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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① 집 없는 '시설' 사람들 정석 [편집자주]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강력한 대응을 부르짖는 것을 비웃듯 집값은 끊임없이 오르고 개발되는 도시마다 사람들이 몰리고 돈이 오간다. 땅과 집을 가장 확실한 재산으로 여기는 인식과 그것의 바탕이 되는 사회적 관계가 바뀌지 않는 이상, 부동산 투기 대응책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주거는 권리다. 경제적 능력에 따른 차별 없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한 적절한 주거가 보장되어야 한다. <인권하루소식>은 인권운동사랑방 '신자유주의와 인권팀'과 함께 주거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필요'에서 출발하는 주거권의 실현을 모색하고 주거공공성에 대한 고민을 제기하고자 한다. 최근 사회복지시설의 문제가 잇달아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방송뉴스와 신문기사에서는 앞 다투어 '폭행', '감금', '협박', '성폭력', '비인간적 시설 조건' 등을 선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인권'유린'이라는 말로 정리한다. 여기서 인권유린이라는 말은 대체로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설생활자들이 침해받은 것은 '신체의 자유'만이 아니다. 개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 자유권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리, 경제적 권리, 사회적 권리, 문화적 권리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시설생활자들을 일컫는 말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하는데, 오갈 데 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오갈 데' 이다. 즉 오래 전부터 시설생활자들은 주거권을 박탈당해왔다. 가난과 편견이 시설을 '선택'하게 하다 조남선(67세)씨의 직접적 시설입소 배경은 '알콜 중독' 이다. 목수 일을 하던 조씨는 무릎이상으로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임대아파트 경비 일을 하게 되었다. 월급 60만원으로 부인과 아들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더욱 더 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결국 부인에 의해 양평 성실정양원이라는 시설에 입소하게 된다. 서류상 조 씨를 부양할 가족이 있고,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최저생계비 기준으로만 본다면 조씨는 가난하지 않다. 그러나 질병으로 인한 위기상황에서 가난한 개인은 타자의 선택 앞에 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김난영(34세, 가명)씨의 경우 어릴 적, "마약이 해로운 건지 좋은 건지 판단할 수 없었던 시절 어떤 아저씨로부터 마약을 받아 복용"한 경험 이후 조울증을 겪게 되었고,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이, 한 식당아주머니의 조언"을 들은 부모가 이씨를 기도원에 입소시켰다. 질병이나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개인을 시설에 가둔 것이다. '고립'이 시작되다 "(인제 심신수양원은) 산골짜기 막다른 곳이라서 거기선 도망 못 가요…그러니 보호자가 데려가지 않으면 죽어 나가는 거예요." 조씨는 인제 심신수양원에서의 시설경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2005년 1월 현재 보건복지부의 통계를 보면 법인 및 개인이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은 1,213개소에 88,116명이 생활하고 있고, 미신고 된 시설이 1,209개소에 21,896명이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시설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이들 시설은 우리 주위에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공간적 고립은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 "부모님이나 친지들이 방문하여 아이의 상태를 물으면서 행여나 호전되었을 경우 데려가려고 하면, 상태가 매우 나쁘다고 이야기해요. 그렇게 되면 친지들은 별 수 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대화의 통로가 완벽히 차단됩니다." 10여 년 간이나 시설생활을 했던 김씨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여러 곳을 전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시설생활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또 권리구제의 대책이 전무한 상황에서, 시설 내 규칙은 관리자들 중심의 규율과 통제로 작용하기 쉽다. 김씨와 조씨가 생활했던 시설의 경우 시설비리와 인권침해 문제가 폭로된 경우이다. 하지만 많은 다른 시설생활자들 역시 자의든, 타의든 공간적, 집단적, 통제적 조건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시립병원에 고관절 수술을 끝낸 조씨에게 시설이라는 공간은, "잠자는 거, 아침에 시간 맞춰 일어나는 거, 밖에 못 나가는 거, 돈 한 푼 없으니까 담배도 못 피우는 거"로 대표되는 "모든 것에 적응을 못"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시설에서 나온 후 가능한 선택은 무엇인가? 인권단체들이 시설문제를 폭로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알게 된 김씨의 경우, 현재는 약을 복용하며 일상생활을 잘 하고 있다. 그러나 '답답한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 역시 만만찮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도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김씨가 처음 선택한 곳은 고시원이다. "답답하고 좁고, 화장실과 샤워실 등 기본적인 일을 해결하는 공간조차 너무 좁고, 화장실도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어요 ... 청소를 하다 보니 좁은 느낌이 피부까지 전달해져와 너무 불편했어요." 대부분의 고시원은 더 이상 고시를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다. 김씨와 같이 목돈이 없어 보증부 월세나 전세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고시원은 대안(?)적인 주거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쪽방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과 만만치 않은 주거비 때문에 김씨는 시설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시설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고 한다. 반면, 좋은 조건이 갖추어진 시설과 조금 열악하지만 독립된 형태의 주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김씨는 "망설일 것 없이 독립된 형태의 주거죠"라고 답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열악한 환경은 자신이 개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독립적인 주거 확보는 쉽지 않다.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대개의 시설생활인들은 시설 내 인권침해가 폭로되어도 또 다른 시설로 공간적인 이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가 사회방위를 목적으로 시설유지 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한 이들의 주거권 박탈은 사회적 편견과, 빈곤의 굴레 안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조건부신고복지시설 생활자 인권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김정하 활동가는 "시설생활자들 중 많은 이들은 실제로 지금 당장 혹은 약간의 보조적 서비스만 있다면 독립생활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인제 심신수양원의 인권침해가 폭로된 이후 조씨는 '은평의 마을' 이라는 노숙인 쉼터로 이주했다. "적응하기가 어려운" 은평의 마을에서 나온다고 가정했을 때 조씨에게 제일 필요한 부분은 "잠자는 것하고, 먹는 것"이다. 먹는 것은 세끼를 다 찾아 먹지는 못하더라도 무료급식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잠자는 게 제일 큰 문제라고 조씨는 걱정한다. 현재 실질적인 이혼 상황인 조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권자가 되지 못한다. 그는 수급권자만 되면 "시골에서 방 하나 (임대)해서 마음 편하게 살거나 혹은 여럿이 합작을 해서라도 살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부인과 연락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혼소송을 거쳐 수급권자가 될 수 있을지는 막막하기만 하다. 정부 시설정책의 한계와 주거권 미신고 시설 내 인권침해가 계속해서 발생하자 정부는 2002년 5월 이래로, '미신고 시설 양성화 대책'을 추진 중이다. 이 대책은 신고시설로의 전환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시설 설치기준과 종사자기준 등이 하향적으로 규정하였다. 