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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가 되지 않겠어요.

죽는 날까지 Master(Maestro?)가 되지 말자.

스스로 마스터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발전 가능성은 죽는다.

 

영원히

학생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야지.

 

배울게 또 뭐가 있을까, 두리번거리면서.

찾아봐도 없는 거 같으면

짐 싸서 떠나야지.

 

배우는 건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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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세라니?

또또님의 [반려동물을 키우는건] 에 관련된 글.

 

또또님의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놓고 오늘 와봤더니 (또또님 안녕하세요 ^^)

 

애완동물 키우는 것의 의미와 문제에 대한 얘기 끝에

'애견세'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문득, '으응? 오타? 애견새(애견과 새)=>애견세???'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단 대충 의미를 그런식으로 파악한 후 조금 더 읽어내려가자

이건 무슨 애견 키우는 인간한테 세금을 물린다는 말이잖아!

도무지 애견+세금 이라는 개념이 머리속에 전혀 없었던 내가

잠시 오타로 오해했던 것이다.

 

우리 벤은 밖에 나돌아다니는거 좋아하는데...

이제 가택연금 당하는건가? 아니면 커밍아웃시켜야 하나?

 

아마도 이런식이겠지.

 

'자진해서 손들고 나오세요~ 경비실에 신고하시면 됩니다~~

만일 6월 29일까지 신고 안하고 개기시면, 길거리 돌아다니다 재수없이 단속반에서

등록증 제시하랬는데 제시 못하면 과태료 오만원~~

한두번 말해서 안들어쳐먹으면 십만원~~

계속 개기면 반체제 반항족으로 찍혀서 응, 국보법 적용? ㅋㅋㅋ'

 

아... 또 머리가 절로 간다.

집중.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생긴다.

애견세.

일단 '견'자는 개라는 말인데.

고양이도 포함되겠지....?

햄스터는? (어머, 저는 우리집에 쥐가 살길래 밥좀 줬을 뿐이에요~~)

원숭이? (어머, 저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ㅡ,.ㅡ)

앵무새? (잠시 묵어가는 비둘긴데 심심해서 색깔좀 칠해봤소.)

장수풍뎅이? (사실 저것이 바퀴오.)

물고기? (내일 궈먹을건데 싱싱하라고 물에 넣어놨어요~)

소? (아....인도에서 방문하신 귀빈이십니다... 내일이 출국이신데, 어떻게 안될런지요.)

 

음... 문뜩 짜증나니까 전장 연동 운동이 온다...

내가 이래서 컴터만 하면 화장실을 가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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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던글에 이어붙여야지

작성중 작성중....

 

아요~ 내가 지금 글 쓸 때가 아니에요~~

 

그래두...지금 안쓰면 까먹고 나중에 아까워할거잖아 ㅜ.ㅜ

 

 

그러니까.... 아 맞다.

 

그니까, 그렇다고 너무 억울해할 건 없어요. 해질녘, 촛불들이 한창 물대포 숫자 세며 우비 입고 마스크 쓸 때, 해 졌다고 깃발 내리고 뿔뿔히 흩어져 뒷풀이 가시던 그 '기존'분들한테 촛불들도 몇번은 '저분들도 피곤하시겠지...'하고 이해했었으니까요. 지원군이 왔다고 좋아하고 기대하다가, 막상 결전이 눈앞에 닥치자 영문도 모르고 굿바이 해야했던 촛불들,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다음은 떠오른 꽁트.

 

촛불: 아... 정말 미안해요. 당신들이 이렇게 외롭고 힘들게 싸우고 있었는지 몰랐어요. 난 그동안 내 살기에만 급급했네요.

 

운동권?: 그래요 많이 외로웠어요. 님도 이제 아시겠죠? 우리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이제 함께해요~

 

촛불: 네! 그래요! 이제 외로워하지 마세요! 우리가 왔잖아요! (순간 촛불이 하나가 아니라 개떼처럼 몰려온다)

이명박을 때려 잡자고요! 우리, 함께해요~~!!! (^0^)

 

운동권?: 네? 아.... 저기.....요...... 이러지 마세요.... 갑자기 이러시면 제가 '당황'스럽잖아요;;;;;

 

촛불: ㅡ,.ㅡ ??? 네? 그럼.... 언제....

 

운동권?: 아... 저 쫌 준비좀 되거든...;;;

 

촛불: (아 이거 뭥미?) 아, 저, 근데요, 지금 안하면 안될거같은데.... (ㅡ.ㅡ)

 

운동권?: 아, 님하, 그것 말고도 할게 많답니다~ 우리가 여태까지 외롭게 해오고 있던 일들~

그것부터 같이 해나가면 나중에 함께 명박이도 때려잡을 수 있을거에요~

 

촛불: 정말요?

 

운동권?: 그럼~요~~! (속으로 케당황-이걸 어쩐다..... ;;; 아 그냥 지들끼리 하지... )

 

촛불: 네... 그럼 같이 해요.

 

 

얼마 후. 개실망한 촛불

 

촛불: 이건 뭐 살기 꿉꿉해 죽겠네! 그때 쥐새끼 꼬랑지를 잡아서 척수를 확 뽑아버렸어야 하는데!!  그때 그넘들 믿는게 아니었어!

 

........

대략 문학적 감성 zero인 내가 쓰니까 꽁트가 꽁치가 되었구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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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정당건설운동 ▣ 부르주아 여성운동 척결 - 부르주아 여성운동이 남성을 상대로 싸우는 데 반해,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은 남성과 손잡고 자본가와 싸운다"

http://go.jinbo.net/mybbs/view.php?board=cool&id=33568

 

클라라 체트킨의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부르주아 여성운동과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분하여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을 부르주아 여성운동으로부터 분리,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문제는 계층별로 서로 다르다면서 부르주아 여성운동이 남성을 상대로 싸우는 데 반해서,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은 남성과 손잡고 자본가와 싸운다고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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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6

'♪도서관에 가면~ 책도오 있고, 책도오 있고, 책도오 있고~.... ♬'

읽고 싶은 책이 너무너무 많다.

