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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_소비에트 국가의 계급적 성격

  • 분류
    트로츠키
  • 등록일
    2011/12/24 13:34
  • 수정일
    2011/12/29 07:07
  • 글쓴이
    얼치기 공산주의자
  • 응답 RSS

소비에트 국가의 계급적 성격

트로츠키

1933년 10월 1일

 

어떻게 문제가 제기되는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의 분리와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향한 방침은 소련의 사회적 성격에 관한 문제를 새롭게 제기해왔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붕괴는 동시에 10월 혁명으로부터 등장했던 그 국가의 붕괴를 또한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참으로 여기 이 두 가지 경우들 모두에서, 하나의 똑같은 지배의 조직, 즉 스탈린주의 기구가 관련된다. 스탈린주의 기구는 국제적 영역에서와 동일한 방책들을 소련 내부에서 실행해왔다. 우리 맑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자들의 정책들은 소련 내에서는 비난의 여지가 없지만, 소련의 경계 밖에서는 파멸적이라는 브란들러 패거리들의 이중장부 체계의 옹호자들이 결단코 아니었다.그들은 양쪽의 경우 모두에서 동일하게 파멸적이라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만약 그렇다면, 소련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청산과 동시에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붕괴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가?

 

첫 눈에 보기에, 그러한 추론은 논박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오류이다. 비록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방책들이 모든 측면들에서 동질적이기는 하지만, 이들 방책들의 객관적인 결과들은 외부적 조건들 혹은 공학적 언어를 사용한다면 물질의 저항력에 달려있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자본주의 체제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수립을 목적으로 하는 기구를 의미했다. 소비에트 정부는 이미 성취된 전복의 성과물들의 보존을 위한 기구를 의미한다. 서구의 공산당들은 유산으로 물려받은 자산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의 강점(실제로는 그들의 약점)은 그들 자신들의 내부, 오직 그들 자신들의 내부에 있다. 스탈린주의 기구의 강점의 10분의 9는 그들 자신들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혁명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적 변화들에 있다. 여전히 이러한 고려 하나로 문제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커다란 방법론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그리고 왜 스탈린주의 기구가 국제적인 혁명적 요소로서의 자신의 의미를 완전하게 탕진하고도,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사회적 정취들의 문지기로서의 자신의 진보적인 의미를 아직까지 일부 보존할 수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덧붙여 말한다면, 이 이중적 지위는 그 자체로 역사발전의 불균등성의 발현들 중의 하나임을 의미한다.

 

노동자 국가의 올바른 정책들은 일국적 경제건설 하나로만환원되지 않는다. 만약 혁명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나선을 따라서 국제적 영역으로 확장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일국적 틀거리 속에 있는 관료적 나선을 따라서 축소되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 만약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유럽의 것, 그리고 세계적인 것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붕괴를 향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은 폭넓은 역사적 관점에서 완전히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구체적인 역사적 시대의 주위를 맴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정책들이 노동자 국가의 일소로 이미 나아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 이것이 문제이다.

 

처음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맑스주의의 중요한 방법론적 입장이 노동자 국가는 이미 명백하게 일소되었다는 주장에 대항하여 제기된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정치적 전복과 3년 동안의 내전에 의하여 수립되었다. 사회에 대한 계급 이론과 역사적 경험이 공히 평화적 방법을 통하여, 즉 무기를 손에 든 거대한 계급 전투들이 없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불가능함을 입증한다. 그러한 사례에서, 어떻게 감지할 수 없는, “점진적인” 부르주아지의 반혁명을 생각할 수 있는가? 이제까지, 어떤 경우에도, 부르주아지의 반혁명들뿐만 아니라 봉건적인 반혁명들도 결코 “유기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으며, 그것들은 항상 군사적 수술이라는 개입을 필요로 했다. 결국, 개량주의가 일반적으로 이론의 경지에 도달한 한에서, 개량주의 이론들은 계급적 적대가 심원하며, 화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음에, 따라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의 전망에 언제나 기초한다. 한 계급의 수중으로부터 다른 계급의 수중으로의 권력의 이행의 파국적 성격과 관련한 맑스주의 논제는 역사가 미친 듯이 전진하는 혁명적 시기들에 뿐만 아니라, 사회가 뒤로 후퇴하는 반혁명의 시기들에도 적용된다. 소비에트 정부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그것에서 부르주아지의 그것으로 점진적으로변해왔다고 주장하는 자는 소위 개량주의의 필름을 거꾸로 돌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를 반대하는 자들은 이것이 일반적인 방법론적 명제라는 것을 부정하고, 그것 자체가 아무리 중요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추상적이라고 선언할지 모르겠다.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이다. 우리의 분석에서는 계급 모순들의 화해불가능성이라는 논제가 우리를 지도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 하지만, 그 결과들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역사적 과정 그 자체의 물질적 내용들 속으로 깊이 탐구해야만 한다.

 

우리는 방법론적 주장이 그 문제를 남김없이 모두 논하지 않는 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그것은 증명이라는 부담을 상대편으로 넘긴다. 스스로를 맑스주의자로 여기는 비평가들은 3년 동안의 투쟁 속에서 권력을 잃었던 부르주아지가 어떤 방식으로 어떠한 전투들도 없이 이 권력을 다시 차지할 수 있었는지 밝혀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를 반대하는 자들이 어떠한 종류의 진지한 이론적 표현을 소비에트 국가에 대한 그들의 평가에 투자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관계로, 여기서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이 작업을 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독재”

 

현재의 소비에트 국가의 비(非)프롤레타리아트적 성격에 찬성하는 가장 널리 퍼진, 인기 있는, 그리고 일견 논박의 여지가 없는 주장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기관들의 자유에 대한 교살과 관료집단의 전능한 힘에 대한 언급에 기초한다. 단 한사람의 독재로 귀결되었던 하나의 기구의 독재를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와 동일시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독재에 의하여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런 매혹적인 추론은 현실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서의 현상의 경과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관념론적 도식인 칸트주의적 규범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혁명의 어떤 고상한 “친구들”은 자기 자신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매우 찬란한 개념을 마련해 두었는데, 모든 그 자신의 계급적 야만주의의 유산을 가지고 있는, 모든 자신의 내부 모순들을 가지고 있는, 지도부의 실책들과 범죄들을 가지고 있는 실제의 독재가 그들이 제공해왔던 번드르한 이미지를 닮는데 완전하게 실패한다는 사실에 직면하여 완전히 의기소침해 있다.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감정들에 있는 미몽을 깨우치자, 그들은 소련에 등을 돌린다.

