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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이행의 강령 앞 부분 1-3장

  • 분류
    트로츠키
  • 등록일
    2013/05/30 07:39
  • 수정일
    2013/06/13 00:48
  • 글쓴이
    얼치기 공산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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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죽음의 단말마와 제4 인터내셔널의 임무들

권력장악을 준비하기 위하여 대중들을 이행의 요구들 주위로 투쟁으로 조직하기

 

이행의 강령

 

 

 

트로츠키

1938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객관적인 필요조건들

 

 

세계의 정치정세는 전체적으로 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부의 역사적 위기라는 특징이 있다.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위한 경제적 필요조건은 자본주의 하에서 도달될 수 있는 최고의 실현 지점을 전반적으로 이미 성취하였다. 인류의 생산력들은 지체되고 있다. 새로운 발명들과 개선들은 이미 물질적 부의 수준을 올리지 못한다. 전체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위기라는 조건들 하에서의 위급한 위기들이 어떤 때보다도 더 막중한 약탈들과 고통들을 대중들에게 가한다. 증가하는 실업도 또한 국가의 금융위기를 심화시키고 불안정한 통화 시스템들을 침식한다. 파시스트들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적 정권들도 하나의 파산으로부터 또 다른 파산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부르주아지 계급 그 스스로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미 파시즘이라는 카드에 자신의 마지막을 걸지 않을 수 없었던 나라들에서, 부르주아지 계급은 이제 경제적, 군사적 파국을 향하여 눈을 감은 채 미끄러져 내려간다. 역사적으로 특권을 지닌 나라들에서는, 즉 부르주아지 계급이 여전히 국가적 축적들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특정 기간 동안 민주주의라는 사치를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나라들(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서는, 모든 자본의 전통적인 정당들은 거의 의지의 마비상태라고 할 만한 난국에 처해 있다.

 

그것의 첫 번째 시기의 과장된 결연함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지 계급이 무한량의 부를 축적하는데 성공한 나라에서나 단지 가능한 “뉴딜”은 특수한 형태의 정치적 난국을 의미할 뿐이다. 자신의 코스를 완주하였기는커녕, 현재의 위기는 “뉴딜” 정책들이 프랑스에서의 인민전선 정치처럼 경제적 막다른 골목으로부터 어떠한 새로운 출구도 열지 못한다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미 성공했다.

 

국제관계들은 보다 좋은 어떠한 그림도 보여주지 않는다. 자본주의 분열이라는 증가하는 긴장 하에서, 제국주의적 적대들은 개별적인 충돌들과 지역의 유혈 소동들(이디오피아, 스페인, 극동, 중부유럽)이 세계적 규모의 대화재로 필연적으로 병합될 수밖에 없는 정도의 막다른 골목에 도달해 있다. 물론 부르주아지 계급은 새로운 전쟁이 의미할 자신의 지배에 대한 치명적인 위험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저 계급은 1914년의 전야 때보다도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모자란다.

 

역사적 조건들이 사회주의를 위하여 아직은 “무르익지” 않았다는 취지에 대한 모든 발언은 무지 내지는 의식적 속임수의 산물이다.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위한 객관적 필요조건들은 단지 “무르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일정정도 썩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혁명이 없다면, 그것도 바로 다음 역사상의 시기에 혁명이 없다면, [닥쳐 올-해석자의 첨가] 파국이 인류의 문명 전체를 위협한다. 이제는 프롤레타리아트, 즉 주요하게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전위의 차례이다. 인류의 역사상의 위기가 혁명적 지도부의 위기로 바뀐다.

 

 

 

프롤레타리아트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부

 

부르주아지 계급의 경제, 국가, 정치와 그들의 국제관계들은 사회의 준혁명적 국면의 특징인 사회적 위기에 의하여 완전하게 파괴된다. 준혁명적 국면의 혁명적 국면으로서의 변형의 길에 있는 주요한 장애물이 프롤레타리아트 지도부의 기회주의적 성격, 즉 대부르주아지 계급 앞에서의 그들의 소부르주아지적 비겁함과 죽음의 단말마적 고통에 처해있는 데도 대부르주아지 계급과 맺는 그들의 배신적 커넥션이다.

 

모든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심한 불안으로 고통 받는다. 수백만의 대중들이 다시 또 다시 혁명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들은 매번 그들 자신의 보수적 관료 기구들에 의하여 막힌다.

 

스페인 프롤레타리아트는 1931년 4월 이래로 자신의 수중에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의 운명을 통치하기 위한 일련의 영웅적 시도들을 해왔다. 하지만, 그들 자신의 정당들 (사민당, 스탈린주의자들, 무정부주의자들, POUM주의자들)이 각자 자기 자신의 방법으로 제동장치로서 행동했으며, 그리하여 프랑코의 승리들을 준비했다.

 

프랑스에서는, 특히 1936년 6월 동안, “점거” 파업들의 거대한 물결이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를 위하여 진정으로 준비되어 있음을 드러내 주었다. 하지만, 인민전선이라는 꼬리표 하의 지도적 조직들(사회주의자들, 스탈린주의자들, 생디칼리스트들)은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혁명적 물결을 방향을 돌려 가두는데 성공했다.