또한 재정지원과 행정관리 책임부분은 여전히 미흡해 이러한 조치가 생활자들의 시설 내 삶의 질을 상승시킬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시설 대책은 한국사회 '시설생활인'의 인권 증진을 위해 근원적인 시각이 부재함을 지적할 수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는 "정부의 시설 양성화 정책은 기존의 사회복지 시설 시스템을 전제하는 가운데 시설정책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뒤 "시설생활자들에게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지역사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에게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 활동가는 "정부의 양성화 대책은 시설이 선택이 아닌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역사회에서 격리되고 감금되는 형태의 시설을 온존 내지는 확대하는 것이므로 시설생활자들의 주거권 확보와는 배치된다"고 말했다. 즉 이미 시설은 개인의 인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많은 시설생활자들이 실제로 독립적인 주거를 원하며 독립생활이 가능하다는 것, 또 이미 서구의 많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시설중심의 모델에서 '지역사회 통합'과, '독립생활 모델'로의 전이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볼 때, 정부의 양성화 대책은 한계가 명확한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주거는 인간의 기본적 필요에 따른 권리이다. 이제 시설의 '현실적 필요성'이라는 말만을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형태의 독립적인 주거공간과 지역사회에서 이웃으로 함께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적극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시설은 이제 긍정적 필요성의 차원에서, 위험상황에서의 '일시적 보호'를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하며, 일상적 주거의 기능은 '독립적 주거 공간'에게 내어주어야 한다. 최근 김씨는 영화 엑스트라 일을 하면서 연극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다. 최근 그녀는 '운 좋게' 한달에 17만원 하는 고시원을 얻을 수 있었다. 여전히 그 공간은 좁고 답답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 이다. "누구에게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푹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 하"기 때문이다. 집을 빼앗긴 사람들 [기획]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② 민선 이촌역 1번 출구, 길 따라 쭉 이어져있는 폐허들, 그 속에서 철거민들은 천막 농성 중이다. 길 건너 높이 치솟은 아파트와 너무도 상반되는 풍경, 곳곳의 벽에 적힌 "투쟁으로 주거권을 쟁취하자"란 붉은 글씨는 참담한 풍경만큼이나 처절하고 절박하다. 전쟁이 지나간 흔적마냥 쓰레기가 넘쳐나고 부서진 건물 잔해로 가득한 이곳에서 강제철거가 시작되었던 2004년 6월 28일부터 용산 5가 19번지 주민들 8가구가 모여 일 년 가까이 싸우고 있다. 단수가 되기도 했었고, 용역들의 협박이 끊이질 않았지만, 추운 겨울, 더운 여름 상관없이 그들은 여전히 투쟁이라 외친다. 용산 5가 뿐만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자행되는 강제 철거에 맞서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지역들이 곳곳에 많다. 개발이데올로기로 용인되는 강제철거 땅이라는 것이 재산으로서 큰 의미가 있는 한국 사회에서 재개발 사업은 특히 중요한 이슈다. 재개발 구역이 정해지면 주택공사나 민간 기업에 의해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재개발 업주들은 철거를 보다 빠르게 실행하기 위해 용역 회사에 일을 맡긴다. 고용된 용역들이 협박과 폭력으로 철거 지역 주민들을 내쫓고 집을 부술 때,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은 이를 '합법적인 절차'로 용인하고 묵과한다. 이 속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자신이 살던 집에서 강제로 내쫓기는 것이 바로 '강제철거'의 모습이다. 지금도 재개발이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철거민들을 범죄자 취급 하며 몰아붙이고 있다. 한국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급속한 도시화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무수한 강제철거가 있었다. 강제철거는 과거 도심 곳곳의 수많은 무허가 판자촌을 허물고 철거민들을 광주로 대규모 강제 이동시켰던 6-70년대의 일만은 아니다. 지금도 개발의 이름 아래 수많은 철거민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당장 살던 집이 하루아침에 부서지는 것만큼의 또 다른 안타까움이 있다. "이건 고향이 없어져버리는 거야. 유치원부터 초중고까지 함께 해온 애들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거지. 몇 년을 함께 해온 이웃을 멀리 사는 형제보다도 가깝게 여기고 살았는데…. 애들 학교도 그렇고, 어른들 직장도 그렇고 생활권이 다 이 근방인데…"(용산 5가 철대위 ㄱ씨) 최소한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철거민들의 처절한 저항에 비해 그들의 요구는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철거민들이 개발 중에 머물 수 있는 '가수용 시설'을 만들어주고, 개발 후에 살아갈 '임대주택'을 보장해주라는 것이 그들이 요구하는 전부이다. 즉, 개발을 하되 선(先)대책 후(後)철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개발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게 결코 아니야. 얼마든지 하되 다만, 영세민이 대부분인 세입자들의 생존권은 보장하면서 하라 이거야. 용역 사는 그 돈이면 세입자들 충분히 보장해줄 수 있어. 근데 안 그러잖아."(용산 5가 철대위 ㄴ씨) 대책 마련이 먼저, 철거는 그 다음 이주비 지원보다도 임대주택의 보장이 철거민들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용산 5가의 경우 4인 기준으로 1가구당 1000만원 정도의 이주비가 주어졌지만, 이것으로는 계속 올라가는 주거비를 감당할 수가 없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임대주택이 안정적이고 적절한 주거가 못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영세민 주택이 이 근방도 아니고… 또 대부분 계약 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아 맘 놓고 살수가 없어. 재계약 조건도 까다로워서 형편이 조금만 나아져도 자격이 되지 않으면 쫓겨나는 거야. 영세민 주택 나와서 다른 곳에서 살려 하면 방값이 너무 비싸 들어가기 힘들고."(용산 5가 철대위 ㄷ씨)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풍문이 나돌고, 그래서 임대주택 건설 계획이 있으면 지역에서 반대하는, 똑같은 이름의 주택이라도 임대주택과 그냥 주택의 출입문이 따로 있는, 평수별로 반상회마저 달리 하는, 땅값이 올라 이득 보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는 현실. 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사회의 임대주택은 그 물량 뿐 아니라 실효성 역시 매우 적다. 2005년 건설교통부 등 임대주택정책 개편방안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임대주택 재고량은 전체 주택 재고량의 8.9%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10년 이상 임대되는 실질적 임대주택은 2.5%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네덜란드의 36%, 홍콩의 30.6%, 싱가포르의 83.9%와 비교해볼 때 크게 미달하는 수치이다. 또한 저소득층에게는 공공임대주택의 주거비 부담마저도 만만치가 않다.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는 주거비지불능력 미달 가구가 18.2%(국토연구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2)나 되는 한국 사회에서 저소득층에게는 주거의 하향 이동만이 '보장'될 따름이다.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소득 수준에 맞게 임대료를 책정, 지불되고, 정부 차원에서 임대료 보조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외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우린 많은 거 바라지도 않아. 지금 살고 있는 근방에 위치해야 하고 우리 식구들 편히 발 뻗고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좋겠어. 4인 가족을 기준으로 15∼20평 정도면 되지 뭐. 보통 임대주택 경우처럼 보증금 1200∼1500만원에 월세가 13∼16만 원 정도면 뭐. 그리고 계약기간이 상황에 맞게 다양하고 영구임대도 보장되어야해."(용산 5가 철대위 ㄱ씨) 인간이 아닌 이윤을 위한 재개발 '토지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고도이용과 도시기능의 확보'(도시재개발법 제2조)를 명분으로 하는 재개발, 용산 5가 역시 '불량주택 밀집지역의 계획정비로 쾌적한 도시 환경의 조성과 장래 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광역 녹지 네트워크 조성'을 재개발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환경 개선과 개발의 고려 대상에 원거주민의 요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재개발 지역이 정해지면 시공사의 선정, 재개발의 방향 등을 결정하기 위해 재개발 조합이 만들어지지만 소유주만이 조합원으로 인정될 뿐, 몇 십 년을 이곳에서 살았고 훨씬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세입자는 재개발에 관한 어떠한 참여의 권리도 없다. 서울시에서는 조례를 통해 주택재개발의 경우 재개발 용적률의 20%에 임대주택을 건립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용산 5가의 경우 준주거지역에 해당되는 도심재개발로 지정되었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용산구청은 말한다. 하지만 재개발이 처음 언급되던 10년 전만 해도 용산 5가는 주택재개발 지역이었다. 