 

어디에서, 무슨 책들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위한 무오류의 처방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한 계급의 독재는 국가의 운영에 그 계급 전체 대중이 항상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것을 소유계급들의 경우에서 보아왔다. 귀족은 자신들이 무릎을 꿇는 군주제를 통하여 지배를 했다. 부르주아지의 독재는 지배계급이 두려워 할 것이 없는 자본주의의 상승이라는 조건들 하에서만 오직 상대적으로 발전된 민주주의적 형태들을 띠었다. 우리 자신의 눈앞에서, 독일에서는 모든 전통적인 부르주아지의 정당들이 작은 파편들로 분쇄되면서 히틀러의 독재에 의하여 민주주의가 대체되었다. 오늘날 독일의 부르주아지는 직접적으로 지배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그들은 히틀러와 그의 패거리에 대한 완전한 복종 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지의 사회적 헤게모니라는 모든 조건들이 보존되어 왔고, 강화되어 왔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부르주아지의 독재가 손상 받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히틀러는 정치적으로 부르주아지를 몰수함으로써,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부르주아지를 경제적 몰수로부터 구원했다.

 

우리의 다음의 비판을 예상하면서, 우리를 반대하는 자들은 비록 착취하는 소수로서의 부르주아지는 파시스트 독재를 통하여서도 역시 자신의 헤게모니를 보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정부의 임무들 속으로 어느 때 보다도 광범위한 인민 대중들을 직접적으로 끌어 들이면서 자신의 정부를 스스로 운영해야만 한다고 서둘러 논박할 것이다. 그것의 일반적인 형식에서, 이 주장은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주어진 경우에 있어서는 이 주장은 단지 현재의 소비에트 독재는 병든 독재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고립되고 후진적인 나라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엄청난 어려움들이 지도부의 잘못된 정책들과 결부되어, 관료집단이 자기 자신의방책들로 사회적 성취들을 지켜내기 위하여 프롤레타리아트를 정치적으로 몰수한 것으로 귀결되었다. 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그 사회의 경제적 관계들에 의하여 결정된다. 10월 혁명으로 창출된 소유의 형태가 타도되지 않는 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여전히 지배계급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훨씬 더 깊은 분석, 즉 관료적 지배의 사회적 뿌리들과 계급적 한계들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관료집단의 독재”에 관한 논문들은 멘셰비키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극도로 인기가 있는 과장된 민주주의적 문구들로 요약될 뿐이다. 소비에트 노동자들의 절대 다수가 관료집단에 만족하지 않고 있으며, 결코 최악은 아니지만, 상당한 부위가 관료집단을 증오한다는 것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불만족이 격렬한 대중적 형태들을 띠지 않는다는 것이 단순히 억압 때문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만약 자신들이 관료집단을 타도한다면, 자신들이 계급의 적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두려워한다. 관료집단과 계급 사이의 상호관계들은 그것들이 천박한 “민주주의들”에 대하여 나타나는 것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하다. 만약 다른 전망들이 그들 앞에 열렸다면, 서구의 지평선이 파시즘의 갈색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붉은색으로 불타올랐다면, 소비에트 노동자들은 기구의 전제에 복수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를 악문 채 관료집단을 견디어 내고(“관대하게 대하고”), 이러한 의미에서 관료집단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담지체로서 인정한다. 그러나 노동자들 중 단 한 명도 반혁명이 이미 벌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소비에트 국가의 척추이다. 그러나 통치의 기능이 무책임한 관료집단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 한, 우리는 우리의 앞에 명백하게 병든 국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국가는 치료가 될 수 있을까? 치료를 위한 더 이상의 시도들은 성과도 없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다. 우리는 치료들을 세계 혁명적 운동과 분리되는, 그리고 별도의 모든 종류의 인위적인 방책들이 아니라 맑스주의 기치 하에서의 한층 더한 투쟁이라고 이해한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중핵들을 훈련시키는 것,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전위의 투쟁력을 부활시키는 것, 이것이 “치료”의 본질이다. 이것은 역사적 진보의 근본적은 방향과 일치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상당히 충분한 우리를 반대하는 자들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코민테른을 치료하는 것에 종사시킴으로써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수차례 말해왔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우리가 코민테른을 치료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결정적인 테스트 때까지는 그 병이 사망에 이르렀거나 혹은 가망이 없는 병이라고 선언하는 것을 거부했을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치료하는 것”으로 단 하루도 낭비하지 않았다. 우리는 혁명적 중핵들을 형성했고, 똑같이 중요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근본적인 이론적, 강령적 입장들을 준비했다.

 

 

 

관념론적 규범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칸트주의” 사회학자 여러분들은(우리는 칸트의 그림자에게 사과한다) 종종 “진정한”, 즉 그들의 관념적 규범들에 적합한 독재는 단지 파리 코뮨의 나날들, 혹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의 평화까지나, 기껏해야 NEP까지의 10월 혁명의 첫 번째 시기 동안에만 존재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말로 정확한 사격이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겨냥하고 소의 눈을 가격한다! 만약 맑스와 엥겔스가 파리 코뮨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고 불렀다면, 그것은 단지 가능성들의 힘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뮨은 그 자체로 아직은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아니었다. 권력을 장악했지만, 파리 코뮨은 어떻게 그것을 사용해야 하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공세를 취하는 대신에, 기다렸다. 코뮨은 파리라는 동그라미 안에서 고립된 채 남아 있었다. 코뮨은 국가 은행을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코뮨은 권력을 전국적 규모에서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복을 소유관계들과 연결시키지 않았고, 참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것에 심지어 운동의 지도자들조차 코뮨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을 막았던 블랑키주의적 일면성과 푸르동주의적 편견들이 추가되어야만 한다.

 

