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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대 케인즈 / 국가재정의 조작은 침체를 멈출 수 없다

노동자 전위 932호

2009년 3월 13일

 

노동자 전위 문서고로부터

국가재정의 조작은 침체를 멈출 수 없다

맑스 대 케인즈

조셉 세이모어

 

깊어만 가는 경제위기는 수백만의 노동 인민들에게 일자리, 집, 저축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해왔다. 그것은 또한 이자율과 함께 은행 시스템 속에 있는 통화의 양을 조정함으로써 경제위기를 제거하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화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던 통화주의 경제 정책의 완전한 오류를 증명해왔다. 통화주의는 1980년대 로날드 레이건과 마가레트 대처의 지배권으로 대변 되었던 우익적 환경에서 부르주아지 경제학자들을 위한 복음성가였다. 1991-92년 소련의 반혁명적 파괴와 이에 수반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 중심적으로 미국에서의 “공산주의의 사망”이라는 승리에 찬 주장이 통화주의의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들의 돛에 더욱 바람을 불어 넣어 주었다.

 

오늘날, 통화주의 신화가 무용지물이 되자, 부르주아지 경제학자들은 1930년대 대공황의 시기 동안에 자본주의 경제위기들은 정부의 재정적자 지출을 통하여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던 영국 경제학자 존 매이나르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사상을 수용하는데 바빴다. 이것이 “밀어서” 경제에 “시동을 걸게 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정부 채무에 의해 재정지원을 받는 거의 8000억 달러의 지출인 대통령 바락 오바마의 “부양책”의 배후에 있는 사상이다. 실제로는, 케인즈주의의 경제 계획들은 통화주의적 경제 계획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맑스가 분석하고 설명했던, 그리고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로 강조했던 자본주의 체제의 파괴적인 비이성성에 맞부닥친다.

 

1975년 3월 14일자 노동자 전위 64호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던 아래에 출판되는 기사는 케인즈의 경제 이론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을 대변한다.

 

현재의 극단적으로 급격한 경제의 하강은 주식시장과 백악관으로부터 확대되어 부르주아지 경제들에 대한 학문적인 재의구심들에 이르기까지 비관주의의 물결을 양산해왔다. 대통령 포드가 앞으로 2년 동안에는 실업률이 다시는 8% 밑으로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한편으로, 미국 경제협회의 수장 로버트 고돈은 “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사용되기에 큰 도움을 주는 경제이론의 체계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월스트리트 저널, 1974년 12월 30일)고 선언한다.

 

1960년대의 대부분 동안, 미국정부의 경제 정책은 재정이라는 “지렛대들”을 빈틈없이 조작하는 것을 통하여 가격을 잡으면서 동시에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케네디 추종 “신동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두 자리 수 물가 인상의 습격과 경기침체 규모의 불황과 함께, 이들 주장들은 급속하게 가면이 벗겨지고 있다.

 

세계의 경기침체가 케인즈주의의 경제 정책들과 관련한 낙관주의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반(反)케인즈주의 우익(포드 행정부에서 아인 랜다이트 알란 그린스핀에 의하여, 그리고 과거 월스트리트 채권 딜러 윌리암 시몬에 의해 잘 대변되었던)은 수년 동안 정부의 재정적자 지출이 전례가 없는 물가상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고, 이제는 입증되었음을 주장한다.

 

심지어 케인즈주의 자유주의자들마저도 물가인상과 실업 사이의 “양자 균형”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되어 온 것을 목도하면서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케인즈주의 혁명”의 원래 설계자들 가운데 하나인 존 힉스 경은 최근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위기”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책을 내 놓았다. 그리고 일찍이 “신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성”에 관한 글을 썼었던 수정주의 맑스주의자들은 이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본론의 먼지를 털어내고 있으며, 그것의 약점을 가진 진실들이 여전히 자본주의 세계를 배회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부르주아지 반동들(밀튼 프리드만)로부터 껍데기만 맑스주의자들인 자들(어네스트 만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일부 자유주의자들(존 갈브래이트, 존 힉스, 아바 러너)까지 포함하여 괄목할만한 지적 수렴을 목격하고 있다. 그들은 한 세대 동안 “작동”했던 것으로 여겨졌던 케인즈주의 경제학이 유례가 없는 전 지구적 물가인상과 1929년 이래 최악의 위기에 졌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광범위한 수용에도 불구하고, 이 테제는 틀렸다. 케인즈주의 재정 정책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고유한 주기적인 과잉생산 공황들을 결코 멈추지 않았으며, 멈출 수도 없었다.

