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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서의 사회적 관계_트로츠키_배반당한 혁명 제9장

  • 분류
    트로츠키
  • 등록일
    2011/11/30 07:37
  • 수정일
    2011/11/30 07:37
  • 글쓴이
    얼치기 공산주의자
  • 응답 RSS

배반당한 혁명

트로츠키, 1936년

 

9장 소련에서의 사회적 관계

 

아직은 역사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았다.

 

산업에서, 생산수단에 대한 국가소유는 거의 보편적으로 우세하다. 농업에서는 경작되는 토지의 10%가 넘지 못하는 부분을 포함하는 소비에트 농장들에서만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집단농장들, 협동조합 혹은 그룹 소유 농장들에서는 다양한 비중으로 국가소유와 사적 소유가 혼합되어 있다. 토지는 법적으로는 국가에 속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구적인" 사용을 목적으로 그룹 소유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공동체들에 이전되어 왔다. 트랙터들과 정교한 기계류는 국가에 속해 있고, 작은 장비들은 공동체들에 속해 있다. 집단 농장의 농민 각자는 점점 더 많이 개별 농경을 수행한다. 결과적으로 10% 보다 많은 농민들이 개별 농부들로 남아 있다.

 

1934년의 통계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28.1%가 국가 기업과 기관들의 노동자들이거나 피고용자들이었다. 그들의 가족을 제외한 산업과 건축 노동자들이 1935년에는 750만을 헤아렸다. 집단농장 농민들과 협동조합 기능공들이 통계조사 당시에 인구의 45.9%를 차지했다. 도합, 인구의 74%가 "사회주의적 부문"에 속했으며, 나라의 기초자본의 95.8%가 이들 74%의 몫으로 떨어졌다. 개별 농민들과 장인들이 1934-35년에 여전히 22.5%를 차지하였지만, 그들은 전국 자본의 4% 보다 약간 더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1934년 이후로는 통계조사가 없었다. 다음 번 통계조사는 1937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백하게도 지난 2년 동안에는 사적 기업부문이 "사회주의적인 것"에 훨씬 더 우호적으로 줄어들었다. 공식적인 경제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개별 농민들과 장인들은 이제 인구의 10% 정도, 즉 1700만 명을 구성한다. 그들의 경제적 중요성은 그들의 숫자보다도 훨씬 더 낮게 떨어졌다. 중앙위원회 서기인 안드레예프는1936년 4월에 "1936년 우리나라의 사회주의적 생산의 상대적 비중이 98.5%에 이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즉, 1.5% 같은 하찮은 어떤 것이 여전히 비사회주의적 부문에 속해 있다."고 선언했다. 이들 낙관적인 수치들은 일견 사회주의의 "최종적이고 되 돌이킬 수 없는" 승리의 반론의 여지가 없는 증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숫자놀음 뒤에 있는 사회적 현실을 보지 못하는 자에게 화가 미칠지어다!

 

수치들자체가약간과장되어있다. 집단농장들과 나란히 사적으로 분할 대여된 농지들이 "사회주의적" 부문으로 편입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요점이 아니다. 경제에서 국가와 집단 농장의 엄청나고도 전체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우월성이 그것이 비록 미래에는 중요할지라도, 농업에서뿐만 아니라 산업에서도 "사회주의적" 부문 그 자체 내에서의 부르주아지 경향들의 힘이라는 또 다른 그리고 그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인, 농업에서뿐만 아니라 산업에서도 "사회주의적" 부문 그 차체 내에서의 부르주아지 경향들의 힘이라는 문제를 제거하지는 않는다. 이미 성취된 물질적 수준은 증가된 수요를 모두 일깨우기에는 충분하지만 그것들을 만족시키기에는 전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므로 경제적 진보의 역동성 바로 그것이 농민들과 "지적"노동의 대표자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상층부들 사이에서도 소부르주아지적 욕구의 자각에 영향을 끼친다. 개인 소유자들과 집단 농장들 사이의, 사적 숙련공들과 국가 산업들 사이의 있는 그대로의 대비는 나라의 경제 전체를 물들이고 있으며, 각자 그리고 모든 사람이 사회에는 가능한 적게 주고 사회로부터는 가능한 많이 받고자 하는 열망 속에서 일반적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이들 소부르주아적 욕구들의 폭발성 있는 힘에 대한 눈곱만큼의 아이디어도 제공하지 않는다.

 

단어의 보다 적절한 의미에서 사회주의 건설에 쓰여지는 것만큼이나 많은 에너지와 재능이 화폐 축적자와 소비자의 문제들을 푸는 것에 쓰여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부분적으로는 극도로 낮은 사회적 노동생산성이 도출된다. 국가는 이들 원심력이라는 분자적 행위와의 계속적인 투쟁 속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반면, 지배 그룹 자신은 합법적, 불법적인 개인적 축적들의 주요한 저수지를 형성한다. 새로운 법률상의 규범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가면을 쓰고 있는 소부르주아지 경향들은 물론 통계적으로 쉽게 측정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경제생활에서의 실질적인 우월성은 극악무도한 형용모순이며, 기괴하고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사회적 왜곡이고, 다시 사회 안에서의 유해한 성장들의 근원이 되는, "사회주의적" 관료세력 그 자신에 의하여 일차적으로 증명된다.

