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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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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접한 삶 1회 - 그래 제길 나 이렇게 ...(4)
- 06/07
1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참으로 실감납니다. 단테라는 사람이 자신이 쓴 <신곡>이라는 책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답니다. [누가 뭐라 하든 제 갈 길을 가라.]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자신이 좋아서 해야만 했던 일의 결과에 대하여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가 참으로 힘든 일임을 저도 매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뒤돌아보지 말고 훌훌 털고 제 갈 길을 가는 수행을 끝없이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사랑을 부정하고 넘어서는 부처님이나 시시포스처럼 말이지요.^^ 성민님의 도반이 되어 저도 열심히 제 갈 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서로 서로의 응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곰탱이님
그 외진 곳에서 홀로 독백하듯이 방송을 진행하면 많이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2년 정도 그곳에서 방송을 진행하면서 읽는 라디오와 성민씨가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서기를 바랬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바램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곳이 얼마나 깊고 포근한 곳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외진 곳에서의 속삭임은 제 마음의 소리를 듣게 만들어줬고, 가끔씩 찾아와 따뜻한 메모를 남겨주셨던 분들은 사람의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우쳐주셨고, 세상에서 들려왔던 이런저런 얘기들은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읽는 라디오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성민씨 홀로 10년 넘게 진행하면서도 아직도 외지고 소박한 곳으로 남아있지만, 그곳에는 그만큼 깊이 있고 따뜻하고 넓은 세상이 있었습니다.
성민씨의 선함은 그렇게 시나브로 연결되고 있었던 겁니다.
그 연결의 신호가 너무 미약하고 초라해서 잘 들리지 않을지 몰라도 가만히 눈을 감으면 가벼운 맥박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속에 사랑이의 선한 눈동자로 함께 타고 흐르겠죠.
- 들풀님
지난 방송을 보시고 곰탱이님과 들풀님이 사연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사연을 읽으면서 제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지더군요.
생면부지의 분이 저를 응원해주시고
오랜 벗이 함께 마음을 나눠주시니
이것이 이 방송을 진행하는 매력인 것 같습니다.
저의 우주는 작고 소박하지만
그곳에서 만들어지고 연결되는 삶의 온기는 깊고 풍부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앞으로도 그 작고 소박한 우주를 잘 보존해가야겠네요.
2
“이것 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어느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 씩씩하게 노력하고 있는 친구에게
자신의 갖고 있던 소중한 것을 건네면서 했던 말입니다.
중요한 타이밍에 특별히 폼 잡으면서 했던 말도 아니고
그냥 스치듯 지나가며 했던 짧은 대사였는데
이 말이 제 가슴을 건드리더군요.
‘누군가의 어려움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진심을 담아 그를 격려해줄 수 있는 마음’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제 가슴 속에서 사려져버렸던 겁니다.
삶의 풍파를 견디며 상처와 딱지들이 켜켜이 쌓여서 감정이 무뎌진 건지
세상에서 한 발 떨어져 지내다보니 인간사에 초연해져버려서 그런 건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야가 점점 좁아져버려서 그런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마음이 없어진 자리가 갑자기 허하게 느껴졌습니다.
3
‘세계의 주인’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밝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소녀와 서로를 위해주며 따뜻하게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였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그랬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소녀와 가족에게 조금씩 결핍된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살짝 살짝 불편해하는 점도 보였습니다.
큰 사건이나 반전 없이 그렇게 평범한 소녀와 가족의 일상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작은 다툼이 있었고, 그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소녀의 끔찍했던 아픔이 드러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주변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소녀를 대하며 거리를 뒀고, 이야기는 조금씩 불편해졌습니다.
그렇게 주변사람들과 불편해지는 과정도 담담히 받아들이며 소녀와 가족은 밝고 따뜻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상처를 안고 세상에서 꿋꿋이 살아내는 방식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그 상처를 후벼 파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감싸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격하게 공감하지는 않아도 나름 잔잔하게 울리는 감정을 느끼면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마지막 엔딩장면이 저를 울컥하게 만들더군요.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만이 아니라 이 세상 곳곳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감싸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면서 밝고 따뜻하게 살아가자”라며 제 손도 잡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감귤나무에 약을 치면서 이 영화를 곱씹고 또 곱씹었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상처투성이가 된 제 마음을 살포시 감싸주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제 안의 성민이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더군요.
“오래간만에 좋은 영화를 봤나봐? 그렇게 문화생활도 즐기면서 사는 거 좋지.
그런데 말야, 사람들은 왜 자기가 받은 상처만 얘기하고 자기가 준 상처는 지워버릴까?
니가 살아오면서 수없이 반복했던 성폭력은 이제 잊어도 되는 거야?
그 피해자들이 너의 이 글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영화에서 니가 감정이입해야 하는 인물은 상처를 안고도 꿋꿋이 살아가는 그 소녀가 아니라 몹쓸 짓을 하고 교도소에 가서도 소녀 곁을 어정거리는 그 삼촌이야.”
제 안의 성민이가 하는 얘기를 들으며
저는 한마디도 못한 채
감귤나무에 약만 뿌렸습니다.
(자우림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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