 

오늘날과 같은 정도로 심각한 주요한 세계 불황은 1958년 세계 경기 후퇴 이래로 적어도 가능한 것이었다. 1974년 이전에 그러한 불황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케인즈주의의 교과적인 대응방책들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요인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67년에 미국은 베트남전의 확전이 아니었다면 경기 후퇴를 겪었을 것이다. 그해 1사분기에 산출이 실제로 하락했으며, 당시 두 번째 규모의 자본주의 경제였던 서독의 1967년 경기 후퇴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베트남 전의 확대가 없었다면, 이러한 정세는 의심의 여지없이 아마도 굉장히 심각한 세계 경제 위기를 야기했을 것이다. 오로지 천치 객관주의자만이 이러한 역사적 가능성을 부인할 수 있을 것이다.

 

1974년에 앞선 20년 동안에 주요한 세계 불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신용 인플레이션이나 케인즈주의적 안정화 정책들, 혹은 다른 어떤 정교한 정부 정책들 때문이 아니다. 전쟁 이후의 자본주의 구조에는 자유주의와 수정주의 맑스주의 이론화에서 인기가 있는 다양한 딱지표들(예를 들면, 신자본주의, 혼합 경제, 영구 전쟁 경제 등)을 정당화하는 어떠한 근본적인 변화도 없었다.

 

 

“케인즈주의 혁명”의 신화들

 

존 매이나르드 케인즈는 자본주의 정부들이 경기 후퇴 동안에 세금을 늘리기 보다는 부채를 통한 재정으로 자신들의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정책을 개발하거나 혹은 심지어 인기 있게 만들거나 했던 것에 대한 책임이 없었다. 이러한 부르주아지의 개혁 방책은 적어도 189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되고 상당한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영국 빈곤자 법 위원회의 소수파 보고서는 “우리는 정부가 정부의 자본적 성격에 대한 작업을 정교하게 조정함으로써 한 두 해 정도의 시기 노동자들을 위한 집단적 요구를 훌륭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1921년 대통령 하르딩스의 실업에 대한 회담은 전(戰) 후 경기 후퇴 동안 미국 상공회의소와 같은 보수적 기관들에 의하여 승인되었던 권고인 공공 토목공사 확대를 권고했다.

 

게다가, 1930년에는 “기업활동 후퇴의 기간 동안에 산업의 안정과 실업의 예방을 위한 선제적으로 계획하고 통제되는 특정 공공 토목공사 수립”을 호소하는 법안(3059호)이 미국 상원에 제출되었다. 이러한 원칙은 케인주주의 경제학이 인기를 얻기 5년 전인 1933년의 전국 산업 복구법[National Industrial Recovery Act)에 반영되었다.

 

그렇다면, 케인즈주의의 의의는 무엇이며, 모든 소란은 무엇 때문인가? 경제 후퇴의 동안에 실용적인 정치인들은 정부 지출을 확대할 것을 주창했었고 부분적으로 그렇게 시도했던 반면, 정통 부르주아지 경제이론(특히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에서)은 여전히 불황이 이자율의 하락을 통하여 쉽게 스스로를 정정하고 있음을 고수했다. 교과서들에 따르면, 경기 후퇴에서의 정부정책은 은행 적립금을 확대하고 균형 예산을 추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케인즈가 했던 것은 부르주아지 경제 학설의 틀 내에서 1930년대뿐 아니라 그 이전의 불황들에서도 대부분의 자본가 정부들이 실행했던 적자 재정지출을 위한 이론적 정당성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케인즈주의 혁명”은 대학교 경제학과들에서, 교과서 집필에서의 혁명이었지, 실제 정부정책에서의 혁명은 아니었다.

 

2차 대전 이후의 시대에, 자본가 정치인들은 상대적인 경제적 안정이 자신들의 케인주주의 안정화 정책들의 교화적인 사용 때문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이 주장(자본가 정부들이 “인민들”을 위하여 경제를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한다는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부르주아지의 선전이고, 부분적으로는 부르주아지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정부 지출의 비중이 2차 대전 이후 크게 증가해왔다는 관념은 너무도 널리 퍼져서 부르주아지 반동, 케인즈주의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 개량주의, 그리고 만델의 수정주의적 “맑스주의”를 포함하는 사실상 모든 정치 경향들에 의하여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확대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국가지출의 역할이야 말로 실제로는 “케인즈주의 혁명”의 모든 신화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이것은 전쟁 사이의 시기(1920-39)와 1961-70년 쇠퇴의 동안에 주요 자본주의 열강들의 국내총생산의 백분율로서의 정부지출을 보여주는 몇 가지 통계들에 의하여 쉽게 반증될 수 있다.

