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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살 권리 - 하월곡동 이야기

인간답게 살 권리 - 하월곡동 이야기

① 재개발에 내몰리는 삶의 터전

<인권하루소식>은 사회권 박탈의 현 주소를 5회에 걸쳐 살펴본다. 차디찬 겨울, 서울의 몇 남지 않은 달동네 중의 하나인 성북구 하월곡3동 주민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주거권, 사회보장권, 건강권, 노동권, 교육권'의 참 모습을 찾아보고자 한다.[편집자주]

"그저 죽지 못해서 사는 거지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산 2번지 김태환(무직, 70)씨의 집을 처음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이렇게 비좁고 열악한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냉장고와 작은 찬장, 그리고 한사람이 누울 수 있는 요가 차지하면 남는 공간은 거의 없다. 공책 크기 만한 창으로는 한낮에도 볕이 들지 않아 불을 켜지 않으면 어두 침침하다. 김태환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산 2번지의 주민들은 대부분 공동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집안에 화장실이 없는 가구가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있는 집도 고장으로 사용할 수가 없어서, 공동화장실을 쓰는 실정이다. 이렇듯 산 2번지 주민들의 대부분은 화장실, 부엌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단칸방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가옥자체가 낡고 위험한 경우도 눈에 띈다. 김예덕(무직, 79) 할머니의 집은 지붕에서 물이 새고 있다. 이 때문에 천장이며 벽면까지 곰팡이가 쓸었으며, 천장 지붕이 약간 내려앉았다. 또 문이 틀어져서 맞지 않아 바람이 사정없이 들어온다. 이 때문에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집안 전체는 썰렁하기만 하다. 난방비가 부담스러워심하게 추운 날씨가 아니면 보일러를 켜지 않는다는 할머니는 "따스게 자면 난방비는 어떻게 대"느냐고 하신다.

하월곡동 산 2번지와 맞닿아 있는 77번지는 이미 재개발이 확정되었으며, 산 2번지의 경우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다. 철거가 예정되어 있는걸 대부분 알고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이후대책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주민들은 "그냥 이렇게 살다가 돈 맞춰서 싼 데로 가야지요"라는 막연한 대답을 한숨 섞어 할 뿐이다.

얼마 안되는 이주비를 받고 주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곧 철거가 공시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집 값을 현실적으로 지불할 수 있는 산 2번지로 이주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산 2번지 8통에서 오래 살았다는 통장 아저씨는 "77번지의 재개발로 산 2번지로 이사온 사람이 많다"라고 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은 사실상 입주요건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그나마도 일정정도의 돈이 있어야 입주할 수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체계를 통하여 일정정도 이주희망자를 수용하여야 하지만, 현재 민간건설회사가 초기단계부터 개입하는 이러한 사업은 공공성보다는 수익성을 우선시하고 있다. 실례로 현재 재개발중인 인근 하월곡 4동의 공공임대아파트의 경우 총 1,610세대 중 단지 288세대만이 임대 아파트로 건설되고 있으며, 그나마도 전용면적 9평이어서 부양가족이 많은 경우 입주하기가 꺼려지는 것이 현실이다. 77번지에서 임대아파트를 분양 받아 들어가려 했었던 한 주민의 경우 식구가 다섯이라 13평에 방 두칸 짜리로는 살기가 힘들어서 대신 이주비를 받고, 그 돈으로 집을 구할 수 있는 산 2번지로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금 소원은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는거야"라며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고는 싶었으나,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서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한다.

곽길자(무직, 32)씨의 경우에는 하월곡 4동에서 이주비를 받고 산 2번지로 이사를 와서 살고 있다. 여섯 식구가 모두 함께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을 만한 충분한 공간은 아니지만, 보증금 없이 매달 10만원 방세를 내고 있는 형편에 재개발이 된다면, 이주대책은 전혀 없다고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고정적이지 않은 남편의 노동을 통해 여섯 식구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형편으로 천만 원이 넘는 임대아파트 입주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고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사는 김민생(무직, 44)씨의 유일한 이주대책은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어 나가게 되면, 자신도 숙식이 해결되는 직장을 얻어 사는 것이다. 이산가족이 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행 재개발 사업은 주거환경개선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은 실질적으로 비용부담을 할 수 없는 어려운 이웃들을 무책임하게 내몰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주거의 문제는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해주어야 하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미명 하에 오히려 삶의 터전을 빼앗고 더 어려운 환경으로 내모는 일이 지금도 하월곡 3동에서 자행되고 있다.