2001년 서울시에 의해 도시환경정비사업 지역으로 바뀌면서 임대주택 건립을 의무화하는 법규가 적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임대주택이 아닌 이윤 창출에 유리한 주상복합건물이 건립된다고 하니 원거주민들 특히 세입자들에게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재개발의 고려의 대상에 인간은 없다. 단지 이윤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적인 주거권의 실현을 위해 1993년 유엔 인권위원회는 "강제철거가 인권, 특히 적절한 주거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임을 선언하며, 정부는 강제철거를 없애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고, 적절한 보상과 충분한 대안적 거처나 토지를 제공할 것"(1993/77)을 결의했다. 또한 여전히 강제 철거가 자행되는 한국사회의 주거문제에 대해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두 차례나 강력한 권고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유엔 사회권위원회로부터 "주거대책 없이는 철거를 중단할 것"(1995.6.7)과 "민간 개발사업에 의한 강제철거의 피해자들에게도 보상과 임시주거시설 등의 보호를 제공할 것"(2001.5.11)을 권고 받았지만 여전히 강제철거로 인한 인권 침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는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고 있지 않다. 필리핀에서는 도시개발 및 주택법에 정당한 철거의 경우에도 주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철거를 3년간 중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규정을 두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불법적으로 강제철거를 자행하거나 임차가구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강력한 처벌과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철거 후의 대책에 있어 일본은 법적으로 철거 후 새로 건립되는 주택의 입주대상을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한 자 중 사업시행에 따라 주택을 상실하여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 소유주라도 외지에 거주하면 입주자격을 박탈하고 세입자라 하더라도 재개발지역의 거주민이면 입주자격을 인정한다. 한국의 경우, 불과 10∼20%의 원거주민들만이 재개발 이후 그 지역에 다시 거주하여 재개발의 명분이 무색할 따름이다.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함께 근본적으로 강제 철거가 자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재개발에 대한 관점이 변화해야 한다. 개발사업 등의 요인으로 상승한 토지 가치의 증가분을 개발이익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지난 20년간 땅값이 오르며 발생한 개발이익은 무려 1284조에 이른다. 이런 과정에서 상위층 1%에 해당하는 약 10만명은 1인당 3.2억원의 이득을 매년 확보하는데 이렇게 발생한 땅에서의 불평등은 곧바로 부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되고 따라서 부의 양극화, 주거의 양극화는 더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불로소득인 개발이익을 제대로 환수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덴마크는 개발이득세, 프랑스는 기반시설세, 네덜란드는 개발부담금, 영국은 시설정비부담금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정의차원에 입각하여 개발이익을 적극 환수하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의 남원석 연구원은 "개발이익을 세금뿐 아니라 현물(공공임대주택 등)의 형태로 적극적으로 환수하는 등 재개발을 통해 얻은 이익이 재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주거빈곤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정부가 법·제도적 수단을 강구해야"한다고 말한다. 또한 남원석 연구원은 "재개발의 고려 대상에 원거주민의 주거 안정과 복지 증진이 포함되어야 하며 재개발 이후 원거주민들의 재정착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어야"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물리적인 재개발만을 실시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역에 관한, 원거주민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는 것. 그는 "외국의 경우 철거를 통한 재개발뿐만 아니라 주택·지역의 개량을 포함하여 다양한 방식을 사회적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시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원거주민의 교육과 고용의 기회가 확대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소개하며 "이런 방식의 재개발을 한국사회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재개발 지역 내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적인 주거권의 실현을 위해서는 개발을 통한 이윤, 개발의 현실성 등 그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인권으로서 주거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우선시해야만 한다. 투기성 수익의 기회가 아닌 본래 삶의 터전으로서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존중하는 것이 인간적인 주거권 실현을 위한 첫걸음이다. 아이들, 집을 나와 집을 찾다 [기획]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③ 연정이 "한 학생이 가출을 했어요. 알아 봤더니 그 학생 집이 불법도박장, 일명 하우스인 거예요. 집에 아빠가 있으면 경찰이 올까봐 불안하고 경찰이 있으면 아빠가 올까봐 불안하대요. 집에 다시는 안 들어간다고 버티다가 학교도 그만두고 연락이 끊겼어요."(ㅅ공고 교사) 많은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있다. 늘어나는 부모의 이혼, 별거와 가정폭력, 학대, 날로 심각해지는 빈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많은 아이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가출을 했다기보다는 집에서 퇴출을 당한 그 아이들은 곧 사회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 분명 존재하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아이들의 집에 살 권리 주거권은 단순히 집 없는 사람의 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솔을 거느릴 공간을 요구할 수 있는 가장의 권리는 더더욱 아니다. 주거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전과 평화, 존엄 속에 살' 권리이고 이 권리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도움을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청소년 역시 인간이기에 당연히 안전과 평화, 존엄 속에 살 수 없는 집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집을 사회에 요구할 수 있다. 청소년기본법 제5조 1항은 '청소년은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자기 발전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모든 형태의 환경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권리의 주체이기보다는 보호의 대상이고 따라서 주거권은 청소년을 보호하는 어른의 권리인 것처럼 여겨진다. 친권자에게 '미성년인 자의 거소결정권'을 인정하는 우리 민법 조문도 이런 생각을 반영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 발로 집을 나온 가출 청소년에게 집에 살 권리를 인정하라는 주장은 억지로만 들린다. 사회는 그들에게 '비행청소년' 이란 이름을 붙이고는 빨리 귀가하여 '보호자의 선도'를 받으라고 종용한다. 집이 그들의 권리임을 무시한 채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족 안에서의 해결을 강요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로 돌아가란 말인가. 그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집은 없다. "윤섭(가명, 18세, 가출청소년)이가 한 달만에 붙잡혀왔어요. 근데 집에 안 간다는 거야. 엄마는 애한테 관심 없지, 새 아빠는 손찌검까지 하지. 한 달 동안 친구들이랑 방 얻어 살았는데 거기로 다시 가겠다고. 부산에 친 아빠 집도 있고 서울에 친 엄마 집도 있고 친구들이랑 살던 집도 있고. 집은 많은데 정작 얘가 들어 갈 집은 하나도 없어요."(ㄱ교사) 즐거운 나의 쉼터? 우리나라에서 돌아갈 집이 없는 청소년을 첫 번째로 맞이하는 시설은 '쉼터'이다. 쉼터는 가출청소년이 가출원인을 해결할 동안 머무를 수 있는 단기 임시시설로 6개월까지 거주 가능하다. 하지만 그 사이 문제가 해결되는 예가 거의 없어 1년 까지 연장할 수 있다. 쉼터 퇴소 후 갈 수 있는 중장기 시설로 그룹홈이 있다. 그룹홈은 대개 쉼터보다 소규모로 '그룹홈'이란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임시시설이 아니라 집을 대신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보호 기간에 제한이 없다. 하지만 부족한 국가 지원으로 환경이 매우 열악하고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 결과 7만 명에 달하는 가출 청소년의 1.7%만이 이 시설들을 이용하고 있다. 소수의 가출청소년에게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급급한 실정인 것이다. 쉼터 생활 2주째인 기선이(가명, 16세, 현재 쉼터 거주)는 쉼터가 너무 만족스럽다. 며칠 전에 쉼터에서 롯데월드를 다녀온 후로는 특히나 더 입이 벌어져 있다. 