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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사회주의 그리고 국가 - 트로츠키, 배반당한 혁명

  • 분류
    트로츠키
  • 등록일
    2011/06/19 05:59
  • 수정일
    2011/06/19 05:59
  • 글쓴이
    얼치기 공산주의자
  • 응답 RSS

배반당한 혁명

트로츠키, 1936년

 

3장 사회주의 그리고 국가

 

1. 이행의 사회조직

 

공식 당국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이미 실현되었다는 것이 사실일까? 그리고 꼭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성취된 성공들이, 세상의 다른 곳에서의 사태들의 경로와는 상관없이, 민족적 경계 내에서 사회주의의 실현을 확인해 준 것은 아닌가? 소련 경제의 주요 지표들에 대한 앞 선 비판적 평가가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변을 위한 출발 지점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것이 당연하지만, 특정한 예비적인 이론적 참고 지점들이 또한 우리에게 필요할 것이다.

 

맑스주의는 진보의 근본적인 용수철로서의 기술 발전으로부터 출발하며, 생산력의 동학 위에 공산주의 강령을 수립한다. 만약 동지들이 우리 행성을 파괴하게 될 아주 가까운 미래의 어떤 우주적인 재앙을 상상한다면, 물론 동지들은 다른 많은 것들과 함께 공산주의적 전망을 거부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되고 있지 않는 위험으로서의 이러한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기술적인 생산의 가능성과 문화적 가능성들에 미리 어떠한 한계를 설정하는 것을 위한 눈꼽만큼의 과학적 근거도 없다. 맑스주의는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로 충만해 있으며, 한편으로 이것 하나만으로도 맑스주의가 종교에 화해 불가능하게 대립되도록 한다.

 

인간의 경제력의 발전이 충분히 높아서 부담이 되는 것을 멈춘 생산적인 노동에 어떠한 양몰이용 막대기도 필요 없으며, 계속적인 풍요 속에 있는 생활용품들의 분배가 현재 어떠한 부유한 가족이나 "어지간한" 기숙시설에서와 같이 교육, 습관, 그리고 사회여론에 관한 것을 제외한 어떠한 통제도 요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물질적 전제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진정으로 소박한 전망을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기술, 과학과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사회혁명을 위한 조건들과 세력들을 준비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적 구조가 즉각적으로 부르주아지 사회를 대체할 수는 없다. 과거로부터의 물질적 문화적 유물은 그것과는 완전히 독립적인 것이다. 그 첫 번째 발걸음들에서, 노동자국가는 아직까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능력에 따른", 즉 사람들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만큼의 노동을 허용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수행하는 노동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서" 보수를 지급할 수도 없다. 생산력을 높이기 위하여, 임금 지급이라는 관습적인 규범들, 즉 개별 노동의 양과 질에 비례하여 생활용품들을 분배하는 것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

 

맑스는 이 새로운 사회의 첫 번째 국면을 결핍이라는 마지막 유령과 함께 물질적 불평등이 사라지게 될 가장 높은 단계와 구별하여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국면"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새로운 사회의 보다 낮은 국면과 보다 높은 국면으로 자주 대비된다. "물론 우리는 완전한 공산주의를 성취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국면은 이미 성취했다"고 현재의 공식적인 소비에트 독트린은 말한다. 이것에 대한 증거로, 그들은 산업에서의 국가 트러스트, 농경에서의 집산 농장들, 상업에서의 국가 기업들과 협동조합들의 지배를 제시한다. 언뜻 보기에 이것은 앞서 언급된, 또한 그래서 가설적인 맑스의 도식과의 완전한 조응을 제공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맑스주의자들에게는 성취된 노동생산성과 무관한 소유양식에 대한 고려에 의해 이 문제가 소진되지는 않는다. 맑스는 시작 그 자체로부터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보다 그것의 경제적 발전에 있어서 더 높이 있는 사회라는 뜻으로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국면을 말했다. 이론적으로 이러한 개념은 하자가 없는데, 왜냐하면 세계적 차원에서 고려할 때 공산주의는 심지어 그것의 첫 번째 시작 국면에서조차도 부르주아지 사회의 그것보다 더 높은 발전 단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맑스는 프랑스 사람들이 사회혁명을 시작하게 될 것이고, 독일 사람들이 그것을 계속 이어갈 것이며, 영국 사람들이 그것을 끝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에 관해서는, 맑스는 훨씬 뒤쪽에 놓아두었다. 그러나 이 개념상의 순서는 사실들에 의하여 뒤집어 졌다. 지금 맑스의 보편적인 역사적 개념을 주어진 발전 단계의 소련의 특수한 경우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즉시 절망적인 모순들에 빠지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자본주의의 사슬에서 가장 강력한 고리가 아니라 가장 약한 고리였다. 현재의 소련은 세계경제 수준보다 위에 있지 않고, 그저 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만약 맑스가 자기 시대의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의 생산력에 대한 사회화의 기초 위에 형성되어야 하는 사회를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국면으로 불렀다면, 분명히 오늘날 여전히 기술, 문화, 그리고 삶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에서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상당한 정도로 궁핍한 소련에는 이러한 명칭을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 자신의 모든 모순들을 고려할 때 현재의 소비에트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예비적 체제로 이름 붙이는 것이 더 진실일 것이다.

