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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무원 노동자의 반성문

어느 공무원 노동자의 반성문  

11월 14일...
공직생활 10여 년 동안 오늘같이 출근길이 고통스러운 적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따라 나서며 안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마저 부담스럽다.
평소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이면 술렁거렸던 구청 앞도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참 멀리로 달려왔지”
순간 그동안 공직생활을 뒤돌아보며 한숨 같은 독백이 흘러 나왔다.

공무원노조의 총파업 D-1.
나는 오늘도 예전처럼 처자식이 있다는 변명을 내세워 책상 앞에 앉았다.
“처자식 있는 것이 벼슬도 아닌데”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다.
동료들도 삼삼오오 모여 총파업투쟁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노조원들과 노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평소 나와 친하게 지냈던 동료도 총파업 투쟁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고 빈 책상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 친구의 용기가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나서지 않은 내 자신이 다행이라며 위안하고 있었다.
구청 분위기가 술렁여서 인지 아니면 내 자신이 심난해서 인지 오전 내내 좌불안석 이었다.

“김 선배 안 올라 가셨어요”
깔깔한 입을 달래며 점심을 먹으려는 찰라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감사과 직원이 정색을 하며 물어 본다.
“왜?”
순간 그의 질문에 불쾌감을 느낀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총파업에 참가한 OOO선배와 언제나 함께 다녀서 김선배도 함께 올라 간줄 알았죠”
“올라가면 안되나?”
가뜩이나 불편 나의 심기를 건드려 더 이상 밥을 먹으면 체 할 것만 같았다.
“왜 벌써 식사 다하셨어요. 김선배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게 아닌데...”
변명을 늘어놓는 그를 뒤로 한 채 휑하니 식당을 나와 버렸다.

거리의 차가운 바람은 어느새 속옷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추울텐데...”
서울로 올라간 친구가 걱정이 됐다.
“정부에선 벌써부터 총파업 참가자 전원을 중징계 한다며 야단들인데...”
그러나 어제 밤부터 내 마음 한편엔 죄책감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내가 이곳으로 발령을 받은 이후 7년 동안 형제처럼 동고동락하던 친구가 총파업에 동참해야 한다며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 앞에 순간순간 나의 추한 모습이 투영되었다.

책상을 지키고 앉아있던 오후 내내 나는 그저께 밤일을 생각했다.
“니가 나선다고 말단 공무원이 하루 아침에 기피고 살겄나”
동네 맥주 집에서 설전은 나의 질문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쓰잘떼 없는 일에 마음 두지 말고 적당히 몇일만 참으면 되는데 뭐할라꼬 니가 나서나”
“니 집사람이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나. 어제 밤에 애 엄마한테 전화해서 너 짤리면 어떻게 하냐고 울더란다”
“이 문둥이 자슥아 쬐만 참으면 된다. 니가 독립투사도 아니고...”

술이 건하하게 취했을까. 나의 거침없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그 친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슥아 니가 공무원이가. 니가 진짜 국민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생각든 적 있나. 공무원생활 15년 동안 니가 한게 뭔데...”
술잔을 비우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오히려 나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했다.
“나는 처자식 걱정 안 되는 줄 아나. 난 니같은 인간이 제일 경멸 스럽데이. 동료들 눈치 때문에 공무원노조에 이름만 걸어 놓고 적당히 윗사람들 눈치나 살피는 너같은 공무원 때문에 공직개혁도 안되고 국민들로부터 공무원하면 비리의 온상인양 손가락질 당하는 것 아니가”

소주를 어지간히 마셨는데도 그의 눈은 오히려 반짝이고 있었다.
“난 내일 올라 간데이. 처자식을 위해서라도 올라 간데이. 썩어빠진 공직사회 바꾸는데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서 올라 간데이. 너 같이 비겁한 공무원들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올라 간데이”

내 자신이 창피해 나는 탁자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소주잔을 들고 있던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떨림은 공무원노조 총파업을 앞둔 그의 열정과 정부와 싸워야 한다는 두려움이 교차된 심정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

“아이고 피곤하다. 이제 퇴근 합시다”
과장의 목소리가 나의 생각을 깨웠다.
난 7년만에 처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과장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공무원노조의 총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최근 일주일 동안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과장의 모습을 볼 때 마다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기회주의자...”
사무실을 빠져 나가는 과장의 뒷통수를 보며 입속으로 그를 비난해 본다.

순간 또 다시 내 마음 한편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죄책감이 꿈틀거렸다.
“과장만 기회주의자 인가. 나도 기회주의자 아닌가. 친구가 어떻게 되던, 공무원노조가 파업을 하던 하루 종일 책상을 지키고 있었던 나야 말로 기회주의자 아닌가. 눈치 살피며 공무원노조 조끼를 입고 책상을 지켰던 나야말로 기회주의자이다”
갑자기 목이 탔다. 냉수라도 벌컥벌컥 들이 키고 싶었다.

“식사안하면 과일 깎아 드려요”
아내의 물음이 귓전에서 윙윙거렸다.
“전국공무원노조가 사상 첫 불법 파업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정부는 파업 참가자를 대상으로 곧바로 직위해제 절차를 밟은 뒤 3~4일 내에 지방자치단체별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중징계를 요청할 방침입니다...”
9시 뉴스를 보는 순간 화면 속에서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연세대 앞을 달려가고 있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았다. 그 친구는 무엇을 위해 낯선 서울의 밤길을 내달리고 있었을까. 어깨에 조그만 가방을 들러 매고 조합원들과 함께 연세대학교를 내닫는 모습을 보며 따뜻한 안방에서 텔fp비전을 보고 있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잠깐이지만 친구의 얼굴엔 근심보다 확신에 찬 의지로 빛이 났다. 아니 마치 연세대학교가 해방구인 듯이 기쁨으로 가득한 얼굴 이었다.

“여보 나도 밤 열차타고 서울에 가야겠어”
나의 말에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왜요. 당신이 왜요”
아내는 애써 내말의 의미를 피하려 했다.
“아니.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서울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료들이 십자가를 매고 있어. 이 추운날 서울에선 동료들이 상경투쟁을 하며 길거리를 헤메고 있어. 똑같이 월급을 받고 똑같은 일을 하는데 내 약한 의지 때문에 그들의 가슴에 한과 불신이라는 대못을 박아 버릴 순 없어... 두툼한 점퍼랑 모자 좀 챙겨 줘”
아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녀올께”
나는 아내의 눈물을 애써 못 본 채 하며 역전으로 향했다.

“어! 김선배님”
노조 지부에서 나를 따르던 후배도 대합실에 나와 있었다.
“자네는 웬일이야”
“아버님이 어제 대장암 수술을 하셔서 상경 투쟁을 못했어요. 뒤 늦게라도 동참하려고 부랴부랴 나왔는데 선배님은 웬일 이세여. 이 야심한 밤중에”
“나... 공직생활이 이제 지겨워서 한번 짤려 보려구”

열차가 깊은 어둠을 가르며 힘차게 서울을 향해 내 닫고 있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어둠을 가르며 내닫는 열차와 같이 14만 공무원노동자가 하나 되어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어둠을 뚫고 전진해 나간다면 반드시 승리하리라”
가장 무서운 적은 주저하는 것이다. 모든 싸움은 자기 자신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뒤로 물러나며 핑게를 대는 것은 영원히 패자가 되는 것이자 굴종의 길에 자신을 던지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결단과 행동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 찬바람을 뚫고 정부의 억압에 맞서 가열찬 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여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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