그런 기선이를 보며 쉼터 생활 선배인 장훈이(가명, 6개월 쉼터 생활, 현재 그룹홈 거주)와 영일이(가명, 1년 쉼터 생활, 현재 그룹홈 거주)는 걱정스런 눈빛이다. "쉼터가 처음엔 좋아요. 그런데 6개월이 끝날 때쯤 되면 진짜 힘들어요. 사람들(쉼터 입소 청소년)이 입 퇴소를 반복하니까 적응도 안 되고 답답해요. 그래서 성격도 이상해지고, 작은 일에도 격해지고 예민해지기도 해요."(장훈) "시설에 가면 생활을 똑같이 해야 해요. 잠깐 밖에 나갈 때도 얘기 안하면 혼나요. 똑같이 밥 먹고 똑같이 설거지 하고." (그룹홈 '디딤터' 운영자) "단합해야 하니까 참는 게 일이 되요. 너무 참다보니까 감정도 메마르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나만의 공간이 없으니까 많이 힘들죠."(영일) 집안 문제로 혹은 거리 생활로 지친 아이들에게 쉼터는 그다지 쉴 만한 공간이 되지 못한다. 수용 위주 정책으로 운영되면서 이해와 지원보다는 통제와 관리가 우선되어 많은 아이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게 (시설)체질이 있어요. 체질인 애들은 1년도 버텨요. 아니면 6개월도 못 버텨요."(그룹홈 '디딤터' 운영자) 이런 이유로 아이들은 주저 없이 '지원이 빠방한' 쉼터보다 '컴퓨터도 TV도 없는' 그룹홈을 선택한다. "쉼터는요 가족적인 게 없어요. 집 같지가 않아요. (그룹홈 에서는) 만약 방황을 한다 싶으면 기다려줘요. 지금 그룹홈에서 적응 안 된다고 나가버린 애가 있어요. 쉼터 같으면 벌써 퇴소 조치하고 그랬을 텐데 (그룹홈은)그러지 않아요."(영일) 대부분 쉼터 아이들은 집과 가족으로부터 스스로 탈출했음에도 '가족적인', '집 같은' 공간을 요구한다. 사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조건 없는 지원과 신뢰, 지속적인 애정이다. 다만 그들은 '집'과 '가족' 말고 그런 따뜻한 공간을 상상할 줄 모르는 것뿐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집에 있어야지' 라는 뿌리 깊은 편견 때문에 아이들은 원하는 공간을 표현할 단어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국가야, 국가야 쉼터 줄게, 내 집 다오 주거권은 단순히 공간을 요구하는 권리만이 아니라 개인이 '원하는' 공간을 요구할 권리이다. 따라서 '청소년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당연히 '청소년은 어떤 공간을 원하는가?' 라는 질문이 앞서야한다. "남학생인데 아빠가 심하게 학대해서 쉼터로 갔어요. 누나가 하나 있는데 다른 쉼터에서 살고 있구요. 근데 얘가 누나한테 가고 싶다는 거야. 누나도 동생이랑 산다고 하고. 그 (누나 있는)쉼터에 물어 보니까 얘를 받을 수는 있대요. 근데 얘네 아빠가 딸이 그 쉼터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아내서 어찌나 난동을 부리는지 지금도 힘든데 아들까지 받으면 걔네 아빠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남자애가 있는 쉼터는 여자를 안 받고. 애가 누나랑 살고 싶다고 우는데, 왜 안 그러겠어?" (ㅊ교사) 이 학생이 원하는 공간은 누나와 함께 살기에 적절한 공간, 아빠로부터 안전한 공간이다. 그런 공간이 아니라면 롯데월드를 보내주는 쉼터도 방황을 기다려 주는 그룹홈도 이 학생에게 충분하지 않다. "숙식 제공이나 외부적인 것 보다요 내면적인 것 있잖아요. 심리적인 치료나 가정환경이나 (가정)불화 같은 거 해결해줘야 하는데. 애들이 불만이 많아요. 그런 거 안 해 주고 맨날 먹을 것만 주면 되는 줄 안다고."(영일) "가정 폭력 당하다 들어온 애들은요 그게 (가정 폭력 당했다는 게) 다 느껴져요. 걔네들은요 쉼터에 들어오면 거의 2주 동안 말을 아예 안 해요. 경계해서."(장훈) 의식주 뿐만 아니라 원 가정의 복구와 다양한 상담 혹은 치료 프로그램 등이 가출청소년들에게는 절실하다. 이때 원 가정의 복구와 새로운 공간 마련 사이의 선택 역시 청소년의 권리임은 물론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상담자는 청소년의 가출 원인을 집중 조사하여 가출 청소년이 가족과 결합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재결합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는 대안적인 주거지를 제공하고 있다. 더 나아가 청소년은 스스로 선택한 공간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사회에 요구할 수 있다. "거기(쉼터)는 일일이 뭐든지 다 해주는데 여기(그룹홈)는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해요. 이틀에 한 번 씩 (애들이) 아침밥을 해먹는 게 우리 원칙 이예요. 가정집 분위기지만 스스로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거죠."(그룹홈 '디딤터' 운영자) 현재 가출청소년 쉼터는 독립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 내지는 기술 훈련 등을 거의제공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이런 필요에 대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법적 근거 하에 제공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전환생활프로그램이다. 16∼21세의 청소년들에게 거주지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노숙 청소년에게 교육과 직업훈련을 제공하여 자급자족이 가능한 독립적인 생활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주요 목표로 삼는다. 전환생활프로그램은 독립생활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전환생활프로그램에 인접한 장소에 독립된 아파트를 제공하고 '케이스 매니저'가 청소년과 함께 지내며 시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장기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집을 꿈꾸는 아이들 갈 곳이 없는 아이들, 그들은 당연히 사회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장래 범죄자가 되어 발생시킬 사회적 비용' 때문도 아니고 부모를 잃고도 열심히 살려는 모습이 가여워서도 아니다. 바로 그들에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보장이 전무한 한국 사회는 시스템을 마련하기보다 모든 역할을 집에 떠넘기고 만다.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에게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집'이 자신의 '권리'인 줄도 모른 채, 오늘도 집을 꿈꾸는 아이들. 한국 사회는 그들의 당연한 권리를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폭력에 노출된 채 갈 곳 없는 사람들 [기획]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④ 서연희 옆집에서 부부싸움이 크게 나 아내가 구타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러다 말겠지' 내지는 '맞을 짓을 했겠지'라고 생각해 버리곤 잠시 느꼈던 동정심마저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한 여성이 경찰에 신고해도 '집안 일이니 잘 해결하라'며 돌려보내기 일쑤다. 대개의 가정폭력·친족성폭력은 '사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공적' 개입을 통한 해결이 드물었고 기존의 법제도 안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일시보호는 있었으나 이들이 사회구성원으로 '독립'했을 때 삶을 꾸려갈 사회적 공간은 부재한 상황이다. '가정폭력·친족성폭력피해생존자(아래 피해생존자)'라고 통칭되는 사람들에게 '집'이라는 공간이 감옥의 철창 안보다 더 억압적이고 무서운 곳이라는 사실, 그리고 겨우 탈출했다고 해도 살 곳을 마련할 물질적 토대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이 사회에서 외면 당하고 있다. 폭력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기까지 제시카(가명) 씨는 친족성폭력피해생존자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늘 아버지가 불편하고 두려웠던 이유가 아버지로부터의 성폭력피해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상담을 받던 중 억압된 기억들이 조금씩 천천히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집을 떠날 것이라고 가족들에게 알렸지만 오히려 가족들은 '집안망신 시킨다'며 그를 비난했다. 제시카씨는 대전YWCA의 가정폭력상담소를 거쳐 현재 한국성폭력상담소(아래 상담소)에서 운영하는 중간집 개념의 '하담'에 거주하고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는 "주거를 가지는 것이 권리인지 몰랐다"며 오랫동안 눈물을 보였다. 김현빈(가명) 씨는 남편의 구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온 후 갈 곳이 없었던 그는 3일 정도 친구 집에 가 있었지만, 남편이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나왔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조그마한 옥탑방을 얻어 살았지만 일 년 만에 강도가 들어 성폭력을 당했다. 그 후 하루라도 맘 편히 지내기 위해 단기쉼터에서 지내기도 하고 오랜 기다림 끝에 모자원에도 들어갔지만, 그가 보기에 시설은 당연한 요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상한 곳이었다. 그는 1년 정도 모자원에 살았고 현재는 아이와 함께 월세 방에 거주하고 있다. 수많은 피해생존자들은 끔찍한 기억의 저장소인 집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혹은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감히' 독립을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인간이 인간대접을 못 받는" 이 사회에서 "집을 나갈 생각을 많이 했지만 용기도 없었고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도 몰랐다"는 제시카씨의 고백은 모든 피해생존자들의 고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파하는 부분이 뭔지도 모르면서…" 2004년 현재, 한 해 평균 가정폭력상담이 9만 건이지만 가정폭력피해생존자 일시보호시설의 연중평균보호인원은 400명 가량이며 성폭력상담은 3만 건이지만 보호자 현황은 400명도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시간도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 걸리는데다가 까다로운 입소조건을 요구해 '차라리' 포기하는 피해생존자들도 있다. 