10월 혁명의 첫 시기에 관한 언급은 더 이상 상서로운 것이 아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의 평화까지는 물론 심지어 1918년 가을까지도, 혁명의 사회적 내용은 소부르주아적 농경에서의 전복과 노동자들의 생산에 대한 통제에 제한되었다. 이것은 혁명이 자신의 실천들 속에서 아직은 부르주아적 사회의 경계들을 넘지 않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첫 시기 동안에, 병사들의 소비에트들이 노동자들의 소비에트들과 나란히 지배했고, 종종 노동자들의 소비에트들을 팔꿈치로 밀어 제쳤다. 단지 1918년 가을로 향해가면서, 소부르주아적 병사-농경적 요소가 가장자리로 약간 후퇴하였고,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함께 앞으로 전진 했다. 오직 이 때로부터 진정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시작에 관하여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조차도, 분명한 많은 유보조항을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초기 몇 해 동안에, 독재는 지리적으로 구 모스크바 공국에 제한되었고, 모스크바로부터 그 주위 지방에 이르는 모든 반경을 따라서 3년간의 전쟁을 수행해야만 했다. 이것은 1921년까지 정확하게 신경제정책까지 진행되었던 것은 아직까지는 전국적 차원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이비 맑스주의 속물들의 견해 속에서는 독재가 신경제정책의 시작과 함께 사라졌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신사양반들에게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단순히 계량할 수 없는 개념, 우리의 죄 많은 지구에서는 현실화될 수 없는 관념적 규범이다. 이런 종류의 “이론가들”이 독재라는 바로 그 단어를 싸잡아 비난하지 않은 한도에서, 독재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이의 화해 불가능한 모순을 깎아 내리려 애쓰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파리의 “공산주의적 민주주의자들”(소바린[Souvarine]과 그 일당) 종파는 정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실험실의 관점에서 극단적으로 특징적이다. 이름 바로 그것이 이미 맑스주의와의 결별을 암시한다. 맑스는 자신의 고타강령비판에서, 사회민주주의이라는 명칭이 혁명적 사회주의 투쟁을 민주주의라는 형식적인 통제 아래에 둔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 명칭을 거부했다. “공산주의적 민주주의자들”과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자들”, 좀 더 정확하게 사회 민주주의자 사이에는 원칙에서의 어떠한 차이도 없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하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는 단단하고 고정된 구분이 없다. 오직 하나의 운동으로서 혹은 하나의 국가로서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계급투쟁의 실제 경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진행의 물질적 조건들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에 맞서 부르주아지의 독재에 복무하는 자기방어의 무기인, 초사회적이고 초역사적인 추상인 “민주주의”에 종속될 때에만 파계는 시작된다. 만약 고타강령(1875)의 시대 동안에 사회민주주의라는 단어 속에서 단지 건강한 영감을 가진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에게는 정확하지도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은 명칭만을 보는 것이 여전히 가능했다면, 계속되었던 부르주아지 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역사 전체는 “민주주의적 공산주의(?)”라는 기치를 철저한 계급 배신의 기치로 바꿔버린다.

 

 

 

보나파르티즘

 

우르반스 유형의 반대자는 아직까지 부르주아 계급 정권의 복구가 진정으로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 국가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즉 현재의 소비에트 정권은 초계급적인 혹은 계급간의 보나파르트적 정권이라고 말할 것이다. 당시에 우리는 이 이론을 청산했다. 역사적으로 보나파르티즘은 부르주아 계급 사회의 위기의 시기들 동안의 부르주아지의 정부였으며, 부르주아지의 정부로 남아있다. 부르주아지 혁명의 순전히 자본주의적 성취들을 강화하는 “진보적” 보나파르티즘과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의 보나파르티즘, 우리 시대의 경련을 일으키는 보나파르티즘(폰 파펜, 슈라이허, 돌퍼스, 그리고 네덜란드 보나파르티즘의 후보인 콜리진 등)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보나파르티즘은 항상 계급들 사이의 정치적 방향 전환을 암시한다. 그러나 보나파르티즘 하에서는, 그것의 모든 역사상의 윤회에서, 하나 그리고 동일한 사회적 기초, 즉 부르주아 소유가 보존된다. 보나파르티스트의 계급들 사이에서의 비틀거림이나 보나파르트시트 깡패집단의 “초계급적” 지위로부터 보나파르트적 국가의 무계급적 성격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 보다 더 터무니없는 짓은 없다. 엄청나게 터무니없는 짓거리! 보나파르티즘은 자본가의 헤게모니의 변종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만약 우르반스가 현재의 소비에트 정권 또한 포함시키기 위하여 보나파르트 정권의 개념을 확장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소비에트 “보나파르티즘”의 사회적 내용이 필요한 명확성을 가지고 정의된다는 하나의 조건 하에서 그러한 확장된 해석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소비에트 관료집단 스스로의 지배가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계급세력들 사이에서의 우왕좌왕이라는 토양에서 건설되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 스탈린의 사적인 투표를 통한 통치가 관료적 우왕좌왕을 절정에 이르게 해 온 이상, 소비에트 보나파르티즘을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보나파르트들[프랑스 황제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그들의 애처로운 아류들이 부르주아 정권의 기초 위에서 발전해왔고, 발전하고 있음에 반해, 소비에트 관료집단의 보나파르티즘은 그 자신의 밑에 소비에트 정권이라는 토양을 가지고 있다. 용어상의 혁신들이나 역사에 기인하는 유추들은 분석을 위한 이런 저런 방식에서의 편리함으로써 복무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소비에트 국가의 사회적 성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국가자본주의”

 

가장 최근의 시기 동안에, 우연하게도 우르반스는 소비에트의 경제 구조가 “국가자본주의”의 변종인 것으로 보인다는 새로운 이론을 발명해 냈다. 우르반스가 정치적 상부구조의 영역에서의 자신의 용어상의 활동으로부터 경제적 기초로 하강했다는 것에 “진척”이 있다. 아뿔싸, 하지만 이 하강은 그에게 이롭지가 않았다.

 

우르반스에 따르면, 부르주아 정권의 가장 최신의 자기 방어의 형태가 국가자본주의다. 이탈리아, 독일, 그리고 미국의 집단적 “계획” 국가를 한 번 둘러보면 된다. 거칠 것 없는 의사표시에 익숙해진 우르반스는 이것들 속에 소련도 집어 던진다. 이것에 관해서는 뒤에서 말하게 될 것이다. 문제가 자본주의 국가들을 건드리는 한, 우르반스는 스스로를 우리 시대의 중요한 현상에 관여하게 한다. 훨씬 이전에 독점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와 일국적 경계들을 넘어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기관들에 의하여 무력화된 노동계급은 그들의 자본주의적 족쇄들로부터 사회의 생산력을 제 때에 해방시킬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일정기간 계속되는 경제적, 정치적 경련의 시대가 등장한다. 생산력은 사적 소유와 일국적 경계들이라는 장벽을 사정없이 두들긴다. 부르주아 정부들은 경찰 곤봉을 가지고 그들 자신의 생산력의 폭동을 진정시켜야만 한다. 이것이 소위 계획경제를 구성하는 것이다. 국가가 자본주의적 무정부 상태에 제복을 입히고, 그것을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한, 이것을 조건적으로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원래 맑스주의자들은 국가자본주의를 국가 그 자체의 독립적인 경제적 기업들만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개량주의자들이 과거에 없던 많은 수의 운송과 개별 기업들에 대한 지방자치 도시화나 혹은 국유화를 통하여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꿈을 꾸었을 때, 맑스주의자들은 이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라고 논박하면서 응답하곤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개념이 보다 폭넓은 의미를 획득했고, 경제에 대한 국가의 모든 형태의 개입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화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우르반스는 “국가 자본주의”의 노고들에 관하여 상술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그 자신의 방식에 따라서 평가한다. 그를 이해하는 것이 전반적으로 가능한 한, 그는 “국가 자본주의”의 정권이 필요한 것이라고, 그리고 더 나아가, 마치 기업 집단들이 본질적으로 다른 기업들에 비교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사회의 발전에 있어서 진보적인 단계라고 선언한다. 자본주의적 계획을 평가함에 있어서 너무나도 근본적인 오류가 그것이 무엇이건 어떠한 접근도 묻어버리기에 충분하다.