 

 

 

국가

1921-1939

1961-1970

 

프랑스

14%

13%

 

독일1)

18%

16%

 

영국2)

21%

19%

 

일본

10%

8%

 

미국

11%

20%

 

 

자료: OECD, National Accounts, 1961-1972;미국, 상공부, 장기 경제성장, 1860-1970; 미셀, 영국 역사적 통계적요; 스톨퍼, 독일경제, 170-1940; 매디슨, 서구에서의 경제성장; 오카와 그리고 로조프스키, 일본의 경제성장.

 

1) 독일 전정 사이 수치들은 1925-39년까지만 다룬다.

2) 영국의 수치들은 다른 나라들에 대하여 약간의 초과 편차를 부여하는 평가절하 전국 생산 결과에 기초한다.

 

 

이들 몇 개 안되는 수치들이 2차 대전에 뒤이은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주요한 구조적 변화들을 포함하는 “케인즈주의 혁명”의 관념을 완전히 파괴해준다. 모든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경제에서 국가 예산의 비중은 조금씩 감소했다.그리고 미국에서 국가 예산의 확대의 역할은 완전히 전후 시대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 자본주의의 등장에 요구되었던 크게 증가된 군비지출로 설명된다.

 

게다가, 미국에서의 군비지출의 상대적 비중은 베트남 전쟁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한국전쟁 이래로 꾸준히 감소해왔다. 1954년 (한국전쟁의 종료에 뒤이은 해), 군사예산은 미국 국민 총생산의 11%였고, 1965년까지(베트남 병력증강 이전의 해) 수치는 7%로 떨어졌었고,1973년에는 군비 지출이 GNP(대통령 경제보고, 1974)의 단지 6%였다. “영구 전쟁 경제”이론을 위해서는 너무도 높은!

 

 

맑스주의 대 케인즈주의

 

케인즈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을 수행하기에 앞서, 케인즈주의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보다 자세하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 케인즈 이전의 정통 부르주아지 경제학에 따르면, 불황으로 귀결되는 투자량의 하락은 차례로 대부시장으로 들어가서 이자율을 낮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이자율의 하락은 인력의 완전고용이 회복되는 지점으로까지 투자를 자극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모든 것은 공황이 은행 시스템을 교란하지는 않는지 보는 것, 즉 신용 팽창의 메카니즘들이 기능을 하는 채로 있는지 확실하게 하는 것이었다.

 

케인즈는 이자율의 충분한 하락이 불황에서 완전고용 수준의 투자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이론을 수용했다. 그의 주요 저작인 고용, 이자, 그리고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은 왜 그러한 이자율의 충분한 하락이 발생하지 않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이다. 케인즈는 금리 생활자들은 일반적인 이자율에 관한 일정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자율이 이것 보다 훨씬 아래로 떨어지면, 대부자들은 이자율이 다시 올라갈 것이고, 이로 인하여 더 낮은 이자율에 구입되었던 채권들에 대한 자본손실이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할 것이다. 일반적 의미에서, 케인즈주의는 일정한 비정상적인 이자율(“유동성 함정”으로 불리는)에서는 대부자들이 미래의 더 높은 이자율에 대한 예상 속에서 화폐를 축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공황/불황에 대한 통화적 측면에 대한 서술 보다는 덜 설명에 도움이 되는 이론이다.

 

이러한 전제들 하에서, 케인즈는 불황기 동안 통화와 신용을 팽창시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들은 단순히 화폐 축장과(이나) 과도한 은행 적립금을 만들어내면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는 증가된 국가 지출들이 불충분한 자본 투자를 대신해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이 “케인즈주의 혁명”이었다.

 

경제 순환에 대한 맑스주의와 부르주아지(케인즈를 포함하여)적 분석들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자율이 하는 역할과 관련한 근본적인 차이를 고래할 필요가 있다. 부르주아지 경제학에서는 투자의 수준은 대출되는 통화 자본에 대한 이자율과 물질적 생산수단에 대한 이윤율의 차이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자율이 이윤율보다 대폭적으로 낮은 한, 아마도 기업가들은 이러한 차이가 사라질 때까지 대출을 하고 투자를 할 것이다. 많은 부르주아지 경제학자들(케인즈를 포함하여)에 의하여 입안되었던 이자율 하락의 역사적 경향은 확장되는 생산에 대한 근본적인 장애물로서 보이지 는 않았다. 이자율이 충분히 낮은 한, 완전고용 수준의 투자가 보증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반대로, 맑스에게는 투자의 수준은 사적으로 소유된 생산수단에 대한 이자율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자율은 실제 생산수단에 대한 이자율의 일부이며 이것에 의하여 좌우된다. 불황기 동안에는, 비록 비정상적으로 낮은 이자율에도 불구하고 대부될 수 있는 화폐들이 사용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래서 맑스는 “대부 가능한 자본이 대량으로 놀고 있는 때인 공황 직후의 산업순환의 국면”(자본3권, 30장)에 주의를 돌렸다.

