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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아홉 번째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을 맡은 저는 들풀입니다.
읽는 라디오 네 번째 시즌을 진행한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몇 달은 지난 것 같은데 이제 겨우 두 달 지났네요.
읽는 라디오를 진행한다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면서 긴장되는 일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습니다.
읽는 라디오 진행자로 이 자리에 앉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해보니 역시 만만치 않더군요.
가장 큰 고민은 매주 얘깃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일상 속에서 스쳐가는 소소한 얘기들을 하면 된다고 편안하게 생각했는데
그 소소한 얘기를 매주 2~3가지씩 들고 와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 삶이 버라이어티해서 얘기 소재들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제 주변 관계가 넓어서 소스를 광범위하게 제공해주는 것도 아니고
제 지식이 풍부해서 얘깃거리를 무한창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이번 주에는 무슨 얘기를 할까?’하는 것이 항상 고민입니다.
월요일에 방송을 내보내고
하루 이틀 편하게 지내다가
수요일부터는 슬슬 방송 원고를 고민하게 되는데
제 주변을 둘러봐도 특별한 일이 없고
읽었던 책을 생각해봐도 인용할 내용이 없고
sns를 둘러봐도 딱히 끌리는 글이 없으면
약간의 압박이 밀려듭니다.
이번 방송을 준비하면서도 그랬습니다.
목요일이 지나도록 얘깃거리가 떠오르질 않더군요.
그래서 방송준비에 대한 걱정이 살짝 밀려왔는데
잠시 고민을 내려놓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내 주변에서 특별한 얘깃거리가 없는 것은
나와 주변의 삶이 잔잔하고 평화롭다는 것이 아닐까?”
“잔잔한 물결 위에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릴 것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드넓은 우주를 상상해야하지 않을까?”
“내면을 성찰하거나 우주를 상상하는 것도 부담스럽다면
물결의 잔잔한 파동을 느끼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밀려들고 밀려나가기에 그냥 그 생각들을 바라봤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2
자동차밧데리 기술자였던 친구가 10여년전 회사를 그만두고 처갓집 동백마을 근처로 귀농하였습니다. 귤농사를 유기농으로 한다고 해초를 주어다 발효시켜 농약대신 주면서 몇년을 지었었는데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친구가 지은 귤은 약간 기스같은게 있지만 무척 맛있었습니다. 습한 제주도 기후에 방안에 일명 루바 라는 나무벽을 시공하고 지냈었고요. 레드향? 이런 귤인가요? 귤이 아직도 나오나보네요. 수확하시는 모습에 갑자기 친구생각이 났습니다.
조금 뒤늦게 도착한 득명님의 사연이었습니다.
7회 방송에서 성민씨가 감귤을 수확한 소회를 적어 보내주셨는데
득명님이 그 글을 읽고
연락이 끊겨서 조금씩 잊혀져가던 친구가 떠올랐나봅니다.
그리고 그뿐입니다.
성민씨도
득명님도
그 친구분도
그리고 저도
서로 떨어져서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뿐입니다.
서로 만나본 적이 없어도
연락이 끊긴지 오래 되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 별로 없어도
그저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3
햇살 좋은 오후에 창가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몸에 와 닿은 햇살의 온기가 따뜻하고 좋았습니다.
그 기운을 가만히 느끼고 있으려니 몸 안 구석구석 온기가 펴져들었습니다.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몸 안에 퍼져든 환한 기운을 느끼며
숲 속을 걸었습니다.
새들이 나를 위해 반갑게 인사를 해줬고
나무들은 편안한 기운을 뿜어내 줬고
땅은 내 몸에서 흘러내린 것들을 받아줬습니다.
편안하게 숲속을 거닐다보니
강가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에서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음 깊은 곳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래서 나지막하게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둔치에 앉아 강물을 바라봅니다.
졸졸졸 흐르는 맑은 강물을 바라보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봅니다.
강물에 낙엽이 떠내려 와서 돌멩이 하나를 던집니다.
퐁당, 물결이 일렁이며 내 마음도 출렁입니다.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밀려와서 돌멩이 하나를 던집니다.
퐁당, 마음이 출렁이며 강물로 흘러갑니다.
둔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봅니다.
두둥실 떠다니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무거운 몸과 마음을 올려봅니다.
바람에 구름이 흘러가기에 숨을 불어봅니다.
후우, 흘러가는 구름을 쫓을 수 없어 한숨만 나옵니다.
한숨에 짜증이 달라붙어서 숨을 불어봅니다.
후우, 숨결이 어느새 구름을 앞서버렸습니다.
강물에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강물 속 구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더니
늙어가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돌멩이 하나를 퐁당하고 던졌더니
강물과 구름과 얼굴이 일렁이며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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