 

특정한 정치적 전제조건들 하에서, 전쟁이 그 종지부를 찍었던 자본주의 상승의 시대 동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국가화를 진보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이 가능했던 반면, 다시 말해 국가자본주의가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기 위하여 활동하며, 미래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경제와 관련된 일을 촉진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가능했던 반면, 현재의 “계획 경제”는 철두철미하게 반동적인 단계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즉, 국가자본주의는 노동의 전 세계적 분할로부터 경제를 분리하려고, 생산력을 국민 경제라는 프로크러스틴의 침대에 맞추려고, 일부 부문들에서는 생산을 인위적으로 축소시키고, 이와 마찬가지로 인위적으로 다른 부문들은 이윤도 남기지 못하는 엄청난 지출을 통하여 만들어 내려고 애쓴다. 고대 중국적 유형에 있는 관세장벽에서 시작하여 히틀러의 “계획경제” 하에서 기계사용에 대한 금지라는 에피소드로 끝이 나는 현재의 국가의 경제 정책들은 국민 경제의 쇠퇴를 야기하고, 세계 관계들에서의 혼란을 야기하고, 사회주의적 계획에 아주 많이 필요하게 될 통화체계를 완전히 붕괴시키는 대가로 불안정한 규제를 획득한다. 현재의 국가자본주의는 사회주의 국가가 미래에 할 일들을 준비하거나, 그 업무들을 경감시키기는커녕, 반대로 사회주의 국가에 엄청난 추가적인 어려움들을 만들어낸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 장악을 위한 일련의 좋은 기회들이 지나가 버리게 했다. 이것을 통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에서는 파시스트 보나파르티즘을 위한 조건들을, 경제에서는 “국가자본주의”의 파괴적 활동을 위한 조건들을 창출했다. 권력 장악 이후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실책들에 대하여 경제적으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소련의 경제

 

하지만, 이 분석의 한계들 안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우르반스가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 아래에 소련의 경제 또한 포함시키려고 시도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그는 레닌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거의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언급을 설명하는 오직 한 가지 길이 있다. 즉, 한 달에 새로운 이론 하나를 발명해내는 불멸의 발명가로서, 우르반스에게는 자신이 언급하는 책들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레닌은 실제로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적용했지만, 전체로서의 소비에트 경제에 적용했던 것이 아니라 정부 통제하의 영업 허가를 받은 외국기업(foreign concession), 공상(工商) 혼합 기업들, 부분적으로 농민과 대개는 쿨락[부농] 기업들과 같은 소비에트 경제의 특정한 부위에 대해서만 그렇게 했다. 이들 모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자본주의의 요소들이지만, 이것들이 국가에 의하여 통제되기 때문에, 그리고 심지어 국가의 직접적 참여를 통하여 혼합 기업들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레닌은 이들 경제적 형태들을 조건적으로, 혹은 레닌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인용부호들 속에” 넣어서 “국가자본주의”라고 불렀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 국가가 사적 자본을 허용하고, 사적 자본으로 하여금 명백한 제한들 속에서 노동자들을 착취하도록 허용했던 한, 프롤레타리아트 국가는 자신의 날개들 중의 하나 아래에 부르주아지적 관계들을 보호했다.

 

레닌은 자신이 영업 허가를 받은 기업들과 “혼합 기업들”, 즉 국가와 사적 자본의 상호관계에 기초한 기업들이 순수한 국가 기업집단들과 신디케이트들과 나란히 소비에트 경제에서 주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예상했던 신경제정책으로의 이행의 시기에 이 용어를 제출했다. 레닌은 정부의 허가를 받은 기업들 등과 같은 국가자본주의 기업들과 구별하여, 소비에트 기업집단들과 신디케이트들을 “변함없는 사회주의적 형태의 기업들”로 정의했다. 레닌은 국가자본주의와 순수 국가기업들 사이의 경쟁으로서의 소비에트 경제의, 특히 선업에서의 계속되는 발전을 구상했다.

 

우리는 우르반스로 하여금 유혹에 이끌리게 했던 이 용어를 레닌이 어떤 제한들 속에서 사용했는지가 분명하다고 믿는다. “레닌(!)동맹”의 지도자의 이론적 파국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우리는 레닌의 원래의 예측들과는 반대로 정부의 허가를 받은 기업들도 혼합 기업들도 소비에트 경제의 발전에 있어서 어떠한 분명한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해야만 한다. 현재에는 일반적으로 이들 “국가자본주의” 기업들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반면에, 신경제 정책의 초기에는 그 운명이 너무나도 음울했던 소비에트 기업집단들은 레닌 사망 이후 몇 년 동안에 거대한 발전을 경험했다. 따라서, 만약 누군가가 레닌의 용어를 의식적으로, 그리고 사물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가지고 사용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소비에트의 경제적 발전은 완전히 “국가자본주의”의 단계를 넘어섰으며, “변함없는 사회주의적 형태”의 기업들이라는 경로를 따라 전개되었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또한 이번에는 정반대 성격의 어떠한 가능한 오해들도 미리 예방해야만 한다. 레닌은 자신의 용어들을 꼼꼼하게 선택했다. 그는 기업집단들을 지금 스탈린주의자들이 딱지를 붙이는 것처럼 사회주의적기업들이라고 불렀던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형태”의 기업들이라고 불렀다. 레니의 문장에서, 이 미묘한 용어상의 차이는 기업집단들이 형태가 아니라, 경향이 아니라, 지방의 경제가 혁명화된 이후, 도시와 시골 사이의 모순이 파괴된 이후, 인류가 모든 인류의 욕구를 완전하게 만족시키는 것을 배운 이후, 즉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가 국유화된 산업과 집산화된 지방 경제의 기초 위에서 등장하게 된 이후에 그것들의 진정한 내용에 따라서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불릴 권리를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레닌은 이러한 목적의 성취는 2개나 혹은 3개 세대의 계속되는 활동들, 더 나아가 국제혁명의 발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는 활동들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요약해보면, 단어의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 우리는 부르주아지 자신의 책임 하에서 부르주아지 국가에 의한 산업이나 다른 기업들에 대한 운영이나 혹은 사적 자본주의 기업들의 활동에 대한 부르주아지 국가의 “규제하기” 개입으로 국가자본주의를 이해해야만 한다. “인용 부호 속에서”의 국가자본주의에 대해서, 레닌은 사적 자본주의 기업들과 관계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 국가의 통제라는 뜻으로 말했다. 이들 개념들 중 어떤 것도 어떤 측면으로부터도 현재의 소비에트 경제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어떤 구체적인 경제적 내용을 우르반스 자신이 소비에트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자신의 이해 속에 넣었는지는 깊은 비밀로 남는다. 분명하게 말해서, 그의 최신 이론은 전부 잘못 읽은 인용문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관료집단과 지배계급