 

우리가보게될것처럼, 관료세력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국가를 인민과 동일시하는 것에 전적으로 기초하고 있는 새 헌법은 "... 국가소유 즉, 전체 인민의 소유들"이라고 말한다. 이 동일시는 관료적 교조의 근본적인 궤변이다. 맑스 그 자신에서 시작하여, 맑스주의자들이 노동자 국가와 관련하여 국가 소유, 전인민적[national] 소유, 그리고 사회주의적 소유라는 용어들을 단순한 유의어들로 사용해왔다는 것은 전적으로 사실이다. 폭넓은 역사적 규모에서, 이러한 방식의 발언은 어떠한 특별한 불편함들을 수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천박한 실수들의 근원이 된다. 새로운 사회의 첫 번째의 그리고 여전히 불확실한 발전의 단계들, 더욱이 고립되어 있으며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경제적으로 뒤쳐지고 있는 새로운 사회에 적용될 때에, 이것은 천박한 실수들과 명백한 사기의 근원이 된다.

 

사회적소유가되기위해서는, 나비가 되기 위해서 유충이 반드시 번데기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처럼, 사적 소유는 불가피하게 국가의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그러나 번데기가 나비는 아니다. 무수한 번데기들이 나비가 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국가소유는 사회적 특권과 차별, 그래서 국가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정도까지만 오직 "전체 인민"의 소유가 된다. 즉, 국가소유는 그것이 국가소유이기를 멈추는 것에 비례하여 사회주의적 소유로 전환한다. 그리고 반대도 사실이다. 소비에트 국가가 인민들 위로 더 높이 솟아오를수록, 그리고 소비에트 국가가 재산을 지키는 자로서 스스로를 재산을 낭비하는 자로서의 인민에 대하여 더욱 적대적일 수록, 소비에트 국가는 이 국가소유의 사회주의적 성격에 반함을 입증한다.

 

공식 언론은 도시와 농촌, 지식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우리는 계급의 완전한 철폐로부터 아직 멀리 떨어져 있다"고 고백한다. 이 순전히 아카데믹한 인정은 "지식"노동이라는 영광스러운 직위 아래 관료세력의 수입을 감추는 것을 허용하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플로톤이 진실보다도 훨씬 더 친애하는 그 "친구들" 또한 과거의 불평등의 부활에 대한 아카데믹한 승인에 자신들을 한정한다. 실제로는 상당히 겉치레한 "부활들"은 소비에트 현실을 설명하기에 전적으로 불충분하다. 어떤 측면들에서 도시와 농촌의 차이들이 완화되어 왔지만, 다른 측면들에서는 도시들과 도시 문화, 즉 도시 소수자를 위한 안락의 예외적으로 급속한 성장 덕분에 그 차이들이 상당히 심화되어 왔다. 아래로부터의 신규 인입자들로 과학 중핵들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육체노동과 지식노동 사이의 사회적 차이가 최근 몇 해 동안 감소하지 않고 증가되어 왔다. 품위 있는 도시인과 거친 무지크, 과학의 마법사와 하루벌이 노동꾼과 같이 모든 측면들에서 각각의 인간의 삶을 정의하는 수천 년이 된 신분의 장벽들은 단지 다소간 완화된 형식으로 과거로부터 보존만 되어 온 것이 아니라, 상당한 정도로 새롭게 태어났으며 점점 더 대담한 성격을 띠고 있다.

 

"간부들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악명 높은 구호는 스탈린 그 자신이 원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솔직하게 소비에트 사회의 성격을 특징짓는다. 간부들은 바로 그 본질에서 지배와 명령의 기관들이다. "간부들"에 대한 숭배는 무엇보다도 관료세력, 관료제, 기술 귀족에 대한 숭배를 의미한다. 다른 것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간부들을 중시하고 발전시키는 것에 관해서, 소비에트 정권은 여전히 선진 부르주아지들이 자신들의 나라들에서 오래 전에 해결했던 문제들을 풀어야만 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러나 소비에트 간부들이 사회주의의 기치 아래에서 앞으로 나서기 때문에, 그들은 성스러운 존경과 지속적으로 인상되는 봉급을 요구한다. 이렇게 해서 부르주아지적 불평등의 재탄생이"사회주의적" 간부들의 발전에 수반된다.

 

생산수단에있어서의소유의관점으로부터, 장군과 하인 소녀, 기업의 수장과 일용직 노동자, 인민위원의 아들과 노숙하는 아이 사이의 차이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들은 위엄 있는 아파트에 살며, 나라의 곳곳에 있는 여러 개의 여름용 별장들을 향유하며, 자신들 뜻대로 할 수 있는 최고급 자동차들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구두를 어떻게 닦아야 할지 오래 전에 잊어버렸다. 후자들은 칸막이도 없는 나무로 된 헛간들에 살며, 반쯤 굶으면서 살고, 맨발로 다니기 때문에 자신들의 구두를 닦을 필요가 없다. 관료들에게는 이 차이가 관심을 둘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것에 이유가 없는 것 아니다.