 

맑스주의 입장의 정당성은 비정상적으로 낮은 이자율에도 불구하고 초과 은행 적립금(실제 대부와 법적 권한을 부여받은 대출능력의 차이에 관한 지수)이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었던 1930년대 후반 동안에 증명되었다. 정확하게 똑같은 현상이 현재의 경기 후퇴에서 발생하고 있다. 은행 대출이 하락하면서, 떨어지는 이자율이 이제는 심지어 물가 인상률 보다 아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은행 예금은 현재 년 0.6%로 떨어지고 있다. 신용 팽창과 축소는 생산에서의 변화들의 원인이 아니라 수동적결과이다.

 

부르주아지와 맑스주의 경제학 사이의 신용과 이자의 역할을 둘러싼 추론에서의 기본적인 차이는 계급의 개념이다. 부르주아지 경제학에서는 자본가 계급이 없다. 그 대신, 원자화된 비(非)자본가 기업인들이, 생산적인 기업을 설립하기위하여 자금을 사용하면서, 똑같이 원자화된 대부자들로부터 대출을 받는다. 기업인들과 대부자들은 이자율을 통해서만 유일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맑스주의에 따르면, 자본가 계급은 생산수단(대부 가능한 자본을 포함하여)을 소유하고 그것들을 독점하는 자들로 구성된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집단이다. 자본가 계급은 수없이 많은 개인적, 가족적 그리고 조직적 파생관계들로 함께 엮여 있다. 즉 원자화된 비자본가 기업인(부르주아지 경제 이론의 중심적 인물)은 허구이다. 대출받을 수 있는 양은 대출에 대한 보증에 필요한 자본 자산의 소유에 의하여 엄격하게 제한된다. 실제로, 자본주의 하에서 신용은 항상 금융, 산업, 그리고 상업 자본가들을 포함하는 특정한 독점 복합체들에 기초하여 지급된다.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근본적인 오류는 정부 부문의 확장이 이윤율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놔둘 것이며, 그래서 사적 투자의 수준을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출을 통한 재정이건 세금을 통한 재정이건 정부지출은 자본주의 체제의 총비용 - 상업생산의 구성요소들을 위한 맑스의 방정식에서 “불변 자본”에 의하여 소비되고, 대체되고, 표시되는 사회적 총 자본의 일부 - 을 구성한다.(이 문제에 대한 보다 완전한 토론을 위해서는, “신-자본주의라는 신화”, RCY Newsletter10호, 1972년 1-2월을 보시오.)

 

맑스가 그랬듯이, 생산적 노동자들의 임금의 몫(가변 자본)이 노동 시장에서 결정된다고 가정하면, 정부 총 비용(불변자본)의 증가는 잠재적인 잉여가치를 하락하게만들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윤율 또한 하락하게만들 수밖에 없다. 정부 부문의 항구적인 팽창은 사적 자본의 투자를 점진적으로 저지하면서 이윤율을 하락시키는 것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매티크[Mattick]의 “혼합 경제”의 한계들

 

1969년에 출판되었던, 혼합 경제의 한계들이라는 보다 더 직설적인 부재를 달고 있는 폴 매티크의 책 맑스와 케인즈는 특정한 역사적 시대 동안에 케인즈주의가 “번영”을 창출했다는 수정주의/개량주의/자유주의의 공통의 관점을 받아들인다.

 

“정부가 촉진하는 생산은 경제 성장률을 심지어 강화할지도 모른다. 방임주의적 조건들 하에서 생겨났던 것 보다 더 인상적인 ‘번영’의 조건들이 생겨날 지도 모른다.... 어쨌든, 최근 경제의 역사는 혼합 경제의 ‘번영’ 발전의 가능성을 증명해 왔다.”

 

하지만, 적어도 매티크는 케인즈주의 경제 정책의 내적 모순들을 발전시키기 위한 진지한 시도를 하며, 증가된 정부 지출은 결국에는 반드시 자본주의적 안정을 파괴하고 만다고 생각한다.

