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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67회 – 내 자신이 볼품없어 보이고 불편해질 때

 

 

 

1

 

가끔 가족들이 모여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점점 불편해지고 있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즐겁게 나누지만

매제들과 저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가부장적인 매제들과 개인주의적인 저 사이에는

딱히 꼬집어서 거론하기에 애매한 문제들이 겹겹이 쌓여있어서

어느 순간부터 은근한 무시와 외면의 기운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를 마치고나면 찝찝한 감정의 찌꺼기 때문에 며칠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다른 관계라면 안보면 그만이겠지만 가족들 간에 그렇게까지 틀어지고 싶지 않아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해봅니다.

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이 엄청난 감정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쉽지도 않습니다.

 

불편한 사람들과는 서슴없이 관계를 정리하고

가부장적인 시골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도 못한 채

오롯이 사랑이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마지막 남은 가족들과의 관계마저 멀어진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야 있겠지만

제 삶은 점점 삭막해지고 고단해지겠죠.

물론 그 속에서도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눌 수 없는 행복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으로 사랑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둘이 함께 있는 사진을 찍을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사랑이가 살아있을 때 이런 사진 한 장쯤은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찍었습니다.

 

사랑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팽나무 아래 평상에서 평소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도 아주 잘 나왔습니다.

사랑이는 역시나 사랑스럽고 잘 생긴 외모를 뽐내고 있는데

제 모습은 후줄근한 중늙은이였습니다.

평소 제 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다보니

이런 제 모습이 조금 낯설더군요.

그런데 그 낯선 모습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니 닮은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나이 들어 후줄근한 모습이 너무도 똑 닮아서 살짝 놀랐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젊었을 때 술 먹고 어머니를 때리곤 했던 끔찍한 기억부터 시작해서

나이 들어서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가부장적 태도들

주변을 둘러보고 품기보다는 힘센 사람에 의지해서 적당히 살아가려는 삶의 방식까지

싫은 것 투성이였습니다.

그래서 많이도 싸웠고 나중에는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이 사진에서 아버지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

제가 아버지에게 했던 행동들이 제게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이 들고 후줄근한 시골 농부가

세상살이에서 요구되는 것은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자존심만 강해서 외톨이로 살아가고 있으니

주위에서 은근히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는 겁니다.

 

음...

자기객관화라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생각보다 쓰라린 일이더군요.

 

 

3

 

평소처럼 뜨거운 아침에 하우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하우스 공사를 하시는 사장님이 오셨습니다.

6월에 공사를 하기로 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가을로 미뤄졌는데

지난 달에 제가 부탁했던 부분을 손질하시고는 추가로 더 손을 봐야겠다며 오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부탁드렸던 부분은 본 공사와는 상관없이 그냥 서비스로 해주시는 것이었는데

그것마저도 미진하다고 생각이 드셔서 폭염을 뚫고 일부러 오셨던 겁니다.

 

물론 본 공사 규모가 커서 완전히 서비스로 해주시는 것은 아니고

공사가 지연된 것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 녹아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일을 맡겼을 때 꼼꼼하게 신경 써서 해주시는 그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30도가 넘는 날씨 속에서 일을 하시고 돌아가시는 길에 참외랑 레몬청을 드렸더니 너무 반가워하시는 모습에 제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그때 마침 찾아온 동생에게도 갓 수확한 참외를 담아서 줬더니 다음날 시원한 냉국을 만들어서 일부러 가져왔더군요.

그리고 일을 마친 오후에 편안하게 sns를 둘러보는데 한 달 앞으로 추석맞이 재정사업을 벌이는 소식들이 보여서 조금씩 후원금을 넣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별것 아닌 마음들이 오고가다보니

찝찝한 것들이 가득 들어차 있던 제 마음이 한결 환해졌습니다.

제 자신이 볼품없어 보이고 불편해질수록

제 마음 속에 불어넣어야 할 것은 남들을 생각하는 온기였습니다.

 

 

 

(deadpaints의 ‘붉은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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