 

용어상의 정확함을 위한 이러한 염려에는 조금의 현학적인 것도 없다. 체제의 강력함과 안정성은 결국에는 그 체제들의 상대적인 노동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 자본주의 보다 우월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회주의 경제는 불행하게도 소비에트 경제에 관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여전히 매우 불가능한 사회주의적 발전을 진정으로 확실하게, 즉 자동적으로 보장받게 될 것이다.

 

현 상태의 소련에 대한 천박한 방어자들의 다수는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대는 경향이 있다. 비록 당신들은 현재의 소비에트 체제가 아직은 사회주의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하여 인정하지만, 현재의 기초 위에서 생산력의 더 한 발전은 곧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로 귀결될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단지 시간이라는 요소만이 불확실할 뿐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하여 떠들면서 소란을 피울 가치가 있는가? 역사상의 과정들이 문제가 될 때에, 시간은 부차적인 요소가 결코 아니다. 문법에서보다 정치에서 현재시제와 미래시제를 혼동하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 웨브[Webb]와 같은 천박한 진화론자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진화는 존재하는 것들의 끊임없는 축적과 지속적인 "개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진화는 그것의 양질전화들, 위기들, 도약들, 그리고 뒤쪽으로의 도약들을 가진다. 발전이 조화롭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모순 속에서 진행되는 것은 소련이 아직은 균형 잡힌 생산과 분배의 체제로서의 사회주의의 첫 번째 국면을 성취한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경제적 모순들이 사회적 적대들을 만들어내고, 이번에는 사회적 적대들이 생산력의 더한 성장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논리를 확장시킨다. 우리는 진화적으로 사회주의로 "성장"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리고 관료세력과 그들의 이론가들에게 놀랍게도 새로운 보충적 혁명을 요구했던 쿨락의 예에서 이것이 얼마나 진실인지를 방금 목격했다. 권력과 부를 자신들의 수중에 집중하고 있는 관료세력 자신들은 사회주의로 보다 평화적으로 성장하고 싶어 할 것인가? 이것에 관해서는 의문이 분명하게 허용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그들의 말을 믿는 것은 경솔한 짓일 것이다. 현재로서는 소비에트 사회의 경제적 모순들과 사회적 적대들이 향후 3년, 5년 혹은 10년의 과정에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지에 관하여 최종적으로 되돌이킬 수 없도록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과는 일국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의 살아 있는 사회 세력들의 투쟁에 달려 있다. 따라서 모든 새로운 국면에서, 실제의 관계들과 경향들에 대한 그것들의 연관과 지속적인 상호작용 속에서의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우리는 국가의 경우에 있어서 그러한 분석의 중요성을 이제 확인하게 될 것이다.

 

 

 

2. 강령과 현실

 

맑스와 엥겔스를 따르는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착취자들을 착취하는 가운데, 사회의 위로 올라 선 관료기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찰과 상비군의 필요성을 철폐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첫 번째로 구분되는 특징을 보았다.

 

레닌은 1917년 권력을 장악하기 2달 전에 다음과 같이 썼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를 필요로 한다. 모든 기회주의자들이 동지들에게 이것을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 기회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는 단지 사멸하는 국가, 즉 즉시 사멸을 시작하고 사멸하지 않을 수 없는 방식으로 건설되는 국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첨가하는 것을 잊고 있다."(국가와 혁명)

 

당시 이 비판은 러시아 멘셰비키들, 영국 페이비언 등과 같은 형태의 개량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을 향한 것이었다. 이것이 이제는 눈꼽 만큼도 "사멸"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관료국가라는 자신들의 우상과 함께 하는 소비에트 우상숭배자들을 배가된 힘으로 공격한다.