 

“일단 비(非)이윤 생산이 경제의 산업화된 부분이 되면, 사악한 순환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정부 생산은 사적 자본 축적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시작된다. 이러한 방책의 사용은 사적 자본 축적을 훨씬 더 축소시킨다. 그리고 비이윤 생산은 늘어난다.... 사적 자본 생산의 한계들이 그래서 결국에는 정부가 촉진하는 생산의 한계들이다.”

 

전후 자본주의의 다양한 수정주의 이론가들(예를 들면, 만델, 폴 스위지, 마이클 키드런) 중에서 가장 정통인 매티크는 케인즈주의의 주장들 앞에서 양보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인색한 사람이다. 만델과 스위지와는 반대로, 매티크의 저작은 팽창한 정부 지출이 사적 자본에서의 이윤율 하락을 강제하며, 그래서 생산적 투자를 가로막는다는 점을 인정하는 미덕은 있다. 하지만, 매티크가 정부 지출을 잉여가치의 비이윤적 구성요소로 다루는 대신 소비되고 대체된 부동자산의 형태를 가지는 총 산출가치로부터의 공제로 다루었다면, 그는 맑스주의 경제학에 보다 철저하게 되었을 것이다.

 

매티크의 저작은 과중한 정부 지출 부담을 안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들(미국, 영국)이 왜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국가 부문을 가지는 경제들(일본, 프랑스) 보다 훨씬 더 느리게 성장해왔는지에 대한 부분적으로 올바른 설명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대규모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습격을 설명하지 못 할뿐만 아니라 매티크는 그러한 전개를 예측하지도 못한다. 그의 이론적 모델의 논리는 점진적 스태그내이션이지 총체적인 세계적 불황이 아니다.

 

매티크의 모델에 따르면, 1974년에 발생했던 것과 같은 사적 투자에서의 급격한 하락은 정부지출 몫에서의 급격한 증가에 수반되었던 것이며, 이것에 의하여 야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72-73년 호황 동안에는 이런 일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의 정부 지출의 몫은 아래 수치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시기 동안에 사실상 변화가 없는 채로 있었다.

 

 

 

GNP의 백분율로서의 정부 지출

나라

1971

1973

 

프랑스

12%

12%

 

일본

9%

9%

 

미국

22%

22%

 

서독

17%

18%

 

자료: OECD, Economics Outlook, 1972년 12월과 1974년 12월

 

 

따라서, 심지어 경험적 수준에서 조차 현재의 세계 경제 위기가 케인즈주의의 한계들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 없으며, 적어도 사적 자본 생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견딜 수 없게 많은 정부 지출 때문은 아니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왜곡으로 만들어진 만델 학파

 

“국제 자본주의 경제의 일반화된 경기 후퇴”(Inprecor, 1975년 1월 16일)에서, 사이비 트로츠키주의 통합 서기국의 이론적 지도자인 어네스트 만델은 세계 위기(world conjuncture)에 대한 주요한 분석을 시도한다. 저자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케인즈주의 정책들이 자본주의적 산업 순환들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사상을 거부했다는 취지의 자화자찬적 선언으로 시작한다.

 

"경기 후퇴가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 써클들에서, 그리고 신-케인즈주의적 테크닉들을 부여받은 자본의 정부들이 이제부터는 ‘순환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 의하여 수용되어졌던 노동자 운동에서는 하나의 놀라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경기 후퇴는 우리 운동에 의하여 거의 날짜까지(almost to the date) 예견되었고 예언되었다."

 

그리고 노동자 운동 내에서 “신-케인즈주의적 테크닉들”이 “순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 이름 없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마도 만델은 1962년에 출판되었던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잘 알려진 책으로부터의 아래의 인용의 저자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2차 대전 이래로, 자본주의는 1948-49년, 1953-54년, 1957-58년, 그리고 1960-61년 이렇게 4개의 주요한 경기 후퇴들을 경험해 왔다. 자본주의는 중대한 위기를 가져보지 못했고, 분명하게 1929년이나 1938년의 규모들의 것은 가져보지 못했다.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하나의 새로운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특정 맑스주의자들이 하는 것처럼 이것을 부정할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상의 기원들은 우리가 열거해왔던 자본주의 쇠퇴의 국면들의 모든 특징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 국면의 자본주의 경제는 자유경쟁의 시대나 혹은 독점 자본주의의 첫 번째 국면 동안에서보다 소비와 투자 모두에서 더 큰 안정성을보증하는 경향이 있다. 이 국면의 자본주의 경제는 순환적 변동들에서의 감소로 향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무엇보다도 경제생활에서 국가의 증가되는 개입으로부터 귀결되는 것이다.”[강조는 원문]

 

국가 개입이 “보다 큰 안정성”과 “순환적 변동들에서의 감소”를 보증해왔다고 주장하는 이 소위 맑스주의 저작은 뭘까? 이것은 맑스주의 경제이론(인용은 14장으로부터)이라는 제목의 저작이며, 어네스트 만델 그 사람이 쓴 것이다.

