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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30
    [사회진보연대 성명] 현대차와 금양물류 사장의 성희롱 피해 배상책임을 인정하라!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2. 2012/08/22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사건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규탄 성명서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3. 2012/01/19
    [여성신문]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인터뷰 “산재라는 판례를 남길 수 있어서 뿌듯하다”(8)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4. 2012/01/16
    [참세상]‘현대차 성희롱’ 계기로 ‘성희롱’ 법개정 투쟁 예고(6)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5. 2012/01/10
    작은 꽃 아픔으로 피다, 농성장에서 만난 혁명기도원/우리의 투쟁이 더 풍요롭고 행복하기를(권수정)(1)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사회진보연대 성명] 현대차와 금양물류 사장의 성희롱 피해 배상책임을 인정하라!

현대차와 금양물류 사장의 성희롱 피해 배상책임을 인정하라!
- 금양물류 성희롱 사건 손해배상청구 판결에 부쳐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가 가해자들인 현대자동차, 금양물류 사장, 조장, 반장에게 청구한 민사상 손해배상에 대해 8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현대자동차와 사내하청인 금양물류 사장에 대한 배상청구를 기각하고, 조장과 반장에게만 배상하도록 했다.

성희롱 가해자들과 공모한 실질적인 주체, 현대자동차에게 면죄부를 주는 판결이다.

판결은 현대자동차가 금양물류와 파견관계에 있는지 여부는 별개로 하더라도, 사용자로서 성희롱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가해자를 비호하며 사건을 은폐하려고 적극적으로 공모한 실질적인 주체다.
성희롱 사건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인 금양물류는 단시간 안에 형진기업으로 간판을 갈아치웠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가해자를 비롯한 기존의 인원이 고스란히 형진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이는 원청인 현대자동차의 승인과 입김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작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국회의원 사무실을 직접 돌며 ‘금양물류 성희롱 주장 사건에 관하여'라는 문건을 배포하였다. 배포한 문건에는 '피해자가 이혼녀로 남자편력이 심한 것으로 소문이 나있고', '여러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로 소문이 파다하다.'라는 등의 내용을 서술하여 근거 없는 악의적인 소문을 양산하였다.
이는 성희롱 문제와 무관하다며 책임을 회피하던 현대자동차 스스로가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는 실권자임을 실토한 사건에 다름 아니다.
최근 고려대학교 의대생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어머니가 피해자를 모함하여 실형을 구형받아 구속되었다. 가해자를 비호하고,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위가 무거운 죄임을 인정한 것이다.
현대자동차 역시 그 죄가 가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면죄부를 주면서 도마뱀 꼬리만 잘라낸 격이다.

금양물류 사장에게 면죄부를 주며 하청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를 박탈한 판결이다.

또한 판결은 현대차의 사내하청인 금양물류 사장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 금양물류 사장은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밝히자, 이를 수용하기는커녕 피해자를 징계 해고했다. 금양물류 사장은 사용자로서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직장에서 교육을 실시하고, 사건이 발생할 시에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실행한 바가 없다.
이에 따라 2011년 11월에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은 금양물류 사장이 ‘남여고용평등과 일 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300만원의 벌금을 구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에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그 근거는 사건의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금양물류라는 법인격체이지, 대표이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사내하청 업체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간판만 갈아치우는 방식으로 폐업하고 창업하는 일이 관례일 정도로 비일비재하다. 금양물류 역시 폐업하고 형진기업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가해자도 함께 고용이 승계되어 일했다.
이처럼 사용자가 고용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손쉬운 수법을 법원이 인정한다면, 사내하청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권리를 침해당해도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된다. 귀찮은 일만 발생하면 거리낌 없이 간판을 갈아치우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업체들에게는 날개를 달아주고,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는 박탈하는 판결이다.

직장 내 성희롱을 개인들 간의 분쟁으로 축소시킨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성희롱을 개인들 간의 분쟁으로 여겨, 원치 않는 신체접촉과 불쾌한 언행을 자행한 조장 반장에게만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직장 내 성희롱은 피해자와 가해자 당사자들만의 우발적인 갈등이 아니다.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위계질서와 성별 권력관계가 작용하여 피해자는 성폭력적인 상황을 거부하거나 저항하기 어렵게 만들며, 이러한 점을 노린 가해자들의 폭력행위가 속출하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심지어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는 최초로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승인받았다. 이는 성희롱이 여성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경험하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 또한 성적인 폭력이 여성들의 일할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요소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성희롱을 개인들 간의 분쟁으로 축소시켰다.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의 노동권을 비롯하여, 유사한 처지에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를 부정하는 판결이다.

