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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_먼 곳으로부터의 편지 1/5

  • 분류
    레닌
  • 등록일
    2011/02/15 05:49
  • 수정일
    2011/02/15 23:14
  • 글쓴이
    얼치기 공산주의자
  • 응답 RSS

레닌

먼 곳으로부터의 편지

 

첫 번째 편지

 

첫 번째 혁명의 첫 번째 국면

 

 

제국주의 전쟁에 의해 촉발된 첫 번째 혁명이 터졌다. 하지만 첫 번째 혁명은 분명히 마지막이 아니다.

 

스위스에서 얻을 수 있는 불충분한 정보로 판단을 해보면, 일명 1917년 3월 1일 러시아  혁명인 이 첫 번째 혁명의 첫 번째 국면은 끝이 났다. 우리 혁명의 이 첫 번째 국면은 분명히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수세기에 걸쳐 유지되어 왔으며,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1905-07년 3년 동안의 엄청난 전국적 계급 전투들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군주제가 어떻게 단지 8일(모든 외국에 있는 러시아  대표들에게 부친 밀류코프의 허풍스러운 전보에서 나타난 기간) 만에 붕괴하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자연이나 역사에서 기적들은 없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갑작스러운 전환은 굉장히 풍부한 내용을 드러내며, 아주 예기치 않은, 그리고 특수한 투쟁 형식들의 조합과 대항세력들의 세력배열을 드러내는데, 보통 사람들에게는 기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많이 있다.

 

몇 일 만에 있었던 짜르 왕조의 붕괴를 위하여는 세계역사에서 중요한 몇 가지 요소들의 조합이 필요했다. 우리는 그 요소들 중에서 중요한 것을 언급하게 될 것이다.

 

1905-07년 3년 동안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보여 주었던 거대한 계급 전투들과 혁명적 에너지가 없었다면, 두 번째 혁명은 그것의 시작 국면이 몇 일만에 완수되었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신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첫 번째 혁명(1905년)은 토양을 깊게 갈아 두었고, 오래된 편견들을 뿌리 뽑았으며, 수백만의 노동자들과 수천만의 농민들을 정치적 삶과 정치투쟁에 눈뜨게 했으며, 모두에게(그리고 세상에) 러시아 사회의 모든 계급들(그리고 모든 주요 정당들)을 그들의 진정한 성격과 그들의 이해관계, 그들의 세력들, 그들의 행동양식들, 그리고 그들의 즉각적이고 궁극적인 목적들의 측면에서 드러내주었다. 이 첫 번째 혁명, 그리고 계속 이어졌던 반혁명의 기간(1907-14)은 짜르 왕조의 본질 그 자체를 폭로했고, 그것을 "궁극의 한계"까지 가져갔으며, 모든 부패와 추행, 라스푸틴이라는 괴물에 의하여 점령되었던 짜르 도당의 냉소주의와 부패를 폭로했다. 그것은 러시아를 유대인, 노동자, 그리고 혁명가들의 피로 흠뻑 적셨던 학살자들, 지주들 그 중에서도 수백만 데시아틴[러시아의 땅 측정 기준-해석자의 주]의 땅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그들 자신과 그들의 계급에게 "신성한 소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잔혹한 범죄적 행위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어떤 숫자의 인민이라도 파멸시키고, 목졸라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인 로마노프 가(家)의 모든 잔인성을 폭로했다.

 

1905-07년의 혁명과 1907-14년의 반혁명이 없었다면, 러시아 인민의 모든 계급들, 그리고 러시아에 살고 있는 민족들의 모든 계급들의 분명한 "자기 결정", 1917년 2월-3월의 8일 동안 스스로를 명백히 했던 서로에 대한 그리고 짜르 왕조에 대한 이들 계급들의 관계의 결정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은유적 표현을 사용한다면, 12번의 크고 작은 예행연습들 후에는 "배우들"이 서로를 알고, 그들의 맡은 부분들, 그들의 자리들, 그리고 모든 세세한 곳에서의 구성을 아는 것처럼, 이 8일 동안의 혁명은 철저하게 모든 다소 중요한 정치적 경향과 행동양식의 미묘한 차이에 이르기까지 "수행되었다."

