 문제제기한 여성노동자가 된다. 이것은 일관되게 관철되는 구조적인 시스템이다.

 

성폭력은 여성노동자를 통제하는 자본주의 착취전략이다. 여성노동자의 몸을 통해 현장을 관리한다. 이 착취전략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진영의 대응이 있어야 한다. 대공장 남성중심의 노동운동이 아직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주요한 자본의 착취전략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 가해자 한사람에 대한 처벌을 넘어서는 여성의 몸을 통제하며 착취하는 구조에 문제제기할 이론이 필요하다. 이것은 여성의 문제이지만 또한 노동의 문제다.

 

2) 파견법, 유연한 노동 통제의 폭력

 

그 다음이 파견법의 문제이다. 파견법 아래 ‘기간제 노동자’들은 입 닥치고 숨죽여 살아야 한다. 6개월 후, 혹은 1년 후에 재계약하기 위해서는 관리자들에게 찍히면 안 되기 때문이다. 파견법에 해당하는 기간제 노동자들은 단결해서 투쟁하지도 못한다. 원청회사가 파견업을 하는 회사를 통째로 날려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형식이 폐업이든 계약해지든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해고의 효과가 있다. 파견법이 더욱 악랄한 것은 2년이 지났다고 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년이 되기 하루 전에 집단적으로 계약해지 되는 경우는 많이 봤다. 그리고 한달 쉬고 다시 기간제 노동자로 고용되길 기다리며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파견법이 합법이 되는 순간, 합법파견이든 불법파견이든, 파업이 허용되지 않는 사업장이든, 허용되는 사업장이든,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파견노동이 허용되지 않는 사업장에서도 파견노동자를 고용하여 일을 시키면서 합법적인 도급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노동자가 문제제기한다 해도 법적인 다툼으로 가서 대법원까지 끝나려면 최소한 5년이 걸린다. 심지어 5년 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이라고 판정이 나도 사업주는 그냥 쌩까면 그만이다. 현대자동차가 그렇다. 최00이 2004년 4월부터 정규직이었다는 판정이 났지만 그는 정규직으로 복직되지 않았다.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비정규직 기간제 파견노동자를 이용해서 더 많이 통제하고 더 쥐어짜서 쓸 만큼 쓰고 버리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이런 방식의 노동의 유연화가 일반적으로 관철되어 기업하기 매우 좋은 나라로 완성되어 있다.

 

파견법의 그늘아래, 불법파견 사업장에서 기간제로 고용되어 14년을 일한 한 여성노동자가 성희롱 당했다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더니 현대자동차는 그녀를 해고하고 업체를 폐업했다. 이제 그녀는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파견법의 그늘아래, 여성노동자는 생산현장에서 관리자가 몸을 달라하면 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합법적인 상식이다.

 

성폭력과 파견법이라는 자본의 두 가지 통제시스템이 만나 야만적인 현실을 그대로 폭로한 것이 이 사건의 의미다.

 

3) 연대, 풍요로운 농성장

 

167일 동안 단 한 사람의 여성노동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동지들의 마음이 풍요롭다. 물론 이미 이 투쟁은 단 한사람의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통에 공감하고 헌신적으로 연대해온 동지들의 마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농성투쟁을 지지하는 지원대책위의 경우 여성단체와 진보정당들을 포함해 많은 단체들이 결합해 있고 실질적으로 이 농성장이 운영되고 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촛불문화제를 포함해 여가부장관 그림자투쟁, 3차례 진행된 전국 현대자동차 영업소 앞 1인 시위, 해외 여성·노동단체들의 현대자동차에 항의하는 연서명 받기 등등의 사업이 진행되어 왔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새로운 연대운동의 방식에 대한 실험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연대란 투쟁하는 자와 그 투쟁을 지지하는 자가 함께 책임지며 만들어갈 때 풍요롭다는 것을, 일방적인 지침에 갇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실을 확인한다.

