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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11회

 

 

 

1

 

 

안녕하세요, 들풀입니다.

읽는 라디오 출발해보겠습니다.

 

 

요즘 꿈자리가 좀 뒤숭숭했습니다.

불쾌하거나 끔찍한 꿈을 꾸는 건 아니지만

잠에서 깨고 난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은 꿈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아침에 등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늦은 것 같아서 서둘러 교실에 도착했는데 이미 수업을 하고 있더군요.

선생님은 별다른 지적 없이 자리에 앉으라고 했고 저는 제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제 자리에 다른 친구가 앉아있었습니다.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지만 그 친구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자리나 앉으라고 하셔서 비어있는 자리를 찾았습니다.

교실을 돌아다니며 빈자리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제가 앉을 자리는 없었습니다.

제가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수업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날은 대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캠퍼스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내려놓을 공간을 찾고 있었습니다.

화창한 봄날의 캠퍼스는 사람들이 가득해서 빈공간이 없었습니다.

짐을 들고 과방으로 내려갔는데 거기도 사람들이 가득해서 빈공간이 없었습니다.

다시 짐을 들고 학회 사무실로 가봤지만 거기도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다시 낑낑거리면서 짐을 든 채 동아리방으로 향하는데 학생회관 전체가 콘서트를 하느라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그냥 서 있어야했습니다.

 

 

또 다른 날은 교도소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간단히 입소절차를 마치고 배정된 방에 도착했는데 방에 아무도 없는 겁니다.

전부 출역 나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방을 기웃거려봤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동에 갇힌 채 이곳저곳 돌아다녀봤지만 재소자도 교도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빈 사동에서 혼자 서성거려야 했습니다.

 

 

요즘 들어 제 꿈이 자꾸 과거로 돌아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돌아간 과거에서 사람들 속에 자리 잡지 못하고 헛도는 것도 좀 불편하더군요.

외로워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지금의 내 삶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내 마음에 다른 이들을 위한 여유 공간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마음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이기에

그 얘기를 귀 기울려 들어주기 위해 이렇게 방송에서 말해봅니다.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잠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낯선 곳에 와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목초지에 창고 같은 비닐하우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봤더니 그리 울창하지 않은 숲들만 보였습니다.

조금 멀리 집들이 보이는 걸 보니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창고 안에 들어가 봤더니 농기구 몇 개랑 의자와 탁자가 있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바람이 조금 찬듯해서 의자를 들고 나왔습니다.

화사한 햇살을 맡으며 주변을 천천히 살폈습니다.

나무도 풀도 담도 전봇대도 모두 모나지 않고 편안해보였습니다.

 

 

주변에 듬성듬성 자란 잡초들이 보여서 장갑을 끼고 잡초를 뽑았습니다.

30분쯤 그러고 나니까 허리가 아파서 다시 의자에 앉았습니다.

이제는 햇살이 따가워서 의자를 나무 그늘 아래로 옮겼습니다.

창고 안에 있던 오래된 신문을 들고 와서 천천히 읽어나갔습니다.

 

 

3년 전 소식들을 반갑게 읽어 가는데 고양이 한마리가 보였습니다.

제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저를 살피는데 경계하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살갑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어서 제가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잠시 저를 살피던 고양이는 의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제가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더니 잠시 저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무안하기도 해서 저도 다시 신문으로 눈을 돌렸더니 고양이는 그 자리 누워서 햇볕을 즐기더군요.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산들거리고

주위는 조용해서

저는 편안하게 오래전 신문을 읽었고

고양이는 새근거리며 낮잠을 잤습니다.

 

 

 

3

 

 

요즘 같은 시국에 여행은 고사하고 가까운 곳에 나들이 나가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그런데 저는 과감하게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것도 해외여행입니다.

 

 

어렵지 않게 비행기표를 구하고

여유로운 비행 속에

예약된 민박집에 도착했습니다.

자가격리니 방역이니 그런 건 가볍게 무시해버렸습니다.

민박집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우선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습니다.

 

 

2~3층짜리 다가구주택들이 많은 골목에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주차된 차들은 많더군요.

주변풍경이라고 해서 별다른 건 없었지만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건물들의 모습을 보며 걷다보니 한 꼬마가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손은 엄마 손을 잡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쥔 채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사랑스러웠습니다.

그 뒤편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건물을 따라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조금 걸어서 길가로 나왔더니 지나가는 차들이 많더군요.

길 건너편 아파트단지는 우람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도로는 넓고 인도도 넓어서 쾌적한 느낌을 주는데 사람들은 바쁘게 걸어가더군요.

이런 저런 가게들이 길가 한쪽에 쭉 늘어져 있는데 먹거리 가게들이 많았습니다.

먹거리 가게들은 다양했지만 이곳만의 특별한 가게는 보이지 않고 익숙한 패스트푸드점들이 드문드문 보여서 제 식욕을 자극하지는 않았습니다.

배달오토바이들이 많이 보이는 것이 좀 특이했습니다.

 

 

특색 없는 길가를 걷다보니 금방 지쳐버려서 다시 골목으로 들어왔습니다.

역시 사람은 별로 없고 주차된 차들이 많은 곳을 것다가 작은 공원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이 놀 수 있게 간단한 놀이기구 몇 개가 있고 주변에 벤치가 듬성듬성 놓여있었습니다.

비교적 커다란 나무들이 심어져서 그늘을 만들고 있고 작지만 예쁜 화단도 있었습니다.

나무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서 꽃을 가만히 바라보며 간만의 여유를 즐겼습니다.

 

 

제가 여행을 온 이곳은 한국의 서울입니다. 후후후

물론 제가 산책을 나선 이곳도 제가 사는 동네입니다.

어떤 분의 배낭여행기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기분을 살려서 해외여행 왔다는 느낌으로 동네를 돌아봤습니다.

솔직히 별다른 감흥은 없었습니다.

 

 

이곳은 참 매력이 없는 그렇고 그런 도시라는 것

사람보다 차들이 많아 보이는 도시라는 것

북적거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비교적 쾌적한 인프라를 갖고 있는 도시라는 것

아파트와 먹거리 가게들이 지나치게 많은 도시라는 것

그런 걸 새삼스럽게 확인했습니다.

 

 

여행은 잠시 익숙한 것과 떨어져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라는데

억지스럽게라도 익숙한 것과 떨어져봤더니

삭막해 보이는 이곳에도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소중한 성과입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 멈출까합니다.

오늘 방송을 마치며 들려드릴 음악은 재즈연주가 Kahil El'Zabar의 ‘In My House’입니다.

편안한 제목과 달리 조금 실험적인 음악인데 그냥 듣다보면 편안하게 들리게 되더라고요.

여러분도 한 번 익숙지 않은 경험을 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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