 

구츠코프와 밀류코프 도당, 그리고 그들의 부하들이 "거대한 반역"으로 비난했던 1905년의 첫 번째 위대한 혁명은 12년을 건너뛴 후에는 1917년의 "찬란하고", "명예로운" 혁명이 되었다. 루츠코프와 밀류코프 도당들은 이 혁명이 자신들을 권력에 (잠시 동안) 오를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이 혁명을 "명예로운" 것으로 선언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는 세계 역사의 경로를 광대하게 가속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견될 수 없이 강력한 경제적, 정치적, 일국적, 국제적인 전세계적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위대하고, 강력하며, 전능한 "무대 감독"을 필요로 한다. 세계 역사의 특이한 가속화와는 별도로, 한 번의 충격으로 추악하고 피로 범벅된 로마노프 왕조의 수레를 전복시킬 수 있도록 역사가 특별히 갑작스러운 전환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했다.

 

이 전능한 "무대 감독", 이 강력한 추진체는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이것이 미국과 중국이 현재 이미 반정도 전쟁에 개입되어 있으며, 미래에는 완전하게 개입하게 될 세계 대전이라는 것은 현재 논쟁의 여지가 없다.

 

양쪽 모두에게 있어서 이것이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것은 현재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직 자본가들과 그들의 하수인들, 사회 애국주의자들, 그리고 사회 배외주의자들, 혹은 오직 한편으로는 구츠코프, 르포프, 밀류코프, 슁가료프 도당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보즈됴프, 포트레소프, 치크헨텔, 케렌스키, 치크헤이데 도당들만이 이 사실을 부정하거나 얼버무릴 수 있을 뿐이다. 독일과 앵글로-프랑스 부르주아지 양쪽 모두가 다른 나라들에 대한 약탈과 약소민족에 대한 교살을 위한, 세계 금융 패권을 위한, 그리고 식민지에 대한 분할과 재분할을 위한, 그리고 여러 나라의 노동자들을 호도하고 분열시켜 위기에 놓인 자본가 정권을 구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제국주의 전쟁은 그 객관적 불가피성을 가지고 부르주아지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전례가 없는 정도로까지 엄청나게 가속화하고 강력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국주의 전쟁은 적대적 계급들 사이의 내전으로 전화될 수밖에 없다.

 

이행은1917년 2월-3월 혁명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우선 이 혁명의 첫 번째 국면은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부르주아지와 지주 전체, 그리고 그들의 모든 하수인들, 그들의 모든 의식적인 지도자들인 영국과 프랑스의 대사들과 자본가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병사와 농민의 대표들을 획득하기 시작했던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라는 두 개의 세력들에 의한 짜르에 대한 공동의 타격으로 분명해졌다.

 

 

이들3개의 정치진영들, 이들 3개의 근본적인 정치 세력들, 즉 ⑴ 짜르주의 왕조, 봉건지주들과 구 관료와 군부계층의 수장, ⑵ 부르주아지와 지주-10월당-카데트,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르는 소부르주아지(케렌스키와 치크헤이제가 이들의 주요 대표자들이다), ⑶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와 인민의 가장 가난한 전체 대중을 자신의 동맹으로 만들고자 애쓰고 있는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이들 3개의 근본적인 정치 세력들은 "첫 번째 국면"의 단지 8일 동안에, 그리고 현재의 필자 처럼 사태가 벌어지는 장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빈약한 외국 신문의 속보들로 만족해야만 하는 관찰자에게 조차, 스스로를 완전하고도 명확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보다 자세하게 이것을 다루기 전에, 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즉 제국주의 전쟁에 전념하고 있는 내 편지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전쟁은 교전중인 열강들, 전쟁에 참가한 자본가 그룹들, 자본주의 체제의 "주인들", 자본주의 노예 체제의 노예소유주들 서로를 쇠로 만든 사슬이라는 족쇄로 채웠다. 피범벅이 된 한 덩어리- 이것이 역사 속에서 현시점의 사회적, 정치적 삶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부르주아지에게로 도주했던 사회주의자들[독일의 데이비드와 샤이데만, 러시아의 플레하노프, 포트레소프, 그보즈됴프 도당들 모두]은 혁명가들의 "환상들"에 대하여, 바젤 선언이라는 "환상들"에 대하여,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시킨다는 "터무니없는 꿈"에 대하여 오랫동안 시끄럽게 반대했다. 그들은 소위 자본주의에 의해 드러난 강력함, 완강함, 그리고 적응력에 대하여 모든 톤으로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 자본가들이 "적응하도록" 도와주었던 그들은 여러 나라의 노동계급을 무기력하게 했고, 호도 했으며, 분열시켰다!