시간은 없고

할일은 따로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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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강내희,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연대해야"

원문: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0815

 

문화과학 56호(08년 겨울호), '생태주의' 특집

유영주 기자 www.yyjoo.net / 2008년12월16일 14시12분

미국과 유럽의 선진자본주의 국가가 겪는 경제위기,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화. 이런 정세 배경을 염두에 두고 현 시기 문화운동의 진단과 과제를 제시한 글이 ‘문화과학’ 56호(2008년 겨울호)에 실렸다.

 

강내희 중앙대 연구자는 ‘현 단계 문화운동의 방향과 과제’에서 한국의 문화운동이 사회운동의 쇠락과 함께 해온 과정을 짚고, 신자유주의 자본 공세와의 연관성, 문화지형의 변화, 문화적 공공성 수호와 대안문화, 문화주체의 형성 과제 등을 자세히 밝혔다.

 

강내희 연구자는 이번 글에서 특히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연대의 필요를 강조하고, 다양한 코뮌 형성과 교육운동에의 개입 등 이명박 정부 등장 후 문화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  강내희 중앙대 교수. 사진/ 참세상 자료사진

서두에서 신자유주의 자본 공세와 문화운동의 연관성을 강조한 강내희 연구자는 “사회에 대한 자본의 지배와 독점이 강화되면 사적 이해가 우선됨에 따라 사회의 공공성은 붕괴되거나 해체될 수밖에 없으며,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다”며 “(문화운동에서) 신자유주의가 문제인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기반들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접근했다.

 

오늘날 한국의 문화지형을 지배하는 가장 큰 힘을 ‘소비자본주의’에서 찾은 강내희 연구자는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사회적 부의 상향 이동이 일어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대중이 빚을 지면서까지 소비를 하기 때문”으로, “지금의 소비자본주의는 대중에게 소비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며 폐단을 지적했다.

 

강내희 연구자는 “대중문화도 거의 예외 없이 소비자본주의에 포획된 문화산업의 굴레 속에 빠져 비시장적 활동의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아울러 “과거 대안적 삶의 양식을 추구했던 대학문화도 소비문화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며,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방향으로 문화운동을 전개해야 할 지를 물었다.

 

문화운동이 진보적일 뿐 아니라 변혁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 강내희 연구자는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은 지금은 자유주의적 문화운동도 진보적일 수 있을 것”이나 “자유주의가 보수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면서도 사회주의와는 곧잘 적대적인 관계를 맺었고, 사회주의를 억압하기 위해서는 언제라도 보수주의와 힘을 합치곤 했다”며 자유주의의 과거 경향성을 경계했다. 아울러 “문화운동이 진정으로 변혁적이 되려면 자유주의가 보수주의와 연대하는 흐름을 차단하고 사회주의와 연대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며 문화운동에 있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연대의 필요를 언급했다.

 

문화적 공공성 강화 의제에 대해 강내희 연구자는 “사회적 공유(commons)를 지키는 운동의 일환”으로 언급하고, “도서관이나 박물관, 미술관, 문화센터 등 우리가 통상적으로 문화적 활동의 공간으로 간주하는 제도, 시설”과 함께 “공공의료, 물이나 가스, 전기 등 에너지, 각종 공기업 등도 사적 자본의 횡포 앞에 비인간적 삶을 살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자원”도 대상으로 간주했다.

 

다만 “공공성을 수호하는 문화운동은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신자유주의의 침탈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수세적 성격을 띤다”며 “자본주의 극복, 즉 변혁 운동으로서의 문화운동은 ‘대안문화’를 구성하는 것”이라며 인식을 확장했다.

 

대안문화에 대해 강내희 연구자는 “자본주의적 삶을 극복한 형태여야 할 것이며,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적 또는 코뮌주의적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의했다.

 

강내희 연구자는 “오늘 이미 문화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 지식인, 예술인, 문화전문가 등이 해야 할 일은 이들 진정한 대중과 만나는 통로를 마련하고, 대중으로부터 대안문화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일”이며 “이런 작업을 하려면 기왕의 문화운동 활동가 자신, 즉 우리가 먼저 ‘좌파’가 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  문화과학 56호(2008년 겨울호), '생태주의'를 특집으로 다뤘다.
좌파로서의 문화운동이 우선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일상적 삶의 의미를 소비에서 찾게 만드는 소비자본주의적 삶의 방식, 사회적 공유를 사적 소유 대상으로 만들어내는 부동산 투기, 지식과 능력의 사회화보다는 소비적, 사적 소유만 부추기는 교육 현실에 대한 개입 전략을 세우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강내희 연구자는 이를 위해 “첫째 소비자본주의와 부동산 시장에 대한 비자본주의적, 사회주의적, 코뮌주의적 운동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공유의 기반을 만들어내는 운동, 다양한 코뮌 형성 운동을 발전시킬 필요”와 “둘째, 교육운동을 현 단계 진보운동의 전략적 운동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 등 크게 두 가지 영역에의 개입을 강조했다.

 

한편 문화과학 56호(2008년 겨울호)는 특집 주제로 ‘생태주의와 맑스주의’, ‘생태주의와 사회운동’을 다뤘다. 좌담 ‘한국의 녹색운동과 생태주의 사상의 성과와 전망’에는 강수돌, 박승옥, 주요섭, 황대권 등이 자리를 같이 했다.

 

이동연 편집위원은 “‘문화과학’이 한동안 강조했던 생태문화코뮌의 이론적 구체성을 위해서도 생태주의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검토는 시기적절했다고 본다”며 “두툼한 책을 엮으면서 겨울로 진입하는 날씨의 싸늘함에 견딜 수 있는 ‘지적 훈훈함’을 느낀다”며 편집 소회를 밝혔다.
진보넷 아이디가 있으면 누구나 참세상 편집국이 생산한 모든 콘텐츠에 태그를 달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단어, 또는 내용중 중요한 단어들을 골라서 붙여주세요.
태그: 자유주의 / 강내희 / 문화과학 /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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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 사회주의정당건설운동 ▒ 노동해방과 여성해방과의 관계 - 노힘의 변혁전략은 민노당 진보신당과 별반 차이없는 개량주의 노선으로 비친다

원문: http://go.jinbo.net/mybbs/view.php?board=cool&id=33532

그렇기 때문에 나로서는 현재 페미니즘류나 노힘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의 관계를 하나로 보이는 것이고, "계급모순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여성"문제라고 표현하는 노힘의 주장과 사고들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건설 토론회 발제문에서 보여준 노힘의 변혁전략이 애매모호하고 불철저한 개량주의의 모습으로, 기존 민노당이나 진보신당과 별반 차이가 없는 노선으로 비치는 것이다.