② 가난과 병마를 한 몸에

취재활동을 한지 며칠 되지 않아 하월곡동 산2번지는 건강을 잃은 사람이 다른 지역보 다 훨씬 많은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가난하면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가 상대적 으로 힘들고, 건강을 잃게 되면 가난해지기 쉽다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김민생(44)씨는 5년 전 발생한 중풍으로 인해 신체의 왼쪽부분에 마비증세가 있다. 지 금은 제법 호전돼서 따뜻한 계절에는 조금씩 일을 하지만, 꼬박 4년 동안 아무 일도 못 했다. 그 사이 돈도 못 벌고, 치료비를 지출하느라 점점 생활은 조여들었다. 그러던 중 2년 전 기초생활보호 수급자가 되었다. 요즘도 기온이 내려가 혈액순환이 잘 안되는 늦가을부터 초봄까지는 아무 일도 못하고 방안에만 머문다.

김 씨의 집에는 화장실이 없다. 그래서 김 씨는 추운 겨울날 밤 50미터쯤 떨어진 공동화 장실까지 가는 길이 두렵기만 하다. 추운 날씨에 조금만 노출되어도 고혈압 때문에 쓰 러지게 되고, 방치되면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료급여 2종이기 때문에 단지 건강보험료만 안낼 뿐, 본인부담금은 건강보험 가입자와 동일하다. 때문에 기초 생활보호법에 따른 생계보호비 45만원에서 약 20%를 차지하는 5-10만원의 약값을 지불하고 나면 생활은 쪼들리기만 한다. 한 달에 한번씩 보건소에서 혈압을 재고 처방 을 받아야 하지만 성북구에 하나씩 있는 보건소와 보건 분소의 위치가 멀리 있어서 추 운 날씨에 외출하기 힘든 김 씨는 몇 달째 보건소에 가지 못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이 지역적으로 골고루 자리잡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태환(70)씨 역시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지만 의료급여 1종이라서 병원에 갈 때 구청에 서 제공하는 가정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 명의 가정도우미가 7개 동을 담 당하고 있어 제 때 병원에 가기란 어렵다. 몸이 불편해서 병원을 다니기 힘든 환자들에 게는 직접 찾아가서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방문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혼자 몸을 추스릴 수 없는 김 씨는 요양원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 으면 생명까지 위협받 기 때문이다. 허리디스크와 발목통증, 고혈압, 당뇨, 결핵 등으로 인해 누워있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는 김 씨는 식사를 준비하지 못해 3일을 굶은 적도 있다. 결국 작년에는 영양실조 판정까지 받았다. 하지만 기초생활 수급자인 김 씨는 민 간요양원의 높은 비용에 엄두를 못내고 있다. 공공요양원은 공급이 부족해서 신청을 하고 최소한 6개월을 기다려봐야 할 실정이다.

김예덕(79)할머니는 혼자 사는 독거노인으로 가끔 종이상자를 주우러 다니는데, 무릎 관절염이 있어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다. 물리치료가 필요하지만 "이런데 아프다고 죽는 거 아니니까 병원에 안가"라고 고개를 젓는다. 오랜 세월동안 '아프면 참는 수밖에 없다' 는 치료 아닌 치료방법에 익숙해진 것이다.

하월곡동 산2번지에는 알콜 중독 환자들이 특히 많았다. 알콜 중독은 가난과 실업, 질병 으로 인한 절망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찾아드는 건강악화와 가정불화는 가족해 체로 이어진다고 한다.
알콜 중독에 걸린 후 간경화로 입원한 경험이 있는 50대 남자는 아내와 자녀들과 모두 헤어져 80대 노모와 단 둘이 살아가고 있었다. 생계 능력이 없는 50대 아들이 80대 노 모의 날품팔이에 기대 살아가는 모습은 처연함 그 자체였다.