 

물론, 천박한 "지식인들"은 부의 분배는 부의 생산 다음 요소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 하지만, 상호작용의 변증법이 여기서 자신의 모든 힘을 유지한다. 국가로 몰수된 생산수단의 운명은 결국에는 개별 존재에서의 이들 차이들이 한 방향 혹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만약 하나의 배가 집단적 소유로 선포되지만, 승객들은 계속해서 1등, 2등, 그리고 3등 칸으로 나뉘어져야 한다면, 3등 칸 승객들에게는 삶의 조건들에서의 차이들이 소유권에서의 법적인 변화보다 무한대로 더욱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다. 반면, 1등 칸의 승객들은 자신들의 커피와 시가와 함께 집단적 소유가 모든 것이지, 안락한 객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제출할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증가하는 적대들이 불안정한 집단적 소유를 당연하게도 폭발시켜 버릴 것이다.

 

소비에트신문은모스크바동물원에서"저 코끼리는 누구의 것이냐?"라는 자신의 질문에, 한 어린 소년이 어떻게 답하는 가에 대하여 만족스럽게 보도한다. "국가의 것"이라는 대답은 "그것은 또한 조금은 나의 것입니다"라는 즉각적인 추론을 했다. 하지만, 코끼리가 실제로 나누어진다면, 값비싼 상아는 선택받은 자들의 몫이 될 것이고, 몇 안 되는 소수는 코끼리 고기 햄에 기뻐할 것이며, 다수는 발굽들과 내장들과 함께 할 것이다. 자신들의 몫을 빼앗긴 소년들은 국가 소유를 그들 자신의 소유와 거의 동일시하지 않는다. 동물원 정원에 있던 어린 "사회주의자"는 필시 "짐은 곧 국가다"라는 공식으로부터 추론들을 도출하는데 친숙한 어떤 저명한 관료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우리가 사회주의적 관계들을 시장의 언어로 번역한다면, 우리는 시민을 국가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 속의 주식 소유자로 표현해 볼 수 있겠다. 만약 부[副]가 모든 인민들에게 속해 있다면, 이것은 "주식들"의 공평한 분배, 그리고 결과적으로 모든 "주식 소유자들"의 똑같은 배당금에 대한 권리를 추정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인민기업에 "주식 소유자들"로서 참여할 뿐만 아니라 생산자로서도 참여한다. 우리가 사회주의로 부르기로 합의한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에서는, 노동에 대한 지급들이 여전히 부르주아지적 규범, 즉 숙련도, 강도 등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각각의 시민의 이론적 수입은 두 개의 부분들, a+b 즉 자신의 몫 더하기 임금으로 구성된다. 기술이 더 높을수록, 그리고 산업 기관이 더욱 완벽할수록, b에 대하여 a가 차지하는 자리가 더 커지며, 노동의 개인적 차이들의 생활수준에 대한 영향력은 점점 더 적어진다. 소련에서의 임금 격차가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보다 적지 않고, 더 많다는 사실로부터, 소비에트 시민의 주식들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으며, 시민들의 수입에서 임금 지급뿐만 아니라 주식에 대한 배당금도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 추론될 수밖에 없다. 비숙련 노동자는 비슷한 조건에서 자본주의 기업에서 그가 받게 되는 최저임금인 b만을 받는 반면, 스타하노프 운동원이나 관료는 2a+b, 혹은 3a+b 등을 받으며, 한편으로 b 역시나 이번에는 2b, 3b 등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수입에서의 격차들은 개인적인 생산성의 차이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타인의 노동 생산물의 위장된 착복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주식 소유자들의 특권화된 소수가 빼앗기는 다수의 희생으로 살고 있다.

 

만약독자들이소비에트의비숙련 노동자가 비슷한 수준의 기술과 문화적 조건에서 자본주의 기업들에서 그가 받게 될 것보다 더 많이 받는다고, 즉 그가 여전히 소주주라고 가정한다면, 그의 임금은 a+b와 같다고 간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다 높은 범주들의 임금들은 3a+2b, 10a+15b 등의 공식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것은 비숙련 노동자들은 1주를,  스타하노프 운동원은 3주를, 전문인은 10주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보다 적절한 의미에서 그들의 임금들은 1:2:15의 비율이 된다. 이러한 조건들 하에서는, 신성한 사회주의적 부에 대한 찬가들이 평조합원 노동자나 집단농장 농민에게보다 관리인이나 스타하노프 운동원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는 좋은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평조합원 노동자들이 사회의 압도적 다수이다. 사회주의가 고려에 두고 있었던 것은 새로운 귀족이 아니라 그들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자는 임금노예가 아니며 노동력이라고 불리는 상품의 판매자가 아니다. 노동자는 자유로운 노동인민이다"(프라우다). 현재의 시대에, 이 번지르한 정식은 허용될 수 없는 허풍이다. 공장의 국가로의 이전은 단지 법적으로만 노동자의 상황을 바꾸었다. 실제로는, 그는 궁핍 속에 살고, 일정한 임금을 위하여 일정한 수의 시간을 일하도록 강제된다. 노동자가 이전에 당과 노동조합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희망들을, 혁명 후에는 자신에 의해 창조된 국가로 옮겼다. 그러나 이 기구의 순기능은 기술과 문화의 수준에 의해 제한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새로운 국가는 이 수준을 올리기 위하여 노동자의 근육과 신경에 대한 압력이라는 과거의 방식들에 의존했다. 노예 감시자 집단이 성장했다. 산업의 경영이 초관료화 되었다. 노동자들은 공장의 경영에 대한 모든 영향력을 잃었다. 성과급제, 물질적 생존의 힘겨운 조건들, 자유로운 이동의 부족, 모든 공장의 삶을 침투하고 있는 엄혹한 경찰 억압이라는 조건에서, 노동자가 스스로를 "자유로운 노동인민"으로 느낀다는 것은 정말이지 힘든 일이다. 노동자는 관료에게서 경영자를, 국가에게서 고용주를 본다. 자유로운 노동은 관료적 국가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다.