[노동해방실천연대 펌]

구체적인 역사적 실례를 통해 본
노동해방과 여성해방과의 관계

대리운전노동자


김광수 동지의 글*과 노힘 여성동지들의 문제제기로 발단이 된 해방연대 사이트 내 여성해방 논쟁을 지켜보며, 나의 견해를 몇 가지 피력해 보고 싶다.

* 노힘아가씨와 민투위 건달들
http://www.pwc.or.kr/webbs/view.php?board=pwc_5_1&id=22943&page=11



우선 나는 논쟁을 지켜 보며, 내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일치하는 주장을 펴는 글들에서는 공감도 많이 했지만,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내용들을 술술 풀어내는 글들을 보며 내가 가지고 있는 남성으로서 부족한 면들을 많이 배우기도 했다.

우선 나는 여성해방문제에 대하여 '주시자'님의 견해*에 기본적으로 공감과 동의를 하며, 같은 입장을 지향한다.

* '아류 페미니즘' 척결해야
http://www.hbyd.org/zboard/view.php?id=hbyd_freeboard&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023



내가 생각하는 여성해방문제를 내 나름대로 한 번 정리해 보겠다.

나는 여성해방문제를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이란, 여성억압의 기원문제를 사회적 역사적(생물학적 아니라) 문제로 보는 데서 기본적으로 출발한다.

이 여성억압의 기원문제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이 매우 중요한데, 이 기원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후 여성해방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상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원 문제를 앞서 지적한 대로 역사적 사회적 문제로 보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에서 벗어난 것이나 다름 없다.

그 다음, 페미니즘류와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이 갈라지는 지점이 기본적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기원문제에서 비롯되지만, 항상 여성해방 논쟁의 중심에는 여성문제가 계급론으로 환원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문제로 제기된다. 이번 해방연대 사이트 내의 논쟁도 중심은 이 문제이다.

그런데 나는 이 문제를, 우리들이 앞서 지적한 여성억압의 기원문제를 제대로 이해해 낸다면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문제인데, 다른 동지들은 특히 노힘 동지들(내지는 지지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 봤다. 왜 오늘날 여성해방문제가 논란이 많고 입장이 다양한가를............


나는 이 문제를 이렇게 본다. 즉 페미니즘류가 생각하는 사회 변혁의 상(像)과 혁명적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자들이 생각하는 변혁의 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회 변혁의 상이 다르기 때문에 여성해방문제에 대한 접근이 다른 것이다.

나는 이 문제의 해답을 인류 역사상 노동자 권력이 들어섰던(잠시나마)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에서 찾고자 한다. 인류 역사적으로 경험한 구체적인 역사적 실체에서 우리들의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이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정과 여성해방문제의 구체적인 실체를 살펴보기 앞서 먼저 상기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혁명적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자들의 다음과 같은 기본 인식이다.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 사회적 대변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회의 진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정확히 측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칼 마르크스, <쿠겔만 박사에게 보내는 편지>, 1968.12.12.)

"모든 해방운동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혁명의 성패를 좌우는 것은 여성이 혁명에 얼마나 참여했는가이다."(레닌)

"한 사회의 여성,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태도에 의해 그 인간 사회를 평가할 수 있다...삶의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여성의 시각으로 그것을 보는 것을 배워야 만 한다."(트로츠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지금부터 아래 [ ] 안에 있는 내용은 하니 로젠버그, <소련여성과 페레스트로이카> (한울,1991)을 요약발췌한 것이다. 여성해방과 노동해방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논증하기 위해, 그리고 노힘이 주장하는 "계급모순으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문제"라는 인식이 왜 문제이고 틀린사고인가를 살펴보기 위해 좀 장황하게 인용하더라도 양해 바란다.)


[1917년 세계여성의 날(2월 23일)에 페트로그라드 여성들은 파업을 강행하기로 결정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당시에는 전쟁 관계로 여성노동자들의 비중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시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다던 볼세비키 조차 이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냉담했고, 당시 볼세비키 당 페트로그라드 지역위원회 지도자였던 까이우로프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점이다.

볼세비키가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에 팜플렛을 통해 지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틀이 지난 2월 25일에서야 였다. 이것은 혁명적 지도는 때로는 상황에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트로츠키는 훗날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탁월하게 묘사했다.

"2월 혁명은 그 자신의 혁명 조직의 저항까지도 극복하면서 아래로부터 시작되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중에서도 가장 억압받고 있던 여성 방직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혁명의 불을 당겼다. 그들 중에는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군인의 아내들도 많았을 것이다. 빵을 사기 위해 서야 했던 긴 줄이 최후의 자극이 되었다. 그날 약 90,000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동참했다. 여성노동자들과 주부들은 지방희회로 몰려가서 빵을 요구했다. 그것은 숫염소에게 젖을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시 곳곳에 붉은 깃발이 나부꼈고 깃발에 적힌 구호들은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빵이요, 원치 않는 것은 전제군주와 전쟁임을 보여주었다. 여성의 날은 성공 속에 지나갔다.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희생자는 없었다. 황혼이 깃들일 때까지도 그날의 시위가 잉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러시아혁명사, 1934)

운동이 성공하려면 군인들을 자기 편으로 끌여들어야 했다. 그 일 역시 여성들이 아주 훌륭하게 영웅적으로 해냈다. 트로츠키는 말했다. "그들은 남자들보다 더 대담하게 군인들 앞으로 걸어가서는 총을 손으로 잡은 채 거의 명령하듯이 호소했다. '무기를 버리고 함께 합시다.'" 2월 27일 밤이 되자 황실 수비군 150,000명이 몽땅 탈영했다. 같은 날 노동자 소비에트 대표자회의가 구성되었고, 3월 3일 짜르는 물러났다. <프라우다>는 찬양했다. 여성 만세! 세계 여성 만세! 세계 여성의 날, 가장 먼저 폐트로그라드 시가지로 뛰쳐나온 것은 여성이었다.....여성 만세!