홍광현(12)군은 정신지체장애로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장애등록이 되어있지 않아 장애1■2급에 지급되는 장애수당을 못 받고 있었다. 장애등록을 하려면 장애진단서를 병원에서 발부 받아야 하는데, 기초생활수급자인 광현 군 가족은 '큰 돈 들 걱정'과 이후 불어날 진료비 걱정에 장애진단조차 엄두를 못 낸 것이다. 주변의 설득 끝에 광현 군은 장애를 안고 태어나자마자 받았어야 했을 진단을 12년이 지난 후에야 받을 수 있었다. 장애진단 검사비는 20여만 원이 나왔고, 독지가의 도움으로야 지불할 수 있었다. 장애 수당이라는 복지에 접근하기에도 가시밭길이 놓여 있는 것이다.

건강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람은 노동을 포함해 어떠한 활동도 하기 힘들다. 건강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월곡의 많은 사람들은 가난과 병마에 맞서 싸우고 있다.


③ 노동의 권리-죽도록 일해도 가난만 물려줄 뿐■

하월곡동 산2번지. 주민들의 삶은 궁색하고 비참하지만, 나름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일하고 또 일한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한 매일 매일의 노동이 결코 수월 하지는 않지만■.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둔 솔이 엄마는 얼마 전까지 하월곡동의 한 영세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결혼 전 한복재단 기술을 익혔던 그는 다행히 한 달에 100만원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기술이 없는 사람들은 하루 10시간씩 먼지 자욱한 공장 에서 일하고도 고작 50만원 남짓을 월급으로 받는다고 한다. 주말 근무나 야근도 예삿 일이지만 그렇다고 버는 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수당만 준다면 늦은 시간까지 라도 힘든 줄 모르고 일할 수 있지만, 많은 공장들이 야근수당 없이 자정 가까운 시간 까지 일을 시킨다"고 솔이 엄마는 말한다.

"잡부는 산재보상도 없어"

솔이 아빠는, 하월곡동의 몸 성한 남자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건설현장을 일터로 삼는다. 원래는 세공기술자였지만 12시간씩 맞교대로 일해야 하는 열악한 작업환경을 피해 몇 년 전부터 '그나마 나은' 건설노동을 하게 됐다. 하지만 건설일용노동자로서의 삶 역시 고되긴 매일반이다. 휴일이나 월차휴가는 언감생심, 일감이 떨어질 때까지 열심히 일해 보지만, 아무리 건물을 올리고 또 올려봐도 솔이 아빠 자신의 집은 아직 어디에도 없다.

솔이 아빠에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산업재해다. 대부분의 회사는 산재보험에 가입 되어 있지 않고, 산재를 당한 경우에도 기술자가 아닌 잡부의 경우는 어영부영 넘어 가는 때가 많다. "회사는 산재처리를 거의 해주지 않는데, 산재 사건이 있으면 공사를 하청 받을 때 그만큼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보통 한 달에 한 두 명은 꼭 다치지만, 잡부의 경우는 다쳐도 약간의 병원비만 보상받는다." 또 다른 건설노동자 장춘기(37) 씨의 말이다.

여섯 식구의 한달, 60만원으로 버텨

홍규해(37)씨네 여섯 식구는 요즈음 최저생계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0만원으로 한 달을 버텨낸다. 홍 씨가 2년 전부터 해오고 있는 건물 방수작업의 특성상 날씨가 추워지면 일감이 뚝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기술을 배워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지만 "배운 게 짧고 나이가 많아서 시켜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 자신 없어 한다.

홍 씨의 우려는 현실적이다. 한 사회복지사는 "직업훈련을 받는 것 자체가 어렵고, 설사 훈련을 마친다 하더라도 질이 낮은 노동력이라고 회사에서 기피할 것이 뻔하다" 고 말한다.

노동권의 박탈과 절대적 빈곤은 어깨를 걸고 대를 이어 찾아든다. 전라도 빈농의 아 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서울에 온 김 씨(37).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 그는 여러 차례 안정된 직장을 찾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무학에, 변변한 기술도 없는 터라 매번 실패하기 일쑤였다.