성희롱 피해자를 모함하고 가해자들과 공모한 현대자동차의 책임을 인정하라!
성희롱 피해자를 해고하고 가해자를 비호한 금양물류 사장의 책임을 인정하라!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부정한 판결을 규탄한다!


 

2012년 8월 27일
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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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사건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규탄 성명서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사건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규탄 성명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가 산재 승인을 받고 원직복직한지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여도 피해자는 원직복직이라는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현대자동차 공장 앞에서, 여성가족부 앞에서 차가운 길거리에서 그렇게 일 년이 넘는 농성을 해야 했다. 성희롱 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자신이 14년 동안 일하던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음에도 해고 한 업체가 폐업을 했다는 이유로 피해 노동자의 복직을 책임질 곳이 없다는 것이 이 지난한 싸움의 가장 큰 이유였다.


폐업한 업체도, 현대자동차도 고용노동부도 여성가족부도 모두 피해자의 고통과 원직복직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을 때 피해자는 스스로 싸우며 직장내 성희롱 산재인정과 가해자 처벌, 사업주 형사 처벌을 받아내었다. 그리고 원직복직까지 쟁취하였다.


판결문은 해고자인 사내하청 업체 사장의 책임을 없애버렸다.


그런데 피해자가 성희롱 가해자 2인, 자신을 해고한 업체의 사장, 현대자동차를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김모 판사는 피해자의 눈에서 다시 한 번 피눈물이 나게 할 판결을 내렸다.


우선 판결은 성희롱 피해자를 해고한 업체의 사장에 대해 이 자가 대표이사라는 이유로 사용자 또는 사업주로서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였다. 주식회사에서 일어난 일은 주식회사 법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이 법상의 논리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성희롱을 당했을 때 폐업만 하면 사장의 책임이 없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예방의 의무, 관리감독의 의무 소홀에 대해 면죄부를 이와 같은 판결은 수많은 간접고용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협하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판결은 사장이 이미 남녀고용평등법 14조 2를 위반한 행위, 피해자에게 고용상의 불이익을 준 행위로 형사 처벌을 받았음에도 본 행위사실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고 직접적인 성희롱 가해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기각하였다. 이는 판결이 당연히 해야하는 사건에 대한 명확한 파악조차 제대로 안한 결정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현대자동차 공장 안에서 일어난 성희롱은 현대자동차가 책임져야 한다.


둘째로 판결은 현대자동차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성희롱 피해를 당했을 때 원청 사용자는 책임을 져야한다. 그 책임은 묻지 않은채 가해자들의 문자메세지 발송과 전화 통화가 사적인 수단을 통하여 토요일과 한밤중에 일어났다는 이유로 현대자동차에게 “사무집행 관련성 또는 사용자 측의 예측 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성희롱은 은밀한 공간에서 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며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에는 전화통화를 포함하여 음란한 농담을 하거나 음탕하고 상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친절히 명기까지 해 놨다. 사적인 경로로 벌어지는 성희롱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법은 사업주가 예방교육을 1년에 한번 이상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소나타와 그랜저를 14년간 만들면서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이것만 보더라도 현대자동차는 관리 감독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 명확한데, 판결은 사용자의 예측가능성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현대자동차의 책임을 없애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희롱 사건의 특수성을 무시한 판결문이다.


셋째로 판결은 문자와 음성 녹음 외 가해자들의 육체적 성희롱, 언어적 성희롱 주장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성희롱 사건은 명확한 증거를 남기기 어렵고 주변 사람들이 없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권력관계의 상급자가 가해자임으로 주변 동료들이 증인으로 나서기 어려운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의 일관성 있는 주장을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성희롱으로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수많은 성희롱 피해자들에게 입 다물고 참고 살라는 얘기 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와 다름 아님을 판사는 알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성희롱 피해자의 권리, 간접고용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성희롱의 문제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임을 명확히하면서 사업주 의무 및 처벌 사항을 법에 명기하고 산업재해로까지 인정받은 것은 십년이 넘는 지난한 싸움을 통해 획득한 결과이다.