어렵게 시설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김현빈씨는 단기쉼터와 모자원에서의 생활이 결코 피해생존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경제적 자립을 도와준다던 시설에서는 정기적으로 있는 행사에 참여할 것을 강요했고, 사생활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면 나가라고 했다. "나는 마치 시스템이 잘 운영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피해생존자들이) 가장 아파하는 부분이 뭔지도 모르면서 운영하고 있어요"라고 비판했다. 그에 비하면 제시카씨가 거주하고 있는 하담의 생활은 좋은 편이다. 하담은 단기보호시설의 단점, 즉 획일화된 주거환경과 생활패턴을 지양하고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이 경제적 독립과 정서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주거공간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1년을 지낸 제시카씨는 하담생활이 대체로 만족스럽지만 어려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고 한다. "이곳에서 세대차이도 있고 갈등도 있어요. 자립공동체라는 면 때문에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사람이 나가거나 다툼이 있거나 그런 문제들도 있어요."라고 지적한다. 상담소에서 1년째 일하고 있는 원사는 "(쉼터나 중간집에서) 원하지 않는데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 그분들한테 또 다른 과제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며 "어떤 분한테는 여러 명이 (공간을) 나누는 공동체가 필요하지만, 어떤 분한테는 혼자 살 수 있는 주거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응급조치'가 아닌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한 주거 피해생존자들은 폭력으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누릴 새도 없이 빈곤문제와 함께 '혼자 사는 여성'이 겪어야 할 어려움까지 떠 안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이 사회에서는 독립적인 공간을 꾸리려는 여성들의 희망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순적이게도 자신이 스스로 '살 수 있는 곳'을 찾기로 결심하는 순간 '주거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게다가 주거공간이 없다는 것 자체는 재피해의 위험이 상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더 이상 응급조치 수준의 일시적인 보호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주택은 '거주'의 개념이 아니라 '소유'의 개념으로 간주되고 있어 위급한 상황을 탈출해야만 하는 피해생존자들의 설자리는 더욱 좁다. 영국·프랑스와 같은 유럽에서는 주택소유권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혼 시, 자녀를 양육하는 어버이(주로 어머니)의 주거사용권을 인정하고 있다. 즉, 법원이 주거사용의 우선권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한 것. 이는 남편/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모녀의 주거확보를 위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규정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폭력의 위험이 상존하는 '기존주거'로 돌아갈 수 없는 피해생존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정부는 4월 '임대주택정책 개편방안'을 확정하면서 다가구 매입임대의 구체적인 그룹홈 확대방안으로, 장애인 그룹홈에서 요보호아동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 등으로 그룹홈을 확대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기적고 안정적인 주거권 확보로 가기 위해서는 그룹홈 확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저렴한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등 주거취약계층의 주거권을 보장해주는 정책의 일환으로 다루어져 확대돼야 할 것이다. 사회 전반적인 주거권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 '그룹홈 개편방안'은 또 하나의 '응급조치'가 될 뿐이다. 실제로 김현빈 씨는 5년을 기다린 후에 배정 받은 임대주택을 반납한 적이 있다. 신청했던 희망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배정 받은 것. 아이의 학교도 옮겨야 하고 직장도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한 행동이었지만 담당직원은 '배불러서 그런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피해생존자들이 원하는 것이 안전하고 저렴한 주택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의 요소를 바라는 것이 사치는 아니다. 권리를 인정하기보다는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생각하는 국가의 태도가 정당한 요구마저 '사치'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사회적관계망 중요해 피해생존자들은 관계형성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 또한 '사회적관계망'이다. 제시카씨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는 독립적인 공간에서 사는 것이 고생하더라도 나을 것"이라면서,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치유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 정기적인 상담이나 조정자 역할을 하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폭력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 사생활이 보장되는 곳 그리고 사회적 관계형성의 토대가 되는 바로 그런 공간이 진정한 '집'이 아닐까? 피해생존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실현할 수 있는 '집'은 상상의 공간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한다. 여성의 입으로, 여성의 주거권 말하기 [기획]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⑤ 성진 대학 내 여학생 휴게실과 같은 여성 전용 공간의 필요성이나 밤거리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권리 등 여성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있어왔다. 또한 '어머니'의 생활공간이 집에 한정되어 있음을, '집 안'에서도 '주방은 엄마 방, 안방은 아빠 방'과 같은 도식이 여성 스스로를 위한 공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어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가족 바깥의 이야기거나 가족 안의 이야기일 뿐, '가족'을 넘어서 여성에게 필요한 '집'을 요구할 권리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누구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존엄을 유지하며 살 집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면 여성에게 그러한 권리는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 여성 노숙인의 경험을 시작으로 물어보려고 한다. 여성 노숙인, 그녀들의 현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노숙인은 그리 가시화되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노숙인들을, 사회는 일자리를 잃어 주거를 유지하거나 획득하지 못한 이들로 다루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로 묶였으며 개개인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은 노숙인을 생각할 때 남성을 떠올린다. 노동, 일자리, 실업 등이 남성의 이미지인 데다가 주거를 유지하거나 획득하는 권리는 남성가장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 노숙인은 눈에 띠지 않을 뿐, 분명히 존재한다. "노상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여성은 자신의 무방비 상태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남장, 대화 및 관계의 단절, 노숙인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청결 유지 등의 수단을 사용한다"는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생 김홍수영 씨의 말은 여성 노숙인이 단순히 '노숙인 중 성별이 여자인 사람'만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특히, 절대적 빈곤의 상태에 놓여 무력해진 여성이나 정신 질환 등의 이유로 신체적 저항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여성 노숙인에게는 성폭력의 위험이 훨씬 크다. 열린여성센터 서정화 소장은 "여성 노숙인들 중에는 밤에 어떻게든 지내다가 낮에 지하철을 타고 돌면서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다"며 선뜻 거리로 나올 수 없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여성 노숙인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 노숙인의 존재 자체가 여성억압의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좀 젊으신 분들은 다방, 아니면 숙식을 제공하는 술집이나 이런 쪽으로 빠지고 나이가 드신 분들은 식당가로 빠지시죠." 