 

관료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첨예한 적대가 (언제나 특권을 가진 자들, 소유자들에게 이롭게, 그리고 언제나 관료 그 자신에게 이롭게) "순화되고", "조정되고", "규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그것이 아무리 민주적이었다 하더라도, 모든 부르주아지 혁명을 통해서 관료기구의 강화와 완성이 발생해왔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관료주의와 상비군, 이것은 부르주아지 사회라는 몸뚱아리에 있는 '기생충', 이 사회를 찢어 내고 있는 내부 모순들에 의해 창출된 기생충, 그러나 살아있는 구멍들을 틀어막는 기생충에 불과하다."

 

1917년 초부터, 즉 권력의 장악이 실천적인 문제로서 당에 직면해 있었던 순간부터 레닌은 계속해서 이 "기생충"을 일소할 것에 대하여 몰두했다. 착취 계급 타도 이후에, 프롤레타리아트는 과거의 관료 기구를 박살내고, 피고용자들과 노동자들로부터 자기 자신의 기구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레닌은 국가와 혁명의 모든 장에서 반복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들의 기구가 관료로 변질되는 것에 맞서는 방책들을 취할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에 의하여 자세하게 분석되었던 방책들: ⑴ 선출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가능한 소환 ⑵ 노동자의 임금보다 높지 않은 보수 ⑶ 모든 사람이 통제와 감독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잠시동안 '관료'가 되며, 그래서 누구도 관료가 될 수 없는 체제로의 즉각적 이행"

 

동지들은 레닌이 10년의 문제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 이것은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성취한 것에 기초하여 시작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권력 장악 1년 반 후에, 강령의 군대에 관한 부분을 포함하는 볼셰비키 당의 강령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국가에 관한 이와 똑같은 분명한 관점이 더할 나위 없이 표현되었다. 관료가 없는 강력한 국가, 직업적인 무장 집단이 없는 무장 권력! 방어의 임무가 군 관료와 국가 관료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계급구조가 방어의 기관 속으로까지 미치게 된 것이었다. 군대는 사회적 관계들의 복사본에 다름 아니다. 물론, 다른 국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국가에서도, 외부의 위험에 맞서는 투쟁은 특수화된 군사적 기능 조직을 필요로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특권화된 장교층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당 강령은 무장한 인민들에 의한 상비군의 대체를 요구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체제는 그 시작에서부터 인민의 다수를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것을 유지하기 위한 특수한 기구라는 단어의 과거의 의미에서의 "국가"이기를 멈춘다. 무기들과 함께 물질적인 힘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소비에트들과 같은 노동자 기관들로 넘어간다. 관료적 기구로서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첫 번째 날부터 사멸을 시작한다. 이것이 현재까지 취소되지 않은 당 강령의 목소리이다. 이상한 것은 이것이 무덤에서 나오는 유령의 목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동지들이 현재의 소비에트 국가의 성격을 어떻게 해석하든, 한가지는 분명하다. 그것의 20년 동안의 존재 끝에, 소비에트 국가는 사멸하기는커녕 "사멸"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이보다 더 좋지 않은 것은, 소비에트 국가가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강제의 기구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관료주의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면서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중을 지배하는 통제 불가능한 세력으로 변했다. 군대는 무장한 인민들에 의하여 대체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령관으로 즉위한 특권화된 장교 계층을 낳았고, 한편으로 "무장한 독재의 수행자들"인 인민들에게는 소련에서 심지어 비폭발성 무기조차 가지고 다니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맑스, 엥겔스, 그리고 레닌에 따른 노동자 국가에 관한 개요와 스탈린이 지배하는 현재의 실제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것 보다 더 충격적인 모순을 상상하는 것은,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더라도, 힘든 일이 될 것이다. (분명히 검열에 의한 발췌와 왜곡과 함께) 레닌의 저작들을 계속해서 출판하는 가운데, 현재의 소련과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대변자들은 강령과 현실 사이의 심한 상이함의 원인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자 할 것이다.

 

 

 

3. 노동자국가의 이중적 성격

 

독재는 부르주아지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 사이에 있는 하나의 다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바로 그 본질에서, 임시적 성격을 가진다. 독재를 현실화하는 국가의 임시적이지만 매우 핵심적인 임무는 자기 자신의 해체를 준비하는 것에 있다. 이 "임시적인" 임무의 실현의 정도가, 어느 정도까지는, 계급이 없는, 그리고 물질적 모순이 없는 사회의 건설이라는 독재의 근본적인 임무의 수행에서의 성공의 척도이다. 관료제도와 사회적 조화는 상호 반비례한다.