현대자동차와 업체 사장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은 채 성희롱 가해자에게만 손해배상을 선고한 판사는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도 없으며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 한 번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이에 지원대책위원회는 본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밝힌다. 본 판결은 우리가 지원하는 피해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성희롱 피해자, 간접고용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위협하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2012. 8. 21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지원대책위원회


노동자연대다함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 사회진보연대,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울본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위원회, 전국여성연대, 전국학생행진,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진보신당 여성위원회, 통합진보당 여성위원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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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인터뷰 “산재라는 판례를 남길 수 있어서 뿌듯하다”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인터뷰 “산재라는 판례를 남길 수 있어서 뿌듯하다”

복직 합의 한 달만에 평가 토론회 열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해 2009년도부터 관리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한 박모(47)씨. 2010년 9월 3일 참다못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다. 하지만 하청업체는 이를 빌미로 박씨를 징계해고 한다. 결국 2011년 5월 31일부터 박씨는 대리인 권수정(41)씨와 함께 상경 농성을 시작한다. 11월 25일에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에 대한 첫 산업재해 판결을, 12월 14일에는 피해자 원직복직과 가해자 해고라는 합의를 얻어낸다. 박씨가 성희롱 부당해고에 맞선 지 1년 4개월만의 일이다.

 

박씨가 원직복직 합의를 얻어낸 지 한 달이 지났다. 1월 13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박씨를 만났다. 이날 박씨의 투쟁에 대한 평가 토론회도 마련되었다. 복직으로 2월부터 일터로 돌아가는 박씨는 차분하고 편안해 보였다. 회의실은 지원대책위의 활동가들과 관심 있는 시민들로 뒷자리까지 가득 찼다. 박씨는 함께 천막 농성을 한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 등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믿는 종교, 같이 해준 대리인, 지원대책위 많은 활동가들이 마음의 지지대였어요”라고 박씨는 입을 열었다. 이번 투쟁의 특징은 수많은 단체들이 함께 했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 참여한 단체만 18개였다. 성희롱 피해자의 공개 투쟁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어떤 희망으로 1년 4개월을 견디었을까. “지금 포기하면 억울하니까 포기할 수 없었어요. 한 순간으로 그간의 노력이 무너지니까요. 그래서 한 발만 더 나가면 되겠지’라고 되뇌었어요. 결국 그런 마음 속 믿음으로 하나, 둘씩 풀려나갔죠. 인권위 결정문이 나오고 산재 판결이 나고...”

 

박씨의 싸움은 힘든 순간도 많았다.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을 하다가 2평 남짓한 텐트가 철거되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어쩌면 사회가 이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성차별적 문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나같이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도 견뎌냈어요. 우리나라에서 1, 2위를 다투는 대기업을 상대로요. 다른 여성들은 나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기운 잃지 말고 이번 투쟁을 바탕으로 승리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또 “적어도 ‘아산 공장 안은 나아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성희롱을 문제제기하고 싸웠기 때문에 남성들이 좀 더 조심할 것이라고 보고요. 나 한 명의 복직으로 끝나지 않고 산재라는 판례를 남길 수 있어서 뿌듯해요”라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도 물었다. “남은 인생 조용히 살 겁니다. 무엇보다 내 의지로 선택한 투쟁이 아니니까요. 가정과 일터로 돌아가서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 거예요. 평탄한 삶을 살고 싶어요”

 

토론회 사회를 맡은 나영 사무국장은 “성폭력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노동계는 성희롱을 여성문제가 아닌 고용환경 구조라는 측면에서도 고민했으면 한다. 또 성희롱은 어느 한 쪽이 조심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권력 관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 13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 평가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많은 지원대책위 활동가들은 성회롱은 위계 관계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신문

 