 

미국(CIO)에서의 전례가 없는 점거 파업들과 산업 노동조합주의의 놀라울 정도로 급속한 성장은 역사에 의하여 그들에게 과하여진 임무들의 수준으로 그들 스스로를 끌어올리기 위한 미국 노동자들의 본능적 분투의 가장 논란의 여지가 없는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또한 새롭게 창립된 CIO를 포함하는 지도적인 정치적 조직들은 대중들의 혁명적 압력을 저지하고 무력화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것을 한다.

 

코민테른의 부르주아지적 질서의 편으로의 명백한 넘어감, 전 세계에 걸친, 특히 스페인, 프랑스, 미국과 기타 “민주주의적” 나라들에서의 코민테른의 냉소적으로 반혁명적인 역할이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예외적인 추가적 어려움들을 만들어냈다. 10월 혁명의 기치 하에서 “인민 전선”에 의하여 실행되던 협조주의적인 정치들이 노동계급에게 무기력을 선고하고, 파시즘을 위한 길을 깨끗하게 한다.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에 맞서는 투쟁에서, 한편으로는 “인민 전선들”, 다른 한편으로는 파시즘이라는 제국주의의 최후의 정치적 자원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자원들 모두는 역사적 관점에서 미봉책들이다. 독일에서 나찌의 십자가 문양 간판 하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는 프리지아 모자라는 간판 아래에서 자본주의의 쇠퇴는 계속된다. 부르주아지 계급의 타도에 미치지 못하는 어떠한 것도 출로를 열지 못한다.

 

대중들의 방침은 쇠퇴하는 자본주의라는 객관적 조건들에 의하여 우선, 그리고 구 노동자 조직들의 배신적인 정치에 의하여 두 번째로 결정된다. 이들 요소들 중에서 당연히 첫 번째 것이 결정적인 것이다. 즉 역사의 법칙들이 관료 기구들보다 강력하다. 블룸의 “사회적” 입법으로부터 스탈린의 사법적 모함들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배신자들의 방책들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그들은 결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의지를 깨뜨리는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의 바퀴를 저지하려는 그들의 필사적인 노력들은 인류 문명에서의 위기가 되어 온 프롤레타리아트 지도부의 위기는 오직 제4 인터내셔널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보다 분명하게 증명해 줄 것이다.

 

 

 

최소강령과 이행의 강령

 

다음 시기의 전략적 임무는 (준혁명적 시기의 선동, 선전, 그리고 조직) 객관적인 혁명적 조건들의 성숙과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전위의 미성숙(고참 세대의 혼란과 실망, 보다 젊은 세대의 경험 부족)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에 있다. 대중들이 일상투쟁의 과정에서 현재의 요구와 혁명이라는 사회주의 강령 사이의 가교를 찾도록 돕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가교는 오늘날의 정세와 현재 노동계급의 폭넓은 층의 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하나의 최종적인 결론,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의 장악으로 이끄는 이행의 요구들이라는 체계를 포함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진보적이었던 시대에 작동하던 고전적 사회민주주의는 자신의 강령을 부르주아지 사회의 틀 내에서의 개혁들에 스스로를 제한했던 최소강령과 정해지지 않는 미래에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할 것을 약속했던 최대강령이라는 각기 독립적인 2개의 부분들로 나누었다.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사이에는 어떠한 가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이지 사회민주주의는 그러한 가교가 필요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단지 휴일 연설용으로나 사용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구조적인 사회개혁과 대중의 삶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에 대한 논의가 불가능한 때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진지한 요구, 그리고 심지어 소부르주아지의 모든 진지한 요구가 불가피하게 자본주의 소유관계와 부르주아지 국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이르는 때인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시대에 코민테른은 사회민주주의의 길을 따를 것을 분명히 해왔다.

 

제4 인터내셔널의 전략적 임무는 자본주의의 개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타도에 있다. 제4 인터내셔널의 정치적 목표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몰수라는 목적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의 장악이다. 그러나 심지어 작고 부분적인 것들까지 포함하여 전술에 관한 모든 문제들에 대한 가장 신중한 고려가 없이 이 전략적 임무의 성취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부문들,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층, 직업, 그룹들이 혁명적 운동 속으로 인입되어야 한다. 현재의 시대는 이 시대가 일상활동으로부터 혁명정당을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일상활동이 혁명의 실제 임무들과 분리되어 수행될 수 없도록 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제4 인터내셔널은 과거의 “최소“요구의 강령들이 적어도 그것들의 결정적인 위력의 부분을 보유해온 한에서는 “최소“요구의 강령들을 버리지 않는다. 제4 인터내셔널은 끊임없이 민주적 권리들과 노동자들의 사회적 성과들을 방어한다. 그러나 제4 인터내셔널은 이 일상활동을 올바르고 실제적인, 즉, 혁명적 전망의 틀 내에서 수행한다. 대중들의 과거 부분적인 “최소의“ 요구들이 쇠퇴기에 접어든 자본주의의 파괴적이고 퇴락한 경향들과 충돌하는 한(이것은 매 단계마다 발생하고 있다), 제4 인터내셔널은 이행의 요구들이라는 체계를 제기하며, 그것들이 어느 때 보다도 더 공공연하고 결정적으로 부르주아지 통치의 기초 그 자체에 맞서는 방향으로 향할 것이라는 사실에 이행의 요구들의 본질이 있다. 과거의 “최소강령“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위한 대중의 체계적인 조직화를 임무로 하는 이행의 강령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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