 

만델에게는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그는 항상 자신의 내기들에서 한 쪽을 완전히 선택하지 않는 식의 손실을 회피하는 방책을 사용한다는 것이 지적되어야 한다. 그는 케인즈주의적인 순환에 맞서는 방책들의 유효성을 완전하게 거부하지 않아 왔다. 정부의 개입이 현재의 세계 경제 위기를 멈추거나 역전시킬 수 있다는 선언이 Inprecor 기사 속에 감추어져 있다.

 

“경기 후퇴는 그 폭과 지속기간이 물가인상을 유발하는 구매력의 투입에 의하여 완전하게 제한되는 정확하게 과잉생산의 위기이다. 그래서 만약 경제가 그러한 투입들이라는 수단으로 다시 떠오른다면 (무엇보다도 서독, 그리고 다음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국제 자본주의 경제는 이번에는 심각한 경기 후퇴를 피할 것이다.”

 

만약 이런 것이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왜 자본가 정부가 사태가 이렇게 되어버리도록 내버려 두었겠는가에 대하여 의아해 할 것이다.

 

자신의 평상스러운 예쁘게 출력된 피난을 위한 구절들에도 불구하고, 만델의 최근의 기고는 1960년대 동안의 그의 주요 저작들에 있는 당대의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에 대한 정직하지 못한 거부이다. 노동 관료집단에 대한 수용이라는 기회주의적 정책들을 위한 인상주의적 정당화로서의 자신의 목적에 복무해온 “신자본주의”는 이제 만델주의 어휘에서 직접적으로 제거 되었다.

 

 

전문적 인상주자가 사태를 바라보다

 

케인즈주의적 안정화 정책들의 효용성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사라지게 되면서”, 만델은 현재의 사태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양한 특별한 이론들에 의지한다. 그의 중심적 주제는 지난 20년 동안에는 다양한 민족 국가적 불황들이 (때로는 심각한) 이런 저런 때에 대게는 고립되었던 반면, 왜 지금은 세계 공황이 있는가이다. 만델이 아래와 같이 쓰고 있듯이,

 

“총체화된 경기 후퇴는, 구체적으로 그것이 총체화되기 때문에, 전후 시대에서 가장 심각한 경기 후퇴가 될 것이다. 1948-68년 기간 동안 산업 순환의 동기화의 부재가 경기 후퇴들의 폭을 감소시켰다.”

 

1958년 경기 후퇴(만델이 주장하는 것처럼 1948년 이후가 아니라) 이래로 다양한 민족 국가적 경제 하강들이 강화되지 않아왔고, 부분적으로 서로를 상쇄해왔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경험적 사실이다. 오로지 사태의 동기화의 부재가 우발적인 요소들 때문이 아니라, 이것들 보다는 전후 자본주의(적어도 근래까지)의 구조에 고유한 것이라고 주장할 때에만, 이 선언은 경험적 서술로부터 뜻밖의 이론으로 전화될 수 있다. 이것이 정확하게 만델이 지금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 동기화는 우연적인 특징이 아니다. 이것은 경기 후퇴에 앞선 장기간의 팽창의 기간 동안에 발생했던 보다 깊은 경제적 변형들의 귀결이다.”

 

만델은 이 주제를 지지하는 3가지 이유를 제기한다. 첫 번째는 1950년대에서 1960년대의 세계 경제가 총체화된 공황을 허용하기에는 충분히 통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세계 경제는 특히나 다국적 기업들의 팽창 때문에 충분히 통합되게 되었다.

 

"생산의 국제화가 새로운 도약을 했는데, 이 도약에서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서의 노동의 국제적 분할에서의 선제가 두드러졌다. 자본의 편제(organiazation)라는 관점에서, 이것은 동시에 대단히 많은 나라들에서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다국적 기업의 성장 속에 스스로를 반영시킨다....“

 

세계 경제가 1세기가 넘는 동안(!) 국제적인 공황들/불황들을 만들어낼 정도로 충분히 통합되어왔다는 것을 진정으로 만델에게 지적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그러한 통합의 주요한 기초는 세계 상품 교역과 이것과 연관된 복합적 재정 지급 요구들이다. “대단히 많은 나라들에서 동시에” 잉여가치를 축출하는 주요 “다국적 기업들”은 오늘날, 그들이 수세기 동안 그래왔듯이, 산업 기업들이 아니라 거대 은행들이다.