 

엥겔스는 자신의 듀링에 대한 유명한 통박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계급지배와 생산에서의 현재의 무정부 상태에 의해 창출된 개인적 생존을 위한 투쟁과 함께, 이 투쟁으로부터 야기되는 갈등과 잔혹한 행위가 사라질 때, 이 때 이후로는 억압할 것이 없을 것이며, 억압의 특수한 기구, 즉 국가의 필요성이 없게 될 것이다."

 

물은 경관[警官]을 영구적인 기관으로 간주한다. 실제로는, 경관은 단지 인간이 자연을 완전하게 제어하게 될 때까지만 인류를 제어하게 될 것이다. 국가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계급 지배와 개인적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사라져야만 한다. 엥겔스는 이 두 가지 조건을 하나로 모으는데, 그것은 사회체제를 변화시킨다는 전망에서는 몇십 년은 양적으로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의 짐을 짊어지는 세대들에게는 사물이 달리 보인다. 자본주의적 무정부상태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진실이지만,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화가 "개인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자동적으로 제거하지는 않는다 것이 곤란한 점이다. 이것이 문제의 요점이다!

 

가장 선진화된 자본주의에 기초한 미국에서조차 사회화된 국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가 원하는 만큼 공급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가능한 한 많이 생산하도록 모든 사람들을 독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들에서 독려하는 임무는 자연스럽게 국가에게로 떨어지게 되는데, 국가는 이번에는 다양한 변화와 완화를 가하는 가운데 자본주의에 의해 실시되는 노동에 대한 지불이라는 수단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맑스가 1875년에 아래와 같이 썼던 것은 이런 의미에서였다.

 

"... 자본주의 형식 안에서 오랜 산고 끝에 자본주의로부터 생겨나는 공산주의 사회의 첫 번째 국면에서는 부르주아지 법이 불가피하다. 법은 결코 경제적 구조와 그 구조에 의해 조건 지워지는 사회의 문화적 발전보다 상위에 있을 수 없다."

 

이들 주목할만한 내용들을 설명하면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물론, 소비재들의 분배와 관련된 부르주아지 법은 불가피하게 부르주아지 국가를 가정하는데, 왜냐하면 법이란 자신의 규범들에 대한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기구가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레닌을 인용하고 있다) 부르주아지 법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없는 부르주아지 국가도 또한 공산주의 하에서 일정기간 동안 생존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공식 당국자들로부터 완전히 묵살되고 있는 이 고도로 중요한 결론은 소비에트 국가의 성격에 대한 이해, 혹은 보다 정확하게는 그러한 이해를 향한 첫 번째 접근에 있어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적 이행의 임무를 지고 있는 국가가 강제라는 수단으로 불평등, 즉 소수의 물질적 특권을 방어할 수밖에 없는 한, 그 만큼 그 국가는 또한 부르주아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지" 국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칭찬이나 비난 어떤 것도 포함하지 않는다. 이 말들은 사물의 진정한 이름을 가지고 사물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물질적 힘의 성장을 촉진함으로써, 분배의 부르주아지적 규범이 사회주의적 목적들에 복무해야만 하지만, 단지 최종적으로 그래야 한다. 국가는 직접적으로, 그리고 바로 시작 그 자체로부터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생산수단에서 사회적 소유를 방어하는 한 사회주의적인, 생활용품들의 분배가 가치라는 자본주의적 측정수단과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결과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한 부르주아적인. 그러한 모순적인 성격규정은 교조주의자들과 현학자들을 공포에 빠뜨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들에게 단지 조의를 표할 수 있을 뿐이다.

 

노동자 국가의 최종적인 성격은 노동자 국가의 부르주아지적 경향과 사회주의적 경향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들에 의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다. 후자의 승리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하여 경관의 최종적인 일소, 즉 국가의 자치사회로의 용해를 의미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 하나 만으로부터도 소비에트 관료주의의 문제가 그 자신과 하나의 체제로서 얼마나 무한히 중요한 것인지 충분히 분명하다!