 

하지만, 소비에트 국가의 “비-프롤레타리아트적” 성격에 관한, 훨씬 교묘하고, 훨씬 신중하지만, 더 이상은 진지하지 않은 또 다른 이론이 있다. 블룸의 동료이며 소바린의 스승인 프랑스 사회민주당원 루시엔 로래트[Lucien Laurat]는 지금까지는 부르주아지 계급의 몫으로 떨어졌던 잉여가치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관료집단은 정치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착취하지도 않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도 부르주아지도 아닌 소비에트 사회는 절대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계급 조직이라는 관점을 방어하는 책자를 썼다. 로래트는 자본론의 육중한 공식들을 가지고 자신의 의외의 사실들 발명하며,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피상적이고 순전한 서술 “사회학”에 심오함의 외관을 부여한다. 그의 전체 이론이 착취하는 관료집단의 명령을 내리는 지위들을 위한 희생양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정의하기 위하여 10월 혁명과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면에서 자신을 저속하게 하는 프랑스인보다 더 뛰어났던 러시아-폴란드 혁명가 마크하이스키에 의하여 단지 보다 많은 불꽃과 광채만을 지닌 채 30년 전에 정식화되었었다는 것을 편집자는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마크하이스키조차 엄지손가락으로부터 그의 이론을 흡수하지는 않았는데, 그는 단지 국가사회주의에 반대하는 무정부주의적 편견들에 사회학적으로, 그리고 경제학적으로 “의존했을” 뿐이다. 그런데, 마크하이스키 또한 맑스의 공식들을 활용했지만, 로래트의 경우보다 훨씬 더 일관된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 마크하이스키에 따르면, 자본론의 저자는 그의 재생산의 공식들(2권)에서 사회주의 인텔리겐챠(관료집단)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게 되는 잉여가치의 몫을 사악한 사전 고려 하에 덮어 가렸다.

 

비록 착취자 맑스에 대한 폭로는 없었지만, 소련에서는 사회적 관료집단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대체했다고 선포했던 미야스니코프가 우리 시대에 이런 종류의 “이론”을 방어했다. 십중팔구 로래트는 현학적으로 “학문적인” 냄새만을 부여하는 가운데 미야스니코프로부터 자신의 이론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차용했다. 로래트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모든 실수들(그리고 오로지 실수들만),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단념했었던 실수들을 흡수했음이 또한 완벽을 기하기 위하여 추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론” 그 자체를 보다 면밀하게 검토해보자. 맑스주의자에게 있어서 계급은 예외적으로 중요하며, 더 나아가 과학적으로 제한된 의미를 가진다. 계급은 단지 국민소득의 분배에 대한 참여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일반적 구조에서의 독립적인 역할, 그리고 사회의 경제적 기초 안에 있는 독립적인 뿌리에 의하여 정의된다. 각각의 계급(봉건 귀족, 농민, 소부르주아 계급, 자본가 부르주아지 계급,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은 그 자신의 특수한 소유 형태들을 만들어낸다. 관료집단은 이들 모든 사회적 특징을 결여하고 있다. 관료집단은 생산과 분배의 과정에서 어떠한 독립적인 지위도 가지고 있지 않다. 관료집단은 어떠한 독립적인 소유의 뿌리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관료집단의 기능들은 기본적으로 계급 지배의 정치적 기술과 관련된다. 다양한 형태를 가지며, 구체적인 비중이 다른 관료집단의 존재는 저마다의계급적 통치를 특징짓는다. 관료집단의 권력은 반영되는 성격의 것이다. 경제적 지배계급의 사회적 뿌리들을 자신들의 자양분으로 하며, 경제적 지배계급과 함께 스스로를 유지하고, 그들과 함께 몰락하는 관료집단은 경제적 지배계급과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계급적 착취와 사회적 기생주의

 

로래트는 관료집단이 필요한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기능들을 수행하는 한, 그들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민소득의 절대적으로 불균형적인 부분에 대한 통제되지 못하는 전유이다. 정확하게 이 의미에서, 관료집단은 “착취 계급”으로 보인다. 하지만, 논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들에 기초한 이 주장이 관료집단의 사회적 특징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항상, 그리고 모든 사회조직에서, 관료집단은 잉여가치의 적지 않은 부분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스트 메뚜기들이 국민소득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먹어치우는지를 계산하는 것이 시시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자체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닌 이 사실이 파시스트 관료집단을 독립적인지배계급으로 바꾸어 내기에는 전적으로 부족하다. 파시스트 관료집단은 부르주아지 계급의 청부업자들이다. 이 청부업자가 주인의 목 위에 걸터앉아, 때때로 가장 맛있는 조각들을 주인의 입으로부터 빼앗고, 게다가 그의 주인의 대머리에 침을 뱉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가장 거북한 청부업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청부업자일 뿐이다. 그가 없다면, 부르주아지 계급과 부르주아지 계급의 사회조직은 절대적으로 파멸하고 말 것이기 때문에, 부르주아지 계급은 그를 감수한다.

 

바뀌어야 할 것을 바꾼다면, 위에서 말했던 것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게도 또한 적용될 수 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국민소득의 상당한 비율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낭비하며, 착복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들의 경영에 대하여 높은 값을 치른다. 소비에트 사회에서, 스틸린주의 관료집단은 정치적, 행정적 특전들을 가진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엄청난 물질적 이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도 극도로 특권화된 지위를 장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큰 아파트들,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들, 그리고 심지어 롤스 로이스들 조차도 관료집단을 독립적인 지배계급으로 변형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물론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불평등, 게다가 그렇게 심한 불평등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그리고 절반은 공식적인 거짓말들과는 반대로, 현재의 소비에트 사회조직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이행의 사회조직이다. 현재의 소비에트 사회조직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기괴한 유산, 특히 관료집단과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관료집단 자신의 내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내부에 있는 불평등을 여전히 자신의 내부에 지니고 있다. 주어진 단계에서, 특정한 한계들 내에서는 불평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차별적인 임금, 보너스 등 사회주의적 진보의 부르주아지적 방편들이 경쟁을 위한 자극들로 사용된다.