 

세계 불황들은 무엇보다도 주요 은행의 실패들로 인하여 두드러지게 되고, 강화된다. 즉 1931년의 Austrian Credit-Anstalt, 서독의 Bankhaus Herstatt, 그리고 1974년 미국에서의 프랭클린 내셔널 은행이 그들이다. 국제무역과 투자에 대한 재정 공급에서 산업 기업들에 의한 은행들의 부분적 대체는 오늘날 자본주의에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것이 최초로 세계 경제 위기가 가능하게 하는 가운데, 국제적 경제통합의 수준을 질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만델의 두 번째 이유는 1971년 통제되는 변동환율에 의한 달러 외환 기준의 대체가 동시다발적인 물가 하락적 정책들을 요구하는 가운데,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막았다는 것이다.

 

“... 국제 통화체제의 붕괴가 유동 환율로 귀결되자마자, 즉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급격한 평가절하에 의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마자, 모든정부들은 동시다발적으로반(反)통화 팽창적 정책들을 적용하기 위한 제국주의간 경쟁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주장은 간단하게 거짓이고,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1944년 브레튼 우즈에서 성립되었던 고정 환율 체제는 긴축적인 것이었고, 적자지출에 대한 제한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로이 해로드와 제임스 미드와 같은 몇몇 저명한 영국의 케인즈주의자들은 보다 팽창적인 통화와 재정 정책들을 수행하기 위한 변동 환율을 오랫동안 주창했다.

 

1971년 8월 이전에는 평가절하는 극단적인 경우에서만 오직 사용되어야 하는 예외적인 것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동안에는 정부들이 과평가된 환율을 보호하기 위하여 통화 축적 방책들에 자주 의지했다(예를 들면, 2차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정책들, 초기 드골 정권의 내핍 프로그램, 그리고 1968년 파운드화 평가 절하 이전 다양한 영국 정부들의 “긴축과 완화를 섞바꾸는” 정책들).

 

만델의 세 번째 이유는 민족국가적 경제 불황의 기간들이 더 장기간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이 다른 나라들에서의 경기 후퇴와 더욱 많이 중첩된다는 것이다.

 

“스태그내이션의 국면들, 그리고 심지어 경기 후퇴조차 더욱 길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명백하게, 이것은 동기화로 귀결된다. 만약 그것들이 한꺼번에 12개 나라들에서 발생한다면, 6달을 지속하는 경기 후퇴들이 2년을 지속하는 경기 후퇴들 보다 덜 쉽게 극복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통계적으로 뻔한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에서의 경제위기의 정기화는 세상 나머지 부분들에서의 동시다발적 불황들에 의하여 강력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만델의 근거는 완전히 순환적이다. 따라서 그의 세 번째 “이유”는 완전히 되지도 못하는 이유이며, 단순히 총체적인 세계 경기 둔화를 서술하는 또 다른 방식에 불과할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왜 총체적인 세계적 불황이 지금 발생하고 있으며 이전 시대들에서는 불가능했었는지에 대한 만델의 세가지 근거들 중에서 첫 번째 것은 무관한 것이고, 두 번째 것은 오류이며 세 번째 것은 의미없는 것이다.

 

 

물가인상은 케인즈주의의 아킬레스 건인가?

 

사실상 모든 자유주의 부르주아지, 개량주의, 그리고 수정주의 경제학자들은 물가인상이 케인즈주의 정책들의 유효성에 대한 유일한 장애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팽창된 정부 지출이 항상 완전고용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때로는 견딜 수 없는 물가 인상율을 댓가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밀튼 프리드만[Milton Friedman] 같은 반동 부르주아지들로부터 사이비 맑스주의자 어네스트 만델에 이르기까지, 케인즈주의적 정책들은 유례가 없는 수준의 물가인상을 발생시킬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동의가 있다. 이 주장은 근거가 확실한 것인가?

 

지난 몇 년 동안의 가속화된 물가인상은 논박의 여지가 없는 경험적 사실이다. 1961-71년의 시기에,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의 소비자 물가들은 년간 3.7% 올라갔고, 1971년에는 4.7%로 상승했고, 1973년에는 7.7%로, 그리고 1974년에는 14.1%로 올라갔다(OECD, Economic Outlook, 1974년 12월)! 이런 가속화된 물가인상은 20년 동안의 케인즈주의적 정책들의 불가피한 결과인가?