대기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계약서, 법률 서적, 블랙리스트는 갈가리 찢겨 나갔다. 여성 노동자들이 가장 즐겨 썼던 방법 중의 하나는 사장(자본가!)을 바퀴가 하나 달린 손수레에 싣고 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멋진 상징이 아닐 수 없었다. 항상 노동자들을 모욕하던 자에게 그 모욕을 되돌려 준 것이다. 비보르크 방적공장 사장은 노동자 총회 자리에 나타나 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지 설명하려고 애썼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불경스럽게도 그를 번쩍 들어 수레에 싣고서 수로(水路) 쪽으로 끌고 갔다. 둑 가장자리에서 수레를 멈추고 임금인상 동의서를 내밀자 그는 벌벌 떨면서 서명했다.

2월 혁명이 시작되고서 '공장위원회'들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 주역은 대개 월급이 높은 숙련 노동자들이었다. 공장위원회는 당시의 노동자계급 내부 관계의 축소판이었다. 공장위원회 위원들은 6개월마다 선출되었는데 노동자들이 소환을 결정할 경우 그 결정에 따라야 했다. 최종 결정권을 지닌 최고 기구는 자주 개최되던 총회였고 총회는 자신이 권리를 아낌없이 행사했다.

공장위원회의 첫번째, 경제적 요구는 8시간 노동, 최저생계비 보장과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투쟁했던 기간에 대해서도 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여성들은 특히 8시간 노동 관철에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노동시간은 여성은 7,8시간으로, 남성은(1시간의 연장 근로 시간을 포함하여) 8,7시간으로 놀랍게 단축되었다.

그와 동시에 처음에는 군수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그 다음엔 방직과 그밖의 여성 사업장에서 구성된 공장위원회 안에서 볼셰비키의 영향력도 성장해 갔다. 방직공장들에서 공장위원회가 처음 결성될 당시에는 위원들의 대부분은 당원이 아니었다. 예컨대 스코로호트 신발공장에는 40명의 위원이 있었는데, 단 한 명의 여성만이 볼셰비키 당원이었다. 그리고 코제브니코프 방직공장의 공장위원회 의장은 당원이었으나 나머지 5명의 여성과 2명의 남성은 당원이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5월경에는 볼세비키 당원과 그 지지자들이 대부분의 공장위원회뿐 아니라 페트로그라드 노동조합 평의회에서도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9월에 열린 최초의 전국 방직 노동자대회에서는 볼세비키가 절대 다수였다.

어떠한 혁명에서든 노동자 지도부는 노동자계급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단결에 힘쓴다. 그것을 위한 주요한 조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상대적으로 많이 올림으로써, 즉 더 큰 평등주의로 나아감으로써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를 크게 줄이는 것이다. 특히 여성이 그러한 조치 덕분에 많은 이익을 보았다. 1917년 2월부터 5월에 이르는 잇따른 파업의 결가로 숙련공의 임금은 59%, 미숙련공의 임금은 125% 인상되었다. 페트로그라드 종이공장 노동자들은 남성 214%, 여성 234%의 임금인상에 성공하였다.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위한 또 다른 조치는, 공장위원회를 만든 숙련노동자들로 하여금 여성 노동자들의 폭발적이고 격렬한 투쟁성을 조직적인 노동운동으로 이끌도록 한 혁명가들의 노력이었다. 여성 사회주의자들도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1917년 4월에 50여 명의 노동자계급 여성이 만나 여성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였다. 레닌은 국내로 돌아온 4월에 여성내에서의 정치할동에 대한 중앙위원회의 지지를 구하는 데 힘썼다.

주로 얼마 안 되는 사회주의자들에 의한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놀랄만했다. 혁명이 시작된 2월에는 거의 황무지 상태였던 방직공장, 식료품 공장 등에서 거의 빠짐없이 조합이 생겨났다. 실제로 여성의 조합 참여율은 남성의 경우보다 높았다. 식료품 공장과 방직 공장에서 여성의 비율은 66~69%였으나 전체 조합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70~80%에 이르렀다.

혁명을 지키기 위한 공장 민명대가 창설되었고, 여성 노동자들도 순번에 따라 돌아가며 민명대 일과 공장 일을 했다. 그러나 혁명이란 한들 몇 백 년에 걸친 뿌리 깊은 편견들을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죽은 세대들의 낡은 습관이 산 사람들 머리에 악몽처럼 매달려 있다."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후진적이며, 조직이 안 돼 있고, 계급의 진보를 방해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노동자 조직을 대변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고질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노동자들 또한 그러한 편견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노동자 조직을 대표하는 여성 지도자의 수는 여전히 적었다. 방직 노동조합 평의회 대표 15명 중에 여성은 2명뿐이었다. 트라이앵글 고무 공장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68%가 여성이었는데도 공장위원회 위원 25명 중 여성은 2명밖에 되지 않았다. 페트로그라드 전체 노동력의 절반이 여성 노동자였건만 3월 26~27일에 열린 소비에트 대회에 참석한 4,743명의 대표 중 여성 대표는 259명이었다. 다른 도시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여성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행위가 횡행했다. 파이프 공장의 어느 여성 노동자는 이렇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후진적인 노동자들은....여성이 일반 대중을 지도,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한다. 그들은 대표로 선출된 여성 노동자들에게 동물에게 하듯 손가락질을 하면서 '저기 우리 대표님께서 지나가신다'라고 비꼰다."

2월혁명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근본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파업을 벌이기도 하고 푸틸로프 화학공장을 비롯한 몇몇 공장에서는 저임 노동자들의 파업이 저임 노동자 대표자 대회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남녀 차별이 워낙 뿌리 깊었던 탓에 볼세비키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실현되지 못했다. 실업이 점차 증가하자 몇몇 공장에서는 여성을 과잉 인원으로 몰아 쫓아내려고 들었다. 볼세키비는 그것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 투쟁을 벌였으며 그러한 투쟁을 계기로 볼세비키의 영향력은 크게 신장되었다.