 

그러나 "마지막에 웃는 자가 가장 통쾌하게 웃는다"[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이다-해석자의 주]. 부르주아지는 전쟁에 의해 촉발된 혁명적 위기를 오랫동안 지연시킬 수가 없었다. 최근 관찰자가 방문했던 바에 따르면, "훌륭하게 체계화된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독일에서, 또한 기아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훨씬 덜 "훌륭하게" 체계화된 영국과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이 위기는 모든 나라들에서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지독하게 무질서하고 (어떤 특별한 질적인 것들 때문이 아니라 1905년의 삶의 전통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장 혁명적인 짜르주의 러시아에서 혁명적 위기가 발발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 위기는 러시아와 러시아의 동맹들에 의해 지속되었던 일련의 극도로 심각한 패배들에 의해 촉진되었다. 이들 패배들은 구정부 기구와 구 질서를 뒤흔들었고, 이것들에 반대하는 모든 계급의 인민들의 분노를 돋구었고, 군대를 더욱 분격시켰으며, 구 지휘관, 꼴통 보수 귀족, 그리고 특히 부패한 관료적 인자들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쓸어버리고, 그것을 젊고, 신선한 주로 부르주아지, 평민 소부르주아지 개인으로 대체했다. 부르주아지에 굴종하면서, 혹은 간단히 말해서 척추도 없으면서, "패배주의"에 대하여 악을 쓰고 울부짖던 자들은 이제 가장 후진적이고 야만스러운 짜르 왕조의 패배와 혁명적 대화재 사이의 역사적 연관이라는 사실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전쟁 초기의 패배들이 격변을 촉진했던 부정적 요소였던 반면, 앵글로-프랑스 금융자본, 앵글로-프랑스 제국주의, 그리고 러시아 10월당-카데트 자본 사이의 관계는 니콜라스 로마노프에 반대하는 계획의 직접적인 조직화로 이 위기를 촉진했던 요소였다.

 