 

이 글의 초반부에서, 정부지출의 몫은 1972-73년 호황 동안에 증가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따라서 지난 몇 년 동안의 물가 폭발은 유례가 없이 거대한 정부 지출에 대한 재정확충을 위한 유례가 없이 많은 적자 재정지출에서 유례할 수가 없다. 1971년 이후의 매우 급격한 물가 인상들은 이것이 적자 지출이 만들어 낸 구조적이고 불가피한 결과라는 이론을 논박한다.

 

그렇다면 지난 3년 동안의 증가된 물가인상의 원인은 무엇인가? 주요한 이유 하나는 이미 다루어졌다. 1971년 8월에 붕괴되었던 달러 기축통화가 1차 대전 이전 금본위제와 부분적으로 비슷한 영향을 미쳤다. 고정환율의 유지는 국내 통화와 신용의 팽창에 대한 외부적 제한으로 복무했다. 1971년 이후, 자본가 정부들은 자신들의 통화가 평가절하 되도록 허용함에 의한 국제수지 적자로부터 “편한 길”을 택해왔다. 환율 평가절하는 다양한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국내 물가인상을 더욱 부추긴다. 영국과 이탈리아가 이러한 과정의 가장 분명한 예들이다.

 

가속화된 물가인상의 두 번째 이유는 1972-73년의 급격한 세계 호황이 농경과 원재료의 공급에 세계대전과 비슷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국 전쟁에서부터 1971년까지, 농업 생산물/원재료들을 위한 무역 조건이 지구적 생산 능력에서의 근본적인 불균형을 양산하는 가운데 공업생산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악화되었다.1972년 동안에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산업 산출이 8% 증가했을 때, 지구적인 식량 생산은 실제로 약간 하락했다(OECD, Economic Outlook, 1973년 12월). 이들 물질적인 부족들이 재빠르게 투기, 사재기, 그리고 카르텔의 조작을 만들어냈다. 1971년과 1973년 사이에 세계 원재료 물가지수는 80% 이상으로까지 올라갔고,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식량생산물들의 가격도 마찬가지였다(OECD, Economic Outlook, 1972년 12월). 이렇게 해서 두 가지 요인들(1971년 이후 경쟁적인 평가절하에 광범위한 의존과 1972-73년 호황이 농경과 원재료 공급에 미친 영향)이 지난 몇 년 동안의 가격 폭발을 설명해 준다.

 

심지어 그것이 경험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케인즈주의가 견딜 수 없는 물가인상을 야기하기 때문에 케인즈주의는 이제는 효용성이 없다는 주장은 근본적인 것이기 보다는 일시적인, 정세적인 것이다. 하나의 객관적인 분석의 시도로서 그것은 몇 년 동안의 고실업 불황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인플래이션을 유발하는 압력들을 고갈시키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연방준비국 의장 아서 번스[Arthur F. Burns]와 포드의 경제고문 윌리암 펠너[William Fellner]와 같은 특정 우익 케인즈주의자들의 현재의 입장과 비슷하다.

 

향후 몇 년 동안에 서유럽에서 세계대전이나 혹은 거대한 혁명적 격변이 없다면(두 가지 모두 진정한 가능성들이다), 적어도 1976년 내내 지속되는 고실업 스태그내이션에 길을 내주는 가운데, 세계 경기 후퇴는 올 해 더욱 깊어질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2년 내에 물가 인상률이 크게 감소하게 될 것이며, 이미 수도 없이 많은 속도 저하의 신호들을 보여준다. 유례가 없는 가속화되는 물가인상을 야기할 것이라는 것이 부르주아지의 경제적 개혁주의에 맞서는 자신들의 중심적인 주장인 좌익들은 부활하는 케인즈주의의 주장들에 대하여 스스로가 이론적으로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세대 동안 자본가 정부들이 주요한 경제위기들을 방지할 수 있으며 예외적인 경제적 팽창을 자극할 수 있었다는 “이론”은 화해불가능한 수정주의적 논리를 가진다. 그것의 주창자들의 주관적인 태도들이 무엇이건,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안정의 시대에 살아오고 있었다는 결론으로 직접 귀결된다. 그러한 주장들은 맑스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반대로, 제4 인터내셔널의 이행의 강령은 자본주의의 최고 (최후)의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자본주의 쇠퇴의 시대, 그리고 전쟁들과 혁명들의 시대에 대한 레닌주의의 이론을 자신의 초석으로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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