 

필요한변경을가한다면, 위에서 언급된 내용은 시골에도 또한 관련된다. 공식적인 이론에 따르면, 집단농장적 소유는 사회주의적 소유의 특별한 형태이다. 프라우다는 집단농장들은 "본질적으로 이미 국가기업들과 같은 형태이며 결론적으로 사회주의적"이라고 쓰지만, 즉각적으로 농경의 사회주의적 발전에 대한 보장은 "볼셰비키 당이 집단농장을 관리하는" 상황에 달려 있다고 추가한다. 프라우다는 우리로 하여금 경제로부터 정치를 참고하도록 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아직은 사회주의적 관계가 사람들 사이에서의 실제 관계들에서 구현된 것이 아니라 당국자들의 자비로운 가슴 속에 머물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노동자들이 그 가슴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면, 그들은 매우 잘 해낼 것이다. 실제로는 집단농장들은 개인경제와 국가경제 사이의 반쯤에 위치하며, 집단농장들 내부에서의 소부르주아지적 경향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사적으로 분할된 토지 혹은 그 구성원들에 의해 수행되는 개인적 경제들로부터 감복할 정도로 도움을 받고 있다.

 

집산화된1억 8백만 핵타아르 비교하여, 개별 경작 토지가 겨우 4백만 핵타아르, 즉 4% 미만에 이르렀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토지에 대한 집약적이고, 특히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경작 덕분에, 이 토지는 농민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소비재들을 제공해 주었다. 대부분의 뿔 달린 소, 양, 그리고 돼지들은 집단농장이 아니라 집단농장의 농민들 소유이다. 농민들은 종종 이윤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집단농장들을 후순위로 밀어내면서, 자신들의 개인경작 농장들을 필수적인 농장으로 뒤바꾼다. 반면, 노동일에 대한 지불이 후한 집단농장들은 더 높은 사회적 지위로 올라가고 있으며, 부자 농민들이라는 부류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아직 분권적인 경향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욱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집단농장들은 아직까지는 나라에 있는 경제적 관계의 법률상의 형태들만을, 특히 소득의 분배 방식들을 바꾸는 데는 성공해왔지만, 오래된 오두막집과 집 안마당 채소밭, 헛간 앞마당에서의 잡일, 반복되는 농민들의 과중한 노동은 거의 바꾸지 않은 채 내버려 두어왔다. 상당한 정도로, 집단농장들은 국가에 대한 오래된 태도 또한 그대로 남겨두었다. 분명하게 국가는 더 이상 지주나 혹은 부르주아지를 위하여 복무하지는 않지만, 도시들의 혜택을 위하여 너무나 많은 것을 농촌들로부터 취하며, 너무나도 많이 탐욕적인 관료들을 품고 있다.

 

1937년 1월 6일 있게 되어 있는 인구조사를 위하여,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집단농장의 농민, 개별 농민, 개별 기능공, 자유업 종사자들, 종교 성직자, 기타 비노동 인자들로 사회적 범주들의 목록을 선정했다. 공식적인 논평에 따르면, 이 인구조사 목록은 다른 어떤 사회적 지표들도 포함하고 있지 못하는데, 이것은 소련에는 계급이 없이 때문이다. 실제로는 특권화된 상부계층과 혜택 받지 못한 더욱 낮은 밑바닥을 감추려는 직접적인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다. 솔직한 인구조사의 도움으로 쉽게 폭로되어야 하며,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소비에트 사회의 실제 분열들은 다음과 같다. 부르주아지의 상태로 살고 있는 관료, 전문직 등의 우두머리들, 소부르주아지 수준에 있는 중간과 하위 계층, 대략 똑같은 수준에 있는 노동자와 집단농장의 귀족들, 중간 정도의 노동인민, 집단농장 농민들의 중간층, 개별 농민들과 기능공들,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로 넘어가고 있는 하층 노동자와 농민계층, 집 없는 아동들, 성매매 종사자들 등.

 

새헌법이소련에서는"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착취의 철폐"가 확보되었다고 선언한다면, 이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회적 분화가 가장 야만적인 형태, 즉 개인적인 서비스를 위하여 돈을 내고 인간을 노예가 되게 하는 형태로 인간에 대한 착취의 부활을 위한 조건들을 창출해왔다. 새로운 인구조사를 위한 항목들에는 개인적인 하인들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분명히 으들 하인들은 "노동자들"이라는 일반적 그룹으로 용해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에 관한 많은 의문들이 있다. 사회주의 시민이 하인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몇 명(가정부, 요리사, 유모, 여성 가정교사, 운전기사)이나 보유하고 있는가?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가? 그는 몇 개의 방이나 가지고 있는가? 등등. 이들 항목들 중에는 소득의 규모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만약 다른 사람의 노동에 대한 착취가 그들로부터 정치적 권리를 빼앗는 지배가 부활한다면, 다소 뜻밖에도, 이것은 지배집단의 최상층부가 소비에트 헌법의 범위의 외부에 있다는 것으로 판명 나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그들은 하인과 주인을 위한 ... 완전한 권리의 평등을 수립해왔다! 소비에트 정권의 밑바닥으로부터 두 개의 정반대의 경향들이 성장하고 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와는 반대로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만큼, 사회주의의 경제적 기초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상층 계층의 이익을 위하여 점점 더 극단적인 표현으로 분배의 부르주아지적 규범들을 수행하는 만큼, 자본주의 복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소유의 형태와 분배의 규범들 사이의 이 현저한 차이는 무한히 성장할 수 없다. 부르주아지적 규범이 이런저런 형태로 생산수단으로 확산되어야만 하거나, 혹은 분배의 규범들이 사회주의적 소유체제와 조응하지 않을 수 없다.

