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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대중과 호흡하고 대중의 힘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것

사전에서 ‘선전’이라는 말을 찾으면 “주의·주장이나 어떤 사물의 존재·효능 따위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와 공감을 얻기 위해 널리 알림”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선전 담당자들에게 이 말을 내밀면서 이렇게 하고 있냐고 물으면, 아마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노조간부는 넘쳐나지만, 대중은 침묵하는 선전매체들

얼마 전 어느 보고서에서 현대자동차 노조방송 내용을 분석한 결과는 흥미롭다. 일정기간 동안 노조방송을 분석한 결과 전체 내용 중 가장 많은 유형이 조합공지였고, 그 다음이 조합간부활동과 노조상급단위 소식이었다. 각종 칼럼과 인터뷰 등도 노조간부나 전문적 활동가 등을 중심으로 채워지고 있고,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공간은 봉쇄되어 있다.
또 영상물과 신문광고 등에서도 대부분 조합원들은 질서정연하게 모여서 노조간부를 응시하고 있고, 노조간부들은 크로즈업 되어 뭔가를 얘기하는 모습이 주로 나타난다. 간부는 얘기하고, 조합원들은 듣고 있을 뿐이다. 결국 노조의 각종 선전매체에서 ‘사고하는 노동자’ ‘토론하는 노동자’ ‘분노하는 노동자’ ‘선동하는 노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역할은 모두 간부가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문장 역시도 간부가 대중에게 어떤 사항을 전달하기 위한 단언형(겠습니다. 것입니다. 할 때입니다. 등)이나 지시형(합시다. 부탁드립니다. 바랍니다. 좋겠습니다. 등)의 문장이 많다.
노동조합에서의 선전은 노동조합의 입장과 일정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조합원들은 그에 따르라고 지시하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선전의 사전적 의미에서 ‘주의·주장이나 어떤 사물의 존재·효능 따위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역할만 하고 있지, ‘이해와 공감을 얻기 위한’ 역할은 찾아보기 어렵다. 차라리 명령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선전, 대중과의 호흡이 절실하다

선전에서 중요한 것은 ‘알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리는 것’이고,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간부들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알리는 것보다 대중이 궁금해 하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항상 대중들을 향해서 눈과 귀가 열려 있어야 하고, 그런 대중들을 향해서 솔직해야 한다.
어떤 투쟁을 앞두고 ‘자본과 정권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투쟁의 당위성만을 얘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중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대해 솔직하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들이 투쟁에 따른 불이익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고 어떻게 그런 불이익을 극복할 것인지를 제안하고 토론하게 만들어야 한다. 많은 이들의 동참에 대해 우려한다면, 객관적 사실을 정확히 얘기하고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면서 함께 힘을 모아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중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솔직한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간부들이 아무리 객관적 자료를 밝히고 솔직하게 얘기한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은 쉽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다. 특히, 간부와 대중의 거리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낙서의 형태든, 술자리의 푸념의 형태든, 개인적 상담의 형태든, 대중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이런 사소한 대중들의 의사표현에 간부들이 민감해 하고, 그에 대해 솔직하고 성의 있게 대한다면 대중들은 더욱 솔직하게 자신들의 의사를 밝힌다. 그런 관계가 되었을 때 대중과의 토론이 가능하고, 그런 토론들을 통해서 대중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결국, 선전은 대중토론의 매개가 되어야 하고, 그런 과정과 결과를 취합하면서 대중의 힘을 모아가는 활동이 돼야 한다.

전문적인 선전활동가가 아니라 대중 선전일꾼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은 글이나 여타의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선전활동의 중요성에 비해 선전활동가들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 선전활동은 역량을 갖춘 몇몇 활동가에 의존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점점 전문적 선전역량을 강조하게 된다. 이런 경향이 강해지면 강해될수록 선전활동은 대중을 대상화하고, 간부들의 독점물이 된다.

그러나 투쟁이 매우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대중들은 아주 뛰어난 선전역량을 보여주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투쟁시기에 하고 싶은 얘기를 리본이나 소자보 등에 적으라고 하고 어떤 뛰어난 선전활동가의 문구 이상으로 절절하고 기발한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대중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짧은 구호로 표현하기도 하고, 유머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동작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모든 것들이 다 중요한 선전의 소재와 주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대중적 표현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담아낼 수 있는 마인드와 능력이 전문적인 선전활동가들에게 없다는 것이다.

과거 현대자동차 현장활동이 활발한 때 현장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선전물들이 넘쳐났다. 노동조합 차원의 각종 선전물, 대의원회와 소위원회 등의 선전물, 현장조직의 선전물만이 아니라 부서나 반단위로 각종의 선전물들이 활발하게 발행됐다. 특히, 현장과 밀착한 선전물들의 경우 표현과 편집의 투박함 속에는 현장의 작은 것들이 녹아나고 있었고, 다양한 형태로 대중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공간이 열려 있었다.
노조신문에 실린 노조간부의 인터뷰 기사는 대중 속에서 특별히 거론되지 않지만, 부서 소식지에 실린 부서 조합원의 인터뷰 기사에 대해서는 “사진이 실물보다 잘 나왔다” “그렇게 안 봤는데 말 잘하네” “그런 얘기는 왜 하냐”는 등 다양한 의견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또 일상에서의 사소하지만 조합원들이 민감해 하는 소재가 기사화되었을 때 조합원들은 이러 저러한 형태로 찬반논란이 일기도 하고, 그에 대해 자연스럽게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지난 부안투쟁에서도 매일 열리는 촛불집회에서 대중들의 생생한 모습을 찍은 비디오가 날 것 그대로 반영되었을 때 대중들은 가장 즐거워하고 높은 호흥을 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대중과 호흡하고 대중이 직접 참여하는 선전매체들은 어떤 전문적 선전매체보다 높은 대중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런 대중적 선전활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문적 선전역량보다는 투박하지만 다양한 형태로 대중과 호흡하는 대중 선전일꾼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대중적 선전활동이 활발해졌을 때 노동조합의 활동이 강화될 수 있고, 역으로 간부들의 오류를 대중적 긴장력으로 강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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