 

현재 체제의 이행적 성격이 불평등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관료집단의 통제받지 않는 지도자들이 남용해 온 그러한 기괴하고, 공공연하며, 비밀스러운 특권들을 결단코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좌익반대파는 그 모든 모습들 속에서 관료집단이 소비에트 사회의 도덕적 타이 로드[해석자: 자전거 바퀴의 살에 해당되는 장치]를 분해하고 있고, 대중들 사이에서의 첨예하고 정당한 불만을 야기하고 있으며, 거대한 위난들을 위한 기초를 준비하고 있다고 선언하기에 앞서, 우르반스, 로래트, 소바린, 그리고 시몬 웨일등의 누설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료집단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그들에게 고유한 어떠한 특수한 관계로부터가 아니라, 10월 혁명에 의해 수립되었고, 근본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적절한 그러한 소유관계들로부터 자신들의 특권들을 획득하기 때문에, 관료집단의 특권들 하나만으로는 소비에트 사회의 기초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분명히 하자면, 관료집단이 인민들에게 강도질을 하는 한(그리고 이것은 모든 관료들에 의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진다), 우리는 단어의 과학적 의미에서 계급착취가 아니라, 비록 매우 거대한 규모에서라고 하더라도 사회적 기생주의로 다루어야만 한다. 중세 시대 동안에, 성직자 집단은 그들의 지배가 토지소유와 강제노역이라는 특수한 체제에 기초했던 한, 하나의 계급이나 신분을 구성했다. 오늘날의 교회는 착취하는 계급이 아니라 기생적 자치단체를 구성한다. 미국의 성직자 집단을 하나의 특수한 지배계급이라고 실제로 말하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 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다양한 색조들과 교파들의 성직자들이 잉여가치의 거대한 부분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그것의 기생주의의 특징들 속에서, 성직자뿐만 아니라 관료집단도 마찬가지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하나의 독립적인 “계급”을 의미하지 않는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와 비슷하다.

 

 

 

두 가지 전망들

 

만약 우리가 통계 수치 속에서가 아니라 역동적인 단면 속에서 문제를 취한다면, 문제는 우리 앞에서 보다 더 뚜렷이 부상하여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국민소득의 엄청난 부분을 비생산적으로 낭비하면서 동시에 소비에트 관료집단은 자신들의 바로 그 기능으로 인하여 나라의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성장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국민소득이 높을수록, 그들의 특권의 축적 또한 더 풍부해진다. 동시에, 소비에트 국가의 사회적 기초 위에서의 노동 대중들의 경제적, 문화적인 향상은 관료적 지배의 기반들 바로 그것을 침식하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행운의 역사적 이형(異形)에 비추어 볼 때, 관료집단은 단지 사회주의 국가의 기구(나쁘고 값비싼 기구)인 것으로 판명된다.

 

그러나 국민소득의 전례가 없이 큰 부분을 낭비함으로써, 그리고 경제의 기본적인 비례들을 파괴함으로써(이것은 논박 속에서 다루어 질 것이다), 관료집단은 나라의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성장을 방해한다. 절대적으로 옳다! 관료주의의 방해받지 않는 더 이상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성장의 중단으로, 끔찍한 사회적 위기로, 그리고 전체 사회의 급격한 하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붕괴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관료적 지배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노동자 국가의 자리에 “사회적 관료제적” 관계들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관계들이 찾아 올 것이다.

 

소련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논쟁을 완전히 탐구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한번만 이렇게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우리가 소비에트 정권의 더 이상의 성공이라는 경우의 수를 취하건, 혹은 반대로 소비에트 정권의 붕괴라는 경우의 수를 취하건, 관료는 독립적인 계급으로 판명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에 붙어 있는 사마귀로 판명된다고 우리는 믿는다. 종양은 엄청난 규모로 커질 수 있고, 심지어 생명체를 교살시킬 수는 있지만, 종양이 하나의 독립적인 생명체가 될 수는 절대로 없다.

 

최종적으로, 완벽한 명확성을 위하여 우리는 다음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만약 오늘날 소련에서, 맑스주의 당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면, 그들은 정치적 사회조직 전체를 쇄신할 것이다. 그들은 관료집단을 재편하고 숙청하여 관료집단을 대중들의 통제하게 있도록 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행정적 업무들을 변형하여 경제의 운영에 있어서 일련의 중대한 개혁들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들은 소유관계들에서의 전복, 즉 새로운 사회혁명을수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반혁명의 가능한 경로들

 

관료집단은 지배계급이 아니다. 그러나 관료체제의 더 이상의 발전은 유기적으로 퇴행을 통해서가 아니고 반혁명을 통하여 새로운 지배계급의 발단으로 귀결될 수 있다. 우리는 스탈린주의 기구가 정확하게 이중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그들을 중도파라고 부른다. 더 이상은맑스주의 지도부가 없고, 아직까지는곧 등장하는 지도부도 없는 오늘날, 스탈린주의 기구는 자기 자신의 방식들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들은 내일적의 승리를 촉진하는 그런 것들이다. 소련에서 스탈린주의의 이러한 이중적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국가 없이 영위될 것인 것처럼, 정당도 없이 영위될 것이다. 이행의 시대라는 조건 하에서는 정치적 상부구조가 결정적인역할을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되고 안정적인 독재는 당이 스스로 행동하는 전위로서 지도적 역할에서 기능하는 것, 프롤레타리아트가 노동조합들 통하여 서로 결합되어 있는 것, 노동인민들이 소비에트 체제를 통하여 국가에 분리될 수 없도록 결합되어 있는 것, 그리고 최종적으로 노동자국가가 인터내셔널을 통하여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하는 투쟁단위로 배치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편, 관료집단은 당과 노동조합, 소비에트, 그리고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목 졸라 죽여 왔다.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조직의 퇴행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죄가 만국의 사회민주당에게 있는지에 관하여는 여기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로래트도 또한 속한다.

 

그러나 역사적 책임의 실제 배분이 어떨지라도, 그 결과는 똑같다. 당, 소비에트들, 그리고 노동조합들에 대한 교살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원자화를 의미한다. 사회적 적대들은 정치적으로 극복되기는커녕 행정적으로 억압된다. 정치적 자원들이 사회적 적대들을 정상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소실되는 것과 똑같은 만큼 사회적 적대들은 억압 아래에 모인다. 외부의 혹은 내부의 첫 번째 사회적 충격이 원자화된 소비에트를 내전으로 내던지게 될지도 모른다. 국가와 경제에 대한 통제를 상실해온 노동자들은 자기 방어의 무기로 대중파업들에 의존할지도 모른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규율은 깨지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의 맹공격 하에서, 그리고 경제적 난관들의 압력 때문에, 기업집단들은 초기의 계획화를 중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서로간의 경쟁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사회조직의 붕괴는 자연스럽게 촌락에서 그 폭력적인, 그리고 무정부적인 메아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필연적으로 군대 속으로 던져지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조직, 혹은 보다 정확하게 자본주의적 무정부상태에 자리를 내 주면서 붕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스탈린주의 언론은 우리의 경고적 분석을 반혁명적 예언이나 혹은 심지어 트로츠키 도당의 표출된 “욕망”으로 재발행할 것이다. 그 기구의 신문을 거드는 자들에 대하여, 우리는 오래 전부터 경멸의 침묵 말고는 다른 감정을 가져보지 않았다. 우리 의견으로는, 상황이 위험스럽기는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가장 위대한 혁명적 전투가 전투에 앞서, 그리고 전투도 없이 패배 당했다고 선언하는 것은 실로 지독하게 비겁하고, 직접적인 배신의 행위가 될 것이다.