이날 토론회에는 성희롱은 직장 내 위계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유현경 사노위 여성국장은 “직장 내 성희롱은 생존권을 흔들며 통제하는 ‘노동’의 문제이다. 또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여성노동권사업을 주변화시킨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지나 활동가는 “일터 안·밖에 여성 노동자 커뮤니티가 많이 형성된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직장 내 성폭력을 외부로 들어내지도 지지받지도 여성노동자는 고립감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망이 필요하다. 정부의 성희롱예방 정책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노조와 여성단체에서 이를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피해자 대리인이자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권수정씨는 ‘직장 내 성희롱은 같은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런 직장 내 성희롱은 효과적 생산 통제를 위해 회사의 옹호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성희롱을 경험한 여성노동자는 40%에 이른다고 밝혀졌다. 특히 비정규직일수록 더 많고 높은 강도의 성희롱을 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노총 송은정 여성부장은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된 법제도 개선안을 소개했다. “첫째, 고객 등 제3자도 가해자 범위 안에 포함한다. 둘째, 피해를 진술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피해자를 해고할 경우, 불리한 조치로 간주한다. 셋째, 고용노동부는 성희롱 방지조치를 점검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등 성희롱 방지의무를 구체화한다. 넷째, 성희롱에 대한 인권위 권고 결정 시 관할 노동청은 과태료를 부과처분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설명했다.

 
 

1169호 [사회] (2012-01-15)
이지원 / 여성신문 기자 (gkr2005@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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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현대차 성희롱’ 계기로 ‘성희롱’ 법개정 투쟁 예고

‘현대차 성희롱’ 계기로 ‘성희롱’ 법개정 투쟁 예고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상해 첫 산재인정...‘성희롱’ 전면적 투쟁 근거마련

윤지연 기자 2012.01.14 23:04

지난 12월 14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가 부당해고에 맞서 싸워온 지 1년 4개월 만에 가해자 처벌과 원직복직을 이뤄냈다. 서울로 상경해 천막농성 투쟁을 진행한지 무려 196일만이다.

 

14년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근무해온 피해자는 지난 2년간 조장과 소장에게 반복적으로 성희롱을 당해왔다. 하지만 성희롱 사실을 문제제기하면서 부당해고를 당했으며, 해고 후에도 가해자와 사측으로부터 2차 가해를 받아왔다.

 

사내하청 여성 노동자가 노동운동진영에서도 ‘사각지대’라 불리는 성희롱 문제로 대기업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성희롱 문제는 노동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최초로 성희롱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인정을 이끌어내면서, 이후 많은 성희롱 피해자들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했다는 것 역시 성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제도적, 조직적으로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과제는 남아있는 상태다. 특히 민주노조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여성 성희롱, 성폭력 문제를 전면적으로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성희롱 및 부당해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지원대책위’는 13일 오후, 민주노총에서 투쟁평가 토론회를 열고 이후 성희롱 문제해결을 위한 전망을 논의했다.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상해 산재인정...성희롱 문제 돌파구 마련

 

이번 성희롱 투쟁의 성과는, 직장 내 성희롱이 직장 내 위계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려낸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불평등한 고용 관계 속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가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감독자로부터 피해를 입는 것으로, 사회전반적인 고용구조의 모순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여성노동자가 피해사실을 폭로했을 때, 2차 가해를 포함한 해고, 음해 등이 뒤따라오는 것이어서 ‘성희롱’ 문제가 여성노동자의 노동권과 생존권과도 직결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유현경 사노위 여성국장은 “이번 투쟁 과정은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 그 자체와 그로인해 여성노동자가 겪게 되는 2차 가해성 음해, 고용불안, 해고 등이 여성노동자 개인의 생존의 위협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이 자본의 착취전략, 현장통제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이 이번 투쟁과정을 통해 드러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피해자 대리인으로 활동해 온 권수정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은 “대부분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회사가 가해자를 지지하며 보호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2차 가해하며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은 우연히 아니다”라며 “자본은 직장 내 성희롱이 횡횡하는 사업장이 노동통제하기 더 쉽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권수정 조합원은 “하지만 이번 투쟁을 통해 아무리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라해도 성희롱당하며 살 수는 없으며, 현대자동차라해도 그것은 안된다라는 생산현장의 윤리가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최초로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됐다는 성과 역시, 이후 성희롱 문제해결의 단초를 마련했다. 유현경 국장은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상해도 산업재해에 해당함을 인정한 첫 사례”라며 “직장 내 성희롱이 노동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유해한 작업환경을 만들어 노동권, 생존권뿐만 아니라 건강권까지 침해하는 행위임을 확인하고 사회적으로 알렸다는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직장 내 성희롱 법개정 투쟁 나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접수된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 직장 내 성폭력은 5년간 상담통계상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직장내 성폭력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25%의 비율을 차지하며 개선의 경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최지나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는 “또한 통계를 성인피해자 중심으로 보면, 상담소에 상담을 의뢰하는 성인 성폭력 피해자의 35% 정도가 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직장 내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노동자들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작년 8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에서 실시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정기적으로 성폭력예방교육을 실시하지 않거나(25.6%),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여부를 모른다(20.9%)고 답변한 비율이 46.5%에 달했다.