이러한 정세의 고도로 중요한 측면은 분명한 이유로 인하여 앵글로-프랑스 언론에 의하여는 감추어졌고, 독일에 의해서는 악의적으로 강조되었다. 우리 맑스주의자들은 있는 그대로 진실에 직면해야만 하며, 거짓말들, 제국주의 참전국들의 첫 번째 그룹의 달콤한 공식적인 외교적, 행정적 거짓말들이나 혹은 이들의 금융, 군사적 경쟁자들인 또 다른 참전국 그룹의 낄낄거림과 능글맞은 웃음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되도록 허용하지 말아야만 한다. 2월-3월 혁명의 사태들의 모든 경로가 니콜라스 2세(결국에는 우리가 그의 폐위를 원하며, 그를 폐위시키려고 할 것이다)와 빌헬름 2세 사이의 "별도의" 협약과 별도의 평화를 막기 위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 대사들이 10월당과 카데트와의 협력 속에서, 군대의 장성들과 페테르스부르크 주둔장교들의 일부와의 협력 속에서, 니콜라스 로마노프를 폐위시키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는 계획을 직접적으로 조직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떠한 환상도 가지지 말자. 첫 번째즈됴프-포트레소프의 정책과 국제주의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으며, 너무도 자주 소부르주아 평화주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특정 O.C. 지지자들과 멘셰비키들과 같은, 현재 노동자 당과 카데트 사이의 "협정"과 노동자당의 카데트에 대한 "지지" 등을 기꺼이 칭송하는 자들의 실수를 하지 말자. 기계적으로 학습해 온 과거의 교조(결코 맑스주의가 아닌)에 따라서, 이들은 니콜라스 로마노프라는 "수석 전사"를 폐하고 보다 열정적이고, 신선하며 보다 능력 있는 전사들을 자신의 자리에 두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앵글로-프랑스 제국주의자들, 구츠코프와 밀류코프 도당들의 계획을 덮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혁명이 그렇게도 빨리, 외견상, 피상적인 제일감으로 그렇게도 급진적으로 성공했던 것은 단지 극도로 특이한 역사적 정세의 결과, 절대적으로 다른 조류들, 절대적으로 이질적인 계급적 이해관계들, 절대적으로 상충되는 정치적, 사회적 열정들이 충격적으로 "조화로운" 방식으로 융합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즉, 제국주의 전쟁을 계속할 목적으로, 더욱 잔인하고 끈질기게 전쟁을 수행할 목적으로, 구츠코프가 콘스탄티노플을, 프랑스 자본가들은 시리아를, 영국 자본가들은 메소포타미아를 먹는 등등을 위하여 수백만의 새로운 러시아 노동자와 농민들을 살육하려는 목적으로 밀류코프, 구츠코프 도당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재촉했던 앵글로-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의 음모. 이것이 한 측면이다. 다른 측면에는, , 평화,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 혁명적 성격의 심오한 프롤레타리아트와 인민대중의 운동(도시와 시골의 인민의 가장 가난한 부위 전체 운동)이 있었다.

 

영국의 돈과 얽혀왔고, 짜르 제국주의만큼이나 혐오스러운 카데트-10월당 제국주의에 대한 러시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지"를 말하는 것은 그저 바보짓에 불과할 것이다. 혁명적 노동자들은 악명 높은 짜르 왕조를 그 근본으로까지 파괴하고 있고, 이미 상당한 정도로 파괴했으며 앞으로 파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특정한 짧고 예외적인 역사적 상황들에서, 하나의 왕조를 역시나 될 수 있으면 로마노프인 또 다른 하나의 왕조로 대체하기 위하여 그들이 부차난, 구츠코프, 밀류코프 등의 도당들의 투쟁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로 인해 의기양양해 하지도 않거니와 당황해 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것, 단지 그러한 것만이 정세가 진전되었던 방식이다. 그러한 것, 단지 그러한 것만이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혁명에서 사회세력들의 균형을 있는 그대로 측정하며, 모든 "현재의 정세"를 그것의 현재의 특수성들의 관점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동기들,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보다 깊은 이해관계로부터 평가하는 정치가에 의해서 취해질 수 있는 관점이다.

 

러시아 전체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들은 자기 희생적으로 짜르 왕조에 맞서 투쟁했고, 자유를 위하여, 농민을 위한 토지를 위하여, 그리고 평화를 위하여 제국주의 학살자들에 맞서 투쟁했다. 이 학살을 지속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앵글로-프랑스 제국주의 자본은 왕실 음모들을 꾸몄고, 수비대의 장교들과 공모했으며, 구츠코프와 밀류코프 도당들을 선동하고 조장했으며,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이 짜르에 대한 첫 번째 타격들을 가하자 즉시 사실상 권력을 장악했던 완전히 새로운 정부가 세워지도록 했다.