 

 

 

“평화적으로” 관료집단을 제거하는 것은 가능한가?

 

만약 관료집단이 모든 권력과 모든 수입들을 자신의 수중에 있는 권력으로 집중해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그리고 이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소비에트 국가의 재조직화는 어떠할 것인가? 그리고 이 임무를 평화적인 방식들로 해결할 수는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임무는 오로지 혁명적 당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불편의 공리로 규정해야만 한다. 근본적인 역사적인 임무는 과거 당의 건강한 인자들과 청년들 사이로부터 소련에서 혁명적인 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차후에, 우리는 임무가 해결될 수 있는 조건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당이 이미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당은 어떤 길들을 통하여 권력을 장악할 수 있겠는가? 일찍이 1927년 스탈린은 반대파에 관하여 연설하면서 “현재의 관료집단은 오로지 내전을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영감에서 보나파르트적인 이 도전은 좌익반대파가 아니라 당에 대하여 행해졌어야 했다. 자신의 수중에 모든 지렛대를 집중하고서는, 관료집단은 자신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들의 머리를 치켜드는 것을 더 이상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연이은 사태들의 경로가 이 도전에 거대한 부담을 추가해왔다. 지난 몇 년간의 경험들 이후,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당 대회나 혹은 소비에트 대회를 통하여 제거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볼셰비키 당의 실질적인 마지막 대회인 12차 당 대회는 1923년 초에 개최되었다. 이후의 모든 대회들은 관료적인 퍼레이드였다. 오늘날에는 심지어 그러한 대회들마저도 버려져왔다. 지배도당을 제거하기 위한 어떠한 정상적인 “합헌적” 방식들도 남아 있지 않다. 관료집단은 오로지 힘에 의해서만 프롤레타리아트 전위의 수중으로 권력을 양도하게 강제될 수 있을 뿐이다.

 

하수인들 모두가 즉각적으로 합창하여 울부짖는다. 카우츠키와 마찬가지로 “트로츠키 도당”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맞서는 무장봉기를 설교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자. 권력 장악의 문제는 오직 새로운 당이 스스로의 주변으로 노동계급의 다수를 공고하게 결합시켰을 때에만 실질적인 문제로서 제기될 것이다. 역관계에 있어서의 그러한 급진적인 변화의 과정에서, 관료집단은 더욱더 고립될 것이고, 더욱더 분열될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관료집단의 사회적 뿌리들은 프롤레타리아트, 비록 적극적인 지지는 아닐지라도 어찌되었건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용”에 놓여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행동으로 떨쳐 일어선다면, 스탈린주의 기구는 공중에 매달려 진채로 있게 될 것이다. 스탈린주의 기구가 여전히 저항하고자 시도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내전의 수단이 아니라 경찰적 성격의 수단들을 관료집단에 대항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필요하게 될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맞서는 무장봉기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서의 유해한 종양의 제거일 것이다.

 

진정한 내전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과 봉기에 나선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와 적극적인 반혁명 세력들 사이에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2개의 대중적 진영들 사이에서의 공공연한 충돌의 사태 속에서는 독립적인 역할을 하는 관료집단에 관한 이야기는 있을 수조차 없다. 관료집단의 극(極)면들은 바리케이드의 서로 다른 면들로 내동댕이 처질 것이다. 이후 계속되는 사태전개의 운명은 물론 투쟁의 결과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혁명적 진영의 승리는 반혁명에 대한 승리로 자연스럽게 권력으로 상승하게 될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지도부 하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소련에서의 새로운 정당

 

관료주의에 의하여 약화되어온 소비에트 권력의 붕괴의 위험과 10월의 유산을 구해낼 수 있는 새로운 당의 주변으로 공고하게 결합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시간 중 어느 것이 더 가까운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선험적인 대답은 없다. 투쟁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전쟁이 될지도 모르는 주요한 역사적 테스트가 세력관계를 결정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의 한층 더한 쇠퇴와 파시스트 지배의 한층 더한 확장 속에서는, 내부 세력들만으로는 조금 동안이라도 소비에트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소비에트 국가에 대한 오직 근저에서의 개혁을 위한 근본적인 조건은 세계 혁명의 승리적인 확산이다.

 

서구에서는 심지어 당이 없이도 혁명적 운동이 되살아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혁명적 운동은 당의 지도하에서만 오직 정복할 수 있다. 사회혁명의 시대 전반을 통하여, 즉 수십 년 동안, 국제 혁명정당이 역사적 진보의 기본적인 기구로 남아 있어 왔다. “오래된 형식들”은 시대에 뒤쳐진 것이며, 뭔가 “새로운” 것(정확하게 무엇인가?)이 필요하다는 슬로건을 제기함으로써 우르반스는 자신이 빠져 있는 ... 다소 오래된 형식들 속의 혼란만을 폭로할 뿐이다. “계획화된” 자본주의라는 조건 하에서의 노동조합 활동, 그리고 파시즘과 임박한 전쟁에 맞서는 투쟁은 명백하게 투쟁기관들의 새로운 방식들과 형태들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브란들러 도당처럼 비합법 노동조합들에 관한 환상에 탐닉하는 대신, 사람들은 노동자들 자신들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그리고 그것을 확장하고 일반화하는 가운데 투쟁의 실제 경로를 세심하게 학습해야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작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당, 즉 프롤레타리아트 전위의 정치적으로 결합된 중핵이 필요하다. 우르반스의 입장은 주관적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당”을 파괴하여 파멸로 이끄는데 성공한 이후, 그 당에서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혁신을 주장하는 자들 가운데 몇몇은 자신들이 “오래 전”에 새로운 당들이 필요하다고 말했으며, 결국에는 이제 “트로츠키 도당”도 또한 그 주변에 오게 되었고, 조만간 그들도 또한 소련이 노동자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실제의 역사적 과정을 탐구하기는커녕, 이 사람들은 천문학적인 “발견들”을 만들어 내기에 바쁘다. 일찍이 1921년에, 고르터[Gorter] 종파와 독일 “공산주의 노동자당”은 코민테른은 운이 다했다고 결정했다. 그때 이후로 그러한 선언들은 계속 있어왔다(로리아트[Loriot], 코르쉬[Korsch], 소바린 등등). 하지만, 그들은 단지 써클들과 개인들의 주관적인 환멸만을 반영했을 뿐, 역사적 과정의 객관적인 요구들을 반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들 “진단들”로부터는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드러난 것이 없다. 소란스러운 혁신을 주장하는 자들이 지금 현재 옆으로 비켜서 있게 된 것은 정확하게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태들의 경로는 미리 정해진 길을 따르지 않는다. 코민테른은 개인들이 아니라 대중들의 목전에서 이루어졌던 파시즘에 대한 자신의 굴종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파괴했다. 그러나 심지어 코민테른의 붕괴 이후에 조차, 소비에트 국가는 자신의 혁명적 권위를 크게 깎아내린 채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사실들을 실제의 사태전개에 의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것으로서 취해야만 하지, 사이먼 웨일[Simone Weil]처럼 변덕스러워서도 안 되고, 자신의 입술을 찡그려서도 안 된다. 사람들은 역사에 대하여 불쾌해 하거나 역사에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정당들과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뢰할만하고, 원칙적인, 그리고 우리 시대의 수준에 의거하는 기초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의 이론적 창고 속에 있는 부족함과 실책들에 관하여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10년 동안의 활동은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위한 근본적인 이론적, 그리고 전략적 필요조건들을 준비해왔다. 우리의 새로운 동맹자들과 함께, 우리는 이들 필요조건들을 발전시키고, 투쟁의 실제 과정 속에서 비판의 기초 위에서 그것들을 구체화할 것이다.