 

때문에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후 노동운동진영에서 성희롱 문제를 사회적 의제화 시키고, 직장내 성희롱 관련한 법제도 개선 투쟁 등을 공세적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권수정 조합원은 민주노조운동진영의 과제와 관련해 “직장 내 성희롱의 산재인정은 우리운동진영이 향후 투쟁을 기획할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안전장치같은 근거를 마련했다”며 “산업재해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내 성희롱 법제도 개선 내부 워크샵을 진행하며 개선안 마련에 돌입한 민주노총 역시 법개정 투쟁을 비롯한 여러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민주노총이 ‘일 가정 양립 및 남녀고용평등에 관한 법률’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는 개정안 내용은 △고객 등 제3자에 의한 성희롱 피해를 정의규정에 포섭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구체적 보호조치 명시 △고용노동부가 성희롱 방지조치 점검, 결과 공표 및 부실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실시 등 사업주의 성희롱 방지의무 구체화 △인권위 권고와 남녀고용평등법상 과태료 처분과 연계성 확보 등이다.

 

송은정 민주노총 여성부장은 “이밖에도 ‘고용관련 성희롱 금지법(가칭)’ 같은 별도 법안을 만들어 내용을 더 풍부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많았으며, 개선안이 마련되면 올해 총선국면에서 이슈화 시킬 것”이라며 “또한 민주노총이 오랜 논의 끝에 올해 성평등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만큼, 민주노총 내부 지원프로그램 등 구체적인 논의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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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 아픔으로 피다, 농성장에서 만난 혁명기도원/우리의 투쟁이 더 풍요롭고 행복하기를(권수정)

 

작은 꽃 아픔으로 피다, 농성장에서 만난 혁명기도원

/ 우리의 투쟁이 더 풍요롭고 행복하기를

 

 

권수정

 

 

현대차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여성노동자가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복직을 요구하며 여성가족부 앞에서 197일의 농성 끝에 사측과 합의하던 12월 14일 저녁, 혁명기도원과 함께하는 스물두번째 기도회를 마지막으로 하고 다음날 농성장을 철수하여 아산으로 내려왔다.

 

외롭고 고단한 투쟁의 현장에서 혁명기도원은 스물두번의 기도회를 통해 무엇을 하였을까. 작은꽃 아픔으로 피다, 농성장을 지키던 한사람으로서 내가 느낀 혁명기도원의 농성장 기도회에 대하여 쓴다.

 

 

1. 믿음과 기도

 

 

1)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믿음

14년 동안 일하던 현장에서 성희롱을 당하고 그것을 말했다고 해고된 피해자가 490일을 싸우고 복직에 합의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당사자인 언니에게 쉽지 않은 투쟁이었는데 어려운 시기마다 언니는 정의로운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겨냈다.

수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이유가 뭔가’ 묻는 질문에 대한 언니의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 포기하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지금 포기하면 하청 여성노동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현장에서 성희롱 당하면서 말도 못하고 살아야 한다. 그럴수는 없다. 정의로운 하나님을 믿는다.”

그랬다. 어려운 싸움을 하는 피해자에게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이 든든하게 빽이 되어 주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니의 버팀목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없었으면 어쨌을 뻔 했나. 힘든 일이 벌어질 때마다, 언니가 과연 이 상황을 이길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때 마다 하나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언니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삶의 고비 고비 어려울때 마다 지켜주고 위로해준 단 하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언니는 의심하지 않았다.

 

‘사회주의는 인민에게 언니의 하나님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없는 걸까. 삶의 고단함에 지친 인민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착취 없는 평등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 속에 나를 비롯한 많은 동지들이 지치고 각박해지기도 하는데, 해방을 향한 사회주의가 더 넉넉하고 풍요로울 수는 없는 것인지, 지금도 고민한다.