 

사형 집행자 스톨리핀의 과거의 선동자들인 10월당과 평화개혁당의 르포프와 구츠코프가 정말로 중요한 지위들, 핵심적인 지위들, 결정적인 지위들, 군대와 관료를 통제하는, 밀류코프와 기타 카데트가 다른 무엇보다도, 감정적인 학자연하는 연설들을 행하는 광고판인, 그리고 트루도비크 케렌스키가 노동자와 농민들을 속이기 위하여 저들이 연주하는 발랄라이카[기타와 비슷한 삼각형 모양의 러시아 현악기-해석자의 주]인 이 새로운 정부는 인민들의 뜻밖의 예기치 않은 집합이 아니다.

 

그들은 러시아에서정치권력으로 올라섰던새로운 계급, 즉 우리 나라를 경제적으로 오랫동안 지배해오고 있으며, 1905-07년 혁명, 1907-14년 반혁명적 기간, 그리고 최종적으로 1914-17년의 전쟁 기간 동안 재빠르게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조직했고, 지방 정부 기관들, 공공 교육, 다양한 형태의 의회들, 듀마, 전쟁산업위원회 등등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고 있는 자본가 지주들과 부르주아지들의 대표자들이다. 이 새로운 계급은 이미 1917년이 되면 "거의 완전하게"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들은 짜르주의를 타도하고 부르주아지의 길을 열기 위한 단지 첫 번째 타격들만 필요로 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의 경주를 요구했던 제국주의 전쟁은 후진적 러시아의 발전의 경로를 너무도 가속화시켜 우리는 "한번의 타격"(외견상한번의 타격)에 이탈리아, 영국, 그리고 거의 프랑스를 따라 잡았다. 우리는 (즉, 제국주의 학살을 수행과 인민을 희롱하는데 적합한) "전국적인" "연립" "의회" 정부를 획득했다.

 

이 정부와 나란히, 주요한 그러나 아직은 발전되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허약하기 때문에 비공식적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도시와 지방 인민의 가장 가난한 전체 부위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노동자 정부가 등장했다.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가 그것인데, 이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는 병사들과 농민들, 그리고 또한 농업 노동자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병사들과 농민보다는 농업 노동자들과의 관계가 더욱 각별하고 중요하다.

 

이러한 것이 맑스주의적 전술들이 오로지 가능한 굳건한 기초, 사실들이라는 기초 위에만 기초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먼저 가능한 최대한의 객관적 정확함을 가지고 규정해야만 하는 실제의 정치 정세이다.

 

짜르 왕조는 분쇄되었지만 최종적으로 파괴되지는 않았다.

 

제국주의 전쟁을 "끝까지" 수행하고자 하며,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라는 금융 기업의 대행인인 10월당-카데트 부르주아지 정부는 인민에 대한 그들의 권력의 유지와 제국주의 살육 지속의 가능성에 적합한 최대한의 자유와 환심거리를 인민들에게 약속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대표들의소비에트는노동자의기관, 노동자 정부의 맹아, 인민의 가난한 부위의 전체 대중, 즉 평화, , 그리고 자유를 열망하고 있는 인구의 90%의 이해관계의 대표자이다.

 

이 세 가지 세력들의 분쟁이 현재 상승해 있는, 혁명의 첫 번째 국면으로부터 두 번째로 이행하고 있는 정세를 결정한다.

 

첫 번째 세력과 두 번째 세력 사이의 적대는 뿌리깊은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며, 오로지환경들의 현재 상황, 제국주의 전쟁에서의 갑작스러운 사태의 전환의 결과일 뿐이다. 새로운 정부 전체가 왕조주의자이인데, 그것은 케렌스키의 말뿐인 공화주의는 진지하게 취급될 수도 없으며, 정치가의 가치도 없고, 객관적으로, 정치적 궤변이기 때문이다. 짜르주의 군주제에 마지막 타격을 가하지 않고 있는 새로운 정부는 이미 지주 로마노프 왕조와의 협상을 시작했다. 10월당-케데트 형태의 부르주아지는 노동인민들에 대하여 자본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관료와 군대의 수장으로서 복무할 군주를 필요로 한다.