 

관료집단은이러한양장택일이폭로되는것을두려워한다. 신문에서, 연설들에서, 통계에서, 자신의 문학 소설들에서, 시의 시구들에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새로운 헌법의 문구들에서, 어디서건, 언제나 관료집단은 사회주의 사전에 있는 추상적 개념들을 가지고 도시와 시골 모두에 있는 실제관계들을 공들여 덮어 가린다. 이것이 공식 이데올로기가 모두 그렇게도 생동감 없고, 무능력하며, 잘못되어 있는 이유이다.

 

 

 

1. 국가 자본주의

 

우리는종종익숙하지않은현상들로부터의구원을익숙한용어들속에서찾는다. 소비에트 정권을 "국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으로 소비에트 정권이라는 수수께끼를 덮어 가리려는 하나의 시도가 있어왔다. 이 용어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원래 "국가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부르주아지 국가가 운송수단이나 혹은 산업기업들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떠맡을 때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명명하기 위하여 등장했다. 그러한 방책들의 필요성, 바로 그것이 생산력이 자본주의를 넘어서 성장했으며, 실제로 자본주의를 부분적인 자기부정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표시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낡아빠진 체제는 자기부정의 요소들과 나란히 자본주의 체제로서 계속해서 존재한다.

 

부르주아지 전체가 국가를 수단으로 전체 민족경제를 관리하는 하나의 주식회사로 스스로를 구성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분명히 가능하다. 그러한 정권의 경제법칙들은 어떠한 불가사의함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개별 자본가는 자기 자신의 기업의 노동자들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창출된 잉여가치 부분이 아니라 나라전체를 통해 창출된 결합된 잉여가치의 몫을 자기 자신의 자본의 양에 비례하여 이윤의 형태로 받는다. 통합된 "국가 자본주의" 하에서는, 이러한 균등비율 이윤의 법칙이 우회적인 통로, 즉 서로 다른 자본들 사이의 경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즉각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국가회계를 통하여 실현될 것이다. 하지만, 재산소유자들 자신들 사이의 심원한 모순들 때문에, 자본주의적 재산의 보편적 저장소로서의 국가의 자격으로 인해, 국가가 사회 혁명을 위한 너무도 유혹적인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러한 정권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으며, 결코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전쟁과 특히 파시스트 경제에서의 실험들 동안에, "국가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가장 자주 국가 개입과 규제의 체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이것을 위한 훨씬 더 적절한 용어인 국가주의를 사용한다. 국가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사이에 접촉지점들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만약 체제들로서 고려된다면 그것들은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정반대의 것이다. 국가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의 국가 소유로의 대체를 의미하며, 바로 그 이유로 인해 그 성격상 부분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무쏠리니의 이탈리아, 히틀러의 독일, 루즈벨트의 미국, 혹은 레옹 블룸의 프랑스, 어디에서건 국가-주의는 사적소유를 보존하려는 목적을 가지는, 사적소유의 기초 위에서의 국가 개입을 의미한다. 정부의 강령이 무엇이건, 국가주의는 쇠퇴하는 체제의 피해의 강한 어깨로부터 약한 어깨로의 이전으로 불가피하게 귀결된다. 국가주의는 대소유의 보존을 위해 소소유의 존재가 필요한 정도까지만 소소유자들을 완전한 파멸로부터 "구출한다". 국가주의의 계획의 방책들은 생산력 발전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적 소유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생산력을 희생하여 사적소유를 보존하려는 관심에 의하여 명령 받는다. 국가주의는 생존 불가능한 기업들을 지원하고 기생적인 사회계층을 영속화하는 가운데, 기술의 발전에 제동을 거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국가주의는 그 성격에서 완전히 반동적이다.

 