노숙인의 인권에 대해 논문을 썼던 김홍수영씨는 이렇게 식당으로 유입된 여성들은 저임금과 긴 노동시간으로 고통받는다고 덧붙인다. "그녀들에게 식당에서 자야 한다는 사실은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24시간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여성센터의 서정화 소장은 식당에서 지내다가 노숙하게 된 한 여성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이 분은 매일 일하다가 휴가를 얻으면 모텔방을 얻어서 휴가를 보냈어요. 하루종일 모텔방에서 밥먹고 쉬면서 혼자 지내는 거예요." 그러나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현실은 여성들을 "식당에서 식당으로 전전"하게 만든다. 일다 조이여울 편집장은 "티켓다방과 성매매집결지로 유입되는 여성들은 '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그곳을 찾는다. 특히 가정폭력이나 빈곤을 이유로 가출한 청소녀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돈을 벌기 쉽지 않은 구조에 있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티켓다방과 성매매집결지로 흘러들어간다"고 지적한다. 여성노숙인들 중에도 쪽방이라도 들어가기 위해 거리에서 만난 남성노숙인과 동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자원으로 하여 생존할 수밖에 없는 빈곤의 상황을 남성은 상상할 수도 없을 테지만 공간에 대한 여성의 요구는 왜곡된 형태로만 실현되는 것이다. 조이여울 편집장은 "여성에게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것은 '성매매로의 유입을 막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여성의 '독립'을 말한다 가부장제는 남성 중심의 노동 시장 구조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여성의 노동력은 잉여 노동력으로 간주하여 주변화시키며 가족을 기본으로 하는 임금 정책은 단신 비혼 여성, 독신모, 여성 가장의 빈곤을 특히 가속화한다. 이러한 구조는 여성 노숙인에게서 극단적인 상황으로 드러나지만 여성들 대부분이 놓여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김김찬영 소장은 "여성은 집이 있더라도 공간의 주인이 되기 힘들다"며 독립을 시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독립을 원하는 대부분의 비혼 여성들은 전세 혹은 월세 집을 얻고 가재도구를 마련하고 공과금을 내고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혼자 살면서 사소하게 부딪치는 문제들도 독립에 부담이 된다. 남자가 요리나 가사 일을 배우지 못한 것처럼 여자는 세면대 고치고 못 박는 일 같은 것을 잘 못한다." 특히, "집에서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인데 집으로부터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지방으로 직장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은 여성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가족 안에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독립은 결혼밖에 없다. 결혼자금으로 부모님들이 돈을 모아두기도 하는데 형제, 자매들이 결혼해서 나갈 때는 돈을 지원하면서 그냥 혼자 독립하려고 하면 돈을 지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립을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 처하는 일상적인 폭력의 위험은 독립을 "무서운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김김찬영 소장은 "배달 음식을 안 시킨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음식을 배달시키면 혼자 사는 게 티 나니까 배달하는 사람이 현관까지 들어오는 게 꺼려지는 거"라는 설명이다. 독립적인 공간이 있다고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 후 여성과 남성이 각각의 방을 따로 가진다는 것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매우 낯선 일이다. 비혼 여성이 혼자 사는 경우라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언니가 동생집에 불쑥 찾아갔다가 집에 아무도 없었는데 신혼방 분위기가 나서 동생의 성정체성을 의심하게 되어 아웃팅된 경우"를 들려주며 김김찬영 소장은 집에서 같이 살거나 떨어져 지내거나 독립의 문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여성들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로는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일기를 쓴다거나 자위를 하는 등 자기만의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은 단순히 사생활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성이 가사노동의 담당자, 보육노동의 수행자, 대상화된 섹슈얼리티의 담지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시작인 것이다. 또한 여성에게 자신이 주인인 공간이 있다는 것은 '집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가족을 꾸릴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집 밖'에서 여성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네트워크나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여성의 입으로, 여성의 주거권 말하기 우리가 흔히 노숙인이라고 번역하는 '홈리스(homeless)'는 '적절한(reasonable) 주거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어쩌면 많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적절한' 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막연히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요구와 욕구에 부합하는 공간을 가지지 못한 생활에 자주 불만을 느낄지도 모른다. 거리노숙을 하지 않는 여성이 그렇게 느낀다고 그것을 사치스러운 생각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유네스코는 주거권(housing-right)의 요소로 "점유의 법적 안전성, 거주의 적절성, 위치, 경제적/물리적 접근성, 문화적 수용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성의 입으로 이야기되어온 것을 여성의 눈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아주 작은 상황에서부터 여성들의 입으로 여성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사회적으로 가시화시켜야 한다. 사소할 수도 있지만 분명히 정치적인, 자신의 생활이 시작되는 주거와 그 권리에 대해서 여성의 입으로 말하는 것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잠자리용 깔개로는 스티로폼이 최고" [기획]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⑥ 소연 종로3가 거리,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꾸물거리며 몰려드는 도심의 피카디리극장 뒤편.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우리는 조금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집집마다 '월세방' 표지판이 붙어있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좁고 낮아보이는 공간들, 쪽방들이 와글와글 펼쳐진다. 종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서울역 지하보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보도에 저녁부터 종이상자로 허술한 잠자리를 만들어 새우잠을 청해보려는 이도 있다. 같은 시간, 지상의 구 서울역사 근처에는 씻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몸싸움을 벌인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보이지만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내몰리며 삶을 살아낸다. "경쟁에서 뒤쳐졌을 뿐" 서울역에서 만난 박창재(가명) 씨는 외환위기 전까지 서울역 근처의 월세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는 서울역에서 지내는 노숙인들 보면 게으르고 한심해보였어요. 그런데 노숙하면서 보니까 안 그래요. 노숙인들은 경쟁에서 뒤쳐졌을 뿐이지요."라며 창재 씨는 "노숙자가 아니라 홈리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김성일(가명) 씨는 1년여 노숙생활을 하다가 영등포 쪽방에 살기 시작했다. "80년대 초에 귀금속업을 해서 돈을 모았죠. 그때는 기숙사에 살았고. 사실 기숙사라고 부를 것도 없고 작업장의 기구들 한쪽으로 치워서 거기 자는 거였어요." 그래도 성일 씨는 "남들 다 자는 시간에도 두세시간씩 자면서 기술을 연마"해 전세방을 마련했다. 당시 장사를 시작했다가 사업이 실패하면서 결국 20년 전의 '집'으로 돌아온 셈이다. 아방궁, 집 아닌 집 "공안들이 때만 되면 내쫓고 지하도에서는 동료들끼리 싸우기도 하니까 편안히 쉴 수가 없어요. 사람들 시선도 불편하고." 창재 씨가 전하는 "노숙의 불편함"이다. 친아버지도 노숙자였다며 노숙의 '경력'을 내세운 이원영(가명) 씨는 "지나가며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 잠을 자기가 쉽지 않아. 쪽방에서라도 살 수 있으면 좋겠어." 하며 목소리를 떨군다. "노숙할 때는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영안실 음식들을 먹기도 했지. 지금도 그 영안실 음식 맛을 잊지 못해." 성일 씨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쪽방은 아방궁"이라고 표현한다. 