그는 5년 전 뜻하지 않은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웠고, 웬만큼 거동이 가능해진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기초생활보장비 45만원으로 근근히 살아가고는 있지 만 "이 돈으로 월세, 난방비, 세금, 약값 등을 내고 나면 담배 한 갑 사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아들이다. 아들만큼은 고등학교라도 졸업해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지만, 벌써 몇 달째 학교에 나가질 않는다는 아들의 미래도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모든 사람은 노동의 권리, 자유로운 직업 선택권,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 및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지닌다"고 세계인권선언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은 하월곡동 산2번지의 현실과 충돌하면서 공허한 메아리로 남는다. 가난의 대 물림 속에서,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산2번지 주민들에게 '노동의 권리' 운운하는 말은 그저 사치일 뿐이다


④ 사회보장권

최저생계에도 못 미치는 빈곤

지난해 12월 하월곡동 산2번지 언덕 꼭대기 구멍가게에서 만난 통장 부부는 자신들이 사는 얘기를 들려주는 대신,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골목으로 나섰다. 그들이 발걸음을 멈춘 집 앞에서 누구보다 힘들게 달동네의 겨울을 나고 있는 한 가족을 만났다. 최저생계를 이어가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감당하고 있는 빈곤은 곧 생존권의 박탈이었다.

어느새 곽길자 씨 집 앞에 통장부부와 동네 할아버지, 세 살 박이 막내딸을 안은 곽 씨가 좁은 골목을 꽉 메운 채 둘러섰다. 그들이 쏟아내는 말에서 곽 씨네 여섯 식구의 힘겨운 겨우살이를 짐작한다. 곽 씨는 "몇 달 전에 30만원씩 지급되던 생계급여가 9만8천 원으로 깎이고 나서 더 힘들어졌다"면서 "겨울이라 남편은 일을 못하는 날이 더 많은데"라고 속상한 마음을 토로한다.

곽 씨네 사정을 잘 안다는 동네 할아버지는 "이 집 애 아빠가 일 나가는 날은 한 달에 보름도 못 된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많아야 70만원이고 적으면 50만원도 안 되는데, 생계보조금을 10만원 정도밖에 안 주면 60-80만원으로 여섯 식구가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며 여섯 식구의 고된 삶을 전하려 애쓴다.

곽 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이다. 수급권을 가진 모든 사람은 국가로부터 최저생계를 보장받아야 하지만, 곽 씨 식구가 한 달을 나는 60-80만원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3년 6인 가구 최저생계비 130여 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곽 씨는 6인 가구 최저생계비 130여 만원에서 교육비, 의료비 등으로 공제되는 15만원 정도와 노동에 의한 가구소득 50-70여 만원을 빼고, 나머지 45-65만원 정도를 지급받아야 했지만, 곽 씨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고작 10만원도 안 되는 것이다.

권리 되찾는 방법도 몰라

문제는 동사무소 사회복지사가 책정한 곽 씨 남편의 일일근로소득에 있었다. 동사무소 기록에 책정된 그의 일일근로소득은 100만원이 넘었다. 방수공사를 주로 하는 건설일용노동자로서 겨울에는 채 보름도 일하지 못하는 사정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과도하게 책정된 일일근로소득에 대해, 이 지역 사회복지사는 "일하는 사실이 확인된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일일근로소득을 책정하는데, 주로 노동사무소나 직업소개소를 통해 파악된 비숙련 노동자의 일당 수준에 기초한다"라면서 "그들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며칠을 일하고 얼마를 받는지 확인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실질 근로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사회복지사 한 사람이 담당하는 가구가 터무니없이 많은 현실이 이런 문제를 낳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몇 달 전 철거로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기 전
까지 무려 350가구를 담당해 왔다.

이처럼 불합리한 행정조치에 의해 최저생계를 보장받을 권리를 박탈당할 경우, 해당자가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을 통해 구제를 받을 길은 있다. 그러나 곽 씨를 비롯해 상당수의 수급대상자들은 박탈된 권리를 구제 받는 방법조차 모르고 있다.

[해설] 최저생계비 현실화 등 시급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액 설정의 기준은 보건복지부가 제시하는 최저생계비다. 그러나 최저생계비 산정기준 자체가 불합리해, 대부분의 수급권자들은 최저생계 유지에 턱없이 모자란 급여를 지급받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현행 최저생계비 산정은 중소도시지역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물가나 주거비가 높은 대도시 지역의 빈곤층은 수급권자에서 제외되거나 사실상 최저생계 유지가 불가능한 급여를 받고 있다.