"공업과 농업에서, 이탈리아 경제의 4분의 3이 국가의 수중에 있다."(1934년 5월 26일)는 무쏠리니의 말은 글자그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파시스트 국가는 기업의 주인이 아니라 단지 기업의 주인들 사이에 있는 중재자일 뿐이다. 이들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주제에 관하여 Popolod'Italia는 "기업화한 국가가 경제를 지도하고 통합하지만, 그것을 운영하지는 않는데, 만약 기업화한 국가가 생산을 독점한다면, 그것은 집산주의에 불과할 것이다."(1936년 6월 11일) 농민과 소소유자 전반을 향하여, 파시스트 관료집단은 위협하는 귀족과 주인의 태도를 취한다. 자본가 실력자들에 대하여는, 수석 전권대사의 태도를 취한다. 이탈리아 맑스주의자 페로치는"기업화된 국가는 독점자본의 판매사원에 불과하다.... 무쏠리니는 착취의 이윤은 산업가들에게 남겨주면서, 기업들의 모든 위험은 국가가 떠안게 한다."고 올바르게 쓰고 있다. 그리고 이 측면에서 히틀러는 무쏠리니의 행보를 따른다. 계획의 원칙의 한계뿐만 아니라 그것의 실제 내용도 파시스트 국가의 계급의존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은 사회의 이해관계에 따른 자연에 대한 인간의 힘을 증대시키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소수의 이해관계에 따른 착취 사회의 힘을 증대시키는 것의 문제이다. 무쏠리니는"만약 내가 이탈리아에 국가 자본주의나 혹은 국가 사회주의를 수립하고자 열망한다고 하면(그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는데), 나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모든 객관적 조건들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떠벌인다.  자본가 계급에 대한 몰수하나만 빼고 모두다. 이러한 조건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파시즘은 바리케이드의 다른 쪽으로 넘어가야만  할 것인데, 무쏠리니의 경솔한 확신을 인용하자면, 이런 일은 실제로 벌어지지도 않았으며, 물론 앞으로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자본가들에 대한 몰수는 다른 세력들, 다른 중핵들, 그리고 다른 지도자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역사속에서발생한첫번째의국가의수중으로의생산수단의집중은국가기업화의방식으로자본가들에의해서가아니라, 사회혁명의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하여 성취되었다. 우리의 짤막한 분석만으로도 자본주의적 국가-주의를 소비에트 체제와 동일시하려는 시도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전자는 반동적이고, 후자는 진보적이다.

 

 

2. 관료집단은 하나의 계급인가?

 

계급들은사회의경제체제에서의지위,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에 의하여 성격 규정된다. 문명화된 사회들에서는, 소유관계들이 법에 의하여 정당함이 인정된다. 토지, 산업생산수단, 운송, 그리고 교환의 국유화가 외국무역의 독점과 함께 소비에트 사회구조의 기초를 구성한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에 의하여 수립된 이들 관계들을 통하여, 프롤레타리아트 국가로서의 소련의 성격이 기본적으로 정의된다.

 

그들의 조정자적이고 규제적인 기능에서, 사회적 지위를 고수하고자 하는 염려에서, 그리고 개인적 목적들을 위하여 국가기구를 이용하는 것에서, 소비에트 관료집단은 다른 관료집단, 특히 파시스트와 유사하다. 그러나 소비에트 관료집단은 또한 대단히 다르기도 하다. 다른 어떤 정권에서도 관료집단은 지배계급으로부터의 그러한 정도의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부르주아지 사회에서, 관료집단은 수없이 많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통제수단을 가지고 있는 교육받은 소유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소비에트 관료집단은 빈곤과 맹목으로부터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지배나 명령의 전통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계급의 위로 솟아나왔다. 파시스트들이, 그들 스스로가 권력에 있음을 발견할 때, 공동의 이해, 친분, 결혼 등등의 결속력으로 대부르주아지와 단결하는 반면, 소비에트 관료집단은 민족 부르주아지를 자신의 옆에 두지 않은 채 부르주아지적 관례를 흉내 낸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소비에트 관료집단이 하나의 관료집단 이상의 어떤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소비에트 관료집단은 그 단어의 완전한 의미에서 소비에트 사회에 있는 유일한 특권을 가진 명령을 내리는 계층이다.

 

또다른차이점도마찬가지로중요하다. 소비에트 관료집단은 사회적 정복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방식에 따른 명령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정치적으로 몰수했다. 그러나 주요한 생산수단이 국가의 수중에 있는 한 나라에서 관료집단의 정치권력의 전유라는 바로 그 사실이 관료와 그 나라의 부자들 사이의 새로운, 지금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은 관계를 만들어 낸다. 생산수단은 국가에 속해있다. 그러나 국가는 소위 관료집단에 "속해 있다". 노동자들로부터의 저항을 받건, 그렇지 않건 간에, 만약 아직까지는 완전히 새로운 이들 관계들이 강화되고, 규범이 되고, 합법화된다면, 이러한 것들은 결국에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사회적 정복들에 대한 완전한 청산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적어도 시기상조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마지막 발언을 아직은 하지 않았다. 관료집단이 특별한 형식의 소유형태로 자신의 지배를 위한 사회적 지지기반을 아직은 창출하지 않았다. 관료집단은 자신의 권력과 자신의 수입의 원천으로서의 국가소유를 방어하지 않을 수 없다. 관료집단의 행동의 이러한 측면에서, 관료집단은 아직까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무기로 남아 있다.

 

소비에트 관료집단을 "국가 자본가들"의 계급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려는 시도는 비판으로부터 견디어 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관료집단은 주식이나 채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관료집단은 그들 자신의 어떤 특별한 소유관계와는 무관하게 행정적 계급제도의 방식으로 충원되고, 보충되며, 갱신된다. 개별 관료는 국가기구의 이용에 있어서의 자신의 권리를 자신으로부터 상속받을 자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입을 감춘다.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특별한 사회적 그룹인 것처럼 행세한다. 국가수입의 광대한 부분에 대한 관료집단의 전유는 사회적 기생주의의 성격을 가진다. 이 모든 것들이 소비에트 지배계층의 지위를, 그들의 권력의 완전함과 그것을 덮어 가리는 아첨이라는 연막에도 불구하고, 최고로 모순적이고, 모호하며, 품위 없게 만든다.