쪽방은 보증금을 내지 않고 월세를 선불로 납부하는 곳이라 보증금, 전세금 마련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당장 아쉬운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돈의동 쪽방에서 20년 가까이 지낸 이민웅(가명) 씨는 "창만 열어도 바깥 소리가 들어와서 닫고 있을 때가 많아. 그러니 환기도 안되지, 여름에는 워낙 더워서 사람들이 아예 노숙을 하기도 해." 라며 쪽방의 현실을 전한다. '폐결핵, 늑막결핵 후유증, 영양실조, 건선, 알콜성 간염' 등의 병명들이 나열된 진단서를 내보여준 전명국(가명) 씨. 환경이 이렇다보니 "이 정도 가지고는 이 동네에서는 쪽팔려서 말도 못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평 반의 방을 3개로 쪼개서 만든 게 여기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화재라도 나면 금새 번져." 역시 돈의동 쪽방에 사는 김경남(가명) 씨는 쪽방이 안정적인 공간이 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쪽방지역 주민들이 대개 그렇듯 "노가다라도 뛰어야 하니까 인력업체들 많은 이 동네"를 떠날 생각을 하기는 힘들다. 떠날 생각을 한다고 쉽게 떠날 수 있는 공간인 것도 아니다. 아무도 집을 지탱할 수 없다 지금은 국민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남구(가명) 씨는 영등포 쪽방지역에서 회자되는 인물이다. 영등포 쪽방의 철거 당시 철거보상금을 받은 120여명 가운데 임대아파트 입주에 성공한 13가구의 한 명. 그는 기초생활보장수급과 장애수당, 노점으로 번 돈에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덕분'에 받은 교통안전공단의 후원금이 있어 영등포 쪽방이 철거되던 때 보증금을 가까스로 마련할 수 있었다. 노숙과 쪽방을 전전한 3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 "93년에 심부전, 당뇨, 디스크 판정을 받아서 그때부터는 소일밖에 못했"던 민웅 씨는 방세가 밀려 쫓겨나기도 하다가 올해 4월에야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자로 선정되었다. "34만 5천원 받어. 거기서 월세로 21만원 나가고 쭉 밀린 방세까지 계산하면 3만5천원으로 한 달 살아야해. 여기 사람들 대부분이 일용직이야. 솔직히 소개비 빼면 하루 일당 3만원 정도밖에 안돼." 그나마 일을 구했을 때 이야기다. 경남 씨는 "일을 하려고 해도 일이 있어야지. 물건 떼다가 노점도 하다가 취로사업 같은 데도 나갔다가 하면서 어떻게든 버티는 거지."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과연 누가 그들의 '집'을 지탱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돈의동 쪽방에서 생활하는 650여명 중 기초생활보장을 받는 이들은 164명에 불과하다. "쪽방에 사는 분들이 돈을 모아 이 지역을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일자리 따라서 떠나더라도 다른 지역의 쪽방으로 가는 것일 뿐 쪽방생활 자체를 벗어나기는 힘들죠." 돈의동 쪽방지역에서 '사랑의 쉼터(쪽방 상담소)'를 운영해온 오범석 소장이 지켜본 현실이다. 집다운 집으로 가는 길 임대아파트에 들어간 남구 씨는 재활훈련을 위해 작은 방에 운동기구도 몇 가지 마련해놓고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한다. 쪽방에서는 엄두도 못 내던 일이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운동 삼아서라도 영등포를 다녀와. 재밌어, 가면. 여기는 와본께 토끼장 같은데서 잠만 자구 말여." 영등포 쪽방지역의 이영훈(가명) 씨는 "마을에 들어오면 악취가 나. 그런데 어떨 땐 그 냄새가 정겨워. 그게 사람사는 냄새"라고 말한다. 남구 씨에게도 철거로 갑작스레 떠나온 곳이 늘 그리운 것. "그래도 예전 살던 데랑 비교도 못하지. 왜냐믄 사람이 마음이 편하잖어. 여기 있응께 내 얼굴이 더 젊어졌다고. 하하" 2002년 현재 공공임대주택 소요가구는 165만 가구로 추정되지만 공공임대주택 재고는 30만호도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임대주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주거비지불능력이나 지역사회 의존도를 고려하지 못하는 임대주택정책은 이들을 오히려 배제하고 있다. 특히, 가족 위주의 주거지원에서 밀려나는 단신가구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나도 (영구임대아파트) 줬으면 글루 가지 일루 안왔다구. 거긴 부부팀만 들어가게 허잖여. 나는 혼찬게 못가는 거여." 오범석 소장은 최소한의 주거공간과 자립을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에 알콜치료 등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가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활자 특성별로 3개월, 1년, 2년 등의 다양한 임시전환주거를 마련해 필요할 때 언제든 연계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 오범석 소장은 "지역사회를 바꾸는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고 "관은 관대로 실태조사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민간조직은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면서 주거정책에 민간조직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해야 한다"며 현재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다가구 매입임대정책의 방향을 제안하기도 했다. 독일의 홈리스는 '어떠한 숙소도 가지지 않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 지인이나 친척 집에 거주하는 사람, 자비로 저렴한 숙소에서 숙박하는 사람, 일시적 체재시설에 입소해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폭넓게 정의된다. 이들은 독일기본법(헌법)의 '자기의 인격을 자유롭게 발전시킬 권리', '생명으로서 권리 또는 신체에 해를 당하지 않을 권리'를 위협받고 있는 상태인 만큼 '생활부조를 행하지 않으면 주거를 상실할 위기에 처한 때는 생활부조가 발휘된다'는 규정을 두어 주거상실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또한 주택을 현재 상실한 사람이 홈리스 상태로부터 벗어날 의사를 표시하면 사회주택에 거주하도록 한다. 재택방문형 상담지원활동 역시 병행된다. '지금, 여기'에 답은 있다 "이 방은 내 공간이라고 생각해.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라던 민웅 씨의 말은 비좁은 쪽방에 갇히는 것이 몸만은 아님을 짐작케 한다. "잠자리용 깔개로는 스티로폼이 최고야. 전에 막노동이라도 나갈 때는 공사현장에서 가져다 쓰곤 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 여의치가 않네. 차가운 기운 막을 수 있는 은박매트 하나랑 그거 보관할 사물함 하나만 있으면 좋겠구만." 그러나 원영 씨의 소망은 절망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창재 씨는 "소몰고 풀뜯으며 놀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방한칸이라도 있으면 고향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현실에서 발버둥치는 이들에게는 절망과 희망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여기 주민들은 세상의 낙오자, 패배자예요. 하지만 재활의 의지가 없지는 않아요. 일을 주선하고 서로 도우면 세상으로 돌아가는 기간이 단축될 수 있어요."(성일 씨) "자동차 정비나 목수나 건축 같은 거 배워주고 거기 맞는 직업을 찾아줘야 자립할 수 있죠."(창재 씨) "돈보다 방을 하나씩 줘서 살림하면 그게 낫지. 쓰지도 못하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어."(남구 씨) "방한칸에 부엌, 욕실, 화장실 있는 8-9평 정도 되는 방, 월세는 10만원 정도 받으면 좋겠네요."(창재 씨) 지금, 여기 모든 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내집마련의 꿈, 그 너머 [기획]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⑦ (끝) 미류 초등학교에서 꿈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아이들은 "의사요", "대통령이 될래요", "가수 할 꺼예요" 등등 끝없이 이어지는 대답들을 내놓는다. 그러나 20대를 거쳐 30대에 들어서는 친구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대개는 서너 개 정도의 답안이 있고 그 중 하나는 '내집마련'이다. 내집마련을 위한 재테크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지지만 2005년 1/4분기 한국의 주택 자가소유율은 61.77%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는데도 열 명의 친구들 중 네 명은 집을 가질 수 없는 것. 그나마 여섯 명의 친구들의 내집마련은 결혼 후 평균 10.8년 동안 평균 5번의 이사를 하고 난 후에나 가능하다. 저축만을 통해 집을 마련하는 경우는 절반밖에 되지 않고 부모·친척의 보조, 증여·상속, 융자·사채 등을 빌어서야 가능하다. 2003년 현재 빚을 지고 있는 가구의 부채사유는 주택마련이 36.7%로 가장 높다. 이렇게 청춘을 헌납하는 내집마련의 꿈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살기 위한 집인가, 팔기 위한 집인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광고문구는 집이 단순히 비를 피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집은 '당신이 어느 정도의 재력이 있는지를 말해주는' 징표이기도 하며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당신이 얼마나 소득을 올릴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최근 부동산 가격과 집값의 폭등으로 부동산정책을 둘러싼 해법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전쟁을 하듯이 대처'하겠다는 엄포를 놓으며 집값을 잡으려고 하지만 '부동산불패신화'는 여전히 재테크의 기본이다. 분양아파트의 모델하우스에 내걸리는 현수막의 몇 자 되지 않는 글자에는 '전매가능'이 늘 포함된다. 