 

 

 

제4 인터내셔널과 소련

 

소련에서 새로운 당, 실제로 새로운 조건들 하에서 되살아난 볼셰비키 당의 중핵은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의 그룹이 될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의 소련의 공식 보도조차 우리의 지지자들이 용감하게 자신들의 활동을 수행해오고 있으며, 그것이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님을 증언해왔다. 그러나 여기서 환상은 금물이다. 혁명적 국제주의의 당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전위가 다시 한 번 세계적 규모에서 투쟁하는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에만 오직 자국 관료집단의 부패한 영향력으로부터 노동자자들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의 시작부터, 그리고 10월 혁명 이후에는 발전된 형식으로, 볼셰비키 당은 세계의 혁명적 투쟁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 이 지위는 완전히 상실되었다. 이것은 비단 당의 공식적인 캐리커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이 활동하는 극단적으로 어려운 조건들이 국제적인 규모에서 그들이 지도적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배제시킨다. 이것보다 더, 소련의 좌익반대파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성공적인 형성과 성장의 결과로서만 새로운 당으로 발전할 수 있다. 혁명적 무게중심이 당건설의 즉각적인 가능성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더 큰 서구로 명백하게 이동해왔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비극적 경험들의 영향력 하에서, 분명한 호소와 흠 없는 기치를 기다리는 모든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많은 수의 혁명적 인자들이 모여들었다. 코민테른의 경련들이 거의 모든 곳에서 노동자들의 새로운 층이 사회민주당을 향해 나아가도록 강제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각된 대중들의 쇄도는 정확하게 개량주의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이 되었다. 개량주의는 경계 지점들에서 터지고 있으며, 분파들로 분열되고 있고, 모든 곳에서 혁명적 세력들을 축출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위한 즉각적인 정치적 전제조건들이다. 초석은 이미 놓여졌다. 그 초석은 4개 조직들에 의한 원칙선언이다.

 

소련의 계급적 성격을 포함하는 세계정세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더 이상의 성공을 위한 조건이다. 이러한 노선을 따라서,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그 존재의 첫 번째 날들부터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소비에트 국가를 개혁할 수 있기 전에, 스스로 소비에트 국가의 방어에 나서야만 한다.

 

소련의 “비-프롤레타리아트적” 성격을 핑계로 소련에 대하여 낙담하여 손을 젓는 모든 정치적 경향은 제국주의의 수동적인 도구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관료집단에 의하여 약화된 최초의 노동자 국가가 자신의 내부와 외부의 적들의 공동의 타격들로 인하여 파괴될 비극적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한 최악의 경우의 사태에서는, 파국에 대한 범죄자들은 어디에있는가?라는 문제로 인하여 이후 지속되는 혁명적 투쟁의 경로가 엄청난 중요성을 띨 것이다. 혁명적 국제주의자들에게는 단 한 점의 죄목도 떨어지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치명적인 위험의 시간에, 그들은 틀림없이 마지막 바리케이드에 남아 있는다.

 

오늘날 소련에서의 관료적 평형상태의 파열은 거의 틀림없이 반혁명 세력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혁명적 인터내셔널이 있다면, 스탈린주의 사회조직의 불가피한 위기가 소련에서 부활의 가능성을 열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경로이다.

 

크레믈린의 대외 정책들은 매일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새로운 타격들을 가한다. 대중으로부터 표류하는 스탈린주의 지도부 하의 외교 관료들은 무엇보다도 소련 그 자신의 가장 큰 피해를 주면서 모든 나라들의 노동자들의 가장 기초적인 혁명적 감정들을 유린한다. 그러나 이 속에 예기치 못했던 것은 하나도 없다. 관료집단의 대외 정책들은 국내 정책을 보충한다. 우리는 대외 정책에 맞서 투쟁하는 것만큼이나 국내 정책에 맞서서도 투쟁한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 국가를 방어한다는 입장에서 우리의 투쟁을 수행한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부패하고 있는 코민테른의 관료들이 소련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계속해서 맹세한다. 이들 맹세들 위에 무엇인가를 세운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바보짓일 것이다. 이들 사람들의 다수에게는, 소련에 대한 소란스러운 “방어”는 신념이 아니라 공언이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흔적을 닦는다.(예를 들어, l'Humanite를 보시오). 위기의 시간에, Barbussized 코민테른은 자신이 히틀러에게 제공했었던 지지, 즉 반대파보다 더 많지 않은 지지를 소련에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적 국제주의자들은 그렇지 않다. 10년 동안 관료집단에 의하여 불명예스럽게 박해를 받았던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지칠 줄 모르게 소련에 대한 방어를 호소한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이 러시아 인민들에게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고 새로운 인터내셔널 혼자만이 노동자 국가에 대한 방어를 찬성한다는 것을 증명하게 될 때, 소련 안에서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의 지위는 24시간 안에 바뀔 것이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공동의 적에 맞서는 공동전선을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게 제안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의 인터내셔널이 하나의 세력을 대표한다면, 관료집단은 위험의 순간에는 공동전선을 회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 해 동안의 거짓말과 비방의 껍데기에 무엇이 남겠는가?

 

심지어 전쟁의 경우에도, 스탈린주의 관료집단과의 공동전선은 제국주의 대소동의 시간 동안에 인민들을 보다 잘 속이기 위하여 상호 비판을 금지하는 부르주아지 정당들과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방식을 따르는 “신성동맹”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심지어 전쟁의 경우에도, 우리는 관료적 중도주의에 대하여 비판적인 화해불가능성을 고수할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혁명적 전쟁을 지도하기 위한 관료의 무능력을 덮어 가리는 것이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소련뿐만 아니라 세계혁명의 문제는 하나의 그리고 똑같은 간단한 공식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제4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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