 

 

 

부르주아지 사회는 자시의 역사의 과정에서 그 사회적 기초들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많은 정치적 정권들과 관료적 계층들을 쫓아내왔다. 부르주아지 사회는 자신의 생산방식에서의 우월성을 가지고 봉건적이고 길드적인 관계들의 복구에 맞서 스스로를 보존해왔다. 국가권력은 자본주의적 발전에 협력하거나 혹은 그것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적소유와 경쟁의 기초 위에서, 생산력은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 오고 있다. 이것과는 반대로, 사회주의 혁명으로부터 출발했던 소유관계들은 그것들의 저장소로서의 새로운 국가와 불가분으로 결합되어 있다. 소부르주아지적 경향들에 대한 사회주의적 경향들의 우세는 경제의 무의식적 활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재에 의해 취해지는 정치적 방책들에 의하여 보장된다. 따라서 전체적인 경제의 성격은 국가권력의 성격에 달려 있다.

 

소비에트정권의붕괴는불가피하게계획경제의붕괴로귀결될것이고, 그래서 국가소유의 폐지로 귀결될 것이다. 트러스트와 공장들 사이에 있던 강제적 결속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보다 성공적인 기업들이 독립의 길에 출현하는데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주식회사로 바꾸거나, 혹은 예를 들면 노동자들이 이윤에 참여해야 하는 소유의 다른 이행적 형태를 찾을 것이다. 동시에 집단농장들은 해체될 것이며, 훨씬 더 쉽게 그렇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만약 현재의 관료적 독재가 새로운 사회주의 권력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관료적 독재의 붕괴는 산업과 문화에서의 처참한 쇠퇴를 동반하는 자본주의적 관계로의 복귀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만약사회주의적정부가여전히계획경제의보존과발전을위해여전히절대적으로필요하다면, 현재의 소비에트 정부가 누구에 의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의 소비에트 정부의 정책의 사회주의적 성격이 어떤 방책들 속에서 보장되는지의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1922년 3월 11차 당 대회에서 레닌은 당에 실질적으로 작별인사를 하면서 지도적 그룹들에 대하여 "역사는 모든 종류의 이행들을 알고 있다. 확신, 헌신, 그리고 다른 훌륭한 고상한 자질에 의지하는 것은 정치에서는 진지하게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고 연설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지난 15년 동안, 정부는 자신의 사상보다 더 깊게 그 사회적 구성을 변경시켜왔다. 소비에트 사회의 모든 계층 중에서 관료집단은 자기 자신의 사회적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해왔고, 현재의 상황에 완전히 만족하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건 자신의 정책의 사회주의적 방향에 대한 어떠한 주체적인 보장도 제공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관료집단은 단지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두려워하는 만큼만 국가소유를 계속해서 보존한다. 이 유보적인 두려움은 부르주아지적 반동으로 포화상태가 된 테르미도르 관료집단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적 경향들의 가장 의식적인 표현인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의 비합법 정당에 의해 자양분을 받고 있으며, 지탱이 되고 있다. 의식적인 정치세력으로서 관료집단은 혁명을 배신해왔다. 그러나 승리한 혁명은 다행히도 강령과 기치, 정치적 기구들일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체제이기도 하다. 그것을 배신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신들은 그것을 타도해야만 한다. 10월 혁명은 지배계층에 의하여 배신당해왔지만, 아직까지 타도되지는 않았다. 10월 혁명은 수립된 소유관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살아있는 세력, 프롤레타리아트의 최고인자들의 의식성, 세계자본주의의 난관, 그리고 세계혁명의 불가피성과 함께하는 거대한 저항의 힘을 가지고 있다.

 

 

 

3. 역사에 의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소련의 성격에 관한 문제

현재의 소련의 성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소련의 미래에 관한 2가지 다른 가정을 해보자. 소비에트 관료가 구 볼셰비키의 모든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시기의 세계적 경험에 의하여 더욱 강화된 혁명적 정당에 의하여 타도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정당은 노동조합과 소비에트에 민주주의를 복구하는 것으로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정당은 소비에트 정당들의 자유를 복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만 할 것이다. 대중들과 함께, 그리고 대중들의 선두에서, 그러한 정당은 국가기구에 대한 가차 없는 정화를 수행할 것이다. 그러한 정당은 계급과 훈장들, 모든 종류의 특권들을 철폐할 것이며, 노동에 대한 지불에서의 불평등을 경제와 국가기구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만큼으로까지 제한할 것이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배우고, 비판하고, 성장할 자유로운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러한 정당은 노동자와 농민대중들의 이해관계와 의지에 따라서 국민소득의 분배에서의 심원한 변화들을 도입할 것이다. 그러나 소유관계들에 관한 한, 새로운 권력은 혁명적 방책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새로운 권력은 계획경제의 실험을 유지하고 더욱 발전시킬 것이다. 정치혁명, 즉 관료집단에 대한 축출 이후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또 다른 사회혁명이 아니라 경제에서의 일련의 매우 중요한 개혁들을 도입해야만 할 것이다.

