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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이 한번 출렁거리면 그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지난 주에 있었던 모임에서 불편한 마음을 안고 돌아온 후
일주일 동안 이런저런 상념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내가 지금 서있는 이 위치가 얼마나 허약한지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앞으로의 내 삶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이런 생각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상념들과 싸우지 않고 차분히 바라보려고 노력도 하고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생각도 바꿔보고
차분한 음악과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비워보려고도 해보는 등
이런저런 노력들을 하면서 상념이 가라앉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마음 속 상념들을 바라보며 조금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어느 쪽방촌 지원단체에서 달력을 판매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 자신이 쪽방촌에서 살아가는 분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래서 그곳에 조그만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제 마음의 고향은 역시나 세상 밑바닥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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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포근한 날씨에 미세먼지도 없는 날
주변 텃밭을 둘러봤습니다.
이곳저곳에 잡초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는데
특히 마늘밭의 잡초들이 심각했습니다.
잡초가 너무 무성해서 마늘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더군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마늘밭으로 향했습니다.
겨울 잡초는 뿌리가 단단한 반면
마늘은 아직 뿌리가 단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잡초를 뽑을 때 조심해서 뽑아야 합니다.
조그만 멀칭 비닐 사이로 마늘과 잡초가 엉켜있어서
잡초만 골라서 뽑아내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일입니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가끔 마늘도 함께 뽑혀서 나오는 경우에는
마늘을 다시 조심스럽게 묻어줘야 합니다.
바닥에 무릎을 대고 기어가면서
한 시간 정도 잡초를 뽑았더니
몸도 개운해지고 밭도 깔끔해져서 기분이 좋더군요.
무엇보다 더 좋았던 것은
잡초를 뽑아내는 동안
머릿속에 가득했던 무거운 상념들이 조용히 가라앉았다는 점입니다.
추워서 움츠러드는 겨울에도
잡초와 상념들은 쉼 없이 올라오고 있으니
틈틈이 뽑아내면서 텃밭과 마음을 정리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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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저는 돈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고, 세상에서 먹어주는 명성도 없고, 특별한 재능도 없고, 나이 사십을 넘겨서도 부모님에게 용돈을 타서 쓰는 한심한 노총각입니다. 한마디로 허접한 인간이죠. 인터넷도 안 되는 집에는 15년 정도는 된 낡은 노트북이 하나 있는데, 저한테는 tv, 라디오와 함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이 낡은 도구를 갖고, 자판을 빨리 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을 사용해서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같이 허접한 사람도 진행할 수 있는 라디오를 생각해봤고, 오늘 첫 방송을 시도해봅니다.
2011년 12월 16일 시작된 읽는 라디오가 열네 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십사 년이 지났더니
사십대 노총각은 예순을 바라보는 중늙은이가 됐고
제게 용돈을 주시던 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돈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고, 세상에서 먹어주는 명성도 없고, 특별한 재능도 없는” 제 처지는 여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오늘도 하루를 그냥 버틴 사람들...
술로 밤을 견디는 사람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사람들...
답답함으로 꽉 찬 가슴에 다시 답답함을 구겨 넣는 사람들...
이런 사람이 한 분이라도 오셔서 제 손을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첫 방송을 마치며 이렇게 얘기했었습니다.
십사 년이 지난 지금
두 세 분 정도가 가끔 찾아오셔서 온기를 전해주실 뿐
찾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세월을 이어가다보니
‘이 방송에 찾아와서 제 손을 잡아주길 바랬던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제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스물두 살의 전태일이 최후의 결단을 결심하고 나서
“마음의 고향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던 것처럼
열네 살의 읽는 라디오도
“오늘도 하루를 그냥 버틴 사람들, 술로 밤을 견디는 사람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사람들, 답답함으로 꽉 찬 가슴에 다시 답답함을 구겨 넣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그것이 읽는 라디오를 진행하는 이유니까요.
(꽃다지의 ‘창살 아래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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