 

레닌이 미래의 어려움의 근원을 밝혀 냈던 것은, 비록 그가 자신의 분석을 끝까지 수행하는데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지적인 기질에 따라서 맑스의 개념을 극도로 예리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가 없는 부르주아지 국가"는 진정한 소비에트 민주주의와는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의 이중적 기능은 국가의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이론이 분명하게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을 경험이 드러내 주었다. 부르주아지 반혁명에 맞선 사회화된 소유의 방어를 위해서는 "무장한 노동자들의 국가"가 완전히 적절했었다면, 소비의 영역에서 불평등을 규제하는 것은 매우 다른 문제였다.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소유를 창조하고, 방어하려 하지 않는다. 다수는 소수의 특권에 스스로를 관련시킬 수가 없다. "부르주아지 법"의 방어를 위하여, 노동자 국가는 "부르주아지적인" 형태의 기구, 즉, 비록 새로운 제복을 입었지만, 과거와 똑같은 경관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볼셰비키 강령과 소비에트 현실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을 이해하는 것을 향한 첫 번째 발걸음을 딛었다. 만약 국가가 사멸하지 않고, 점점 더 전제적으로 성장한다면, 노동 계급의 전권을 위임받은 자들이 관료화된다면, 그리고 관료가 새로운 사회의 위로 솟아오른다면, 이것은 과거의 심리학적 유물 등과 같은 부차적인 이유들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가 진정한 평등을 보장할 수 없는 한, 특권을 가진 소수를 만들어내고 그들을 지탱하는 냉혹한 필요성의 결과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노동자 운동을 목 졸라 죽이는 관료주의 경향들은 심지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이후에조차 스스로를 모든 곳에서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혁명으로부터 시작하는 사회가 가난할수록, 이 "법칙"의 표현이 더욱 준엄하고 적나라할 것이며, 관료주의가 취하는 형태가 더욱 노골적일 것이며, 관료주의는 사회주의적 발전에 있어서 더욱 위험스러울 것이다. 소비에트 국가는 스탈린의 벌거벗은 경찰 독트린이 선포하는 것처럼, 구 지배계급들의 "유물들" 때문에 사멸을 방해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료적 기생충들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그러한 유물들은 그 자체로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국가는 물질적 궁핍, 문화적 후진성,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인간의 개인적 생존을 보장하는 관심사, 모든 인류에 가장 즉각적으로, 그리고 가장 첨예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서 "부르주아지 법"의 지배와 같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강력한 요소들에 의하여 방해받고 있다.

 

 

4. "일반화된 궁핍"과 경관

 

공산주의자 선언보다 2년 전에, 청년 맑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생산력의 발전은 [공산주의의] 절대적으로 필요한 실천적인 전제인데, 왜냐하면 생산력의 발전이 없다면 궁핍이 일반화되고, 궁핍과 함께 필수품을 위한 투쟁이 다시 시작되며, 이것은 과거의 모든 배설물들이 되살아나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는 이러한 사상을 직접적으로 발전시키지 않았었는데, 이것은 어떤 우연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후진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결코 예견하지 않았다. 레닌 또한 그것에 관하여 결코 깊이 고려하지 않았고, 이것 또한 우연은 아니었다. 그는 소비에트 국가의 그렇게도 오랫동안의 고립을 예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맑스의 추상적 구문이며, 반대로부터의 추론에 불과한 이 인용문은 소비에트 체제의 모든 구체적인 어려움들과 질병에 대한 없어서는 안될 이론적 열쇠를 제공해 준다. 제국주의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파괴에 의해 더욱 악화된 궁핍이라는 역사적 기초 하에서, "개인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부르주아지의 타도 바로 다음날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이어지는 몇 해 동안에 줄어드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반대로 때로는 예전에 없던 잔인함을 띤다. 두 번이나 러시아의 몇몇 지역들이 사람을 먹는 지경으로까지 갔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는가?

 

짜르주의 러시아를 서구로부터 분리시키는 거리는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평가될 수 있다. 최상의 조건, 즉 내부적 혼란과 외부적 재앙들이 없는 조건에서라면, 가장 먼저 태어난 자본주의 문명의 수세기에 걸친 경제적, 교육적 성취들을 완전히 동화시킬 수 있기 위해서 5개년이라는 기간들이 여러 번 필요할 것이다. 전(前)사회주의적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사회주의적 방책들의 적용, 이것이 현재 소련에서의 경제적, 문화적 활동의 핵심이다.

 

심지어 현재의 소련도 맑스 시대의 가장 선진화된 나라들을 생산력에서 앞서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첫째, 두 체제의 역사적 경쟁에서는 상대적 수준보다는 절대적인 수준이 문제가 된다. 소비에트 경제는 바스마르크, 팔머스톤 혹은 아브라함 링컨이 아니라 히틀러, 볼드윈, 그리고 루즈벨트의 자본주의와 대비된다. 그리고 둘째, 인류의 수요의 영역 자체가 세계의 기술 성장과 함께 근본적으로 변한다. 맑스 시대의 사람들은 자동차, 라디오, 동영상, 비행기들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사회는 이들 재화들에 대한 자유로운 향유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다.