 

두 번째 가정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만약 부르주아지 정당이 소비에트 지배계층을 타도하게 된다면, 그들은 현재의 관료, 행정가들, 기술자들, 감독직에 있는 자들, 당 서기들과 일반적인 특권화한 상층 부위들에서 적지 않은 수의 종복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국가기구에 대한 정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의 복귀는 아마도 혁명적 정당의 경우보다 더 적은 수의 사람들을 숙청해야만 할 것이다. 새로운 권력의 주요 임무는 생산수단에 있어서 사적 소유를 복구하는 것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권력은 허약한 집단농장들로부터는 강력한 농민들의 발전을 위한, 그리고 강력한 집단농장들은 부르주아지 타입의 생산자 조합으로, 농경 주식회사로 바꾸기 위한 조건을 창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산업의 영역에서는, 탈 국유화가 경공업과 식품생산 산업들에서 시작되게 될 것이다. 이행의 기간 동안에 계획의 원칙은 국가권력과 개별 "기업들"(즉, 산업의 소비에트 수장들, 과거 망명했던 소유자들과 외국 자본가들 사이에 있는 잠재적인 소유자들) 사이의 일련의 절충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소비에트 관료집단이 부르주아지의 복귀를 준비하는 방향으로 많이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권은 소유의 형식과 산업의 방식의 문제에 있어서 사회혁명이 아니라 개혁을 도입해야만 할 것이다.

 

혁명적정당도반혁명적정당도권력을장악하지못하는3번째 경우를 가정해 보자. 관료집단은 계속해서 국가의 꼭대기에 있게 된다. 심지어 이러한 조건들 하에서도, 사회적 관계들은 정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평등을 위하여 관료집단이 평화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만약 현재 관료집단이 그렇게 하는 것의 너무도 명백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계급과 훈장들을 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겼다면, 미래의 국면들에서 그들은 불가피하게 소유관계에서 그 자신들을 위한 지지대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대관료는 만약 지배적인 소유형태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수입을 보장해 주기만 한다면, 지배적인 소유형태들이 무엇인지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주장은 관료 자신의 권리들의 불안정성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들의 문제를 무시한다. 가족에 대한 새로운 예찬이 구름으로부터 떨어진 것이 아니다. 특권은 만약 그것들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이전되지 못한다면 단지 절반의 가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언의 권리는 소유의 권리와는 분리될 수 없다. 기업집단의 관리가 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주식 보유자가 될 필요가 있다. 이 결정적인 영역에서 관료집단의 승리는 새로운 소유계급으로의 그들의 전화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반면, 관료집단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사회주의 혁명의 부활을 보증해 줄 것이다. 세 번째의 경우는 결과적으로 명확하게 하고 단순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준비했던 첫 번째의 두 가지 경우로 우리를 되돌아가게 한다.

 

 

 

 

* * *

 

소비에트 정권을 이행적이거나 혹은 중간적인 것으로서 정의하는 것은 자본주의(그리고 이것과 함께 "국가 자본주의")로서 혹은 또한 사회주의로서의 완성된 사회적 범주들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자체로 완전히 불충분한 것과는 별도로, 그러한 개념은 현재의 소비에트 정권으로부터는 단지 사회주의로의 이행만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사상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는, 자본주의로의 퇴보가 전적으로 가능하다. 보다 완전한 개념은 필연적으로 복잡하고 다루기 힘을 것이다.

 

소련은자본주의와사회주의의중간에있는모순적사회이다. 그 사회는 ⒜ 생산력이 국가소유에 사회주의적 성격을 부여하기에 충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궁핍에 의해 창출된 시초 축적을 향한 경향이 계획 경제의 수없이 많은 털구멍들을 뚫고 나온다. ⒞ 사회의 새로운 분화의 기초에 부르주아지적 성격을 보존하고 있는 분배의 규범들이 있다. ⒟ 경제적 성장은 노동인민들의 상황을 천천히 좋아지게 만들고 있는 반면, 특권계층의 급속한 형성을 촉진한다. ⒠ 관료집단은 사회적 적대를 활용하면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와는 동떨어진 통제 불가능한 계층으로 변화시켜 왔다. ⒡ 지배정당에 의해 배신당한 사회혁명은 소유관계와 노동대중들의 의식성 속에 여전히 존재한다. ⒢ 축적되고 있는 모순들의 더한 발전은 사회주의로 귀결될 수도 있고, 자본주의로 귀결될 수도 있다. ⒣ 자본주의로 가는 길에서, 반혁명은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쇄해야만 할 것이다. ⒤ 사회주의로 가는 길에서, 노동자들은 관료집단을 타도해야만 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문제는 일국적, 그리고 세계적 무대 모두에서 살아 있는 사회세력들의 투쟁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교조주의자들은분명히이러한가설적정의에만족하지않을것이다. 그들은 예면 예, 아니오면 아니오와 같은 분명한 공식들을 좋아할 것이다. 만약 사회현상들이 항상 완성된 성격을 가진다면, 사회학적 문제들은 분명히 더욱 간단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당신들의 계획에 위배되고, 내일 그것을 완전히 뒤집어엎을 요소들을 논리적 완결성을 위하여 현실 바깥으로 집어던지는 것 보다 더 위험스러운 것은 없다. 우리의 분석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어떠한 선례나 비슷한 사례도 없었던 역동적인 사회형태들을 거스르는 것을 피해 오고 있었다. 과학적 과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정치적도 또한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정에 완성된 정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의 모든 국면들을 따라가고, 그것의 반동적 경향들로부터 진보적 경향들을 분리하며, 그것들의 상호관계를 드러내고, 그 진전의 가능한 다양한 경우들을 예견하고, 이러한 예견 속에서 실천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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