장애, 아동, 노인이 있는 가정의 경우는 추가지출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도 생계급여에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1급 장애인의 한달 추가지출은 20만원이지만 장애수당은 7만원 정도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수급자 선정기준의 부당성, 수급대상자의 누락은 일선의 전담공무원들도 지적하고 있는 문제다. 2002년 '국민기초생활보장 평가단'의 조사에 의하면, 수급신청 탈락가구의 77.3%가 소득면에서 최저생계비 이하였으며, 이중 23.9%가 최저생계비의 절반미만의 소득인 것으로 판명됐다. 특히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탈락한 경우가 45.3%에 달한다.

부양의무자에게 소득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재산만 일부 있다면 부양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사망한 자녀의 배우자(며느리, 사위), 손자녀, 증손자도 부양의무자로 보는 것은 이러한 기준의 비현실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현재 기초생활보장법은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 기피하는 경우에는 수급자로 선정하고, 추후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비를 징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자식들에게 해를 끼칠까봐 수급권을 포기하는 노인들도 다수 존재한다.

결국, 최저생계비의 현실화와 수급권자 선정기준의 완화 등을 비롯한 사회보장체계의 전반적인 정비가 시급한 실정이다.

⑤ 교육권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방치된 아이들

'배우지 못해서■', '학력이 짧아서■' 하월곡동 산2번지의 두 아버지가 한숨쉬며 뱉은 말이다. 달동네로 밀려와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처지가 모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이란다. 지금 하는 노동으로는 가족들과 최저생계조차 유지하기 힘들지만, '배운 게 없어서' 좀 더 조건이 좋은 일자리를 구할 희망은 일찌감치 버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자식들 앞에 놓인 미래가 자신과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자식의 학력을 결정하고, 학력이 경제■사회적 지위를 만드는 현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공교육 따라가기도 벅찬 아이들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득세하는 지금, 가난한 부모들의 불안대로 교육의 기회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

하월곡동에서 8년째 '밤골아이네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숙경 수녀는"대부분의 산동네 부모들은 보통 10만원이 넘는 학원에 아이들을 보낼 수 없는데, 지금의 교육현실에선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학교공부를 따라갈 수조차 없다"고 말한다. 달동네 아이들이 사교육뿐 아니라 공교육으로부터도 소외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또 "지금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같은 학교를 다녀 문제가 덜 하지만, 재개발이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 사교육에 의한 교육수준의 격차는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방은 빈곤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수업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모든 것은 공부방에 맡겨지고

빈곤지역에서 공부방이 하는 역할은 단순한 학습보조뿐이 아니다. 빈곤지역 아동들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은 단지 '학교공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숙경 수녀는 '빈곤이 낳는 가정해체, 가정불화 속에서 아이들이 방임■결식■학대■일탈■따돌림 등에 노출되고,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공간은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밥을 해결하고, 상실한 사회성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곳이다. 이제까지 국가는 그러한 역할을 민간 공부방에 떠넘겨왔다.

"공부방 법적 지원 절실"

빈곤 지역 아동을 위한 교육■문화공간을 제공해 왔음에도, 정작 공부방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제도는 없다. 결국 무허가 시설일 수밖에 없는 공부방들은 언제나 운영비 부족에 시달린다.

이러한 상황은 하월곡동 산2번지 아이들이 다니는 '밤골아이네 공부방'도 마찬가지다. 몇 평 안 되는 공간에 98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지원하지만 좁은 공간과 교사 부족으로 다 받을 수가 없어, 형편이 더 어려운 가정 순서로 아이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숙경 수녀는 "지역특성상 심리치료가 필요한 아이들도 많지만 운영비 부족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부방의 심각한 재정난과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공부방을 인가하는 법적 토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해 12월, 산2번지 꼭대기의 한 구석진 방에서 만난 고등학생 김모 군은 오래 전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단칸방을 찾았던 세 번 모두, 그는 낮에도 컴컴한 방에서 계속 잠만 잤다. 어머니의 가출, 아버지의 병과 실업, 그리고 가난 속에서 그는 학교와 사회로부터 점점 고립되고 있었다. 하지만, 김 군은 그 상태로 계속 방치될 뿐이었다.