 

 

2) 아름답게 마무리되길 기도하는 목사님

아산공장 앞에서 농성을 하던 지난겨울 언니가 다니던 인주감리교회 목사님은 자주 오셨다. 찬바람 속에 농성하는 언니를 위해 김치찌개와 가스버너를 가지고 오셔서 따뜻한 점심을 나누어 먹던 날 목사님의 기도 마지막은 ‘하나님의 역사로 이 모든 일이 승리하게 해주시고’ 였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니 질수가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하며 두고두고 앞이 잘 안 보이는 순간마다 기억하며 위로했다. 사람들이 안 보이는 초월적인 신을 믿는 이유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해가 바뀌어 국가인권위의 결과가 나온 후에도 언니는 복직되지 않았고 두 달이 넘는 논의 끝에 서울상경투쟁을 결정했다.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을 하며 여름을 났다. 이때도 목사님은 가끔 오셨고 함께 점심을 먹던 날의 기도는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아름답게 마무리되게 하소서!’

어렵고 힘든 순간이란 앞이 잘 안 보이는 순간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길거리에서 2차 가해에 노출된 피해자가 농성을 해야 현대자동차를 이길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러나 질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 판단의 근거는 이 싸움의 너무나 명확한 정당성이었다. 사람이 성희롱 당하며 일할 수는 없지 않은가.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라니! 아름답게 마무리 되게 해달라는 그 문장이 가슴에 꽂혔다.

우리의 싸움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우리의 싸움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어떤 모양일까. 어떻게 해야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싸우는 모양이 편협하고 추하다면 이긴다 해도 의미 없을 뿐더러 이길 수 없는 것 아닐까. 반대로 우리 농성장이 아름답다면 설사 싸움에서 실패한다 해도 의미 있는 것 아닐까. 우리 농성장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기는 것을 넘어 우리의 실천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깨달음은 그것으로 참 중요하다. 싸움이 끝나고 평가를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의 행위가 아름다웠는지는 자신이 없다. 여러 동지들과 함께 행복했기 때문에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었는지 그 행복중 하나는 혁명기도원의 기도회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2. 기도회의 순서와 방식

 

사족인 것 같지만, 본격적인 감상을 쓰기 전에 어째서 혁명기도원의 기도회가 그토록 좋을수 있었는지 밑바탕이 되는 형식에 대해 먼저 쓴다. 단지 순서와 방식이 아니라 그 형식에는 내용에 걸 맞는 철학이 포함되어 있어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집회의 방식이다. 처음에는 예배와 기도회가 어떻게 다른지 몰랐는데, 우리 농성장에는 기도회의 방식이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1) 순서

아마도 오랫 동안 성서의 뜻에 맞게 기도회를 진행해온 집단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는 순서일 터이다. 찬송과 성서구절을 읽고 명상을 하고 기도하는 순서가 길지 않은데도 집중해서 기도하고 나누기에 좋은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2) 방식

농성장이라는 공간은 사실은 집중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오픈되어 있어 소음이 있을 뿐 아니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가끔은 기도회 도중에 지나가는 행인이 말을 건네기도 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도 농성장에서의 기도회가 집중해서 잘 이루어 질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참가해서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적으로 말하며 진행되었다면 오히려 더 산만했을 것이다.

서로 잘 모르고, 어떤 이는 기독교 신자이고, 어떤 이는 신자가 아닌 사람도, 처음 기도회에 참가하는 사람도 모두 쉽게 기도회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참가해서 진행하는 방식 때문이다. 찬송을 다 같이 부르고 기도문을 한 구절씩 소리 내어 읽고 성서를 읽은 후에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 오늘의 기도제목을 참석한 모든 사람이 말하고 들으며 나누는 형식이 우리를 집중시킨다.

 

똑같은 성서구절을 읽고도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일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참석한 모두에게 재미있는 경험이 아니었을까. 나에게는 그랬다. 성서가 그렇게 고리타분 한것도 아니고 일방적인 신의 말씀도 아니라는 것을 서로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서로서로의 입을 통해 확인 한 것이다. 가만 보니 성서는 읽는 자와 신의 대화더라.

 

 

3. 농성장에서 읽는 성서

 

1) 시편

놀라운 것은 3000년 전에 쓰여진 시가 내 마음을 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잘 표현할 수 없고 말하기 어려운 내 분노와 고통이 모두 시에 있었다. 모든 감동을 일일이 적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10월 5일 읽은 시편은 이런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는 말,

젊어서부터 받은 많은 학대에도 나는 꺾이지 않았었지.