 

맑스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국면"은 가장 선진화된 자본주의가 거의 다가간 수준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다가오는 소비에트의 5개년 계획의 실제 프로그램은 "유럽과 아메리카를 따라잡기 위한" 것이다. 소련이라는 무한한 공간에 자동차 도로와 아스팔트 고속도로 망의 건설은 아메리카로부터 자동차 공장들을 이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물질을 필요로 할 것이다. 모든 소비에트 시민이 도중에 어려움 없이 휘발유를 다시 채우면서, 자신이 선택하는 어떤 방향으로 건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몇 년이나 필요하겠는가? 야만의 사회에는 타는 사람과 걷는 사람이 두 개의 계급을 구성했다. 자동차는 승용말 만큼이나 사회를 분화시킨다. 심지어 소박한 "포드" 조차 소수의 특권으로 남아 있는 한, 부르주아지 사회에 고유한 모든 관계들과 관습들이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불평등의 후견인인 국가가 이것들과 함께 남아있게 된다.

 

맑스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이론에 스스로를 완전하게 기초하는 가운데, 레닌은, 우리가 언급했듯이, 이 문제(국가와 혁명)에 집중되었던 그의 주요한 작업에 성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의 강령에서, 그 나라의 경제적 후진성과 고립으로부터 나오는 국가의 성격에 관하여 필요한 모든 결론들을 도출하는 것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대중들이 행정에 생소하다는 점과 전쟁으로부터 귀결되는 난관들로부터 관료주의의 부활을 설명하는 가운데, 강령은 모든 전권을 위임받는 자들에 대한 선출과 언제든지 이루어지는 소환, 물질적 특권의 폐지, 대중들에 의한 적극적인 통제 등과 같이 단지 "관료적 왜곡들"의 극복을 위한 정치적 방책들을 처방할 뿐이다. 이러한 길을 따라서 관료는 우두머리로부터 단순한, 그리고 더욱이 일시적인 기능적 대리인으로 변모할 것이며, 국가는 점차적으로, 그리고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가정되었다.

 

강령이 완전히 국제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닥쳐오는 난관들에 대한 이 명백한 과소평가를 설명해준다.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실현시켰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공산주의 혁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것들이 강령의 서문의 내용이었다. 강령의 저자들은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건설이라는 목적을 스스로에게 설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당시에는 누구도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약 20년 동안이나 고립된 상태에서 선진 자본주의가 오래 전에 해결했던 경제적, 문화적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강요된다면, 소비에트 국가가 어떠한 성격을 띠게 될 것인지에 관한 문제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전후(戰後) 혁명적 위기가 유럽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로 귀결되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가 부르주아지를 구원했다. 레닌과 그의 동료들에게 짧은 "숨쉴 수 있는 기간"처럼 보였던 기간이 역사상의 한 시대 전체로 늘어났다. 소련의 모순적인 사회구조, 그리고 소련 국가의 초(超)관료주의적 성격은 이 유일무이하고 "예견되지 못했던" 역사의 멈춤의 직접적인 결과인데, 이것은 동시에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파시즘이나 전(前)파시즘적 반동으로 귀결되었다.

 

관료주의가 일소된 국가를 수립하려던 첫 번째 시도는 첫째로 자치정부에 대한 대중들의 생소함, 사회주의에 헌신적인 자질을 갖춘 노동자들의 부족 등과 충돌했던 한편, 즉각적인 난관들은 그 직후에 더욱 심오한 것들과 맞닥뜨렸다. 당 강령에 의해 요구되었던, 강제 기능의 지속적인 축소와 함께 하는 "회계와 통제"의 기능으로의 국가의 축소는 적어도 전반적인 만족이라는 상대적인 조건을 가정했다. 단지 이 필요한 조건이 부족했다. 서구로부터는 어떠한 도움도 오지 않았다. 민주주의적 소비에트의 권력은 당시의 임무가 방어를 위하여, 산업을 위하여, 기술과 화학을 위하여 그 존재가 필요했던 특권화된 집단들을 수용하는 것이 되자, 심지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경련을 일으키고 있음이 밝혀졌다. 10명으로부터 취하여 1명에게 주는, 이 결정적으로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작동 속에서, 이것들이 분배에서 강력한 전문가들의 계층을 구체화하고 발전시켰다.