<취재후기>

하월곡동 이야기■소개 못한 사연들

하월곡동 연재 기사를 끝낸 뒤, 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면의 한계로 소개되지 못했던 사연들, 취재과정에서 느낀 소회들을 다시 담아보았다. [편집자주]

■ 하월곡동 취재 방담회 ■

■사회 : 최은아
■참석 : 김명수, 박세진, 박유민, 정보근, 허혜영

"골목에서 무작정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얘기할 힘조차 없다'라는 할머님의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아요" 하월곡동 취재 기획부터 3개월이 흐른 지금까 지 취재기자들의 뇌리 속에는 만났던 주민들의 모습이 선하다.

■세진 : 문제의 사슬이 꼬여있으니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답이 나오지 않아요.
■유민 : 돈 때문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제약 당하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보근 :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사회권운동 하는 것이 배부른 소리 같았으나 하월곡동 취재를 하면서 여기서부터 사회권 운동이 출발하 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명수 : 사람들이 일을 안 해서, 개인이 부족해서, 노력하지 않아서 저렇 게 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이 시스템에서 개인이 똑똑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계속 들었습니다.

"연탄가스 가득찬 방의 아이들"

■명수 : 김 할아버지 옆집에 사는 할머니에게 50대 아들이 있었습니다. 할 머니가 너무 연로하셔서 당신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든데, 아들이 장독대에 서 떨어져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방에만 누워있는 것 외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죠. 계속 누워 있으니까 욕창에 걸리는데도 적당한 치료를 못 받고 있죠. 한 때 자살을 시도하려 했으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 적극적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혜영 : 보건소에서 한 달에 한번 씩 오는 데 회충약이랑 소화제 등을 놓 고 간다고 해요. 정작 필요한 약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죠. 앞으로 철거가 시작되면 이사를 해야 하는데 아들이 아프기 때문에 아무 곳에서도 이들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세진 : 광진이네 집 취재를 가면 골목 입구에서 동생 영희가 저희들을 마중 나와 손을 잡고 집을 보여주었습니다. 조그만 방■ 많은 슬픔이 고였 습니다.

■혜영 : 광진이네 집은 연탄가스를 배출하는 기계가 고장나 연탄가스가 방안으로 가득 퍼집니다. 광진이네 집 골목에 들어섰을 때부터 연탄가스 냄새가 나는데 그 연탄가스가 가득 찬 방안에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무서웠습니다. 아이들에게 위험 한 환경이 일상화된 셈이죠.

하루는 김밥집에 갔는데 영세공장의 노동자들이 밥을 먹으러 왔습니다. 식 사가 끝난 후 인터뷰를 하려고 하는데 '안된다. 바로 들어가야 된다'고 하 시는 거예요. 김밥집 아줌마가 '저사람들은 점심 15분 저녁 15분이야'라고 하더군요. 구두밑창을 몇 개 붙이느냐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기에 시간이 곧 돈이죠. 저임금이 사람을 기계처럼 만드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권리를 찾을 수 없다'는 말도 있지만, 하월곡동 사람 들에게 권리란 딴 세상 이야기와 같았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무 엇인지, 부당하다고 느낄 때 어떻게 이의를 제기하는지, 주민들에겐 정보가 없었다.

"주는 대로 받으라고 합니다"

■유민 : 광진이의 경우 장애수당을 받기 위해 검사비가 필요한데 검사비 가 무려 11만원 정도 나왔어요. 누구한테 11만원은 하루 술값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광진이에게는 큰 돈이죠.절차의 복잡함과 비용의 문제를 해결 하지 않고서 이런 제도가 있는데 왜 너희들이 못 찾아 먹느냐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명수 : '자포자기' '해도 안 된다'는 의식이 문제죠. 하지만 이런 의식이 생기기까지 많은 시련과 벽에 부딪쳐 좌절했던 경험들이 쌓였을 겁니다.

■세진 : 자기가 못 나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지, 국가에서 해줘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혜영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에서 탈락하는 등 뭔가 부당하다 고 느끼면 우선 구청에 가서 이의신청을 해야합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구청 직원들조차 이 절차를 모릅니다. 그동안 요구해온 사람들도 없었다고 해요.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 행정소송으로 갈 수 있는데 이 절차 역시 거의 모릅니다. 일선 공무원들은 국가에서 도와주는 거지 가난한 사 람들에게 무슨 권리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주는 대로 받아라'는 의식이 아 직까지 있죠.