 

4) 조직된 노동자, 풍요로운 농성장에 없는 단하나

 

유감스럽다. 15만 금속노조와 80만 민주노총이 큰 싸움은 큰 싸움대로 결의해서 하더라도 작은 싸움 또한 소홀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치되었다. 지난여름 한국 노동운동 진영은 85호 크레인의 김진숙 동지의 투쟁과 유성기업지회의 투쟁을 중심으로 흘러갔지만, 그것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3. 부족한 글을 마무리 하며

 

그녀가 바라는 것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현장으로 복직하는 것이다. 그녀는 한국사회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표해서 투쟁하길 바란 적이 없고, 최초로 공개하며 직장 내 성희롱으로 산재승인 받기를 원한 적이 없다. 심지어 더럽다는 말을 들으며 농성 하는 것을 그녀는 원하지 않는다.

이미 피해자와 대리인, 그리고 연대하는 동지들과 함께 한 농성투쟁은 많은 성과를 남겼다는 것이 그녀에게 위안이 되지도 않는다. 그녀는 다만 성희롱 한 가해자를 처벌하고 현장으로 돌아가 14년 동안 일했던 곳에서 일하고 싶을 뿐이다. 이 요구는 매우 소박다하고 할 수 있는데, 자본의 착취전략과 만나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 정도의 완고한 시스템에 부딪혀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녀에게 성희롱의 상처를 반복해서 상기하며 고통스러운 것을 감당하라고 요구할 것인가. 빠른 시간 안에 그녀가 복직하길 바란다. 그것이 치유의 시작일 것이다. 또한 그녀 스스로 자신을 성희롱 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자본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로 인식하길 바란다. 아직은 첩첩산중, 그녀가 밟아가는 길이 너무 좁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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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공지]12/1 여성가족부 규탄 집중 촛불문화제 적극 연대!!!!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가해자 처벌, 피해자 원직복직, 여성가족부 규탄을 위한

집중 촛불 문화제

 

 

일터에서 수차례 성희롱 당한 것도, 당한 거 문제제기 했다고 쫓겨난 것도

내가 일하던 일터에서 가해자가 버젓이 일하고 있는 것도 억울한데,

서울 한복판에서 텐트까지 쳐야 했습니다.

어느덧 농성을 하며 싸워 온 지 180일이 넘었습니다.

 

이미 성희롱 피해로 상처를 입고, 그것이 '산재'로 인정될 만큼 심각한 것이었음에도

여름에는 비바람 맞아가며, 겨울 칼바람 추위를 이겨가며

힘들어도 꿋꿋이 농성투쟁을 이어왔습니다.

 

'성희롱 예방'에 대한 책임이 있는 여성가족부는 성희롱 피해자의 면담 요구를 수차례 거절해왔습니다.

급기야, 지난 18일 어렵게 가진 면담에서 여성부 장관은 

"법으로 이긴다 해도 복직할 수 없으니 다른 데 일을 알아보라"는 말까지 던져가며

피해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현대차의 몰상식, 불법 행위에 동조하였습니다.

 

피해자는 다시 장관을 만나러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재로 승인될 만큼 이 문제 심각한 거라면, 여성가족부가 책임지고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 기대한 것은 아니어도,

최소한 민원인들의 이야기는 들어주려고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면담해줄테니 '여의도 다방'으로 나오라는 게,

'냄새나는 음식 반입 안 된다'며 굶기는 게,

군홧발 동원해 끌어내는 게,

여성가족부가 하는 일입니까?

 

농락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분노하는 동지들, 여성가족부 앞으로 모입시다!!!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가해자처벌, 피해자 원직복직, 여성가족부 규탄,

집중 촛불문화제

 

12/1(목) 저녁 7시, 여성가족부 앞

 

동지들의 적극적인 연대, 기다립니다!

 

성희롱 피해자 면담요청에, 강제퇴거 웬 말이냐!

폭력으로 피해자 짓밟는 여성가족부, 즉각 사과하라!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복직! 여성가족부가 책임져라! 

불법행위 방조하는 여성가족부 해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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