 

하지만 어떻게 그리고 왜 근자의 거대한 경제적 성공들이 불평등의 완화가 아니라, 이와는 반대로 첨예화로, 그리고 동시에 "왜곡"이었던 것으로부터 이제는 행정의 체계가 될 정도의 관료주의의 보다 더한 성장으로 귀결되었는가? 이 의문에 답하려고 시도하기 전에, 소비에트 관료집단 당국의 지도자들이 자기 자신들의 체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들어보도록 하자.

 

 

5.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독재의 강화"

 

최근 몇 년 동안에 "계급으로서의 쿨락의 일소"와 관련하여 특히 분명한 형태를 취하는 소련에서의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에 대한 몇 가지 발표들이 있어왔다. 1931년 1월 30일 프라우다는 스탈린의 한 연설을 설명하면서, "제2차 5개년 계획 기간 동안에, 우리 경제의 마지막 자본주의적 요소의 유물이 일소될 것이다"(이탤릭체는 우리의 것)라고 말했다. 이러한 전망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는 똑같은 시간 동안에 최종적으로 사멸해야 하는데, 이것은 자본주의의 "마지막 유물들"이 일소된 곳에서는 국가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 주제에 관하여 볼셰비키 당의 강령은 "계급으로의 사회의 분열, 그리고 이와 함께 모든 국가권력이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은 한, 소비에트 권력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참을성 없는 모스크바의 특정 이론가들이 의심 없이 자본주의의 "마지막 유물들"의 일소로부터 국가의 사멸을 추론하려고 시도하자, 관료집단은 즉각적으로 그러한 이론들은 "반혁명적"이라고 선포했다.

 

기본적인 전제나 결론 중 어디에 관료집단의 이론적 실수가 있는 것일까? 양쪽 모두에 있다. "완전한 승리"에 대한 첫 번째 발표에 대하여, 좌익반대파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당신들은 근본적인 기준인 생산력 수준을 제거하면서, 시기상조이고 모순적인 관계들의 사회와 관련한 법률적 형태에 당신들 자신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법률적 형태 그 자체는 기술수준의 정도에 따라서 본질적으로 다른 사회적 내용을 가진다. "법은 경제구조와 경제구조에 의해 조건 지워지는 문화적 수준보다 결코 상위에 있을 수 없다."(맑스) 경제 생활의 모든 영역들로 이식된 미국의 가장 현대화된 기술이 성취한 것에 기초한 소유의 소비에트적 형태, 정말이지 이것이 사회주의의 첫 번째 국면이 될 것이다. 낮은 노동생산성을 가진 소비에트 형태는 단지 역사가 아직까지는 최종적으로 그 운명을 가늠하지 않은 이행적인 체제를 의미할 뿐이다.

 

우리는 1932년 3월에 다음과 같이 썼다. "기괴하지 않은가?" "그 나라는 재화의 부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단계에서 공급의 장애가 있다. 어린이들에게 우유가 부족하다. 그러나 관료적 현자들은 '그 나라는 사회주의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선언한다. 사회주의의 이름을 더 사악하게 더럽히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현재 소비에트 지배 집단의 저명한 선전가[영어 역자의 주 - 소비에트 지도자들에 대한 테러 음모라는 죄목으로 1936년 8월에 칼 라데크가 체포되기 전에 쓰여졌음]인 칼 라데크는 소련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독일의 자유주의적 신문인 Berliner Tageblatt의 특별호(1932년 5월)에서, 불후의 명언이 될 자격이 있는 아래의 말들로 이러한 언급들을 회피했다.

 

"우유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소가 생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나라가 인민대중들의 물질적 상태에서의 어떠한 괄목할 만한 상승이 없이도 잠시 동안 보다 높은 발전 단계로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제로 당신들은 우유가 흐르는 강이 있는 나라의 이미지와 사회주의를 혼동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내용들은 그 나라에서 끔찍한 기근이 위세를 떨치고 있을 때에 쓰여졌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욕구의 최상의 만족을 위한 계획의 구조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회주의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것이다. 만약 소들이 사회화되었으나, 소가 거의 없거나, 소들이 너무도 빈약한 젖통을 가지고 있다면, 우유의 불충분한 공급으로부터 분쟁 - 도시와 농촌 사이의, 집산 농장들과 개인 농부들 사이의, 서로 다른 처지의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전체 노동대중과 관료집단 사이의 분쟁 -이 생겨난다. 사실은 소의 사회화가 농민들에 의한 대량의 소 도축을 야기했던 것이다. 궁핍에 의하여 창출된 사회적 갈등들은 이번에는 "모든 과거의 배설물"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 본질에 있어서, 이러한 것이 우리의 대답이었다.

