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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편지

 

김성민 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양교도소에 있는 한상균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담아 보내 주신 책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존함 밖에 알지 못하지만 따뜻한 사랑을 주시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모진 억압을 온몸으로 맞서온 선배님들에 비하면 요즘 징역은 너무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것을 잃고 수천 가정의 고통을 뒤로 한 채 이곳에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투쟁 반드시 승리로 마무리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겠습니다.

10년 동안에 일어날 일들이 1년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세상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연말입니다.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일들이 성취되는 신묘새해 맞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12월 5일

종은 세상을 바라면서

한상균 올림

 

(우) 431-600

경기도 안양시 안양우체국 사서함 101호

한상균 (1110번)

 

 

김성민 동지에게!

구속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애틋한 마음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을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외로움도 덜 타고, 고립감도 덜 느기게 되고 징역생활을 힘내면서 지낼 수 있는 것 같네요.

더군다나 일면식도 없는 분의 정성일 때는 감동이지요.

 

군사독재 시절 20년 전에 징역 산 적이 있는데, 민가협에서 영치금 1만원 넣어줬다고 편지통부 갔다줄 때는 가슴이 뭉클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지금도 남다른 느낌으로 받습니다만, 옛 마음 같지는 않습니다. 근데 이번에 동지 글과 책 받고서 그때 그 느낌 가졌습니다.

 

어쩌면 잘 지내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격려로 느껴집니다. 기대에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참 저는 1년 6월 형이 확정되면 외상값 1년을 더 살아야 하기에 2012년 2월쯤 출소합니다.

 

제주는 저희 화물연대 조합원들도 있어서 가끔씩 가게 됩니다.

앞으로 1년쯤 뒤에 제주에 들리면 꼭 한 번 연락드리지요.

그때 인사라도 나누면서 술 한 잔 했으면 합니다.

 

퍽퍽한 징역살이에 동지의 글과 책 때문에 따뜻한 겨울 보내게 되었습니다.

 

연말연시 잘 보내시길 바라며...

 

2010년 12월 12일

 

대전옥에서 윤창호 드립

 

(우) 305-600

대전시 유성우체국 사서함 136호

윤창호 (828번)

 

 

 

김성민 동지께

“세상의 낮은 곳에서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먹는 철거민과 노동자들이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진한 여운으로 가슴에 남았습니다.

징역에서 보내는 두 번째 겨울, 추위를 잊게 해준 동지의 온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2년 6월의 징역이 벌써 정상을 지나 하산일도 9개월 남짓 남았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시인이기 이전에 혁명가였던) 김남주 동지는 감옥을 “팔과 머리의 긴장이 잠시 쉬었다 가는 휴식처이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독서실이고 정신의 연병장”이라고 했지만, 부족한 제게는 늘상 단련의 시간만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징역도 투쟁의 연장이라고 하지만 창살 밖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것은 고통이었습니다. 구속된 지 얼마 안돼 용산 철거민 동지들이 불에 타 도심 한복판에서 살해되었고, 쌍용차 동지들의 77일간의 공장점거투쟁이 무자비한 폭력탄압과 총파업 투쟁의 배신 속에 피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올해는 현대차, 기아차, 철도노조 등 대공장 정규직 노조의 무쟁의와, 타임오프제 시행에도 불구하고 투쟁할 의지도 실천도 없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무력함에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착취받고 탄압받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륭전자, 동희오토 동지들이 끝내 승리하여 다음 투쟁을 준비하고 있고,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25일간의 공장점거 투쟁은 연평도 사태의 포화속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으로 쟁점화 하며 또 한 번의 전진을 일구어냈고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가슴이 터질 듯 환호하고 때로는 절망을 반복하며 보낸 시간들이 지나고 나니 순식간입니다. 산맥처럼 변함없이, 흐름조차 느낄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장강 앞에 천박하게 일희일비했던 제 자신이 자주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선배동지들의 희생으로 고문도 없고 부족한 것 없이 지내는 징역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처음 인사드리는 편지가 두서없습니다만 철거민과 노동자를 하느님으로 믿는 같은 신도로서 마음 편히 속의 말 드리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지난 번에도 책을 한 권 보내주신 적이 있으시죠. 제주도에 아는 사람이라곤 사촌되는 고모님밖에 없는데, 책 한 권만 전달되어 처음엔 잘못 온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주소와 성함만 수첩에 적어놓았었는데 이번에 편지까지 받고 보니 제가 먼저 누구신지 여쭤도 보고 감사 편지도 보냈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올해 서른 다섯이고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로 투쟁하다 지난 2009년 1월초에 구속되었습니다. 결혼은 못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해온 정인도 있고 무엇보다 든든한 동지들이 있어 여전히 가슴 뜨거운, 열정만은 20대 부럽지 않은 청년노동자입니다.

이 곳 원주에는 지난 3월에 이감왔는데 말씀하신대로 구치소보다는 지내기가 낫습니다. 1년 가까이 있었던 수원구치소는 아파트 건물식이라 땅조차 밟을 수 없는 끔찍한 곳이었답니다. 이곳은 운동장이 비좁기는 하지만 담벼락 너머로 언덕배기 나무들도 보이고 공기도 맑습니다. 학습과 운동이 생활화되도록 해야 하는데 욕심만큼 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독거사동이라 매일 한 시간씩 운동이 있고 30분은 달리기를 합니다. 종일 갇혀있어야 하는 공휴일은 고역이지만 혼자 있다보니 방안에서도 틈틈이 운동을 합니다. 장기수 선생님들에 비하면 2년 반은 징역이랄 수도 없겠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단련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출소 때까지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두서없이 말이 길었습니다. 보내주신 책과 잡지는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편지 한 장만으로도 넘치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혹시 다시 연락주신다면 교정본부 홈페이지에서 메일을 이용하시면 따로 우편료가 들지 않습니다.

뜻밖의 생일 축하 선물이 제게 큰 위안과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후회없는 수형생활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스스로에게 자주 되뇌이는 시 한 편 마음 담아 전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새해에도 계획한 바 모두 이루시기를 기원드립니다.

 

2010년 12월 25일

민중이 주인되는 생일날을 축원하며

김수억 드림

 

 

벗에게

 

김남주

 

좋은 벗들은 이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네

살아남은 이들도 잡혀 잔인한 벽 속에 갇혀 있거나

지하의 풀이 되어 숨죽여 흐르고

더러는 국경의 밤을 넘어 유령으로 떠돌기도 한다네

그러나 동지, 잃지 말게 승리에 대한 신념을

지금은 시련을 참고 견디어야 할 때,

심신을 단련하게나 미래는 아름답고 그것은 우리의 것이네

이별의 때가 왔네

자네가 보여준 용기를 가지고

자네가 두고 간 무기를 들고 나는 떠나네

자네가 몸소 행동으로 가르쳐 준 말

- 참된 삶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존재로 향한 끊임없는 모험 속에 있다는

  투쟁 속에서만이 인간은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혁명은 실천 속에서만이 제 갈 길을 바로 간다는 -

그 말을 되새기며

 

(우) 220-600

강원도 원주시 원주우체국 사서함 87호

김수억 (53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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