밭가는 자들이 땅을 갈아엎듯이 내 등에 고랑 같은 상처를 내었지만

의로우신 주께서는 악인들의 멍에를 박살내셨다.

시온의 원수들아, 모든 망신당하고 물러들 가라.

지붕위의 풀포기처럼 뽑을 새도 없이 시들어 버리리라.

베는 이의 손에도 묶는 이의 아름에도 차지 않으리니

지나가는 이 아무도 ‘주님의 축복이 너희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복을 빈다’ 하는 사람 없구나.

 

시를 읽으며 내 등에 고랑 같은 상처가 있는 것을 이 사람이 어떻게 알았을까, 생각하며 웃었다. 내 등의 험한 상처, 그 고통을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이미 3000년 전에 그 고통을 호소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반가운 이유는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3000년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 기독교의 하나님이 인민의 의지처가 되는 것은 인민의 고통을 알았기 때문이구나. 더욱이 나의 원수들에게 소리친다. 망신당하고 물러가라! 지붕위의 풀포기처럼 시들어버려라! 반드시 그렇게 되어라.

이 땅에서 살아가며 내가 겪는 고통과 내 가슴에서 넘치는 분노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이미 인간의 삶에서 3000년 전부터 그런 고통을 호소하고 신에게 의지 했다는 것은 나의 고통을 일반화 시킨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선 땅에서 고통스럽다. 자본에 의한 착취의 그늘에 사는 인민들이 모두 고통스럽다. 나만 아픈 것이 아니고, 나만 싸우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산 오늘부터 3000년이 다시 지나기 전에, 원수들에게 어떻게 복수해야 하는 것일까.

이스라일에 꺾이지 않았으니, 많은 학대에도 나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시편은 위로이고 희망이다.

 

 

2) 마르코 복음, 마태오 복음

예수의 삶은 극적이다. 매주 수요일마다 읽기 때문에 한번 읽고 다음 주 수요일이 되면 이미 스토리가 많이 전개되어 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양반의 삶이니 대략의 스토리는 알고 있어 독해의 어려움은 없고, 다만 농성장에서 읽으면 새롭다.

그가 복음을 전파하며 다닌다. 제자들을 만나고 이적을 행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산자들 앞에서 보여준다. 탐욕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의 질서를 바꾸어 병을 고치고 나누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며 인민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와 함께 착취에 기반하는 인간의 질서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서 만들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다녔던 제자들의 발걸음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고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그리고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알쏭달쏭한 지침도 있다.

 

죽었다 살아날 것을 운명으로 알고 태어난 예수의 삶이 인간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은 장면들도 나는 좋았다. 그가 번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때 거울을 보듯이 예수를 보며 나를 본다.

신의 아들이면서도 세속의 재판장에서 재판을 받을 때 그는 초라하다. 내가 재판받을 때도 그랬거든. 분명히 내가 맞는데, 나의 싸움이 올바르고 나의 주장이 정당한대 어깨에 힘주고 높은 자리에서 날 내려다보는 판사들은 늘 힘 있는 자본의 편을 든다. 당장 이기지 못하니 입 닥치고 재판을 당하는 기분을 빌라도의 추궁에 답하지 않으며 예수는 안다. 모욕적인 그 재판장에 당장 번개를 치며 빌라도를 죽여서라도 하나님의 정의를 보여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예수는 억울한 일 당하는 인간의 마음을 알 수 없었을 테지.

 

시몬의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죽음을 예감한 예수는 고민을 한다. 정말 죽어야 하나. 도망가면 안 될까. 죽음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 여자가 그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 죽은 자에게 하는 장례를 은유한다. ‘당신은 죽는 것이 맞소!’ 냉정한 그 여인의 가르침에 정수리가 뜨끔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겠지. 그것도 모르고 제자들은 비싼 향유를 낭비한다고 그 여자를 나무란다. 예수는 버럭 화가 나지 않았을까. 뭐니, 내가 죽는다는데 니네는 겨우 이깟 향유가 중요하니.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와 친한 니네는 왜 이 여인만큼도 나의 마음을 모르니.

정말 이런 느낌일 때가 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처럼 엄중한 순간이 있고, 가장 가까운 동지들조차 내 마음을 몰라주니 섭섭할 때가 있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억울하여 싸우는 자들과 벗하여 사는 우리의 삶이 팍팍할 때 예수의 삶을 보며 나의 선택과 삶의 방식을 본다. 농성장에서 만났으니 더욱 잘 보인다.

