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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민섭씨가 쓴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김민섭씨는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졌다고 하더군요.
생애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가려고 비행기표를 끊어뒀는데
출발하려던 날 아들의 수술이 잡혀서 여행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비행기표를 자신과 이름이 같은 또 다른 김민섭씨에게 양도하려고
‘김민섭씨를 찾습니다’라고 sns에 글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 글에 호응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또 다른 김민섭씨를 찾아 비행기표를 양도하려하자
또 다른 사람들이 여행에 필요한 지원들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여행을 마친 또 다른 김민섭씨는
그 아름다운 마음을 가슴에 안고 선한 영향력을 주위에 나눠주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경험이 자꾸 떠오르더군요.
제가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서 좋은 책이 있으면 주위에 나눠주면서 그 밝은 기운이 전해지길 바라곤 했습니다.
20대 때는 “제가 드리는 이 책이 다른 이들에게 돌고 돌아 다시 저에게 전해지는 꿈을 꿉니다”라는 메시지를 적어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나눠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책들은 제 손을 떠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30대 때는 “삶과 투쟁을 함께 하는 동지들과 좋은 책들을 같이 나눠 읽자”는 생각에 제가 읽은 책들을 사무실 책장에 꽂아두곤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부터 사무실 책장에 꽂아두었던 책들이 사라져서 누군가의 소유가 되어 버리더군요.
40대 때는 “세상에서 버림 받았지만, 나에게 있는 유일한 자산인 책들을 나눠주며 다시 세상과 소통해보자”는 생각에 수 백 권의 책들을 일일이 우편 발송하며 전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줬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는데, 나중에 책이 다 떨어져서 “구속돼 있는 분들에게 책을 보내드리고 싶은데 도와주실 분 있을까요?”라고 글을 올렸더니 찬바람만 쌩쌩 불어왔었습니다.
책만이 아닙니다.
노동운동을 할 때, 작은 사업장의 해고자 두 분이 힘들게 복직투쟁을 하고 있기에 곁에서 마음을 다해서 이것저것 도움을 줬었습니다.
몇 달 동안의 노력이 점점 불어나서 그 투쟁은 지역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고, 결국 그 분들은 복직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복직한 그 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든 인연을 정리해버리시더군요.
농사를 지으면서는 작은 것이라도 주위 사람들과 나누면서 지내려고 했습니다.
마을에서 인사하며 지내는 사람들과도 나눠 먹고, 예전 인연이 있던 이들에게도 택배를 보내고, 가까운 친척들에게도 보내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아 항암치료를 시작했고, 막막한 마음에 주위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역시나...
어릴 적에 봤던 tv 만화 시리즈 중에 따뜻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한 노인이 떠돌아다니다가 어떤 마을에서 생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는
그 마을을 떠나기 전에 작은 꽃씨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렇게 그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 행복하게 살게 됐다는 식의 내용이었습니다.
그 만화 시리즈를 보면서 “내가 어른이 돼서도 저렇게 좋은 마음씨를 나누면서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돼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왔죠.
하지만 저의 노력은 번번이 좌절을 맛봐야 했습니다.
김민섭씨와 저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2
감귤을 수확할 때마다 동생네 시댁에도 조금 보내는데
그때마다 고맙다며 생선이니 고기니 하는 것을 답례로 보내주십니다.
수확할 때마다 일부러 내려와서 도와주는 동생이 고마워서
동생에게 주는 것에 더 얹어서 시댁에도 조금 드렸던 건데
뜻밖의 선물이 날아들어서 고맙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수확한 감귤을 보내는 것은 기본이고
텃밭에서 나는 채소들을 동생에게 보낼 때도 조금 더 여유 있게 보내곤 합니다.
그렇게 주고받는 것이 몇 년 동안 이어지다보니
제 마음 속에 은근한 기대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작년에는 손수 만든 약밥도 같이 보내주셨는데, 올해는 생선 몇 마리만 보내셨네...”
“감귤을 보낼 때는 답례를 하시는데, 다른 채소들을 보낼 때는 답례가 없네...”
“매년 감귤을 보내도 누구는 답례를 하고, 누구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끝내기도 하고...”
“감귤을 받고 답례는 고사하고 고맙다는 한마디조차 없는 사람도 있는데...”
마음 속에 바라는 것이 생기고부터는 은근히 사람들을 저울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이 점점 탁해져버리더군요.
3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아가려고 했는데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도 서운하고
그 마음에 감사를 전해도 서운하다면
교감이나 답례가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내 마음 속에 뭔가를 바라는 것이 진득하니 자리 잡고 있어서
이래도 서운하고 저래도 서운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런 행동을 보이면 사람들이 그 뜻을 알고 같이 나서줄 거야.”
“나의 선한 마음이 사람들에게 파고들어 널리널리 펴져갈 거야.”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듯이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그들이 나를 도와주겠지.”
“이런 선행들이 쌓이고 쌓여 내 삶은 여유롭고 풍요로워질 거야.”
“나는 아직도 이렇게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제 마음 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생각들이 보이더군요.
결국 이 욕심들이 제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있었던 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을 버리고 여유롭게 살아가라’고 했는데...
참 어렵네요.
(범능스님의 ‘무소의 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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