 

1935년 8월 29일의 한 결의문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제7차 대회는 국유화된 산업들의 성공들, 집산화의 성과, 자본주의적 요소들의 축출, 계급으로서의 쿨락의 일소의 총합 속에서,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그리고 되 돌이킬 수 없는 승리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전방위적 강화가 소련에서 성취된다."는 점을 엄숙하게 확인했다. 분명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이 증언은 완전히 자기 모순적이다. 만약 원칙으로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회체제로서 사회주의가 "최종적으로 되 돌이킬 수 없게" 승리했다면, 독재의 새로운 "강화"는 명백히 터무니없는 말이다. 그리고 반대로, 만약 체제의 현실적 요구가 독재의 강화를 불어온 것이라면, 이것은 사회주의의 승리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주의자 뿐만 아니라 어떤 현실주의적인 정치 사상가라도 독재, 즉 정부 강제의 "강화"의 필요성 바로 그것은 계급이 없는 조화로움의 승리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적대의 성장을 증언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낮은 노동생산성으로부터 기인하는 생존수단의 부족.

 

일찍이 레닌은 사회주의를 "소비에트 권력 더하기 전기화[電氣化]"로 특징지었다. 당시의 선전 목적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쳤던, 이 풍자는 적어도 자본주의 수준의 전기화를 최소한의 출발점으로 가정했다. 현재 소련에는 한 사람 당 선진국들의 3분의 1만큼의 전기 에너지가 있다. 만약 소비에트가 그 동안 대중들로부터 독립된 정치기구들에 자리를 내주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사회주의는 관료적 권력 더하기 자본주의 전기화의 3분의 1이라고 선언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사진을 찍은 듯이 정확한 것이겠지만, 사회주의를 위해서는 이것으로는 아주 불충분하다! 1935년 11월에 스타하노프 운동가들에 행한 연설에서 스탈린은 의외로 그 대회의 경험주의적 목적에 맞추어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사회주의는 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정복할 수 있고, 정복해야하며, 반드시 정복하게 될 것인가? 왜냐하면 사회주의가 보다 높은 노동생산성.... 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3개월 전에 똑같은 문제에 대하여 채택되었던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결의안과 자기 자신이 종종 반복했던 선언들 역시 우연히 거부하면서, 여기서 스탈린은 미래시제로 사회주의의 "승리"에 관하여 말한다. 그는 사회주의가 노동생산성에서 자본주의를 앞지르게 될 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정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보는 바와 같이, 동사의 시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표준들이 시시때때로 변한다. 소비에트 시민들에게는 "총노선"을 따라가는 일이 틀림없이 쉬운 일이 아니다.

 

1936년 3월 1일 로이 하워드와의 대화에서, 마침내 스탈린은 소비에트 체제의 새로운 정의를 내놓았다.

 

"아직은 완전히 완성되는 않았지만, 그 뿌리에서는 사회의 사회주의적 기관인 우리가 창출해 온 그 사회기관을 아마도 소비에트 사회주의 기관으로 불러도 될 것입니다."

 

이의도된모호한정의속에는거의그속에있는단어의개수만큼이나많은모순들이있다. 사회적 기관이 "소비에트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불리지만, 소비에트는 국가의 형태이고 사회주의는 사회 체제이다. 이들 명칭들은 같은 것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우리의 관심사의 관점에서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사회적 기관이 사회주의적이 되어온 이상, 소비에트는 빌딩이 완성된 후의 비계처럼 떨어져 나가야 한다. 스탈린은 사회주의는 아직은 완전히 완성되지는 않았다고 수정을 가한다. "완전히.. 않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5 퍼센트 만큼인가 75 퍼센트 만큼인가? "그 뿌리에서 사회주의적인" 사회의 기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이것에 대하여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소유의 형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혹은 기술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지만, 정의의 모호함 바로 그것이 1931-35년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더욱 분명한 정식으로부터의 후퇴를 의미한다. 같은 길을 따라서 더 나아가는 발걸음은 모든 사회적 기관의 "뿌리"는 생산력이며, 소비에트의 뿌리는 인류의 복지인 사회주의적 기둥과 잎들을 위하여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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