10월이 가까워질수록 노동조합에 가세하는 후진적 노동자들의 수는 늘어만 갔다. 여름 동안에는 세탁소, 식품 조달 공장, 염색 공장 등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그들 대부분이 후진 노동자였다. 경험도 전통도 없었지만 그들은 스스로 '파업위원회'를 조직하였고, 다른 파업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광범한 요구들을 자신있게 내걸었다. 노동자의 힘과 자신감이 강해질수록 노동자들은 점점 더 혁명의 성과물들을 빼앗기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임시정부에 대한 환상을 떨쳐버리게 되었다. 혁명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계속되었고 자본주의 또한 계속되었으며, 물가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기만 했고, 어떠한 개혁이든 파업을 통해서만 쟁취될 수 있었다.

10월혁명의 산물로서 마침내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가 세워졌다. 트로츠키는 말했다.

"혁명은 무엇보다도 인간성에 대한 자각이었다....과거에 2중 3중으로 노예살이를 해 온 여성이 개인과 사회의 진보를 향한 길로 나서도록 힘과 수단을 다해 돕지 않는 혁명은 혁명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권력을 장악한 볼세비키의 임무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후진적인 대중을 일깨워 스스로가 사회체제를 운영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레닌의 유명한 문구, "모든 요리사가 지배하도록" 처럼 말이다.

"모든 해방운동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여성이 혁명에 얼마나 참여했는가이다." 레닌이 말했듯이 혁명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잣대는 여성의 참여도이다.

혁명 이후 며칠 동안 많은 포고령이 선포되었다. 거대한 나라 러시아는 함흑의 시대로부터 가장 진보한 사회체제로 도약했다. 혁명 첫 해 동안 발표된 여성 관련 법령들은 여성의 권력를 크게 신장시켰다. 여성의 선거권이 완전히 보장되었고(당시에는 여성의 완전한 선거권을 갖고 있던 나라는 노르웨이와 덴마크 뿐이었다.), 가장의 권위주의에 종지부가 찍히는 한편 이혼의 권리가 확립되고, 시민법에 의해 결혼 관계가 자유 의사에 의한 관계로 변화되었으며, 사생아와 적자 사이의 차별이 금지되고, 동일임금(마침내!), 동등한 취업권, 출산 휴가가 주어졌으며, 간통과 근친상간과 동성연애를 형법상의 범죄로 다루지 않게 되었다.

1920년에 세계 최초로 임신중절권이 확립되었다. 1923년에는 몇몇 과학자들로 피임 연구를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피임 기구가 각 병원, 조산원, 여성 상담소에 비치되었고, 약국에서도 그것을 판매하게 되었다.

노동에 관한 법령도 광범하게 선포되었다. 혁명 4일째인 1917년 10월 29일 8시간 노동제가 공표되었으며, 여성에게 8시간 이상의 노동을 시키는 것이 금지되었다.

여성과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한 포고령도 선포되었다. 여성과 미성년자를 유해, 위험 작업이나 지하작업, 야간작업에 종사시킬 수 없게 되었고 시간외 노동은 규제되었다.

잇따른 포고령들이 집약되어 노동법으로 성문화되었다. 1922년의 노동법은 노동자 일반과 특히 여성 노동자의 해방에 대한 열망에 활력을 부여했다. 노동법의 목적은 여성들이 노동을 통해 남성과 평등한 존재로, 또 독립된 존재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었다. 여성해방이야말로 노동법의 으뜸가는 목표였고 생산의 필요성은 그 다음이었다. 노동법은 살아 움직이는 대중의 참여에 힘입어 성취되었고, 훈련 프로그램과 사회보장제도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1920년대에 마련된 모자 복지를 위한 사회보장 규정은 그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것이었다.

산전 8주, 산후 6~12주의 유급 출산휴가제도가 실시되었을 뿐 아니라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신생아 수당에다 한 달 월급의 1/4 해당하는 보육 수당까지 받게 되었다. 젖먹이를 둔 엄마에게는 3시간 30분마다 30분씩 적을 먹일 수 있는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소련이 제1차 세계대전과 내전으로 페허가 되었음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조치들은 사회주의적 휴머니즘의 놀랄 만한 위업이 아닐 수 없었다.

1923년 11월 14일에 노동인민위원회와 최고경제위원회가 내린 지시에 의해 4.1kg을 초과하는 짐을 운반하는 일만 하는 작업에 여성을 고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여성의 정규 작업과 직접 연관된 경우에 한해서, 또 운반작업이 하루 노동시간의 1/3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최고 16.4kg까지의 짐을 운반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 보호법이 실천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대규모 감시기도 설치되었다.

여성을 옥죄는 가정 내 환경에 대해서도 가차없는 공격이 가해졌다. 레닌은 이러한 운동들을 지지하면서 가사노동에 얽매이게 되면 잠재능력을 발휘할 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성들은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혁명의 대의를 이해하거나 그것에 동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콜론타이는 여성의 삶에서는 '부엌과 결혼의 분리'가 '국가와 교회의 분리'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위 '여성의 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공공시설이 만들어졌다. 조산소, 탁아소, 세탁소 등이 그것이다. 미혼자와 부부가 함께 살 수 있는 공공주택들이 지어졌는데, 그것들은 사설 아파트보다 우수하였다. 1919~1920년에 페트로그라드 주민의 90%와 모스크바 주민의 60%(총 1,200만 명)가 공동식당에서 식사했다!

제정 러시아에서 만연했던 매춘도 혁명 이후 모습을 감추었다. 새로운 도덕적 분위기는 인간의 존엄성을 높여 주었고 성을 사고 파는 행위는 근절되었따. 부르주아지는 배격되었고 그들의 돈은 몰수되었다. 매춘 여성은 계급사회의 피해자로 규정되어 이전처럼 범죄자 취급을 받지 않았다. 레닌이 말했듯이 "그녀들이 생산적 노동으로 복귀하여 사회경제 속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다. 매춘 여성들을 위한 협동작업소들이 모스크바, 페트로그라드 등의 도시에 세워져, 그녀들에게 바느질과 그밖의 기술을 가르쳤다. 그녀들은 지속적인 검진을 받았고 성병 퇴치를 위한 캠페인이 강도 높게 전개되었다.