 

짜르주의 반동에 맞서는 투쟁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새로운 정부를 노동자들이 지지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자는 (그리고 이것은 모든 둘러댐에도 불구하고 포트레소프, 첫 번째츠포프, 치크헨켈리, 그리고 또한 치크헤이제가 하고 있는 말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배신자,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에 대한, 평화와 자유의 대의에 대한 배신자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정확하게 이 새로운 정부는 이미 제국주의 자본과 전쟁과 약탈이라는 제국주의 정책에 의하여 손과 발이 묶여 있으며, 이미 왕조와의 협상을 시작했고(인민들과의 어떠한 상의도 없이!), 이미 짜르주의 군주제를 복구하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임금으로 미하일 로마노프의 입후보를 간청하고 있으며, 이미 왕의 자리를 지탱하고, 국민투표에(사기에 불과한 국민투표에 따라서 지배하는) 의한 군주제를 합법적인(법에 따르는, 구법에 따라 지배하는) 군주제로 대신하려는 방책들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만약 짜르 군주제에 대항하는 진정한 투쟁이 존재한다면, 만약 자유가 단지 밀류코프와 케렌스키의 말들, 그럴듯한 약속들이 아니라 실제로 보장되어야 한다면, 노동자들은 새로운 정부를 지지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노동자들을 "지지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해방과 짜르주의의 완전한 파괴에 대한 유일한 보장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무장시키는 것,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의 역할, 중요성, 그리고 권력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모든 것은 단지 미사여구와 거짓말들, 자유주의와 급진주의 진영 정치인들 쪽에서의 자기 기만, 사기적인 속임수이다.

 

노동자들의 무장을 도와달라, 아니면 적어도 방해는 하지 말아라. 그러면 러시아에서의 자유는 무적일 것이며, 군주제는 복구될 수 없을 것이고 공화국은 보장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구츠코프와 밀류코드 도당들은 군주제를 복구할 것이며, 그들이 약속했던 아무것도, "자유들" 중에서 어떠한 것도 절대 주지 않을 것이다. 모든 부르주아지 혁명에서 모든 부르주아지 정치인들은 약속들로 인민들을 "만족시켰고" 노동자들을 우롱했다.

 

그러므로우리의 혁명은 부르주아지 혁명이며, 노동자들은 반드시 부르주아지를 지지해야만 한다고 포트레소프, 그보즈됴프, 치크헤이제 도당들은 어제 플레하노프가 말했던 것처럼 말한다.

 

우리 맑스주의자들은 '우리의 혁명은 부르주아지 혁명이다. 그러므로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 정치인들에 의해 자행되는 속임수에 대한 인민들이 눈을 뜨게 해야만 하며, 인민들이 말들에 어떠한 믿음도 주지 말도록, 인민들 자신의 힘과 인민들 자신의 조직, 인민들 자신의 단결, 그리고 인민들 자신의 무기들에만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가르쳐야만 한다.'고 말한다.

 

구츠코프와 밀류코프 도당들의 10월당과 카데트 정부는, 심지어 그들이 충심으로 원한다고 하더라도(오직 신생아들만이 구츠코프와 르포프가 충심 어린 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민들에게 평화, , 혹은 자유중에서 어떤 것도 줄 수 없다.

 

이 정부는 전쟁 정부, 제국주의 학살의 지속을 위한 정부, 아르메니아, 갈리시아, 그리고 터키를 약탈하고, 콘스탄티노플을 합병하며, 폴란드, 코랜드, 리투아니아 등을 재정복하려고 애쓰는 약탈의 정부이기 때문에 평화를 줄 수 없다. 이 정부는 앵글로-프랑스 제국주의 자본에 손과 발이 속박된 정부이다. 러시아 자본은 수천억 루블을 농간하는 "영국과 프랑스"로 불리는 전세계적 "회사"의 한 지부에 불과하다.