■명수 : 사회권 영역의 법은 사람들의 삶에 별다른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법도 정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민 :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도 문제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너만 똑똑하고 의지가 있다면 장학금 받고 공부 잘 하면 지원해준다는 식 이죠. 실제로 가보면 어느 누구를 데려다 놓아도 그렇지 못한 환경이 많습 니다. 네가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사회적 의식구조 자체가 이 사회를 계층 화시킵니다. '너희들하고 우리는 다르다, 너희는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그 래서 하위계층으로 떨어진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이 정도 사는 것 이다'라고 생각하죠.

"무기력■외로움■상실감의 늪 ■ 자존을 회복하도록 해야 합니다"

■명수 : 하월곡동에 알콜중독자들이 많은데 이로 인해 가정폭력이 생기고 아내는 집을 나가죠. 또한 주거든 건강이든 물질적인 부족이 정신영역까지 옮아 삶을 뒤흔드는 것 같아요.

■유민 : 대부분 힘든 노동을 하는데 술로 잊을 수밖에 없으므로 알콜중독 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보근 : 인간은 모두 사람답게 대우를 받고 싶은데 아무리 기술이 있다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용직 노동자는 사회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것 은 아니죠. 일상적으로 겪는 상실감과 좌절감이 클 것 같습니다.

■혜영 : 자기 삶이 변화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없습니다. 의지도 없고 무기력하고 외로움, 고립감, 사회와의 단절감이 큽니다. 자활공동체 같은 곳이 마련되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재개발이 되면 서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디가면 일자리 를 구한다든지 아이들이 공부방을 이용한다든지 등 지금은 낮은 수준이나 마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데 재개발을 통해 그런 사회적 관계가 깨지는 거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정보접근도도 낮습니다. 자기권리를 알아야 침해당했 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데 경제■시간적인 여건 때문에 절차에 접근할 수 없죠. 인터넷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정작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인터넷의 접근으로부터 배제됩니다. 그들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어 야 합니다. 라디오, 텔레비전 등 그들에게 자기권리와 관련된 정보들을 쉽 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어야 합니다.

"빈곤은 불가피한 게 아닙니다"

■보근 : 예산이 문제입니다.

■혜영 : 국가가 의지는 있으나 돈이 없다면 지금처럼 그 이상의 주장을 못해야 하나요? 사실 그런 것을 강제해 내야 합니다. 강제할 수 있으려면 재정이 무엇에 우선적으로 쓰이는지 충분히 알고 그것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필수적인 생존권 확보에 우선적인 재정투여가 필요하고 국가의 의무로 강제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은아 : 정말 한정된 재정 내에서 예산을 집행해야하는 경우라면 가장 인 권을 침해받기 쉬운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배치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 들의 권리에 중심을 둔 예산편성과 집행이 이뤄져야하죠. 단지 돈이 없다 는 것으로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혜영 : 돈이 없어서 지금처럼 참으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를 인 권으로 보는 것이 아니죠.

■은아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인프라는 그들의 몫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중증 장애인의 접근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계단 을 이용하기가 어려운 노인■임산부 등이 그 시설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연대성' 이라는 가치는 어떤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보다는 공동체의 삶의 질을 같이 향상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혜영 : 권리를 침해받기 쉬운 사람들이 정치■사회적으로 의사결정구조 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접 당사자들이 스스로의 문제에 참여해서 해결해나가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인권운동과 지역운동을 하는 사 람들은 주민들이 자기의 구체적인 문제를 권리로 이해하고 해결해 가는 프 로그램을 만들어 참여의 공간을 넓혀야 합니다.

에필로그

기자들은 처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 주민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고 한다. 그 삶을 듣는 것 자체가 개입인데 과연 취재 이후 무책임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는 거다. 그러나 막상 주민 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마음을 쉽게 열어주고, 자신들의 삶을 들려주며, 심 지어 격려해주는 말을 했을 때, 닫혀 있었던 마음이 열렸다고 한다.

"주민들은 인권운동 하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뭔가 간접적으로 일을 할거다 라는 믿음으로 우리를 지켜봐 주 었습니다."

연재를 마친 후 기자들은 자료집 만들기에 열심이다. 취재하면서 들었던 고민들, 기사를 쓰면서 참고했던 글들을 모아 하월곡동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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