볼셰비키는 여성을 일깨우고 지도할 수 있는 조건들을 창출하는 한편 그를 위한 위한 조직으로서 당내에 여성분과(제노텔)를 설치하였다. 제노텔의 초대 의장은 이네싸 아르망이었고 그 다음이 콜론타이였다. 제노텔은 1918년 11월에 열린 여성대회에 힘입어 탄생했다. 그날 대회는 예상된 300여 명보다 훨씬 많은 1,147명이나 참석한 가운데 열띤 분위기 속에서 성황리에 치러졌으며 레닌을 비롯한 당 핵심 인사들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제노텔은 여성의 정치 참여를 반대하던 과거의 편견에 영향을 받아 1920년까지 7,4%에 불과했던 볼세키비 내 여성 당원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지역에서 전국에 이르기까지 각급 수준의 대표자 회의를 통해 당원 아닌 여성들이 공공 관심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 역시 제노텔의 목표였다. 되도록 많은 여성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되는 가운데 노동자 열 명에 한 명, 가정부부와 농민 백 명에 한 명꼴로 대표가 선출되었다. 대표로 뽑힌 여성들은 한 달에 두 번 회합을 갖고 훈련된 당원의 지도하에 정치학습을 했다. 그것은 거대한 사업이었고 제노텔은 그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지금까지 살펴 본 것이 구체적인 사회변혁기에 나타난 노동해방 문제와 여성해방 문제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인 하나의 실체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여성해방문제를 결코 노동해방문제와 분리해 사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둘은 '결함된 하나의 과정'이었다.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보여준 러시아 여성노동자들과 선진적인 러시아 노동계급의의 단결과 투쟁의 힘,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여성해방의 상(像)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내용들이었다. 머리 속으로 관념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닌, 오로지 실천적 투쟁을 통해서만 만들어내 낼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들은 노동자권력의 쟁취없이는 상상조차 살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노동자권력만이 그러한 혁명적 여성해방의 내용을 담보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또한 주목해야 할 점은, 1917년 10월 노동자권력을 쟁취했다고 해서 '계급'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란 '계급'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당연히 노동자권력이 쟁취가 곧 여성해방의 완결이 아니라는 것이다.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사회적 생산력이 높아져 나갈 때 계급(class)이 국가(역사적 산물로서의 state)과 함께 사라져 갈 것이며, 잔존하는 여성억압 내지는 차별의 문제가 점차 사라져 갈 것이다. 그래서 여성억압 문제의 기원문제를 계급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사회적 역사적 관점이라고 보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이 일관성이 있는 주장이고 유효한 것이다.


지금 페미니즘류나 노힘이 보지 못하는 것은, 사회주의 변혁에 대한 구체적인 상(像)이다. 다시말해 사회주의 변혁이라는 것, 노동자권력의 쟁취라는 것이 기존의 (자본주의적) 사회적 관계들이 온존(혹은 부분적인 변화)한 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이들은 사회주의 변혁 즉 노동자권력 쟁취과정과 여성해방문제를 분리시켜 별개의 과정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의 단적인 하나의 예를 가지고 얘기해 보자. 즉 앞에서 살펴본 러시아 혁명과정에서, 가사노동의 예를 보자.

"1919~1920년에 페트로그라드 주민의 90%와 모스크바 주민의 60%(총 1,200만 명)가 공동식당에서 식사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 우리들의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상상해보자. 감히 상상이나 되는가? 페미니즘론자들이 여성해방문제를 주장하면서 감이 이렇게 까지 생각해 보았는가? 그리고 문제는 인류 역사상 실제로 이런 현상이 나타났었는데도, 사회주의 변혁(혁명) 또는 노동자(민중-노힘의 표현)권력 쟁취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는 점이고, 그러면서 "계급적 여성주의로 설명되지 않은 특수성" 운운하며 계속해서 동어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사회주의 변혁의 像이란 원래 이런 것이다.

다시말해 이러한 형태의 가사노동 육아노동 등의 사회적 수반 없이는 노동자 권력의 쟁취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사노동해방없는 여성해방 있을 수 없고, 여성해방 없는 노동해방, 노동자 권력쟁취는 있을 수 없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그런 것들이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앞에서 하나의 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사회주의 변혁(곧 노동자권력의 쟁취)의 상(像)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로서는 현재 페미니즘류나 노힘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의 관계를 하나로 보이는 것이고, "계급모순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여성"문제라고 표현하는 노힘의 주장과 사고들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건설 토론회 발제문에서 보여준 노힘의 변혁전략이 애매모호하고 불철저한 개량주의의 모습으로, 기존 민노당이나 진보신당과 별반 차이가 없는 노선으로 비치는 것이다.


(이 글은 지난번 사노련 사이트에서 내가 노힘의 당건설 토론회 발제문에 대한 문제제기 글과, 그 글에 대해 바로 그 아래 '노동자'라는 이름(나는 '노동자'라는 분이 글의 내용으로 보아 노힘의 핵심관계자로 파악하고 있다)으로 답글을 달아 반론을 폈는데, 이글은 그 글에 대한 나의 재반론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아울러 밝힌다.)


[본문 출처]
http://www.hbyd.org/zboard/view.php?id=hbyd_freeboard&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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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청소년 인권선언

블로그 써핑하다가 발견한 청소년 인권선언 초안.

읽어 내려가는데, 등줄기가 싸~ 하더니, 머릿가죽이 다 저릿저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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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벗어난 지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청소년 시절에 나의 인권을 너무 당연히 포기하고 살았더랬다.

인권선언에 나오는 내용 중 단 1할도 내가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조차 못하고

그 길고 소중한 시간을 보내버렸다.

그리고, 어른들에 의해 주입된 잣대를 나의 친구들에게 들이대며,

가차없이 그들을 불량청소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어른과 선생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비난하고 경멸했다.

나는 이상한 존재였다. 분명 기존 질서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던지며

남들은 안하는 쪽으로다가 요상하게 반항을 하기는 했지만,

문제아로 불리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모범생 범주에 들어서였는지 남들이 받는 탄압은 별로 당해본 기억이 없다.