 

 

4. 농성장에서 부르는 찬송가와 기도

 

1) 찬송가 ‘뜻없이 무릎 꿇는’

내가 농성장에서 신의 뜻을 만났다면 그것은 이 노래다.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듯이

주 뜻이 이뤄지이다 외치며 사나니

 

약한 자 힘 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추한 자 정케함이 주님의 뜻이라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그 팔로 막아 주시어 정의가 사나니

 

혁명기도원이 처음 농성장에 왔을 때 이 노래를 불렀고, 노래가 너무 좋아서 농성하는 내내 부르고 다녔다. 금속노조 조차 힘이 되어주지 않을 때, 승리에 대한 전망이야 알 수가 없고, 다만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자며 당장 벌어지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피곤할 틈이 없을 때, 아무도 없는 농성장에서 무심한 시민들의 발길을 볼 때, 힘들다고 아이처럼 징징대는 언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노래를 불렀다.

 

해아래 압박 있는 곳에 팔을 들어 막아주는 정의의 하나님이 우리 농성장에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내가 약하다면 힘을 주실 것이고, 내가 강하다면 바르게 할 것이며, 내가 추하지 않도록 돌봐주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내 영혼을 편안하게 한다. 내가 선 싸움의 현장이 비탈지고 가파르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두고두고 부를 노래다.

 

 

2) 기도

기도가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절대자, 초월적인 의지의 신에게 내가 바라는 것을 기도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내 삶을 내가 가장 잘 아는데 비굴하게 누구에게 기도를 한단 말인가.

스물두번의 기도회에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었다. 오늘 기도회에서 내가 기도의 제목을 말하는 것은 나의 고통과 상태를 동지들과 나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는 과정이기도 하고 동지들에 대한 나의신뢰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른 동지의 기도제목을 듣는 것은 타인의 고통과 상태를 내가 이해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검증할 수 있는 힘이 없는데, 예를 들어 ‘다음 주에 복직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언니의 마음이 편안하길 기도합니다’, ‘산재신청 했어요. 잘 되게 해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다 같이 공감하며 함께 기도하는 행위는 쑥대밭처럼 엉클어진 마음을 정돈시키기도 하고 포기하지 않으며 싸움을 이어나가는데 힘이 되기도 하더라. 서로 걱정하고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을 솔직하게 확인하는 좋은 행위로 기도는 힘이 있다.

 

 

5. 혁명기도원이 수요일마다 왔다, 농성장이 풍요롭고 행복하였다.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닐뿐더러 인간의 의지위에 우뚝 서 만물을 창조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하물며 그 신은 남자가 아닌가. 나는 그를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농성장을 찾아온 혁명기도원이 반가웠던 이유는 다른 연대동지들이 올 때 반가운 것과 똑같다. 어려운 투쟁을 하는 농성장에 연대하러 온다는데 기독교면 어떻고 불교면 어떤가. 힘을 모아 싸우는 것을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경계는 없다. 매주 찾아오는 동지들이 반가웠다. 물론 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니, 언니를 위해서 더욱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언니의 말처럼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농성장을 위해 예비한 것이라면 더 좋은 일 아닌가.

중요한 것은 혁명기도원 동지들이 수요일마다 빠짐없이 와서 지친 언니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다는 것이다.

외롭고 초라한 우리 농성장이 풍요로웠던 것은 많은 동지들의 연대의 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한 적이 없었고 음식이 떨어져 배고플 때가 없었다. 그와 함께 서로서로 할 수 있는 마음의 표현을 하며 더불어 나누는 것이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농성장에 혁명기도원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혁명기도원이 없어도 우리 농성장은 부족하거나 궁핍하지는 안았을 것 같다. 그런데 혁명기도원이 있어서 그만큼 더 풍요롭고 따듯해 진 것은 사실이다. 고통의 현장에서 더불어 나누어 위로하며 사는 것은 사회주의자에게도 기독교인에게도 행복한 일이다. 스물 두번 혁명기도원이 우리 농성장으로 와서 197일의 농성투쟁이 풍요롭고 행복하였다.

 

다른 많은 농성장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의 마음과 영혼을 아울러 위로하는 혁명기도원의 기도회가 따듯하길 바란다. 나의 행복을 동지들과 나눌 수 있으면 더 좋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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