 

이 정부는 부르주아지 정부이기 때문에 빵을 줄 수 없다. 기껏해야, 독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훌륭하게 조직된 기아"를 인민들에게 줄 수 있다. 그러나 인민들은 기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빵이 있으며, 이 빵은 자본과 토지소유에 대한 숭배를 존중하지 않는 방식들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아마도 매우 금방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정부는 인민들을 두려워하며, 로마노프 왕조와 협정을 이미 시작한 지주와 자본가의 정부이기 때문에 자유를 줄 수 없다.

 

이 정부에 대한 우리의 즉각적인 태도라는 전술적 문제들은 또 다른 글에서 다루어 질 것이다. 그 글에서, 우리는 혁명의 첫 번째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로의 이행이라는 현재 정세의 특수성에 관하여, 그리고 왜 이 순간에 있어서 "당면 임무"라는 슬로건이 "노동자들, 동지들은 짜르주의에 대한 내전에서 영웅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기적들을 실천했다. 동지들은 혁명의 두 번째 단계에서 동지들의 승리를 위한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조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전체 인민들의 조직에서의 기적들을 수행해야만 한다."가 되어야만 하는 지에 관하여 설명하게 될 것이다.

 

혁명의 현재 단계에서 계급투쟁과 계급세력들의 배치에 관한 분석에 우리 스스로를 한정한다면, 당분간 우리는 여전히 '혁명에서 누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들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해야만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2의 동맹들이 있다. 첫째, 반(半)프롤레타리아트와 부분적으로 소농 인구도 포함하는, 수천만을 헤아리는, 러시아 인구의 압도적인 다수를 구성하는 광대한 대중. 이들 대중들로 말하자면, 평화, 빵, 자유, 그리고 토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들 대중은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 까지는 부르주아지, 특히 생활조건들에서 가장 가깝고,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 동요하는 소부르주아지의 영향력 하에 있게 될 것이다. 전쟁의 잔혹한 교훈들( 그리고 구츠코프, 르포프, 밀류코프 도당들에 의해 더욱 강경하게 전쟁이 수행될수록, 전쟁의 교훈들이 더욱 잔혹해 질 것이다)이 불가피하게 이들 대중을 프롤레타리아트로 밀어부칠 것이며, 이들 대중들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따르도록 강제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가장 먼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 대중을 계몽하고 조직하기 위하여 새로운 질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들이라는 상대적인 자유를 활용해야만 한다. 농민대표 소비에트들과 농업노동자 소비에트들이 우리의 가장 긴급한 임무들 중의 하나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농업노동자들이 그들 자신의 독자적인 소비에트들을 건설하도록 하기 위하여 뿐만 아니라 재산이 없고 가장 가난한 농민들이 부유한 농민들로부터 독자적으로 조직하도록 하기 위하여 투쟁할 것이다. 현재 긴급하게 필요한 조직의 특수한 임무들과 특수한 형식들은 다음 편지에서 다루어지게 될 것이다.

 

둘째, 모든 교전국과 전세계 전반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이다. 현재, 이들 동맹은 전쟁과 러시아의 플레하노프, 그보즈됴프, 그리고 포트레소프와 같은 부르주아지에게로 도망갔던 자들을 포함하는 유럽의 사회-배외주의자들에 의하여 너무도 자주 상당한 정도로 억압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이 제국주의 전쟁이 진행되는 것과 함께 전진해왔으며, 러시아 혁명은 불가피하게 이러한 과정을 심대하게 강화할 것이다.

 

이들 2개의 동맹을 가진 프롤레타리아트는 이행 중이라는 현 정세의 특수성을 활용하면서, 먼저 구츠코프-밀류코프의 반(半)군주제가 아닌, 민주공화국의 성취와 지주에 대한 농민의 완전한 승리로 나아갈 것이며, 그리고 나서는 유일하게 전쟁에 지친 인민들에게 평화, 빵, 그리고 자유를 줄 수 있는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레닌

 

1917년 3월 7일(20일)에 쓰여짐.

1917년 3월 21일과 22일자 프라우다 14, 15호에서 출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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