난 또 그걸 이용해 은근히 시위를 했고

선생들도 그런 나를 놔두고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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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권선언들이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감동과는 다른,

죄책감과 사죄 해야 한다는 기분이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

그 시절 나의 권리를 찾겠다는 생각을 못했던 부끄러움에 더해,

마음속으로는 인권 수탈자의 편에 섰던 기억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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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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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청소년 인권선언 (초안) =================

1. 청소년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인간으로서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어. 청소년이라고 해서 누리지 말아야 할 인권 따윈 없다구!

  ♪ “미성년자”라는 말은 청소년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말이야. “미성년자”라는 말을 사전에서 지워버리자!

  ♪ 나이가 적다거나 학생이라는 등의 이유로 차별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말라우~

  ♪ 처음 만나서 나이 좀 많다고 곧장 반말하거나 막 대하는 건 정말 ㅤㅂㅞㄺ이야.

  ♪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가 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니야. 청소년이 다 학생이라고 생각하는데, 탈학교 청소년이라고 해서 문제아라고 낙인찍는 당신이 바로 문제라오. 또한 청소년들에게는 학교에 다니는지 여부를 비롯해서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어.


2. 청소년은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행동할 권리가 있어.

  ♪ 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의견을 표현하거나 시위나 집회나 점거를 하거나 수업거부나 시험거부나 등교거부나 가출 등등의 파업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권리야.

  ♪ “학생의 본분”, “자식의 본분” 같은 말로 우리의 행동을 제약할 순 없어.


3. 청소년에게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어. 우리를 위한다는 핑계로 니들 맘대로 하지 말고 우리의 의견을 좀 존중하란 말야!

  ♪ 나의 삶의 주인은 나야.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게 조언을 할 수도 있지만, 직업이나 가치관을 비롯해서 우리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살지 결정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고, 우리는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어.

  ♪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거짓된 핑계로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하라! 찜질방, 게임방, 노래방 등에 10시 이후에 출입을 금지하거나, 청소년통행금지 거리를 지정하거나, 셧 다운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청소년 보호가 아니라 청소년의 행동에 대한 통제라구!

  ♪ 만일 이 사회에 위험하거나 유해한 것들이 있다면 청소년에게만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워야 해.

 

4. 청소년들은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결정할 때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해.

  ♪ 교사, 교장, 교육감, 지방자치단체, 국회의원, 대통령 등 청소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인간들을 선택할 수도 탄핵할 수도 있어야 해.

  ♪ 우리와 관련된 일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의견을 반영하고 직접적으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해. 시늉만 하지 말고 우리의 의견을 실제로 충분히 반영하시오!

  ♪ 교칙이나 집안에서의 규칙 등을 정할 때 청소년 당사자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어야 해. 그렇지 않은 것들은 다 없애!

  ♪ 청소년에게는 성탄절 씰이나 수능 떡값 등의 성금을 강제로 내지 않을 권리가 있어.

  

5. 청소년은 생활하는 데 여러 가지 것들을 사회로부터 보장받을 권리가 있어. 돈을 쓸 때도 다른 사람을 대리인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 쓸 수 있어.

  ♪ 돈이 없어서 밥을 못 사먹거나, 교통비가 없어서 가고 싶은 곳을 못 가게 되거나, 난방비가 없어서 추위에 떠는 일 등이 생기지 않도록 충분한 사회적 보장이 있어야 해.

  ♪ 먹고 살기에 필요한 적절한 돈을 벌 기회가 박탈당하지 않아야 해. 어리다는 이유로 돈을 벌지 못하게 하거나, 자신이 번 돈을 남에게(부모 등등) 맡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해. 그리고 이런 것들을 사회에서 보장을 해주어야 하는 거라구! 알겠냐!


6. 청소년은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일하는 목적이 생계를 위한 것이건 다른 용도를 위한 것이건 상관없이 청소년들의 노동은 존중받아야 해.

   ♪ 청소년 노동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부당해!

   ♪ 노동을 하는 청소년에게는 안전하고 좋은 노동환경에서 적절한 임금과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고, 착취를 당하지 않아야 해.

   ♪ 청소년에게는 노동 조건을 바꾸기 위해 행동할 권리가 있고, 이런 행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선 안 돼.

   ♪ 청소년을 강제로 동원해서 노동시킬 수 없어. 예를 들면, 봉사시간을 채워오게 하거나 다른 강압적인 방법으로 봉사활동이나 참여하고 싶지 않은 행사에 강제로 참석시켜서는 안 돼.


7. 청소년들은 적절한 주거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해.

  ♪ 청소년들이 사는 곳은, 살만한 넓이와 시설이어야 하고, 건강에 나쁘지 않아야 하고, 가능한 한 청소년들이 살고 싶어 할 만 한 곳이어야 해.

  ♪ 쫓겨나서 살 곳이 없을까봐 다른 사람들(부모 등등)의 일방적인 명령을 들어야 하거나 인권침해 등을 당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해.

  ♪ 가출은 청소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 만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적극적인 표현 방식일 수 있어. 청소년들이 원하는 독립적인 주거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야 해.


8. 우리의 사랑과 성적 행위를 가로막지 마!

  ♪ 청소년에게는 나이와 성적 지향(동성애, 이성애 기타 등등),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짝사랑하고 연애하고 성적인 생각과 행동들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 우리는 성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 권리가 있어. 성은 청소년이 알아서는 안 될 비밀스런 분야가 아니야.

  ♪ 이성애만 당연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건 무개념이야. 다양한 성적 지향과 취향을 모두 차별 없이 존중하란 말야!

  ♪ 단, 성차별, 폭력을 저지르는 마초스런 행동 등은 인권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어!


9. 청소년에게는 자기 머리카락이나 복장 등을 마음대로 하고 꾸밀 권리가 있어.

   ♪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 교복을 입고 이름표를 달게 하지 마! 우리는 사복을 입을 자유도 있다구!

   ♪ ‘학생다움’ 또는 ‘청소년다움’은 누가 정하냐? 염색, 파마, 삭발, 레게, 고데기, 생머리 등등 우리는 우리의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어.


10. 청소년이 동네북이냐? 청소년은 폭력이 없는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어.