그러나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의 이면에서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저금리정책과 각종 규제완화는 건설자본과 집을 팔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2002년까지 10년간 600만채 이상의 주택이 건설되었는데도 자가소유율의 증가는 4.3%에 그쳤다. 게다가 소득10분위 중 하위 1∼4분위 가구의 주택소유율은 최근 1년동안 모두 2∼3%씩 오히려 낮아졌다. '내가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한 꿈은 '내가 팔 집'을 사려는 사람들의 욕망에 묻혀 집값을 덩달아 올릴 뿐이다. 내집마련의 꿈이 부풀수록 내집마련은 멀어진다. 내집=살만한 집? 2002년 대한주택공사가 발행한 주거복지백서에 따르면, 공공임대, 쪽방, 불량주거밀집 계층은 주거비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중형, 소형분양계층은 상대적으로 교통과 환경 등 질적 가치에 점수를 준다. 내집을 갈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거주의 안정성이다. 소득대비 임대료 비율이 21.3%로 선진국의 16%에 비해 매우 높은 데다가 수시로 들썩이며 치솟는 전월세값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가주택을 마련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의 42.9%는 '내집'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내집만으로 살만한 집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2003년 주택법에 신설된 최저주거기준을 적절한 주거기준이라 여기기도 힘들다. 2004년 주택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규모가 작거나 낡다는 등의 이유로 주택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은 36.6%였으나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는 23.1%로 집계되었을 따름이다. 당시 주택이 만족스럽다고 답한 사람은 30.3%에 불과했다. 일본은 최저주거기준 외에 그보다 높은 유도주거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또한 주택건설 5개년 계획 수립을 의무화하여 주택난 해소, 최저주거수준 확보, 유도주거수준 확보 등 주거권 실현을 위한 단계들을 밟아나가고 있으며 1966년부터 매 5년마다 총주택건설호수의 절반 가까이를 공적자금주택으로 공급하고 있다. 살만한 집으로의 이동은 가능한가 주거복지백서는 주거상향능력의 분석결과를 보여준다. 주거수준을 5단계로 분류한 후 월세, 전세, 자가가구별로 주거상향을 위한 구매력을 분석한 것. 결과는 주거수준이 높을수록, 월세보다는 전세가, 전세보다는 자가가구가 구매력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자가이면서 주거기준이 가장 높은 가구(16%)의 구매력이 전체구매력의 3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월세이면서 최저주거기준미달인 가구의 주거상향 유효수요능력은 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불안정하고 부실한 집에 사는 가구일수록 자력으로 주거상향이 불가능하다는 것. 소득하위 1∼3분위 가구의 74.6%는 최저주거기준 미달이고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의 71.5%는 20년째 같은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거복지백서에 따르면, 이들의 주거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데도 이주의사가 없는 가구의 비율은 더 높다. 냉혹한 현실은 안정적이고 적절한 집에 대한 꿈조차 사치로 만들고 있다. '있는 사람들'을 위한 주택정책 주택을 시장에 내맡기는 것으로 주거권 실현이 요원하다는 것은 익히 지적된 바다. 그러나 실질적인 공공임대주택이 전체 주택의 2.5%밖에 되지 않는 한국에서 최근 5년간 공급된 공공주택은 연간주택건설호수의 20%밖에 안된다. 게다가 주거비지불능력과 무관하게 주택공급만 확대하다보니 주택이 늘어나도 '없는 사람들'의 수요가 충족되지 못했다. 전체 세대의 1.7%가 다섯채에서 스무채까지 집을 소유하는 현실이 남을 뿐이다. 지난 4월 27일, 정부는 '임대주택정책 개편방안'을 발표하여 2012년까지 총 150만호의 장기임대주택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간의 장기임대주택 건설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택지·세제 등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건설주체를 부동산투자회사, 연기금 등 재무적 투자자에까지 확대하는 모순적인 정책방향을 동시에 담고 있다. 분양가 자율화(1998), 소형주택건설 의무비율 폐지(1998) 등 각종규제완화로 주택을 통한 개발이익의 편중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끓어오를 대로 끓어오른 주택시장에 필요한 것은 민간건설자본에 대한 택지·세제 지원이 아니라 철저한 개발이익의 환수다. 민간건설자본에게는 시공권만을 주고 주택의 불필요한 소유에 대해 세제를 강화하는 등 땅으로부터 나온 것들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공공재로서의 집 주거권이 시장의 변덕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정 규모로 공공주택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시장주의자들이 부르짖듯 '공급을 늘려 가격을 낮추자'는 단순한 해법으로는 '주택'문제의 해결도 요원할뿐더러 거주할 '사람'은 오히려 배제될 뿐이다. 내집마련이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개인의 좌절로 떠넘길 것이 아니라 '주택'과 '사람'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즉 집이 재산증식의 수단이 아닌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공공재로 인식되어야 한다. 개개인에게 집은 각자의 것일 수 있지만 세대를 거듭하며 살아갈 ‘사람’에게 한정된 땅에 지어질 집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살만한 내집’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점유할 권리가 인정되면 된다. 현재 서울시에서 시행중인 다가구주택 매입임대정책과 같이, 공공주택확보를 위해 기존주택을 매입하는 것도 중요한 방향이 될 것이며 더욱 적극적인 수용도 고려해볼 수 있다. 또한 싱가포르의 정책도 참조할 만하다. 싱가포르는 만 21세 이상의 싱가포르 시민 중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시민에게 주택개발청(Housing&Development Board)에서 공급하는 주택의 신청자격을 부여해 국민의 85%가 공공주택에 거주한다. 공공주택 중 90%가 분양주택이기는 하지만 분양은 소유권을 완전히 이전하지 않고 99년 동안의 사용권만을 부여하는 장기임대형식의 계약이다. 거주의무기간 이전에 매각할 때는 최초 분양가로 환매하도록 전매를 제한하고 두 번째로 분양받은 주택을 매각할 때는 주택개발청에만 매각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주택에 대한 처분과 수익권을 제한하고 있다. 분양가격도 방3개짜리 주택은 90%의 가구가 부담할 수 있는 수준, 방4개짜리 주택은 70%의 가구가 부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정하는 등 주변시세의 55% 수준으로 공급하고 있다. 권리로서의 집-주거 집이 자기 소유일수록, 많을수록 더 좋은 집을 얻기 쉽고 집이 없을수록, 소득이 적을수록 집을 마련하기 더욱 힘들어지는 현실. 게다가 가구 위주의 주택정책은 집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개인들을 '숨겨진 홈리스'로 남겨놓는다. 누구에게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 집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일반논평4를 통해 적절한 공간, 점유의 안정성, 지불가능성, 사생활의 보호, 바람직환 환경, 기본적인 편의시설에 인접한 적절한 입지 등을 '적절한 주거'의 내용으로 제시하며 주거권의 실체를 밝힌 바 있다. 주거권은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권리가 되어야 한다. 이미 1970년대에 독일법은, 16세 이상의 청소년 및 성인이 독립을 위한 거주처를 요구할 경우 주정부가 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거주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주거'에 대한 청구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주거취약계층의 절박한 현실도 바뀔 수 있다. '적절한 주거'는 청춘을 헌납하고 '합격' 여부에 따라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 무엇이 아니다. 권리를 노름판에 올려놓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일 뿐이다. '사회권의 침해에 관한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듯, 국가는 주거권의 실현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의무교육기간을 설정하여 적절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듯, 모든 거주민의 주택소요(needs) 및 수요(demand)를 파악하여 주거권 실현을 위한 행동계획(Action Plan)을 수립하고 정책수단이 될 수 있는 공공주택을 확보해야 한다. 집을 수 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집이 재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만들고 추진해온 주택정책. 이제 우리가 귀기울여야 할 목소리는 집없는 '시설' 사람들, 집을 빼앗긴 사람들, 집을 나와 집을 찾는 아이들, 폭력에 노출된 채 갈 곳 없는 사람들, 여성의 주거권을 말하는 여성들, '잠자리용 깔개로는 스티로폼이 최고'라며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그/녀들의 목소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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