  ♪ 때리지 좀 마! 우리는 매질, 발길질, 주먹질, 기합, 모욕 등의 폭력을 당하지 말아야 해.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그게 폭력을 가할 이유는 될 수 없어. ‘사랑의 매’는 없어.

  ♪ 청소년은 학도호국단 등으로 동원되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어.


11. 청소년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어야 해. 

  ♪ 집에서 통금시간을 정해놓거나, 학교에서 밖에 나갈 때 외출증을 끊어야 한다거나 해서 우리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아선 안 돼.

  ♪ 청소년의 신체적 조건이나 경제적 조건이나 국적 등 때문에 교통수단 이용을 비롯한 이동에 제약이 있어선 안 돼.

  

12. 청소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알고 싶은 것들을 알고 살 수 있어. 안 그럼 답답해서 어떻게 사냐?

  ♪ 인터넷이나 거리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디에서나 자신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언론, 전단지, 영상 등등을 만들고 배포할 권리가 있어. 이런 것들을 검열하거나, 허가받지 않았단 이유로 훼손하거나 탄압해선 안 돼.

  ♪ 청소년은 자신들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집회나 시위를 할 권리가 있어. 학교에서나 거리에서나 우리는 허가를 받지 않고도 집회를 할 수 있고, 집회를 했단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해.

  ♪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원하는 정보를 못 접하거나 미디어를 쓰지 못하게 해선 안 돼. 청소년들에게는 정보를 얻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이 충분히 지원되어야 해.


13. 청소년은 자신만의 공간과 영역을 가질 수 있고 자신에게 관련된 정보를 스스로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있어.

  ♪ 부모나 교사나 경찰이 마음대로 소지품을 검사하거나 일기장이나 다이어리 등 우리만의 기록을 보는 건 인권침해야!

  ♪ 바꿀 수도 없는 주민등록번호로 우리에게 번호를 매겨서 관리하고, 지문을 다 찍어야 하는 주민등록증을 강요해선 안 돼. 급식비를 안 낸 사람을 걸러내려는 등의 이유로 함부로 지문을 찍게 해서도 안 돼.

  ♪ 야 이 스토커야, 너 내가 그렇게 좋냐? 감시카메라로 청소년들을 감시하고, 휴대폰으로 위치추적을 하는 등의 스토커 짓은 우리의 안전을 핑계로 우릴 통제하는 거야. 때려쳐!

  ♪ NEIS를 비롯한 성적 등등 개인 정보에 대한 공개는 인권침해야. 성적표도 맘대로 집에 보내거나 하지 말란 말야.


14. 청소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상을 생각하고 주장할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있어.

   ♪ 종교계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라고 해서 강제로 종교의례에 동원하거나 헌금을 내라고 하지 말고, 종교를 가지고 차별하지도 마! 그리고 부모나 가족이 믿는 종교를 청소년들이 똑같이 믿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냐?

   ♪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강요하지 마.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사라져야 해.

   ♪ 국가보안법이라거나 정부, 교사, 부모 등의 권력으로 특정 사상을 강요하거나 특정 사상을 처벌하는 건 박물관으로 보내자.


15. 청소년은 교육다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강제로 교육을 받지 않을 권리도 있어.

  ♪ 단순한 주입식 교육이 아닌 개인의 특성과 창의력을 살릴 수 있는 교육과 넓게 생각하고 꿈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해.

  ♪ 공부 왜 해? 청소년은 시험 치는 기계가 아니야! 시험점수로 매겨진 등급으로 우리를 판단하고 차별하지 말라구. 입시경쟁을 폐지하란 말이다!

  ♪ 야간자율학습이라면서 강제로 실시하는 건 ㅤㅁㅝㅇ미?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을 스스로 만들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해.

  ♪ 교육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고 소통이야. 민주적인 방식으로 교육을 해야 해. 청소년에게는 교사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훈계는 너만 하냐! 너나 잘하든지!

  ♪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돈이 없거나 신체적 조건이나 등등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사회에서 좀 알아서 했으면 해. 그리고 교육은 되도록 공짜인 게 기본 아니겠니?


16 청소년에게는 충분히 쉴 권리가 있어.

  ♪ 청소년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야 해. 생리 휴가나 쉬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 되는 건 물론이고, 빡센 경쟁교육이나 생존의 위협 등도 우리가 충분히 쉴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없어져야 해.

  ♪ 잠 좀 자자! 우리는 충분히 컨디션이 회복될 만큼 잘 수 있어야 해.   


17. 청소년에게는 놀 권리가 있어. 또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들을 통해 즐길 권리도 있지.

  ♪ 청소년은 자신의 취미를 즐길 수 있어야 해. 보호라는 핑계나 공부하라면서 청소년들의 문화를 통제하거나 하는 건 부당해.

  ♪ 청소년에게 충분하고 바람직한 놀거리들을 사회가 제공하라!


18. 청소년에게는 먹을 권리가 있어.

  ♪ 청소년에게는 생태적이고 건강에 좋은 먹거리를 제공받을 권리, 취향이나 사상이나 종교 등의 이유로 편식을 할 권리가 있어.

  ♪ 담배나 술 등의 기호식품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먹지 못하게 해서는 안 돼.

  ♪ 청소년은 원산지, 생산 방법, 유통 경로, 유해성 등 자신이 먹는 것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해.


19. 청소년은 건강하게 지낼 권리가 있어. 충분한 휴식과 여유, 그리고 적절하고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는 중요해.

  ♪ 청소년은 충분히 건강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어야 해.

  ♪ 의료 서비스의 과정에서 청소년이라거나 경제적인 조건 등등 때문에 제대로 설명 받지 못하거나 치료받지 못해서는 안돼.

  ♪ 학교에서 체력검사나 신체검사를 할 때도 그렇고, 에이즈 감염 등 의료상의 정보를 함부로 알리거나 청소년의 동의 없이 가족들에게 알려선 안 돼.



20. 청소년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해.

  ♪ 청소년들은 충분히 실수하고 경험을 쌓아갈 권리가 있어. 

  ♪ 청소년들의 좀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이 사회가 가능한 한 제공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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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8

seoulidarity.net

작명 끝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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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7

조지 레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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